들어가면서#
9 월 마지막 날 로부터 이 글을 쓴다 . 지난 9월 26일자로 ‘몰지각 시대의 이성 ’이라는 첫 번째의 글을 썼다. 내용이 좀 복잡하긴 하지만 왜 한반도 문제가 현재의 서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인지, 이 일이 MB정권에 후 순위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는 설명했다. 당연히 일본이라는 팽창주의 노선이 서울에서 사냥개들을 통해서 어떤 일을 벌이는 지도 ‘시대 시리즈 ’와 함께 보충했다.
9월 30일, 미국의 구제금융안(bailout)이 하원에서 부결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이를 일종의 정치적 페인트 모션으로 보는 것은 여러 모로 미국의 정치 경제권력의 구성으로 보아 평가가 적절해 보인다. 물론 미국민들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지만 10월 2일 상원통과에 이어 하원도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고통 확산의 첫 시발점이 된다. 시장도 불신에 그득차 있다.
결국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위기의 연속 드라마다. 실물경제가 위험해지기 시작할거라는 조짐은 사방에서 드러난다. 환율로부터 외화유동성의 부족현상, 그리고 시장의 불안이 기업, 가계, 부동산 등으로 확산된다.
이 현상은 미리 예고한 바와 같이 ‘경제를 죽이는 과정 ’에서 나타난 산물이다. 월 스트리트의 붕괴현상은 예상보다 확대된 개념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있건 없건 간에 한국경제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바로 MB정권이다. 그들이 ‘친일의 사냥개 ’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조짐에는 일본기획자의 얼굴이 겹쳐져 보이는 게 당연한 것이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 바로 외화유동성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다. 원화가치는 하락하고 국제시장에서 외환수급도 자유롭지 못한 터에 무역수지 적자폭은 몇 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외환보유고 이야기가 자꾸 나오지만 9월 중순 경 현재 2,432억불 가운데 1년 내 만기도래 유동외채 2,223억불 , 10월 초 한국은행 발표로는 9월말 현재 2,396.7억불 수준이다. 실제 가용액은 200억불 보다 훨씬 아래 수준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어찌 될는지 모를 판이다. 10월 무역수지는 당연히 적자일 듯 하고, 11월말이 지나면 지난 9월초 연기했던 외화채권 가운데 3개월 연장분이 도래한다. 이것이 관건이 아니다. 엔케리 자금에 대해 시중은행의 연장불가 결정이 9월 중순 이후 진행 중이고, 일본도 자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금리인상을 하면 바로 엔케리는 빠져 나간다. 부동산에 투입된 PF자금들도 마찬가지다. 시장붕괴 상황에서 그나마 지탱해주던 실물경제에 대한 관망심리가 무너지면 바로 한국 경제는 무너질 조짐이다.
주가를 연기금으로 억지로 받치는 비정상적인 주식시장에서조차 선명하게 향후 실물경제의 위축이 눈에 띈다. 이것은 미국경제의 환란과 잇닿은 것이기도 하지만 애초 지난 3월 이후 고환율정책 기조 유지로부터 부동산의 버블화, 종부세 감면, 시장에의 무리한 환율조정 개입, 연기금 투입을 통한 시장육성 등을 해왔던 정부의 실책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 다시 공기업 민영화가 거론될 것이고, 부족한 외화수급을 맞추려면 무리한 정책기조가 따를 듯하다. 한 마디로 국가경제를 일부러 망치면서 ‘누군가를 ’불러들이는 형국이다.
국민들은 아직까지 MB정권이 이 정도 수준의 극악함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다. 여전히 한나라당의 지지층은 다른 야당에 비해 두텁다. 몰지각이 불러온 해프닝이다.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선뜻 지지하지 못하는 관망세력, 그리고 행동하려고 해도 뚜렷한 목표를 상실한 지난 십 년의 소시민적 삶들이 그득하다. 이것은 일종의 비이성적 국민의식에 속한다.
‘일본 ’이 드러날 정도의 수준에서는 한국은 이미 이 시대를 고스란히 ‘다시 백 년 ’으로 돌린 수준일 터이지만, 그 상태는 앞으로도 최소한 일 년은 남았다. 그만큼 그들이 보란 듯이 드러내고 등장하지는 않는다. 마치 안개처럼 들어오는 방식을 선택할 것이고, 아는 순간, 시대는 누군가에게 아주 강하게 잠식된 이후가 될 터이다.
이번에는 종합적으로 도대체 어떤 형태로 우리가 10월~11월에 걸친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인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것이 차라리 예상이면 좋겠지만 지금까지 지난 6월 이후 단 한 번도 이 흐름이 바뀐 흔적은 없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렇게 대세처럼 이어져갈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약간씩의 변용은 있을지 몰라도 ‘대세의 흐름 ’은 그렇게 간다는 것은 분명하다.
1. ‘희생양 ’이 필요하다.#
MB 정권은 출발부터 희생양을 설정하고 움직이는 중이다. 청와대가 일차 개편되고 내각도 부분 개각을 했지만 그래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킨 몇 사람이 있다. 그 라인은 정책기획, 경제, 그리고 대변인이다. 그러니까 ‘박재완-강만수-이동관 ’세 사람을 기본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여기에는 한승수 총리가 끼어있지 않았지만 촛불민심으로 오히려 그의 지위가 격상된 감도 없지 않다.
이 설정은 밀어붙이기를 가속화하는 축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들은 한편으로 ‘어떤 상황 ’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왜 MB는 강만수를 경질하지 않는가?
이 점을 의아해 하는 사람들은 많다. 경제정책 자체가 국민 대다수를 대상으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중심으로 가는 상태에서 나오는 당연한 의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기에 이상할 정도로 ‘좌파 우파 ’같은 이념이 개입된다. 즉, 그들이 생각하는 우파적 관점의 정책이 바로 친 기득권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이념적 접근이 친 기득권 경제정책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반문한다. 그러나 줄기차게 이 말을 되씹는다. 박희태가 말하는 “냉전 이상의 긴장상태이므로 울타리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 ”는 발언은 차라리 우파의 벽으로 사회 국가 전체를 포획하자고 외치는 목소리다. 그래서 좌파정권이 망친 경제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목할 부분은 여기서부터다.
왜 좌파 우파론이 나오고 경제는 바닥으로 몰고 가야 하는가? 일반적 논리를 보자.
- 첫째, 일단 경제를 죽이지 않고서는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는 논리는 합당하지 않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집권한 정권으로 사회를 개편하고 변모시킬 방법은 많다.
- 둘째, 기득권 중심의 경제정책을 편다 하더라도 일부러 경제를 잘못되게 만들 수는 없다. 좌파론을 펴기 위해서 경제를 죽인다는 것은 억측이다.
- 셋째, 세계 경제와 연동된 상태에서 초기 경제정책이 약간의 오류가 있었는지는 모르나 그래도 이 정도면 잘 관리하는 것이다. 과거 잘못된 정책 몇 가지를 수정한 것으로 국가경제가 모두 잘못되지는 않는다.
대체로 이런 논리를 편다. 매우 평면적이다. 약간 입체적으로 재구성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이 장면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다.
- 첫째, 정권 초기의 경제정책은 한 마디로 친 기업적인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친 대기업도 아니었다. 그렇게 흉내만 내었을 뿐이다. 목표는 일단 경제를 ‘말아먹는다 ’에 집중되었다.
- 둘 째, 그럴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경제파탄 국면이 조성되지 않고서는 ‘친일 ’이 확고한 자리를 잡지 못한다는 원칙이 서 있었다. 그를 통해서 일본이 구세주로 등장하는 프로그램, 국민들을 우중화(愚衆化)해서 노예처럼 몰고 가지 않고서는 목표한 ‘친일화 ’달성이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다.
- 셋째, 반발에 대한 고려다. 경제적 난관 없이 국민에 대한 공안정국, 신메카시즘의 기법이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다. 당연히 이 틈을 비집고 뉴라이트 집단을 앞세우고, 정권까지 나선 ‘우파 네트워크 론 ’(좌파 배척론)이 나왔다. 이른바 이념전쟁은 그저 나온 것이 아니라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소시민적인 개인주의로 몰아가기 위한 방책이었다.
- 넷째, 그 이후의 대책이다. 일단 어떤 형태로건 친일화의 기초 완성을 해야만 ‘보수정권의 백 년 ’(즉, 친일정권의 백 년 기득권)이라는 그들 집단의 목표를 일차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 이후 서서히 경제환경을 계급화하고 예속화 하면서 끌고 나가면 완성까지 이르는 것이다.
- 다 섯째, 이 프로그램의 오류는 ‘촛불 ’이었지만, 그 이후 기획의 변경에 의해 오히려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계기로 촛불민심을 찍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좌파, 빨갱이, 공안정국의 조성이 유리하게 되도록 기획이 바뀌어 갔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들을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고 간다는 데까지 발전했다.
MB정권이 친일성향인가 아니면 ‘친일 그 자체 ’인가를 따져볼 수 있는 잣대가 바로 이 부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권 자체가 완전한 친일이고, 그들은 우파, 보수 같은 가면을 쓰려고 한다.
여기서 희생양이 등장한다. 바로 그들이 말하는 ‘좌파 ’다.
촛불민심 자체가 좌파다.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대중행위가 좌파다. 정책을 찬성하지 않는 모든 대상은 좌파다. 그러므로 자신들은 우파가 된다. 그 가운데 친일이 곳곳에 침투를 한다. 교과서도 그렇고 정책 속에서도 그렇다.
이 프로그램은 초기 촛불민심이 터져 나온 이후 변형된 것으로 파악된다. 원래는 서서히 가려고 했다가 촛불로 인해 좌절되는 척 했지만 이내 본 코스로 접어 들었다. 오히려 더 강력해졌다고 봐야 한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변 수는 국민의 반발에 있다. 정치권의 정권에 대한 견제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MB정권은 일단 밀어붙이기를 가능한 수준까지 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반발이 거세진다. 경제위기가 오면 그것을 헤쳐나간다는 명분으로 공기업 민영화 등을 통해, 그리고 정책자금의 지원 등을 통해서 일본은 한국에 상륙하게 된다. 그것이 친일의 기초완성이지만 국민들은 아직 그 내용을 잘 모른다. 그저 뉴라이트 집단이 친일이라는 수준이다. 정권 자체가 친일사냥개 집단이라는 것까지는 어렴풋이는 알아도 하나하나 따져볼 여유가 없었다.
오히려 국민들의 반발은 정책 실패로 모아진다. 기득권만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 그 가운데서도 경제정책으로 집중되게 되어 있다.
강 만수는 그래서 일정 시간 동안 살아남아 있어야 하는 역할을 하는 중이다. 경제위기가 오고 나서, 그 책임을 질 사람이 MB가 아니라 앞줄의 한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섣불리 강만수를 경질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더 강하게 위기로 몰아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 것이 현실이다.
정권은 촛불민심을 희생양으로 하고, 한편으로 반발에 대한 희생양으로 강만수를 찍어놓고 기다리고 있다.
좀 더 많은 희생양이 필요할 개연성도 있다. 그 때는 주변의 이런저런 사람들을 개각하는 것으로 마무리 할 것이다. 거기에는 한승수 등이 포함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애초 없었다. 이렇게 가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었다.
목 표는 간단하고도 명쾌하다. 정권 초기에 친일의 재구성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용어상으로는 ‘우파 네트워크 ’로 나온다. 그러나 실제는 친일의 집단화, 계통화라는 것으로 보여진다. 거기에 정권을 축으로 하는 기득권들이 결합한다. 기업, 단체, 정당, 종교, 개인 등이다. 여기에 속하지 않은 집단은 그들의 ‘패거리 ’가 아니고, 이 정권에서는 절대 주체가 될 수 없다. 완벽한 편가르기가 가능한 것은 바로 정권이 이 프로그램에 공권력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국민은 일단 가장 큰 희생양이 된다. 시대도 그렇다. 대한민국 정권수립 60년을 시발로 해서 친일정권이 가동되었다. 국민은 드디어 ‘황국신민 ’이 된 셈이다. 빌어먹을 상황이다.
2. 100% 찬스를 찾아서#
그 들의 기획은 치밀했지만 곳곳에서 구멍이 뚫렸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촛불민심이다. ‘광우병 ’도 문제였지만 촉발되는 과정에서 ‘주권 ’(主權)이라는 빌미를 준 것이 그들로써는 ‘옥의 티 ’였다. 향후 그들이 전개할 프로그램은 바로 한국 내에서 국민주권을 빼앗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들은 100% 찬스를 찾기 위하여 숱하게 사회 내부를 휘젓고 다닌다.
‘ 건국 60주년 ’이라는 개념을 꺼내면서 ‘이승만 재평가 ’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역사교과서도 아예 이 참에 일본 우익과 동일한 뉴라이트 교과서 식으로 바꾸자고 덤빈다. 그것뿐이 아니다. 종교편향성을 통해 개신교를 한 카테고리로 묶는 작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사회 각 부문에서 반대가 가능한 세력과 집단을 한꺼번에 소탕하려는 공안정국을 가동한다. 더불어 여론장악을 위한 신문방송 권력의 재편, 금산법 완화를 통한 재벌의 금융권 진출, 조중동 등 페이퍼 매체의 방송진출 등을 연다.
이 일련의 작업들은 매우 치밀한 구성을 바탕으로 한다. 겉보기에는 비판의 소지가 다분히 있지만 유기적인 관계, 즉, 정권이 가는 방향에서 보자면 이것이 대세로 인식되게끔 몰아붙이는 것이다.
진행과정에서 몇 가지의 새로운 찬스를 엿보는 조짐도 나타난다. 이끌고 있던 흐름과 다양성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은 유형들이 드러난다.
- 첫째, 기득권을 단속하는 것이다. 종부세 논란은 해프닝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최소한 기득권의 안전을 그들이 도모한다는 강한 이미지를 심기를 원한다.
- 둘째, 권력의 흉포함을 보인다. 언제든지 공권력은 정권의 시녀임을 만천하에 알리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외부적인 반발뿐만 아니라 그들 내부의 이탈을 막는 방법이 사용된다. 떠나면 죽는다는 강한 메시지다.
- 셋 째, 포획의 수순을 밟는다. 즉, 사회 내부에서 계층화를 가장 손쉽게 달성 가능한 여론의 장악을 위해 신문, 방송, 인터넷까지도 모두 여론의 조작과 단속을 병행하려고 한다. 이것은 소위 ‘오감(五感)의 포획 ’이라고 불리는 방식이다.
- 넷째, 주의(注意)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경제다. 촛불민심에서 나타난 세력중추가 없는 집단의 한계를 십분 활용하려고 한다. 각개격파의 원동력은 바로 산만(散漫)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것은 당면 경제, 생존에 대한 집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야 뭉치지 않는다고 본다.
- 다섯째, 남북관계를 최대한 악화기조로 이끈다. 이것은 작전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그들이 기획한 우파 네트워크의 당위는 한방에 무너지고 만다. 즉, 민족주의 기조가 드러나게 될 경우, 민심은 요동을 친다. 그러므로 책임을 적절하게 상대로 돌리는 이화접목(移花接木)의 수법을 사용하는 중이다. 책임은 항상 상대에게 있다는 주장으로 몰고 가는 셈이다.
- 여섯째, 일본을 등장시킨다. 친일의 재구성은 일본에 대해 두 가지의 당위를 내밀며 시작된다. 하나는 일본의 과거에도 공(功)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는 논리로부터 출발한다. 딱 이 두 가지에서 일본은 과(過)를 따지지 않아야 하는 대상으로 돌변한다.
- 일곱째, 근대화 산업화 세대라는 명분을 내건다. 이것은 우파론과도 다르다. 일종의 세력화를 위한 끌어안기 가운데 친일이었건 아니었건 간에 경제개발에 기여한 모든 집단과 개인을 우대한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우파로 포장된 친일의 우산 속으로 끌어당긴다.
- 여덟째, 공권력의 적용이다. 무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강압(强壓)을 단행한다. 항상 명분을 남긴다. 이유는 다르다. 이것은 공권력이 가질 수 있는 극대치를 사용하는 것으로, 그들이 가진 권력지향적 속성을 마음껏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그들의 한국 사회에의 접근법이 통하고 있다. 물론 반발은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미미하다. 왜냐하면 겉으로 드러난 한계치가 오지 않는 상태까지만 몰아 붙인다. 적절하게 여러 단계를 혼용하고, 여전히 조중동을 비롯한 여론의 조작에 용이한 패거리가 함께 움직인다.
이 가운데서 비집고 나올 가능성에 대해 사전 단속을 강화한다. 현재로써는 가장 통제가 되지 않는 곳은 바로 ‘인터넷 ’공간이다. 거기에도 대규모의 세력을 동원(소위 ‘알바 ’다)한 여론조작을 감행한다. 그러나 인터넷이 가진 자정기능은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러므로 아예 이를 틀어막으려 한다. 단순한 조작의 차원을 넘어서 창구기능을 막으려는 시도는 무모하게 보이지만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가 발생할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그에 대한 대책 요령은 ‘압박과 회유 ’라는 것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설득이 아니다. 그들의 친일화 정책기조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이들의 태도에 두 가지로 대응한다. 하나는 침묵이고 다른 하나는 반발이다. 전자에는 회유, 후자는 압박이 시작된다.
대개의 중립지대(회색지대)에 속한 사람은 극한 대립을 싫어하는 경향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대체로 먹혀 들어가는 편에 속한다. 정권이 아직도 4년 여 남았다는 사실, 그리고 차기 정권마저도 이런 기조대로라면 장악된 여론을 바탕으로 움직인다면 다시 정권연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될 경우, 어떤 집단이나 개인도 이들에 의해 장악될 소지가 크다.
압박은 전방위로 진행된다. 국가가 장악한 개인, 집단에 대한 정보로부터 나아가 검찰, 경찰의 ‘몽둥이 권력 ’까지, 더불어 세무조사나 기타 감사원, 금감원 등 조사와 통제기관까지 아낌없이 동원된다. 거대한 포획의 흐름이 이어지고, 거기에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저항할 여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히 과거와 같은 시류를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들의 잔꾀라고 볼 수 있다. 즉, 독재와 반독재, 민주와 반민주 같은 흐름이다. 그러나 이것은 조만간 그렇게 정의되며 반발로 이어질 조짐이다. 왜냐하면 한 번 사용된 권력은 자꾸만 독재와 반민주를 지향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밀어붙이기의 폐해다.
이것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들의 고민 가운데 가장 깊은 것은 바로 이 부분이지만,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포획구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정밀하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의 기획에는 숱한 빈틈이 있지만 의외로 이를 해체하려고 하면 장애에 부닥친다. 그만큼 조밀(稠密)하게 구성되어 있다. 섣불리 과거의 잣대인 독재, 반민주 같은 논리만으로 이들의 기획에 대항하고자 할 경우에는 바로 강압이란 잣대가 움직인다. 매우 교활하게도 공안, 메카시즘, 전례, 조사, 의회 권력, 친 정권 사회집단 등이 움직인다. 좌충우돌 하는 사이 힘이 다 빠지고 만다.
그러므로 현재를 그들끼리는 자화자찬할 수 있다. 아직은 빈틈이 없다는 사실에 만족을 표시하는 셈이다. 경제로부터 사회 전반에 걸쳐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유형의 ‘친일의 재구성 ’이 착착 진행 중이다. 부분적 대항기조로 이들의 기획이 꺾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전면적이지 않고서는 힘들다는 의미다.
사회 국가가 이들에게 이만큼의 공간을 내어주고 난 상태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변혁의 변수는 있을까? 가능한 영역은 다음 세 가지다.
- 첫 째, 그들 내부의 분열이다. 항공모함처럼 움직이는 상태에서 그들 간의 이합집산은 세력간의 다툼으로 드러날 공산이 크다. 오히려 이것이 더 부채질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이들은 스스로 분화될 것이다. 절대권력은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고, 나아가 내부에서 권력의 분점을 위한 투쟁이 벌어진다. 그래서 자멸한다.
- 둘째, 정책실패가 그들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다. 이를테면 민심이 경제정책의 실패가 의도적인 것이며, 나아가 국민을 소시민화, 노예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다. 민중의 봉기(蜂起)는 일종의 분노의 폭발이다.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는 경우의 수, 바로 그것이 민심을 아주 빠른 속도로 뭉치게 만든다. 이를 두려워하면서도 이를 제압하는 수단에 공권력을 마구 투입하는 행태를 보이지만,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자각(自覺)이 생긴다. 그 지점이 무서운 것이다.
- 셋째, 사건이다. 권력이 결정적인 패착을 두게 되는 경우가 바로 희생자가 나타날 경우다. 공권력의 사용은 항상 희생물을 동반하게 되어 있다. 사회 내의 소외(疎外)가 아닌, 실질적인 피해자가 속출하는 경우, 그것은 엎어진 물처럼 주워담지 못한다. 촛불민심의 투옥자가 1,500명을 넘어섰다. 사실 이 숫자만 하더라도 적지가 않다. 그러나 결정적인 희생자는 조계사 회칼테러에도 불구하고 군중 속에서 벌어진 피해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촛불민심을 초기 진압하는 대응을 하고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군중에서 나타난 희생자 ’는 생기게 마련이다. 그 경우, 민심은 급속도로 이반(離反)한다.
현재까지는 정권의 대응이 훨씬 기민(機敏)하게 보인다. 그러나 장담할 수 없다. 이제 겨우 7개월 여가 지났을 뿐이다.
3. 반발을 억누르는 약방감초#
장기적인 정권유지를 위해 역사 속의 정치집단이 선택한 가장 좋은 방법의 첫 번째는 국민을 우매(愚昧)하게 만드는 것이 꼽힌다. 두 번째는 공포감을 통해 통제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노예근성을 타성(惰性)으로 고착화시키는 것이다.
한 국은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분단역사의 아픔이기도 하지만 곧잘 이것은 한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친일집단이 주로 사용했던 최악의 방법이다. 바로 ‘반공 ’(反共)을 확장하여 상대를 ‘빨갱이 ’로 몰아넣는 레드 콤플렉스 시스템이다.
국 민은 촛불민심을 통하여 강력하게 반발을 했다. 그 구호는 바로 ‘소통 ’(疏通)이었지만 이것은 거부 당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정권이 설정한 방향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것은 매우 간단한 논리로 거부되었다. 바로 ‘빨갱이 ’다.
1997년 IMF 이후 한국 사회에 정착되어버린 개인주의, 이기주의는 이제 그 뿌리를 한참 내린 상태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이런 류의 이야기다.
“우리의 노예근성이 드러난 것이다. ”
“모두 벙어리다, 생각도 없고, 저항적 생각을 하다가도 곧 포기한다. ”
“국민을 호구로 여겨도 자신(개인)이 집단에서 왕따 당하는 게 두려워 입 닫고 산다. ”
“몽둥이가 무서워 멍청한 개새끼로 산다. ”
“지성인이라는 것들은 지 잡혀갈까 봐서 쳐박혀서 나오지도 않는다. ”
이 야기의 저변에 흐르는 것은 분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동시에 있다. MB정권은 공포정치를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를 중우화(衆愚化)하는 데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그러므로 노예적 사고를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비록 지난 십 년이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서 개인주의가 극대화되긴 했으나 만끽했던 민주주의가 있다 보니 반발은 여전히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권은 다시 두 가지의 선택을 하게 된다. 첫째, 강력한 공안정국을 더욱 강화해나간다는 것. 둘째, 국민을 우매하게 만들 수 있는 언론의 기능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MB정권은 네티즌의 의견대로라면 다음 다섯 가지를 그들의 근간으로 삼는다는 건 거의 확실하게 보인다.
- 첫 째, 서민경제 쥐어짜기다. 이른바 고통분담 논리다. 경제를 말아먹는 것은 정책당국이지만 이 잘못을 감당해야 하는 주체는 바로 국민이 된다. 그래서 국민 대다수가 자신들의 앞가림을 하기 바쁘게 만든다. 딴 신경 쓸 틈 없도록 부리는 셈이다. 중우화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까지 보여지는 대목이다.
- 둘째, 색깔 입히기다. 반대하는 모두는 일단 ‘좌파 ’로 몬다. 대통령이건 집권여당의 당대표나 심지어 내각까지도 여기에 동참한다. 당연히 정권비호세력들은 상대를 모두 색깔(좌파)을 입히도록 방향을 몬다. 잃어버린 10년이란 구호로도 모자라기 때문에 아예 공안정국, 메카시즘 바람을 일으킨다.
- 셋째, 편 가르기다. 이건 니편내편이라는 가르기에 속한다. 단순히 정치적 지지층의 확보 내지 확산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최소 지지선을 가지면 바로 정책적 밀어붙이기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지지율 30%라는 경계선만 되면 무조건 정책을 밀어붙인다.
- 넷 째, 남탓 하기다. 일단 전임 노무현 정권 탓을 하고, 좀 더 확대해서 이른바 ‘좌파정권 10년 ’탓을 하고, 조금 더 나아가면 국제경제 탓이나 혹은 촛불민심을 핑계로 댄다. 이런 기피심리는 아주 만성화되는 조짐이다. 그 와중에 자신들이 잘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자기 세뇌를 시킨다. 집단 최면이라 할지라도 좋다는 기세다.
- 다섯째, 이익 챙기기다. 철저히 편가르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자기네들끼리의 이익향유가 있다. 이것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는 깊숙하게 진행 중이다. 공정하지 않은 것은 이미 낙하산 인사에서 드러났지만, 이것을 굳이 코드인사라고 해주더라도 그 목적은 정권의 안정성 강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적 이익 ’(개별적 이익)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그들의 잘못을 가리려고 한다. 그 가장 큰 부분이 두 가지다. 하나는 기득권 유지이고, 다른 하나는 수구(守舊)다. 후자가 훨씬 위험하다는 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MB정권의 경제기조도 사실상 이런 정치적 지향점-철학이라 부를 수도 없는-에서 파생된 것이다.
악 성으로 그들의 목표를 정의하는 이유는 ‘수구 ’의 대상이 친일, 친미 수준의 사대주의적 발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사회적으로 완전한 실체로까지 받아들이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실체를 종속적으로 만들더라도 끌고 가고자 하는 것이 ‘경제적 생존 ’도 아니다. 바로 민중의 노예화 수준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국민과 정권 간에는 가장 큰 괴리(乖離)가 생긴다. 국가가 아니라 정권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MB 정권은 이런 자신 내부의 문제점이 국민들 사이에서 쟁점이 되는 것을 극구 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위의 다섯 가지 방향이다. 서민경제 쥐어짜기, 색깔 입히기, 편 가르기, 남탓 하기는 바로 대표적인 방식이다. 이것을 통제된 언론을 통해, 나아가 정권비호 집단과 세력을 통하여 끊임없이 국민에게 주지시킨다. 필요하다면 공권력을 사용하고, 그래도 안 되면 전방위에서 이 모든 행위를 집중한다. 잠깐 물러나서 사과하고 담화를 발표하는 등으로 ‘큰비를 피해가는 ’꼼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본류를 유지하는 데는 누구보다 더 치밀했다. 금방 그들의 노선은 그대로 복원되었다. 다시 강압과 회유, 그리고 장악과 포획이 진행되었다. 지난 7개월이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반발은 지난 6월말을 고비로 더 이상 실체화되어 드러나고 있지 않다. 이유는 무엇일까?
- 첫 째, 정권의 대응이 먹힌 것이다.
- 9부 능선도 아닌 애매한 8부 능선에서 오락가락 하는 방식에 국민들이 스스로 진이 빠졌다. 효율적으로 여론을 장악해 들어간 방식은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유형에 속했다. 거기에 국민 대다수가 농락당했다.
- 둘 째,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할 조직기구가 없었다.
- 기존의 기구들은 모두 ‘빨갱이 ’라는 색깔에 취약하고, MB정권과 같은 친일정권의 꼼수를 상대할만한 전략을 가지지 못했다. 당연히 회유에 넘어가기도 하고 강압에 굴복도 당했지만, 반발의 주체세력이 형성되지 못할 정도로 넓게 쳐들어온 정권세력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산발적 대응은 정권과 대응하기는 무리였다.
- 셋 째, 지성인 집단이 그들의 사적 이익 때문에 침묵했다.
- 한국 사회를 지탱하던 안전판이 사라졌다는 표현이 옳다. 불의나 부당함에 대한 대응세력들이 지난 십 년 정권 동안 스스로 분열되어 버렸고, 그들이 보여준 행태에서 그들 자신이 기존 정치세력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는 한계를 증명해 버린 상태였다. 그러니 나타날 지성인도 없었거니와 그나마 있는 사람들조차도 MB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이제서야 모이기 시작하지만 한참 때늦었다고 보여질 정도로 초창기 MB정권의 공격방향에 허둥지둥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 넷째, 여전히 정권 초기라는 개념이다.
- 경제위기가 다가오면 올수록 아직은 ‘좀 더 지켜보자 ’는 회색지대가 넓게 포진한다. 이들이 가담하지 않는 국민의 반발은 존재하기 어렵다. 결정적 실수가 드러나지 않는 한, 이들은 반 정권에 가담하지 않는다. 이들이 바로 노예근성이라고 욕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분노의 임계점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 다섯째, 사회의 다양성과 복잡성이다.
- 서로 이해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입장 차이가 MB정권의 정책 속에서도 나타나지만, 그 속에서도 각각 다른 정치관, 경제관, 국가관, 세계관이 존재한다.
이 런 상태에서 정권은 토끼몰이처럼 소수의 반발세력들을 사회 속에서 분리하려고 몰아 붙인다. 마치 사회에서 격리될 존재처럼 이들을 몰아가면서 공권력을 활용해서 본보기로 처벌하기도 하고, 종교편향의 경우처럼 불교세력을 슬그머니 회유하기도 한다. 이것은 꼼수와 정공의 조합이다. 정치적인 접근이기에 진정(眞情)은 없다. 그것이 이 정권이 가진 가장 위험한 것이고, 그들은 이것을 극대화하여 활용한다.
4. 독재시대의 개막과 혈투#
봉하마을로 내려갔던 노무현이 10월 1일 서울로 첫 걸음을 했다. MB정권의 실정(失政)은 상대적으로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 착시현상이다.
노 무현과 이명박, 두 사람 간에는 적어도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점이 없다. 목적하는 바는 다르다. 노무현이 친일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일본의 한국 상륙을 저지하지 못한 데 비해 MB는 그 틈을 노리고 친일세력을 규합하며 정권을 탈취했다. 신자유주의 기조는 노무현이 한미FTA를 구걸하다시피 하며 미국으로부터 받아오는데 치중했고 MB는 그것으로 아예 ‘대못을 박으려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 둘 사이에는 차이가 일단 없다. 있다면 노무현의 경우 국민이 기대했던 방향이 아닌 신자유주의를 ‘어쩔 수 없다 ’하면서 마구 받아들였고 MB는 그것이 자신의 정책이라고 하는 수준이다. 노무현은 일제청산을 감행한다고는 했지만 정작 일본 기획자가 의도한 ‘친일의 재구성 ’을 막아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상태에서는 그들이 들어오는 경로 자체를 막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엔케리를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앞으로 폭풍의 씨앗이 될 것이다.
경제위기는 이제 9월을 넘기면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9월 금융위기설은 10월에 들어 외환위기설로 확실히 굳어지는 느낌이다. 외환보유고를 발표하면 알게 될 일이지만 시장은 이미 불안을 감지하고 있다. 11월에는 물가 위기설이 세상을 감쌀 것이고, 12월에는 엔케리가 등장하며 부동산 위기설이 나올 것이고, 내년 1월에는 드디어 초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면서 금리위기설이 등장할 것 같다. 2월 즈음에는 몇 개 대기업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지면서 기업 줄도산 위기설은 마침내 고개를 들 것이다. 이 모든 것이 10월부터 한꺼번에 몰리기 시작할 것이다. 시차를 두고 위기설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위기가 눈 앞에 닥쳐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교묘하게 국제경제와 한국이 엮인 상황에서 드러내지 않고 위기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MB정권의 이 상태에서의 선택은? 딱 한 방향으로 나간다. 바로 독재(獨裁)다.
청 와대 혼자서 결정하는 구도는 점점 심각한 의회민주주의의 실종을 부르는 중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그것은 바로 MB가 공권력을 강력하게 휘하에 두면서 다루기 때문이다. 정치세력의 균형이 무너졌다. 단순히 여당이 세운 대통령이 아니라 여당과 지지세력, 그리고 비호세력까지 포괄하는 가운데 MB가 그 중심에 서 있다. 그 힘이 무엇일까? 바로 친일을 중심으로 하는 계보다. 그래서 뉴라이트 집단을 하수인으로, 그리고 보다 상급에서 조정하는 그들 내부의 위계질서로 인하여 여당이건 정부이건, 나아가 어떤 직위마저도 우선하는 그들끼리의 계통도, 계급층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니 이미 한국은 국가가 아니라 패거리의 계보로 움직이는 나라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월, 이상득은 한일의원연맹 한국측 회장에 취임한다고 한다. 이제 등장해도 좋겠다 싶었나 보다.
이 상황에서는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 보다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밀어붙이기의 요체는 바로 강제(强制)다. 국민에게 조건 없이 자신의 방향을 수용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바로 독재다. 이 과정에서는 혈투가 불가피하다. 많은 피가 흘려질 것이다. 투옥으로부터 공권력의 하수인들에 의한 테러까지도 발생한다. 원래 친일의 사냥개들은 이런 일들에 익숙하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없다. 일본 극우와 우익이 가진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이 무엇이건 가능하다 ’는 것을 신념이라고 포장한다. 그 정치적 신념이라는 종류가 바로 테러를 부른다. 조계사 회칼 테러는 대표적인 백색테러로 분류해도 좋을 듯하다. 단순하지가 않다.
이 것을 공권력 내부에서 감추고자 하면 할수록 혈투의 유형은 더 다양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집단에 대한 테러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다. 물리력은 한 번 사용하게 되면 상대적 반응이 나오게 되어 있고, 그것은 어느 편이건 예외가 아니다. 이것이 수 차 반복되는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 등 법률적 공권력을 가진 측이 이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항상 자신들의 편을 감싸고 그 잘못됨은 은닉하고 은폐하려는 속성을 가졌다. 그래서 ‘드러나게 될 경우 ’에는 수십 수백 배의 비난이 뒤따르게 되어 있다. 이런 싸움에서는 항상 민심은 약자의 편이 된다.
혈투는 다양하게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경제위기 등과 맞물리면서 생계형 투쟁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고, 여기에는 자포자기한 형태의 사람들이 그 대상을 정권으로 돌리는 경우가 생길 것이란 예측 때문이다.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을 가진 폭력심리는 반드시 일정한 대상을 물색하게 되어 있다. 차라리 애국애족하는 심정이라는 정치결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촛불민심이 보여주었던 군중심리와는 다르다. 거듭되는 정권의 실정에 ‘한 몸 바쳐 ’해결하겠다는 식의 관념이 붙어 버린다.
대중적 집회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상호 간의 혈투가 있을 경우와 없을 경우로 나누어지지만 이미 시위현장에 대한 자동차 급습, 조계사 회칼 테러, 경찰 공권력의 과도한 진압 등이 이미 폭력의 기틀을 닦아 둔 상태이기 때문에 차후 벌어지는 대중집회에서는 반드시 그 전후에 있어 폭력을 사용한 혈투가 벌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을 경찰력이 막겠다고 하면 그 대상은 집회 상태가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서 벌어지게 되기도 할 것이다. 막기가 쉽지 않다.
왜 독재라는 개념이 성립되는가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두 가지의 강력한 증거가 있다. 첫째, 일단 정권과의 소통이 지금까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MB 스스로 그리했는지 아니면 주변이 그의 눈과 귀를 막았는지는 모르나 민심의 향배 자체를 그 크기에 비해 너무 작게 평가한다. 그래서 ‘국민과의 대화 ’도 거의 짜둔 각본으로 움직인다.
둘째, 국민을 다루는 방법이다. 대화가 되지 않고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하니 해결방법은 강공(强攻)뿐이다. 이것은 설득력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된다. 이 맛에 들리면 처음부터 끝까지 ‘몽둥이 우선 ’이라는 기조가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파시즘적 접근이 되는 셈이다.
현상은 정확하게 ‘독재와 혈투 ’를 한 셋트로 묶기 시작하는 중이다. 그 속에 반민주에 대한 분노, 수구, 기득권 유지, 친일매국 행위 등이 포함된다. 그 모든 것이 버무려지듯 해서 나오는 ‘피 맛을 보는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엄 밀히 이 또한 전통이라면 전통이랄 수 있다. 한국 정치사에 있어 억압(抑壓)을 목적으로 등장한 정치권력에는 항상 그에 반발하는 세력이 존재했다. 이승만 이후 독재권력에 항거했던 것은 중고등학생, 대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젊은 층이었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세대 구분도 없이 광범위하다.
뉴라이트가 집단화 하는 과정에서 대학에 대해 꽤나 공을 들이면서 이들이 세력화하는 것을 막긴 했지만 그렇다고 혈투 국면에서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든 세대가 대상이 되어 버리게 판이 구성되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악성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은 이에 몹시 무디게 반응한다.
그 점이 오히려 투쟁의 크기를 키울 가능성으로 남는다. 촛불민심은 6월 30일을 고비로 해서 천주교에 의해, 그리고 일부 야당 세력들에 의해, 최근 불교까지 이르는 다른 종교단체들로 일정한 위안을 얻었지만 그 이후 이들마저도 전혀 촛불민심을 이해하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조소(嘲笑) 국면이 만들어지고 있다. 전체적인 불신이 형성된 셈이다. 이것을 정권은 촛불민심이 죽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 착시현상이다. 사회 내부의 지성인 계층과 이른바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중추세력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과정을 지나서 터지는 촛불민심은 이제 당연히 비폭력을 견지하는 형태가 되지 못한다.
그 사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공권력 하나뿐이다. 왜냐하면 정책적으로 MB정권이 지향하는 바는 경제를 죽이고 나서 국민을 통제하는 방식이고 보면, 그 상태까지는 소통을 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없다.
오 히려 이런 때에 등장한 노무현의 민주주의 2.0이나 정치적 발언 등 참여정부 세력의 정치적 재집결은 촛불민심에 반하는 가장 악성의 새로운 형식의 패거리 정치를 만들어 중간지대(회색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권도 반대하는 세력도 모두 ‘별 볼일 없는 정치꾼 ’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족하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의 대응은 역설적으로 MB정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까지 평가되는 것이 옳다.
정치세력은 일단 지리멸렬했다. 민주당은 내부적 갈등마저도 제대로 해소하기 어렵다. 정체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촛불민심도, 그렇다고 MB정권의 기조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 와있다. 또한 촛불민심과의 결합시도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이 정치적 세력이며, 그들 또한 기득권이라는 인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지율이 오르지를 않는 것이다. 그걸 알고도 선택할 대안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민주당 스스로가 현재를 ‘MB정권의 독재시대 ’라고 강하게 정의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민심만이 그렇게 인식한다.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정권의 언론지지층이 쉽사리 붕괴될 조짐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 내에도 자중지란의 가능성은 남아있다는 점이다. 바로 경제를 보는 눈의 차이 때문이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친일의 재구성을 시도하는 과정은 매우 험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므로 그 위기 이전에 한국 사회가 일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 바로 ‘역사교과서 수정 ’이라는 강수(强手)였지만 이 또한 쉽게 의도대로 되지는 않는다. 사회 내에 뿌리깊은 친일에 대한 반발, 일본에 대한 불신이 그리 빠르게 뉴라이트 집단의 의도대로 되어가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실들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꾸 종합되는 중이다. 즉,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MB정권 내에서의 초조감이 더 깊어질 것이고, 그것은 무리수를 꼭 양산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독재가 깊어지면 혈투는 더 앞당겨지게 된다.
5. 존재감 없는 정치권의 화두#
왜 정치권이 이렇게 지리멸렬하게 되었는가? 민심은 왜 정치에서 이렇게 일탈(逸脫)하고 있는 중인가?
미 국 금융시장의 붕괴는 단순히 금융에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부동산 시장의 붕괴, 나아가 개인신용의 경색, 소비의 위축, 그리고 다수의 산업체가 몰락하는 현상으로 이어질 듯하다. 구제금융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들이 전횡하는 대책반이 과연 이 위기를 효율적으로 넘길 수 있을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중이다. 또한 이것이 결코 단기적인 사건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세계경제는 앞으로 상당기간 위기상황을 겪게 될 것이고 금융이나 경쟁력이 취약한 시장들에는 더 지독스런 한파가 몰아 닥칠 기세다.
불 행하게도 지난 4월 총선으로 꾸려진 한국의 의회는 이것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민심이 요구하는 수준의 대응을 정권이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아무 제지도 없이 청와대의 일인독주를 방기(放棄)하고 있다. 그래서 민심이 일차 정치권의 역량을 저평가하고, 그들로부터 이반한다.
노무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그가 민주주의 2.0이라는 토론 사이트를 개설하고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정치에 뛰어든 ’형국이지만, 이것은 성공하기 어렵다. 그에게는 한미FTA를 밀어붙인 원죄가 있다. 부동산 가격 폭락 사태가 벌어질 경우, MB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확대 양산했던-그 자신도 부동산 하나는 실패했다고 인정했지만-그 후과를 감당해야 할 위치에 있다. 민심 가운데서 자신을 열렬히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를 대신해서 앞으로 나설 정치적 후계자도 없다. 당연한 일이다. 5 개월 전의 총선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것이 단지 조중동의 치밀한 언론싸움으로만 빚어진 결과로 착각하면 오산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정치권은 아무도 현재의 상황에서 민심을 대변할만한 가치를 지녔거나 또는 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곳도 없다. 그러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여전히 정치권의 이곳 저곳을 살펴보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정치권은 이제 아무런 존재감이 없어진 상태다.
이것을 촉발하는 것은 바로 실물경제의 위기상황이 될 것이다. 거기에 바로 힘을 보탤 것이 한미FTA다.
헌 법보다 상위에서 국민 개개인을 다루게 될 한미FTA의 각 조항은 지금까지 노무현-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제대로 공청화 토의를 거친 적이 없다. 독소조항은 여전하고, 미국금융위기발 한국 경제의 위기가 국민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습 가운데서도 정권이 이를 밀어붙이고, 또한 정치권이 여기에 제대로 된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못할 경우, 여론은 한꺼번에 폭발할 소지가 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이들의 전망이 엇갈린다. 한미FTA를 추진했던 노무현 세력이 과연 MB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계승을 동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을 동의한다면, 사실상 노무현은 MB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딜레마가 생긴다. 그럼에도 그는 비판의 각을 세웠다. 싱거운 이야기지만 10월 1일 발언에서 그는 전임CEO와 후임CEO 이야기를 했다. 10.4 공동선언을 두고 그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으니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분명 10.4 공동선언은 상식적으로 그 자체가 이미 ‘견질 어음 ’이었다. 보다 융통성이 높은 ‘어음 ’도 많았다. MB가 남북한 관계를 이렇게 몰고 가는 이유가 노무현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그가 알면서도 밝히지 못하는지는 모르지만- ‘친일의 재구성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금년 들어 모두 드러난 상태다. 그런데도 그 일을 꺼내지 못한다. 그것은 그가 집권하던 시기의 가장 무거웠던 실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민 주당 내에서도 한미FTA는 대세에 속한다. 그러니 곧 다가올 실물경제의 위기에서 민주당은 더 이상 국민들을 위한 당 구실도 하기 어려울는지도 모른다. 차가운 민심이 뒤따를 것이다. 거기다가 촛불민심을 둔 평가에 있어서도 야당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총선의 결과가 지금 진행되는 모든 민심의 비율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억측이다. 정치적인 지지율이 있을는지 모르나 정치권에 대한 지지가 사라지는 상태에서는 향후 다양한 변수가 등장하게 된다. 국민은 정치권의 논리가 아닌 국민의 논리로 이야기를 해주길 바란다. 그에 부합하는 사람이 당연히 정치적 권력도 취하게 될 것이다.
정권이 이 모든 것을 다 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착각이 바로 독재다. 국민의 노예근성이나 벙어리 심정은 바로 피부로 다가오는 순간 저항적으로 돌변한다. 아직은 대다수 민심에게는 9부 능선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 러고 보면 정치권이 존재하는 이유도 없어지는 중이다.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정치권이 오히려 자화자찬을 하기 바쁘거나 아니면 지난 십 년을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남 탓하기에 바쁘다. 그건 꼴 사나운 장면이다. 구태의연하게 등장한 색깔 입히기는 더욱 많은 국민들에게 정권의 정체가 과거 어느 순간에 있었던 그 모습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국민이 어리석은가 아닌가를 따지는 지표도 조만간 등장할 것이다. 이를테면 쥐어짜기를 하는 장면에서 그에 반발하는 형식이다. 국민이 호구(糊口)가 아니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 그 때부터는 정권도 정치권도 모두 긴장해야 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자꾸 그런 시간이 다가온다.
여기에서 의문이 하나 드는 상황도 있다. 그렇다면 왜 민심은 이 상태가 되도록 폭발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많 은 이들의 생각 속에서 두 가지가 특히 눈에 띈다. 지켜보자는 눈이 있고, 상황을 기다린다는 개념이 존재한다. 지난 4월의 총선은 그것을 잘 말해준다. 정치적인 신뢰 보다는 ‘바꾸자 ’는 대세가 작용하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경제살리기 ’라는 테제에 보다 올인 했던 민심의 흔적이다. 아직은 확실히 경제가 작단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지켜보자는 회색지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 상황이 마치 타임워치처럼 어느 순간에는 이렇게, 다음 순간에는 저렇게 라는 지표가 나름대로 형성되어 있다. 그것을 정권이 모르지는 않아서 부동산 버블을 조장하고, 그린벨트를 푸는 등의 긴급한 조치들을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국민들을 일깨우는 계기로 작용한다. 신뢰를 점차 잃어가고 있고 위험수위로 달려간다.
알면서도 이렇게 한다면 정권의 눈과 귀는 확실히 닫혀 있다고 봐야 한다. 민심은 격동하는 강물처럼 무섭게 어느 순간 들이닥친다.
6. 아직도 일본의 존재를 모르는 서울#
마 치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절묘한 타이밍에 후쿠다 야스오는 지지율을 빌미로 총리직을 내놓는다. 그리고 아소 다로가 등장했다. 벌써부터 난리다. 극우주의자 아소 다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대동아 전쟁 ’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우리 식으로 보면 그가 ‘친한파 ’로 분류되는 이른바 ‘일본 제국주의를 당연시 하며 한국과는 (말을 잘 들으면) 친하게 지내자 ’고 하는 사람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하더니 일본 극우가 이 기회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데 한국을 ‘다룰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거절하겠는가 싶기도 하다. 거기다 한국에는 이미 ‘사냥개들 ’이 먼저 자리를 잡고 ‘친일의 재구성 ’에 열심히 들어간 판이다.
흥 미롭게도 미국 금융위기가 불거지고 난 이후 일본도 죽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02년 이후의 경제호황이 침체로 접어들었다는 볼멘 목소리다. 근거로 제시한 것이 바로 일본은행의 3분기 단칸(短觀, 기업단기경제관측조사)의 대형제조업황 판단지수가 마이너스 포인터(-3)를 기록했고 실업률도 8월말 현재 4.2%, 무역수지도 8월말 기준 26년 만에 3,240억엔(약 3조 7천억원)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행 부총재 니시무라 키요히코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전망을 내놓았다.
“일본 경제는 현재 경제부진에서 완만한 경제성장 추이로 점차적으로 돌아설 것이다. 그러나 금융시장 불확실성으로 상당한 불확실성이 동반될 것이다. ”
그러면서도 다시 월가 사냥에 나섰다. 미쓰비시 UFC가 모건 스탠리에 90억불을 출자해서 지분 21%를 인수했고, 노무라 홀딩스는 리먼브라더스의 사업부를 인수했다. 일본 금융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1999.2~2006.7 까지 거의 7년 넘도록 일본은 제로금리를 유지했었다. 엔케리 트레이드, 마담 와타나베가 탄생했다. 일본의 1,500조엔의 개인금융자산 가운데 거의 절반 이상이 갈 곳을 잃어 버리고 신흥시장으로 돌아다녔다. 일본이 금리를 0.25%로 올리면서 사실상 미국 금융위기는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사실 그 영향을 무시하기 어렵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 자금이 부동산, 주식 등 투기성으로 집중되었고 그래서 시장의 버블화가 가속화된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계경제의 버블화에 일조한 일본이 죽는 소리를 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들의 대책은 무엇일까 ?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 금융위기와 일본의 주요 수출시장이랄 수 있는 중국의 경기둔화는 사실상 일본 수출기업에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제로금리를 유지하던 일본의 자금은 여전히 일본 내의 버블형성과는 관계없이 세계를 떠도는 중이다. 이걸 회수하게 되면 세계경제는 골치 아파진다. 그 가운데 위력 있는 레버리지를 가진 것이 일본인 셈이다. 그래서 일본의 금융시스템은 미국발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가장 안정적인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다 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일본에서 요즘 한국 뉴스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오히려 필리핀 경제 이야기는 줄곧 나온다. 2006.9 고이즈미-아로요 간에 일본-필리핀 경제파트너협정(경제협력협정)이 체결되고 나서 환경문제, 교역, 기술이전 문제, 헌법상의 소유권 문제, 필리핀 인력의 일본진출 문제 등으로 추가협상이 몇 차례 진행되는 등 외교각서가 체결되면서도 필리핀 상원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계류중인 것이 바로 양국의 관계다. 그런 필리핀이 이번 미국금융위기에 흔들리고 있다는 뉴스는 일본 뉴스의 중점으로 다루어진다. 결국 일본이 지원하게 될 것임을 말해준다.
한국에 대해서는 조용하다. 이미 한 차례 한일간에는 감정 싸움이 오갔다. 독도문제로 미국이 부시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원상복귀가 되었을 즈음인 7월 31일 일본 네티즌 중에는 “한국대사관과 미국대사관에 화염병이라도 던져라 ”는 극우성 발언도 튀어 나왔다. 거기에 최근의 경제위기를 예상한 듯한 발언도 있었다.
다케사다 히데시. 1949년생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주임연구관이다. 게이오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전형적인 게이오 파다. 그가 이렇게 주장했 다. 산케이 신문 전문가 의견란에 기고한 그의 글 제목은 ‘한국은 대가가 크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 ’이었다.
“한국의 대외채무가 늘어나고 외환보유고는 줄어들고 있다. 장래 다시 금융위기에 빠져들 것이라는 공포도 나오고 있다. 그 때 일본이 긴급 융자를 해줄 필요성도 나올 것이다. 일본 국민들이 관연 그렇게 하도록 할지 의문이다. ”
이 ‘협박 ’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져 나오자 현실이 되는 중이다. 7월말 시점에서 나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소에 더 열심히 한국을 까대던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 서울 지국장이 서둘러 ‘좀 멀리 나갔다 ’며 슬그머니 이 발언을 진화 하려고 시도 하긴 했지만 이 협박을 못 알아들은 한국민이 바보다. 일본은 지금 그 발언과 똑같이 행동 하고 있다. 한 술을 더 뜬다. 한국민들을 기망하려고 한다는 의미다.
보복인가? 아니다. 이것은 철저히 각본에 의한 것이다. MB와 강만수는 그 때 이후 외환보유고가 문제없다고 하면서 이른바 환율을 안정화 시킨다는 ‘도시락 폭탄 ’을 마구 사용했다. 꼭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냄새가 났었다. 실제로 짰다면? 그것은 바로 매국행위가 된다.
한국에서 친일 사냥개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은 정확하게 4월 총선이 지난 이후다. 그 이전에도 뉴라이트 집단은 있었지만 그들이 정권의 비호세력이며, MB가 그 점을 인정하면서까지 들어오는 뉴스는 사실상 여러 언론에서 통제되었다. 오히려 그들이 ‘보수 우익 ’임을 더 강조해왔던 것이 조중동이었다. 그들의 친일성향, 친일 사냥개라는 신분에 대해서는 극구 침묵했었다. 그런데 이들이 활동을 개시한 것과 독도문제, 역사교과서 문제는 거의 동 시점에 터진다. 그리고 경제위기를 언급하면서 경고가 나왔던 시점이 바로 7월 말이었다.
여기에서 하나의 의문이 다시 제기된다.
과 연 MB정권은 다케사다 히데시의 발언을 일본의 일개 연구원의 견해라고 판단하고 말았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그는 일본 내에서 대한 공작을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이른바 ‘게이오 파 ’의 인물이고, 그가 지금껏 남북관계 전문가로써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여 해왔던 일련의 발언이 있었다. 간과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숨기고 만 것이다. 다른 매체에서조차 이것은 그냥 일회성의 분기를 나타낸 해프닝 정도로 무마되었다.
발언의 한 구절을 가만히 음미해보면 이런 연결점이 보인다. 첫째, 일본은 한국의 대외채무 증가와 외환보유고 감소를 알고 있었다. 그것이 지속적이며 쉽게 개선되지 않을 흐름이라는 것도 파악하였다. 둘째, 일본이 긴급 융자를 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즉,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질 것이며, 그것이 바로 한국경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읽고 있었다. 셋째, 그 상황에서 한국이 돈을 비릴 수 있는 곳은 일본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도 예측했다.
이 상황에서 일본은 기다린다. 한국의 외환유동성 위기는 곧 닥친다. 일본에게 요구할 수 있는 지원규모가 적다 라 면 모를까 많아지는 상황에서 한국은 일본에 무엇을 내밀하게 약속해야 하는가? 그 점에 초점을 맞추면 이 시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금방 알 수 있다.
한국 내의 친일은 재구성 수준에서 점차 구조화된 완성으로 달려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엮이는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을 묵인하는 대가로 미국도 일본으로부터 ‘챙기는 ’것이 있는 게임이다. 그러나 한국 국민은 무엇인가? 아무 존재감이 없이 무지한 상태에서 스스로 일본이 내민 족쇄를 정권이 받아들이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 이면합의나 혹은 각서 속에 들어있을 독소조항에서 국민만이 자유롭지 않게 된다.
7. 터지면 크게 터진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은 아주 긴박하고도 약간은 극악(極惡)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아주 극렬한 시대의 게임이 펼쳐지는 중이다.
일 본 극우 (우익 )의 목표는 영원히 일본 을비난하지 못하는 한국의 정권을 만들 자는 것이 우선이다. 구조적으로 그런 틀이 만들어진다. 사냥개에 의해 한국 사회가 이른바 “선진화, 정상화 ”라는 이상한 구호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국방 등에 이르기까지 일본 극우(우익)의 논리를 수용하는 몇 가지의 원칙이 사회 속에 심어지는 중이다.
- 첫째, 민족주의를 포기하더라도 경제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것이 최선이다.
- 둘째, 한국 사회에서 좌파를 제거하고 우파적 관점으로 국가를 정상화 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올바른 정체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 셋째, 북한을 민족적 관점에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으로 간주하고 상대해야 한다. 그래야만 통일을 빠르게 달성할 수 있다.
- 넷째, 잘못된 건국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 곧 역사교과서를 경제발전이라는 잣대를 통해 재구성해야 한다. 좌로 기울어진 것을 바로 세워야 한다. 즉, 친일을 재평가하는 것이 논리의 첫 머리다.
- 다섯째, 일본의 선진화를 배워야 한다. 일본으로부터 배울 것은 배워서 우리도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는 등이다.
이 논리는 ‘사냥개 ’로부터 MB정권 전반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도식화된 흐름을 유지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일본으로부터 ‘은혜로운 손길 ’이 들어올 경우, 그것이 실물경제에까지 실질적인 침탈로 들어오게 될 경우가 바로 ‘친일의 재구성이 완성되는 ’순간이 된다. 거기가 바로 사냥개와 기획자 간의 접점이다.
왜 ‘얼치기 개신교(소위 정치와 사적 이익을 앞세운 ‘개독교 ’를 말한다. 진정한 종교인은 제외된다) 는 거기에 동조하는가?
이 것은 전혀 미스터리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조국(祖國)이 없다. 즉, 국가 정통성이나 정체성 보다는 그들이 믿는 종 교도 아닌 컬트성이 더 깊다. 그러므로 한국이라는 국가 사회의 룰보다는 그들의 개인적인 신념이 더 중요한 기제(機制)가 된다. 이들에게 한국의 역사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엄밀히 이 정도 수준이면 대한민국이란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다. 그러므로 ‘친일 ’도 그들의 개별적 이익에 합당하다면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는 집단이고 사람들이다. 한국 내부의 ‘사냥개 ’가 친일을 구조적으로 재구성하건 어떻건 간에, 일본의 극우이념이 그대로 수용되건 어떻건 일단 그들이 반대하는 대상인 ‘그들이 아닌 무리 ’를 ‘사탄 ’이라는 각도로 설정한다. 그들을 지원하는 모든 사람은 일단 그들 편이 된다. 대단한 이분법이지만 그들에겐 이것이 상식이다.
왜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시대 전쟁 ’이라고 부르는가?
이 것이 단순히 촛불민심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되기조차 버겁다. 왜냐하면 지난 60년, 나아가 지난 백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든 문제들이 총집결 해서 드러나고 있다. 거기에는 역사도 시대도, 사회 내부의 갈등이나 종교적인 편향성과 편집증, 그리고 친일과 반일, 친북과 반북, 보수나 진보 또는 민족주의와 반 민족주의가 모두 응축되어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사회 국가가 과연 다음 몇 가지 테제를 무조건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 첫째, 한국 사회 국가는 ‘친일 ’을 시대적 관점에서 허용 가능한가 아닌가?
- 둘째, 한국 사회가 ‘친일 ’을 위해 ‘반북 ’을 해야 하는 당위를 느끼는가 아닌가?
- 셋째, 친일과 반북 가운데 양자택일이라는 당위가 성립될 수 있는 테제인가 아닌가?
- 넷째, 경제적 생존을 위한 친일을 허용할 수 있는 사회인가 아닌가?
- 다섯째, 친일정권이 한국 사회의 정치주체로 생존을 허용할 수 있는가 아닌가?
- 여섯째, 일본 극우(우익)의 한국 진출을 허용하는 정권 및 단체, 개인이 한국 사회의 중추적 위치에서 생존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는가 아닌가?
- 일곱째, 한국의 미래 세대에게 친일의 정당성을 교육하는 것이 타당하게 받아들여지는가 아닌가?
- 여덟째, 통일의 당위를 일본이 생각하는 반민족적 관점에서 진행하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 아닌가? 등의 질문이 그것이다.
‘허용하는 것 ’이 대세라면 대한민국은 그 날로 일단 세계 역사에서는 죽었다. 정통성과 정체성은 절대 유지될 수 없다.
허용하지 못한다 ’는 것이 대세라면 필연적으로 이 시대는 충돌이 불가피하다. 그것이 설혹 혈투에 가깝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세력을 기득권이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기득권 대 비 기득권의 싸움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친일이냐 아니냐 ’를 둔 시대전쟁의 룰로 접어든다. 그 속에 정권의 정책 행위에 대한 평가가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시대전쟁의 본질을 읽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갈등과 대립이 꽤나 지리하게 흐른다. 그러나 본질을 알게 되는 순간, 이 시대에 대한 개념은 달라진다. 단순히 ‘사대주의인가 아닌가 ’혹은 ‘수구인가 아닌가 ’라는 논쟁과도 다르다. 이것은 완전히 침탈구조를 정하고 들어온 도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누군가는 그 도식 속으로 갇히거나 아니면 돌파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즉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전형적인 노봉협처(路逢狹處), 즉,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형상이다.
이러니 혈투론(血鬪論)이 나오지 않을 재간이 없다.
MB 정권은 이것을 숨기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은근히 드러내면서 정권과 공권력, 그리고 세력의 규합을 통해서 이를 뛰어 넘고자 하고 있다. 경제는 하나의 구실일 뿐이다. 그것이 신자유주의가 불러들인 이기주의 확산 국면에서 ‘친일이라고 내가 살기만 하면 족하다 ’는 이른바 ‘박쥐인생 ’을 양산한다. 노예화하기 딱 좋은 정신세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통한다.
단순히 이것이 정권 기간인 5년이라는 시점으로 한정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극히 오산(誤算)이다. 이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적 침탈이기도 하다. 이 상태에서 한 번 정해진 것을 추후 바꾸고자 하는 것은 전쟁에 지고 나서 다시 승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동일하다. 시대 전쟁의 관건은 당면한 상태에서 한 번 지게 되면 그 패배의 후유증이 아주 오래간다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침탈 이후 파괴되었던 대한제국의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현대판 일본 팽창주의 제국주의 극우(우익)주의의 한국 상륙과 침탈도 똑 같은 결과를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상황이 대립과 충돌로 가게 될 경우의 테제는 앞서 이야기한 여덟 가지 테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찬반에서 갈라지게 된다. 그 중에서는 실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회색지대가 넓게 포진한다고 하더라도 인지하고 이에 저항하는 세력은 패배를 할 망정 이를 수용하기는 어렵다. 즉, 식민(植民)의 개념이 형성된다. 독재와 반독재, 민주와 반민주, 민족과 반민족이라는 테제와도 다르다. 이것은 일단 우리 자신이 ‘식민주의를 자발적으로(혹은 정권의 타의에 의해) 선택하는가 아닌가 ’라는 주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정권이, 그리고 일본이 이러한 기조를 버리지 않는 한, 이 싸움은 시대를 건 한 판 아주 큰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지식인 몇몇이 모여서 이러쿵저러쿵 학술적으로 분석하고 토론할 사연(事緣)이 못 된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앞서 제시된 질문을 상기하기를 바란다.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않거나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이 시대전쟁은 개인에게도 벌써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8. MB정권이 사는 길, 죽는 길#
선택은 자유다. 정권이나 개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택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도 사실 자유다. 도망가거나 가지 않거나, 싸우거나 움츠려 지내거나 어느 쪽도 선택이다.
시 대전쟁의 상황은 하나씩 드러나는 중이다. 이 참에 친일의 역사와 계보마저도 다 드러난다. MB 정권이 보여주는 것은 친일매국세력의 극악함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애초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와 사회, 역사마저도 모두 ‘도구 ’가 된다.
과연 이런 정권이 오래갈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직접민주주의가 ‘경제살리기 ’라는 하나의 테제에 몰입되어 국민들이 기망(欺罔)을 당했다고 할 때, 그 전제마저도 수용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차라리 유치한 것이다. 적어도 국민이 바라는 방향이 모두 포퓰리즘은 아니겠지만 정권은 이상하게도 요즘 포퓰리즘이란 단어를 많이 꺼낸다. 즉, 국민 다수의 의사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신뢰냐 불신이냐 ’는 갈림길이다. MB 정권의 초기 반 년이 지난 이후 성적표는 참혹하다. 모조리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친일매국세력을 정권비호세력으로 둔 것하며, 그를 통해 잘못된 신자유주의 정책이나 친미 친일에 목을 매단 정권초기의 외교정책, 반민족주의적 성향, 종교편향성 등은 모두 지탄 받아 마땅한 대상이다. 거기다가 촛불민심에 대한 공안정국의 발동에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냉전시대의 유산인 신 메카시즘이 등장했다. 그러니 신뢰를 받기에는 태부족이다.
더 군다나 정권이 지향하는 방향은 한결같다. 일단 목표를 설 정하고 지속적으로 ‘밀어붙이기 ’를 한다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들어간다. 최소한의 지지세력만을 바탕으로 정국을 농단(壟斷)하는 흐름이 이어진다. 국민을 조롱(鳥籠)에 갇힌 새처럼 취급한다는 말이 옳은 표현이다.
이 기조가 바뀔 조짐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더 강력해지고 있다. 선택할 수단이 그것밖에 없다고도 보여진다. 정권도 물러날 곳이 없다는 의견이 한나라당 일각에서 나오더니 이제는 당 대표의 시대에 걸맞지도 않는 ‘자화자찬 ’이 이어진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정리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에서 보면, 정권이 가진 힘이 바로 ‘그것 ’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나온다. 그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합당한 해석은 ‘무시 ’(無視)라는 표현이 옳다.
이 길은 MB정권이 죽는 길이다. 사는 것 같고 좋은 것 같지만 망(亡)하는 길이다. 거기다가 회생불능으로 역사에 아주 심각한 트라우마(傷痕)를 남길 것이다. 그래도 걸어가려고 한다면 국가 사회를 한 시대의 무덤으로 함께 끌고 들어가는 비정(非情)한 정권으로 기록되고 말 것이다. 차라리 인간답게 혼자의 독백처럼 ‘나는 국민들의 경제를 위해 친일이라도 선택하겠다 ’라고 선언하는 것이 옳지만 그 또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국민을 위한 길이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행보에 속한다. 개인의 욕심이고 개별 집단의 욕망에 불과하다. 거기에 국가나 시대, 민족이나 미래가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도 억지로 견강부회(牽强附會)를 하고자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므로 이 길은 잠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MB와 그 정권이 모두 죽는 길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이다.
그에 반하여 한 국가 사회와 시대를 살리는 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하는 것의 반대로 하면 된다. 지금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버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굳 이 촛불민심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 사회는 거대한 중간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거기에는 친노 친이도 아니지만 공정하게 세상을 읽고, 또한 친일이 아니지만 친북도 아닌 세력, 그리고 무조건 이기주의가 아니라 이타주의로 세상을 읽고자 하는 개인과 집단이 엄연히 존재한다. 정치적 개체가 아닌 순수한 한국 사회 국가, 시대의 관망자는 곳곳에 있다. 이들이 모두 현 시대를 무망하게 보고 있지만은 않다. 무관심하고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을 얻지 못하는 정책이나 기조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친일은 버려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반일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가 아니고 팽창주의가 아니면서, 적어도 진정성을 가지고 시대를 볼 줄 아는 일본은 동의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영원한 이 땅의 적이다. 그들의 역사를 우리의 그것으로 대처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한국 내에서 벌어져서는 안 된다. 그로 인한 갈등은 남과 북의 분단역사의 충돌과 갈등보다는 훨씬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친일의 재구성 ’은 이제 세살박이 어린애들조차도 알 정도로 일본을 깊숙하게 우리 곁으로 끌어들이는 정권으로 이 시대가 기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선진화이고 정상화라면 정권이 끝나는 시점에서 반드시 그 역풍을 맞게 된다. 그것은 MB나 이 정권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60년간의 친일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기득권이 유지될 것이고, 사회는 곧 망각 속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시대가 바뀌면서 기록하는 자는 더 늘어났다. 하나씩 하나씩 누군가는 그것을 기록하고 전파하게 될 것이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가 아니다.
일 본 기획자의 의도는 이제 점차 에스칼레이터를 탄 것처럼 표면으로 상승되고 있다. 사냥개가 뿌려둔 씨앗들이 많다. 그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동한다. 정치계로부터 정권, 정부, 사회단체나 사회세력들 속에서도 그들의 촉수는 움직인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친일성향 자체를 무디게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자각을 개시하게 될 것이다. 몰지각한 그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계몽에 의해 이 시대전쟁을 이해하게 될 경우는 사냥개이건 기획자는 상정하지 못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진행 중이다.
그러므로 충돌은 곧 아주 커다란 혈투를 예고한다. 전쟁에서 피를 바치지 않는 쟁취(爭取)는 없다고 하지만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하여 일본을 위한 역사에 피를 바치는가를 반문한다. 역사의 죄인이 되는 순간, 분단 60년 역사에서, 경술국치 100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오적(五賊)이 구성될 것이다. 밝혀지는 것은 잠깐만이다. 벌써 숱한 입을 통해 스스로가 친일임을 입증한 자들까지 생겨난 판국이다. 그들을 엄호(掩護)하는 무리는 모두 친일이다. 그것은 친일이며 매국이고 나아가 시대를 팔아먹는 국민에 대한 기망세력이다.
죽는 길로 갈 것인지, 사는 길로 갈 것인지는 결국 마음의 문제이고 선택의 차원에 있다. MB정권의 최종 선택이 과연 어디를 향할 것인지, 지금과는 달리 변화할 것인지는 조만간 판정될 것이다. 그걸 보는 사람들의 선택도 기다리고 있다.
9. 천 번의 기도로도 죽은 자식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9 월말 모스크바를 방문한 MB는 다시 한 번 ‘김정일 위원장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는 애드벌룬을 띄웠다. 이상하게도 그는 전후의 준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을 앞세워 하는 버릇이 있다. 이것은 매우 포퓰리즘적이다. 거침없이 말하면서 언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말의 무게감이 없고 당연히 신뢰도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를 뒷받침하는 참모들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지도 않는 듯하다. 오히려 더 많은 구설수(口舌數)에 오른다. 격(格)에 대한 불만은 노무현의 경우도 비슷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존경은 그만두고라도 스스로 품격 유지 자체를 못하는 경우라는 혹평도 나온다. 그럼에도 고쳐지질 않는다. 한평생 굳어온 습관으로 보인다.
멜라민 파동에서 멜라민이 뭐냐, 독성물 멜라민이 왜 제품에 표기되지 않느냐고 묻는 촌극도 나왔다. 말의 실수가 아니라 집중도의 차이 같다. 곳곳에서 이런 해프닝이 터져 나오면서 담화나 사과도 모두 거짓이 되고 만다. ‘내게 맡겨달라 ’여야 영수회담을 끝내고서 바로 야당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때리기 ’로 뒷통수를 터진다는 등 불만이 나온다. 하여간에 엉망진창이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가 아니라 여기에는 뚜렷한 원칙이 있었다. 즉, 말 바꾸기가 전혀 죄의식을 가지지 않은 채 벌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민심이 이제는 ‘한심 ’(寒心)으로 바뀐다는 말도 나오지만, 그 또한 괘념치 않는 눈치다.
국 가의 경제위기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는 조짐에서도 ‘괜찮다 ’, ‘믿어라 ’는 말로만 접근하는 것이 오늘의 실제다. 논리부족이라기 보다는 목적 자체가 다른 데 있기에 딴청을 피우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내를 알 도리는 없다. 그러나 밀어붙이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마추어처럼 어리숙하게 보이면서도 정권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그대로 진행시킨다. 이것이 무서운 점이다.
9 월 말 기준 한국은행이 발표한 외환보유고는 2,396억불이다. 유가증권 2,171억불, 예치금 200억불, IMF 포지션 3.4억불, SDR 0.9억불, 금 0.7억불이다. 그러나 다른 분석으로 들어가면 내용은 달라진다. 1주일/30일/100일짜리 외화단기 차입금이 2,200억불, 수입결제대금 3개월 분 필요량 800억불만 생각해봐도 외화보유고는 -600억불 수준이 된다.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약 2,400억불 가운데 미국채권투자 금액이 1,070억불로 사용하기 곤란한 점을 감안한다면 이건 큰일이다. 한 마디로 벌써 깨어진 상태라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괜찮다는 말만 중얼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어디로 한국이란 사회 국가를 몰고 가려고 하는 것일까?
‘ 명분과 실리 ’라는 관점에서 MB정권은 두 마리 토끼 모두를 놓치고 있다. 정권 개시 후 잘한 것 하나를 꼽기도 벅차다. 그러나 교과서 수정에서 보여지듯 ‘좌도 우도 아닌 정상화 ’라는 개념을 꺼낸다. 노무현이 말했듯이 ‘실용주의 ’라는 단어는 매력적이어서 꺼내 쓰고픈 충동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만한 ‘형식 ’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없다. 오히려 몹시 고의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국부유출 프로젝트 ’를 가동해 왔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 즈음에서는 알아야 한다.
침묵하는 민심이 새로운 잣대를 들이댈 경우에는 경험칙이 작용한다. 즉, 과거를 살펴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권 초기에는 그래도 ‘지켜보자 ’가 대세이거나 혹은 친 정부적 태도를 지켜낼 수 있지만 사회 국가 내부에서 갈등을 지속적으로 양산하고, 그것이 합당한 이유를 동반하지 않는 무조건의 밀어붙이기라는 판단이 나올 경우, 민심은 요동치게 되어 있다. 이것이 지극히 상식적이다.
내 가 지목하는 문제는 ‘친일정권 ’이기에 ‘친일의 재구성 ’을 위한 집권의 정책방향이 잘못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토대로 해서 움직이기에 모든 것이 삐걱댄다. 아귀가 아무 것도 맞는 것이 없는데도 억지로 맞추려다 보니 약한 곳을 자꾸만 강압하게 되어 있다.
소통이 없는 가운데 정권이 모든 권한을 가진 것처럼 밀어 붙일 수 있는 근거가 바로 ‘독재 ’이고, 이를 지적하는 것을 공권력을 동원하여 압박하는 것이 바로 ‘반 민주 ’다. 이미 노무현 시기부터 신자유주의 시대의 악성현상은 드러났었다. 양극화, 빈곤화, 비정규직, 계층간 소득격차, 성장과 분배 불균형, 수출지상주의 등 어느 것 하나 본받을 수 없는 것들이다. MB정권은 이를 더욱 보편화하려는 중이다.
거기에 덧보태어 이를 성취하기 위한 매개로 ‘친일 ’이 사용된다. 좌편향을 바로 잡겠다는 방식의 접근법은 단순한 우편향이라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은 이런 식의 접근이 결코 실용주의가 아님을 안다. 목적이 바로 ‘친일 ’에 있음을 안다. 대북접근을 기술적으로 회피하려는 것이 외교정책의 일환이 아니라 한미일 동맹 강화라는 명분 속에서 일본 극우(우익)의 관념을 그대로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경제위기가 집권 이후 고환율정책으로부터 이어진 아마추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경제정책 관리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것이 ‘경제를 죽여야 ’일본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기 때문이며, 그래야만 선진화로 부르는 공기업 민영화, 포기하지도 않은 대운하 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라 판단한다는 것도 눈치 채었다. 그것을 ‘정상화 ’라고 부른다.
민심은 정권에 불안해 한다. 표출되지 않았을 뿐이지만, 여기서 계기가 마련되면 바로 터진다. 자꾸 먼 미래를 이야기해서 민심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래를 기획할만한 능력이 이 정권에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죽하면 기자협회의 일선 기자들의 MB정권 지지도 1~2%대 수준이다. 이 정도면 아예 믿지 못한다 는 거다.
더군다나 이제 본격적으로 MB정권은 ‘매국 코드 ’가 붙는 중이다. 반국가, 반민족이라는 낙인(烙印)은 사회 내에서도 점차 보편화되는 추세다. 미국산 쇠고기 협정은 검역주권을 팔아 넘긴 ‘매국 협정 ’이라고까지 평가된다. 혹자는 MB정권 자체를 ‘일당 ’(一黨)이라고 지칭하면서 ‘오사카 딴나라 것들과 친일파 매국단체인 뉴라이트가 내각, 청와대 비서진의 80% 장악했다 ’고 평가하면서, 결국 이들은 ‘매국과 반역 ’이란 코드를 선택하는 중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까지 한다. 촛불민심과 침묵하는 다수가 바라보는 MB정권과의 대결구도는 ‘애국과 매국의 싸움 ’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도 등장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MB정권은 엉뚱한 방향으로 뛰어들었고 자신들은 성공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하지만 민심은 차갑게 실패라고 단정을 내리는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보다 험하디 험한 꼴이 나오고 있다.
그 러나 MB정권이 상황을 위와 같이 분석한다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직접민주주의에 의해 당선되었으니 ‘나를 따르라! ’는 수준의 구호가 자주 등장한다. 정치권의 정권 내부 억지력이 전혀 가동하지 않는 현상을 보면서 민심은 슬그머니 냉소적으로 변해간다. 점차 싸늘해지는 민심을 아랑곳하지 않고 정권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자금경색이 가시화되는 중이다. 10월 2일 상원을 통과한 구제금융안은 특별한 경우가 없이는 10월 3일(현지시간) 하원을 통과하고, 대통령 동의 절차를 거쳐 10월 6일 이후 시행될 것이다. 그러나 10월 들어 한국은 순채무국으로 전환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과연 효과적으로 위기관리를 할 능력이 있는지를 곧 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번 위기는 결코 세계경제의 요동만으로 드러난 것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일본의 추후 개입방식에 대해, 정권의 일본과의 담합에 대해 다시 한 번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0. 송(頌) 시대별곡(時代別曲)#
지 금은 한 시대의 전쟁이 벌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애국과 매국 ’이라는 대결구도가 옳다고 본다. 사적 이익을 기반으로 한 집권세력의 시대착오에서 빚어진 사건이다. 그들에게 국민은 눈에 보이는 대상이 아니다. 그들만이 있는 나라를 생각한다. 그것이 결코 ‘애국 ’이 될 수 없다. 일본을 끌어 들이려는 노력이 단순한 그들과의 협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드러났다. 사냥개가 그걸 사전에 알려주었다. 그들이 포획하고자 하는 대상도 바로 국가이고 시대이다. 국민이 바로 사냥의 대상이 되었다.
이 런 시대는 한 마디로 비극이다. 아무리 희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해도, 상황은 점차 비극의 분위기를 높여가는 중이다. 누구라도 여기에는 저항을 꿈꾸지 않을 수 없다. 촛불민심에 동참하건 아니면 회색지대에 머물건 간에 문제는 절감한다. 해결방식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임계상태로 가는 중이다. 미임계(未臨界, subcritical) 가아니라 임계질량(critical mass)의 특이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상태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도 어리석지만, 그에 무관심한 것 또한 사회 국가 시대의 한 사람으로써는 자격을 가지지 못한다.
모든 것은 정권의 성격으로부터 빚어진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것이 개선(改善)되지 않는 한, 논란을 아무리 거친다고 하더라도 정권이 지향하는 방향은 결코 국민을 위한 행위로 결론지어질 것 같지는 않다. 철저하게 기득권의 유지와 사적 이익이 팽창하는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국가 운영과는 철학이 맞지를 않는 매국적 접근은 ‘도둑놈 정권 ’, ‘사냥개 정권 ’이라고 불린다 하더라도 비하(卑下)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은 이에 무관심하거나 또는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이 지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 지(無知)도 범죄이지만 몰지각(沒知覺)은 병이다. 치료되지 않으면 그 병증에 스스로 죽고 말게 된다. 누구 탓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병증이야말로 전염성이다. 반대로 지각(知覺)은 권리이자 의무다. 사용하지 않고 창고에 내버려두면 썩고 만다.
이 상하게도 민주주의2.0 사이트가 개설되고 10.4 공동선언 1주년 기념 행사로 노무현의 서울 입성이 7개월 만에 이루어진 이후 ‘MB 대 노무현 ’의 갈등이 더 부각되지만 이것은 본질이 아니다. 현 정권과 지난 정권 간의 대결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이들 둘 모두에게서 ‘시대 전쟁 ’의 본질을 똑같이 회피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민주와 반민주 ’의 싸움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노무현도 ‘친일의 재구성 ’을 허용했고 MB정권은 이를 완성하려고 덤벼든다. 단순한 양비론(兩非論) 차원이 아니다.
지금은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이 전쟁이 왜 촉발되었는지, 그리고 지금 왜 전쟁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는지 그 ‘대상 ’에 집중해야 한다. MB정권에게도 마지막으로 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9월이 넘어가면서 그마저도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 그들은 국민을 지속적으로 무시한다. 대의민주주의를 실천할 정치권은 이 궤도를 수정시키는 데 아무런 역할이 없다. 민심은 경제에 눈을 돌리지만 정권의 본질을 서서히 자각하기 시작했다.
“반 독재, 반 민주, 반 국가, 반 민족 ”의 4가지 카테고리를 달성하지 못하는 정권은 “반 애국 ”이며 “친 매국 ”정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공식은 유효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시대는 우리에게 많은 희생을 강요할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될 듯하다. 그러나 몰지각 시대를 정리하지 않고서 이 시대전쟁에서 국민이 승리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깨어나라! 대한민국! ”이라는 구호는 현 시점에서 드러날 수 있고 최고의 외침이다. 모두가 깨어나서 오늘 이 전쟁의 본질을 알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2008.10.2. 止月 山庄 에서 쓰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