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xmlns:content="http://purl.org/rss/1.0/modules/content/"
	xmlns:wfw="http://wellformedweb.org/CommentAPI/"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
	xmlns:sy="http://purl.org/rss/1.0/modules/syndication/"
	xmlns:slash="http://purl.org/rss/1.0/modules/slash/"
	xmlns:georss="http://www.georss.org/georss" xmlns:geo="http://www.w3.org/2003/01/geo/wgs84_pos#"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

<channel>
	<title>어느 민족주의자의 시대읽기</title>
	<atom:link href="http://coreannight.wordpress.com/feed/"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 />
	<link>http://coreannight.wordpress.com</link>
	<description>보고 듣기 불편한 이야기, 그러나 반드시 들어야만 하고 스스로 느껴야만 하는 이야기</description>
	<lastBuildDate>Tue, 25 Nov 2008 08:12:37 +0000</lastBuildDate>
	<language>ko</language>
	<sy:updatePeriod>hourly</sy:updatePeriod>
	<sy:updateFrequency>1</sy:updateFrequency>
	<generator>http://wordpress.com/</generator>
<cloud domain='coreannight.wordpress.com' port='80' path='/?rsscloud=notify' registerProcedure='' protocol='http-post' />
<image>
		<url>http://s2.wp.com/i/buttonw-com.png</url>
		<title>어느 민족주의자의 시대읽기</title>
		<link>http://coreannight.wordpress.com</link>
	</image>
	<atom:link rel="search" type="application/opensearchdescription+xml" href="http://coreannight.wordpress.com/osd.xml" title="어느 민족주의자의 시대읽기" />
	<atom:link rel='hub' href='http://coreannight.wordpress.com/?pushpress=hub'/>
		<item>
		<title>虛像의 破壞 (2008. 11. 8 )</title>
		<link>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8%99%9b%e5%83%8f%ec%9d%98-%e7%a0%b4%e5%a3%9e-2008-11-8/</link>
		<comments>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8%99%9b%e5%83%8f%ec%9d%98-%e7%a0%b4%e5%a3%9e-2008-11-8/#comments</comments>
		<pubDate>Mon, 24 Nov 2008 16:02:33 +0000</pubDate>
		<dc:creator>coreannight</dc:creator>
				<category><![CDATA[담담당당]]></category>
		<category><![CDATA[독립]]></category>
		<category><![CDATA[민족주의]]></category>
		<category><![CDATA[시대]]></category>
		<category><![CDATA[자주]]></category>
		<category><![CDATA[촛불정국]]></category>
		<category><![CDATA[친일파]]></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8%99%9b%e5%83%8f%ec%9d%98-%e7%a0%b4%e5%a3%9e-2008-11-8/</guid>
		<description><![CDATA[新偶像 時代의 選擇 - 보고 듣기 불편한 이야기, 그러나 반드시 들어야만 하고 스스로 느껴야만 하는 이야기 담담당당 목차 들어가면서 ’선택 ’의 의미 재발견 노예국민의 초상을 그린다. 아시아와 한반도 정치는 죽었다. 대한민국의 그림자 정부 小日本論 100년 집권정당을 꿈꾸며 386, 그 지독스런 오만과 모순 DJ, 노무현 식 화장질 게임틀 무너지는 시대, 좌절하는 역사 우리 시대에 통일은 없다. [...]<img alt="" border="0" src="http://stats.wordpress.com/b.gif?host=coreannight.wordpress.com&amp;blog=5630345&amp;post=25&amp;subd=coreannight&amp;ref=&amp;feed=1" width="1" height="1"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3>新偶像 時代의 選擇</h3>
<p>- 보고 듣기 불편한 이야기, 그러나 반드시 들어야만 하고 스스로 느껴야만 하는 이야기</p>
<p>담담당당</p>
<div style="border:1px solid tan;background-color:rgb(255,255,250);padding:2px 10px 0;">
<p><strong>목차</strong></p>
<hr />
<p><a href="#toc_1" title="toc_1" class="external">들어가면서</a></p>
<ol>
<li><a href="#toc_2" title="toc_2" class="external">’선택 ’의 의미 재발견</a></li>
<li><a href="#toc_3" title="toc_3" class="external">노예국민의 초상을 그린다.</a></li>
<li><a href="#toc_4" title="toc_4" class="external">아시아와 한반도</a></li>
<li><a href="#toc_5" title="toc_5" class="external">정치는 죽었다.</a></li>
<li><a href="#toc_6" title="toc_6" class="external">대한민국의 그림자 정부</a></li>
<li><a href="#toc_7" title="toc_7" class="external">小日本論</a></li>
<li><a href="#toc_8" title="toc_8" class="external">100년 집권정당을 꿈꾸며</a></li>
<li><a href="#toc_9" title="toc_9" class="external">386, 그 지독스런 오만과 모순</a></li>
<li><a href="#toc_10" title="toc_10" class="external">DJ, 노무현 식 화장질 게임틀</a></li>
<li><a href="#toc_11" title="toc_11" class="external">무너지는 시대, 좌절하는 역사</a></li>
<li><a href="#toc_12" title="toc_12" class="external">우리 시대에 통일은 없다.</a></li>
<li><a href="#toc_13" title="toc_13" class="external">사이비 종교전쟁</a></li>
<li><a href="#toc_14" title="toc_14" class="external">수탈전선의 사냥개 놀음</a></li>
<li><a href="#toc_15" title="toc_15" class="external">얼치기, ‘똘추 ’, 헛똑똑이가 더 힘센 나라에 살다.</a></li>
<li><a href="#toc_16" title="toc_16" class="external">기회주의자들의 아귀다툼</a></li>
<li><a href="#toc_17" title="toc_17" class="external">영웅은 이 땅에 살지 못한다.</a></li>
<li><a href="#toc_18" title="toc_18" class="external">광장이 서러운 민초</a></li>
<li><a href="#toc_19" title="toc_19" class="external">그대의 시대는 타자(他者)</a></li>
<li><a href="#toc_20" title="toc_20" class="external">죽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시대를 읽고 있는 죄(罪)</a></li>
</ol>
<p>&nbsp;</p>
</div>
<h3>들어가면서<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 title="toc_1" class="anchor" id="toc_1">#</a></sup></h3>
<p><strong>&lt; 시대시리즈와 몰지각 시리즈 &gt;</strong> 를 읽지 않은 사람이 이 글을 읽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만큼 이제 쓸 내용은 다분히 직설적이다. 나는 한 치도 이 내용에서 뒷걸음을 칠 마음이 없다. 이건 기록이고 또한 나의 자성(自省)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물어본다. <strong>‘이 내용을 정리하지 않으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가 ’</strong>라고. 대답은 <strong>‘그렇다. ’</strong></p>
<p>굳이 많은 전제를 두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이 시대가 이제는 침탈에 대한 몰지각(沒知覺)이 굳어지는 상태라고 보는 때문이다. 어떤 이의 표현처럼 ‘기다려라! ’라고 말하 면비겁 한 것이 될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건 스스로에게 그저 위안을 위해 던지는 한 마디 변명 에 불과하다 취급될 수준이 바로 오늘이다.</p>
<p>MB정권은 ‘일본의 사냥 개’다. 굳이 미국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미국이 일본과의 담합에 의해 이 정권을 부리는 공동의 사냥꾼이기에 그렇다. 그건 버락 오바마 정권이라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함축되는 ‘일본 ’이라는 단어에는 반드시 ‘미국 ’과 그들의 세력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p>
<p>이 글의 제목이 ‘허상의 파괴, 신우상 시대의 선택 ’으로 잡힌 것은 두 가지 명제가 담겨있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허상의 경제다. 삶의 목적 가운데서 경제가 차지하는 가치의 소재(所在)를 잘못 잡은 세상이 흘러간다. 그 속에서 경제적 기득권이 정치와 사회, 시대를 장악하면서 이제 역사를 건드리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를 허용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정책노선이라고 하지만, 결국 그 또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인지(認知)가 이를 방관하고 수용했기에 가능했던 대목이다.</li>
<li>둘째, 새로운 우상이 등장했다. 이 또한 경제다. MB정권은 ‘경제살리기 ’라는 모토를 내걸었지만 그 우상은 빠른 속도감을 동반하며 죽어버렸 다. 그런데 이상하게 변형 되고 변용된 상태에서 새롭게 우상을 등장시킨다. 그 또한 경제다. 시대도 역사도 거기에는 없다. 그래서 거꾸로 이를 죽이려는 의도가 생성된다. 교통정리를 하자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식민(植民)이라는 개념하에 탄생된 ‘노예화 프로그램 ’이라는 것임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li>
</ul>
<p>이를 정리해보는 일이 가치 있거나 없거나 논할 바는 아니다. 그래서 이건 기록이라고 말한다. 나의 유서(遺書)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니 죽기 전에 쓰는 모든 글은 사실상 살아있었던 인지(認知)와 자각(自覺)의 흔적이 된다.</p>
<p>지금까지 ‘지월산장(止月山庄)에서 쓰다 ’라는 어느 가상의 장소를 필명으로 하는 글을 썼다. 이번에는 그렇게 장소를 표기 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것이 바로 ‘나’라는 주체가 남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지월산장은 사라진다.</p>
<p>되물어볼 것은 한 가지다.</p>
<p><strong>“당신은 과연 이 시대를 어떻게 보는가? ”</strong></p>
<p>이렇게 내가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진다. 답변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걸 내게도 던진다. 이제 그에 관하여 담담하게 당당하게 답하려고 한다.</p>
<h3>1. ’선택 ’의 의미 재발견<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2" title="toc_2" class="anchor" id="toc_2">#</a></sup></h3>
<p>나의 아버지는 19세기 분이다. 1898년 무술년 생이시니 살아계시면 금년 만으로 110살이 되신다. 지난 여름 선친의 생신은 지났다. 111년 차의 과거와 현재를 내 생에 그 분과 함께 보게 되었다. 내가 살아있는 한 쭉 그 분과 함께 보며 갈 것이다. 3 세기에 걸친 관조(觀照)를 해보는 셈이다. 내가 그랬듯이 나의 아들, 딸이 3세기를 이어가고 다음 세대가 다시 4세기, 5세기로 넘어가주기를 바란다.</p>
<p>백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 당시의 ‘조선 ’과 지금의 ‘한반도 ’에 무슨 특별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일단 해방 이후 남북한으로 갈라진 분단역사가 60년 넘겨 지속되고 있다. 경제적 발전을 이룬 남한의 경우 친미와 친일이라는 수구가 걷히지 않았고, 그와 더불어 수령체제와 장군체제의 북한은 80년대 말 이후 경제적으로 완전 수렁에 빠져 있다. 둘 간에는 접점이 나오지를 않는다. 지난 10년, 두 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으로도 본질적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갈등만 대폭 더 양산하고 말았다.</p>
<p>더군다나 한반도 남부에 대한민국이란 정부가 수립된 지 딱 60년 만에 우리는 일본을 한국에 받아들이는 ‘친일대세론 ’에 직면하고 있기 도 하다 .남북은 분단을 정리할 이렇다 할 제대로 된 매개(媒介)도 성숙시켜 놓고 있지 못하다. 여전히 자주(自主)없는 외세 의존의 현상과 관념으로 살아가는 중이기도 하다.</p>
<p>1865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일왕을 앞세운 제국주의 고착화를 서둘렀고 결국 조선반도 침탈, 만주국,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까지 치렀다. 그랬던 그들이 지금도 몹시 조급하게 서두르고 있다. 그 시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백 년이 넘는 역사가 흐르고 있지만 그들은 이 기조(基調)를 변경하거나 멈추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제와 훨씬 더 강하게 팽창주의를 한국에서 실현코자 하는 중이다. 과거의 실패까지 감안해서, 다시 실수하지 않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그 족적은 남한에서 이제 날개를 달기 일보직전까지 왔다.</p>
<p>2010년을 향한 그들의 집착은 새로운 주기인 ‘주년 ’(周年)을 만드는 것으로 모두 집중되고 있다. 일반적인 절차로 평화적 해결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다. 오로지 ‘공격 ’이 있고, 그 속에는 강한 욕망이 꿈틀거린다.</p>
<p>그들의 침탈 방식은 대단히 촘촘한 구석이 있다. ‘일본식 ’이라고 한 마디로 폄하해서 표현하 는 건 곤란하다. 전방위(全方位)에 걸쳐 빠진 구석이 없는가를 면밀히 살피는 ‘기획침략 ’이라고 해야 옳다. 그러한 살벌한 팽창주의가 실제로 한반도에서 지금 진행 중에 있다.</p>
<p>즐겨 쓰는 수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냥개를 앞세운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인 부분을 장악하는 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항상 금력과 무력은 그것을 위한 수단이 된다.</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28" height="218" width="279" style="float:none;margin:0;" /></p>
<p>(을사늑약[제2차 한일조약] 한글본. 1905년 11월의 일은 2005년 11월에 라도 정확하게 기억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무시했고, 그 죄업을 뒤집어 쓰는 중이다. 역사는 확실히 멈추지 않으니 흐른다.)</p>
</div>
<p>1898년의 조선도 그랬다.</p>
<p>2008년의 한국도 마찬가지다.</p>
<p>200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는 이른바 ‘경제 살리기 ’라는 주제에 함몰되어 있었다. 그것만 될 수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건 상관없다는 편협된 생각들이 사회 전반에 넘쳐 흘렀다. 그것은 보수니 진보 같은 관념적인 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인정하지 못한다면, 비겁한 것이다. 사회와 국가 전체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일 뿐이다.</p>
<p>백 년 전과 전혀 다르게 벌어진 일은 바로 ‘기득권 ’을 유지하려는 세력 간의 내부적 혈투가 아니며 정체성에 대한 논란 자체가 제대로 벌어지지 조차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위험에 대한 반응 정도다. 분명히 한나라당은 뉴라이트라는 친일집단을 전위(前衛)에 두고 선거전을 치렀다. 그러나 선거는 시시하게 끝났다. 국민들의 친일에 대한 거부감은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명확하게 표명되 고 전달되거나 여론으로 형성되 지 않았다. 단지 무덤덤하게 수용한 것이다. 침묵과 방관의 이면에는 ‘경제욕망 ’이 거기에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일본과 한국 내의 두 개의 욕망은 그렇게 접점을 찾아서 갔다.</p>
<p>한편으로 본다면, 국민들이 친일의 기득권을 인정한 첫 번째의 선거이기도 하고, 나아가 지난 십 년 동안 새롭게 생긴 <strong>“민주, 평화, 통일, 개혁 ”</strong>이라는 구호 아래 생긴 또 다른 형식의 기득권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측면도 포함된 결과였다. 여하간에 수용을 했다는 이 사실이 현재의 관점에서는 <strong>‘국민의 선택 ’</strong>이 바로 <strong>‘친일 ’</strong>이었다고 단정해도 무방할 입장이 된 셈이다.</p>
<p>아니라고 부인하는가?</p>
<p><strong>‘경제 살리기 ’</strong>라는 주제로 돌아가 보면,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바가 얼마나 억지이며 거짓인가 고스란히 드러난다.</p>
<p><strong>“경제를 살리기 위해 민족주의를 버려야 한다 ”</strong>거나 <strong>“경제를 살리려면 일본과의 경제동맹을 해야 할 터이고 국민이 잘 사는 길을 택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다 ”</strong>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strong>‘경제 ’</strong>라는 마법에 홀렸지만 그로부터 사실상 온전한 경제 , 경제역량의 추구점은 파괴되었다. 바로 종속이란 최악의 상황이 완벽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있는 것뿐이다.</p>
<p>그러니까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성립과정이 어떠했건 간에 한반도에 사는 사람으로 일단 <strong>‘분단역사의 비극 ’</strong>따위는 팽개치고 <strong>자본이기주의</strong>에 함몰되었던 국민들에게 과연 현 사태를 비난할 자격은 주어지는가를 되물어야 할 때 같다.</p>
<p><strong>“선택 했으므로 반대를 말할 수 없다 ”</strong>는 것이 새롭게 등장한 친일정권의 자기 딴에는 합리적이며 법치국가의 논리라고 내놓은 주장이다. 국민 일각에서 <strong>“주권재민이므로 그에 반하는 정책에는 반대할 권리가 있다 ”</strong>고 하더라도 결론은 마찬가지다. 그들은 <strong>‘법’</strong>을 완전한 것으로, 또한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까지 판단한다. 이미 공권력은 정권의 손에서 <strong>‘친일의 재구성 ’</strong>단계를 넘어서 <strong>‘친일의 완성 ’</strong>을 위해 진행 중에 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상태에서 서로가 하나의 옷을 두고 씨름을 하고 있다.</p>
<p>여기에는 두 가지의 <strong>‘선택 ’</strong>이라는 단어 의미가 부여된다.</p>
<ul class="checkListType">
<li>하나는 <strong>‘선택된 상황의 한계 ’</strong>가 어디까지 인가 하는 해석의 문제다.</li>
<li>다른 하나는 <strong>‘새로운 선택이 가능한가 ’</strong>라는 자기 의문이다.</li>
</ul>
<p>정권의 친일 성향은 둘째치고, 그들에게는 가야 할 목표가 있다는 건 앞선 자료들에서 충분히 설명해주었다고 생각된다.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 사회는 공권력이건 아니면 문화정책이건 유화정책이건, 또는 롤러코스트 국면을 조장해서 피할 수 없이 사회 국가 자체에 일본을 깊숙하게 받아들이는 행위를 하는 것이 바로 ‘성공 ’인 셈이다. 이를 가만히 보고 있다면, 그것은 묵인(默認)이 되는 것이고 그에 반대하는 것은 사회가 <strong>‘친일은 수용할 수 없다 ’</strong>는 의사를 표시하는 셈이 된다.</p>
<p>여기에도 <strong>‘경제 ’</strong>는 만능의 카드다. <strong>‘나만 잘살면 그만이다 ’</strong>라는 생각을 가진 부류가 한국이란 사회 국가에 지천으로 깔린 것이 바로 오늘이기 때문이다. 이건 한 마디로 코미디다. 사회 가 <strong>‘시대 정체성 ’</strong>을 완전히 포기하고서도 국가라는 간판을 걸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완벽한 딜레마에 봉착했다. 그와 같은 상황마저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의 숫자도 꽤 많다.</p>
<p><strong>‘자본주의 ’</strong>, <strong>‘개인주의 ’</strong>가 <strong>‘역사성 ’</strong>을 뛰어 넘는 새로운 이념으로 작용하는 흔적이다. 즉, 신자유주의 정책 이후 한국 사회의 국민성 자체가 역사주체성을 버리고 개인적 자본이기주의의 대열로 완전하게 접어들었다는 걸 의미 한다 .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교육, 법률 등 모든 분야에서 기준점이 <strong>‘경제 ’</strong>라는 잣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상으로도 해석된다.</p>
<p>과연 그런가?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가? 그것을 당신은 허용한 바가 있는가?</p>
<p>이 질문은 본질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적용된다.</p>
<p>세 가지의 질문을 던진다.</p>
<p>“당신은 친일을 해도 당신만 잘 산다면 수용하겠습니까? ”</p>
<p>“당신은 친일을 해서 우리를 잘 살게 만들겠다는 정권의 판단과 의도를 믿습니까? ”</p>
<p>“당신은 친일을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정말 믿으십니까? ”</p>
<p>여기에 어떻게 대답해도 그것은 개인의 자유의지이니 반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아주 <strong>‘건조한 진실 ’</strong>하나가 부각된다는 점이다. 친일을 해서 당신이 잘 살 수 있는 확률에 대한 부분과 친일을 해서 잘 살 수 있게 된다는 명제는 전혀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으로부터 출발된 다.</p>
<p>왜냐하면 과거 백 년 전의 조선에서 민중이 친일의 치하에서 잘 살았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를 뉴라이트는 식민지근대화론으로 ‘그랬다 ’고 강변한다 . 그 연구는 일본자금으로 이루어졌다.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 수탈경제 속에서 1930년대 이후에는 완벽한 전쟁물자기지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숱한 조선의 사람들이 강제징용으로 일본의 탄광에서 전쟁터에서 죽었다. 완벽한 노예 같은 기계적 도구로 활용되었을 뿐이다.</p>
<p>일본의 제국주의와 팽창주의 역사는 절대적으로 상대를 침탈한다는 것을 대명제로 삼는다. 제국주의의 본질일 뿐만 아니라 일본이란 섬나라가 살아남기 위해, 그들 내부의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서는 팽창주의 외에 대안이 없다. 그러므로 잠깐 착시현상에 의해 잘살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허상(虛想)에 불과하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아주 건조한 진실이다.</p>
<p>많은 이들이 이것을 무시한다.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이다.</p>
<p>그 속에서 이른바 <strong>‘친일의 사냥개 ’</strong>가 누리는 기득권이 있다. 경제 기득권이기도 하고 정치적인 주류형성과 편입 , 안착 구도를 의미한다. 그게 자본주의 구도와 묘하게 결합하고, ‘나도 기득권이 될 수 있다 ’는 환상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까지 발생한다.</p>
<p>본질은 간단하다.</p>
<p>“당신은 친일입니까, 아닙니까? ”</p>
<p>이 대답은 양자택일이지 중간이 존재하는 법이 없는 것이 바로 한반도 역사의 오늘이고, 내일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일본은 그들 방식의 제국주의와 팽창주의 대상으로 한반도를 포기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명백한 진실이 있 다. 상대가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스스로가 중간 의 회색지대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건 자기기만이다.</p>
<p>약간 지겹고도 구태의연한 이 논쟁이 작금 한국 사회에 다시 던져지는 이유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바로 지금의 문제 고 어제와 내일을 함께 건 과제 다.</p>
<p>“당신은 친일정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p>
<p>“당신은 친일정권의 친일적 정책행위와 친일을 위한 독재행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8221;</p>
<p>“당신에게 있어 친일은 수용 가능합니까? ”</p>
<p>개인적으로 현재의 국가보훈처장을 하는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 ‘김 양’씨에 대해서는 미리 불만을 표시한 바가 있다. (시대 시리즈를 참조 바란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한 왜색 뉴라이트 집단을 근간으로 하는 정권에서 녹(祿)을 먹고 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를 물어보고 싶 었다. 지조(志操)를 중시했던 할아비의 뜻은 사라졌다고 폭언을 해도 시원치 않는 상황에서조차 ‘그’는 침묵했다. 그뿐만 아니다. 많은 독립운동의 후손들이, 또한 그 시대에 피해를 입었던 이의 자손, 그리고 지금도 그를 경계하는 사람들조차 친일정권의 탄생에 동조한 이가 많다. 알면서도 침묵했다.</p>
<p>흔히 이런 경우에는 ‘때를 기다린다 ’거나 ‘지금은 아니다 ’라는 류의 변명이 나오기 십상이지만 그걸 인정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일단 그는 반박했어야 하고, 그 자리를 물러나는 것이 그의 위치에 맞았던 일이다. 그는 그리하지 않았다. 비겁했다.</p>
<p>오히려 그를 그 자리에 묶어둠으로써 <strong>‘친일대세론 ’</strong>을 확장하는 정권이나 뉴라이트 집단(나는 이들을 ‘시대정신 ’이라고 바꾼 그들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건 일종의 도마뱀꼬리 자르기 전략을 인정해주는 꼴이 되는 탓이다)의 입지를 살리는 ‘어떤 기획 ’에 놀아나는 중으로 보인다. 안타깝지도 않다. ‘나도 생각이 있다 ’고 한다면, 그것은 청와대나 권력 기관이 할아비의 위명(威名)을 존중해서 자신을 불러주고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잠깐의 안일에 안주한 것일 뿐이다. 효율적인 활용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법이다. 달리 말해서 그는 활용 당하는 상태라는 거다.</p>
<p>일단 앞서 나온 <strong>‘(친일) 사냥개</strong> ’가 처리되지 않은 상태다 보니 <strong>‘사냥꾼 ’</strong>의 위치에 있는 일본 내의 세력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가 <strong>‘일본을 배우자 ’</strong>는 이른바 <strong>‘(선진국) 열공 분위기 ’</strong>가 정권 내의 어지간한 사람들 머리 속에는 다 박혀있다. 그 점에서는 MB도 예외가 아니고, 그는 아예 드러내놓고 발언도 자주 한다. 다케나카 헤이죠 일본 전 총무처장관이 MB정권의 두 번째 외국인 경제고문이 되자마자 열풍처럼 불었던 ‘다케나카 배우기 ’(그러니까 ‘민영화 배우기 ’다)를 생각해보면, 무엇을 배우는 것인지도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p>
<p>그러므로 여기에서도 몇 가지의 질문은 나온다. 한국 사회의 인지능력과 감성, 그리고 이성까지 테스트 해볼 수 있다.</p>
<p>“당신은 일본이 제국주의와 팽창주의를 포기했다고 생각하십니까? ”</p>
<p>“당신에게 일본은 배울 것이 많은 국가입니까, 아니면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을 경계할 국가입니까?&#8221;</p>
<p>“당신의 실용주의는 일본의 어디까지를 수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p>
<p>“당신은 일본을 떠난 한국, 한국을 떠난 일본이 각각 생존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p>
<p>“한국 내의 친일이 자생적인가, 아니면 일본의 어떤 세력에 의해 길러진 것인가에 대해 당신의 판단은 무엇입니까? ”</p>
<p>이런 유형의 질문은 흔히 중도적 성향의 대답으로 흐르기 일쑤다. 그러니까 ‘배울 점도 있고 싫은 것도 있다 ’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한국은 일본경제에 심각한 예속화를 뿌리치지 못했다. 역대 어떤 정권도 딱 그 수준에서 ‘관리 ’만 했다. 벽을 넘어가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멀리 도망가지 못하게끔 일본이 관리하지 않았다고 보기도 어렵다.</p>
<p>여기서 묘한 의문 하나가 다시 제기된다.</p>
<p>“일본에서 한국을 그들의 족쇄에 오랫동안 묶어두려는 세력은 누구인가? ”</p>
<p>일본의 극우와 우익에 의한 사회 국가 전체의 우경화는 점입가경으로 간다. 좋은 일본인은 그들도 사람 사는 곳이니 존재하지만 이들은 결코 한국의 미래에 좋은 일본인, 좋은 일본 세력, 좋은 일본이라는 대상으로 존재하지 못하게 만드는 ‘병리적 세포 ’에 해당한다. 이들은 힘이 있고, 이들에겐 목표가 있다. 그 목표는 이제 한국 사회 속에서 친일정권과 함께 ‘앞으로 백 년 ’을 설계하려고 하는 중이다. 그들이 포장하는 단어가 바로 ‘친한파 ’다. 이제는 그로도 부족했는지 진짜 극우와 우익의 숨은 세력들까지 기어 나온다. 강약을 조절하고자 하는 듯하다.</p>
<p>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p>
<p>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묻는다. 회색분자가 되려고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것은 사냥꾼과 사냥개 모두가 절대적으로 바라는 ‘정답 ’이다. 한반도의 오늘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오답 ’이다.</p>
<h3>2.&nbsp;노예국민의 초상을 그린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3" title="toc_3" class="anchor" id="toc_3">#</a></sup></h3>
<p>1% 독재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 4,500만 명 가운데 1%라면 약 45만 명이다. 그들이 금권을 가지고 사회 전 분야를 전횡(專橫)하는 걸 의미한다. 거기에 빌붙어서 사는 기득권(旣得權)이 형성되는 부류가 약 4% 추가된다. 약 180만 명이다. 그리고 다시 5%의 기득권의 유동계층이 존재한다. 이들의 자리는 수시로 바뀔 수 있다. 약 225만 명 상당이 그렇다.</p>
<p>나머지 90%의 국민 4,050만 명은 저 10% 가운데서 5%를 둔 피 터지는 계급싸움을 하거나 아니면 사회유지와 구성을 위한 일정한 계층으로 자리하게 된다. 경제라는 잣대로만 본다면, 일개미 군단이다. 이들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일정 수준에서는 최상위 계층으로 도약을 위한 노력도 하게 된다. 그러나 쉽지 않다. 경쟁률은 18:1 수준이다. 높지 않게 보인다면, 그건 오산이다.</p>
<p>경제외적 측면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덕목과 분야도 있다. 그들에게도 의미는 부여된다. 권력이 아니지만 권력형으로 변화되는 경우도 생긴다. 지방의회니 혹은 서울시 교육감 같은 경우만 봐도 그렇다. 할거(割據)의 영역 내에서 다시 국민 전체에 해당하는 계급화가 진행된다. 금권은 다시 그 잣대로 사용된다.</p>
<p>교육 현장이 무너지면서 다음 세대에는 계층화 현상이 뚜렷해질 전망이지만, 지난 십 년 신자유주의 정책이 경제 외적인 분야에도 영향을 고스란히 미친 상태에서 친일정권이 들어와 이마저 친일화 교육의 전 단계를 설정하려고 하는 중이다. 여기서는 다시 <strong>‘경제 ’</strong>가 역사의 잣대로 사용된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찬양기조는 당연하게 주장되는 바이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어떤 정치 유형이건 간에 경제발전이라는 단일 기준으로 정권의 공과를 구분하자는 논쟁을 양산한다.</p>
<p>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기득권에 대한 유지 차원이라면, 이 정도 엄혹하게 처리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지금껏 잘 해오지 않았 던가?</p>
<p>두 가지의 전제가 나온다. 이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한국이란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보지 못하는 꼴이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친일정권과 사냥개, 사냥꾼은 한국사회와 국가가 지난 60년 동안 유지해온 본질 자체를 드러내놓고 개편하고 앞으로 100년 동안 친일을 대세로 하는 집단을 구성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것이 바로 ‘다시 백 년 ’(又100)이라는 일본 프로그램의 진실이다.</li>
<li>둘째, ‘다시 백 년 ’의 핵심은 단순한 병합 구도를 만든다거나 또는 형식적인 합병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구도의 수립이라는 대전제를 둔다. 즉, 한국 내에서 다른 정치세력이 아닌 친일 정치세력으로만 유지되는 정치 형태와 이들과의 담합에 의한 한일이라는 외부적 표면적 국가 형식 과는 별개로 내부적으로 친일과 일본 내의 주도세력 간의 결합구도를 공고히 하자는 것이다. 겉과 속이 동시에 공략되는 방식이다.</li>
</ul>
<p>사실상 이 두 축이 가동 중에 있다. 나머지는 이에 부속되는 것일 뿐이다. 아울러 그렇지 않은 것으로 포장된 실체일 뿐이다.</p>
<p>좀 더 자세히 살펴봐도 마찬가지다.</p>
<p>1995년경부터 일본은 쿠나이쵸 (宮內廳)의 주도 하에 정권 내외부의 일본 극우와 우익분자들 간의 장기적인 생존 플랜을 가동했다. 그 상세한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십여 년 간의 추적을 통해서 이들의 기획 대강은 사실상 포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작성된 ‘시대시리즈 ’를 참조 바란다.) 그것을 보면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p>
<p>우선 한반도에 대한 팽창주의 관점의 장악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제 1 단계, 친일의 재구성. 제 2단계, 다시 백 년 구도의 완성. 제 3 단계 조선반도 전체에 대한 친일 구도 정착이었다.</p>
<p><strong>제 1 단계</strong>는 다시 3가지로 나뉘어 진다.</p>
<ol>
<li>친일찬양조의 구성</li>
<li>친일의 침투 확산</li>
<li>친일에 대한 재구성</li>
</ol>
<p><strong>제 2 단계</strong>의 경우는 4가지의 실천전략까지 있다.</p>
<ol>
<li>친일정권의 수립</li>
<li>친일의 고착화 및 공고화</li>
<li>친일대세론의 미래화</li>
<li>친일구도의 완성</li>
</ol>
<p>여기서 ‘미래화 ’가 바로 ‘교육 ’에 대한 부분이었고 구도의 완성은 곧 ‘한일경제동맹론 ’의 실천을 의미한다. 여기까지가 한반도의 남부에 위치한 대한민국에 대한 그들의 계획 진로였다. 이 부분을 11개의 침투방식으로 설명한 것이 시대시리즈다. 거기에 몇 가지 변형들이 최근 추가될 필요까지 생겼다. 내가 이것을 ‘침탈기획 ’이라고 부르는 이유다.</p>
<p>아울러 <strong>제 3 단계</strong>도 있다. 한반도 전역에 대해서도 그들은 놓치지 않는다. 바로 북한에 대한 침투작업이다. 일본의 기획자는 이러한 작업에 일본 내에 있는 조총련을 활용하고자 하지 않았다. 처음에 부분적인 포획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장악된 한국, 그러니까 한국 내의 친일분자(친일 사냥개)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최종 판단을 내린 상태다. 이 점은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p>
<p>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으로 이어지는 4대에 걸친 정권에서 이 플랜은 줄곧 작동했고, 정권과 기득권의 담합에 의해 지속적으로 확장 진전되어 왔다. 한국 사회 내의 정치적인 보수 진보 논쟁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에 함몰되어 국민들 대다수가 몰지각했던 시간 동안 일본의 세력은 이 기획을 차근차근 진행 하였고, 아직도 그 실천 과정에 있다. 이 기간 동안 어떤 정치세력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간접이건 직접이건 간에 일본의 세력이 의도하는 바를 충실하게 집행해주었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p>
<p>착각은 하지 말기 바란다.</p>
<p>겉으로 외치는 ‘반일 ’이 곧 ‘친일 ’이 아니었다는 반론은 될 수 없다는 것은 과정과 결과가 증명을 한다. 그건 역사 정체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연대기에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상륙할 기반이 만들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친일 ’이었다는 사실이 부인되지 못한다. 그것을 당시 사정에 의해 어쩔 수없는 대세로 포장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그러나 받아들이는 상태 자체는 정부수립 이후 처음이었던 것도 분명하며 그 방식도 창가학회를 받아들이는 등 가장 나쁜 선택이었다. 흔히 말하는 정치기득권은 항상 서커스 의 광대처럼 행동한다. 우매한 백성들이 그들을 따르지만 본질에 있어 그들은 기득권 유지와 수호라는 대전제를 버리지 않았다.</p>
<p>이 과정을 추진하며 (그들이) 진정으로 목표하는 바는 무엇일까?</p>
<p>일본의 침탈세력이 추구하는 최종적인 것은 ‘팽창의 완성 ’으로 정의 내려진다. 즉, 압축해서 보자면, 일본이 한반도를 그들 팽창주의의 대상으로 보면서, 일정 수준의 내부적 관리를 위한 기득권은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경제적인 노예화 ’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p>
<p>앞서 지적한 90% 국민이 비 기득권의 상태에서 일개미로 활용 가능한 상태가 일본 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내는 계급화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바로 식민(植民)이라는 개념이다. 단순히 경제적 수탈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여기는 역사와 정치, 사회와 교육, 그리고 시대를 ‘포획 ’(捕獲)한다는 개념이 강하게 담겨있다. 애초 그것이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단지 그 표면적인 수단이 경제가 되었을 따름이다.</p>
<p>내가 일본의 세력들이 의도하는 이러한 움직임을 파악한 이후, 지난 14년여 동안 일본은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에 접근해왔다. 그 중에서도 1997년 IMF사태는 한국 사회 에 그나마 최소한 유지되던 이른바 ‘사회 안전망 ’이 완전히 파괴되는 계기로 작용했었 고상대적으로 일본에게 있어 이것은 완벽한 기회의 획득이었 던 시기다. 그들은 이를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바로 이 시점부터 ‘식민이 가능한 상태 ’를 만드는 노력은 줄곧 현장에서 이어졌고 2008년 오늘 세계금융위기 상황에서 일본 세력들은 드디어 ‘친일의 재구성 ’을 끝낸 상태에서 ‘다시 백 년 ’의 2-1, 2-2의 단계를 밟기 시작하는 중이다.</p>
<p>‘노예화 ’(奴隸化)라는 개념은 일종의 ‘일개미의 양산 ’구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것은 아주 빠르게 고착화된다. 다시 말해서 한 번 노예가 되고 난 이후에는 계급이탈이 용이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p>
<p>사냥개와 사냥꾼에 의해 주도되는 일반 국민 대다수에 대한 노예화 프로그램은 흔히 독재적 정권에서 나타나는 정보의 차단, 선전 선동의 강화, 중우화(衆愚化)내지 우민화(愚民化), 회색지대화 , 시도 때도 없는 공권력의 억지 활용과 같이 파워 엘리트에 의해 주도되는 시대만을 남겨놓는 것으로 가시화된다. 지금이 그러한 과정에 있다.</p>
<p>한국 사회에서 작년 12월의 대선을 앞둔 논쟁들 중 가장 주목했어야 할 부분은 지난 십 년 넘게 강한 논 란의 대상이 되어왔고, 정부수립 이후에도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오던 좌파론, 우파론이 다시 제기 되었다는 사실이 다. 좀 더 세분화 해서 보면, ‘민주 평화 통일 개혁 ’이라는 네 가지, 사회가 본래 지향했던 정신적이거나 역사적인 목표가 ‘경제 ’또는 ‘경제 살리기 ’한 방에 어이없이 무너져 버렸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p>
<p>이 선택이 오히려 국민들의 노예화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된 것이 아이러니컬 하 다. 거기에 숨은 ‘친일 ’과 일본의 기획 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 노무현 정권 이 이러한 시대적 침탈행위 자체를 방어하지 못할 정도로 미숙했던 약점을 철저하게 활용하게 된 기회를 포착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난 5년 동안 한국 사회는 정규직, 비정규직 논란 , 계층화 계급화로 부터 경제뿐 아니라 사회 자체가 예속화되는 한미FTA를 수용하는 가운데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국민 대다수가 ‘경제는 죽었다 ’고 인식하게 만들었던 한계가 존재했던 것이다.</p>
<p>착시현상을 벌어지게 한 데는 일본의 역할이 매우 컸다. 노무현 본인도 인정했지만 일본발 엔케리 자금이 2002~2007년까지 과도하게 한국 시장으로 몰려드는 것을 효율적으로 억지하지 못한 대가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 ’로 이어졌고, 그것으로 국민들은 경제가 죽어버렸다고 인정했던 셈이니까. 공개적인 것 2조, 실제로는 거의 27조 엔으로 평가되는 당시로부터의 유입 자금은 한일 간의 원화/엔화 스왑거래나 주요 기업들의 일본으로부터의 자금 차용, 정부간의 이면 담합을 통한 국책 프로젝트의 가동, 공기업 민영화 선진화에 있어 일본 또는 일본계 자금의 접근 등을 통해서 한국 내에 공개 비공개로 한국을 전면 수탈하는 도구로 활용될 전망이다.</p>
<p>이게 그 다음으로 진행될 그림이다.</p>
<p>한국 경제 속의 국민 90%의 초상은 사냥개가 앞서고 사냥꾼이 뒤에 선 침탈상태에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인가? 거기에는 경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교육, 문화 등에서도 영향을 받게 되는 모습이 아스라히 떠오른다. 한국은 이제 일본의 식민으로, 일본을 선진국의 표상으로 떠받드는, 그리고 도망갈래야 갈 수 없는 예속화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48" height="221" width="274" style="float:none;margin:0;" /></p>
<p>(1945.9.9 오후 4시, 아베 노부유키가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p>
</div>
<p>일본의 마지막 조선총독 이자 1945.9.9 미 제24군단 존 하지 중장과 7함대 사령관 킨 케이드 제독 앞에서 항복문서를 서명했던 아베 노부유키 (阿部信行) 의 발언을 잊어서는 안 될 시점이 되어 버렸다. 드러난 것만으로는 분명한 사실이 되고 있으니 .</p>
<blockquote>
<p>“우리(일본)는 패했지만 한국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 데, 한국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한국민에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燦爛)했으며 찬영(燦榮)했지만 현재 한국은 결국은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8220;&nbsp;</p>
</blockquote>
<p>무서울 정도로 ‘I’ll be back ’을 입술 깨물고 외쳤던 그가 정말 한반도로 돌아왔다.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그가 말한 ‘식민 ’의 깃발을 들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상하게도 그 깃발은 한국인의 얼굴을 한 몇 사람들에게도 들려있다. 그냥 들고 서 있는 게 아니라 마구 흔들어댄다. 그 숫자가 날로 늘어간다. 경악할 일이지만 이제 놀랍지도 않다. 뉴라이트 집단만 하더라도 벌써 17만명, 우리 인구의 0.4%다. 정말이지 한국이란 국가 사회 정체성에 ‘The day will be come ’을 외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p>
<h3>3.&nbsp; 아시아와 한반도<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4" title="toc_4" class="anchor" id="toc_4">#</a></sup></h3>
<p>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익히 예상된 사실이지만, 그의 등장으로 내년 초취임할 때까지 9월 터진 세계금융위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식물이 된 부시 행정부의 기능보다 오바마의 말 한 마디에 더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공화당에 의한 지난 8년 간의 경제정책은 민주당에 의한 강한 보호무역주의 성향으로, 그리고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지난 정권과는 다른 격변은 충분히 예상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p>
<p>아시아에도 영향이 적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의 커다란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까?</p>
<p>미국이 과연 국가로써 정책을 펴는 곳인가, 세력으로 정책이 결정되는 곳인가에 있어 이제는 ‘세력 ’에 방점을 찍는 게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들 내부에 있어 세력은 다양하다. 그들에 의한 이권의 도모는 어느 정권 하에서도 어쩔 수 없다고까지 보여진다. 무기와 제약, 축산의 카르텔로부터 금융과 연결되어 다양하게 세계의 농산물, 금속, 비철금속, 화약, 보석, 금 등 물자와 정보를 쥔 멘데이트 형식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상 미국을 지탱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골간이다.</p>
<p>거기에 미국-일본 간의 결탁이 있다. 당연히 미국-중국 간의 알력도 있고, 중국-일본 간의 협상과 담합이 존재한다. 한국은 친일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러한 협상의 주체로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는 기현상을 맛보고 있다. 여기에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향한 자화자찬은 불필요하다. 그것은 백성에 대한 기만 수준에 불과하니까. 정작 봐야 하는 것은 정말 대외에서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게 포장되는 예가 비일비재했다.</p>
<p>그러고 보면, 대표선수를 뽑긴 했지만 대화의 상대방으로 격을 유지하지 못하니 국민들도 딱 그 짝이 나버렸다. 그래서 해외에 나가는 대통령을 사이버 상에서는 우려의 눈길로 바라본다. 또 무슨 실수를 하고 뭘 넘겨주고 오는가 의심의 눈초리다. 그만큼 한국의 정권과 정부가 출범 이후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왔다.</p>
<p>이걸 도박사와 전주, 그리고 하우스 장(長)이란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p>
<p>전주는 도박사를 대표로 선정해서 한 판 도박판에 참여를 시켰지만 도박사는 전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도박사와도 결탁하고 하우스 장과도 담합을 해서 오히려 전주의 돈을 뽑아 먹을 궁리를 한다는 시나리오다. 그 하우스에는 대표가 여럿 있어 이사회를 개최하는데 불행하게도 우리측에서 낸 도박사는 거기 끼지를 못한다. 그래서 항상 하우스 이사회의 결정에 휘둘리게 되어 있다. 이익은 그들끼리의 몫이 가장 크고 그 일부가 도박사에게는 오지만 정작 전주는 속절없이 털리고 나중에는 하우스에서 박카스를 파는 신세로 전락한다는 게 성인용 동화다. 밖으로 새는 바가지이지만 안에서는 극구 새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기만이다.</p>
<p>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미국의 각축이 더 짙어지게 될 것은 자명하다.</p>
<p>한반도에서도 북미 간의 출발점은 부시 행정부에 비해 오바마 집권은 긍정적 변수라는 평가가 대세를 이룬다. 그러나 한국의 친일정권은 사실상 남북관계를 단기 내 진전시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건 옆에서 아무리 좋게 이야기한다 해서 들을 문제가 아니다. 보수라는 관념적인 포지션이나 관점과도 다르다.</p>
<p>‘친일의 재구성 ’단계에서 ‘다시 백 년 ’으로 돌입하면서 가장 골치를 앓게 된 숙제가 바로 북한문제다. 엄밀히 이것은 ‘민족 ’, ‘민족문제 ’ 라는 테마에 속한다. 아무리 친일이라고 해도 일본과 동일 민족을 운운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경제 ’라는 결합 변수를 가지고 논의될 수 있을 뿐, 그 어떠한 과제로도 서로가 담합이 가능한 요소가 없다. 그럴만한 기초 환경 자체가 주어져 있지 않다.</p>
<p>그러므로 민족문제 자체를 친일정권이 다루게 되는 순간, 사냥개와 사냥꾼 둘 다가 명분을 잃어버리게 된다. 극력 하는 척 자꾸 지연시키고, 사안 자체를 배척하는 국면으로 몰고 가는 본질적 이유에 해당한다. 그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다.</p>
<p>부시 행정부는 일본의 이러한 의도를 알고 있었고 철저하게 그것을 활용했다. 새로운 미국 민주당 정권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변수 도등장했다. 개인적 예상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미일 간의 담합구도는 어떤 정책적인 방향이나 이념으로 된 것이 아니라 미국이란 국가가 아시아에서 한 축으로 반드시 견지해야 할 대상이라는 국가전략 차원에서부터 경제적인 결합, 그리고 각각 국가를 주도해 나가는 세력간의 거래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 틀이 쉽게 부숴지지 않는다.</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00" height="483" width="270" style="float:none;margin:0;" /></p>
<p>(호랑이처럼 살아갈 자신이 있는가? 아무래도 이건 마음 속에만 있지 겉으로는 드러나지 못하는 환상 같은 것, 그저 바라는 소망으로만 그치는 것은 아닌가?)</p>
</div>
<p>그래서 한국을 보는 미국의 눈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미 미국은 한국의 정권이 친일이며, 아울러 일본의 세력에 의해 조종되고 내밀한 담합이 있으며, 거래관계가 있다는 것조차 용인한 상태다. 그걸 뒤바꿀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미국과 미국 내세력의 이익에 합치되기 때문이다.</p>
<p>단지, 변수로 등장하게 된 것이 대북문제라는 것인데, 이것도 미국의 일본에 대한 일방적 무시보다는 일본의 입장이나 불이익 을최대한 미국이 커버해주는 방식이 될 것으로 봐야 한다. 그만한 카드는 일본이 가지고 있다. 경제적이건 로비이건 간에 미일 관계는 그런 요소가 너무 많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은? 쉽지가 않다. 일일 이챙겨줄 입장이 아니란 건 부시 행정부 때도 본 일이다. 북미간의 대화를 한국이 모두 들었던가? 어떤 외교관료도 이것을 사실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전 협의했다 ’는 말은 개략적 내용을 통지 받은 수준으로 평가하고 만다. 상세한 미주알 고주알 하는 공조가 아닌 셈이다.</p>
<p>이유가 선명하다. 북한이 보는 남한의 오늘도 정권의 친일성향을 파악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진정성이 없다는 건 지난 반 년 넘도록 봐온 사실이다. 그래서 통미봉남이 사용되었고, 7월 금강산 피격사건 이후 이렇다 할 당국간 회담마저 개최될 조짐이 없다. 단지 다자협상인 6자 회담만이 유일한 창구가 되고 있지만 이것은 북핵이라는 처리 대상물이 뚜렷하다. 쌍무적 관계는 아니다.</p>
<p>여야에서 대북 특사론이 나오지만, 이것은 일종의 ‘치레 ’에 해당한다. 친일의 재구성을 어렵게 끝내고 정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아직은 살얼음판을 걷는다는 인식이 있는 친일정권이나 일본의 세력들 관점에서 대북문제는 지금 펼칠 수가 없는 소재다.</p>
<p>10월 테러지원국을 해제하면서 미국은 이 틈바구니를 비집고 접근했다. 어차피 민주당은 대화와 협상이라는 관점에서 강하게 북미관계를 강화해 나갈 판단이 있었다고 보면 부시의 결정은 한 발 앞서 미리 해버린 케이스라고 봐야 된다.</p>
<p>중국은 2009년 을중북 우호의 해로 설정한 상태에서 대규모의 인적교류를 준비 중에 있다. 정보가 빠른 중국도 한국이 친일정권이며, 대북관계를 쉽게 폭넓게 벌이지 못한다는 수준은 이미 파악한 지 오래다.</p>
<p>9월 김정일 와병설을 흘리면서 남북한이 냉랭해진 분위기에 빠진 것은 차치하고, 그 또한 북한 흔들기라는 화평연변 전략이었다는 것이 우익대북단체와 종교단체의 삐라 살포를 말리지 않는 한국 정부의 태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 목적한 바로만 고려하면 확실히 아마추어 의 행동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남북한이라는 역사성이나 미래성을 본다면 이것은 그저 꼼수 로 평가되기 딱 좋 다.</p>
<p>상황만 놓고 봐서는 한국의 친일정권은 당연히 자신들이 해나갈 스탠스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고, 미국이나 중국은 이걸 굳이 탓할 필요도 없이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는 중이다. 적절한 레버리지를 구사한다고 봐야 한다.</p>
<p>일본이 약간 딜레마에 빠질 때마다 구원자는 항상 미국이었지만, 이번의 경우도 중유지원 자체를 6자에 참가하지 않는 다른 나라의 것을 받아주겠다는 북한의 태도로 사실상 일본의 부담이 대폭 줄게 되었다. 그렇다고 북일관계가 일시에 좋아질 일은 없다. 일본도 현재 한국의 친일정권과 동일한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통미봉남, 통미봉일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북한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일본의 세력과 한국의 친일 세력의 계륵(鷄肋) 상황에서 드러난 실재이다.</p>
<p>거꾸로 이런 상황을 북한이 알면서도 일본을 배척하지 않는 것이 남한에 대한 친일화를 묵인한다는 것으로 비판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와병설, 정쟁설 등으로 뒤숭숭하기는 하지만 북한의 태도는 비록 6자 배제론 등을 흘리면서 일본을 압박한다손 치더라도 전체적으로 일본으로 하여금 한반도 남부에 대한 진출권을 인정한다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어찌 생각해보면, 거기까지 돌볼 공간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도 보여진다. 워낙 경제가 엉망진창이 된 채 90년대 와 그 이후를 보냈다는 판단에서 보자면 그렇다.</p>
<p>그러나 이것으로 결코 북한의 책임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로 ‘동조(同調)와 묵인(默認) ’이라는 관점 때문이다. 이렇게 하고서 그들이 일본을 향해 ‘독도 ’를 운운한다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다. 일본의 침탈 구조 자체를 알고서도 대응하지 않는 것은 북한이 정권수립 이후 일관되게 주장해온 민족존엄이라거나 혹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궤를 달리하는 전략으로 비춰지고, 심지어는 개념이 아니라 실리라는 관점으로 대일 정책을 바꾸었다는 비판 혹은 능력의 한계를 표명했다는 수준으로 비웃음을 사도 무방한 요소도 생긴다. 여기에서 사실상 ‘우리민족끼리 ’의 진정은 사라지니까.</p>
<p>북한의 오늘은 미국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다른 문제를 생각할 틈도 없다. 그 고깔은 벗겼지만, 필요하다면 미국을 받아들이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의 친일화라는 과제는 후순위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만일 그들이 남한에서 완벽한 친일정권과 일본 세력의 구축이 끝난 상태에서 대화를 재개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말하는 실리주의라는 것이 그러한 것이었다는 것으로, 실제로 겉으로 내걸었던 ‘민족본위 ’라는 것은 구실일 뿐이었다는 것으로 해석되어도 무방할 지 모른다. 진정성은 그로부터 완벽하게 사라지게 된다. 남북관계가 잘 되지 못하는 원인으로 이런 문제까지 등장한다는 것이 불행한 형세다.</p>
<p>아시아는 미 대선 이후 내년부터 격변의 형세로 돌아갈 것이다. 다시 변화의 궤도에 접어들었다. 확실한 변곡점은 서서히 드러날 것이지만, 내년 하반기 이후 본격적으로 한반도는 출렁이는 국면을 드러낼 것으로 예측된다.</p>
<p>그래서 일본의 세력과 한국의 친일정권은 몹시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 때는 자신들도 그 변화에 편승하고자 한다. 과연 그것이 의도대로 될 것인가는 차치하고, 친일의 재구성마저 끝나고 그 다음 단계로 가고 있는 한국이란 사회 국가의 운명은 한반도의 향후 10년을 매우 안타깝게 도 안정이 아닌 불안정하게 만들 소지가 더 깊어지게 하는 시점이다. 그 실패가 ‘다시 백 년 ’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막연한 상상이나 희망 , 혹은 상식적인 판단 이 위험한 이유다.</p>
<h3>4. 정치는 죽었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5" title="toc_5" class="anchor" id="toc_5">#</a></sup></h3>
<p>한국에서 지금 ‘정치 ’(政治)는 일단 죽었다. ‘인간에 대한 도리 ’라는 정치의 본래 의미는 퇴색되었다. 그것이 올바로 가건 아니건 벌거벗겨져 시체 침대(屍臺)에 놓여진 상태와도 같다. 이건 올바른 한 국가 와 사회 의 정치가 도저히 성립될 수가 없게 구성되어 버렸다. 정체성이 죽어 버렸다.</p>
<p>친일이란 요소가 들어오면서 ‘정치계 ’와 ‘정치세력 ’이라는 단어는 뚜렷하게 구분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력 ’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한국이란 사회 국가의 본래적인 정치 자체를 망가뜨리는 한 수를 두었다.</p>
<p>작년 한나라당의 경선에서 이명박, 박근혜는 정치를 했다기 보다는 차라리 뉴라이트 집단의 간택(揀擇)이 어딘가를 두고 다툰 형국이었고, 그 점에서는 열린우리당의 해체, 민주당의 탄생 과정에서도 손학규-정동영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김대중-노무현 간의 대리전의 양상을 떠나 정통성 을 포장한 세력화와 그에 반발하는 별동부대 간의 혈투라고 표현했던 것이 옳을 정도로 국민에게는 그저 세력다툼 수준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비춰졌다. 국익이 아닌 세력을 위한 정치만이 존재했던 것이다.</p>
<p>중요한 것은 이 싸움에서 종합적으로 완전하게 ‘친일 ’이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영향 력을 미치는 범위는 점차 넓어진다. 정치계를 장악한 정치세력으로 스스로를 ‘집권자 ’(執權者)라고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것을 정권이 수용하고 있다. 즉, 정치가 굴복하면서 정권이 컨트롤 가 능한정부와 민간 부문 까지도 확산일로를 걷는다는 의미다. 아주 강력한 세포분열이 이루어진다.</p>
<p>이들이 단순하게 행정부 차원을 넘어서 입법부, 나아가 사법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 가운데 상당수의 숫자를 자신의 세력 우산 아래 포획한 것은 물론이며, 국회라는 기관 속에서도 심지어는 일반 기업에까지 영향변수를 미칠 수 있는 틀을 갖추기 위해 동분서주 했던 것이 바로 지난 반 년의 기록이다.</p>
<p>건설사의 줄도산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이라는 정책을 선택하면서 건설사는 이제 A, B, C, D 네 등급의 분류를 하여 지원 받게 되어 있다. 그들이 이곳으로 침투되는 것 도시간 문제다.</p>
<p>당연히 정치세력이 들어가서 경제를 주관하고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는 파장이 남는다. 이건 어떤 경제이론으로도 분석되거나 통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것은 야합(野合)이라는 속성을 지니면서 확대발전 되어갈 것으로 보여지고, 마침내는 원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친일 ’을 목적으로 움직이면서 한국의 정치계 자체를 무용화시키 거나 그들 내부로 포획하 는 방식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뉴라이트 집단의 창설 3주년 기념식은 그 좋은 예에 속한다. 그 행사에서 정치는 정치세력에 포획이 완전히 끝났다고 봐도 좋았었다.</p>
<p>대의민주주의에서 이것은 정치 자체를 무시하고 정치세력으로 정치를 이끄는 일종의 위헌적이며 반역 행위에 해당하지만, 제지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들이 ‘친일 ’을 암묵적으로 방관 또는 수용하고 있고, 그 전선에 대응하지 않는 현상 때문이다. 이것은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침묵이고, 또한 무관심과 개인주의 속성에 의한 묵인구도가 형성 된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더 활개친다. 적당하게 물타기도 하면서 그들의 입지를 다진다. 그들의 입장에서 이 상황은 국민의 일정수준이 동조하고 있다는 판단, 그리고 금권에 접근 가능한 세력화를 추구하거나 개별적 이익 차원에서 친일을 수용 가능한 개인과 집단이 늘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그들 스스로도 강하게 각인시키는 중이다. 자신감의 발로다.</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34" height="214" width="279" style="float:none;margin:0;" /></p>
<p>(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속한 한강의 하중도[河中島 ], 거기 있는 정치가 모든 정치인가? 정치세력과 민초의 정치가 충돌한다. 대의민주주의 본래의 뜻은 이 건물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단지 하나의 기표일 뿐이다. 그러나 정치는 착각을 하고 민심은 착시현상을 일으킨다.)</p>
</div>
<p>이들 자체가 친일세력이지만, 이들이 목표로 하는 범위가 단순하게 친일의 확산이 아니라 경제와 결합하면서 부작용도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 대운하, 해저터널은 하나의 지표라고 볼 수 있 고, 메인스트리트의 경기불황 가운데서 기업들의 줄도산 환경이 이어지고, 나아가 공기업의 민영화 선진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사회 전반에 걸쳐 정치세력이 주도한 경제비리는 날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는 중이 다</p>
<p>그렇다면 정치계는 왜 이토록 자신들의 영역을 침해 당하는 것을 보고 있을까? 정말 그 영역은 완전히 침범 당한 것일까?</p>
<p>정권 초기 구도에서 한국 내의 친일세력은 지표를 설정하기 바빴다. 그것은 ‘친일의 재구성-친일정권의 수립 ’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단순히 친일이 아니라 ‘역사의 재평가 ’라는 과제와 맞물리면서 그들 개개인의 각자 이익을 누리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아울러 보수와 진보라는 관점을 제기하면서 지난 십 년의 정치세력을 무용화시키는 목표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에게는 선 순위로 인식되었고, 그 과정에서 친일세력의 활동을 통한 소위 ‘좌파론 ’의 제기가 도움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p>
<p>결정적인 것은 바로 그들 내부의 기획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세력의 그것을 기본으로 하여 움직이는 상태에서 다양한 논의 자체가 나올 공간이 없었다는 점이다.</p>
<p>세 가지의 큰 카테고리가 등장한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경제살리기 코드는 경제위기에서 일본을 끌어들이는 환경조성으로 변질된다.</li>
<li>둘째, 근현대사 재평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정부 연대기에서 기존의 정치세력을 포함한 정당성의 부여로 몰입되고, 이에 역사교과서 재편으로 방향을 몰게 된다. 여기에는 단순히 역사뿐만 아니라 경제관념의 변형, 그리고 대북 적대화 개념의 확대 양산으로부터 좌파론 , 좌파 배척론 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있다.</li>
<li>셋째, 언론과 여론의 장악구도다. 이것이 완성되지 않고서는 그들의 공통이익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딜레마가 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이 부분은 공략되었다. 공권력이 동원되기도 하고, 마타도어, 메카시즘 , 회유와 담합, 자기 사람심기 등 모든 가능한 수단은 실제 시행되었다.</li>
</ul>
<p>이것은 막무가내의 ‘밀어붙이기 ’국면이었다. 그러므로 이 가운데 대화와 타협, 조정과 발전이라는 정치의 기본적인 소양은 불필요했고, 당연히 정치계는 이들의 움직임을 멀뚱히 지켜보거나 혹은 그 세력 속으로 자신들이 편입되는 것을 거꾸로 원하는 우스운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자발적으로 희망된 포획은 그들이 선거라는 형식의 ‘미약하기 그지없는 표심으로 만든 ’촛농 같은 존재임을 보여준다.</p>
<p>이 과정 가운데서 한국의 정치는 여당이건 야당이건 간에 모두 정치 본래의 역량을 펼칠 아무런 모멘텀을 찾지 못한 채 굴러왔다. 지금도 이것이 일거에 개선될 여지는 없다. 아직도 일본 세력의 기획은 ‘진행 중’이라는 팻말을 붙인 상태이므로, 그 사이 정치계가 나름대로 본래의 자리에 올 가능성은 없다고까지 봐야 한다.</p>
<p>그 기간은?</p>
<p>적어도 2010년이 되는 해까지, 그러니까 현 정권의 임기가 절반을 넘어가지 않는 상태에서는 정치계 자체에 기 대할 구석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정설이다.</p>
<p>그 사이 벌어질 다양한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이미 규정된 바처럼 친일정권이 갈 수 있는 방향이나 친일의 사냥개로 움직이는 친일 정치세력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지고, 그에 대응하는 세력들과도 격렬한 다툼이 있게 될 공산이 크다.</p>
<p>이 가운데서도 정치가 살아날 공간은 인터넷 환경이라는 유일한 곳이 있지만 이마저도 조만간 봉쇄될 국면에 와있다. 심지어는 관급에서 투입된 ‘알바 ’에 의한 여론공작이 너무 치열하게 그리고 빤히 보이게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데, 이것은 토론이란 형식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보면, 한 편의 코미디보다 못한 광경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엉터리 작업은 인터넷을 통제하겠다는 목적 하에 마구 진행 중이다. 실명제를 통한 접근은 차치하고 정부기관의 공무원들이 일반의 포탈 접속을 금지하는 형태까지 10월 1일부터 광범위하게 시행되었고 보면, 일단 한국의 친일정권이 ‘진실의 확대 양산 보급 ’에 얼마나 민감하게 움직이는가를 엿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조급증이 드러난 셈이다. 그들은 이를 ‘루머 ’로 취급한다. 결국 빈대 잡으러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빈대가 무서우니 초가삼간을 태워야겠다는 식으로 접근한 셈이 된다.</p>
<p>정치의 언어들도 엇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국민이 공감하는가 아닌가를 따지지 않고 국민과의 대화라는 루즈벨트 노변정담 식의 대통령 라디오 연설이 등장하는가 하면, 여전히 청와대는 국민 여론과는 동떨어진 소견을 발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대단히 일방적이다. 국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이미 국민대표로의 기능을 완전히 잃은 채, 친일 정권수호와 친일의 가치유지, 그리고 그에 반하는 모든 세력을 좌파로 몰기에 급급해 있다. 이 또한 뭔가 조급하다는 걸 보여준다. 그토록 많은 초선의원들 가운데서도 제대로 당파정치를 벗어난 인물이 보이질 않는다. 공천이란 과정이 곧 친일심사였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p>
<p>정치계가 죽은 상태에서 정권은 청와대와 친일세력이라는 정치세력의 손에서 거의 대부분의 결정이 내려지는 현상을 보인다. 기형적이다.</p>
<p>더군다나 공권력을 이용한 이러한 스탠스 자체의 강력한 유지를 희망하면서 경찰, 검찰, 법무부를 넘어서 감사원까지도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하게 되는 모양이 번지는 추세다. 권력이 어떤 용도로 군림(君臨)을 선택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거기에 30%라는 지지율을 여론조사 기관을 통해 만들어 낸다. 통계는 조작되었는가, 아닌가? 아무도 알 도리가 없다. 그에 대한 신용도는 전혀 재검토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점의 적절한 지지도, 그것으로 이 작업은 무조건 추진된다.</p>
<p>이에 저항하는 민심은 미약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대부분 국민은 이미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극대화되는 추세로 접어들었다. 어떤 이의 표현처럼 ‘(총알이) 빈 총으로 쏘면 뭐하나! ’는 식이 된다. 지독한 냉소(冷笑)다. 대응과 저항이라는 수단 보다는 ‘무시(無視)와 조소(嘲笑) ’를 선택하지만 이 또한 공권력 플러스 관변 언론에 의해 외부로 발현되지 못하고 좁은 공간에서 강하게 포획되는 양상도 나타난다.</p>
<p>대의민주주의와 집권세력에 의한 개념적 정치가 아니라 정권의 속성에 의한 흐름이 자리했다. 그것이 바로 ‘친일의 재구성 ’을 넘어서는 ‘친일의 완성 ’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비록 보수적 관점을 통한 ‘잃어버린 십 년의 청산 ’이라는 구실이 있지만, 그보다는 저변의 속성을 드러내놓고 펼치기 위한 의도를 감추지도 않는다.</p>
<p>버락 오바마의 당선으로 끝난 미 대선의 결과에 유별 난극우파 지식인으로 불리 다가 ‘컬트 친일 ’로 깊숙하게 빠진 조갑제의 거의 발작에 가까운 변명도 사람들에게 비웃음꺼리가 되었다. 그는 훼절도 아니거 니와 신념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최근에는 언론인이 아니라 거의 개그맨 취급을 받는다. 역시 정치와 정치계보다는 정치세력을 위주로 한 정권이 유지된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에 속한다.</p>
<h3>5. 대한민국의 그림자 정부<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6" title="toc_6" class="anchor" id="toc_6">#</a></sup></h3>
<p>김진홍이 다시 ‘대운하 필요론 ’을 들고 나왔다. 전날 11월 4일 추부길은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 GD P의 30%가 건설 업을 통한 것이라면서 대운하의 당위를 역설하려고 했다. (이건 사실이 아니다. 2007년 기준 실질부가가치 기준으로 따진다면 총 부가가치 798조 중 건설업은 52조, GDP 대비 건설업 비중은 6.5%에 불과했다.) 그걸 지원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대운하 관련주들의 주가 상승현상도 나타난다. 소식이 빠른 자들의 입을 통해서 대운하가 현 국제경제 위기로 인해 초래된 경제침체를 해소할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도 번진다. 버락 오바마가 루즈벨트 식 건설경기 부양을 할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루머도 퍼진다. 자기 이익이 걸린 대목에서 시장은 아주 과민하게 반응한다. 정권의 행태를 믿는 측에서는 이걸 기회로 보는 사람, 기업들 그리고 투기꾼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증거다.</p>
<p>한국이 라는 하나의 사회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는 주체 가 아닌 현재의 정권을 지탱하는 몇 개의 축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중이다. 앞서 지적된 정치세력이 정치 그 자체를 앞서가며 리드하면서 생겨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사실상 숨겨져 있거나 아니거나 간에 정권의 본질이라는 걸 명백하게 보여주는 상태다. 그 현상들을 개략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정권의 본질은 친일이며, 친일 세력의 온상은 일단 뉴라이트 집단으로부터 출발되고 있다. 그들이 바로 ‘친일정치세력 ’이자 곧 ‘친일매국세력 ’에 해당한다. 기준점은 여기로부터 두어야만 한다. 이들이 정치세력이면서도 이권세력이며, 침탈의 기본 앞장을 서는 사적 이익에 목마른 자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li>
<li>둘째, 기독교 보수단체, 기업형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결집한 종교를 포장하고 내세우는 개별이익 집단이 뉴라이트와 결합하고 있다. 당연히 이들에게도 이익이 있다. 금권은 항상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라는 의미다.</li>
<li>셋째, 정치집단이 이러한 움직임을 자신들의 정치배경이나 혹은 정치적 후원자가 아닌 동일한 노선으로 착각하거나 무작위 수용하는 상황이 깊어진다. 그 점은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는 뉴라이트를 자신들의 홍위병으로 간주한다. 오히려 이들을 통해 ‘국민 ’의 범주를 ‘그들끼리 ’로 제한시키려는 움직임을 강하게 편다. 이것이 이른바 ‘네트워킹 ’이다. 그러나 매우 제한적이며, 작위적인 구성을 한다. 거기에 전 국민이라는 요소는 없다. 즉, 민초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li>
<li>넷째, 뉴라이트와 기업집단 간의 결합을 통해 경제집단과 대기업 중심의 친일화를 우익화로, 기존의 질서를 모두 좌편향화로 몰아가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기업은 자본주의 교육의 확산을 들먹이며 좌편향 교육의 문제점에 직접 개입코자 한다. 이미 기업이 아니라 정치세력이다. 이들이 경제위기를 통해 얻게 되는 이익은 강력하다. 매우 포괄적인 이른바 ‘빨아들이기 ’가 성행을 할 것이다. 기업구조가 재편된다. 그러면서 그들을 다시 네트워킹화 한다.</li>
<li>다섯째, 관치금융과 건설경기 부흥 등 일련의 경제개선 대책이 대운하, 해저터널 등 일련의 밀어붙이기를 위한 당위를 구성하기 위해 활용되는 흔적이 노골화된다. 그를 위한 금융 관련조직의 장악에 골몰한다. 필요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는 중이다. 은행 길들이기로부터 정치가 개입한 금융의 구조재편은 이루어진다. 한국은행마저도 이제는 관치금융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과 재경부의 싸움과 갈등은 과거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추악하게 보일 정도다.</li>
<li>여섯째, 서민경제의 침탈 현상을 방관하거나 혹은 무시하고, 중소기업 대책마련 보다는 기득권 층의 이익유지를 보장하는 수순을 선택하면서 향후 정책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이들은 국가라는 요소에서는 ‘개미 ’로 취급된다. 더 이상 사회의 중추 운운하는 것은 입 발린 소리에 불과하다. 결국 기득권이 피기득권의 권리마저 강탈하지 않고는 성립하지 못한다는 논리가 적용된다.</li>
<li>일곱째, 교육개편을 서두르는 중이다. 역사교과서의 개편에 대해 교과서 집필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려는 성향이 높아가고, 교육의 질을 거론하면서 중고등학교의 무한 경쟁을 유도하려고 한다. 당연히 교과 서의 좌편향을 지적하면서 친일요소의 당위인정을 시도하는 끈질긴 모색이 이어진다. 내일에 대한 두려움은 그들에게 교육에의 집착을 부른다. 의식화가 달리 의식의 주입이 아니라, 그들의 당위를 인정하라는 교육으로 발전하는 셈이다.</li>
<li>여덟째, 민심의 저항을 억제하기 위한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는 중이다. 언론 방송의 장악은 물론이고, 이를 통하여 국민을 계몽차원으로 이끌고자 하는 시도를 집중하고 있다. 이것은 강압적 사고주입과 회유, 그리고 압박과 수용에 대한 강요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민초의 나약함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li>
</ul>
<p>이러한 사태는 이들이 단순하게 정치세력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성을 동반한 것임을 알려주는 확실한 징후 다. 사실상 정권 초반기부터 이러한 경향은 노골적으로 보였지만 경제적 위기라는 명분으로, 또한 이를 극복한다는 미명하에 민주주의적인 논쟁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움직임이 심각하게 진행된다.</p>
<p>누가 이러한 시도를 주도하는 것일까?</p>
<p>청와대는 이 모든 일의 주범(主犯)이다. 권력의 정점에서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요소를 뛰어 넘어 친일을 통한 사회장악의 지향점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강만수 재경부 장관에 대한 교체요구가 한나라당이라는 여당 내에서조차 강하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계속 거부한다. 벌써 몇 차례인지 모른다. 그러나 강경하게 거부한다. 이유가 있다. 그걸 곧이 들을 사람은 없다. 실패에 대한 인정여부가 아니다. 그것은 목적의 차이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정치적 결정의 맨 꼭대기는 청와대 와 친일정치세력이 라는 것이다. 그들의 목표와 목적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현되는 중이다.</p>
<p>그곳의 결정구도는 밖으로 알려지지 않지만 거의 일인주도형이라는 것은 여러 모로 드러난다. 즉, 형식적으로는 MB의 독단결정이라는 것이다. 그의 의사는 이동관 대변인을 통해 나오지만, 민심을 고려한 흔적은 크게 발견되지 않는다. 막무가내 밀어붙이기 식은 어떠한 경우에도 개선될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 우둔함으 로가장한 것 같기도 할 정도다. 그러나 몹시 날카롭다. 들이대는 칼날의 예기(銳氣)가 만만치 않게 보인다.</p>
<p>정치계가 술렁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것이 전형적인 ‘독재 ’의 유형으로 고착화되는 걸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게 반대의 말을 못한다. 즉, 여당 또한 여당의 기능을 하기 보다는 MB와 그 측근의 정치세력 가운데 하나로써만 극히 일부분적 기능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것이 한 사람의 고집만으로 구성되는 것일까 판단해볼 여유도 없다. 눈과 귀가 막힌 것도 아니며, 오히려 더 많이 열려 있다. 단지 듣고 보는 것을 제한적으로 하고 있을 뿐이라고 여겨진다. 철저한 인지부조화 상황이 이어진다.</p>
<p>묘한 사건 하나가 눈에 띈다.</p>
<p>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이 10월11일 한일 경제인 제2차 비즈니스 서밋 라운드 테이블(BSR)에서 ‘한일해저터널을 뚫자 ’고 치고 나왔다. 그런데 그 명분이 조금 우스웠다. 그의 발언대로라면 ‘관광 ’이 그 목적이다.</p>
<blockquote>
<p>“한일 양국간 관광 교류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방안이 필요하다 ”, “한일 해저터널이 앞으로 한중 해저터널과 연계된다면, 중국과 러시아 등 동북아시아 전체는 물론 향후 유럽과도 연결해 유라시아 대륙횡단의 대동맥이 완성될 수 있다. ”</p>
</blockquote>
<p>예상한 바이긴 하지만 박삼구의 이 발언은 오래지 않아 청와대의 적극 검토로 이어졌다. 꼭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냄새를 풍겼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이것을 정책적인 박자 맞추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늘 이런 패턴은 존재했다.</p>
<p>일본에서는 수백 편 이상의 해저터널 논문이 지난 60~70년대부터 생산되었다. 일제시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정작 한국은 이 관련 논문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통일 이전과 이후를 감안한 명쾌한 분석조차 없다. 즉, 미래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국가영토를 대상으로 한 논란이 이렇게 어이없이 벌어진 셈이다. 이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발전해 간다. 한국의 제1위 건설사인 대우건설을 가진 금호가 하겠다고 하고, 한화 등도 그에 참여할 기세다. 막을 자가 없다. 거기에 정권이 바로 바라는 바다. 10월 31일, 청와대도 검토하자는 이야기를 내뱉는다. 결국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골이다. 이미 먹물이 말랐다는 의미인가.</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36" height="218" width="279" style="float:none;margin:0;" /></p>
<p>(한일해저터널, 일본은 이미 몇 십 년에 걸쳐 수백 편의 논문을 내놓을 정도로 집요하다. 그러나 한국은 학술적 검토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정치적 결정으로 갈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박삼구-청와대로 이어지는 ‘죽이 잘 맞는 ’한 수가 진행 중에 있다. 참고로 해저터널을 뚫기 위한 기술은 대부분 일본이 한국보다 몇 년에서 수십 년 앞서 있다. )</p>
</div>
<p>그런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과연 “나는 친일을 하겠습니다 ”라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1935년 이후 일본의 애절한 숙원사업인 한일해저터널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p>
<p>박삼구는 당시 “조만간 일본의 도요타 본사를 가보고 싶다 ”며 도요다를 벤치마킹 하겠다는 의사를 도요다 조 후지오 회장에게 표명했고 그는 이것을 받아들였다. 이 발언을 두고 그 스스로도 멋쩍었는지 금호그룹은 ‘도요타의 선진 경영기법에서 경영아이디어를 얻겠다는 차원에서 이번 제의를 한 것으로 안다 ’는 사족 같은 해석까지 내놓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었다. 거꾸로 해석하자면 경영기법을 배우자는 뜻이 아니고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밝힌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p>
<p>지난 9월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시장에서 유동성 위기를 둘러싼 위기감이 극대화 되고 있었다. 알짜배기 기업인 금호생명을 매각키로 했다고도 했었다. 오죽했으면 10월 3일 박회장이 직접 나서서 유동성 위기는 없다고 일축하기까지 했다. 금호는 대우건설 인수 시 과도한 풋백옵션으로 사실상 유동성 위기가 있다고 시장이 판정하였던 기업이다. 그런데 이 해저터널 발언 이후 금호에 위기가 있다는 이야기는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친일 하겠다 ’고 총대를 멘 대가치고는 큰 것이었던 모양이다. 상대가 조 후지오, 즉 친일의 사냥개인 뉴라이트 집단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후원하는 도요다 회장이었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그 이면을 짐작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p>
<p>2002년 7월 폐암으로 사망한 그의 형 박정구 회장은 민족주의자 그룹에 속한다고 해도 좋을 만큼 ‘의’(義)를 중시하는 경영을 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는 “외형만 부풀리는 거대기업보다 의로서 기업윤리를 철저히 지키며 사회에 봉사하는 알찬 기업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라는 자신의 경영철학을 밝힌 적도 있다. 국민, 기업, 정부, 학계, 언론계 등이 5위 1체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과 함께 그의뒤를 이은 동생 박회장이 그룹의 경영위기 상황에서 선택한 길이 ‘친일의 선봉 ’이 되었다는 사실이 눈물겹다. 민족주의자와는 아예 거리가 먼 장사치의 한 수였다고 평가되어도 무방하다. 영혼을 팔아버린 장사꾼 말이다.</p>
<p>대우건설은 작년 금호로 인수되기 전에 북한과 해주만의 조력발전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호에 인수되고 난 이후, 이 논의 자체는 진행 되는 중에 중단되었다. 작년 대선 이후의 일이다. 당시 금호라는 그룹이 가진 대북사업에 대한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 한의 예가 있었다. 어렵게 입수했지만, 아래의 초청장은 하나의 ‘현실 ’을 엿볼 수 있다. 즉, 그들은 아직도 북한의 공식명칭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박정구 선대 회장 생각이 난 것은 금호아시아나 그룹이라는 회사가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기업 본래의 의미를 살리는 것보다는 철저하게 생존일로를 걷게 되며, 그 중에서도 친일을 수용하는 것도 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이것은 경제협력과는 다르다. 괜시리 국제화를 운운하는 비난과 다른 이유기도 하다. 의식의 기본, 한국에서 민족기업이라는 말은 이제 버려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22" height="819" width="600" style="float:none;margin:0;" /></p>
<p>(‘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란 북한의 공식국호를 ‘조선인민주의공화국 ’으로 표기했다. 이 레터는 폐기되었 는지 모르 지만, 그 자료로는 남았다. 금호는 이 사업을 추진하려다가 작년 대선의 결과가 나오자 마자 슬그머니 중단했다. 정치적으로 강한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p>
</div>
<p>사실상 이 프로젝트는 프라임 그룹이 먼저 시작을 했었다고 알려진다. 그룹 내 팀을 두고 시화호 조력발전소에 설계시공에 참여하는 그룹 산하 ㈜삼안, 프라임건설 등이 이 사업을 주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또한 대선 이후 사업을 포기했다. 두 그룹 다 호남기업이었다. 그들은 아마도 정동영에게 대단히 신경을 기울였을 것이지만,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새로운 정권과 줄을 대기에 여념이 없었다.</p>
<p>프라임그룹은 김대중 정권부터 사세를 확장했었다. 금호그룹과 함께 규모는 차이 나지만 호남의 양대그룹이라고 불릴만 했다 고 평가한다 . 그러나 11월 4일 그룹의 백종헌 회장은 전 국세청장 이주성에게 싯가 19억 상당의 아파트를 대우건설 인수 뇌물로 공여했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 되었다. 금호와 프라임은 서로 엇비슷하게 경영을 이끌었다. 금호가 대우건설을 인수하자 프라임은 동아건설을 어럽게 산하에 두기도 했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둘 간에는 묘한 경쟁심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 었고 사업 확장의 패턴도 유사했 다. 둘 간은 실제광주출신의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p>
<p>2008년 한 사람은 인수에 실패했던 ‘대우건설 ’로 인해 구속되고 다른 한 사람은 무리했지만 인수에 성공한 ‘대우건설 ’을 앞세워 ‘친일 ’을 외치면서 살아나는 형세다. 한국에서 기업의 생존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아주 강하게 대비되는 둘의 모습이다.</p>
<p>과연 한국의 현 정권은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를 따져보면, 앞서 거론된 정치세력과 종교성으로 포장된 개별집단, 그리고 사적 이익을 위한 개인이 똘똘 뭉친 상태라는 것이 정설이다. 각기 결합되기 어렵게 보이는 이들이 어떤 연고를 통해서 이렇게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는가? 이것을 살펴보는 것이 실제 한국에 들어선 친일정치세력의 움직임과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동향과 변이방향을 살펴보는 데는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한다.</p>
<p>그들 스스로는 이것을 ‘우파 네트워킹 ’이라고 부른다. 지난 십 년을 좌파세력이라고 규정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집단과 세력을 구성한다는 의미가 붙었다. 그런데 이 세력에는 묘한 기류 하나가 공통으로 흐른다. 그것은 바로 ‘친일 ’이다. 또한 자신들을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좌파 ’로 몬다. 그들의 내부에 속하지 않는 모든 대상이 적이라는 관점에서 조명되는 것도 발견된다. 단순히 ‘뉴라이트 집단 대 반대세력 ’이라는 것이 아니다. 친 이명박 대 반 이명박이라는 구도도 존재한다. 물론 반 이명박이라는 관점에서는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친이계, 친박계, 중도계라는 기묘한 삼각편대도 있지만, 이들이 외부에서 기능하는 데는 친 이명박, 친 정권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그들은 아직까지 한 몸이고 여전히 그들에 저항하는 무리들은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형세다.</p>
<p>공무원만 영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교육, 법조, 학술, 사회단체, 개인 등을 가릴 것 없이 친반 이명박이라는 구도 속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편가르기가 본격화되고 이를 통해 세력재편을 하는 양상 까지도 엿보인다. 그래서인지 뉴라이트는 ‘시대정신 ’이라는 이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바로 ‘뉴라이트=친일 ’이라는 정의가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각인되는 상황을 살짝 피해보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명목은 재정비다. 다시 뉴스타트하겠다는 것이니 언제나 ‘New ’는 붙는다. 이른바 ‘도마뱀 꼬리 자르기 ’수법이다.</p>
<p>이 세력을 홍위병으로 , “화합과 선진화를 위한 역할을 기대 ”(MB 뉴라이트 3주년 축사) 하는 것이 바로 정권이다. 바로 정치계가 기능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이고, 이를 감싸고 있는 것이 바로 청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 정치세력이 현재 한국 정치의 중심축이 되어 있다 봐도 무방하다 . 이들은 거의 무소불위 하게 사회 국가 전반에 걸쳐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p>
<p>기준이 간단명료하다는 점에서 이 세력을 일부의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리석게 보인다. 이들이 차지하는 각 요소는 한국 사회의 중추를 이룬다. 즉, 정부, 기관, 산하단체, 기업 할 것 없이 광범위한 연대를 자랑한다. 통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또 그들끼리 뭉친다. 물론 일정 시점에서는 분열도 드러난다. 그러나 이것은 대체로 겉보기와는 달리 노선 싸움이 아니라 이권과 세력을 둘러싼 내부투쟁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들끼리도 서로 다툴 요소가 나타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정권 내의 기득권을 두고 나눠먹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그들이 지금 자신들을 ‘실세 ’라고 스스로 판정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p>
<p>특이사항은 이들의 입에서 일본은 타도의 대상도 아니며, 그렇다고 멀리할 상대도 아니라고 본다는 것 은 아주 강하게 각인된 상태라는 점이다. 일고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이들은 ‘일본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는 말을 자주 한다. 박회장의 경우는 (도요타로부터) 배운다는 걸 넘어서 아예 일본 제국주의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목을 멘 숙원사업인 한일해저터널을 (관광 때문에) 하자고 나섰다. 뭔가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걸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이런 차이를 잘 느끼질 못하는 모양이다.</p>
<p>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최근 거제도와 경남 일원의 땅값이 오른다고 할 정도다. 예정된 터널 루트 A에 해당한다. 그 루머가 채 퍼지기도 전에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은 슬그머니 정계로 복귀했다. 한나라당의 브레인 집단이라는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직책이다. 마치 지역과 정치 토호세력과 야합 같은 결합 을 하듯이 정권은 지난 정권과의 유대감을 이렇게 보였다. 그런데 그것도 묘하게 이 시점에 건설 프로젝트이면서도 일본이 소망하는 해저터널과 직접 관련이 있 어보인다. 이게 친일인가, 아닌가?</p>
<p>이런 조절은 누구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일까?</p>
<p>지금으로써는 한국 내에서 결정자는 MB 본인이고, 기획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드러난 조정자는 있다. 이상득, 김진홍 같은 자들이다. 한일의원연맹까지 제대로 가동하게 되면 그 때 가서는 보일 지도 모른다. 이상득은 그 연맹의 의장 으로 선정되었고 조만간 일본에서도 취임식을 겸한 한일간의 미팅을 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상대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다. 아주 강력한 극우와 우익주의자기도 하며, ‘천황주의자 ’다.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해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시스템에서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주장인가에 그 성격이 달린 것이니까. 일본 정치계의 ‘친한파=일제강점 옹호론자 ’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 자리는 이런 저런 일들을 모두 조정하는 계기가 될 거라는 것, 그건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p>
<p>오늘 한국에는 분명 정권의 그림자가 아니라 정권까지도 쥐락펴락하는 그림자 정부가 존재한다. 그들의 모습은 간단하게 보이지만 사실상 매우 복잡하다. 그리고 그들의 속성이 사냥개이며, 당연히 사냥꾼이 존재한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배후는 일본 극우나 우익 수준이 아니라 더 큰 세력적 차원의 종합적인 기획이 있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조절자가 서울에 있을 뿐이지만, 그로 인해 직간접인 정치, 경제, 사회적인 압박인 실질적 협박이나 회유 까지 당하는 기업이나 개인도 많게 보인다. 정권이 가진 힘을 여실히 드러낸다. 지금은 아주 나쁜 본질을 지니고 있는 ‘친일 ’이 확실히 한국 사회의 대세로 자리잡 아 가 고 있다.</p>
<h3>6. 小日本論<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7" title="toc_7" class="anchor" id="toc_7">#</a></sup></h3>
<p>‘일본식 ’이라는 보편적 일본의 특징과 그를 통 해 경제적으로 발전한 표면적 형세나 성과 측면에서 볼 때, 일본의 사회구조 유지의 현상은 언뜻 대단히 강점이 있다 고 평가된다 . 그들에게는 다테사회(縱社會)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현상과 기질이 있고, 그것을 관리하는 주체들 간에도 매우 조밀할 정도의 유대감을 유지한다. 이른바 오야붕 꼬붕 같은 일종의 위계질서다.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하부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보자면 꼭지점의 의사는 하부로 빠르게 전파되고 통일되는 양상이 있다.</p>
<p>그에 비해 한국사회는 약간 리버럴하다. 일사분란 한 맛은 군대라는 조직에서나 다른 여타의 조직문화에서 있기는 하지만 일본과 비교했을 때 는 어딘가 모르게 차이가 난다. 일본 이란 이미지와 가장 유사한 형태는 바로 독재권력 하에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 다. 조직적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럴 지도 모르지만 유사점은 있다.</p>
<p>일본이 일왕을 중심으로 입헌군주 체제를 유지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여전히 일본 사회를 세력으로 지배하는 군주제의 숨은 그림자가 존재한다. 그래서 암묵적으로 세력이 지배하는 구도는 일본의 복잡한 정치적 형세에도 불구하고 배후조정에 있어 매우 기능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거기다가 일본은 국가신도 체제 이후 신사(神社)라는 형식의 종교성을 띤 시스템이 일반 국민에게 광범위하게 하나의 체제 와 틀 로 각인되어 있고, 그 정점에도 마찬가지로 일왕을 앞세운 세력이 있다. 이들이 사실상 일본을 암중 지배하는 구도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일본을 안다고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30" height="273" width="280" style="float:none;margin:0;" /></p>
<p>(일본 국내의 의사결정 구도다. 여전히 일왕은 형식 속에서도 파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를 상징적 개념의 입헌군주라고 보는 각도에서는 ‘그’의 주변에서 이런 시스템을 관리한다고 판단들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보여지는 숱한 증거들이 있다. 오히려 이렇게 주축을 형성한 상태에서 횡적 결합의 장[場]이 여러 갈래로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극우와 우익, 그리고 전통적 제국주의 팽창주의 세력, 그 환경에서 성장한 기업, 개인 등이 모두 이러한 함수 속에서 연동된다. 여기에는 아주 강한 이면이 작동한다. 그것을 놓치는 것은 일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란 나라의 겉가죽만 훑어본 것이다. )</p>
</div>
<p>한국이 일본과 같은 형식을 띠지 않게 된 데는 먼저 1945~1948년간 미국에 의한 신탁통치기를 거치면서 일본식이 아닌 미국식의 사고가 혼합된 전례에서 찾아지기도 한다. 그 이후에도 일본의 잔재 로서의 기득권 문화라는 형식은 있었지만 사회 국가 전반에서 제대로 흡수 가능한 계기 까지는 형성하지 못했다. 거기에는 한국 국민성과 역사성, 정체성, 전통성이 차지하는 암묵적인 위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해방 초기 백범 김구 선생으로부터 몽양 여운형 등 다양하게 민초들에게 의식적인 민족주의를 심어준 정신적인 지도급의 인물들로부터 기인되는 것이기도 하다.</p>
<p>왜 독재라는 형식이 일본의 사회 시스템과 유사성을 가지게 되는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찾아진다. 첫째, 피라미드 형 수직적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상명하복이라는 원칙, 기득권이 하나의 축으로 작용하면서 하부를 관리하는 체제가 구성된다는 의미다. 둘째, 이를 통하여 의사전달의 구도 자체를 간단명료하게 한다. 즉, 민주주의라는 개념에서는 다양한 횡적 교류와 집단 간의 의사교환을 통한 수정과 보완이라는 절차를 거치지만, 독재 하에서는 상급의 소수에 의한 결정이 곧 사회 전체의 집단의사로 적용된다.</p>
<p>이 유형과 시스템에서 기득권이 일본식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그 상태에서 일본에 대한 막연한 동경(憧憬) 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하부를 다스리는 상태에서 거칠 것이 없고, 또 전체를 이끌고 나간다는 선민의식(選民意識)이 강하다 못해 고착 관념으로 쉽게 뿌리를 내린다.</p>
<p>이런 사고는 ‘자유나 민주 ’라는 발상법을 시스템의 방해자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러므로 개혁은 자신이 의도하는 방식이어야만 하고, 논쟁 속에서 나오는 것보다는 소수에 의한 주도(主導)가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만든다. 전형적인 파워 엘리트주의지만, 이것은 지적 엘리트가 아닌 권력 엘리트만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민주 ’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p>
<p>한국에 들어선 친일정권은 이러한 경향에 함몰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 베이스도 바로 ‘친일로부터 바라본 일본 ’이 있다.</p>
<p>우선 지도층이 선거라는 형식에 의해 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피라미드 상부의 정점과 그 주변이라고 판단하는 경우다. 대의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정치인은 선출된 상태에서는 부여 받은 직위를 통해 그 위임권을 임의로 백퍼센트 행사 가능하다는 식이다. 거의 군주(君主)라는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대통령은 곧 왕권의 소재를 가진 듯 행동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무위원의 최상급이 총리가 아니라는 것이다.</p>
<p>그래서 독재는 이 의식을 토대로 해서 국민을 계몽하거나 길잡이를 두더라도 다스릴 대상이라고 본다. 즉, 민주주의 자체를 선거를 진행 하는 상태에서만 인정하고 그 이후부터는 민주(民主) 는 옳으나 권리 행사 는 모두 이양된 상태로 가늠해버린다.</p>
<p>이것을 모순으로 인식하는 자기 여지가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독재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이 헌법적인 대의민주주 의로는 인정하나 위임권 의 소재가 결정되면 바로 주권이 넘어왔다고 인지하는 발상법이다. 그것이 MB의 최고경영자론(CEO론)이다. 단순히 회사의 경영진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있고 그렇게 왜곡되게 의미가 덧보태지면서 변이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p>
<p>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일단 그 논리나 혹은 어떠한 당위를 따지기 이전에 ‘저항 ’(抵抗) 으로 인식한다. 토론의 여지보다는 위임권을 행사할 자격이 없는 데도 그렇게 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이것은 정권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즉, 정권 또한 대통령과 여당이라는 형태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순간, 이것을 권한 위임의 범주에서 파악하고, 그 상태를 기준으로 집권을 실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선을 긋는다.</p>
<p>그러나 그들 스스로 이를 독재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능력에 대한 자기 인정이며, 나아가 상위에서 하위를 계몽하 고 이끄 는 것만이 자신의 본분이 며 권리 라고 본다. 그런 가운데 사적 이익이 개입되는 경우조차 당연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 정치에서 독재가 가진 독소적 현상이며 현 정권이 가진 특질이다.</p>
<p>이번 정권의 특이점은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보태진다. 바로 정치계가 아닌 ‘정치세력 ’이 독재의 우위를 유지하는 홍위병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여타의 공적 정치세력과는 다르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정치적 실체와는 다르게 이들은 선거에 기여한 측에 속하지만 정권에서는 이들이 실세가 된다.</p>
<p>이들이 대체적으로 거의 대부분 수용하고 배우는 시스템은 바로 ‘일본 ’이다. 이를 그들이 ‘친일 ’이라고 보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배움으로써 그들은 일본식 다테 사회를 만들어서 그를 통해 사회 국가를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했다. 그리고 사회 저변에 대한 장악이 바로 일본의 우경화와 같은 사회의 중추 트랜드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길이라고 믿는 구석도 있다.</p>
<p>이것을 그들은 ‘지난 십 년의 청산 ’이라고 부른다. 바로 우파적 관점의 잣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바로 ‘친일의 본색 ’에 해당되기도 한다. 좌파 우파의 구분도 아니며, 진보와 보수라는 것도 의미가 없다. 단적으로 이것은 ‘친일 ’이며 ‘모방일본 ’의 범주에서 보는 게 타당하다.</p>
<p>지향하는 모델이 그 쪽이다 보니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나타난 사회 현상이 과거와는 다른 형태이면서도 60~70년대 형 독재와 흡사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상 이 분위기는 개발연대의 독재에서 보았듯이 무엇인가 ‘기대 ’를 낳게 하기도 한다. 바로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부분이다. 그러나 본질이 많이 다르다는 것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느끼게 된다.</p>
<p>그들 내부에서조차 이것을 모방하는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과거 ‘개발독재 ’의 유형이기도 하지만, 정작 다른 점은 일본을 단순한 협조자가 아닌 ‘배워야 하고 따라야 할 선진적 기법을 가지고, 또한 선진국이 된 국가라고 인식하는 ’상황이 나타났 고 이를 일정 수준에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끌어들인 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에서 당연히 반발할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체성의 상실을 불러올 수 있을 정도로 과도한 ‘친일행각 ’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어할 방법은 없다. 이미 그 수준으로 가자고 목표를 설정한 상태이다.</p>
<p>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이것에 반항하면 모두 선진화에 위배되며 방해꾼으로 사회 후진을 자초한다고 평가해 버리고, 그들을 ‘좌파 ’로 모는 수밖에는 없다. 이 또한 과거 친일세력들이 해왔던 ‘반공과 좌파, 빨갱이 논리 ’의 차용인 셈이다. 이에 다른 세력도 또 필요하다. 당연히 밀어붙이는 세력의 형성도 그 부류에서 이루어진다. 편가르기가 강하게 진행되고 ‘그들 과 그들끼리 ’외에는 모두 통제의 대상이 되어 버린 다.</p>
<p>이렇게 ‘따라 쟁이 ’가 되는 걸 두고 붙일 수 있는 별명이 ‘소일본(小日本)을 지향하는 정권 ’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런 정권이며 정치계, 정치세력이 판을 치는 것이 오늘 MB정권이라는 정의는 전혀 틀림이 없 다. 여기에는 ‘나를 따르라 ’는 이야기는 있지만 ‘따르지 않는 것은 부질없는 반항 ’이라는 첨언이 있게 된다. 즉, 아주 강력한 이분화의 구분법이 적용되고, 나아가 이것을 고착화시키는 것이 바로 사회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실제 인정하는 인식 도존재한다.</p>
<p>MB 인식의 첫 모순이 드러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그에게 일본은 언제나 선진 모델이며 국가 시스템이다. 그에게는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 집단으로 일본의 세력을 흠모하는 마음도 엿보인다. 피라미드의 꼭지점이 저러니 그 주변과 친위세력들은 더욱 힘이 난다. 그들은 본디 사적 이익이었건 관념 자체가 그랬건 간에 친일의 사냥개였고, 친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그 것을 받아 들이지 않거나 못하는 세력들을 경계 하고 처분 할 임무가 주어져있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공격도 전개한다. 옳다고 믿거나 혹은 그를 통해 얻게 되는 그들 개별적인 이익이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도 이렇게 얻는 것이 있다. 바로 금권이며 기득권이다.</p>
<p>그들 세력 내부에서도 갈등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어떤 저항이나 반항에 있어 이들 은 스스로를 하나의 내부로 보고, 다른 쪽은 모두 외부로 생각해 버린다.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분산을 위해서 적절한 배분만 하면 그만이라는 판단도 있다. 동조하지 않는 국민은 모두 그들의 외부에 위치하는 존재이고, 그들의 내부로 들어온 세력만이 순수한 협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내부에 위치한 어떤 사람의 비판도 수용하지 않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진실한 보수주의자의 사회비판마저도 그들에게는 일고의 수용가치가 없다고 잘라버리는 단호함도 엿보인다.</p>
<p>여기서도 일본은 아주 강하게 그들의 위치매김을 지원하는 모델이 된다. 그래서 일본의 이야기를 받아 들이고, 그를 따르고자 배우고자 한다는 이야기가 그토록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것이다.</p>
<p>그런데 이렇게 하는 중에서 기존 한국이 가진 사회의 전통성과 정체성과 끊임없이 충돌을 벌이게 된다. 왜냐하면 바로 일본에는 없는 분단역사 와 그에 파생되는 민족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쉽게 지울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고유(固有)한 형세로 자리하기 때문이지만, 시간이 아직도 그들이 의도하는 수준으로 흐르지 않 았거나 또는 그들의 방식이 완전히 먹히지 않아 현재까지는 제대로 희석 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그러나 시도는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교과서 파동은 대표적인 예다.</p>
<p>당연히 ‘통일 ’, 그 가운데서도 민족간의 통일이란 개념 은 반드시 논의에서 제거되어야 할 과제가 된다. 협의에 의해 진행되는 사안이 아니라 이것은 친일정권이 일본을 선진모델로 받아들이듯, 북한 또한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 현재의 모델과 형식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하나의 별개 대상이 될 뿐이다. 조건을 상정하여 배척하거나 또는 변화에 맞는 정책적 대응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 내부의 형식과 맞지 않을 경우, 절대 인정하지 않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게 된다.</p>
<p>대화를 하자고 해도 이 틀은 바뀌지 않으므로 상대에게 그 책임을 묻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바뀌었는데 너희도 바뀌어야 대화한다 ’는 명제다. 거기에는 대화제의와 정권교체라는 두 개의 양립되기 어려운 카드가 버젓이 겉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북한이 일본을 경계하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지만 이제 그것이 한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p>
<p>그러고 보면 한국의 현 정권은 일본의 극우와 우익이라는 세력을 모방한 정치세력이 재구성 되어 선출 한 기득권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 위임권을 부여한 상태에서 시작된 국민에의 군림 은 타당하다는 관점의 통치 양태 는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이것을 ‘소일본(小日本)의 타당성 ’으로 부르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p>
<h3>7. 100년 집권정당을 꿈꾸며<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8" title="toc_8" class="anchor" id="toc_8">#</a></sup></h3>
<p>공화당-민정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박정희 이후의 계보를 보면, 이들이 보수세력이라는 이름보다는 기득권이라는 명칭이 타당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이승만 정권의 친일수용 및 반공강화로부터 정치군인 시대를 거치면서 ‘반공보수 ’는 하나의 맥(脈)을 이어오고 있고, 그 이면에는 ‘친일 ’이 고개를 반쯤은 내놓고 숨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동안 드러나기 보다는 잠복해 있 는 쪽을 택했던 것은 국가 사회 내 유지되고 있던 ‘사회안전망 ’이 적어도 친일은 공개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꾸준히 민초들에게 각인시키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것은 매우 강력했다. 반독재와 민주 투쟁 속에서 의식화되고 각성한 일정한 세력들이 이를 뒷받침 했기에 장기간 유지가 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다.</p>
<p>그런데 이것이 90년대 중반 이후 변화할 조짐을 보이다가 IMF시대를 거치면서 마침내 ‘친일이 무슨 죄냐? ’라는 반문으로 터져 나오더니 이제는 그들 식의 공격 패턴인 ‘친일이 친북보다 낫다 ’는 형식을 갖추기에 이른다. 거기에 대의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고착 기조를 보인 개인주의와 결합해서 ‘경제살리기 ’라는 마술 (트릭) 에 걸려 들면서 마침내 친일정권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대통령 자리와 국회 의 다수의석 까지 모두 이들에게 고스란히 내어준 데는 친일보수언론들의 지원도 있었지만 사실상 야권의 이념과 가치유지의 실패 ,붕괴로 인한 것이 더 큰 몫을 차지한다. 단순한 착시현상이 아니라 실제 정치 자체가 빈곤한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확실히 보여준 판이 벌어졌다. 제어실패의 전형적 결과물이다. 이건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는 현상이다.</p>
<p>정치계가 붕괴되고 공개적으로 모습을 나타낸 ‘정치세력 ’은 확실히 ‘친일과 사적 이익(개별 이익) ’이라는 두 요소가 아주 강하게 결합했다. 기득권의 새로운 발전양상으로까지 보였다. 거기로부터 시너지를 얻기 위하여 공권력의 활용 극대화와 세력의 무한 확장을 진행 중이다. 물론 그 정치적 목표는 있다. 바로 장기적 집권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정치계를 통한 일정한 형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실제 꿈꾸는 것은 ‘그들 정치세력 ’을 통한 한국 사회 내의 장기적 세력장악이다. 그 점이 확연히 과거와는 양상이 다르다. 정치적 호불호가 아니라 지금은 전방위적인 세력화를 염두에 둔다.</p>
<p>언뜻 보기에 정치계는 계속 실패하는 듯 보인다. 여당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정권 초기에 악재가 겹쳐 제대로 못한 것이라는 자기 위안 이나 변명도 있다. 비난의 화살은 이어지지만 특별한 대책을 내놓기 보다는 어쩐 일인지 청와대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국회의 원 기능 자체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가 봐도 안다. 가다가 멈추고, 때로는 청와대를 위한 물타기를 하거나 혹은 아예 정치세력의 뒤에서 맴돌기도 한다. 누가 정치를 하는 지 모르겠다는 말이 그래서 튀어 나온다.</p>
<p>당연히 여당을 보는 눈길은 다시 청와대로 돌아간다. 비판이 터져 나온다. ‘그’개인에게로 향하는 소리들이다.</p>
<p>국정철학과 비전이 없는 사람, 품격 유지가 어려운 단세포적 생각과 행동에 익숙한 임기응변 인간형, ‘컴도저 ’가 아니라 포크레인에만 익숙해진 건설꾼, 국가경영 과개인 종교의 믿음을 혼동하는 미숙아, 어설프게 흉내 내는 독재형 리더십 등의 비판이 가세를 한다. 이건 지난 8개월 여 상황을 종합해본 분석에 해당한다.</p>
<p>과연 그런가?</p>
<p>나는 여러 차례 이것이 매우 단수 높은 행위의 과정이라는 지적을 한 적이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특히 목표를 가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정치 계나 청와대 가 그렇다고 해서 ‘친일정치세력 ’의 기세가 꺾인 바는 없다. 오히려 그들은 더욱 자신만만하게 사회 속에서 활갯짓을 치지 않는가.</p>
<p>사냥개의 특징은 변화에 기민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전후 좌우로 오가는 것은 목표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활동이다. 당연히 쟁취의 목적은 사냥감이다. 그러기 위한 페인팅 모션이나 적절하게 짖는 행위, 그리고 발 빠르게 위치를 선정해 나가는 순발력 등으로 사냥개의 등급이 매겨진다. 당연히 사냥꾼과의 호흡이 잘 맞는 훈련된 움직임이어야 한다. 지금 일선의 사냥개는 바로 ‘친일정치세력 ’이라는 것도 바로 이러한 행동양식에서 판단된 것이다. 그들은 때론 정치 속으로, 사회, 종교 안 으로도 숨어 버린다. 사회 전부가 그들의 은신처다.</p>
<p>하나의 간단한 시나리오를 이야기 해본다.</p>
<blockquote>
<p>“2008년 한국 경제는 일단 해묵은 문제로부터 초기 정책의 실패, 국제금융위기의 엄습, 기득권 계층 수호의지 고수 등으로 인해 전면적으로 붕괴상황까지 직면했다. 경제살리기는 물 건너간 개념이 되었다. 외환유동성과 화폐유동성 자체가 엉망이 되었다. 서민경제와 중소기업은 침몰하는 중이다. 이 상황에서 선택 가능한 방법은 대운하, 한일해저터널뿐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늘어난다. 이것을 선택하는 것을 전제로 경제회복을 위한 외자의 유입이 개시된다. 그 과정에서 협조자 및 구세주로 등장하는 새롭거나 그렇지 않은 세력들이 있다. 그들끼리의 단합이 역량으로 표출된다. 단순한 원화와 외환 간의 통화스왑이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알짜 공기업 매각 등을 통해 자기들만의 정권 가용 자본이 형성되고 이를 어디론가 재 투입하는 방식이 진행된다. 경제는 2009년 말을 정점으로 2010년 지표상으로는 완만한 회복기조를 보인다. 2010년 한일해저터널 착공식으로부터 일왕의 한국방문 등이 이어지고, 미국과의 FTA도 미국의 새로운 민주당 정권과 지루한 밀고 당기기 끝에 상당한 양보 끝에 본격적으로 진행 물살을 타게 된다. 정권 중반기를 넘어가는 시점, 한국 경제는 표면적으로는 완만한 회복세 를 어떻게든 포장하고 이 에 힘입어 정치권에서도 개헌논의를 부각시킨다. 성공한 대통령, 정권의 위상 속에 물밑에서는 아주 강력한 사적 이익 집단 간의 담합이 벌어지지만 국민들은 그들이 어찌 하건 간에 경제가 살면 그만이라고 자위하고 만다. 한편으로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노예근성이 확산된다. 친일정권은 성공했다. 그러므로 이제 친일은 대세가 된다. 친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동한다. ”</p>
</blockquote>
<p>‘친일의 재구성 ’이라는 제 1 단계 전략 이후 제 2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친일의 고착화 및 공고화 ’, 그리고 ‘친일대세론의 미래화 ’는 이렇게 구축될 개연성이 높아진다. 그 다음은 ‘친일구도의 완성 ’이다.</p>
<p>청와대가 부인하기는 했지만 11월 11일 영국 더 타임즈의 보도는 명쾌한 방향을 제시한다.</p>
<blockquote>
<p>“아키히토 일왕의 방문이 이와 유사한 사례(독일 브란트 전 총리의 경우처럼 사죄 이후 폴란드 방문)가 돼 한일 두 나라의 관계가 진정으로 전진 할 수 있을 것 ”으로 청와대는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초청의사가 아니라 그렇게 하자는 의미다. 언제 오는가? 2010년이다.</p>
</blockquote>
<p>이것은 개략적으로 본 것에 불과하다. 이를 위한 세부적인 현장기획은 지금도 꾸준히 세밀하게 벌어지는 중이다. 진행상태라는 의미다. 여러 부분에서 반발은 있지만 한국 국민성마저 고려되어 접근되는 이런 조밀한 기획 상태에서 이 구도를 국민들이 상식적 사고로는 빠져나가기 쉽지가 않다. 롤러코스트 국면에서 저항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효율적으로 제압하고 그 다음 단계로 가야만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걸 기획자는 잘 안다. 그를 위해서 준비되고 있는 많은 일들이 지금 드러나고 있지 않을 뿐이라는 전제에서 본다면, 이 시나리오는 일종의 기초가 되는 교본(敎本)이며, 얼마든지 상황에 따라 그에 맞게 변형이 가능하다. 거기에 보편적 민심은 다시 착시현상과 몰지각한 수용 , 방관 을 하게 된다.</p>
<p>‘친일구도의 완성 ’에 주목해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성립할 경우 에도 오히려 쉽게 독재형 리더십을 펼치기 어려울 정도로 반발이 강하게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한나라당이라는 친일정당일 경우는 다르다. 그들에게는 교활하다 할 정도의 목표지향성이 있다. 야당 내의 친일, 기득권을 흡수 가능한 여지가 있다. 엄격히 이들은 반공보수와 변색한 우파, 그리고 친일찬양파가 뒤범벅이 되어 있는 정치집단이며, 정치계 내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각개 약진이 벌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들이 강하게 정치계가 아닌 ‘친일 정치세력 ’으로 결합하면서 나타난 현상이 바로 오늘 한국에서 벌어지는 ‘친일 ’그 자체다. 그래서 정치가 죽는다.</p>
<p>여기서 다시 일본을 보게 된다.</p>
<p>그들이 겪었던 정치환경에 대한 벤치마킹이 한국에서 이루어진다. 본질적 기획 까지 일본발로 나온다고 보면, 그건 모방기획이라고까지 봐야 한다. 일본의 자민당은 1955년 이후 한 번도 정권을 잃어보지 않았다. 비록 내각중심제이긴 하지만, 그들이 이처럼 정치권력의 고착을 유지한 데는 나름 노하우가 있다. 바로 계보의 관리에 능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장(場)의 결합 ’이다. 이것을 한나라당은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친일정치세력은 더 열심히 그들의 이면 작업을 배우고 시행하게 된다. 그것이 그들의 역할이면서 한편으로 사적 이익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결코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p>
<p>기업과의 끈끈한 유착 구도도 마찬가지다. 본래 일본의 기업은 제국주의, 팽창주의를 통한 조선침략, 그리고 2차 대전과 한국전쟁 등을 통해서 본원적인 부를 축적한 집단이다. 이들은 정치계와 단단하게 결합해 있다. 당연히 우경화의 성향을 강하게 띨 수밖에 없다. 그 흐름이 한국에서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기업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려는 기미까지 보인다. 두 가지가 동원된다. 하나는 몰아내기 이고 다른 하나는 흡수 재편하기 다. 이를 통해서 그들의 편을 정확하게 가른다. 그 다음 수순은 바로 ‘투입 ’이다. 즉, 정치계와의 유대강화는 기본이고 거기에 친일 요소를 침투하는 중인 것이다. 과거와 가장 다른 점은 일정한 ‘수준 ’이 사라지고 막무가내 요구하는 양아치 식(이건 바로 야쿠자 식의 변형이라 할 수도 있다)이 친일정치세력에 의해 자행된다는 점이다. 그걸 그들은 ‘적절한 타협 ’이라고 한다.</p>
<p>한국기업은 친일과 친미라는 두 갈래 속에서 일정한 선택을 해왔고, 이들 둘 간의 관계유지도 했었지만 2000년 이후 친일도 하나의 커다란 대세로 급속하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둘을 복합하는 형세로부터 친일로 기울어지는 유형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수구형 경제결합이고, 또한 경제독점구도의 강화라는 형식과 연결된다.</p>
<p>모든 면에서 일본을 ‘배우고 따라 하자! ’는 구호는 현실에서 그대로 이행되는 중이다. 이것이 ‘친일대세론의 미래화 ’라는 부분에 해당된다고 보여 진다. 증빙 가능한 것은 일반적으로 모든 나라에서 발견되는 네 개의 사회구성요소인 ‘당 정 군 민 ’가운데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형식이 발견되지 않는 곳이 없는 나라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p>
<p>친일의 단순한 확산이 아니라 결합하고 변종을 양산한다. 이것은 회색지대를 양산하려는 것도 아니고, 실질적인 친일대세론을 고착화한 상태 그 이후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워낙 전방위로 들어오는 이 기획에 한국 사회 국가는 속수무책이라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친일에 젖어 들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위세에 눌리고 있다는 표현도 적절하다. 권력을 등에 업고 다시 그들이 정권의 중추로 위세를 떠는 상태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환경은 쉽게 조성된다. 여전히 한국은 정치국가이지 경제를 위주로 한 나라는 아니다.</p>
<p>한나라당은 청와대의 위세에 눌린 듯 보이지만 사실상은 이 흐름 속에서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 약간 균형감을 내비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조절기능의 하나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이회창 시절의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은 차라리 현재에 비해 나은 측면까지 있다. 지금은 이회창과의 결별을 통해서 재구성된 새로운 ‘판’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러한 친일기조와 색깔, 그리고 청와대와의 어색한 관계설정, 나아가 당내외부의 ‘친일정치세력 ’과의 연동성으로 인하여 오늘의 한나라당은 그 색깔 자체가 과거와는 판이한 전혀 다른 변이를 하는 중으로 비춰진다.</p>
<p>물론 이런 유야무야 하는 모습에서 무능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내에는 여전히 강력한 위세를 자랑하는 박근혜 계파가 존재하고, 초선을 중심으로 하는 소장파, 그리고 친이계와 중도계가 혼란스럽게 낡은 항공모함처럼 굴러가는 중이다. 비록 내각제는 하지 않았지만 한나라당 내부로만 본다면, 그들의 팽팽함이 오히려 외부의 친일 강화 에시간을 벌어주 는 역할을 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 중에서도 박근혜의 친일이건 혹은 선부(先父)에 대한 역사 재평가를 위한 몸낮춤이건 간에 그들의 행위에 동조하는 자세는 이들로 하여금 그녀를 ‘묶어 두었다 ’고 자위하게 만들었다. 친일을 제지할 내부적인 동력이 사라져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에게도 그들의 친일 자체를 부인하고 치고 나갈 만한 정치적 계기는 없었다. 오히려 이를 수용하고 관망한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때로는 그녀 또한 그 속으로 들어가서 지지를 구한다. 그들은 역시 막강한 정치세력으로 존재한다.</p>
<p>‘다시 백 년 ’은 일본의 기획이지만, 한나라당의 친일은 이를 자신들의 기획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는 중이다. 시나리오에 의거해서 그들이 나설 때가 있다는 것이고, 그를 위해 준비하고 시기를 노리는 것이 오늘 한나라당 내부에 형성된 ‘친일 ’정치계의 모습이다. 외곽의 친일정치세력과의 결합은 필연적인 것이다. 당연히 백 년 정당을 꿈꾸는 것이고, 아직 정권의 연대가 한참이나 남은 상태에서 굳이 서둘지 않으면서 입지를 유지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상대적으로 야당이 기능을 못하고 있고, 자유선진당의 경우도 이회창 이후의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시간을 촉박하게 다 툴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온다. 이들은 어찌 보면 움츠린 채 잠복기를 거치는 상태라고 판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사이 박희태, 홍준표, 임태희, 나경원, 전여옥 등 이른바 뉴라이트의 일선이 앞서 나온다. 이들은 지금이 자신들의 때라 여기는 듯하다.</p>
<h3>8. 386, 그 지독스런 오만과 모순<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9" title="toc_9" class="anchor" id="toc_9">#</a></sup></h3>
<p>김영삼은 계보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노태우 의민정당과 결합하면서 사실상 민주화 시대 자체를 단절했다. 그는 엄밀히 말하자면 공화당-민정당의 계보를 잇는 형식 속으로 들어가 자신마저 훼절한 대표적인 케이스에 속한다. 당연히 그에게는 4.19 혁명세대는 포용하더라도 386세대로 총칭되는 80년대 학생 운동권의 시각을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90년대 한총련의 몰락으로부터 이어진 일련의 와해공작이 모두 그의 손에서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한국 사회 내의 신자유주의 기조를 만들어낸 IMF사태를 불러온 점 등에서 본다면, 그는 전형적인 수구 기득권을 위한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 이후의 행적도 별반 틀리지 않는다. 그는 어느 사이 신한국당의 대부가 되어 있다. 민정당으로부터 신한국당까지 이르는 시간은 단절이 아니라 연장이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영삼의 과거 민주화 행적은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는 단계로 와 있다. 그는 이제 MB정권과도 결합했다. 그와 MB정권의 결합은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개별적 이익을 합치는 방식의 야합인 셈이다.</p>
<p>김대중의 경우, 그의 민주화 운동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 또한 측근정치를 통해 집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386세대의 중용을 희망하지 않았다. 당연히 386세대는 갈 곳이 없어지면서 80년대 후반으로부터 90년대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사회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시민단체나 혹은 교수, 기업가 등으로 변신을 하게 되었고, 민주화 운동은 그로부터 의미를 잃게 되 었다. 이어 시행된 신자유주의 정책 속에서 사회 내부의 개인주의 극대화를 가져오게 되 며 386들도 급속하게 그 안으로 재편되 었다.</p>
<p>그들이 정작 갈 곳을 찾은 것은 노무현의 탄핵 사태 이후, 소위 탄핵돌이(탄돌이)라고 불리는 386세대의 대거 국회입성에서 현실적인 모습 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이 또한 기형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정치적인 경륜이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로 국회로 입성하여 정치현장에서 이들은 노련하면서도 강력한 친일보수우익 언론 등의 후원을 받는 한나라당과 계파정치 고수로 불리는 김대중, 김영삼 계열과의 갈등 과 분열 을 연신 빚었다. 물론 일정한 수준의 담합도 있었지만 형세는 항상 다분화 되는 양상을 구축했다는 의미다.</p>
<p>이러한 한국 정치계의 386 내부의 분열 형세에서 이들은 90년대부터 변절과 훼절을 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한다. 단순히 대북문제 , 민족문제 에서 비롯된 연원이 아니다. 강철서신 같은 80년대 형 주체추종세력과는 달리, 90년대 이후 386 본래가 가진 사회 내부에서의 자리매김이 부실한 환경에서 능히 보신을 위해 벌어질 수 있는 훼절구도가 형성되었다고 봐야 한다. 이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고, 또한 그들을 수용하지 않는 정치집단에 대 한 반감 등으로 다른 방식의 사회성으로 변모하 면서 서서히 ‘친일 ’을 대세로 한 보수우익화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정치욕망 ’바로 그 자체였다. 그래서 더 집요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p>
<p>민주당, 열린우리당, 민노당을 중심으로 한 운동권 그 가운데서도 386들의 활동은 기성 정치에서 약간 신선함을 줄 수준을 제외하고는 곳곳에서 장벽을 느끼게 된다. 노련함의 부족은 탄핵돌이들이 쉽게 기성정치의 룰을 이기려고 하거나 혹은 무시하는 태도로부터 결국 그들에게 끝내는 포획 당하는 상황까지 양산하게 되었다. 새로움과 차별화를 기대하던 국민들의 실망이 깊어지고 결국 이러한 조류 자체가 바로 ‘변화 ’(바꾸자)를 요구하는 민심과 결합하게 된 것이 작년 대선과 금년 총선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부의 생산적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는 데까지 이르지를 못했다.</p>
<p>실패한 것이다.</p>
<p>거기다가 아주 커다란 혹을 달고 나왔다. 그 과정에서 훼절, 변절분자들을 대량으로 낳았고, 갈등이 폭도 아주 넓혔다. 이들은 기존의 386이 가진 모순을 지적하는 논리로 교묘하게 ‘우익 ’이라는 깃발을 든 친일의 사조(思潮)를 한국 사회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배후에는 기성 정치인이 아닌 정치세력이 존재했다. 당연히 그 배후에는 친일기업인과 일본의 극우, 우익을 중심으로 하는 후원세력, 그리고 숨겨진 기획자가 존재한다. 그에 개의할 여지도 없이 선택은 아주 빠른 속도로 ‘친일이라 하더라도 경제가 우선 ’이라는 논지로부터 ‘대한민국은 좌편향을 수정해야만 산다 ’는 기준점을 내놓기에 이른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자면, ‘좌편향=친북 ’이라는 공식 속에서 ‘반공(反共) ’이란 괴물을 다시 꺼내고, 거기에 덧칠을 ‘우익 ’으로 하면서 ‘친일찬양 ’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구도 형성 이었다.</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10" height="110" width="135" /></p>
<p>(도봉갑, 김근태, 신지호. 아마 이 세 단어는 대한민국 역사가 있는 한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좋건 싫건 간에 말이다.)</p>
</div>
<p>신지호의 예를 들어보자. 촛불시위에 나온 유모차 어머니에게 막말을 할 정도로 , 반정부 시민단체 지원예산 중지 및 회수를 골자로 하는 입법을 발의할 정도로 그는 이미 정치 실세처럼 군다. 그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의 이런 변신은 조금 가소로운 일이지만, 그는 이미 그렇게 기성의 권력 을 맛보면서 젖어 가는 중이 다. 막 등장한 초선치고는 다선의 기성정치인의 뺨을 칠 기세다. 그런 그를 한나라당 의 다선들 은 제지하지 않는다. 활용가치도 있지만 그의 후원자는 바로 김진홍, 서경석 등이다. 뒷배가 있다.</p>
<p>그는 확실히 친일이다. 어느 정도 친일인가 하면, 그는 이미 수년 전 ‘일본과의 경제동맹을 체결해야 한다 ’고 주장할 정도까지 갔다. 그의 목적은 친일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해서 바로 ‘기득권 ’이다. 그것이 정치적인 것일 수도, 경제적인 것일 수도 있다.</p>
<p>그를누가 후원했는가?</p>
<p>당연히 일본이다. 그는 90년대부터 직접 관리된 대상이었지만, 한국에서 ‘민주 ’를 내건 김근태를 이기고 서울 도봉갑 에서 국회의원 뺏지를 달았다. 뉴타운 공약 하나로 김근태를 이긴 것만은 아니었다. 총선 당시 민심은 이른바 민주화운동, 학생운동이라는 과정을 통해 양산된 기성 정치인 자체에 혐오증이 깔려 있었다. 적어도 지난 십 년간 보여준 것 , 발전적인 것 이 없었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민심은 별로 없다.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생활로 접어들었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민심이었다. 지금에 와서 친일정권의 독재적 성향에 치를 떠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 만 지금과 그 때의 민심이 판단한 바는 다를 수밖에 없다.</p>
<p>착시현상이 아니라 실제로 당시로 돌아가보면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민심을 탓할 바는 없다. 그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았던 당시의 정권과 정치계를 탓하는 게 옳다. 오히려 이를 후회하거나 비난 하는 것 자체가 이들과 대적할 세력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다. 그래서 드라이하게 봐야 한다는 거다. 잘못과 구분을 하지 않고,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도 하지 않고 무조건 국민이 어리석었다는 식의 접근법에 국민들은 다시 고개를 돌리기도 하니까.</p>
<p>대선과 총선기간, 다수의 386은 한나라당과 친일정치세력으로 흡수되었다. 특히 친일세력이 정치화하는 과정 개입이 극심했다. 그들은 우익대세론을 믿었기 보다는 민심을 읽었다.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경제살리기 ’하나 만이 아니라 염증(厭症)이라 불려도 좋을 기존 정권에 대한 반발이었고, 이를 감지하고 그들은 훼절이라도 권력을 선택하는 경향으로 바뀌었다.</p>
<p>대체로 세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일본이 직접 관리해서 침투시킨 친일분자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에 의해 편입된 자들, 그리고 나머지는 이도 저도 아니지만 사적 이익을 위해, 권력과 금력의 확보를 위한 수순을 선택하게 된 부류다. 이들이 친일 정치세력의 브레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단순히 뉴라이트집단이라고 친일집단을 통칭 하는 말로 동의어처럼 사용되는 게 현실이 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다양한 얼굴로 번져갔음을 의미한다. 그 중에는 친일을 살짝 뺀 우익이라는 모습도, 혹은 정통성을 운운하는 보수의 모습도, 나아가 진보나 기성 권력에 대한 오류의 지적을 통한 반대급부 현상도 있었다. 이렇게 형성된 하나의 흐름이 적절하게 관리가 된 데는 ‘사적 이익 ’을 목적으로 하는 당시 정치 판세 읽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p>
<p>그에 상대하는 386은 이미 제도권 정치 의 맛 에 젖어 있었다. 친일로 훼절한 386이 칼을 갈면서 공격적인 자세를 견지한 데 비해 이들은 수동적이었고 자기보신을 위해 움직였다. 진정성을 잃기도 했지만 그들 내부의 분열을 감당할 여력도 가지지 못했다. 당연히 이들은 소위 ‘진보의 분열 ’이라는 덫에 걸려든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고상한 언어다. 사실은 ‘기득권에 대한 환상으로 인한 내부 갈등 ’이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 많은 탄핵돌이 국회의원이 그랬다. 그들이 이미 권력자이며 그 권력이 아주 오래 갈 것이라는 몽상을 했다. 거들먹대기 시작했던 것이다.</p>
<p>노련한 정치계는 훼절 386을 자신들의 품에 받아들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이야말로 상대를 공격하는 데 가장 좋은 창이었고, 또한 이이제이(以夷制夷)의 훌륭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찌 되었건 간에 ‘친일 ’이라는 공유의 관념도 있었다. 그것이 비록 ‘신 우익 ’이라는 이름을 내걸긴 했지만 정치형세의 개편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니 거부할 필요가 없었다.</p>
<p>‘친일 ’이 들어온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386이 가진 시대적인 모순이 초래한 바가 적다고 볼 수 없다. 특히 정치계의 386이 정치세력으로써의 386의 근거를 도외시하는 상태에서 이내 오만(傲慢)의 경계를 넘어서 버렸던 현실도 크게 작용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과대 평가했고, 형세판단에 실패 했으며, 미래를 예측하는 데 부족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p>
<p>아직도 많은 386들은 이제 친일로부터 여당 야당의 정치계, 그리고 여전히 민간단체의 범주에서 활동한다. 물론 다수는 사회 속에서 그들의 생활본분으로 돌아갔지만 대표성의 유지는 ‘정치와 사회 ’에 속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 한국이란 사회 국가라는 점에서 본다면 현재의 이들 분포도와 지향점은 재정립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기로에 선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기반은 취약해진 상태다.</p>
<p>MB정권은 일선 활동 연대기를 약 10~15년 정도 거꾸로 돌렸다. 이른바 386보다는 한참 연령 위에서 정권의 지배축을 형성한 셈이다. 어쩌면 지난 십 년이 꿈처럼 여겨질는지 모를 정도로 사회 틀은 바뀌었다. 이제 386은 그들이 다시 정치계 혹은 정치세력으로 활동하면서 자신들이 다시 사회의 주축이 되는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p>
<p>그렇지만 그들이 지난 십여 년 동안 겪었던 오만과 모순을 극복하지 않는 한, 그들이 설 자리는 별로 없게 보인다. 이미 곳곳에서 훼절과 변절, 그리고 변질을 한꺼번에 겪고 난 상태에서 전체적으로 세대의 순수성 이사라졌다고도 할 수 있다. 한 세대가 그렇게 쉽게 저물어가지 않는다는 강변은 둘째치고, 현 시점에서 제대로 과거와 현재가 함께 조명되어 수정되지 않는 인식으로 다음 세대를 겨냥해보는 것도 어리석기 그지 없게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이를 고집하는 측도 있다. 그들은 작은 끼리의 세력은 가질지 모르나 국민 모두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p>
<p>지금 한국의 정치계가 완전히 죽어버린 상황에서 그저 친일정치세력이 판을 치는 기형의 정치판세가 횡행하게 된 데는 386세대의 모순이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도 크다. 상대적으로 기성 정치계는 이걸 보고 나름대로 적절하게 사냥개로 활용하는 행태를 취한다. 그들은 ‘사냥개의 새끼 사냥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 한,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아직 모르는 듯하다.</p>
<p>벗어날 수 있을까?</p>
<p>굴레를 빠져 나오려면 일단 그 모순과 환상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과거를 잊지 않으면 미래는 없을 듯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p>
<h3>9. DJ, 노무현 식 화장질 게임틀<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0" title="toc_10" class="anchor" id="toc_10">#</a></sup></h3>
<p>십 년 이야기를 해보자. 자칫 MB정권의 친일성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이렇다 할 경제위기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비판을 양비론(兩非論) 수준으로 보는 경우는 잘못된 것이다. 진실은 매우 건조한 속성을 가지고 있고, 언젠가는 지금 가진 종합적인 색깔과는 다르게 숨겨진 이야기는 드러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난 십 년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현재 닥친 친일 세력 과 일본의 본질적 습격과 침탈 국면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써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지극히 드라이한 분석과 비판이 필요하다.</p>
<p>그러므로 소위 ‘빠’라고 불리는 지지 그룹 들의 입장 이 건조한 중립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벌어진다는 사실 은 이 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습기 가득한 편견일 뿐이라는 걸 먼저 지적한다. 이것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공과 가운데 공(功 )을 중심으로 본다는 의미이고, 과(過)에 대한 수용보다는 극복 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은 ‘과’를 극복해야 하는 때이지 ‘공’을 드높일 때는 결코 아니다.</p>
<p>DJ 연대기는 친일이 상륙을 개시한 시기다. 김대중은 그 길을 열어 주었다. IMF사태라는 미명 하에 일본에게 한국으로 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 것이고, 상당 부분에서 협조까지 하였다.</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398" height="133" width="102" style="float:none;margin:0;" /></p>
<p>(2005.6.28 대한민국예술원은 창가학회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에게 감사패를 주었다. 창가학회는 만다라에 일본의 국조신 천조대신, 조선침략 일본 장수 등이 호법 선신들과 등장한다. 종교가 아닌 일본 기복신앙이라는 지적이 타당하고, 확실히 왜색임도 사실이다. )</p>
</div>
<p>창가학회 (공명당 )를1999~2000년에 걸쳐 공인된 집단으로 인정한 것은 그 작은 일례에 불과하다. (앞선 시대시리즈를 참조 바란다.) 그것만으로도 일본 세력의 한국 내 교두보 구축, 나아가 친일의 재구성은 날개를 단 꼴이 되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수준을 허용한 것은 그의 본성 자체가 국가적이라기 보다는 매우 비즈니스적 속성을 지닌 사람이기에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이 일생 자체에서 드러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 그의 성격을 말해준다.</p>
<p>그의 비자금이 하반기 논란이 되었다. 소위 이희 호의 3조원CD 인출설이 그것이었 고 일부 CD사본은 실제 발행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 지만, DJ는 퇴임 이후 지금까지 그의 비자금과 관련해서는 어떤 형식으로건 난무하는 소문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이나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엄연히 사실의 범주에서 논의될 일이지, 권력을 가진 자가 당연히 그 수준의 과도한 탐욕을 부릴 수 있다는 이른바 온정론(溫情論)으로 볼 사안 자체가 아니다.</p>
<p>이것은 그가 죽고 나면 폭발적으로 터질 사안이라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집권 기간 동안 사실상 정치계를 비롯한 경제, 사회 등 전방위에 걸친 도청을 국정원을 통해 했고 그로 인해 임동원, 신건 등은 실형을 선고 받은 바가 있다. 그 자료가 바로 이른바 그의 개인 통치 사료에 속한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일체의 사료를 공개적으로 남기지 않았다. 약점을 쥐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그의 비자금 폭로 자체를 막고 있고, 사회에 전파되지 않게 하고 있는 저지선이다.</p>
<p>이른바 풍자적으로 ‘슨상님파 ’라고 불리는 그의 지지세력은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현저하게 줄어 들었다. 그의 명쾌하지 않은 처신이 초래한 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가 주장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자랑꺼리는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자신의 오랜 기간 연구에 의해 이것을 하나의 자신이 가진 고유의 평화독트린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있을 뿐이다. 때론 그의 해외 네트워크가 자랑꺼리로 등장한다. 오랜 기간 동안 그가 펴온 주장이나 이론, 그리고 살가운 친구 사귀기가 뉴스로 등장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의 당선 이후에도 마찬가지 현상은 나왔다.</p>
<p>그런데 이상한 것은 2006년 초에도 그랬지만 정작 북한은 DJ의 초청을 당시에도 거부했었고, 그의 이후 행적에 대해 대단히 불유쾌하다는 기색을 표명한 점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가 한반도의 평화를 주장하면서 노무현 정권에조차 훈수를 두고자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파트너가 되어야 할 북한에서의 거부는 의외로만 인식되어 있다. 맞장구를 쳐주지 않는 것이었고 그로 인해 그 자신이 머쓱해지는 환경을 피하려 건강 핑계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그도 일정 수준 지속적인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대답은 별로 신통치가 않았다.</p>
<p>오히려 이런 점은 서울에서 정보전달이 막힌 상태다. 그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실세 ’로 군림한다. 단순히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바로 불법 도청에 의한 통치자료는 폭탄급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것일 뿐이다. 그가 죽기 전까지.</p>
<p>최근 해외에서 나도는 이야기 중 에서는 DJ 비자금은 거의 6조원 규모라는 설이 거의 정설로 회자된다. 일본을 받아들이면서 그들과 결탁하여 불린 돈, 기업들로부터 받은 해외 구좌의 금고 기탁금, 그리고 한국 내로 들여와 기업, 부동산, 사채 등에서 굴리는 자금, 나아가 별도 관리하는 자금에 이르기까지 그 규모를 나누기도 한다. 이것은 사실인가, 아닌가? 그에 대해서는 DJ 본인이 대답할 일이지만, 그는 이 일을 논의 하거나 명확히 밝힐 생각은 없는 듯 하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지금도 한반도 평화를 주장하는 데 남은 생애를 다 보낼 작정인 듯하다. 죽기 전에 올바른 소리만 하면 그가 제대로 평가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것이 없으면 DJ도 없다. 매달리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북한은 그에 응할 기색이 아직은 없다. 충분한 이유가 뭔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도 가능한 대목이다.</p>
<p>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은 일은 바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 사건이다. 월간조선이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이후, 그 후속 기사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기사가 나간 이후에도 동교동은 침묵했다. 더 밝혀지는 것 자체를 막기 보다는 오히려 다른 형태의 단속을 했다는 의미로 판단하는 게 옳았다. 이 또한 그가 죽고 나면 어떻게든 그 진실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의 피해자가 여전히 존재한다. 거기다가 세상에는 비밀이란 게 어느 순간에는 밝혀질 만큼은 밝혀지게 되어 있다. 이 경우에는 드러날 거라고 보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더라도 마찬가지다. 관련자들이 여전히 살아 있고 정치환경도 바뀔 조짐이어서 더욱 그렇다.</p>
<p>그는 작년 대선에서 손학규, 정동영 두 패를 쥐고 흔들었다.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만 반발은 민주당으로부터 강력하게 나왔다. 박상천은 동교동에 반기를 들었고, 그로부터 사실상 DJ의 정치 영향력은 끝났다.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김홍업의 누가 보기에도 무리했던 보궐선거 출마로부터 빚어진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조차 그의 비자금을 비롯한 많은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박지원이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이 되어 입성했지만 그는 민주당 내에서도 꽤나 외롭게 보이는 위치다. 말빨이 먹혀 들고 있지 않다. 김대중 시대가 저물어가는 기색이다. 그가 어떤 정치인이었던가는 불문하고 그가 남긴 공과 가운데 과(過) 또한 우리 시대의 정치적 산물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안타깝다. 죽고 나면 마구 튀어나올 온갖 사악한 소재에서 그는 영면(永眠)하기도 쉽지 않을 듯해서다.</p>
<p>노무현 이야기를 해보자.</p>
<p>워낙 MB정권 자체가 개판이 되다 보니 다시 그가 조명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착시현상이다.</p>
<p>그는 일본의 엔케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한국 경제를 부동산과 소비 모두에 버블화시킨 일등공신이다. 2002~2007년까지 한국으로 들어온 엔케리는 금융권을 통한 공식적인 것으로부터 사채 등에 이르기까지 최소 2조 엔에서 많게는 27조 엔에 해당한다 고 본다 . 거기다가 개발에 따른 토지보상금의 남발로 인해 서울 경기 지역의 땅값을 천정부지로 올려 놓았다. 부동산이 ‘자신의 유일한 정책 실패 ’라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 부동산이 바로 일본을 불러들이는 창구가 되었다는 건 정말 시대적 사건이다.</p>
<p>그는 ‘민주주의 ’하나만은 챙겼다. 그러나 ‘민주 평화 통일 개혁 ’가운데 단 한 가지만을 위해서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르게 만들었다. 그가 내민 카드는 자꾸만 금칠을 하는 수순을 밟기도 한다. 이를테면 MB정권에 대한 반사작용이지만, 굳이 조순이라는 걸출한 경제학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한미FTA는 선택해서는 안될 길이었고, 그의 임기 동안 과도하게 보편화까지 겨냥해서 실천한 신자유주의 정책, 그리고 MB정권이 아니라 이미 그의 임기 중에 진행코자 했던 미국형 투자은행의 설립 등 금융정책 조정 이나 방만한 해외투자의 허용 등의 영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계 경제의 활 황기에 있었던 그는 적어도 경제지표에서는 충분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시기, 특히 2006~2007년으로 오면서 여러 지뢰들이 곳곳에 심어졌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p>
<p>경제적인 이러한 부분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그 시절이 어땠고 오늘이 어떻다는 수준의 평면적인 분석으로 일관되는 경우가 많지만, 세밀히 따지고 본다면, 일단 당시의 문제점이 그리 녹록했던 것은 아니었다.</p>
<p>정치적으로만 본다면, 그는 민주세력이라 이름 붙인 신민당-민주당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자기 식에 맞게 개편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한나라당의 집권을 도운 셈이 되었다. 한국 정치에 있어 자신의 절대몫을 챙기지도 못했다. 실패했다는 게 정설이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어떠한 앞으로의 시도도 성공까지 이르기는 힘겹게 보인다.</p>
<p>그는 중도좌파라고 스스로 위상을 매겼지만 실질적으로는 탄핵 사태 이후 미국의 의도를 어떤 친미 정권보다도 충실히 따랐다. 감정과 정책의 불균형은 정치계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의 기득권과의 저항시도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가 기득권이 되어 버린 한계도 노출되었다. 바로 탄핵돌이들의 오만이 불러 일으킨 것으로부터, 자신들이 할 몫만 하면 된다 며이어올 사회 국가의 흐름 자체를 감안하지 않는 안일한 대응을 한 끝에 노무현 계파라는 정체성 이나 정치적 추구점 마저 흐릿해져 버렸다. 퇴임 이후 그를 다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해서 이 부분에서 그가 다시 정치적 전면에 설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쉽지가 않다. 오죽하면 노무현 말기 안희정은 그들을 일컬어 폐족(廢族)이라 했겠는가. 그 때를 잊고 다시 화려하게 등장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한국 정치사에 빚어진 과거의 일에서 연원을 찾는다 하더라도 현 시점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p>
<p>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비견하는 것은 현 정권이고 보면, 적어도 노무현은 친일 자체를 수용하지는 않았다는 것 만은 표면적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정작 뉴라이트집단을 비롯한 친일의 사냥개는 노무현 시기 본격적으로 엔케리 트레이드와 함께 물밀듯이 밀려와서 서울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저지는 실패했다. 보다 강력한 수단을 동원했어야 할 시기, 그는 왠지 이를 방치한다. 수성(守城)의 한계였다. 거기 서도 ‘민주 ’를 마치 무슨 주문을 외듯 외쳤다. 그건 만병통치약이 아니었다. 특히 침탈시기엔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면, 그는 일정 수준 불안정을 몸에 달고 다닌 안정감이 없는 대통령이 라는 평가를 받고 말았다. 민심이 그를 떠난 최대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안정감의 결핍이 초래한 바가 가장 컸다고 봐야 한다. 그의 고심이 아무리 있었다 해도 결국 실패는 실패로 낙인이 찍힌다.</p>
<p>MB정권은 그를 압박하려고 하는 전략을 조금씩 수정하는 중이다. 굳이 그렇게 하기 보다는 그의 주변을 캐는 작업에 들어갔다. 노무현의 캐릭터 가운데 하나는 사건을 연속적으로 벌이는 것, 소위 변호사 기질이라는 것인데, 굳이 그렇게 떠들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정권 내부에서 흘러 나온다. 통치자료 문제도 여전히 쟁점이다. 과연 무슨 내용이 있길래 이렇게 집요할까 싶지만,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가진 자료의 파괴력을 알기에 남겨진 사료 자체를 보고픈 욕망이 한층 강해질 수 있다.</p>
<p>버락 오바마 당선으로 한나라당은 약간 패닉 국면에 접어들었다. 대북정책에 있어 노무현의 10.4 공동선언이 다시 제기될 발판이 마련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막고자 하는 움직임이 지난 시기 노무현의 통치사료에 대한 압박이었다고도 보여진다. 물론 그 밖에도 많다. 경제정첵 부분에서도 전임 정권의 잘못을 캐는 작업을 원치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MB 정권은 확실히 노무현이라는 캐릭터 자체에서는 반감을 확연히 가지고 있다는 증거기도 하다.</p>
<p>사실상 2007년의 노무현은 거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미칠 부분조차 없었다. 고스란히 정권을 내주는 환경이 되었고 그는 차라리 견질어음이라고 하더라도 남북정상회담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가 4년 내내 이야기하던 대북정책 원칙은 그 순간 파괴되었다. 변명을 해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결정 한 것이다. 시니컬 하게 보자면 급한 김에 ‘자기 욕심 을 먼저 채운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래서 10.4 공동 선언이 나오기 전날인 10.3 베이징에서는 북핵 2.13합의 이후의 10.3 합의가 등장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협조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p>
<p>10.4 공동선언은 그 내용면에 있어 실천방식에 있어서는 대단히 모호한 구석이 많은 실패작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정작 대북관계에 있어 그 스스로 능동성을 발휘해본 전례가 없다. 그것은 2005년 이후 미국을 싫어하면서도 미국을 심장까지 받아들이는 모순을 그 스스로 감당하면서 결국 한미FTA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실질적 미국추종에 속했다. 미국이 2006년 말 이후 대북정책을 바꾸었음에도 이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는커녕 이를 기다린 것도 그 때문이다. 그도 ‘따라쟁이 ’를 했다.</p>
<p>결국 남북 정상회담을 그도 집권기간의 마지막 카드로 선택하게 된다. 2008년 2월 월간 신동아는 정상회담의 대가로 현금 1천만 불이 북한에 지급된 추정기사를 실었다. 청와대는 해당 기자에 대한 고소고발을 발표했지만 이내 시들해지고 말았다. 할 수가 없었다. 만일 했다가 그것이 증빙되는 상태는 더욱 최악이었기 때문이다.</p>
<p>실제로 2007년 10월 정상회담은 당초 8월 예정되었다가 10월로 연기되는 과정을 거쳤다. 홍수피해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명분이었을 뿐이었다.</p>
<p>보다 정확하게는 노무현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소요된 내용물이 문제였다. 현금 2,000만 불, 그리고 1억불 어치의 물자 공여였다. 이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2,000만 불의 경우는 노무현 정권의 실세 그룹에서는 정확하다고 확인되고 알려진 숫자에 해당한다. 그런 그들도 물자에 대해서는 모르거나 침묵한다. 왜 일까?</p>
<p>북측이 요구한 것은 군용물자 였다. 군화, 모포 등 특수한 상품과 자재 들이었지만, 당시 급박했던 노무현은 이 가당찮은 요구 마저 수용한다. 정권 말기, 그로서는 정상회담의 필요성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 결정으로 정부 창고의 비축물자 가운데 불용성으로 시한을 넘긴 물자들이긴 하지만 상당량의 특수한 용도의 물품이 북한으로 운송되었다. 바로 그것을 꿰어 맞추지 못한 상태에서 8월 회담은 연기된 것이다. 그것은 10월에도 모두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통전부장 김양건이 재차 서울을 방문, 노무현에게 나머지 물자를 요청하기에 이른다.</p>
<p>대체로 정치적 화장질은 ‘평화를 위해 그 정도의 돈을 못쓰는가! ’라는 주장을 통해 합리화를 하게 된다. DJ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대북송금 특검으로 인해 박지원은 실형까지 살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를 이행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은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비록 DJ가 노벨평화상을 탔지만 북측은 ‘공동으로 수상할 일 을저 혼자 받는다 ’고 손가락질 한 전례도 있다. 그것마저도 ‘노벨상 공작 ’이라는 정부기관이 직접 개입된 작업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는 상태다.</p>
<p>DJ를 세계적인 지도자로 이야기하면서, 노무현을 민주주의를 지킨 지도자로 말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들이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써 막지 못했던 오늘의 침탈 사태는 사실상 그들의 책임이다. 한 사람은 ‘돈과 욕망 ’이라는 문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고, 다른 한 사람은 ‘너무 순진했지만 어리석었다 ’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p>
<p>정치란 게 원래 그런 속성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한국 정치사에서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시대를 위한 정치인을 찾는 것은 무척 어렵다. 공과로 따져볼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결코 드러난 열렬 지지자인 ‘빠’의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울 지 모르나 분명히 사실에 입각해서 전개된 것도 틀림이 없다. 이현령비현령하며 아전인수 해석을 내놓을 필요도 없다. 혹은 진보의 분열을 운운하거나 혹은 친일 전선에 대항하기 위해서 필요한 존재 등으로 과대 포장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다시 진정성이 전혀 없는 세력만을 구축하자는 의미밖에는 안 된다. 그로부터 사실상 민심이 분열되고 진실은 가려진다. 그래서는 미래의 희망이 진짜 없다.</p>
<p>건조한 진실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다. 앞선 시대를 극복하지 못했기에 지금에 와서 친일정권의 탄생과 친일의 재구성이 아니라 고착화 정착화까지 보게 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몹시 냉정하게 봐야 하는 때로 보인다. 그러지 않으면 새로운 분열만이 마구잡이로 조장될 뿐이다. 그것은 민심을 떠난, 민심이 화합하지 않는 파열(破裂)이며, 친일정치세력에게는 환영 받을 일에 속한다. 오히려 그들이 공과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지난 십 년, 진보는 진보가 아니었다. 두 개의 정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기득권을 버리는 날, 그래서 진정성을 회복하는 날, 친일 또한 그 순간 힘을 잃을 것이다.</p>
<h3>10. 무너지는 시대, 좌절하는 역사<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1" title="toc_11" class="anchor" id="toc_11">#</a></sup></h3>
<p>한 시대를 정의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사람이 살아가는 날들 에는 중복되는 연속성이 있다. 그래서 어떤 시점을 끊어서 말하기가 쉽지 않고, 그 또한 전후와 그 당대의 이야기를 섣불리 거론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된다. 경험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관점의 부정합성이 존재하는 탓이다.</p>
<p>대한민국이란 정부가 수립된 후지난 60년 동안 한국 사회는 여러 갈등을 빚어 왔다. 독재와 반독재, 민주와 반민주, 통일과 반통일, 개혁과 반개혁으로부터 지역갈등, 정치적 노선의 차이, 개발연대의 산업화 경험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 중소기업과 대기업, 기득권과 서민층의 분배 갈등, 부동산 불로소득과 노동소득, 고용문제, 평등교육과 경쟁 교육 등 사회 모든 분야들이 하루라도 갈등과 분열 없이 굴러온 적은 없었다.</p>
<p>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단일 명제는 유지되었다. 즉, 일제 식민지의 잔재에 대한 거부감과 친일 집단에 대한 경계심리다. 숱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이 싫은가? ’이유조차 논리정연 하게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우리는 반일감정이라는 원초적인 감성을 지녔던 것이 사실이다. 친일 세력들이 정치, 경제, 사회 등의 기득권을 암중에서 행사할 때도 그들에 대한 연민보다는 강한 거부감을 표명하면서 이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시각은 유지하고 있었다.</p>
<p>이유는 간단했다. 일본이 제국주의 팽창주의 본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 을 직감적으로 알았고 종종 알게 되는 일들이 생겼었다. 독도문제를 비롯한 과거사에 대한 겉치레 같은 사과 그 이후 바로 번복 , 나아가 정부 각료의 여전한 신사참배 강행 , 일제 강점을 타당하게 서술한 새역사교과서 파동 등 일본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극우와 우경화의 바람을 경계하는 아주 강한 심리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p>
<p>이것은 거의 조건반사에 해당되었다. 피해를 입었던 자의 반응이기도 했다. 일종의 경험칙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 시대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p>
<p>일본의 한국 내 친일심기 고등 스파이의 한 사람인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 서울지국장의 말마따나 한국의 교육은 그리 가르치지 않아도 학교나 가정에서 ‘반일의 파블로브 ’를 양산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그걸 만든 것은 늘 일본이었다. 일본은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괘씸하게 ‘파블로브 ’를 운운하는 가쓰히로를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그는 지난 십 년 집중적으로 한국 내의 친일분자 관리와 사냥개들의 숫자를 늘리는 데 기여를 했다. 그의 역할이야말로 바로 ‘친일의 재구성 ’에서 지대했던 셈이다. 이 사람은 바로 ‘간첩 ’, 그 중에서도 ‘고등특무간첩 ’이다.</p>
<p>친일에 대한 거부감, 제국주의 팽창주의에 대한 경계, 그리고 이유없는 반일이란 요소는 단순히 ‘애국심의 소재 ’를 따질 수 없는 문제다. 연원이 복잡하게 이어진다.</p>
<p>분단 국가에서 모병이 아닌 징병으로 군대를 나온 사람들에게 있어 형식적 제 1 주적 (主敵) 은 늘 북한이었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의 심경(心鏡)에는 항상 주적인 일본이 있었다는 의미다. 그들은 우리의 선대를 이어오면서 ‘독립 ’을 하지 못하게 만든 원초적 죄업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사과는 애당초 없었다. 그러니 미움이 깊어지는 것이다. 한일 간에 평화란 없는 이유기도 하다.</p>
<p>따지고 보면, 일본이 지금까지 한국이란 사회에 대해 이처럼 강한 저항감을 형성시킨 데는 그들만의 내부적인 이유도 존재한다. 즉, 그들의 국내 정치에서도 ‘미꾸라지 무리 속의 가물치 ’처럼 일정한 긴장 유지가 필요했고, 그렇게 해서 사회 전체를 우경화로 몰고 가고자 했던 의도가 있다. 그러니까 일본의 극우, 우익세력은 한국 과 남북관계라는 긴장상황, 그리고 북한이란 요소를 거꾸로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철저하게 활용했다. 그런 가운데서 진정한 사과와 평화적인 접근이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고도 보여진다. 그럴 마음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p>
<p>이 상태는 곧 서로가 대립적 관계이면서도 가까이 있으니 경제와 관광 등의 교류를 하기는 하는 협력적인 유대를 가진 기묘한 형국이 었다. 그런데 정작 이를 서로 간에 잘 주거니 받거니 한 것은 한일간의 일부 정치세력 간에 벌어진 것이지 민간 부문은 그렇지가 못했 다. 항상 경계는 저변에 깔린 상태에서 벌어진 교류였을 뿐이다. 그나마 협력 수준에서 적절하게 정치도 경제도 이만저만 하게 유지되었던 것을 최상으로 여기던 둘 간의 관계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기울어지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깊어지듯이, 그렇게 구조적으로 고착화 되듯이 일본은 한국을 엮어 들어오기 시작했다.</p>
<p>마침내 일본은 본격적인 공격을 개시했다.</p>
<p>‘친일의 재구성 ’과 ‘다시 백 년 ’이라는 이름의 일본 기획자에 의해 의도된 한국 사회의 친일화 작업 전반은 총칼만 들지 않았지 ‘침략 ’에 해당한다. 이것은 단순한 선무(宣撫) 수준이 아니 며, 협력의 확대도 아니다. 그 행위의 목표가 친일세력의 항구적인 한국 내 정착을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전쟁 ’이라고 봐야 옳다. 즉, 물자와 장비, 도구, 그리고 전술과 전략이 동원된 진짜 전쟁이다. 나는 이것을 ‘시대전쟁 ’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정의한 바 있다.</p>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52" height="405" width="640" /></p>
<p>(동아일보에 실린 뉴라이트 연원. 회원 17만 명이 허상인가 실체인가를 따질 필요도 없다. 이들은 친일정치세력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 중이다. 동아일보는 뉴라이트 창립 때부터 적극적인 후원자로 처신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저들 17만 명 가운데 정말 친일이건 사적 이익을 위한 친일이건 간에 일본을 위한 단 한 번의 행위를 한 사람도 바로 매국노라고 인정할 것이다. 즉, 새로운 ‘을사 17만 적 ’(賊)이 생겼다고 본다. )</p>
<p>아직도 많은 한국 국민들은 이것을 전쟁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한 쪽은 전쟁을 선포했는데 다른 한 쪽은 ‘괜찮아 ’, ‘나는 침묵이야 ’라고 말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대체로 수용 가능하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 혹은 비난은 하지만(비판도 아니다)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지켜보는 수준에서 가늠코자 하는 안이한 경향을 보인다. 그 가운데 가장 무서운 말은 ‘설마! ’라고 말하는 무지다. 더 우스운 것은 국민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일본 편이 된 상황, 그러니까 ‘친일의 사냥개 ’가 국민 사이에 퍼져 마구 활동 중이라는 것이다. 이 전쟁을 쉽게 한국의 오늘이 이길 수 없는 이유는 이렇게 본질부터 지고 있는 탓이다.</p>
<p>전쟁과 침략이 벌어졌음에도 이런 경우를 수용하는 것이 바로 <strong>‘식민의 근성 ’</strong>이라고 분석해보기도 한다. 1948년 이후 저변에 자리잡은 아주 질긴 민초의 식민 수용심리가 부활을 했다. 그것은 다시 발전해서 일본에 서 재차 과거와 유사한 프로그램이 가동 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하 게 만들었고 또한 멀뚱허니 수용하게 만들었다. 그 사이 전례 에 충실한 일본의 ‘다시 한 번 ’이라는 전술 전개 상황은 발생 중이다.</p>
<p>격렬했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겪고 난 이후, 한국 사회는 경제적 측면에서 서서히 개인주의에 젖어 들었다. 계층화가 이루어지면서 나타난 여러 갈등 요인들이 서로 간에 ‘공감대 형성 ’을 파괴하는 결정적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고, 무관심과 자기본위의 사고는 애국이나 혹은 애족 같은 단어들을 생경스럽게 여기 도록 만들어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서민들은 온순하며, 변화를 두려워한다 ”는 명제가 주어진다. 이 문제에서 상식, 그 이상의 머리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강한 경향을 보인다. 그것을 ‘온순 ’이라고 표현한다. 게으른 것이다. 한 마디로 시대가 어찌되건 간에 내 일이 아니라는 방만의 자세도 보인다. 그것도 ‘온순 ’이라고 부른다.</p>
<p>정말 그런가?</p>
<p>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런 모습들과 뒤섞인 상태, 그것이 한계로 보일 뿐이다. 임계점이 어디일까를 가늠해보면, 두 가지가 나타난다. 하나는 역시 개인의 경제적 안위를 확실하게 눈에 보이게 위협당하는 경우다. 이 때도 온순 그 자체에 머문다면, 그것은 식민이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저항본성이 죽었다고 봐야 옳다.</p>
<p>다른 하나는 느릿함이다. 대의민주주의에 의해 선거 로선출된 정권에 대한 일종의 관망(觀望)과도 같은 것이다. 마음 속에서 5년짜리 정권이라는 시계추와 타이머가 작동한다. 여유 있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두고 보자는 견해가 나오는 것이 이런 유형이다. 아주 온건한 , 사실은 몹시 비겁한 관찰에 속한다.</p>
<p>이 두 가지는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저항하는 것을 막는 결정적 이유로 자리잡는다. 거기에 여론공작이 보태진다. 신문과 방송은 적절하게 개인의 사고를 지배한다. 당연히 보도도 통제된다. 식민의 본성을 촉발 시키면서 기득권이 임의적으로 민심을 조종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강제적 인지부조화 기법에 속한다.</p>
<p>변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느린 것이고 하나는 아주 파고가 크고 빠른 것이다. 일본의 한국 침탈은 아주 느리거나 빠르지도 않게 보인다. 애매모호한 중간지대를 선택하고 있고, 오히려 빠르게 서두르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서 형성된 친일 매국 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실상 일본은 지난 십여 년 동안 이 작업을 해왔고, 그러므로 급할 것이 없다는 태도이지만, 사냥개들은 예상치 못한 반발이나 저항을 감안 해서 더욱 조급증을 내며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 다. 사냥꾼보다 사냥개가 더 바쁜 이유는 그들의 ‘몫 챙기기 ’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협박과 회유, 협상을 통한 챙기기 국면이 벌어진다. 이건 침탈이 아니라 수탈(收奪)의 개념에서 봐도 무방할 정도다.</p>
<p>여기에 대한 반발의 공감대 가 전혀 강하게 형성되지 않는 것은 무지나 몰지각으로 인한 것만도 아니다. 무관심과 개인주의가 가진 온건함이 더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p>
<p>아주 잘게 부숴진 파도들이 끊임없이 바위를 때리고 그 바위 내부에서도 균열이 조성되는 형세라 할 수 있다. 둔감하게 만들면서 파도에 저항하려는 세력은 형성되지 못하고 공감대 또한 흐지부지 하게 되어 버리는 시간이 깊어지는 중이다. 일본이나 한국의 친일사냥개들은 이것을 노린 것이라 보여진다. 어느 틈에 반일의 파블로브가 친일의 둔감함으로 바뀌어진다. 이건 지속적인 공성(攻城)에서 일본이 승리를 곧 자축할 날이 온다는 걸 의미한다. 벌써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특별한 대세가 없는 한, 일본은 한국에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조만간 입성할 것으로 보인다. 그건 연속 동작으로 나올 듯하다. 한일해저터널, 한일간 통화스왑, 스왑확대, 엔케리 자금에 대한 회수와 배려, 일본전용공단, 일본 자금의 대기업 공여, 부동산 PF 등 사채성 자금에 대한 관리 확대, 그리고 공기업 민영화 참여,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 참여 등으로 이어진다. 거기에 사냥개들을 앞세워서 일부는 담합하고 일부는 떼주는 식의 조정이 이루어진다.</p>
<p>시대를 구성하는 것은 사람이다. 개인의 시간이 모여 사회와 집단, 국가의 시대를 만드는 것이고, 그 시대가 모여서 역사를 형성하게 된다.</p>
<p>그 점에서 본다면, 오늘 한국으로 깊숙하게 다시 들어오는 친일은 이 시대를 다시 식민의 시대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침탈이다. 시대를 빼앗긴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야 할 자주적 시대감각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지배당하는 시대 속으로 아주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상태다. 이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수용에 해당한다. 이유가 여하하건 간에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바로 ‘식민의 수용 ’이라는 상태다.</p>
<p>결국 떠난 지 63년 만에 일본은 서울에 친일의 기지를 새롭게 형성하는 데 완전히 성공했고, 이제는 약간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온 기세를 이용하여 고착화 정착화를 시도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에 저항하는 안전판은 미미하기 그지 없다. 오히려 미리 침투된 친일 사냥개는 저항노선 자체를 공권력이건 마타도어, 메카시즘, 그리고 법률적인 잣대까지 들이대면서 반발하는 민심에 공략을 개시하는 중이다. 과거 반독재나 민주 쟁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효율적인 수단을 모두 동원한다. 사전 단속의 의미마저 엿보일 정도다. 사실상 ‘싹이 잘리는 현상 ’도 나타난다. 워낙 거세게 몰아붙인다.</p>
<p>역사를 빼앗기기 일보 직전이라는 것은 교과서 문제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일본의 제국주의가 조선근대화에 기여한 바를 연구했다고 하면서 한국 땅에 학술 을 포장한 접근을 안병직이 1988년 소위 ‘그들만의 연구 ’와 ‘의도를 듬뿍 담은 학술이란 이름의 친일포장 ’을 시작 한 이래로 딱 20년 만에 ‘친일은 나쁜 것이 아니다 ’라는 명제가 출몰했고, 이제는 경제적인 이유로라도 ‘한일경제 동맹 ’까지 곧 표면으로 등장하기 일보 직전이다. 이름을 그렇게 붙이건 아니건 간에 현실적으로 진행 중인 국가의 주요 정책에 속한다. 단순히 역사교과서가 문제가 아니다. 역사와 경제를 엮어 들어오면서 고착화되고 있는 이 흐름이 중요하다.</p>
<p>일본은 우경화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아소 다로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을 ‘대동아전쟁 ’이라고 표현한 것이 습관적 발언이라고 해명했지만 사실 그걸 믿을 바보는 없다. ‘대동아 ’(大東亞)라는 그 단어에 포함된 지독스런 팽창주의 야욕을 무시한다면 모를까, 그의 사상적인 지향점이 어디인지가 드러났다고 보는 게 옳다. 바로 제국주의다.</p>
<p>되풀이 되는 역사는 과거의 오류를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일본이 그렇다. 그들에게는 침략역사를 정당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 침략의 후유증과 진행과정의 착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면서도 강력하게 재 시행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전쟁과 침탈을 하려는 자는 당연한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다.</p>
<p>상대적으로 한국은 오히려 이들에 대해 동조의 봉화를 국민들 몰래 날린 봉화수 (이제는 드러내놓고 한다.) 와 이들에 저항하는 세력을 무조건 물어뜯어야 하는 사냥개가 날로 늘어난다. 이 상태에서 한국이란 나라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역사는 더 이상 존재의의를 잃을 수밖에 없다. 침투가 아니라 침탈을 위해서는 먼저 빼앗아가기 보다는 주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맛에 길들여지는 환경까지 그들의 침략 시나리오에 포함된 상태라면 역사를 팔아먹는 것도 잠깐 만이다. 그러나 수탈은 곧 이어진다. 그것이 목적이다. 90%의 국민은 거기에 방어막이 없다. 그들에 동조하는 10%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당연히 90% 가운데 일본의 행보에 동조한다는 약 20%마저도 수탈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환영하면서도 바로 강도짓의 대상이 된다는 걸 모른다.</p>
<p>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왠지 대단히 ‘여유롭게 ’보인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지독스런 허장성세다. 해방 이후의 국민의 역사와 정체성, 정통성에 대한 인지 정도가 전체적으로는 그저 한낱 부풀려진 천박한 역사 인식수준 이었다는 것이 한껏 드러나는 요즘이다.</p>
<p>희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도 버겁게 환상을 꿈꾸는 한국 사회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안방까지 밀려와서 ‘친일이 대세다 ’라고 외치기 전에는 꿈쩍도 안 할 아주 비겁한 사회가 되어버린 한국을 본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 서한국민으로 오롯이 존재하는 ‘역사 ’는 사실상 죽었다.</p>
<h3>11. 우리 시대에 통일은 없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2" title="toc_12" class="anchor" id="toc_12">#</a></sup></h3>
<p>일본의 사상적 정체성을 ‘우파 ’라고 보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 없는 단세포적 분석이다. 냉정하게 보아 일본에 ‘우파 ’는 없다. ‘국가주의 ’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민족주의와도 다르다. 일본을 지탱하는 정신세계는 여전히 일왕을 만세일계(萬世一界)로 하는 -그를 앞세운- 그들만의 팽창주의가 있을 뿐이다.</p>
<p>이것은 우파가 아니라 ‘세력 ’이다. 진보니 보수적 민족주의와는 완전히 그 궤를 달리한다. 그들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일본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머리카락과 꼬리만 내밀고 흔들기 일수이고 보면, 일본이란 나라 속의 이 세력은 매우 은밀한 속성을 지닌 자들임을 알 수 있다.</p>
<p>세계를 들여다 보면, 흔히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외교체계라는 형식을 기본으로 상호 내지 다자간의 행정적 처리가 이루어진다. 국제사회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국제연합 ’이라는 기구의 성립 이후, 등록된 국가형식을 전제로 해서 국가와 국민, 사회를 나누는 것이 보편적인 기준이다. 그렇지만 그 실상을 파헤쳐 보면 약간 다른 유형이 눈에 띈다.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에서 과연 미국달러가 기축통화의 구실을 해온 브렌튼우즈 협약을 전후한 시기의 이해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세력 ’이라는 낱말이다.</p>
<p>중동의 자그마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유대세력의 본거지다. 그러니까 유대계라는 하나의 민족이 집단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고, 그들은 이미 국가를 초월하는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금융재벌인 로스 차일드로부터 일련의 정치경제 집단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세력이며 국가 단위를 넘어서 국제적 활약을 한다. 이런 예는 흔하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방산업계 등이 금융자본과 결탁한다는 것은 알려진 바와 같은 것이고, 중동 지역의 경우도 부족 단위에서 국가 단위로, 다시 종교적인 파벌 단위로 서로간의 국가 영역보다 더 강한 유대감을 가지는 경우도 흔하다.</p>
<p>아시아로 와보면 중국의 경우는 중추세력이 곧 중국공산당(중공당)이고, 일본의 경우는 일왕을 중심으로 올려 놓고 극우와 우익이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세력을 형성하며 주축 역할을 한다 .</p>
<p>이렇게 국가를 벗어난 세력의 범주가 현실 정치에서 기능하는 경우, 그것은 눈에 확연하게 띄질 않는 경향이 크다.</p>
<p>지금 일본이 한국을 대상으로(엄격하게 3단계는 한반도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침탈의 수법을 강화하는 데는 일본이란 국가가 아닌 일본의 극우와 우익이라는 집단 세력이 작용하고 있다.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p>
<p>마찬가지로 현재 ‘친일 ’의 바람 잡이 역할을 하는 한국 내의 친일사냥개 또한 이들 세력권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까 세력 대 세력간의 담합이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p>
<p>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과 미국 내의 세력들은 일본을 아시아의 이스라엘로 키운다는 전략을 착착 이행시켜왔다. 일본의 세력들은 당연히 생존을 위해 이 방안을 적극 선택했다. 제국주의와 팽창주의에서 막대한 부를 형성했던 일본의 재벌기업은 물론이고 정관계 자체가 이러한 트랜드를 수용하면서 미국에 의존하거나 기생하는 형태를 띠면서 자신들의 힘을 재축적하려고 했다. 그 상태에서 제 1 의 주적은 과거 소련이었고, 소련이 해체된 상태에서 제 1 주적은 중국이 되었지만, 경제적으로 중일 관계는 발전하지 않을 수 없는 불가피성이 서로간에 있었기에 국가간 관계형성은 깊어져 왔다. 그러나 세력 간에는 다르다. 중공당과 일본 극우우익은 서로 간에 물과 가름 같은 사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이 견지력(堅持力)을 미국은 활용한다.</p>
<p>당연히 한미일 동맹에서 우위는 미국 입장에서 일본에 두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미일 간의 바탕에서 보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는 한일 관계가 험악해지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차라리 일본이 한국에 거대 영향력을 행사하는 포지션까지 가주기를 바란다. 물론 이 또한 자신들의 통제범위를 벗어나면 안 된다. 그게 미국식이다. 빅브라더의 위치는 쉽게 내주지 않는다. 여전히 미국은 세계 제1의 군사대국이다.</p>
<p>당연히 일본의 오늘은 극우와 우익이라는 세력 플러스 미국이란 배후의 세력을 함께 동반하고서, 일정한 묵인 하에 한국에 대한 친일화 작업을 서두르는 모습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정답이다. 이 상태에서 일본은 더 이상 우리가 말하는 ‘우파 ’가 아니라 철저하게 제국주의와 팽창주의적 관점을 숨기거나 때로 드러내는 입장으로 변모한다. 그것이 바로 식민의 경험에서 얻어낸 한국을 다스리는 방법이니까.</p>
<p>친일사냥개가 정치세력으로 서울에 안착을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은 미국과의 담합을 서둘렀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부분 도 있다.그 중 중일관계와 북미관계 가 사실상 이 일의 장애요인이었 지만, 그 동안 효율적으로 잘 말려온 것도 사실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에 대한 친일화 작업이 진행 중에는 절대 남북한과 북미간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서는 안 되는 조급증이 있었다.</p>
<p>북핵을 하나의 구실로 봐야 한다는 것은 핵개발 자체가 80년대 이후 지난 근 20년이나 된 오래된 사안이라는 점을 살펴보면 금새 드러난다. 국제정치나 외교 등으로 이 문제를 아무리 들여다 봐도 해법은 없다. 이 결정은 세력 간의 담합을 기초로 하고, 우선 순위가 정해져 있다.</p>
<p>버락 오바마의 미 대선 승리는 한국, 일본의 세력들에게는 꽤나 당혹스런 과제일 터이지만, 그 이전 부시 행정부가 마지막 내린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도 그에 못지 않은 충격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일본은 극력 반대를 했지만, 부시는 어차피 민주당 정권 하에서 버락 오바마가 북한방문까지 염두에 둔 대북 대화와 협상이라는 카드를 꺼낸 마당에 주저할 바가 없었다. 성과를 다 남겨두고 갈 이유도 없었거니와 이 시점 정도에서는 어느 수준에서 매듭도 필요하다 고판단했던 것으로 본다.</p>
<p>시점상으로 불균형이 찾아온 것에 대한 불안감이 표출되는 중이다. 일본은 10월 대북제제를 반 년간 연장했다. 표면적으로는 납치자 문제라고 하지만, 이것도 가만히 보면 그들이 일본 내의 우경화를 촉진하는 데 카드를 사용한 후폭풍이지 전격적으로 해결 못할 과제는 아니었다. 이걸 ‘시간끌기 ’라고 부른 이유가 거기 있다. 일본의 지상과제는 대북문제를 무조건 해결지연 시키는 것에 있었다는 것이 작년과 금년으로 이어져온 일련의 흐름이다. 그래서 일본의 소위 한반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은 ‘잘 새겨 들어야 ’한다. 글자 그대로의 뜻이 전혀 아니다. 항상 배후에 한 자락을 깐다.</p>
<p>한국의 친일정권은 이에 적극 동조한다. 상호주의 기조유지 , 갑의 위치 회복, 원칙의 고수, 비핵개방3000 같은 이야기는 이러한 자신들의 시간끌기의 산물 이고 변명 일 뿐이다. 그 중간 중간에 전혀 성사 가능성이 없는 정상회담 제의로부터 정부간 대화 촉구 등이 나왔지만 북한은 지난 3월 이후 남한정권을 일단 친일정권으로 정의를 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 이후 7월 금강산 피격사건까지 터진 상태에서는 해법 자체가 없다. 오히려 겉으로는 ‘대화재개 ’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하지 않는 옵션을 항상 붙인다. 12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의 통제를 강화한다는 북한 군부(국방위원회)의 11월 12일자 전통문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다.</p>
<p>바라던 바이기도 하다.</p>
<p>서울에서는 오히려 그들끼리는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대화가 이루어질까 봐서 걱정을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내부적인 보수세력의 단합이 문제가 아니다. 바로 친일의 재구성에서 친일의 완성까지 넘어가는 이 시기는 그들 친일사냥개들에게는 관건이 되는 시기다.</p>
<p>문제는 미국이다. 부시도 임기 말에 테러지원국을 해제해 버리고, 오바마는 전격적으로 움직일 기색마저 보이는 상태에서 ‘통미봉남 ’이라는 단어는 아주 무서운 비수가 되고 있다. 계획에 차질을 빚기 시작한 것이다.</p>
<p>‘당황 ’(唐慌) 은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p>
<p>오바마의 좌파적 관점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한국과 일본의 담합된 세력은 이것을 어떻게든 지연해야 할 절대절명의 과제가 대두되었다. 그 상황에서 북한은 오바마 당선을 상정하고 미국과의 대화를 위해 노련한 외교관인 이 근을 워싱턴에 파견을 했다. 조만간 6자 회담은 재개될 것이고, 이는 오바마 시대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도 원하는 바이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문제해결을 바란다는 취지를 표명한 바도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다시 삐걱대는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의 의도가 더 중요해지는 셈이다.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이 현재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축이 되어 있다.</p>
<p>이렇게 상황이 잘 진전 되면 북미 간에는 급물살을 탈 수 있는 새로운 변수가 만들어질 공산이 더 크다. 여기에는 북한이 어느 만큼의 양보를 할 수 있을 것인지, 8년 전 클린턴 행정부 말기 올브라이트 방북 이후로 돌아가는 전격적 프로그램을 가동 가능한 것인지가 달 려 있기도 하다. 여전히 변수는 있다. 그러나 큰 흐름은 그대로 갈 공산이 크다. 이것이 오늘의 한반도다.</p>
<p>관건은 이 시점에서 일본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보면 향후의 흐름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급해진 건 그들의 입장이니까.</p>
<p>일본은 일단 미국의 움직임이 급속하게 한반도로 오는 것을 경계할 것이다. 마침 금융위기 상황에서 오바마라고 하더라도 일본의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미일 간의 담합구도가 형성될 개연성은 그래서 아주 높다. 다시 일본이 원하는 시간만큼 북미관계는 어떤 사유를 대더라도 해결이 연장될 공산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6자 회담에서 일본 배제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흐름을 읽은 북한의 제스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별로 소용이 없다. 이것은 미일 간의 담합을 기본으로 한다. 이것도 변수다.</p>
<p>한국은 대응방안 자체가 없다는 걸 즐기고 있다. 국회에서는 특사를 보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특사로 갈 사람도 마땅치 않거니와 당장 특사가 토의할 주제가 없다. ‘무조건 솔직한 대화 ’라는 MB의 어법은 남북한에 그만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말이다. 그러니까 이걸 해석하자면 ‘대화하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한 꼴이 된다. 그러면서 남한 내의 보수를 결집한다. 뭣도 모르는 그들은 다시 ‘반공 파블로브의 개 ’가 된다. 무지는 이렇게 사람을 짐승처럼 만들어 버린다. 이용당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회다.</p>
<p>북한이 이러한 전후사정을 짐작하고 있는가 아닌가는 모를 일이다. 내부적으로 와병설의 진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만하거나 아니면 정도가 심한 일 이있었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한 차례 아주 극심한 홍역을 치른 것도 틀림이 없고, 이래저래 어수선한 국면임도 부인하지 못할 현실이다. 제대로 방향 자체가 설정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보면 안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제대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p>
<p>그 상태에서 중국과의 관계도 생각해봐야 한다. 일단은 북중 관계는 밀월 국면이 조성되고는 있지만, 이것이 북미관계의 완전한 궤도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여전히 서로 간의 갈등구조를 양산할 개연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지금의 ‘미워도 다시 한 번 ’은 불안정하게 보인다.</p>
<p>중일 간에도 약간 담합은 있었다. 10월말 아소 다로는 후진타오와의 회견 이후 중국 CCTV와의 대담 에서 중일 관계에 상당한 역점을 둘 것임을 시사했다. 오바마 당선을 염두에 둔 접근법이었다. 일본은 중국이란 패를 가지고 서로 간의 담합이 가능한 구석을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도 굳이 북한이 서둘러 북미관계를 해소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북한이 이 게임에서 다시 새로운 전기를 만들기 빡빡해진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은 높게 보인다.</p>
<p>상대적으로 한국은 불안감이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다. 남북관계에 모종의 어떤 정부간 대화 개연성이 있는 것처럼 말한 MB발언은 일종의 블러핑 수준으로 본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였지만, 만일 그가 이러한 전체적인 흐름을 일본으로부터 듣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정 시점까지는 지연한다는 일본의 싸인이 있었다면 정권이 안심할 수 있는 복안은 된다는 의미다. 어차피 금년이 아니라 내년 상반기 이후나 하게 되면 유리한 위치가 나온다고 생각하던 참이니 말이다. 이것이 지금 한미일 동맹에서 한일 동맹의 실체인지도 모를 일이다.</p>
<p>그래서 대화제의가 아니라 배후에는 항상 정권교체를 염두에 둔 준비를 운운하는 정치세력을 두고 그들의 활동을 말리지 않는다. 삐라는 그 렇게 북한 상공으로 끊임없이 날아간다. 법적인 제재를 못한다는 통일부 장관의 말은 거짓말이다. 그것은 국가외교를 훼손하고 방해하는 행위이므로 업무방해가 충분히 성립된다. 그러나 막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정성이 원래 없다는 걸 스스로 보여준 채 남북관계를 진행하는 것이다.</p>
<p>대략 이 정도 흘러가는 품 세만 봐도 남북한은 MB정권에서 통일이라는 이름을 꺼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리석게도 ‘북진통일 ’운운하는 사람마저 생겨나고 있다. 한반도를 전장(戰場)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한 자들이다. 북한의 격변 사태를 원하지 않는 것은 중국이나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무턱대고 가는 유치한 심정이나 혹은 이렇게 뺀질대면서 자신의 문제를 방기하는 식으로 관리되어서 좋을 일이 없다. 그러니 목적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p>
<p>MB 정권에서 통일은 없다. 그런데 일본의 입장은 다르다. 제 1 단계와 제 2 단계의 한반도 팽창전략은 제 3 단계로 넘어가면 한반도 전체에 대한 친일화 전략으로 확장된다. 이미 부분적으로 그를 염두에 둔 전략도 펴고 있는 상황이다.</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04" height="200" width="231" /></p>
<p>(아베 신조와 아소 다로. 그들의 동침은 오래가지 못했다. 후쿠다 야스오, 그리고 아소 다로로 이어진 지금, 아소의 향후 행적은 관심사항이다.)</p>
</div>
<p>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p>
<p>일본은 성공한다고 본다. 한국의 친일정권은 그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적절한 수준에서 일본의 세력들과 보조를 맞추는 중이다. 이미 독자적인 외교역량을 편다는 자주외교는 사라졌다. 외부의 시각으로만 보자면 한국은 친일정권이 아니라 이미 일본의 세력에 예속된 정치집단이 있을 뿐이다. 국민들이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지만 이것이 실상이라는 것은 변치 않는다.</p>
<p>아소 다로가 일본의 총리가 되고 난 이후 나오는 몇 가지 소식들을 살펴보자.</p>
<p>2008.2.1 아랍지역 4위의 이동통신사업자로 알려져 있는 이집트의 오라스콤(Orascom)은 북한 휴대전화 통신 운영사업권을 4년 독점, 25년 유효 라이센스 조건으로 획득한다. 이들은 경영진이나 혹은 그 가족의 명의로 류경호텔 공사 재개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권 획득 이전인 2007.7.13 북한의 평양명당무역회사와 상원시멘트 지분 50%를 1억 1,500만불에 인수하는 합영계약도 체결했다. 그런데 최근 이 건설 시멘트 사업을 주관하던 오라스콤건설산업을 프랑스 건축회사 나파이트에게 150억불에 매각했다고 알려진다.</p>
<p>재미난 것은 이 프랑스 회사의 파트너가 바로 일본의 ‘아소건설 ’이다. 아소 총리의 친형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실제 아소 다로도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아소는 32세에 아소 시멘트의 사장을 역임한 바도 있다. 아소 가(家)는 충남 태안반도 안면도 일대에 일제강점기 그들 가문의 ‘왕국 ’을 건설하기 위한 대규모 산림훼손으로 비판 받고 있는 중이다. 일제 징용에 숱한 조선인이 희생된 아소탄광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아마도 일본과 원산, 평양을 잇는 라인의 개발에 착수했다고도 보여진다. 이런 일본의 움직임은 많다. 이들이 직접 하는 작업은 작업이고, 또 사냥개를 앞세운 작업은 작업대로 진행된다. 과거에 그랬듯이 그런 패턴이 움직인다. 과연 이런 상태에서 MB정권이 통일을 말할 자격이 있는 지는 모를 일이다.</p>
<p>내가 살아있는 시대에 통일을 보기란 어렵다고 판단된다. 지금과 같이 한국이 친일을 수용하는 정권과 사회가 되어 버린다면, 그 결과 는 분단의 고착화를 통해서만 그들의 ‘빨대 ’가 더 효율적으로 기능한다고 믿을 것이고, 자주적인 통일역량보다는 경제적인 침탈의 촉수를 남쪽뿐만 아니라 북쪽으로 뻗치는 수법이 앞으로 십여 년간 강하게 지속될 것이다. 그것은 당장 내년부터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다고 본다. 아소 가문의 경우에서 보듯이 상당한 수준의 작업들이 남한에 대해서처럼 북한에도 진행 중인 상태다. 일본식 방식이란 늘 그렇게 해왔었다. 특별한 일도 아니다.</p>
<p>때로 한국에서 진실처럼 횡행하는 한반도에 대한 장밋빛을 희망하고 예상하는 상식은 행위가 그에 맞게 따라주지 않은 상태에 머리 속에만 간직하고 있어서는 바로 그 자체가 ‘꿈’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전혀 현실로는 타당성을 잃는 경우가 된다. 지난 십 년, 한 걸음도 그 수준에서 개선된 것은 남과 북 모두에서 없다. 오히려 불신만 더 키워진 형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얼치기 통일꾼 ’이나 혹은 백성들조차 잘 모르는 듯하다. ‘친일 사냥개 ’들은 이것을 너무도 잘 안다. 일본은 더더욱 잘 안다고 봐야 한다.</p>
<h3>12. 사이비 종교전쟁<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3" title="toc_13" class="anchor" id="toc_13">#</a></sup></h3>
<p>종교 이야기를 해보자. 그 가운데서도 한국 사회의 ‘비루먹은 당나귀 ’보다 천박하다고 여겨지는 ‘정치기독교 ’를 봐야 한다. 백성을 진실로 생각하는 올바른 기독교 그룹과는 달리 이들을 우리는 ‘개독 ’이라 부르지만, 그마저도 올바른 표현은 아니다.</p>
<p>보다 정확한 표현은 ‘(기독교를 앞세운) 친일주구 찬양파 ’에 속한다. 그들은 사냥개를 찬양하는 새로운 유형의 종교를 만들어 내었다는 의미다. 막연히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라면 ‘입에 거품을 무는 ’이른바 기독교 특유의 배타주의가 여기서는 작동을 해서는 안 된다.</p>
<p>왜 그런가?</p>
<p>그들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친일의 앞잡이처럼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 기독교 내의 자정능력은 비판 받아야 할 대상이다. 당연한 일이다.</p>
<p>친일정치세력이 한국 정치계를 비롯한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에 걸쳐 침투를 개시할 무렵,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지원 세력은 MB의 종교가 기독교라는 이유로 그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교회는 ‘이명박 장로의 대선승리가 곧 하느님의 뜻이다 ’를 되뇌었고, 그것 자체로 이미 그에 참여한 기독교회, 목사, 교인은 정치인이 되었다. 거기까지는 집단의 중독성이라는 관점에서 수용이 가능했다. 어차피 끼리 집단은 성립되는 게 사회의 룰이니까.</p>
<p>그런데 문제는 뒤이어 터져 나왔다. 어차피 편 먹기를 했던 집단이긴 하지만 이들의 성격적 행태가 바로 ‘친일 ’이었기 때문에 갈등이 금새 빚어졌다. 기독교라는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은 신사참배(神社參拜)라는 그들의 토속적 우상숭배의 형식이나 또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배례(拜禮)가 그들과는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p>
<p>이것은 교묘하게 두 가지의 아전인수 방식의 해석을 곁들이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금칠을 하게 된다. 첫째, 일본으로부터는 경제살리기의 힘을 얻는 것으로 만족한다. 종교적인 걸 받아들이자는 게 아니다. 일본에도 기독교 전파가 필요하다. 둘째,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국가다 . 그러므로 우리는 동맹국 우선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라는 논리였다.</p>
<p>작년 대선을 앞두고 친일발언이 극력 자제된 데는 이러한 그들 내의 약간 소란스런 토의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안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해소되었다는 점이 코미디다. 이상할 정도로 자기변명의 논리를 강하게 대입시키는 것이 바로 한국에 뿌리내린 ‘개독 ’의 속성이다.</p>
<p>이런 상태에서 친일정치세력은 다시 두 가지로 범위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일본의 선진화, 정상화에 대한 따라 배우기를 내건다. 그것이 바로 메이지 유신의 정신을 운운하는 것으로, 나아가 기독교 정신이야말로 작금 한국의 시대정신이라는 관점으로 발전해 나간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시대정신 ’을 뉴라이트의 새로운 이름으로 정했다. 그야말로 ‘구’시대정신을 들고 새로움을 운운하는 격이다. )</p>
<p>금년을 지배하는 이들의 주장은 다시 두 가지로 재정립이 되어 갔다. 첫째, 기독교는 본래 우파다. 기독교 선교를 방해하는 곳은 인권이 없는 곳이며, 망해야 되는 정권이다. 둘째, 기독교는 일본으로부터도 배울 점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친일이 아니라 지일이다라는 논리를 편다.</p>
<p>이들이 친일정치세력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보면, 종교와 정치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인가가 명확히 드러난다. 바로 정치다. 그래서 이들을 정치적인 친일주구 찬양파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정치를 통한 금권의 획득이라는 것이 바로 이들의 목표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을 절대 순수한 종교인으로 봐줄 수가 없다.</p>
<p>최악이라 할 수 있는 3대 요소가 결합해 버렸다. ‘친일 (혹은 친일의 사냥개) +정치 (그 중에서도 가장 저속한 정치) +(무자비한) 금권추구 ’라는 공식은 이들의 정신세계가 원래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사적 이익을 위한 금권으로 인해 더욱 병증이 깊어지고 있는 것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거기 ‘종교 ’라는 순수한 의미의 맑은 언어는 하나도 없다.</p>
<p>한기총을 비롯해서 서경석의 기독교사회책임, 김진홍의 뉴라이트, 금란교회 김홍도, 샘물교회 , 소망교회, 순복음교회 등 대형교회와 이에 동조하는 군소교회의 이른바 우파기독교라고 자신들을 정의하는 기독교 목사군들에게서 이 현상은 동일하게 보여진다. 이들에 겐 ‘대한민국 ’보다는 자신들이 정한 ‘3대 요소 ’가 바로 하느님이 되어 있다. 금권의 범주는 강만수 등에서 나타난 소망교회 인맥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권력지향은 ‘교회로부터 관직으로 ’라는 형식을 띤다. 거기서 다 추천이 되고 결정이 된다. 이 정도 수준이다 보니 종교편향성 이야기가 나오고 한 바탕 소란스러워졌지만, 이것이 전통적으로 한국이 인맥을 바탕하는 사회풍토가 있다고 나름 인정하는 습속에서 공개적으로 기독교를 드러내놓고 비호 하지 않는 한은 넘어가는 분위기도 나타난다. 요약하자면, 그들에게 종교는 완벽한 정치 경제의 도구가 되어 있다.</p>
<p>지난 6월 이후, 한국에서 종교전쟁이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들이 가진 이분법적 태도 때문이었다. 그들의 정치노선과 세력을 반대하는 모든 이들은 설혹 기독교 내부에서조차도 ‘사탄 ’으로 불려졌다. 그러면서 은근히 친일은 그들이 용인해야 하는 가치로 자리잡았다. 그나마 사회안전망 구실을 하던 다수의 기독교 인사들은 이런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기존 가진 사회사업의 이권 등에 종사하거나 세습화가 문제로 대두된 대형교회, 그리고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군소교회를 통합하는 단체결성 주체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서히 그들 세력권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거부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권 추구를 위해 이에 결합한 사람들도 적지가 않다. 점차 그들은 거대 세력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를 포장한 친일매국세력이다.</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38" height="357" width="279" style="float:none;margin:0;" /></p>
<p>(목잘린 단군상. 곳곳에는 ‘오직 예수 ’라고 시뻘건 락커칠 글씨가 도배된 곳도 있다. 불상 앞에도 ‘오직 예수! ’라고 십자가로 붉은 칠을 해둔 곳도 있다. 종교도 부정된다. 역사 도부정되고 오직 자기 종교만 산다? 이것이 순수하게 종족적 배타성의 산물이라면 인간이란 종[種]의 기원을 다시 새겨봐야 할 대목이 되었다.)</p>
</div>
<p>더군다나 ‘민족세력=민족종교 ’라는 형식으로 단군상 훼손 등의 행위도 벌어진다. 일종의 퍼포먼스다. 그것이 그들 내부 성원 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내부 적 결속과 단합, 외부확장이라는 두 목적으로 동시에 추구 되는 기괴한 ‘가면극 ’으로 활용되었 다. 여기에 정치색은 보이지 않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활동이 저변에서나 상부에서 모두 그와 연동된다고 보면 이것도 정치 , 그 중에서도 아주 가식적인 정치행위 에 해당한 다.</p>
<p>사실상 한국 사회 내에서 종교전쟁은 벌어진 상태다.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이들이 바로 정치계마저 누르고 한국 내에서 ‘친일정치세력 ’을 정치와 그 밖에 분야까지 확장한 장본인들이다. 이들에게 있어 친일의 대열에 참여하지 않는 종교에게는 불이익이 반드시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고집이 있다. 한국 내에서 너무 많은 교회, 한정된 교인으로 인해 세력 확장의 한계를 느낀 한국 기독교가 해외선교를 구실로 물꼬를 틀었지만 샘물교회 사건 이후 주춤 하다가 친일정권 속의 역할을 가지고 완벽히 재개되는 양상이다. 그러니까 친일이건 무엇이건 다시 사적 이익을 선택 하면서 한국 내 강력한 정치세력화를 통하여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으로까지 인식이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도금권을 활용한 한탕주의가 성행하기 시작한다. 지금 그들 내부에서 조차 경제적 정치적 이권을 두고 서로간의 갈등이 빚어질 정도다.</p>
<p>정권은 이들을 제지할 방법이 없다. 가뜩이나 낮은 지지율에서 이들 ‘홍위병 ’마저 자신들을 버릴 경우에는 지지도가 분해되어 버린다. MB정권의 미약한 지지도 가운데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 할 만큼 크다. 결집력이 있다기 보다는 정치 기독교의 배타성이 현실적으로 대입되어 버린다. 무감각으로 불려도 좋을 수준이다.</p>
<p>상대적으로 기독교 이외에서는 통제된 언론으로 형성된 지지층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대다수는 이에마저도 무관심하다. 이들이 기독교를 포장한 정치꾼들이건 어떻건 자신과 관계없으면 그만이라는 안일함이 넘친다. 그래서 이들은 더 기고만장 한다. 그들끼리 모여 기도하는 것을 보면 이건 서커스다. ‘기도 ’를 끝내고도 서로 웃지 않는 엄숙함은 한 편의 코미디를 연상하게 한다. 한국 기독교 그 가운데 최악의 집단이 된 정치기독교 의 수준이 딱 드러난다.</p>
<p>대운하 사업 재개에도 이들은 동원된다. 김진홍이 그렇고 서경석도 마찬가지다. 추부길이 가세하면서 덤벼든다. 이들의 자금원은? 마구잡이로 기업들에게 후원금을 요청한다 해도 지금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다른 곳에서 그랬다면 벌써 신문 한 페이지를 장식할 일도 그들은 소리 소문 없이 해치운다. 그래서 이들이 실세 정치세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신들은 극력 친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하는 짓은 딱 그걸 위해서 움직인다.</p>
<p>그래서 붙여진 명칭이 친일사냥개를 재차 찬양하는 형태, ‘개의 개 ’인 셈이다. 뜻이 같은 것도 아니다. 그저 같다고 서로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건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고 표현하게 옳다.</p>
<p>이들이 주축이 되어 형성하고자 하는 소위 우파네트워크의 본질을 여기서 다 파악할 수 있다. 정치세력을 공고화하게 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다른 종교, 자기 편이 아닌 측을 고소 고발도 할 수 있고, 심지어는 정부의 행정행위, 기업의 사회봉사자금 등을 무조건 꺼내게 만들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은 쓴웃음이 나올 일이다. 이게 대한민국의 2008년 오늘의 현실이다. 서글픈 일이다.</p>
<p>천주교가 나오고 정치기독교가 아닌 기독교, 불교 등이 거리로도 나왔지만 이들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 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바로 정치세력화 된 상태와 그렇지 않은 입장이라는 차이다. 한 쪽에는 금권이 절대적으로 등에 엎혔 고 다른 쪽은 그들이 밥그릇을 확장하는 걸 굳이 탓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밥그릇을 건드리기 전에는. 충돌이 있었지만 해소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서로 적절한 선에서 자신들의 선을 지킨다. 공정하려고 해도, 종교계 가 이미 세속화된 상태에서 윗선의 결정은 복잡하다. 이건 거의 양아치 집단과 비슷한 속성을 지니고 있어 상대할 가치를 못 느낀다는 어느 종교인의 말도 생각난다. 그렇지만 이들의 활동은 대단히 계산적이다. 그들은 정권이 추구하는 친일의 강력한 협조자이기에 지금은 정권이 가진 금권을 사용 할 자격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다.</p>
<p>겉보기에는 한 차례 종교편향으로 사회 전체가 들썩이며 종교전쟁까지 이른 상태이지만 그들이 동원한 공권력에 미치지 않는 ‘집단 ’은 존재하지 않는다 는 점만 확인되었을 뿐이다 . 권력의 힘과 통제된 언론까지 장악하는 독재형의 발걸음에 다른 종교들이 대체로 굴복했다고 보는 것이 옳은 시점이다. 그 이면을 다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정권의 힘이 종교 내부의 갈등이나 혹은 불법에 대해 개입을 했던 흔적마저 있다. 이른바 정보전쟁이다. 편 먹기는 정권과 개독이었지 다른 종교는 아니었다. 그러니 이것은 전쟁에 해당한다. 종교전쟁이었다.</p>
<p>과거 반독재나 민주 투쟁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공격에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에서 전쟁이 성립되기도 어렵다. 그걸 다른 종교인들은 ‘두고 보자! ’고 한다. 가만히 이 현상을 살펴 보면, 한국 사회 와 시대를 제대로 지켜오던 안전망에서 아무래도 종교는 빼놓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시점 같다. 두고 보자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다는 말을 떠올려 보면 그렇다. 친일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인지, 아니면 권력이 두려운 것인지 구분도 가지 않을 정도로 많이 비겁해진 종교가 한국에 있는 듯하다.</p>
<h3>13. 수탈전선의 사냥개 놀음<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4" title="toc_14" class="anchor" id="toc_14">#</a></sup></h3>
<p>‘전선 ’은 정확하게 형성되었다. 전쟁의 제 1 법칙, 적은 무조건 패퇴시켜야 한다는 것이 있다. 일본의 팽창주의 세력과 한국에서 이에 동조한 친일매국세력, 한국의 민초간에는 이렇게 아주 뚜렷한 하나의 구분되는 선(線)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각(知覺)하지 못하는 것 이오히려 대다수 한국의 국민들이라고 보여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p>
<p>사냥개를 활용한 침탈 방식은 매우 전통적인 수법이지만 현 시점에서는 기획만으로도 본다면, 효율이 아주 높 고 현장에서 잘 먹힌다. 친일정권의 수립까지 완료된 상황에서 친일정치세력은 사냥개로써는 더 이상 유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 기획자의 의도를 잘 따르고 있다. 그들도 신난 듯하다. 하는 일마다 그들의 의도대로 되고 있으니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p>
<p>1997년 IMF 시기를 겪으면서 호남지역을 모태로 한 또 하나의 민족기업으로 불리던 해태그룹은 해체되었다. 당시 박건배 회장은 탈세 등의 협의로 실형까지 선고 받았고 법정관리 에 이어 그룹 해체를 맞는다. 개인적으로 볼 때, 박회장은 90년대 중반부터 이미 중국 조선족 사회에 대한 연구 필요성을 절감하고 어떻게든 한국과의 좋은 관계유지가 가능한 방안을 찾는 데 열심이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민족주의 성향은 그와 그의 기업이 공격 당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고 본다. 물론 사업상의 공과는 분명 있다.</p>
<p>그러나 IMF 시기 한국은 많은 민족성향의 기업 가운데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던 세력을 잃었다. 그 여파가 지금 아주 강하게 밀려오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지난 십 년, 그들이 죽어가는 것을 방관했던 책임까지 물을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닌 바로 시대의 ‘안전망 ’에 대한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다.</p>
<p>2000년 롯데그룹은 아사히 맥주와 컨소시움을 이루어 해태음료를 인수하였다. 신문의 하루 경제면 일면을 차지할 수준의 이 사실은 그 후 조용히 묻혔지만 당시 아사히 맥주의 서울 등장은 많은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후소샤 새역사교과서의 공개적인 후원기업이면서 야스쿠니 참배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기업. 이것이 바로 아사히 맥주의 실체다. 당시 새역모 지지자 약 300여명 가운데서 단연 돋보인 인물이 아사히 맥주 전 회장이며 명예고문을 맡았던 나카조 다카노리(中條高德) 였다 . 물론 이 새역모 지지에는 미쯔비시, 쓰미토모, 가와사키, 도시바, 이쓰쯔 등 일본의 내노라 하는 제국주의 팽창시대에 덩치를 키운 대기업 과 그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들이 선택한 가장 편한 파트너십은 바로 롯데였다.</p>
<p>IMF 당시 부채비율이 적고 현금 유동성이 가장 큰 상태에서 재벌그룹 중 유일하게 자금난을 겪지 않은 기업으로 롯데를 꼽는다. 그 후 10년 동안 롯데그룹은 당시 6개이던 백화점을 23개로 확장했고, 1998.4 1호점(강변점)을 내었던 롯데마트는 현재 53개의 점포망을 가지고 있다 .</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42" height="216" width="280" style="float:none;margin:0;" /></p>
<p>(제2롯데월드와 같은 공사에 ‘로비 ’가 없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반대하던 공군참모총장까지 경질하고 밀어주는 사업이다. 그러나 더 자세히 볼 일은 이 롯데월드를 구실로 해서 일본발로 움직여지는 자금이다. 이것은 하나의 ‘꺼리 ’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경제역학으로 보면 말이다. )</p>
</div>
<p>9월 경제위기설로 논란이 뜨거울 때, 롯데는 오히려 제 2 롯데월드 건설과 관련하여 청와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군용기 항로조정 등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적극 검토하는 방향으로 굳혀지는 이권 획득에 열심이었다. 공군참모총장이 경질되고 롯데월드는 이제 프로젝트 자체가 이륙직전이다. 거기다가 지난 9월 2%대의 초저금리를 일본에서 6천억 원 상당 조달하는데도 성공했다.</p>
<p>호텔롯데, 호남석유화학,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기공 등 계열사 대부분이 일본발 자금원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던 것이다. 물론 일본발이었고, 그 자금원도 그렇게 드러난 것처럼 투명하지는 않다. 밝혀진 소스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한국 내에서도 이미 자본축적은 이루어져 있는 상태다. 2006년 롯데쇼핑의 상장으로 당시 3조 6,000억원의 현금자산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진다.</p>
<p>한국에서 롯데그룹은 호텔롯데를 지주회사로 하고 있다. 일본에 있는 ㈜롯데홀딩스가 19.2%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사실상 롯데호텔 지분의 100%를 일본롯데에서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사실상 일본기업이 한국에 있다고 봐야 한다.</p>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20" height="204" width="552" /></p>
<p>(2008.9.22 현재 롯데의 일본발 자금 확보 리스트)</p>
<p>&nbsp;</p>
<p>2008.6.25 신동아와 롯데그룹의 황태자인 신동빈 부회장간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는 1977년 아오아먀 카쿠인대를 졸업하고 미 컬럼비아 대에서 MBA를 했다. 그리고는 노무라 증권에 1980년 입사, 1988.2까지 노무라 영국지점에서 근무하기도 했다.</p>
<p>그의 아버지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의 경영철학을 신 부회장이 밝힌 바에 의하면 이런 것이다.</p>
<blockquote>
<p>“기업가는 경영에만 집중해야 한다. 돈을 벌어 국민에게 봉사하는 데서 재미를 찾아야 한다. ”</p>
</blockquote>
<p>노무라 증권, 노무라 연구소는 일본의 ‘세력 ’이 활용하는 매우 강력한 브레인 그룹에 해당한다는 건 대체로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심지어 한국 내 주요기업 수 천개의 인맥까지도 관리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 그만한 관리를 하는 곳은 사실상 없고 보면, 이것은 누군가 빤히 안방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 살아온 꼴이다. 그곳으로 보낸 신격호의 결정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생각해본다. 그의 결정이었을까, 아니면 ‘그들 ’의 요구였을까? 그 둘이 합쳐진 것일까? 복잡하다.</p>
<p>아마도 한국 내의 그룹 가운데서 가장 짜기로 유명한 곳이 바로 롯데라는 소문은 틀린 게 아닐 것이다. 롯데는 최근 신사업으로 금융, 석유화학 쪽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고 한다.</p>
<p>한국 사회에서 ‘친일 ’은 이처럼 기업의 얼굴로도 다가온다. 이를테면 일본 베이스의 기업 가운데서 롯데는 공식적인 일본 극우와 우익 , 즉, 세력 을 연결하는 한 채널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한 평가다. 차라리 기업의 얼굴로 공개적인 창구가 되는 것은 뉴라이트 집단과 같은 사냥개보다 좋게 보이는 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이 서글프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꽤나 무서운 공식적인 방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p>
<p>객관적으로 보면, 이러한 활동은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없거나 간에 정당한 기업행위이지만, 김진홍, 서경석, 신지호, 안병직, 이영훈 , 박효종 류의 활동은 그야말로 사냥개라는 표현 이상으로 그들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금호아시아나 그룹 박삼구 회장이 한일해저터널을 뚫자고 외치면서 친일전선에 뛰어드는 모습에서 느끼는 비애감도 이미 다른 기업들이 그런 노선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버리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 점에서는 다른 기업이라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들 나름으로 이런 메커니즘을 적극 활용한다. 기업은 아무리 정의를 떠들어도 죽지 않으려고 모든 선택을 다 하는 기계다. 친일마저도 기업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도 선택 가능한 대안이 되는 것이 현실이니까.</p>
<p>그러나 수탈전선은 세계금융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 속에서 서민들에게 집중적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권이 그렇게 몰고 가고 있다는 걸 쉽게 눈치챈다. 대기업과의 프랜들리, 3% 절대 부자층과 기득권에 대한 지나친 배려, 중소기업에 대한 무관심, 서민에 대한 욱죄임 강화 등의 현상은 이 정권이 일단 경제라는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의 완전한 보편화를 꾀하고, 그를 통하여 국민을 노예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p>
<p>그러고 보면 한국 내에서 이른바 민족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남아있지 않다. IMF 이후 금융시장의 개방 이후, 주요기업은 외국인 지분율이 거의 절반을 넘기는 곳이 많다. 한국경제 자체가 국제화되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구도 자체로만 평가한다면 한국경제는 더욱 예속화되는 상태가 되어 있다. 당연히 민족기업이 뿌리내릴 공간은 없다.</p>
<p>이 상태에서 지난 9월 이후 묘한 분위기 하나가 감지되었고 그것은 지금도 꾸준히 진행 중에 있다.</p>
<p>대북사업의 창구이자 사업자로 지난 10년을 이끌어오던 현대그룹의 현대아산 을누군가 매입하려고 시도한 흔적이다. 이것은 최고 경영진까지 타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부에서 다각적인 검토과정에서 포착된 하나의 사건이지만, 7월 금강산 피격사건 이후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11월부터 는 상당수 직원들이 이른바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는 회사를 누가 매입하려고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인 내용이다.</p>
<p>만일 이것이 일본 발 혹은 그와 유사한 접근 시도였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인가?</p>
<p>일본의 입장에서 금강산과 개성은 매우 유쾌하지 못한 장소다. 지난 십 년, 그곳의 효용성은 둘째치고 남북한 간의 접합이 가능한 요소로 유지되어온 것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 지구의 생산활동이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 둘 모두에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는 현대아산이 다른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곧 이 사업의 책임자 변경과 협의과정에서 변질 또는 단절을 의미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p>
<p>북한의 입장에서는 현대가 아닌 다른 사업자를 인정하기가 쉽지가 않 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조건은 매우 까다로울 것으로 보여진 다. 그 사업에 정주영-정몽헌이라는 두 사람의 목숨값이 달려 있고, 그것은 사업이라기 보다는 당시의 정치행위이자 또한 현대일가의 의지가 서린 곳이기도 하기에 이미 경제적 대상으로만 파악하기도 어렵다. 북한 군부가 개성공단의 폐쇄 문제에 직접 조사를 진행하 고 강력한 통제를 하겠다는 전통문을 보내는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그곳은 아직 ‘정치 ’의 땅이지 ‘경제 ’는 아니다.</p>
<p>그런데도 매입의사를 타진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이며, 그것이 마치 검은 머리 외국인처럼 일본 발 한국인이라면 이야기는 흥미로움을 떠난 것이다.</p>
<p>9월경 이후, 다수의 한국기업들이 일본 발 자금 사용에 대한 타진을 받았다. 엔케리 자금이 회수되는 과정에서 엔화 대 달러 비율이 요동치는 현상 가운데서 제안된 이러한 움직임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접촉이 이루어졌다. 이를 단순한 경영행위로만 보기에 석연치 않은 것은 이 자금원의 대부분이 일본의 극우와 우익 세력을 근간으로 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적게는 약 한화 100조원에서 130조원 수준이 한국에 투입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흘러 다닌다. 자금원이 어디인지조차 잘 밝혀지지 않는다. 국제금융을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이런 형식의 자본은 바로 정치적 목적을 띤 자금, 철저하게 그런 용도로 가는 비자금의 냄새가 난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이건 일본경제가 어렵다거니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자금이야말로 그들 ‘세력 ’이 사용하는 통치자금이다.</p>
<p>현재의 코드는 확실히 ‘경제 ’다. 그것으로부터 정치와 사회를 장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엄밀히 시대를 포획하려는 노력에 해당한다. 돈으로 시대를 산다? 가능한가? 가능하게 접근하는 중이다. 막을 수 있는가? 막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이미 그에 동조하는 세력도 늘어간다. 결국 10%를 위한 움직임이다. 90% 국민은 여기에서는 완전히 멍충이나 알지 못하는 메트릭스의 노예가 된다.</p>
<p>이면에 숨겨진 사실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겨를도 없는 경제위기의 긴박한 상황에서 현금유동성과 투자, 그리고 신사업의 전개, 정책사업의 결정과 해외투자유입, 그리고 공기업 매각과 민영화 시도라는 이 방안이 함께 어우러지는 단계다. 그 속에 일본이 있다. 사냥개들이 아주 발 빠르게 움직일 시기이고, 그것은 침탈 가능한 요소를 점검하는 첫 시발점이 될 것이다. 착착 계획에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p>
<h3>14.&nbsp;얼치기, ‘똘추 ’, 헛똑똑이가 더 힘센 나라에 살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5" title="toc_15" class="anchor" id="toc_15">#</a></sup></h3>
<p>미래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은 항상 공존한다. 그러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고 건조 하다 할 수준에서 하는 게 옳다.</p>
<p>내가 일본의 침탈 노선에 대한 이야기를 밖으로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6월 30일부터다. 극히 소수에게 이 관련 내용을 전달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것은 그 때 당시 정리된 것이 아니라 이미 14년이란 긴 시간 동안 그들을 관찰하면서 얻어진 결과였다. 거기에는 낙관과 비관이라는 양자택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침략과 대응 ’이라는 전쟁의 룰만 존재했다. 결과는 ? 불행하게도 한국의 오늘 전 사회 역량으로도 일단 침략을 막아내거나 대응하지 못할 수준이라는 전제로부터 이 이야기는 출발했다는 걸 미리 밝힌다. 졌다고 인정하는가? 그렇지는 않다.</p>
<p>그로부터 다양한 ‘변수찾기 ’에 골몰했었다. 이를테면 이 상황 자체를 변화시킬 수는 없겠으나 흔들 수 있는 방안, 그 속에서 틈을 찾을 수 없나를 보는 시도였던 셈이다. 쉽지 않았다. 그만큼 상대는 ‘친일의 재구성 ’자체를 너무도 탄탄하게 완성한 상태였고, 이미 정치세력으로 군림하는 단계였기에 부딪힘도 쉽지 않았다. 이를테면 그들이 주장하는 ‘국민화합 ’은 듣기에 좋으나 사실상 ‘국민의 친일화 ’였고,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국민의 순 복종 요구 ’라고 하는 편이 옳은 시점이다.</p>
<p>촛불민심의 좌절은 예정된 것이었다. 집단지성이라고 칭찬의 띄우기 한 수에 급속하게 추락하고 말았다. 그 정도 수준의 역량과 대응으로 이들이 준비한 것을 뛰어넘는 것은 처음부터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친일정권은 두 차례의 담화와 사과라는 형식으로 전형적인 의도된 물타기를 시도하면서 슬그머니 뒤로는 초강수의 강압 수법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공권력이 시도 때도 없이 동원되었다. 거기에는 전형적인 선전선동의 장악이라는 여론몰이도 한 몫을 했다.</p>
<p>지금에 와서 보면, 친일정치세력이 가진 묘한 저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상대적으로 순수했거나 혹은 마음만 있지 전략은 부재한 촛불민심은 이리저리 끌려만 다니다가 제풀에 지친 꼴이 되고 말았다. 천주교, 불교 등 종교계의 등장도 이들 친일매국세력의 밀어붙이기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다. (그들이 부인해도 현상은 그렇다. 부인하지 못한다.) 오히려 민심이 더욱 좌절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오점으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 상식 적 감성적 접근과 대응 이 초래한 예정된 수준의 패퇴다.</p>
<p>촛불이 등장한 지난 반 년 사이 나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보았다. 현재도 그 패턴에 대한 관찰은 이루어진다. 그 가운데 있었던 가장 최악의 몇 가지 상황을 정리해보고자 하는 뜻은 간단하다. 그 함정에는 빠지지 않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는 때문이다. 밑바닥으로부터 출발한 지각(知覺)된 상황을 생각해보자는 의미다.</p>
<p>우선 ‘얼치기 ’가 있다.</p>
<p>사전적인 해석으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치나 조금씩 뒤섞여 있는 것을 말한다. 아는 것은 많은 데 본질을 모르는 경우에도 이런 용어는 사용된다. 여기서도 그 뜻으로 보면 된다.</p>
<p>인생을 살아가면서 일정 수준의 나이를 먹으면 고집이 생긴다. 사고가 고착화 되는 셈이다. 자신이 믿는 것을 끝까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신념이라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할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p>
<p>이런 대화를 한 번 보자.</p>
<blockquote>
<p>“친일은 좋은 겁니까, 아닙니까? ”</p>
<p>“그거야 배울 게 있으면 배워야지. ”</p>
<p>“아니, 그 사람들이 다시 한국을 자기네들의 식민지 노예처럼 부리려고 한다는데 거기 동조하는 걸 말하지요. ”</p>
<p>“그럴 리가 있나! ”</p>
<p>“그런 경우가 있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p>
<p>“에이! (말도) 안 되는 일을 말하면 되나! ”</p>
</blockquote>
<p>이 대화는 여러 각도로 변형 되어 질의와 응답 으로 이어졌지만 결과는 항상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고정인식이 자리했다. 진지한 토의가 불가능했지만 그의 마지막 한 마디는 나를 아주 기겁하게 만들었다.</p>
<blockquote>
<p>“그런데 힘 빼지 말고 딴 거나 해야지. 사업하고 장사하고 돈 버는 거 말이야. ”</p>
</blockquote>
<p>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 지식 수준을 가진 사람과 대화를 해서 설득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이 대화 패턴은 그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부류들이 많았다. 오히려 마지막 말은 거의 한결 같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p>
<p>‘똘추 ’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쓰는 ‘또라이 ’라는 말에 ‘추하다 ’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말귀 못 알아듣는 답답한 사람을 가리킨다.</p>
<blockquote>
<p>“그거 말이야, 일본이 돈 들고 온다면 우리가 반겨야지. 어차피 국제사회에서 노는 물인데, 일본돈 미국돈 가릴 것 있나? 우리만 잘살면 되는 거지. 그 놈들이 돈 가지고 여기 투자하면 돈 함부로 빼갈 수 있나? 우리가 잘 쓰면 되는 거지. 거름도 잘 쓰면 돈이 돼! ”</p>
</blockquote>
<p>지식과 관념은 나이가 먹어 갈수록 더 성숙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많이 파괴가 된다. 이를테면 이 패턴이야말로 MB가 아니면 박근혜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유형이다. 본질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 그리고 자신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보호본능과 함께 자신감을 펴는 경우다. 다른 상황을 알아볼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추하게 느껴지는 부류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 말투를 지식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바꾸어봐도 내용은 똑같다.</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394" height="215" width="264" style="float:none;margin:0;" /></p>
<p>(3S 공화국. 우리는 자꾸만 어딘가에 빨려 들고 있다. 그래서 건조한 진실과는 자꾸 멀어진다. 그것은 때로 심각하게 조장되기도 한다. 마치 최면에 걸려든 것처럼 인지부조화는 깊어진다.)</p>
</div>
<p>‘헛똑똑이 ’는 지식을 가진 실체다. 그런데 잘못 배운 경우다. 이념이나 혹은 개념을 떠나서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이해에 포커스가 맞추어진다.</p>
<blockquote>
<p>“우리나라가 말이야, 그래도 연간 최종수요로만 봐도 소비가 600조가 넘고, 투자도 근 300조야. 수출도 400조는 너끈히 하잖아. 그런데 일본에서 돈 100조 들어온다고 해서 그걸 감당 못할 일은 없어. 그러니까 일본에서 1,000억불 정도 가지고도 서울 잡아먹지 못하니 안심해. 모르지 한 3,000억불 들어와서 헤집고 다니면 표시가 나기는 하려나? ”</p>
</blockquote>
<p>경제지표에 대한 약간 이해가 가진 절묘한 함정에 빠졌다. 객관적 대비는 되지 않지만 IMF 당시 200억불에 모든 금융시장이 해체가 되었고, 산업구조 조정은 물론이고 사회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 버렸다. 유동성이 가진 함정 가운데 최악은 단 돈 1달러가 없어도 파산은 파산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국가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이른바 대마불사론이 아직도 존재한다. 한 번 깨어지고도 정신을 못 차리게 된 것은 이유가 있다고 보여진다.</p>
<p>적어도 일본의 침탈을 이해하는 데 있어 추론은 금물이다. 지금은 시작된 단계가 아니라 한참 진행 중이고 또한 정착이 아니라 고착화를 넘어서는 수준까지 이르렀다.</p>
<p>그래서 때로는 그저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나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서 펴는 논리를 들을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p>
<p>더군다나 한국 사회에서 위에서 언급된 저런 유형의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아주 높다. 제대로 된 대응을 해야 하는 안전판은 원래 정부가 가진 것이지만, 친일정권은 그것을 스스로 무용지물화 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오히려 막아야 될 기관과 사람이 그것을 외면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그것을 시대조류라고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다.</p>
<p>어쩌면 이 상황은 이미 한국의 현 시대, 사회가 도저히 견뎌내지 못하게 기획되고 설계된 국면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있지 않으면 1910년 당시 대한제국이 겪었던 그 지식인들의 입장보다 못한 인식으로 이 시대를 산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p>
<p>저런 유형의 사람, 그보다 약간 차등이 있다고 해도 거의 엇비슷한 유형이 늘어난 상태다. 그 매너리즘을 극복하지 않는 한, 일본 기획자가 당긴 화살을 피해나갈 재간은 없는 한국 사회의 오늘이다.</p>
<h3>15. 기회주의자들의 아귀다툼<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6" title="toc_16" class="anchor" id="toc_16">#</a></sup></h3>
<p>친일정권이 들어서자 친일정치세력은 본격적으로 사적 이익을 위한 매국을 서슴지 않을 기세다. 이들에게는 주둥이로 하는 역사와 시대는 있지만 정작 그들에게 애국과 애족이란 단어의 의미를 물으면 대답을 잘 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 스스로도 자신이 훼절(毁節)했음을 안다.</p>
<p>11월 6일, 주요언론들에서 나온 기가 막힌 기사의 제목들이다.</p>
<blockquote>
<p>“김진홍 뉴라이트 재단 상임이사장 ‘내년 (대운하) 첫 삽 떠야 ’”</p>
<p>“안국포럼 의원 7명 ‘지역균형 대안은 대운하 뿐 ’”</p>
<p>“박형준, ‘대운하 미뤄진 적 없어 ’”</p>
</blockquote>
<p>가만히 보면, 이들에게 대운하는 거의 신앙처럼 비춰진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런 집착을 만들어내는가? 이 또한 간단하다. 원래 그리하려고 모든 계획을 몰아오고 있었다. 전형적인 토끼몰이 방식이다.</p>
<p>대운하의 메커니즘은 한국 경제의 포크레인 화 (化) 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 그렇게 각도를 본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보질 않는다. 한 템포가 일반의 의도를 넘어서 있다. 한국 국민 자체를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장기적 건설계획에 함몰되게 만들면서 그 속에서 ‘그들 ’의 이익 과 국민의 둔감함 을 챙기려는 속셈 이다 . 그래서 “욕 먹어도 해야 할 일은 해야한다 ”는 논리가 등장한다. 이건 대체로 급할 때 나오는 용어다. 대운하야말로 국민적인 컨센서스가 없으면 해서는 안 되는 사업 중에 하나다. 왜 고집을 피우고 하려고 하는 것일까?</p>
<p>이것은 대운하로부터 한일해저터널로도 이어진다. 건설이라는 컨셉 자체만을 이해하는 MB가 박근혜를 제치고 뉴라이트 집단의 힘을 빌어 대선후보가 되었던 이유기도 하다. 활용하는 방향은 그 때 이미 정해졌었다. 그걸 국민들만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p>
<p>미국산 쇠고기 파동의 실질적 주역이었던 민동석 전 농업통상정책관 소식도 들린다. 그는 아마도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도 시원치 않을 정도로 공무원이란 모름지기 정권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 국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물론 나쁜 쪽이다. 그가 국회 청문회에서 했던 “쇠고기 협상은 미국의 선물 ”이라는 말은 바로 그 자체가 미국을 향한 사대주의에 빠진 외교관료의 모든 것을 보여준 말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다시 외교부로 복귀해서 ‘외교역량평가단장 ’이라는 이름도 거창한, 그리고 어떻게 일할 건지 뻔히 보이는 자리에 특채가 되었다. 불행한 일이다.</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40" height="465" width="279" /></p>
<p>(친일의 가식. 이 소녀는 과연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 친일 속에서 반일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 거짓은 이렇게 성숙이 아주 빠르게, 잘 포장되어 우리 앞에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p>
</div>
<p>아무래도 그의 이름 석 자는 한국 역사에서 묘한 위치에서 기록될 것이 틀림이 없다. 과거와 다른 것은 오늘의 시대는 기록이 아주 세밀하게 작성 되어진다는 점이다. 누군가에 의해, 그는 그렇게 기록될 사람처럼 보인다.</p>
<p>코미디는 쭉 이어진다.</p>
<p>조갑제. 그는 앞서 시대 시리즈에서도 보았듯이 반공보수 우익이라는 간판 아래서 친일을 마구잡이로 수용하면서 이제 3류 글쟁이 수준에 머물기 시작했다. 그가 즐겨 해오던 ‘(무엇이건) 기록하기 ’와 ‘(무엇이건) 사실에 입각하기 ’라는 원칙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양아치에 정신병자 수준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사실 ’을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개그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도 별로 통하지 않는다. 그런 그 에게 전여옥은 ‘신세를 졌다 ’고 했다. 초록이 동색이다.</p>
<p>버락 오바마의 미 대통령 당선은 그에게 심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주었던 모양이다. 거의 패닉상태의 글들이 터져 나온다. 오바마를 좌파로 부르지 말자는 글에서는 연민의 정마저 느껴진다. 그 글이 반향을 일으키자 그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것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p>
<blockquote>
<p>“미국정부의 힘을 빌어 한국 안에서 뭘 해보겠다는 세력은 좌이건 우이건 사대주의자 들이다. ”</p>
<p>“한반도의 운명은 한국민이 결정한다. ”</p>
<p>“우리의 운명은 우리 힘으로 결정한다. ”</p>
</blockquote>
<p>그는 일본에 대해 서는 지금껏 ‘친일이 친북보다 낫다 ’고 주장해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과 일본이 선진국이며 우리 운명의 동반자라는 표현까지도 사용했던 자다. 그랬던 그가 이제 사대주의와 자주적 운명을 거론한다. 그는 한글의 복잡한 어의(語義)를 잘 골라서 사용한다고 스스로는 생각할지 모르나 크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 인정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늘 모순된 상태가 등장을 한다. 정신박약(精神薄弱)같다.</p>
<p>되묻고 싶은 것이 있다.</p>
<p>“당신은 친일입니까? 그것은 사대주의와 어떻게 다른가요? 한반도와 우리의 운명을 일본의 손에 맡기고자 시도했던 적은 없었나요? 그런 세력과 한 이불을 덮고 잔 적은 진정 없었던가요? ”</p>
<p>정작 일본은 한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버락 오바마의 등장 이후를 경계한다. 미국의 경제사정이 결코 단기 내 회복이 어렵다는 사실, 그리고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는 와중에서 어떤 생존법을 선택할 것인가에 골몰한다. 당연히 그들의 계산법에 한반도가 들어가 있다. 그것은 국가가 아니라 바로 일본의 극우와 우익, 그리고 그 조정자와 기획자라는 세력을 바탕으로 한다. 쉽게 꿈을 버릴 자들이 아니다.</p>
<p>생각하기에 따라 이런 상황에서 남과 북의 관계는 서로가 너무 엉뚱한 방향을 쳐다보고 있는 우스운 꼴이라는 느낌도 들 수 있다. 그 점에서 보면, 한반도 문제의 주도세력은 남과 북 가운데서 전혀 남쪽이 되지 못할 여건이 조성되어 버렸다. 이미 친일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어떻게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한반도 문제 접근이 가능하겠는가. 그러니 대화하자고 하면서도 요리조리 도망을 친다. 그걸 ‘보수 ’와 ‘원칙 ’으로 포장을 한다. 시간벌기다. 자주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p>
<p>운명의 결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친일정권까지, 나아가 친일정치세력의 판도가 정착의 단계로부터 고착화, 그리고 정상화 단계까지 이르게 될 것을 염두에 두고 가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이 문제의 해법을 서울로부터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북한 또한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이 사태를 방관하는 것은 남한의 친일을 공조하는 것으로 평가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니 강하게 들이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데도 계속 강공을 퍼붓는다. 거기에 익숙해진 사람들 같다. 오히려 비바람을 몰아치면 옷 단추를 채워 버린다. 원래 옷을 벗어볼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은 더 겹쳐 입는다. 그걸 모른다면? 그건 그들의 시대 판단력 미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들 나름대로는 생각이 있다 할지 몰라도 결과는 남한의 친일화를 가속화 하는 데 도움을 주는 행위가 되고 있다.</p>
<p>오바마의 당선에 허겁지겁 한미 공조를 통한 대북정책을 외치고 있지만 그것도 속보이는 짓이다. 미국은 그들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북한을 포기하기 어렵다. 일본, 중국이란 변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까지 고려해주면서 동북아시아에 있어 그들의 입지를 깨트리는 어리석음을 선택할 개연성은 거의 전무하게 보인다. 한미간에 원화/달러 간의 통화스왑이 결정된 이후, 한국 경제는 정책뿐만 아니라 그 행보에서도 미국의 손을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다. 강하게 결속된 커플링이다. 원래도 그랬지만 더 심해진 셈이다. 물론 그 배후에는 IMF로 공여되는 일본 자금이 있고, 별도로 중국, 일본과의 원화/엔, 위엔의 통화스왑도 진행 중이다. 이 부분에서는 미국이 일본의 얼굴마담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그 대가도 있다. 그래서 IMF에 10조엔도 지출한다. 큰 마음 먹은 게 아니라 그렇게 저렇게 담합국면이 이루어진다고 본다.</p>
<p>흔히 음모론을 운운하면서 서 푼어치 지식을 그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지만, 지금은 국가간의 겉모습도 중요하고, 또 이면의 세력간의 흐름도 더 중요한 시기다. 모른다면 어쩔 수 없이 대응하지 못한다. 안다고 해도 판단에 따른 행동을 하지 못하면, 세력을 읽을 뿐이지 그에 저항하지도 못한다. 그 일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 정권인데, 현재의 한국 을 장악한 정권은 오히려 이를 친일을 중심으로 친미와 결합된 수구(守舊)로만 모두 해결하려고 한다. 방법이 나올 턱이 없다.</p>
<p>그러니 이 비밀이 알려질까 더 두려워서 유언비어 유포를 막는다는 미명 하에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유형의 ‘인터넷 통제 ’를 법제화 하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게 단속한다는 중국마저도 이것은 법의 영역이 아니라 암묵적인 처리를 할 뿐인데, 버젓이 드러내놓고 법으로 만든다고 하는 발상법 자체는 경악 수준을 넘어 한편 유치하기까지 하다.</p>
<p>언론장악에 대한 방송의 반발이 만만치가 않다. YTN이 여전히 100여일 넘는 농성을 이어가고, KBS도 관치개편에 반발해서 기자, PD들이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벌써 다수의 희생자가 나온다. 정권의 야욕으로 인한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인 조치가 인력과 사회 역량의 낭비 를 확산하며 자행되고 있다.</p>
<p>사회가 어렴풋하게 친일정권과 세력의 의도를 눈치채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현재의 문제와 어떻게 연동되는 것인지를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은 듯하다. 정보의 빈곤도 그렇지만 이들이 얼마나 의도를 드러내는 것과는 달리 그 내부에서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치밀했다는 반증이다.</p>
<p>그것을 믿고 친일정치세력이 본격적인 매국에 나서고 있다. 그들의 눈에는 백성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시대도 없다. 자신들이 믿는 것이라고는 현재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반발이나 저항을 강력하게 받을 경우는 후퇴할 구석이 없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러므로 강압도 순리적이지 않다. 무리가 가니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파열음이다.</p>
<p>그들 내부에서도 금권에 해당하는 자리를 둔 다툼이 격렬해지는 모양이다. 뉴라이트 조직 내부의 갈등으로 김진홍까지도 규탄 받 았던 조짐도 있다. 그는 다시 이를 회복했다. 그가 조정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란은 재물을 앞에 둔 도적떼들끼리의 다툼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도 몹시 치열하다는 소리가 들린다. 힘이 강해질수록 드러나게 될 내부의 분열은 있다는 얘기다.</p>
<p>건설사에 대한 4등급의 구분지원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건설회사들은 분양가 60% 조건의 정부환매를 요청하기까지 이른다. 이건 정상적인 경제행위가 아니라 딱 잘라서 ‘로비전 ’이 벌어졌다고 보면 된다.</p>
<p>혹자는 경제지표를 백날 뒤져보느니 그들 친일정치세력의 누가 어떤 자리로 움직였는가에 따라 주식도 사고 투자도 하면 틀림이 없을 거라는 예측까지 내놓는다. 정치가 경제를 장악한 잣대가 된 것이 아니라 세력이 경제를 포획한 상태의 기준점이다. 이것도 결코 틀린 이야기가 아니란 것은 곧 증명될 전망이다. 경제학은 한국에서 일단 무너졌다. 정치가 실물경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는 정치에 자양분을 먹고 자라는 괴물이 되는 중이다.</p>
<p>박근혜가 수도권 편중개발뿐만 아니라 지방의 균형발전을 거론하고 나서자 공성진이 이제와 그렇게 말하는가라고 맞받아치고 나왔다. 자중지란이 벌어진다.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이다. 서로가 노선이 조금씩은 다르다. 그렇다고 확 갈라서지도 못한다. 작년부터 이어져온 일련의 과정에 그들 모두가 친일매국정치세력을 자신들의 배후에 두었고, 이제 그들이 앞줄에 나와서 설치는 환경에서 어떻게 내부 분열이 완전한 갈라서기로 표출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특단의 상황이 오면 모를까 지금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 중에는 암묵적인 ‘기대 ’도 한 몫을 한다.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정국이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결정을 내리는 것이 지연된다. 그래서 모든 일들이 대체로 팬딩 국면으로 치닫는다. 소소한 갈등이 큰 파국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p>
<p>이것이야말로 이 시대 영악하면서도 포장에 능숙한 ‘기회주의자 ’의 참모습이다. 그 판을 만들어낸 상태에서 국민들을 도저히 빠져 나오기 어려운 낙오자의 그룹들 로양산 해놓고 그제서야 계몽하고 다루어나가겠다는 고약한 심보가 악취를 온 사방에 풍기는 하루 가 이어진다 .</p>
<h3>16. 영웅은 이 땅에 살지 못한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7" title="toc_17" class="anchor" id="toc_17">#</a></sup></h3>
<p>2008.11.5 나는 평화방송을 비롯한 몇몇 언론을 체크하면서 강한 확신을 하게 되었다. 친일매국세력은 정치이건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서울의 촉수를 ‘김진홍 ’으로 선정해두었다는 사실을 재확인 하였다. 그가 급하게, 그러나 급하지 않은 척하면서 나온 배경은 차치하고, 그는 확실히 11월에 일본 기획자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관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p>
<p>전날 추부길의 ‘한국건설업 GDP 30% ’발언과 대운하 추진에 이어 김진홍은 대운하부터 언급을 시작한다.</p>
<blockquote>
<p>“대운하 사업은 절대적으로 해야 하는 사안이다. 강경하게 지지한다. ”</p>
</blockquote>
<p>그가 ‘강경 ’(强硬)을 들먹일 정도로 이 사안 자체가 여기서 꺾이면 큰 일이라는 판단은 옳은 듯하다. 시한도 정했다. 내년부터 첫 삽을 떠야 한다는 거다. 그의 논조는 MB를 단순하게 지원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고 방향을 지시하는 것 같았다. 친일정치세력의 수장다운 표현법이었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그의 상위인 일본 기획자의 지시를 받았다는 판단을 강하게 확인 하기에 족했다.</p>
<p>박근혜가 균형발전에 대한 반발을 한 것을 두고도 그는 말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작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그가 MB-박근혜 가운데 선택의 키를 행사했었고 앞으로도 박근혜는 자신의 손아귀에 있어야만 차기를 노릴 수 있다고 경고하는 수준으로 봐도 무방했다.</p>
<blockquote>
<p>“너무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하는 거 아닐까요? ”</p>
</blockquote>
<p>다음 차례는 ‘조갑제 구하기 ’였다. 거의 패닉에 빠져버린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리지 않는다면 한국 내에 어렵게 형성해둔 ‘반공 극우보수 집단 ’을 놓칠 우려가 있다는 불안감 이그에게도 엿보였다. 그래서인지 말투 자체가 아예 우기기 수준으로 흘렀다.</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50" height="265" width="277" /></p>
<p>(한반도 대운하. 이것은 이 시점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절대변수로 나타났다. 추진하는 자, 막는 민심, 그래도 추진해야 하는 자가 뒤섞인다.)</p>
</div>
<blockquote>
<p>“오바마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국 쪽 대북정책이 수정될 필요는 있을까? 서로 비슷한 것 같다. ”</p>
<p>“미국 뭐 바뀌는데 우리가 (대북정책을) 수정해야 된다, 그런 거는 성급한 판단 아닐까 생각한다. ”</p>
</blockquote>
<p>이 정도에 이르면 그는 대북 전문가정도가 아니다. 김진홍은 90년대부터 북한 측과의 접촉을 통해 북한 돕기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이를 통해 자신의 두레 공동체의 ‘사세 확장 ’을 할 수 있었다. 그가 당시에 했던 이른바 ‘설교 ’기록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거의 눈물로 호소할 지경이었다. 당시 그는 한 번 북측 사람을 만나면 선뜻 몇 만 불을 보태 쓰라고 내놓고 간 적도 있을 정도로 소위 ‘화통한 ’인물이었지만 어느 시점부터 그는 서서히 일본으로 기울어졌다. 일본태생의 한계인지 혹은 이점인지는 모를 일이다.</p>
<p>11월 4일 미 대선을 경계로 해서 일본의 조급증과 한국 내 친일의 재구성을 통해 형성된 친일매국전선 둘 다가 일정 수준 흔들렸다는 징조를 김진홍은 확인해준 꼴이 되었지만, 한국의 반응은 전혀 엉뚱한 쪽으로 흘렀다. 그의 행위가 마땅하게 여겨지지 않은 사람들은 그를 소위 이랬다 저랬다 하는 ‘또라이 ’라는 쪽으로만 비난하는 데 열중 하는 편이다 . 물론 김진홍이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찬양 ’했다. 두레교회, 두레공동체가 컬트화 된 것은 아닌가 생각마저 들 정도다. 선명하게 그의 행보가 보여지는 시점은 자주 올 듯하다. 그는 그 역할을 한다.</p>
<p>이 거대한 두 개의 흐름은 아직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한국 보수우익의 좌장(座長)을 해보려고 하는 김진홍은 사실상 일본 기획자의 지시를 받는 ‘친일매국세력의 한국 내 사냥개 수괴(首魁) ’로 이미 등극한 상태 다. 그 점에 대한 명확한 인지를 하지 못하다 보니 생기는 간극(間隙)이 나타난 다. 말로 해서 될 일이 아닐 정도로 이 현상 자체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가 건드린 세 가지의 주제야 말로 바로 오늘 한국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보여주었으니 말이다.</p>
<p>한국에는 왜 이 시점에 ‘영웅 ’이 없는가?</p>
<p>MB는 간웅(奸雄)의 수준이라도 된다고 보는가?</p>
<p>김진홍은 도대체 뭐라 이름 붙이는 것이 좋을까?</p>
<p>나는 사냥개만 우르르 몰고 다니는 사냥꾼이 산중의 짐승들과 또는 산과 들판의 섭리(攝理)를 이해한다고 보지 않는다. 진정한 사냥꾼은 나중에 가서는 손에 아무 무기 도 들려져 있지 않지만, 그 수준을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사냥개를 버리고 산과 들, 그리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사냥꾼이 되기를 바랄 뿐이지만, 그 스스로도 사냥개가 되는 걸 마다하지 않으니, 이걸 굳이 이기주의라고 표현하는 것마저 어색할 지경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시대에서 이제 완전하게 영웅이 될 수 없는 자로 세세 년년 지워질 수 없는 낙인(烙印)이 찍혔다. ‘그’는 다수이고 ‘매국노 ’다.</p>
<p>지금까지 동원된 ‘개’의 면면을 보자.</p>
<p>안병직으로부터 출발해서 한승조, 조갑제, 지만원으로 이어져서 이영훈, 박효종으로 가더니 이내 김진홍, 서경석이 출몰하여 본색을 드러내고, 신지호, 추부길로 확산되다가 마침내는 정치권에서조차 박희태, 홍준표, 나경원, 전여옥이 나오고 ….</p>
<p>이러한 땅에서 진정한 영웅이 나오길 바라는 건 이제 무리다. 아직도 ‘빠’에 물든 사람들은 이제 김대중도 노무현도 버리길 바란다. 그들은 이 시대의 영웅으로 자격을 잃었다. 그들에게 부여되었던 시간은 거두어진 지 오래이고, 그들은 그에 합당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권리와 오만에 사로잡혔고, 어떤 경우에는 탐욕에 물들고 말았다. 그러니 지금과의 상대적인 비교마저도 그 자체가 ‘시대를 버리겠다 ’는 선언을 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러니 이젠 버려야 할 유산이다. 그들은 후계자마저도 키워놓지 못했다. 그들이 아니라 이 시대가 그랬던 것 같다.</p>
<p>어쩌면 지금부터 다시 우리는 영웅 만들기의 시대에 돌입하는 지도 모른다. 난세다. 안중근의 하얼빈 이토 히로부미의 척결과 같이 한국 내에서 친일의 수괴들이 어떤 형태로건 응징(膺懲)을 받지 않으면 안될 것이고, 피(paper)를 뿌리거나 혹은 촛불민심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쓰는 것보다는 사냥개의 모가지를 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이들에 대한 저항의사 표시가 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런 시점이다.</p>
<p>나는 그 런 이 를 영웅이라고 불러야 옳다고 본다. 그만큼 이 시대의 기운 자체는 친일이란 안개 속으로,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한 척의 자그마한 배의 운명이 되고 있다. 특단의 열쇠가 없이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 수가 없게 보인다.</p>
<p>김진홍은 그것을 재삼 재사 확인해준 것에 불과하다. 그가 그런 종속(種屬)임을 예전부터 나는 이야기 해왔었고, 예상에 한 치도 빗나가지 않게 그는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면서 지금까지 친일매국대열을 이끌고 오고 있다.</p>
<p>아직도 민심이 이를 모르거나 혹은 단순히 그의 사상적 훼절 변절 수준에서 이 문제를 파악하거나 비판, 비난한다면 아마도 그 어리석음이 천추의 한이 되는 날은 곧 오게 될 것이다.</p>
<p>그러나 그러한 척결(剔抉)의 영웅은 이 땅에서는 살 수가 없다. 이 시대에는 살아있을 지 모르나 그렇게 되도록 이들 친일의 사냥개들이 우선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일본 기획자의 몫도 아니다. 그들에게 예쁨 받기 위한 그들의 선제적 처리는 아주 간결하고도 빠르게 공권력이라는 미명으로 들어올 것이고, 그는 통제된 언론과 여론 앞에서 한 치도 그의 행적이 드러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p>
<p>왜 인터넷마저 통제코자 하는가의 이유는 간결하고도 간략하다. 바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 이러한 일에 대한 후폭풍을 경계하는 심리, 바로 지독스런 공포감이 있다는 역설적 입증에 속한다.</p>
<p>내가 살아있는 동안 과연 이러한 영웅을 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 시대의 영웅으로 자리해야 한다. 그러나 쉽지가 않을 듯하다.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몰지각(沒知覺)이란 벽(壁)은 날이 갈수록 두터워만 간다. 여기에서는 꽃을 피울 자양분을 기대하기 어렵다.</p>
<p>침묵하는 지식인들은 더 이상 이 시대의 지성(知性)으로 운운해서는 안될 일이다. 더불어 집단지성을 운운하는 것조차도 별로 기대할 바가 못 된다. 전쟁은 침탈을 목적으로 하지만 모든 가능한 수단과 인력이 모두 동원된다. 그에 비해 진정한 지성도 아닌 나약한 이성(理性) 수준의 지식으로는 이들을 당해낼 재간도 여유공간 한 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p>
<p>기다린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일이다.</p>
<p>“무엇을 기다리는가? 스스로의 비겁(卑怯)에 변명(辯明)과 위안(慰安)의 물을 주고 있는 것인가? ”</p>
<p>안타까운 하루 하루다.</p>
<h3>17. 광장이 서러운 민초<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8" title="toc_18" class="anchor" id="toc_18">#</a></sup></h3>
<p>광장(廣場). 아크로폴리스. 민심이 모였던 포탈 다음의 아고라(agora). 청계광장으로부터 광화문의 그 외침의 광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의 궤적을 보인다.</p>
<p>“소통(疏通)하자! ”</p>
<p>무릇 대화라는 것은 독백(獨白)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일단 편가르기로 들어갔다.</p>
<p>‘친일매국세력과 민초(民草) ’라는 것이다. 이것이 ‘매국과 애국 ’이라는 경계로 아직 이르지 못했고, 나아가 ‘매국과 애국 애족 ’으로, ‘매국과 시대저항 ’으로 가기에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전선이 형성되지 않았다. 친일정치세력의 잔수와 꼼수는 이것을 ‘갈등과 분열 ’로 몰아가는 데 아주 익숙하고, 그들에게는 공권력이라는 동원무기뿐만 아니라 이제는 정권이 꺼낼 수 있는 모든 회유와 압박, 그리고 ‘그들끼리 ’의 소통과 담합을 전제로 움직인다. 이런 환경에서 민초는 쇠스랑에 묶인 채 질질 끌려가야 하는 운명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렇게 끌고 가고자 한다. 매를 들어서라도 길들이고자 한다.</p>
<p>여기에 진정한 항거(抗拒)는 성립조차 되고 있지 않다. 이상한 평화주의가 고착화되는 추세다. 그것을 촉발시킨 장본인은 누구인가? 바로 어설픈 종교적 신념이다.</p>
<p>“질긴 놈이 이긴다. ”</p>
<p>이 구호는 과거 반독재와 민주 투쟁에서는 먹혔지만 친일 사냥개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한 수(手)였다.</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44" height="176" width="279" /></p>
<p>(제주4.3사건 [1947.3.1~1954.9.21] 당시 제주도를 순시 중인 이승만. 현 정권 들어 국방부는 좌익무장폭동으로 규정하고 교과서 개정을 요구했고, 제주민들은 아직 진상구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있다.)</p>
</div>
<p>제국주의적 관념인 일본의 극우와 우익 의 그들 세력에 대한 신념 은 1930년대도 그랬지만 1950~60년대조차 이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야쿠자를 정치깡패로 동원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백골단 수준이 아니라 이들은 직접적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방 이후 한국 집권자들이 동원했던 ‘서북청년단 ’이나 폭력적 깡패집단의 활용과도 통한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부류의 정치적 이용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당연히 2008년 현재 한국이란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저항에는 ‘인정도 사정도 없는 ’강압만이 그 해결책으로 등장해 있다. 이들은 세상을 보는 관념이 보통의 사람과는 아예 다르다. 그걸 꿰뚫지 못하고 치기(稚氣) 어린 봉합을 했던 종교세력과 종교인들의 책임 또한 언젠가는 그 진상(眞相)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p>
<p>덩그렇게 민초만 남았다.</p>
<p>이름없는 학생과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이 대열에서 분노를 폭발한다. 그러나 힘이 없다.</p>
<p>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가?</p>
<p>상대를 잘못 읽었다. 이들 일본을 모태로 하는 세(勢)의 특질(特質)을 이해하지 못한 당연한 결과다.</p>
<p>여기서 그들은 ‘정부와 국민 ’이라는 관념으로 현 사태를 보지 않는다. ‘적과 처결(處決) ’이라는 형식이 존재한다. 일본식이다. 철저하게 절대 훼손할 수 없는 가치를 선정해 두고 그 가이드라인 이상에서는 무조건 밀어붙이기를 끝까지 한다는 것이 그들 식의 신념이다. 그 와중에 온갖 수법이 동원된다. 회유나 압박은 물론이고 법과 질서라는 입헌(立憲)의 해석까지 들먹인다. 이것을 부조리하다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다. 그것이 본래의 그들이다.</p>
<p>설움이 깊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p>
<p>시대가 하나의 궤적으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을 알거나 혹은 그저 느끼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이란 땅에 대한 애정이 급속히 식어간다. 그들에 대한 분노도 그렇지만, 그것을 묵인(默認)하면서 무관심과 개인주의에 젖어 든 사람들이 더 밉게 보인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의한다.</p>
<p>‘저들은 친일 속에서도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구나! ’</p>
<p>나라를 빼앗기는 건 잠시 잠깐만이다. 정신을 잃어버리고 난 이후에는 국토니 국가, 사회는 당연히 서서히 물들게 된다. 시대야 이러한 와중에서 고스란히 상납(上納)을 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바로 우리 시대에서 우리 역사 자체가 종언(終焉)을 고하게 된다는 의미와 바로 통한다. 그 이후는?</p>
<p>여기에서 바로 문제가 생긴다.</p>
<p>안일하게 이를 인정했던 사람들이 과연 편하디 편한 삶을 살 수 있을까?</p>
<p>불가능하다. 역사는 이러한 침탈이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것은 처음부터 침략과 약탈(침탈)이라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상위 10%를 제외한 나머지 90%의 민초들은 노예화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10%는 높은 확률이라고 생각하는가? 우습게도 이 자리도 벌써부터 정해 지고 있고, 그 즈음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바구니조차 없게 될 것이다. 결국 묵인한다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은 ‘환상 ’(幻想)이었다는 건 이내 증빙될 일이다.</p>
<p>그래서 광장을 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이제는 한계다. 새로운 변곡점이 나타나지 않는 한, 이 시대는 그렇게 그들이 의도하는 바대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그들 또한 물러날 곳이 없는 전력을 다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민초는 전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열세(劣勢) 수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최선도 아닌 것은 분명하다.</p>
<p>농조(籠鳥)의 시대가 열리면, 언어는 닫히고, 새장 밖으로 흘러가는 소리는 엷게 된다. 창공을 날고자 하는 희망만 그득하지만, 조롱의 문은 굳게 닫혀진다.</p>
<p>일본 극우와 우익의 세력이 극악한 것은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모두 ‘친일의 재구성 ’을 통해 사냥개를 양성하면서 진행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한 사회 국가 속의 내부적인 문제인 것처럼 비치게 만든다. 그러나 본질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들 또한 조롱 속에 들어있는 신세이기는 마찬가지다. 왜 뚫고 나오지 않는가?</p>
<p>선민(選民)이란 의식이 있다. 일제 시대의 내선일체(內鮮一體)와도 같이 이번에는 ‘그들 ’과 ‘그들끼리 ’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버렸다. 그래서 담합을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사냥꾼의 입장에서는 사냥개를 자신의 동반자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이 달리 나온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들도 희생자이긴 하지만 자발적이며 능동적으로 시대 앞에서 변절(變節)을 감행한 점에서는 역사의 죄인이라 해도 무방하다.</p>
<p>그런 이들과 상대하는 민초에게 아직도 역사와 시대에 대한 올바른 조망(眺望)이 가능한 눈은 도수가 높거나 낮은 환경에서 몹시 흐릿하게 보인다. ‘설마? ’라는 단어는 여전히 서울을 횡행한다. 혹자는 이를 두고 ‘믿고 싶지 않을 뿐이다 ’라는 말로 정의를 내린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 일이 거짓은 아니라는 점, 이런 경우에는 어찌 해야 하는가? 반문해야 할 상황이다.</p>
<p>쇠고기 파동으로 나타난 촛불민심은 6월 30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시청앞 집회를 고비로 해서 ‘질긴 놈 ’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다른 결정적) 계기를 잡을 수도 있을 거야 ”, “다른 방식도 있지 않겠어 ”, “어차피 4년이잖아 ”라는 등의 마음도 흘러 나온다. 스스로 미약한 힘을 가진 민초라는 사실에 분기를 내뱉는 사람의 숫자도 늘어가다가 침묵하는 모드로 떨어진다. 절묘하게 기가 꺾인 형국에서 친일정치세력이 오히려 때를 보고 있었던 것이 증명된다.</p>
<p>다시 ‘경제 살리기 ’라는 테마로 돌아왔다.</p>
<p>확실히 죽어버리지도 않는 모르핀의 처방이 시행되는 환경에서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통제하려는 어떤 의사와 간호사의 사악함에 치를 떤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모르핀을 투여한다.</p>
<p>불쌍한 민초다.</p>
<p>나 또한 그러하지만, 지금 이 순간, 광장은 전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저들의 간교하고 악랄한 기획 앞에서 한 시대가 저무는 것을 속절없이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하는 상념에 젖어 있다. 첫 단추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단추들이 가슴에 있어야 할 부분이 팔목으로 가고 심지어 속옷으로까지 엉켜있다. 그래서 풀지를 못한다. 아마 저들은 천천히 자기네의 입맛에 맞게 하나씩 단추들을 여기 저기로 꿰 맞추어 갈 것이지만, 그 때는 시대가 완전히 고사(枯死)하고 난 다음이 될 것 같다.</p>
<h3>18. 그대의 시대는 타자(他者)<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9" title="toc_19" class="anchor" id="toc_19">#</a></sup></h3>
<p>분단역사 60년 동안 친일은 질기디 질긴 바이러스처럼 한반도 남부에서 기생해왔다. 그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분단 ’(分斷)이 가진 멍에에 있었다. 좌파 우파라는 냉전(冷戰)이 이어졌고 남한 내의 정권은 그들 이익에 맞게 적절 히이를 활용했다.</p>
<p>반공(反共)의 시대에는 통일(統一)을 위한 숱한 무리수가 벌어졌다.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그들이 반독재를 외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간, 정권은 대체로 이들에게 ‘빨갱이 ’라는 고깔을 씌우면서 한국 전쟁 이래 국민들에게 남겨진 공포감을 확산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러한 연대기에는 남북한 모두에서 분단은 철저하게 적대적으로만 성립되는 주제였을 뿐이며, 아무런 희망도 가지기가 어려웠었다.</p>
<p>80년대 말 국제적인 냉전 종식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시간은 더 길어졌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해체되며 러시아연방으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중국 공산당은 해체가 아닌 개혁개방이란 수정주의를 선택하면서 오히려 힘을 키웠다. 중국이란 노동과 시장이 결합된 땅을 향한 발걸음에는 이미 이념은 없게 보였다. 그로써 사실상의 이념적 냉전보다는 ‘경제와 외교 ’라는 다른 바탕 하에서 협력과 경쟁이란 시대로 돌입했었다.</p>
<p>남북한은 그 흐름을 타지 못했다.</p>
<p>불행하게도 그 시간은 지난 십 년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진 십 년의 기회에서 남과 북이 남겨놓은 것은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곪아가는 ’형세가 있었을 뿐이다. 금강산과 개성은 정치적 결정이었지 결코 ‘경제 ’라는 관점에 있지 못하다. 중국이 2006~2007년 두 해에 걸쳐 집중적으로 개성공단을 조사했던 결과는 고스란히 중공당 중앙으로 보고되었다. 결론은 간단했다.</p>
<blockquote>
<p>“아직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합니다. 상당 기간 내에는 특별한 일이 없을 듯 합니다. ”</p>
</blockquote>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18" height="156" width="277" /></p>
<p>(개성공단. 볼모인가 협력의 모델인가? 북한은 12.1자로 출입단속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남한은 약간 당황한 모습이지만 전혀 ‘꿀리지 않고 ’원칙대응을 한다는 모양새다. 과연 서로의 진심은 무엇일까?)</p>
</div>
<p>6.15선언과 10.4선언 모두 결정적 결함을 가지고 배태된 기형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부터 친일정권은 탄생했다고까지 이야기해도 좋을 법하다. 과정을 그렇게 만들었다. 눈을 밖으로 돌리기보다는 내부적인 수습에 바빴던 것이고 그 사이 ‘통일장사꾼 ’만 양산해버렸다. 오히려 그로 인해 진정한 의미의 통일운동이 거의 사장(死藏)되고 마는 짙은 모순마저 생겼다. 질 낮은 매너리즘에도 빠졌다. 사회에서 그에 반감을 가지는 ‘갈등구도 ’가 너무 크게 증폭되어 버렸다. 이른바 남남갈등이다. 그건 그럴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p>
<p>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 바로 친일매국세력이다. 그들은 전통적인 친일 기반의 한나라당이란 보수 야당과 기업, 그리고 사회단체와 본질과는 유리되어 상업화 되고 세속화된 방향으로 변질된 종교를 포획했다. 여기에 정치세력을 구축했다. 당연히 다음 수순은 바로 ‘친일의 재구성 ’에서 ‘친일의 고착화 ’를 위해 선거라는 형식까지 빌려 한국땅에 안착을 했다. 그 길도 사실상 지난 십 년의 정권이 열어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걸 부인한다는 것은 세월의 연속성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없다.</p>
<p>북한은 이것을 알고 있었을까?</p>
<p>나는 그들이 과연 어느 수준에서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에 대해 지난 반 년여 탐색을 해보았다. 불행하게도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와 지식은 미약하기 그지 없었다. 2004년 이후 일본은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걸면서 북한과 일본 내 조총련과의 연계를 끊는 작업에 착수했고, 조총련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압박을 가했다. 선(線)이 단절된 상태에서 평양이 받았던 정보는 허술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획자의 의도가 어느 만큼 치밀하게 움직였는가를 볼 수 있다. 적어도 일본에게 있어 북한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다. 그러므로 철저히 차단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 중에 으뜸은 정보였다.</p>
<p>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였다.</p>
<p>남북한 문제는 하나의 국가관점이 아니라 ‘세력 ’관점으로 시각을 달리해서 봐야 하는 필요가 높아진다. 즉, ‘민족 ’이라는 세력권이다. 이것이 형성되지 않으면 다른 외부의 세력이 이를 훼손하려고 하고, 그를 위해서는 남과 북은 어떤 형태로건 불편한 관계에 있어야만 한다. 일종의 분열조장이다. 그러기 위한 첫 발을 남한으로 돌린 것이 일본이다. 이것은 아주 오랜 기간 준비된 침탈이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씩 점검해보라. 그럼 보인다.</p>
<p>이미 한반도 남부는 친일매국세력에 의한 친일정권이 들어섰다. 그들의 의도 가점진적으로 드러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지도층 내부는 그들 눈 앞의 일을 처리하기도 바빴다. 그들도 어찌 보면 역사안전망은 무너진 부분이 있었다고 볼 대목이다. 그런 상태에서 남과 북은 서로 접점을 찾을 수 없게 된 상황이 이어질 수 밖에 없 다.</p>
<p>‘선군정치 ’십 년, 여전한 경제적 궁핍과 식량부족, 핵 하나만으로 지켜내는 국가보위의 관념은 대화와 타협에 의한 새로운 선택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깔 ’이라고 부르는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해제, 그리고 핵 무기를 통한 교환가치의 유지에 전력을 기울이는 와중에 남한의 친일을 묵인하고 수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이것이 그들의 21세기 최대 패착이 될 거라는 반성이 그들 내부로부터도 나오는 시기가 있을 것임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문제는 현 시점이지만, 그들의 공간은 협소하게 보인다.</p>
<p>상대적으로 남한의 정권은 이런 부분에서는 여유롭다. 오히려 반기는 기색이다. 괜스레 대화를 하자고 해도 불편한데 알아서 자신들이 그만두겠다고 하고, 관광객까지 피격을 해주니 살판이 났다. 국내에서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고 싶지만 원칙을 지킨다 ’라는 한 마디면 족하다. 그만큼 지난 십 년의 남남갈등에서 북한 문제는 계륵과도 같은 존재로 비하되어 버린 흔적이 크다. 그러니 이런 조치도 가능하다. 이것은 보수적인 관념으로부터 출발된 것이 전혀 아니다.</p>
<p>버락 오바마가 이겨버린 미 대선의 결과가 충격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남한의 위치는 일본을 통해서라도 미국에게 내년 상반기 이내는 대북문제 접근을 전폭적으로 하지 말 것을 주문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건 미국이 결정할 문제다. 남한의 친일정권 입장에서 본다면,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지금 너무 잘 되는 것 ’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책적 협의니 과정을 거쳐야 하고, 내년 상반기까지는 시간이 훌쩍 지나갈 공산이 크다. 그만큼 미국에서 벌어져 있는 경제위기의 실상은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그게 일 순위로 보인다.</p>
<p>이 상태에서 북한이 내년 상반기까지 남한의 친일정권에게 ‘민족 ’이라는 세력의 재구성을 하자고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북한이 남한의 친일을 묵인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다. 역으로 그런 제안을 받았으나 남한이 거절한다고 하면-여러 이유를 붙여서-그건 친일정권이 ‘아직 때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해석은 이처럼 간단명료하다.</p>
<p>(북으로부터) 제안이 온다고 하더라도 (남한이) 실제로는 ‘거부 ’할 것이라는 조짐은 정권 등장 이후 줄곧 그래왔지만 지난 10월에도 여전히 이어졌고 11월도 마찬가지 다. 그래서 삐라살포도 묵인한다. 굳이 좋게 되길 바라지 않는다. 거기에 ‘원칙 ’이란 단어를 가지고 정책 수정을 하지 않는다. 김진홍의 발언은 정부를 대변한 것이 아니라 친일정권의 대변인으로 한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 하려고 해도? 사실 실행각론을 가진 정책도 없다. 대화 자체를 시작해보지도 않은 정권이 고 그걸 염두에 둔 적이 없 다. 허공으로 마구 말대포를 쏘지만 그것뿐이다. 그리고는 기다린다.</p>
<p>분단의 시대가 가진 역설적인 힘은 바로 ‘변화를 통한 시너지 ’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지만 남과 북은 서로 전혀 이것을 취사선택하지 않고자 한다. 둘 다 어리석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남한의 친일정권이 더 똑똑하다. 추구하는 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고 남쪽은 그 목적을 위해 작전대로 잘 움직인다.</p>
<p>그렇다고 북한에서 변변한 두뇌싸움이 가능한 비책(秘策)이 나오는 것도 아닌 듯하다. 그들도 나름대로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고식화된 대응 틀 이외는 없게 보인다. 그러니 100여 년 전에 한반도를 침탈했던 경험이 있는 일본 제국주의와 팽창주의에 익숙한 일본 내 기획자의 머리를 따라갈 재간이 없다. 거기에다 남한에는 이미 직간접의 친일 을 ‘시대정신 ’으로 대세로 자리 잡게 만들려는 사냥개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p>
<p>무슨 지금 서로 간에 해댈 ‘간첩질 ’도 마땅치 않다. 김정일 와병설에서 드러난 것처럼 남과 북은 서로 간에 오랫동안의 ‘정보수집 ’행위를 하고 있고, 또 다양한 각도에서 ‘간첩 ’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어느 일방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그렇게 체제의 대립과정에서 돌아가는 일이지만, 지금 당면한 친일 문제는 전혀 다른 각도다. 남한 내에서 이것이 제어되지도 못하고 수용되고 있다. 국가기관조차도 이것을 방치한다. 왜냐하면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정권이 그렇게 형성되었기에 그렇다.</p>
<p>자주 거론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미국도 한국에 간첩이 있고, 일본은 더 많다. 동맹도 그러한데 정전상황의 분단국가가 그런 수준이 없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p>
<p>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물밑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흐름일 뿐이다. 이것이 곧 시대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되기는 어렵다. 그건 고도의 정책결정이며, 정보분석과 판단, 그리고 실행이라는 국가적인 시대 만들기와 연결된다. 이 부분에서 남과 북은 지금까지도 실패했지만, 현재도 실패하고 있다.</p>
<p>완벽한 타자(他者)의 모습이다.</p>
<p>‘민족 ’이라는 하나의 세력을 발견하 고 발전적 방향으로 이끌 지 못한다면, 이 시대는 완전하게 죽었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절망하는 수준이 아니라 시대가 단절됨으로써 우리 다음 세대는 시대의 연속성을 맛볼 수도 없고, 나아가 제대로 된 시대의 의미를 찾기도 어렵게 된다. 이건 정해진 수순이다. 사실상 이것이 마지막 변곡점이었다.</p>
<p>우리는 이제부터 ‘타자의 시대 ’를 오랫동안 맞이할 듯하다. 살아가면서도 전혀 다른 시대와 세상을 구경하는 하루 하루가 이어질 것 같다.</p>
<h3>19 . 죽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시대를 읽고 있는 죄(罪)<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20" title="toc_20" class="anchor" id="toc_20">#</a></sup></h3>
<p>1995년 이후 지금까지 나는 ‘신 임진왜란 ’과 ‘신 을사늑약 ’과도 같은 일본의 한반도 침탈 구도를 추적해왔다. 그들은 집요하기 그지 없었다. IMF 이후 김대중은 그들의 앞길을 환히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담합을 유지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매국노로 불려도 어쩔 수 없다.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으로 그가 지금껏 닦아 둔 활동과 인맥이란 길을 통해 일정 수준의 ‘대접 ’을 받을지는 몰라도, 그것과 이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p>
<p>노무현은 친일인명사전으로부터 독도문제에 이르기까지 꽤나 화려하게 저항을 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일본의 침탈구도를 공고화 시켜주었고 나아가 친일세력이 정치계로 급속하게 삼투되어 가는 것을 방치했다. 한 시대를 책임진 대통령의 자리에서는 도저히 있어서는 안될 일이 벌어졌다. 묵과(默過)했다는 표현이 옳을 듯하다. 그래서 그 또한 시대 앞에서는 죄인이 됨을 피할 길이 없다.</p>
<p>변명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정권의 공동지분을 가졌다고 인정된 안희정이 “우리 역사 5천 년에 우리가 맡은 부분만 잘하면 됩니다 ”라고 말했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나라와 시대 지키기 ’에는 실패했다. 마치 경계에 실패한 초병(哨兵)과 같았다.</p>
<p>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결국 십 년의 정치적 화장질이 ,비록 외부적인 한반도의 운명 같은 난맥이 걸려 있었다고는 하나 그에 만족하는 이른바 북한측 통일꾼들의 손아귀에서 정권이 놀아나 버렸다. 진정성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시대읽기를 하지 못했다 는 평가를 받아도 할 말이 없다.</p>
<p>국민도 예외 없다.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지역과 이념의 갈등, 그것으로 포장된 개인주의와 사적 이익에의 집착, 개념 없이 추종하는 종교성 속의 몰지각, 그리고 시대 속에서 죽어버린 지성(知性)이 범벅이 되면서 한국 사회를 휘감았다. 결과는 참혹했다. 지금 그 첫 변곡점을 보는 것일 뿐이다. 앞으로도 회오리는 더욱 넓고 빠르며, 깊어질 것이다.</p>
<p>이것이 내가 감당하고 끝날 죄업(罪業)이라면 언제든지 수용하겠지만,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이 내려질 듯 보이지 않는다. 앞서 시대를 살아간 많은 이 땅의 조상들 께서 계셨고,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많은 다른 시대의 후대들이 있으니 결코 나 혼자의 일은 아니다. 그래서 무겁기 그지 없는 주제를 부여잡고 끙끙 앓고만 있다.</p>
<p>대저 상식이 그저 통하는 시대라면 좋겠으나 지금은 그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그것이 전쟁 상황이 가진 현상이다. 그 속에서 진실은 아주 심각하게 훼손당한다. 그러나 진실은 진실이다. 건조한 진실은 상식과는 다르다.</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16" height="171" width="280" /></p>
<p>(2008.11.7 뉴라이트 3주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이상득, 오세훈, 박희태, 김진홍, 김덕룡이 있는 자리다. 결합구도를 잘 말해준다. 이상득을 뺀 사진이 유포되기도 했다. 그는 한일의원연맹을 꿰어 찼다. 본격적으로 일본과의 딜을 시작할 모양이다. 이들이 ‘국민화합과 대한민국 선진화 시대를 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p>
</div>
<p>공기불비(攻其不備), 즉, 우리가 갖추어져 있지 않 은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일본세의 집요함이 무자비할 수준에 이르고 있는데도 민초는 각성하지 않는다.</p>
<p>희망이 없는 것일까?</p>
<p>혹자는 사회 국가 내부의 정치적 몇 가지 결과를 두고 이야기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연원이 깊고 두텁다. 분단 60년의 매너리즘에 깊어진 갈등, 어느 사이 강하게 계급화 되어버린 사회와 무관심의 절정이라 할 수 잇는 개인주의 속성이 시대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p>
<p>율곡의 십만 양병도 없거니와 왜침(倭侵)에 저항하는 의병도 없다. 그야말로 조용히 시대를 내어주기 일보직전이다. 산발적이고 부분적인 저항은 저들에게 적절한 압박의 동기부여를 해준다. 감초구실을 하는 셈이다. 저들은 그것을 오히려 반긴다.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다. 속성을 읽었기 때문이다. 광화문의 명박산성이 ‘질긴 놈이 이긴다 ’한 마디에 더 견고해진 것처럼, 저들의 기획은 교활하고도 간사의 극치를 보여준다.</p>
<p>친일매국세력의 특질고(特質考)가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철저히 일본 극우와 우익의 중추세력, 그리고 그 기획자의 농간(弄奸)이라는 사실에 대해 주목할 여지도 많지 않다. 그걸 누가 드러내놓고 하겠는가? 그들이 바보는 아니지 않는가?</p>
<p>건조한 진실은 이처럼 찾아내서 제시하기가 어렵다. 상황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역공을 받는다. 허위정보유포라는 명목으로, 또는 민심교란죄라는 조선시대에도 함부로 적용되지 않았던 법이 적용되는 세상이다. 여기 어느 한 줄이 잘못된 것이 있다면 내가 책임을 진다. 그러나 저들은 이 책임마저도 저들이 판단할 몫이라고 부른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 중에서는 사실상 ‘개’가 된 인물들이 사회 곳곳에 그만큼 많다는 확신일는지도 모른다.</p>
<p>두려운 것은 민초가 ‘온순하며 수동적으로 ’벌써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몰지각 (沒知覺) 의 본질이다. 알고 느낌이 없는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과 만나서 이야기 해봐도 그런 유형이 더 많았다. 지식인 일수록 그랬다. 한국이 대학교육을 마친 고등교육에서는 높은 퍼센티지 의 수준을 기록할 지 모르나 시대를 읽는 눈에서는 지금 지성의 안과(眼科)에 다시 등록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병원은 사실 없다. 스스로 각성하는 도리 이외는 없는 게 사회이고 시대니까.</p>
<p>분노도 마찬가지다.</p>
<p>포획은 아주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적절한 분출구를 만들어주면서 김빼기를 한다. 한꺼번에 목을 치는 게 아니라 서서히 고사시키는 것처럼, 우리 속담에 피 말려 죽이는 것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 이것도 작전 중에는 아주 고등전술이다. 모르는 사이 발 밑에 차오른 물은 어느새 우리의 턱 밑까지 차오르게 되어 있다. 역사 속에 이러한 전술은 언제나 가장 효율적인 대상의 포획 방법이었다.</p>
<p>우리 시대에 희망을 걸 정치인이 사라지면서 두 가지의 전제가 내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나는 친일이 아닌 자를 찾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 만의 고유한 ‘민족 ’이란 세력을 온전하게 살려줄 자를 찾게 되는 것이다.</p>
<p>나는 첫 번째 문제로부터 두 번째로 오가면서 이 변수를 살펴보았다. 이것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 절대절명의 상황을 헤쳐 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쉽지가 않았다. 이 두 가지는 단순히 사회 국가라는 영역이 아니라 외부의 대상을 기본으로 하여 움직여지는 변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봤을 때는 실패했다고 자인(自認)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있다.</p>
<p>어느 때, 이런 그림을 다시 안고 누군가 새롭게 화구(畵具)를 챙겨들 사람이 있을는지는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당면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목숨을 걸고 다 해보고 나서는 이 과제는 더 이상 나의 몫으로만 남아있지 못하게 되니까. 실패한 자가 무에 더 변명을 하겠는가.</p>
<p>이 결과를 두고 다시 한 번 변수찾기를 해볼 수 있게 될 가능성마저 없다.</p>
<p>너무 지쳤다. 지난 14년, 길게는 20년 동안 나는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내게 이 시대가 준 짐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이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못하게 한 것은 지속된 공격 받는 침탈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대가 굴러가고 있었다.</p>
<p>몇 차례의 죽음보다 깊은 절망과 죽음의 목전 상태에서도 내가 떠올린 것은 나의 조상들과 나의 후대들이다. 그들에게 나는 멍에를 지고 살아가는 활계(活戒)에 처한 그저 단독자였을 뿐이다.</p>
<p>이제 이 기록을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그동안 해왔던 변수찾기라는 무거운 짐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하자고 넘긴다. 그에 대한 판단은 나의 몫이 아니다. 찾지 못한다면, 이 시대는 이제 침탈 속에서 새로운 본질로 재구성될 것이다. 그리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이성(理性)은 온당한 삶이 아니라는 진리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생을 이어갈 백성들도 많아질 터이다. 그마저 없다면 영혼 없는 삶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그건 돼지보다 못하고, 저기 산 기슭의 땅을 헤집고 기어 다니는 곤충처럼 사는 것이니. 겉으로 아무리 요란한 장식으로 치레를 해본 들 사람의 목숨 값으로 쳐주기 어렵다.</p>
<p>역시 죄(罪)란 무섭다. 살아가면서 숱하게 실패하고 죄를 짓기도 했지만 이 시대를 보는 죄값이 이렇게 무거울지는 나이를 먹어가며 이제서야 어렴풋이 느낀다. 잘못 산 것인지, 어떤지. 그래도 이 기록을 남길 수 있으니 다행이다. 아주 건조하고 건조한 진실 찾기의 행렬은 나를 대신하여 많은 사람들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나보다 훨씬 많은 죄를 짓고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있어 이 시대는 허상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있던 허상을 이젠 과감하게 버린다.</p>
<p>한국은 ‘완전한 친일 ’로 치닫는다.</p>
<p>분노하거나 않거나 선택에 대한 허상 하나도 이제 버린다. 자유의자로 선택하는 것, 그것이 이 땅의 한 사람이 된 자의 도리다. 그래서 추천한다. 허상을 버리라.</p>
<p>정히 버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차라리 나는 그 허상 속에서 산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라. 그들의 영역인 10% 속에 들어가서 영혼마저 버리고 사는 것을 선택해도 좋다. 그것이 그대의 허상이라면.</p>
<p>그러나 나는 이렇게 해서 나의 허상(虛像) 을 버린다.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들 (不知不行者) 에게 새롭게 만들어질 우상(偶像)은 저기 섬나라 일본 도쿄 치요다구 일 번지에 가서 열심히 찾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 시대의 경배(敬拜)를 사악하게 원하는 모양이니까. ( 2008. 11. 8 작성을 시작하여 11.13일 끝낸다. 담담당당 )</p>
<div>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396" height="105" width="183" /></p>
<p>(* 인생은 무지개 위를 나는 새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시대는 무엇일까? 그런 의문으로 하루를 보낸다. 세상은 복잡계의 한 가운데를 치닫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말하는 한가로움보다는 한 시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의미 없게 여겨지기도 한다. )</p>
<p><img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46" height="111" width="178" /></p>
<p>(* 들판. 거기에 서면 하늘이 멀리 보이지 않는다. 가깝다. 한 시대를 보는 눈에 책임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없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속에 의무가 없는 날이 없다. 당신은 정말 이 시대를 지키는 지킴이의 구실을 하고 있는가? 열거된 몇 사람이 아닌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오늘의 시대에 친일은 불가하다. 친일의 사냥개는 불필요하다. 당신들의 그러한 이성은 이성이 아니다. 이런 자들이 사는 땅이 이 시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p>
</div>
<p style="text-align:right;">이 글은 <a href="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스프링노트</a>에서 작성되었습니다.</p>
<br />Posted in 담담당당 Tagged: 독립, 민족주의, 시대, 자주, 촛불정국, 친일파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comments/coreannight.wordpress.com/25/"><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comments/coreannight.wordpress.com/25/"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delicious/coreannight.wordpress.com/25/"><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delicious/coreannight.wordpress.com/25/"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facebook/coreannight.wordpress.com/25/"><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facebook/coreannight.wordpress.com/25/"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twitter/coreannight.wordpress.com/25/"><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twitter/coreannight.wordpress.com/25/"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stumble/coreannight.wordpress.com/25/"><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stumble/coreannight.wordpress.com/25/"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digg/coreannight.wordpress.com/25/"><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digg/coreannight.wordpress.com/25/"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reddit/coreannight.wordpress.com/25/"><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reddit/coreannight.wordpress.com/25/" /></a> <img alt="" border="0" src="http://stats.wordpress.com/b.gif?host=coreannight.wordpress.com&amp;blog=5630345&amp;post=25&amp;subd=coreannight&amp;ref=&amp;feed=1" width="1" height="1"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8%99%9b%e5%83%8f%ec%9d%98-%e7%a0%b4%e5%a3%9e-2008-11-8/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media:content url="http://1.gravatar.com/avatar/bc8f883dd78ebe308860a9b0136eadd9?s=96&#38;d=identicon" medium="image">
			<media:title type="html">coreannight</media:title>
		</media:content>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28"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48"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00"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34"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36"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22"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30"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10"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398"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52"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04"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38"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42"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20"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394"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40"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50"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44"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18"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16"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396" medium="image" />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6622/attachments/951446" medium="image" />
	</item>
		<item>
		<title>沒知覺 時代의 理性 2 (2008.10.2)</title>
		<link>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6%b2%92%e7%9f%a5%e8%a6%ba-%e6%99%82%e4%bb%a3%ec%9d%98-%ef%a7%a4%e6%80%a7-2-2008102/</link>
		<comments>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6%b2%92%e7%9f%a5%e8%a6%ba-%e6%99%82%e4%bb%a3%ec%9d%98-%ef%a7%a4%e6%80%a7-2-2008102/#comments</comments>
		<pubDate>Mon, 24 Nov 2008 16:01:47 +0000</pubDate>
		<dc:creator>coreannight</dc:creator>
				<category><![CDATA[담담당당]]></category>
		<category><![CDATA[뉴라이트]]></category>
		<category><![CDATA[독립]]></category>
		<category><![CDATA[민족주의]]></category>
		<category><![CDATA[시대]]></category>
		<category><![CDATA[이명박]]></category>
		<category><![CDATA[자주]]></category>
		<category><![CDATA[촛불정국]]></category>
		<category><![CDATA[친일파]]></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6%b2%92%e7%9f%a5%e8%a6%ba-%e6%99%82%e4%bb%a3%ec%9d%98-%ef%a7%a4%e6%80%a7-2-2008102/</guid>
		<description><![CDATA[목차 들어가면서 ‘희생양 ’이 필요하다. 100% 찬스를 찾아서 반발을 억누르는 약방감초 독재시대의 개막과 혈투 존재감 없는 정치권의 화두 아직도 일본의 존재를 모르는 서울 터지면 크게 터진다. MB정권이 사는 길, 죽는 길 천 번의 기도로도 죽은 자식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송(頌) 시대별곡(時代別曲) 들어가면서# 9 월 마지막 날 로부터 이 글을 쓴다 . 지난 9월 26일자로 ‘몰지각 [...]<img alt="" border="0" src="http://stats.wordpress.com/b.gif?host=coreannight.wordpress.com&amp;blog=5630345&amp;post=24&amp;subd=coreannight&amp;ref=&amp;feed=1" width="1" height="1"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id="toc" style="border:1px solid tan;background-color:rgb(255,255,250);padding:2px 10px 0;"><strong>목차</strong></p>
<hr />
<p><a href="#toc_0" title="toc_0" class="external">들어가면서</a></p>
<ol>
<li><a href="#toc_1" title="toc_1" class="external">‘희생양 ’이 필요하다.</a></li>
<li><a href="#toc_2" title="toc_2" class="external">100% 찬스를 찾아서</a></li>
<li><a href="#toc_3" title="toc_3" class="external">반발을 억누르는 약방감초</a></li>
<li><a href="#toc_4" title="toc_4" class="external">독재시대의 개막과 혈투</a></li>
<li><a href="#toc_5" title="toc_5" class="external">존재감 없는 정치권의 화두</a></li>
<li><a href="#toc_6" title="toc_6" class="external">아직도 일본의 존재를 모르는 서울</a></li>
<li><a href="#toc_7" title="toc_7" class="external">터지면 크게 터진다.</a></li>
<li><a href="#toc_8" title="toc_8" class="external">MB정권이 사는 길, 죽는 길</a></li>
<li><a href="#toc_9" title="toc_9" class="external">천 번의 기도로도 죽은 자식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a></li>
<li><a href="#toc_10" title="toc_10" class="external">송(頌) 시대별곡(時代別曲)</a></li>
</ol>
</div>
<h3>들어가면서<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0" title="toc_0" class="anchor" id="toc_0">#</a></sup></h3>
<p>9 월 마지막 날 로부터 이 글을 쓴다 . 지난 9월 26일자로 ‘몰지각 시대의 이성 ’이라는 첫 번째의 글을 썼다. 내용이 좀 복잡하긴 하지만 왜 한반도 문제가 현재의 서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인지, 이 일이 MB정권에 후 순위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는 설명했다. 당연히 일본이라는 팽창주의 노선이 서울에서 사냥개들을 통해서 어떤 일을 벌이는 지도 ‘시대 시리즈 ’와 함께 보충했다.</p>
<p>9월 30일, 미국의 구제금융안(bailout)이 하원에서 부결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이를 일종의 정치적 페인트 모션으로 보는 것은 여러 모로 미국의 정치 경제권력의 구성으로 보아 평가가 적절해 보인다. 물론 미국민들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지만 10월 2일 상원통과에 이어 하원도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고통 확산의 첫 시발점이 된다. 시장도 불신에 그득차 있다.</p>
<p>결국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위기의 연속 드라마다. 실물경제가 위험해지기 시작할거라는 조짐은 사방에서 드러난다. 환율로부터 외화유동성의 부족현상, 그리고 시장의 불안이 기업, 가계, 부동산 등으로 확산된다.</p>
<p>이 현상은 미리 예고한 바와 같이 ‘경제를 죽이는 과정 ’에서 나타난 산물이다. 월 스트리트의 붕괴현상은 예상보다 확대된 개념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있건 없건 간에 한국경제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바로 MB정권이다. 그들이 ‘친일의 사냥개 ’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조짐에는 일본기획자의 얼굴이 겹쳐져 보이는 게 당연한 것이다.</p>
<p>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 바로 외화유동성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다. 원화가치는 하락하고 국제시장에서 외환수급도 자유롭지 못한 터에 무역수지 적자폭은 몇 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외환보유고 이야기가 자꾸 나오지만 9월 중순 경 현재 2,432억불 가운데 1년 내 만기도래 유동외채 2,223억불 , 10월 초 한국은행 발표로는 9월말 현재 2,396.7억불 수준이다. 실제 가용액은 200억불 보다 훨씬 아래 수준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어찌 될는지 모를 판이다. 10월 무역수지는 당연히 적자일 듯 하고, 11월말이 지나면 지난 9월초 연기했던 외화채권 가운데 3개월 연장분이 도래한다. 이것이 관건이 아니다. 엔케리 자금에 대해 시중은행의 연장불가 결정이 9월 중순 이후 진행 중이고, 일본도 자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금리인상을 하면 바로 엔케리는 빠져 나간다. 부동산에 투입된 PF자금들도 마찬가지다. 시장붕괴 상황에서 그나마 지탱해주던 실물경제에 대한 관망심리가 무너지면 바로 한국 경제는 무너질 조짐이다.</p>
<p>주가를 연기금으로 억지로 받치는 비정상적인 주식시장에서조차 선명하게 향후 실물경제의 위축이 눈에 띈다. 이것은 미국경제의 환란과 잇닿은 것이기도 하지만 애초 지난 3월 이후 고환율정책 기조 유지로부터 부동산의 버블화, 종부세 감면, 시장에의 무리한 환율조정 개입, 연기금 투입을 통한 시장육성 등을 해왔던 정부의 실책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 다시 공기업 민영화가 거론될 것이고, 부족한 외화수급을 맞추려면 무리한 정책기조가 따를 듯하다. 한 마디로 국가경제를 일부러 망치면서 ‘누군가를 ’불러들이는 형국이다.</p>
<p>국민들은 아직까지 MB정권이 이 정도 수준의 극악함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다. 여전히 한나라당의 지지층은 다른 야당에 비해 두텁다. 몰지각이 불러온 해프닝이다.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선뜻 지지하지 못하는 관망세력, 그리고 행동하려고 해도 뚜렷한 목표를 상실한 지난 십 년의 소시민적 삶들이 그득하다. 이것은 일종의 비이성적 국민의식에 속한다.</p>
<p>‘일본 ’이 드러날 정도의 수준에서는 한국은 이미 이 시대를 고스란히 ‘다시 백 년 ’으로 돌린 수준일 터이지만, 그 상태는 앞으로도 최소한 일 년은 남았다. 그만큼 그들이 보란 듯이 드러내고 등장하지는 않는다. 마치 안개처럼 들어오는 방식을 선택할 것이고, 아는 순간, 시대는 누군가에게 아주 강하게 잠식된 이후가 될 터이다.</p>
<p>이번에는 종합적으로 도대체 어떤 형태로 우리가 10월~11월에 걸친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인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것이 차라리 예상이면 좋겠지만 지금까지 지난 6월 이후 단 한 번도 이 흐름이 바뀐 흔적은 없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렇게 대세처럼 이어져갈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약간씩의 변용은 있을지 몰라도 ‘대세의 흐름 ’은 그렇게 간다는 것은 분명하다.</p>
<h3>1. ‘희생양 ’이 필요하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 title="toc_1" class="anchor" id="toc_1">#</a></sup></h3>
<p>MB 정권은 출발부터 희생양을 설정하고 움직이는 중이다. 청와대가 일차 개편되고 내각도 부분 개각을 했지만 그래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킨 몇 사람이 있다. 그 라인은 정책기획, 경제, 그리고 대변인이다. 그러니까 ‘박재완-강만수-이동관 ’세 사람을 기본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여기에는 한승수 총리가 끼어있지 않았지만 촛불민심으로 오히려 그의 지위가 격상된 감도 없지 않다.</p>
<p>이 설정은 밀어붙이기를 가속화하는 축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들은 한편으로 ‘어떤 상황 ’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p>
<p>왜 MB는 강만수를 경질하지 않는가?</p>
<p>이 점을 의아해 하는 사람들은 많다. 경제정책 자체가 국민 대다수를 대상으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중심으로 가는 상태에서 나오는 당연한 의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기에 이상할 정도로 ‘좌파 우파 ’같은 이념이 개입된다. 즉, 그들이 생각하는 우파적 관점의 정책이 바로 친 기득권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p>
<p>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이념적 접근이 친 기득권 경제정책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반문한다. 그러나 줄기차게 이 말을 되씹는다. 박희태가 말하는 “냉전 이상의 긴장상태이므로 울타리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 ”는 발언은 차라리 우파의 벽으로 사회 국가 전체를 포획하자고 외치는 목소리다. 그래서 좌파정권이 망친 경제라는 표현이 나온다.</p>
<p>주목할 부분은 여기서부터다.</p>
<p>왜 좌파 우파론이 나오고 경제는 바닥으로 몰고 가야 하는가? 일반적 논리를 보자.</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일단 경제를 죽이지 않고서는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는 논리는 합당하지 않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집권한 정권으로 사회를 개편하고 변모시킬 방법은 많다.</li>
<li>둘째, 기득권 중심의 경제정책을 편다 하더라도 일부러 경제를 잘못되게 만들 수는 없다. 좌파론을 펴기 위해서 경제를 죽인다는 것은 억측이다.</li>
<li>셋째, 세계 경제와 연동된 상태에서 초기 경제정책이 약간의 오류가 있었는지는 모르나 그래도 이 정도면 잘 관리하는 것이다. 과거 잘못된 정책 몇 가지를 수정한 것으로 국가경제가 모두 잘못되지는 않는다.</li>
</ul>
<p>대체로 이런 논리를 편다. 매우 평면적이다. 약간 입체적으로 재구성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이 장면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정권 초기의 경제정책은 한 마디로 친 기업적인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친 대기업도 아니었다. 그렇게 흉내만 내었을 뿐이다. 목표는 일단 경제를 ‘말아먹는다 ’에 집중되었다.</li>
<li>둘 째, 그럴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경제파탄 국면이 조성되지 않고서는 ‘친일 ’이 확고한 자리를 잡지 못한다는 원칙이 서 있었다. 그를 통해서 일본이 구세주로 등장하는 프로그램, 국민들을 우중화(愚衆化)해서 노예처럼 몰고 가지 않고서는 목표한 ‘친일화 ’달성이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다.</li>
<li>셋째, 반발에 대한 고려다. 경제적 난관 없이 국민에 대한 공안정국, 신메카시즘의 기법이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다. 당연히 이 틈을 비집고 뉴라이트 집단을 앞세우고, 정권까지 나선 ‘우파 네트워크 론 ’(좌파 배척론)이 나왔다. 이른바 이념전쟁은 그저 나온 것이 아니라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소시민적인 개인주의로 몰아가기 위한 방책이었다.</li>
<li>넷째, 그 이후의 대책이다. 일단 어떤 형태로건 친일화의 기초 완성을 해야만 ‘보수정권의 백 년 ’(즉, 친일정권의 백 년 기득권)이라는 그들 집단의 목표를 일차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 이후 서서히 경제환경을 계급화하고 예속화 하면서 끌고 나가면 완성까지 이르는 것이다.</li>
<li>다 섯째, 이 프로그램의 오류는 ‘촛불 ’이었지만, 그 이후 기획의 변경에 의해 오히려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계기로 촛불민심을 찍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좌파, 빨갱이, 공안정국의 조성이 유리하게 되도록 기획이 바뀌어 갔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들을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고 간다는 데까지 발전했다.</li>
</ul>
<p>MB정권이 친일성향인가 아니면 ‘친일 그 자체 ’인가를 따져볼 수 있는 잣대가 바로 이 부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권 자체가 완전한 친일이고, 그들은 우파, 보수 같은 가면을 쓰려고 한다.</p>
<p>여기서 희생양이 등장한다. 바로 그들이 말하는 ‘좌파 ’다.</p>
<p>촛불민심 자체가 좌파다.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대중행위가 좌파다. 정책을 찬성하지 않는 모든 대상은 좌파다. 그러므로 자신들은 우파가 된다. 그 가운데 친일이 곳곳에 침투를 한다. 교과서도 그렇고 정책 속에서도 그렇다.</p>
<p>이 프로그램은 초기 촛불민심이 터져 나온 이후 변형된 것으로 파악된다. 원래는 서서히 가려고 했다가 촛불로 인해 좌절되는 척 했지만 이내 본 코스로 접어 들었다. 오히려 더 강력해졌다고 봐야 한다.</p>
<p>어디까지 갈 것인가?</p>
<p>변 수는 국민의 반발에 있다. 정치권의 정권에 대한 견제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MB정권은 일단 밀어붙이기를 가능한 수준까지 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반발이 거세진다. 경제위기가 오면 그것을 헤쳐나간다는 명분으로 공기업 민영화 등을 통해, 그리고 정책자금의 지원 등을 통해서 일본은 한국에 상륙하게 된다. 그것이 친일의 기초완성이지만 국민들은 아직 그 내용을 잘 모른다. 그저 뉴라이트 집단이 친일이라는 수준이다. 정권 자체가 친일사냥개 집단이라는 것까지는 어렴풋이는 알아도 하나하나 따져볼 여유가 없었다.</p>
<p>오히려 국민들의 반발은 정책 실패로 모아진다. 기득권만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 그 가운데서도 경제정책으로 집중되게 되어 있다.</p>
<p>강 만수는 그래서 일정 시간 동안 살아남아 있어야 하는 역할을 하는 중이다. 경제위기가 오고 나서, 그 책임을 질 사람이 MB가 아니라 앞줄의 한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섣불리 강만수를 경질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더 강하게 위기로 몰아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 것이 현실이다.</p>
<p>정권은 촛불민심을 희생양으로 하고, 한편으로 반발에 대한 희생양으로 강만수를 찍어놓고 기다리고 있다.</p>
<p>좀 더 많은 희생양이 필요할 개연성도 있다. 그 때는 주변의 이런저런 사람들을 개각하는 것으로 마무리 할 것이다. 거기에는 한승수 등이 포함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애초 없었다. 이렇게 가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었다.</p>
<p>목 표는 간단하고도 명쾌하다. 정권 초기에 친일의 재구성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용어상으로는 ‘우파 네트워크 ’로 나온다. 그러나 실제는 친일의 집단화, 계통화라는 것으로 보여진다. 거기에 정권을 축으로 하는 기득권들이 결합한다. 기업, 단체, 정당, 종교, 개인 등이다. 여기에 속하지 않은 집단은 그들의 ‘패거리 ’가 아니고, 이 정권에서는 절대 주체가 될 수 없다. 완벽한 편가르기가 가능한 것은 바로 정권이 이 프로그램에 공권력을 동원했기 때문이다.</p>
<p>국민은 일단 가장 큰 희생양이 된다. 시대도 그렇다. 대한민국 정권수립 60년을 시발로 해서 친일정권이 가동되었다. 국민은 드디어 ‘황국신민 ’이 된 셈이다. 빌어먹을 상황이다.</p>
<h3>2. 100% 찬스를 찾아서<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2" title="toc_2" class="anchor" id="toc_2">#</a></sup></h3>
<p>그 들의 기획은 치밀했지만 곳곳에서 구멍이 뚫렸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촛불민심이다. ‘광우병 ’도 문제였지만 촉발되는 과정에서 ‘주권 ’(主權)이라는 빌미를 준 것이 그들로써는 ‘옥의 티 ’였다. 향후 그들이 전개할 프로그램은 바로 한국 내에서 국민주권을 빼앗는 일이었기 때문이다.</p>
<p>이후 그들은 100% 찬스를 찾기 위하여 숱하게 사회 내부를 휘젓고 다닌다.</p>
<p>‘ 건국 60주년 ’이라는 개념을 꺼내면서 ‘이승만 재평가 ’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역사교과서도 아예 이 참에 일본 우익과 동일한 뉴라이트 교과서 식으로 바꾸자고 덤빈다. 그것뿐이 아니다. 종교편향성을 통해 개신교를 한 카테고리로 묶는 작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사회 각 부문에서 반대가 가능한 세력과 집단을 한꺼번에 소탕하려는 공안정국을 가동한다. 더불어 여론장악을 위한 신문방송 권력의 재편, 금산법 완화를 통한 재벌의 금융권 진출, 조중동 등 페이퍼 매체의 방송진출 등을 연다.</p>
<p>이 일련의 작업들은 매우 치밀한 구성을 바탕으로 한다. 겉보기에는 비판의 소지가 다분히 있지만 유기적인 관계, 즉, 정권이 가는 방향에서 보자면 이것이 대세로 인식되게끔 몰아붙이는 것이다.</p>
<p>진행과정에서 몇 가지의 새로운 찬스를 엿보는 조짐도 나타난다. 이끌고 있던 흐름과 다양성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은 유형들이 드러난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기득권을 단속하는 것이다. 종부세 논란은 해프닝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최소한 기득권의 안전을 그들이 도모한다는 강한 이미지를 심기를 원한다.</li>
<li>둘째, 권력의 흉포함을 보인다. 언제든지 공권력은 정권의 시녀임을 만천하에 알리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외부적인 반발뿐만 아니라 그들 내부의 이탈을 막는 방법이 사용된다. 떠나면 죽는다는 강한 메시지다.</li>
<li>셋 째, 포획의 수순을 밟는다. 즉, 사회 내부에서 계층화를 가장 손쉽게 달성 가능한 여론의 장악을 위해 신문, 방송, 인터넷까지도 모두 여론의 조작과 단속을 병행하려고 한다. 이것은 소위 ‘오감(五感)의 포획 ’이라고 불리는 방식이다.</li>
<li>넷째, 주의(注意)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경제다. 촛불민심에서 나타난 세력중추가 없는 집단의 한계를 십분 활용하려고 한다. 각개격파의 원동력은 바로 산만(散漫)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것은 당면 경제, 생존에 대한 집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야 뭉치지 않는다고 본다.</li>
<li>다섯째, 남북관계를 최대한 악화기조로 이끈다. 이것은 작전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그들이 기획한 우파 네트워크의 당위는 한방에 무너지고 만다. 즉, 민족주의 기조가 드러나게 될 경우, 민심은 요동을 친다. 그러므로 책임을 적절하게 상대로 돌리는 이화접목(移花接木)의 수법을 사용하는 중이다. 책임은 항상 상대에게 있다는 주장으로 몰고 가는 셈이다.</li>
<li>여섯째, 일본을 등장시킨다. 친일의 재구성은 일본에 대해 두 가지의 당위를 내밀며 시작된다. 하나는 일본의 과거에도 공(功)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는 논리로부터 출발한다. 딱 이 두 가지에서 일본은 과(過)를 따지지 않아야 하는 대상으로 돌변한다.</li>
<li>일곱째, 근대화 산업화 세대라는 명분을 내건다. 이것은 우파론과도 다르다. 일종의 세력화를 위한 끌어안기 가운데 친일이었건 아니었건 간에 경제개발에 기여한 모든 집단과 개인을 우대한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우파로 포장된 친일의 우산 속으로 끌어당긴다.</li>
<li>여덟째, 공권력의 적용이다. 무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강압(强壓)을 단행한다. 항상 명분을 남긴다. 이유는 다르다. 이것은 공권력이 가질 수 있는 극대치를 사용하는 것으로, 그들이 가진 권력지향적 속성을 마음껏 이용하는 것이다.</li>
</ul>
<p>이런 그들의 한국 사회에의 접근법이 통하고 있다. 물론 반발은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미미하다. 왜냐하면 겉으로 드러난 한계치가 오지 않는 상태까지만 몰아 붙인다. 적절하게 여러 단계를 혼용하고, 여전히 조중동을 비롯한 여론의 조작에 용이한 패거리가 함께 움직인다.</p>
<p>이 가운데서 비집고 나올 가능성에 대해 사전 단속을 강화한다. 현재로써는 가장 통제가 되지 않는 곳은 바로 ‘인터넷 ’공간이다. 거기에도 대규모의 세력을 동원(소위 ‘알바 ’다)한 여론조작을 감행한다. 그러나 인터넷이 가진 자정기능은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러므로 아예 이를 틀어막으려 한다. 단순한 조작의 차원을 넘어서 창구기능을 막으려는 시도는 무모하게 보이지만 진행 중이다.</p>
<p>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가 발생할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그에 대한 대책 요령은 ‘압박과 회유 ’라는 것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설득이 아니다. 그들의 친일화 정책기조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이들의 태도에 두 가지로 대응한다. 하나는 침묵이고 다른 하나는 반발이다. 전자에는 회유, 후자는 압박이 시작된다.</p>
<p>대개의 중립지대(회색지대)에 속한 사람은 극한 대립을 싫어하는 경향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대체로 먹혀 들어가는 편에 속한다. 정권이 아직도 4년 여 남았다는 사실, 그리고 차기 정권마저도 이런 기조대로라면 장악된 여론을 바탕으로 움직인다면 다시 정권연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될 경우, 어떤 집단이나 개인도 이들에 의해 장악될 소지가 크다.</p>
<p>압박은 전방위로 진행된다. 국가가 장악한 개인, 집단에 대한 정보로부터 나아가 검찰, 경찰의 ‘몽둥이 권력 ’까지, 더불어 세무조사나 기타 감사원, 금감원 등 조사와 통제기관까지 아낌없이 동원된다. 거대한 포획의 흐름이 이어지고, 거기에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저항할 여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p>
<p>특히 과거와 같은 시류를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들의 잔꾀라고 볼 수 있다. 즉, 독재와 반독재, 민주와 반민주 같은 흐름이다. 그러나 이것은 조만간 그렇게 정의되며 반발로 이어질 조짐이다. 왜냐하면 한 번 사용된 권력은 자꾸만 독재와 반민주를 지향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밀어붙이기의 폐해다.</p>
<p>이것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들의 고민 가운데 가장 깊은 것은 바로 이 부분이지만,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포획구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정밀하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의 기획에는 숱한 빈틈이 있지만 의외로 이를 해체하려고 하면 장애에 부닥친다. 그만큼 조밀(稠密)하게 구성되어 있다. 섣불리 과거의 잣대인 독재, 반민주 같은 논리만으로 이들의 기획에 대항하고자 할 경우에는 바로 강압이란 잣대가 움직인다. 매우 교활하게도 공안, 메카시즘, 전례, 조사, 의회 권력, 친 정권 사회집단 등이 움직인다. 좌충우돌 하는 사이 힘이 다 빠지고 만다.</p>
<p>그러므로 현재를 그들끼리는 자화자찬할 수 있다. 아직은 빈틈이 없다는 사실에 만족을 표시하는 셈이다. 경제로부터 사회 전반에 걸쳐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유형의 ‘친일의 재구성 ’이 착착 진행 중이다. 부분적 대항기조로 이들의 기획이 꺾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전면적이지 않고서는 힘들다는 의미다.</p>
<p>사회 국가가 이들에게 이만큼의 공간을 내어주고 난 상태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변혁의 변수는 있을까? 가능한 영역은 다음 세 가지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 째, 그들 내부의 분열이다. 항공모함처럼 움직이는 상태에서 그들 간의 이합집산은 세력간의 다툼으로 드러날 공산이 크다. 오히려 이것이 더 부채질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이들은 스스로 분화될 것이다. 절대권력은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고, 나아가 내부에서 권력의 분점을 위한 투쟁이 벌어진다. 그래서 자멸한다.</li>
<li>둘째, 정책실패가 그들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다. 이를테면 민심이 경제정책의 실패가 의도적인 것이며, 나아가 국민을 소시민화, 노예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다. 민중의 봉기(蜂起)는 일종의 분노의 폭발이다.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는 경우의 수, 바로 그것이 민심을 아주 빠른 속도로 뭉치게 만든다. 이를 두려워하면서도 이를 제압하는 수단에 공권력을 마구 투입하는 행태를 보이지만,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자각(自覺)이 생긴다. 그 지점이 무서운 것이다.</li>
<li>셋째, 사건이다. 권력이 결정적인 패착을 두게 되는 경우가 바로 희생자가 나타날 경우다. 공권력의 사용은 항상 희생물을 동반하게 되어 있다. 사회 내의 소외(疎外)가 아닌, 실질적인 피해자가 속출하는 경우, 그것은 엎어진 물처럼 주워담지 못한다. 촛불민심의 투옥자가 1,500명을 넘어섰다. 사실 이 숫자만 하더라도 적지가 않다. 그러나 결정적인 희생자는 조계사 회칼테러에도 불구하고 군중 속에서 벌어진 피해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촛불민심을 초기 진압하는 대응을 하고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군중에서 나타난 희생자 ’는 생기게 마련이다. 그 경우, 민심은 급속도로 이반(離反)한다.</li>
</ul>
<p>현재까지는 정권의 대응이 훨씬 기민(機敏)하게 보인다. 그러나 장담할 수 없다. 이제 겨우 7개월 여가 지났을 뿐이다.</p>
<h3>3. 반발을 억누르는 약방감초<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3" title="toc_3" class="anchor" id="toc_3">#</a></sup></h3>
<p>장기적인 정권유지를 위해 역사 속의 정치집단이 선택한 가장 좋은 방법의 첫 번째는 국민을 우매(愚昧)하게 만드는 것이 꼽힌다. 두 번째는 공포감을 통해 통제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노예근성을 타성(惰性)으로 고착화시키는 것이다.</p>
<p>한 국은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분단역사의 아픔이기도 하지만 곧잘 이것은 한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친일집단이 주로 사용했던 최악의 방법이다. 바로 ‘반공 ’(反共)을 확장하여 상대를 ‘빨갱이 ’로 몰아넣는 레드 콤플렉스 시스템이다.</p>
<p>국 민은 촛불민심을 통하여 강력하게 반발을 했다. 그 구호는 바로 ‘소통 ’(疏通)이었지만 이것은 거부 당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정권이 설정한 방향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것은 매우 간단한 논리로 거부되었다. 바로 ‘빨갱이 ’다.</p>
<p>1997년 IMF 이후 한국 사회에 정착되어버린 개인주의, 이기주의는 이제 그 뿌리를 한참 내린 상태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이런 류의 이야기다.</p>
<blockquote>
<p>“우리의 노예근성이 드러난 것이다. ”</p>
<p>“모두 벙어리다, 생각도 없고, 저항적 생각을 하다가도 곧 포기한다. ”</p>
<p>“국민을 호구로 여겨도 자신(개인)이 집단에서 왕따 당하는 게 두려워 입 닫고 산다. ”</p>
<p>“몽둥이가 무서워 멍청한 개새끼로 산다. ”</p>
<p>“지성인이라는 것들은 지 잡혀갈까 봐서 쳐박혀서 나오지도 않는다. ”</p>
</blockquote>
<p>이 야기의 저변에 흐르는 것은 분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동시에 있다. MB정권은 공포정치를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를 중우화(衆愚化)하는 데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그러므로 노예적 사고를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비록 지난 십 년이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서 개인주의가 극대화되긴 했으나 만끽했던 민주주의가 있다 보니 반발은 여전히 있는 것이다.</p>
<p>그래서 정권은 다시 두 가지의 선택을 하게 된다. 첫째, 강력한 공안정국을 더욱 강화해나간다는 것. 둘째, 국민을 우매하게 만들 수 있는 언론의 기능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p>
<p>사실상 MB정권은 네티즌의 의견대로라면 다음 다섯 가지를 그들의 근간으로 삼는다는 건 거의 확실하게 보인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 째, 서민경제 쥐어짜기다. 이른바 고통분담 논리다. 경제를 말아먹는 것은 정책당국이지만 이 잘못을 감당해야 하는 주체는 바로 국민이 된다. 그래서 국민 대다수가 자신들의 앞가림을 하기 바쁘게 만든다. 딴 신경 쓸 틈 없도록 부리는 셈이다. 중우화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까지 보여지는 대목이다.</li>
<li>둘째, 색깔 입히기다. 반대하는 모두는 일단 ‘좌파 ’로 몬다. 대통령이건 집권여당의 당대표나 심지어 내각까지도 여기에 동참한다. 당연히 정권비호세력들은 상대를 모두 색깔(좌파)을 입히도록 방향을 몬다. 잃어버린 10년이란 구호로도 모자라기 때문에 아예 공안정국, 메카시즘 바람을 일으킨다.</li>
<li>셋째, 편 가르기다. 이건 니편내편이라는 가르기에 속한다. 단순히 정치적 지지층의 확보 내지 확산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최소 지지선을 가지면 바로 정책적 밀어붙이기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지지율 30%라는 경계선만 되면 무조건 정책을 밀어붙인다.</li>
<li>넷 째, 남탓 하기다. 일단 전임 노무현 정권 탓을 하고, 좀 더 확대해서 이른바 ‘좌파정권 10년 ’탓을 하고, 조금 더 나아가면 국제경제 탓이나 혹은 촛불민심을 핑계로 댄다. 이런 기피심리는 아주 만성화되는 조짐이다. 그 와중에 자신들이 잘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자기 세뇌를 시킨다. 집단 최면이라 할지라도 좋다는 기세다.</li>
<li>다섯째, 이익 챙기기다. 철저히 편가르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자기네들끼리의 이익향유가 있다. 이것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는 깊숙하게 진행 중이다. 공정하지 않은 것은 이미 낙하산 인사에서 드러났지만, 이것을 굳이 코드인사라고 해주더라도 그 목적은 정권의 안정성 강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적 이익 ’(개별적 이익)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li>
</ul>
<p>이를 통해서 그들의 잘못을 가리려고 한다. 그 가장 큰 부분이 두 가지다. 하나는 기득권 유지이고, 다른 하나는 수구(守舊)다. 후자가 훨씬 위험하다는 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MB정권의 경제기조도 사실상 이런 정치적 지향점-철학이라 부를 수도 없는-에서 파생된 것이다.</p>
<p>악 성으로 그들의 목표를 정의하는 이유는 ‘수구 ’의 대상이 친일, 친미 수준의 사대주의적 발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사회적으로 완전한 실체로까지 받아들이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실체를 종속적으로 만들더라도 끌고 가고자 하는 것이 ‘경제적 생존 ’도 아니다. 바로 민중의 노예화 수준에서 평가되어야 한다.</p>
<p>여기에서 국민과 정권 간에는 가장 큰 괴리(乖離)가 생긴다. 국가가 아니라 정권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p>
<p>MB 정권은 이런 자신 내부의 문제점이 국민들 사이에서 쟁점이 되는 것을 극구 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위의 다섯 가지 방향이다. 서민경제 쥐어짜기, 색깔 입히기, 편 가르기, 남탓 하기는 바로 대표적인 방식이다. 이것을 통제된 언론을 통해, 나아가 정권비호 집단과 세력을 통하여 끊임없이 국민에게 주지시킨다. 필요하다면 공권력을 사용하고, 그래도 안 되면 전방위에서 이 모든 행위를 집중한다. 잠깐 물러나서 사과하고 담화를 발표하는 등으로 ‘큰비를 피해가는 ’꼼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본류를 유지하는 데는 누구보다 더 치밀했다. 금방 그들의 노선은 그대로 복원되었다. 다시 강압과 회유, 그리고 장악과 포획이 진행되었다. 지난 7개월이 그랬다.</p>
<p>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반발은 지난 6월말을 고비로 더 이상 실체화되어 드러나고 있지 않다. 이유는 무엇일까?</p>
<ul class="checkListType">
<li>첫 째, 정권의 대응이 먹힌 것이다.
<ul class="arrowListType">
<li>9부 능선도 아닌 애매한 8부 능선에서 오락가락 하는 방식에 국민들이 스스로 진이 빠졌다. 효율적으로 여론을 장악해 들어간 방식은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유형에 속했다. 거기에 국민 대다수가 농락당했다.</li>
</ul>
</li>
<li>둘 째,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할 조직기구가 없었다.
<ul class="arrowListType">
<li>기존의 기구들은 모두 ‘빨갱이 ’라는 색깔에 취약하고, MB정권과 같은 친일정권의 꼼수를 상대할만한 전략을 가지지 못했다. 당연히 회유에 넘어가기도 하고 강압에 굴복도 당했지만, 반발의 주체세력이 형성되지 못할 정도로 넓게 쳐들어온 정권세력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산발적 대응은 정권과 대응하기는 무리였다.</li>
</ul>
</li>
<li>셋 째, 지성인 집단이 그들의 사적 이익 때문에 침묵했다.
<ul class="arrowListType">
<li>한국 사회를 지탱하던 안전판이 사라졌다는 표현이 옳다. 불의나 부당함에 대한 대응세력들이 지난 십 년 정권 동안 스스로 분열되어 버렸고, 그들이 보여준 행태에서 그들 자신이 기존 정치세력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는 한계를 증명해 버린 상태였다. 그러니 나타날 지성인도 없었거니와 그나마 있는 사람들조차도 MB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이제서야 모이기 시작하지만 한참 때늦었다고 보여질 정도로 초창기 MB정권의 공격방향에 허둥지둥했던 흔적이 역력하다.</li>
</ul>
</li>
<li>넷째, 여전히 정권 초기라는 개념이다.
<ul class="arrowListType">
<li>경제위기가 다가오면 올수록 아직은 ‘좀 더 지켜보자 ’는 회색지대가 넓게 포진한다. 이들이 가담하지 않는 국민의 반발은 존재하기 어렵다. 결정적 실수가 드러나지 않는 한, 이들은 반 정권에 가담하지 않는다. 이들이 바로 노예근성이라고 욕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분노의 임계점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li>
</ul>
</li>
<li>다섯째, 사회의 다양성과 복잡성이다.
<ul class="arrowListType">
<li>서로 이해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입장 차이가 MB정권의 정책 속에서도 나타나지만, 그 속에서도 각각 다른 정치관, 경제관, 국가관, 세계관이 존재한다.</li>
</ul>
</li>
</ul>
<p>이 런 상태에서 정권은 토끼몰이처럼 소수의 반발세력들을 사회 속에서 분리하려고 몰아 붙인다. 마치 사회에서 격리될 존재처럼 이들을 몰아가면서 공권력을 활용해서 본보기로 처벌하기도 하고, 종교편향의 경우처럼 불교세력을 슬그머니 회유하기도 한다. 이것은 꼼수와 정공의 조합이다. 정치적인 접근이기에 진정(眞情)은 없다. 그것이 이 정권이 가진 가장 위험한 것이고, 그들은 이것을 극대화하여 활용한다.</p>
<h3>4. 독재시대의 개막과 혈투<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4" title="toc_4" class="anchor" id="toc_4">#</a></sup></h3>
<p>봉하마을로 내려갔던 노무현이 10월 1일 서울로 첫 걸음을 했다. MB정권의 실정(失政)은 상대적으로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 착시현상이다.</p>
<p>노 무현과 이명박, 두 사람 간에는 적어도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점이 없다. 목적하는 바는 다르다. 노무현이 친일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일본의 한국 상륙을 저지하지 못한 데 비해 MB는 그 틈을 노리고 친일세력을 규합하며 정권을 탈취했다. 신자유주의 기조는 노무현이 한미FTA를 구걸하다시피 하며 미국으로부터 받아오는데 치중했고 MB는 그것으로 아예 ‘대못을 박으려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 둘 사이에는 차이가 일단 없다. 있다면 노무현의 경우 국민이 기대했던 방향이 아닌 신자유주의를 ‘어쩔 수 없다 ’하면서 마구 받아들였고 MB는 그것이 자신의 정책이라고 하는 수준이다. 노무현은 일제청산을 감행한다고는 했지만 정작 일본 기획자가 의도한 ‘친일의 재구성 ’을 막아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상태에서는 그들이 들어오는 경로 자체를 막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엔케리를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앞으로 폭풍의 씨앗이 될 것이다.</p>
<p>경제위기는 이제 9월을 넘기면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9월 금융위기설은 10월에 들어 외환위기설로 확실히 굳어지는 느낌이다. 외환보유고를 발표하면 알게 될 일이지만 시장은 이미 불안을 감지하고 있다. 11월에는 물가 위기설이 세상을 감쌀 것이고, 12월에는 엔케리가 등장하며 부동산 위기설이 나올 것이고, 내년 1월에는 드디어 초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면서 금리위기설이 등장할 것 같다. 2월 즈음에는 몇 개 대기업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지면서 기업 줄도산 위기설은 마침내 고개를 들 것이다. 이 모든 것이 10월부터 한꺼번에 몰리기 시작할 것이다. 시차를 두고 위기설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위기가 눈 앞에 닥쳐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교묘하게 국제경제와 한국이 엮인 상황에서 드러내지 않고 위기를 받아들였을 뿐이다.</p>
<p>MB정권의 이 상태에서의 선택은? 딱 한 방향으로 나간다. 바로 독재(獨裁)다.</p>
<p>청 와대 혼자서 결정하는 구도는 점점 심각한 의회민주주의의 실종을 부르는 중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그것은 바로 MB가 공권력을 강력하게 휘하에 두면서 다루기 때문이다. 정치세력의 균형이 무너졌다. 단순히 여당이 세운 대통령이 아니라 여당과 지지세력, 그리고 비호세력까지 포괄하는 가운데 MB가 그 중심에 서 있다. 그 힘이 무엇일까? 바로 친일을 중심으로 하는 계보다. 그래서 뉴라이트 집단을 하수인으로, 그리고 보다 상급에서 조정하는 그들 내부의 위계질서로 인하여 여당이건 정부이건, 나아가 어떤 직위마저도 우선하는 그들끼리의 계통도, 계급층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니 이미 한국은 국가가 아니라 패거리의 계보로 움직이는 나라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p>
<p>10월, 이상득은 한일의원연맹 한국측 회장에 취임한다고 한다. 이제 등장해도 좋겠다 싶었나 보다.</p>
<p>이 상황에서는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 보다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밀어붙이기의 요체는 바로 강제(强制)다. 국민에게 조건 없이 자신의 방향을 수용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바로 독재다. 이 과정에서는 혈투가 불가피하다. 많은 피가 흘려질 것이다. 투옥으로부터 공권력의 하수인들에 의한 테러까지도 발생한다. 원래 친일의 사냥개들은 이런 일들에 익숙하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없다. 일본 극우와 우익이 가진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이 무엇이건 가능하다 ’는 것을 신념이라고 포장한다. 그 정치적 신념이라는 종류가 바로 테러를 부른다. 조계사 회칼 테러는 대표적인 백색테러로 분류해도 좋을 듯하다. 단순하지가 않다.</p>
<p>이 것을 공권력 내부에서 감추고자 하면 할수록 혈투의 유형은 더 다양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집단에 대한 테러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다. 물리력은 한 번 사용하게 되면 상대적 반응이 나오게 되어 있고, 그것은 어느 편이건 예외가 아니다. 이것이 수 차 반복되는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 등 법률적 공권력을 가진 측이 이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항상 자신들의 편을 감싸고 그 잘못됨은 은닉하고 은폐하려는 속성을 가졌다. 그래서 ‘드러나게 될 경우 ’에는 수십 수백 배의 비난이 뒤따르게 되어 있다. 이런 싸움에서는 항상 민심은 약자의 편이 된다.</p>
<p>혈투는 다양하게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경제위기 등과 맞물리면서 생계형 투쟁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고, 여기에는 자포자기한 형태의 사람들이 그 대상을 정권으로 돌리는 경우가 생길 것이란 예측 때문이다.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을 가진 폭력심리는 반드시 일정한 대상을 물색하게 되어 있다. 차라리 애국애족하는 심정이라는 정치결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촛불민심이 보여주었던 군중심리와는 다르다. 거듭되는 정권의 실정에 ‘한 몸 바쳐 ’해결하겠다는 식의 관념이 붙어 버린다.</p>
<p>대중적 집회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상호 간의 혈투가 있을 경우와 없을 경우로 나누어지지만 이미 시위현장에 대한 자동차 급습, 조계사 회칼 테러, 경찰 공권력의 과도한 진압 등이 이미 폭력의 기틀을 닦아 둔 상태이기 때문에 차후 벌어지는 대중집회에서는 반드시 그 전후에 있어 폭력을 사용한 혈투가 벌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을 경찰력이 막겠다고 하면 그 대상은 집회 상태가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서 벌어지게 되기도 할 것이다. 막기가 쉽지 않다.</p>
<p>왜 독재라는 개념이 성립되는가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두 가지의 강력한 증거가 있다. 첫째, 일단 정권과의 소통이 지금까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MB 스스로 그리했는지 아니면 주변이 그의 눈과 귀를 막았는지는 모르나 민심의 향배 자체를 그 크기에 비해 너무 작게 평가한다. 그래서 ‘국민과의 대화 ’도 거의 짜둔 각본으로 움직인다.</p>
<p>둘째, 국민을 다루는 방법이다. 대화가 되지 않고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하니 해결방법은 강공(强攻)뿐이다. 이것은 설득력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된다. 이 맛에 들리면 처음부터 끝까지 ‘몽둥이 우선 ’이라는 기조가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파시즘적 접근이 되는 셈이다.</p>
<p>현상은 정확하게 ‘독재와 혈투 ’를 한 셋트로 묶기 시작하는 중이다. 그 속에 반민주에 대한 분노, 수구, 기득권 유지, 친일매국 행위 등이 포함된다. 그 모든 것이 버무려지듯 해서 나오는 ‘피 맛을 보는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p>
<p>엄 밀히 이 또한 전통이라면 전통이랄 수 있다. 한국 정치사에 있어 억압(抑壓)을 목적으로 등장한 정치권력에는 항상 그에 반발하는 세력이 존재했다. 이승만 이후 독재권력에 항거했던 것은 중고등학생, 대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젊은 층이었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세대 구분도 없이 광범위하다.</p>
<p>뉴라이트가 집단화 하는 과정에서 대학에 대해 꽤나 공을 들이면서 이들이 세력화하는 것을 막긴 했지만 그렇다고 혈투 국면에서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든 세대가 대상이 되어 버리게 판이 구성되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악성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은 이에 몹시 무디게 반응한다.</p>
<p>그 점이 오히려 투쟁의 크기를 키울 가능성으로 남는다. 촛불민심은 6월 30일을 고비로 해서 천주교에 의해, 그리고 일부 야당 세력들에 의해, 최근 불교까지 이르는 다른 종교단체들로 일정한 위안을 얻었지만 그 이후 이들마저도 전혀 촛불민심을 이해하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조소(嘲笑) 국면이 만들어지고 있다. 전체적인 불신이 형성된 셈이다. 이것을 정권은 촛불민심이 죽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 착시현상이다. 사회 내부의 지성인 계층과 이른바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중추세력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과정을 지나서 터지는 촛불민심은 이제 당연히 비폭력을 견지하는 형태가 되지 못한다.</p>
<p>그 사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공권력 하나뿐이다. 왜냐하면 정책적으로 MB정권이 지향하는 바는 경제를 죽이고 나서 국민을 통제하는 방식이고 보면, 그 상태까지는 소통을 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없다.</p>
<p>오 히려 이런 때에 등장한 노무현의 민주주의 2.0이나 정치적 발언 등 참여정부 세력의 정치적 재집결은 촛불민심에 반하는 가장 악성의 새로운 형식의 패거리 정치를 만들어 중간지대(회색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권도 반대하는 세력도 모두 ‘별 볼일 없는 정치꾼 ’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족하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의 대응은 역설적으로 MB정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까지 평가되는 것이 옳다.</p>
<p>정치세력은 일단 지리멸렬했다. 민주당은 내부적 갈등마저도 제대로 해소하기 어렵다. 정체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촛불민심도, 그렇다고 MB정권의 기조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 와있다. 또한 촛불민심과의 결합시도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이 정치적 세력이며, 그들 또한 기득권이라는 인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지율이 오르지를 않는 것이다. 그걸 알고도 선택할 대안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민주당 스스로가 현재를 ‘MB정권의 독재시대 ’라고 강하게 정의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민심만이 그렇게 인식한다.</p>
<p>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정권의 언론지지층이 쉽사리 붕괴될 조짐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 내에도 자중지란의 가능성은 남아있다는 점이다. 바로 경제를 보는 눈의 차이 때문이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친일의 재구성을 시도하는 과정은 매우 험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므로 그 위기 이전에 한국 사회가 일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 바로 ‘역사교과서 수정 ’이라는 강수(强手)였지만 이 또한 쉽게 의도대로 되지는 않는다. 사회 내에 뿌리깊은 친일에 대한 반발, 일본에 대한 불신이 그리 빠르게 뉴라이트 집단의 의도대로 되어가지는 않는다.</p>
<p>이러한 사실들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꾸 종합되는 중이다. 즉,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MB정권 내에서의 초조감이 더 깊어질 것이고, 그것은 무리수를 꼭 양산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독재가 깊어지면 혈투는 더 앞당겨지게 된다.</p>
<h3>5. 존재감 없는 정치권의 화두<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5" title="toc_5" class="anchor" id="toc_5">#</a></sup></h3>
<p>왜 정치권이 이렇게 지리멸렬하게 되었는가? 민심은 왜 정치에서 이렇게 일탈(逸脫)하고 있는 중인가?</p>
<p>미 국 금융시장의 붕괴는 단순히 금융에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부동산 시장의 붕괴, 나아가 개인신용의 경색, 소비의 위축, 그리고 다수의 산업체가 몰락하는 현상으로 이어질 듯하다. 구제금융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들이 전횡하는 대책반이 과연 이 위기를 효율적으로 넘길 수 있을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중이다. 또한 이것이 결코 단기적인 사건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세계경제는 앞으로 상당기간 위기상황을 겪게 될 것이고 금융이나 경쟁력이 취약한 시장들에는 더 지독스런 한파가 몰아 닥칠 기세다.</p>
<p>불 행하게도 지난 4월 총선으로 꾸려진 한국의 의회는 이것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민심이 요구하는 수준의 대응을 정권이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아무 제지도 없이 청와대의 일인독주를 방기(放棄)하고 있다. 그래서 민심이 일차 정치권의 역량을 저평가하고, 그들로부터 이반한다.</p>
<p>노무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그가 민주주의 2.0이라는 토론 사이트를 개설하고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정치에 뛰어든 ’형국이지만, 이것은 성공하기 어렵다. 그에게는 한미FTA를 밀어붙인 원죄가 있다. 부동산 가격 폭락 사태가 벌어질 경우, MB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확대 양산했던-그 자신도 부동산 하나는 실패했다고 인정했지만-그 후과를 감당해야 할 위치에 있다. 민심 가운데서 자신을 열렬히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를 대신해서 앞으로 나설 정치적 후계자도 없다. 당연한 일이다. 5 개월 전의 총선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것이 단지 조중동의 치밀한 언론싸움으로만 빚어진 결과로 착각하면 오산이다.</p>
<p>이렇게 놓고 보면, 정치권은 아무도 현재의 상황에서 민심을 대변할만한 가치를 지녔거나 또는 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곳도 없다. 그러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여전히 정치권의 이곳 저곳을 살펴보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정치권은 이제 아무런 존재감이 없어진 상태다.</p>
<p>이것을 촉발하는 것은 바로 실물경제의 위기상황이 될 것이다. 거기에 바로 힘을 보탤 것이 한미FTA다.</p>
<p>헌 법보다 상위에서 국민 개개인을 다루게 될 한미FTA의 각 조항은 지금까지 노무현-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제대로 공청화 토의를 거친 적이 없다. 독소조항은 여전하고, 미국금융위기발 한국 경제의 위기가 국민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습 가운데서도 정권이 이를 밀어붙이고, 또한 정치권이 여기에 제대로 된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못할 경우, 여론은 한꺼번에 폭발할 소지가 있다.</p>
<p>이 부분에서 많은 이들의 전망이 엇갈린다. 한미FTA를 추진했던 노무현 세력이 과연 MB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계승을 동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을 동의한다면, 사실상 노무현은 MB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딜레마가 생긴다. 그럼에도 그는 비판의 각을 세웠다. 싱거운 이야기지만 10월 1일 발언에서 그는 전임CEO와 후임CEO 이야기를 했다. 10.4 공동선언을 두고 그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으니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분명 10.4 공동선언은 상식적으로 그 자체가 이미 ‘견질 어음 ’이었다. 보다 융통성이 높은 ‘어음 ’도 많았다. MB가 남북한 관계를 이렇게 몰고 가는 이유가 노무현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그가 알면서도 밝히지 못하는지는 모르지만- ‘친일의 재구성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금년 들어 모두 드러난 상태다. 그런데도 그 일을 꺼내지 못한다. 그것은 그가 집권하던 시기의 가장 무거웠던 실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p>
<p>민 주당 내에서도 한미FTA는 대세에 속한다. 그러니 곧 다가올 실물경제의 위기에서 민주당은 더 이상 국민들을 위한 당 구실도 하기 어려울는지도 모른다. 차가운 민심이 뒤따를 것이다. 거기다가 촛불민심을 둔 평가에 있어서도 야당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총선의 결과가 지금 진행되는 모든 민심의 비율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억측이다. 정치적인 지지율이 있을는지 모르나 정치권에 대한 지지가 사라지는 상태에서는 향후 다양한 변수가 등장하게 된다. 국민은 정치권의 논리가 아닌 국민의 논리로 이야기를 해주길 바란다. 그에 부합하는 사람이 당연히 정치적 권력도 취하게 될 것이다.</p>
<p>정권이 이 모든 것을 다 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착각이 바로 독재다. 국민의 노예근성이나 벙어리 심정은 바로 피부로 다가오는 순간 저항적으로 돌변한다. 아직은 대다수 민심에게는 9부 능선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p>
<p>그 러고 보면 정치권이 존재하는 이유도 없어지는 중이다.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정치권이 오히려 자화자찬을 하기 바쁘거나 아니면 지난 십 년을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남 탓하기에 바쁘다. 그건 꼴 사나운 장면이다. 구태의연하게 등장한 색깔 입히기는 더욱 많은 국민들에게 정권의 정체가 과거 어느 순간에 있었던 그 모습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국민이 어리석은가 아닌가를 따지는 지표도 조만간 등장할 것이다. 이를테면 쥐어짜기를 하는 장면에서 그에 반발하는 형식이다. 국민이 호구(糊口)가 아니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 그 때부터는 정권도 정치권도 모두 긴장해야 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자꾸 그런 시간이 다가온다.</p>
<p>여기에서 의문이 하나 드는 상황도 있다. 그렇다면 왜 민심은 이 상태가 되도록 폭발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p>
<p>많 은 이들의 생각 속에서 두 가지가 특히 눈에 띈다. 지켜보자는 눈이 있고, 상황을 기다린다는 개념이 존재한다. 지난 4월의 총선은 그것을 잘 말해준다. 정치적인 신뢰 보다는 ‘바꾸자 ’는 대세가 작용하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경제살리기 ’라는 테제에 보다 올인 했던 민심의 흔적이다. 아직은 확실히 경제가 작단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지켜보자는 회색지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 상황이 마치 타임워치처럼 어느 순간에는 이렇게, 다음 순간에는 저렇게 라는 지표가 나름대로 형성되어 있다. 그것을 정권이 모르지는 않아서 부동산 버블을 조장하고, 그린벨트를 푸는 등의 긴급한 조치들을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국민들을 일깨우는 계기로 작용한다. 신뢰를 점차 잃어가고 있고 위험수위로 달려간다.</p>
<p>알면서도 이렇게 한다면 정권의 눈과 귀는 확실히 닫혀 있다고 봐야 한다. 민심은 격동하는 강물처럼 무섭게 어느 순간 들이닥친다.</p>
<h3>6. 아직도 일본의 존재를 모르는 서울<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6" title="toc_6" class="anchor" id="toc_6">#</a></sup></h3>
<p>마 치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절묘한 타이밍에 후쿠다 야스오는 지지율을 빌미로 총리직을 내놓는다. 그리고 아소 다로가 등장했다. 벌써부터 난리다. 극우주의자 아소 다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대동아 전쟁 ’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우리 식으로 보면 그가 ‘친한파 ’로 분류되는 이른바 ‘일본 제국주의를 당연시 하며 한국과는 (말을 잘 들으면) 친하게 지내자 ’고 하는 사람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하더니 일본 극우가 이 기회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데 한국을 ‘다룰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거절하겠는가 싶기도 하다. 거기다 한국에는 이미 ‘사냥개들 ’이 먼저 자리를 잡고 ‘친일의 재구성 ’에 열심히 들어간 판이다.</p>
<p>흥 미롭게도 미국 금융위기가 불거지고 난 이후 일본도 죽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02년 이후의 경제호황이 침체로 접어들었다는 볼멘 목소리다. 근거로 제시한 것이 바로 일본은행의 3분기 단칸(短觀, 기업단기경제관측조사)의 대형제조업황 판단지수가 마이너스 포인터(-3)를 기록했고 실업률도 8월말 현재 4.2%, 무역수지도 8월말 기준 26년 만에 3,240억엔(약 3조 7천억원)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행 부총재 니시무라 키요히코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전망을 내놓았다.</p>
<blockquote>
<p>“일본 경제는 현재 경제부진에서 완만한 경제성장 추이로 점차적으로 돌아설 것이다. 그러나 금융시장 불확실성으로 상당한 불확실성이 동반될 것이다. ”</p>
</blockquote>
<p>그러면서도 다시 월가 사냥에 나섰다. 미쓰비시 UFC가 모건 스탠리에 90억불을 출자해서 지분 21%를 인수했고, 노무라 홀딩스는 리먼브라더스의 사업부를 인수했다. 일본 금융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p>
<p>1999.2~2006.7 까지 거의 7년 넘도록 일본은 제로금리를 유지했었다. 엔케리 트레이드, 마담 와타나베가 탄생했다. 일본의 1,500조엔의 개인금융자산 가운데 거의 절반 이상이 갈 곳을 잃어 버리고 신흥시장으로 돌아다녔다. 일본이 금리를 0.25%로 올리면서 사실상 미국 금융위기는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사실 그 영향을 무시하기 어렵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 자금이 부동산, 주식 등 투기성으로 집중되었고 그래서 시장의 버블화가 가속화된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계경제의 버블화에 일조한 일본이 죽는 소리를 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들의 대책은 무엇일까 ?</p>
<p>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 금융위기와 일본의 주요 수출시장이랄 수 있는 중국의 경기둔화는 사실상 일본 수출기업에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제로금리를 유지하던 일본의 자금은 여전히 일본 내의 버블형성과는 관계없이 세계를 떠도는 중이다. 이걸 회수하게 되면 세계경제는 골치 아파진다. 그 가운데 위력 있는 레버리지를 가진 것이 일본인 셈이다. 그래서 일본의 금융시스템은 미국발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가장 안정적인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다 는 평가를 받는다.</p>
<p>그런 일본에서 요즘 한국 뉴스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오히려 필리핀 경제 이야기는 줄곧 나온다. 2006.9 고이즈미-아로요 간에 일본-필리핀 경제파트너협정(경제협력협정)이 체결되고 나서 환경문제, 교역, 기술이전 문제, 헌법상의 소유권 문제, 필리핀 인력의 일본진출 문제 등으로 추가협상이 몇 차례 진행되는 등 외교각서가 체결되면서도 필리핀 상원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계류중인 것이 바로 양국의 관계다. 그런 필리핀이 이번 미국금융위기에 흔들리고 있다는 뉴스는 일본 뉴스의 중점으로 다루어진다. 결국 일본이 지원하게 될 것임을 말해준다.</p>
<p>한국에 대해서는 조용하다. 이미 한 차례 한일간에는 감정 싸움이 오갔다. 독도문제로 미국이 부시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원상복귀가 되었을 즈음인 7월 31일 일본 네티즌 중에는 “한국대사관과 미국대사관에 화염병이라도 던져라 ”는 극우성 발언도 튀어 나왔다. 거기에 최근의 경제위기를 예상한 듯한 발언도 있었다.</p>
<p>다케사다 히데시. 1949년생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주임연구관이다. 게이오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전형적인 게이오 파다. 그가 이렇게 주장했 다. 산케이 신문 전문가 의견란에 기고한 그의 글 제목은 ‘한국은 대가가 크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 ’이었다.</p>
<blockquote>
<p>“한국의 대외채무가 늘어나고 외환보유고는 줄어들고 있다. 장래 다시 금융위기에 빠져들 것이라는 공포도 나오고 있다. 그 때 일본이 긴급 융자를 해줄 필요성도 나올 것이다. 일본 국민들이 관연 그렇게 하도록 할지 의문이다. ”</p>
</blockquote>
<p>이 ‘협박 ’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져 나오자 현실이 되는 중이다. 7월말 시점에서 나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소에 더 열심히 한국을 까대던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 서울 지국장이 서둘러 ‘좀 멀리 나갔다 ’며 슬그머니 이 발언을 진화 하려고 시도 하긴 했지만 이 협박을 못 알아들은 한국민이 바보다. 일본은 지금 그 발언과 똑같이 행동 하고 있다. 한 술을 더 뜬다. 한국민들을 기망하려고 한다는 의미다.</p>
<p>보복인가? 아니다. 이것은 철저히 각본에 의한 것이다. MB와 강만수는 그 때 이후 외환보유고가 문제없다고 하면서 이른바 환율을 안정화 시킨다는 ‘도시락 폭탄 ’을 마구 사용했다. 꼭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냄새가 났었다. 실제로 짰다면? 그것은 바로 매국행위가 된다.</p>
<p>한국에서 친일 사냥개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은 정확하게 4월 총선이 지난 이후다. 그 이전에도 뉴라이트 집단은 있었지만 그들이 정권의 비호세력이며, MB가 그 점을 인정하면서까지 들어오는 뉴스는 사실상 여러 언론에서 통제되었다. 오히려 그들이 ‘보수 우익 ’임을 더 강조해왔던 것이 조중동이었다. 그들의 친일성향, 친일 사냥개라는 신분에 대해서는 극구 침묵했었다. 그런데 이들이 활동을 개시한 것과 독도문제, 역사교과서 문제는 거의 동 시점에 터진다. 그리고 경제위기를 언급하면서 경고가 나왔던 시점이 바로 7월 말이었다.</p>
<p>여기에서 하나의 의문이 다시 제기된다.</p>
<p>과 연 MB정권은 다케사다 히데시의 발언을 일본의 일개 연구원의 견해라고 판단하고 말았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그는 일본 내에서 대한 공작을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이른바 ‘게이오 파 ’의 인물이고, 그가 지금껏 남북관계 전문가로써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여 해왔던 일련의 발언이 있었다. 간과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숨기고 만 것이다. 다른 매체에서조차 이것은 그냥 일회성의 분기를 나타낸 해프닝 정도로 무마되었다.</p>
<p>발언의 한 구절을 가만히 음미해보면 이런 연결점이 보인다. 첫째, 일본은 한국의 대외채무 증가와 외환보유고 감소를 알고 있었다. 그것이 지속적이며 쉽게 개선되지 않을 흐름이라는 것도 파악하였다. 둘째, 일본이 긴급 융자를 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즉,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질 것이며, 그것이 바로 한국경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읽고 있었다. 셋째, 그 상황에서 한국이 돈을 비릴 수 있는 곳은 일본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도 예측했다.</p>
<p>이 상황에서 일본은 기다린다. 한국의 외환유동성 위기는 곧 닥친다. 일본에게 요구할 수 있는 지원규모가 적다 라 면 모를까 많아지는 상황에서 한국은 일본에 무엇을 내밀하게 약속해야 하는가? 그 점에 초점을 맞추면 이 시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금방 알 수 있다.</p>
<p>한국 내의 친일은 재구성 수준에서 점차 구조화된 완성으로 달려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엮이는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을 묵인하는 대가로 미국도 일본으로부터 ‘챙기는 ’것이 있는 게임이다. 그러나 한국 국민은 무엇인가? 아무 존재감이 없이 무지한 상태에서 스스로 일본이 내민 족쇄를 정권이 받아들이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 이면합의나 혹은 각서 속에 들어있을 독소조항에서 국민만이 자유롭지 않게 된다.</p>
<h3>7. 터지면 크게 터진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7" title="toc_7" class="anchor" id="toc_7">#</a></sup></h3>
<p>그래서 지금의 상황은 아주 긴박하고도 약간은 극악(極惡)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아주 극렬한 시대의 게임이 펼쳐지는 중이다.</p>
<p>일 본 극우 (우익 )의 목표는 영원히 일본 을비난하지 못하는 한국의 정권을 만들 자는 것이 우선이다. 구조적으로 그런 틀이 만들어진다. 사냥개에 의해 한국 사회가 이른바 “선진화, 정상화 ”라는 이상한 구호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국방 등에 이르기까지 일본 극우(우익)의 논리를 수용하는 몇 가지의 원칙이 사회 속에 심어지는 중이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민족주의를 포기하더라도 경제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것이 최선이다.</li>
<li>둘째, 한국 사회에서 좌파를 제거하고 우파적 관점으로 국가를 정상화 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올바른 정체성이 유지되는 것이다.</li>
<li>셋째, 북한을 민족적 관점에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으로 간주하고 상대해야 한다. 그래야만 통일을 빠르게 달성할 수 있다.</li>
<li>넷째, 잘못된 건국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 곧 역사교과서를 경제발전이라는 잣대를 통해 재구성해야 한다. 좌로 기울어진 것을 바로 세워야 한다. 즉, 친일을 재평가하는 것이 논리의 첫 머리다.</li>
<li>다섯째, 일본의 선진화를 배워야 한다. 일본으로부터 배울 것은 배워서 우리도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는 등이다.</li>
</ul>
<p>이 논리는 ‘사냥개 ’로부터 MB정권 전반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도식화된 흐름을 유지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일본으로부터 ‘은혜로운 손길 ’이 들어올 경우, 그것이 실물경제에까지 실질적인 침탈로 들어오게 될 경우가 바로 ‘친일의 재구성이 완성되는 ’순간이 된다. 거기가 바로 사냥개와 기획자 간의 접점이다.</p>
<p>왜 ‘얼치기 개신교(소위 정치와 사적 이익을 앞세운 ‘개독교 ’를 말한다. 진정한 종교인은 제외된다) 는 거기에 동조하는가?</p>
<p>이 것은 전혀 미스터리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조국(祖國)이 없다. 즉, 국가 정통성이나 정체성 보다는 그들이 믿는 종 교도 아닌 컬트성이 더 깊다. 그러므로 한국이라는 국가 사회의 룰보다는 그들의 개인적인 신념이 더 중요한 기제(機制)가 된다. 이들에게 한국의 역사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엄밀히 이 정도 수준이면 대한민국이란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다. 그러므로 ‘친일 ’도 그들의 개별적 이익에 합당하다면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는 집단이고 사람들이다. 한국 내부의 ‘사냥개 ’가 친일을 구조적으로 재구성하건 어떻건 간에, 일본의 극우이념이 그대로 수용되건 어떻건 일단 그들이 반대하는 대상인 ‘그들이 아닌 무리 ’를 ‘사탄 ’이라는 각도로 설정한다. 그들을 지원하는 모든 사람은 일단 그들 편이 된다. 대단한 이분법이지만 그들에겐 이것이 상식이다.</p>
<p>왜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시대 전쟁 ’이라고 부르는가?</p>
<p>이 것이 단순히 촛불민심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되기조차 버겁다. 왜냐하면 지난 60년, 나아가 지난 백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든 문제들이 총집결 해서 드러나고 있다. 거기에는 역사도 시대도, 사회 내부의 갈등이나 종교적인 편향성과 편집증, 그리고 친일과 반일, 친북과 반북, 보수나 진보 또는 민족주의와 반 민족주의가 모두 응축되어 드러나기 때문이다.</p>
<p>문제는 여기서 사회 국가가 과연 다음 몇 가지 테제를 무조건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한국 사회 국가는 ‘친일 ’을 시대적 관점에서 허용 가능한가 아닌가?</li>
<li>둘째, 한국 사회가 ‘친일 ’을 위해 ‘반북 ’을 해야 하는 당위를 느끼는가 아닌가?</li>
<li>셋째, 친일과 반북 가운데 양자택일이라는 당위가 성립될 수 있는 테제인가 아닌가?</li>
<li>넷째, 경제적 생존을 위한 친일을 허용할 수 있는 사회인가 아닌가?</li>
<li>다섯째, 친일정권이 한국 사회의 정치주체로 생존을 허용할 수 있는가 아닌가?</li>
<li>여섯째, 일본 극우(우익)의 한국 진출을 허용하는 정권 및 단체, 개인이 한국 사회의 중추적 위치에서 생존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는가 아닌가?</li>
<li>일곱째, 한국의 미래 세대에게 친일의 정당성을 교육하는 것이 타당하게 받아들여지는가 아닌가?</li>
<li>여덟째, 통일의 당위를 일본이 생각하는 반민족적 관점에서 진행하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 아닌가? 등의 질문이 그것이다.</li>
</ul>
<p>‘허용하는 것 ’이 대세라면 대한민국은 그 날로 일단 세계 역사에서는 죽었다. 정통성과 정체성은 절대 유지될 수 없다.</p>
<p>허용하지 못한다 ’는 것이 대세라면 필연적으로 이 시대는 충돌이 불가피하다. 그것이 설혹 혈투에 가깝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세력을 기득권이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기득권 대 비 기득권의 싸움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친일이냐 아니냐 ’를 둔 시대전쟁의 룰로 접어든다. 그 속에 정권의 정책 행위에 대한 평가가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시대전쟁의 본질을 읽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갈등과 대립이 꽤나 지리하게 흐른다. 그러나 본질을 알게 되는 순간, 이 시대에 대한 개념은 달라진다. 단순히 ‘사대주의인가 아닌가 ’혹은 ‘수구인가 아닌가 ’라는 논쟁과도 다르다. 이것은 완전히 침탈구조를 정하고 들어온 도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누군가는 그 도식 속으로 갇히거나 아니면 돌파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즉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전형적인 노봉협처(路逢狹處), 즉,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형상이다.</p>
<p>이러니 혈투론(血鬪論)이 나오지 않을 재간이 없다.</p>
<p>MB 정권은 이것을 숨기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은근히 드러내면서 정권과 공권력, 그리고 세력의 규합을 통해서 이를 뛰어 넘고자 하고 있다. 경제는 하나의 구실일 뿐이다. 그것이 신자유주의가 불러들인 이기주의 확산 국면에서 ‘친일이라고 내가 살기만 하면 족하다 ’는 이른바 ‘박쥐인생 ’을 양산한다. 노예화하기 딱 좋은 정신세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통한다.</p>
<p>단순히 이것이 정권 기간인 5년이라는 시점으로 한정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극히 오산(誤算)이다. 이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적 침탈이기도 하다. 이 상태에서 한 번 정해진 것을 추후 바꾸고자 하는 것은 전쟁에 지고 나서 다시 승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동일하다. 시대 전쟁의 관건은 당면한 상태에서 한 번 지게 되면 그 패배의 후유증이 아주 오래간다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침탈 이후 파괴되었던 대한제국의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현대판 일본 팽창주의 제국주의 극우(우익)주의의 한국 상륙과 침탈도 똑 같은 결과를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p>
<p>그래서 이 상황이 대립과 충돌로 가게 될 경우의 테제는 앞서 이야기한 여덟 가지 테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찬반에서 갈라지게 된다. 그 중에서는 실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회색지대가 넓게 포진한다고 하더라도 인지하고 이에 저항하는 세력은 패배를 할 망정 이를 수용하기는 어렵다. 즉, 식민(植民)의 개념이 형성된다. 독재와 반독재, 민주와 반민주, 민족과 반민족이라는 테제와도 다르다. 이것은 일단 우리 자신이 ‘식민주의를 자발적으로(혹은 정권의 타의에 의해) 선택하는가 아닌가 ’라는 주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p>
<p>정권이, 그리고 일본이 이러한 기조를 버리지 않는 한, 이 싸움은 시대를 건 한 판 아주 큰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지식인 몇몇이 모여서 이러쿵저러쿵 학술적으로 분석하고 토론할 사연(事緣)이 못 된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앞서 제시된 질문을 상기하기를 바란다.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않거나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이 시대전쟁은 개인에게도 벌써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p>
<h3>8. MB정권이 사는 길, 죽는 길<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8" title="toc_8" class="anchor" id="toc_8">#</a></sup></h3>
<p>선택은 자유다. 정권이나 개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택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도 사실 자유다. 도망가거나 가지 않거나, 싸우거나 움츠려 지내거나 어느 쪽도 선택이다.</p>
<p>시 대전쟁의 상황은 하나씩 드러나는 중이다. 이 참에 친일의 역사와 계보마저도 다 드러난다. MB 정권이 보여주는 것은 친일매국세력의 극악함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애초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와 사회, 역사마저도 모두 ‘도구 ’가 된다.</p>
<p>과연 이런 정권이 오래갈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직접민주주의가 ‘경제살리기 ’라는 하나의 테제에 몰입되어 국민들이 기망(欺罔)을 당했다고 할 때, 그 전제마저도 수용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차라리 유치한 것이다. 적어도 국민이 바라는 방향이 모두 포퓰리즘은 아니겠지만 정권은 이상하게도 요즘 포퓰리즘이란 단어를 많이 꺼낸다. 즉, 국민 다수의 의사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p>
<p>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신뢰냐 불신이냐 ’는 갈림길이다. MB 정권의 초기 반 년이 지난 이후 성적표는 참혹하다. 모조리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친일매국세력을 정권비호세력으로 둔 것하며, 그를 통해 잘못된 신자유주의 정책이나 친미 친일에 목을 매단 정권초기의 외교정책, 반민족주의적 성향, 종교편향성 등은 모두 지탄 받아 마땅한 대상이다. 거기다가 촛불민심에 대한 공안정국의 발동에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냉전시대의 유산인 신 메카시즘이 등장했다. 그러니 신뢰를 받기에는 태부족이다.</p>
<p>더 군다나 정권이 지향하는 방향은 한결같다. 일단 목표를 설 정하고 지속적으로 ‘밀어붙이기 ’를 한다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들어간다. 최소한의 지지세력만을 바탕으로 정국을 농단(壟斷)하는 흐름이 이어진다. 국민을 조롱(鳥籠)에 갇힌 새처럼 취급한다는 말이 옳은 표현이다.</p>
<p>이 기조가 바뀔 조짐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더 강력해지고 있다. 선택할 수단이 그것밖에 없다고도 보여진다. 정권도 물러날 곳이 없다는 의견이 한나라당 일각에서 나오더니 이제는 당 대표의 시대에 걸맞지도 않는 ‘자화자찬 ’이 이어진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정리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에서 보면, 정권이 가진 힘이 바로 ‘그것 ’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나온다. 그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합당한 해석은 ‘무시 ’(無視)라는 표현이 옳다.</p>
<p>이 길은 MB정권이 죽는 길이다. 사는 것 같고 좋은 것 같지만 망(亡)하는 길이다. 거기다가 회생불능으로 역사에 아주 심각한 트라우마(傷痕)를 남길 것이다. 그래도 걸어가려고 한다면 국가 사회를 한 시대의 무덤으로 함께 끌고 들어가는 비정(非情)한 정권으로 기록되고 말 것이다. 차라리 인간답게 혼자의 독백처럼 ‘나는 국민들의 경제를 위해 친일이라도 선택하겠다 ’라고 선언하는 것이 옳지만 그 또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국민을 위한 길이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행보에 속한다. 개인의 욕심이고 개별 집단의 욕망에 불과하다. 거기에 국가나 시대, 민족이나 미래가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도 억지로 견강부회(牽强附會)를 하고자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므로 이 길은 잠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MB와 그 정권이 모두 죽는 길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이다.</p>
<p>그에 반하여 한 국가 사회와 시대를 살리는 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하는 것의 반대로 하면 된다. 지금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버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p>
<p>굳 이 촛불민심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 사회는 거대한 중간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거기에는 친노 친이도 아니지만 공정하게 세상을 읽고, 또한 친일이 아니지만 친북도 아닌 세력, 그리고 무조건 이기주의가 아니라 이타주의로 세상을 읽고자 하는 개인과 집단이 엄연히 존재한다. 정치적 개체가 아닌 순수한 한국 사회 국가, 시대의 관망자는 곳곳에 있다. 이들이 모두 현 시대를 무망하게 보고 있지만은 않다. 무관심하고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을 얻지 못하는 정책이나 기조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p>
<p>그 중에서도 친일은 버려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반일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가 아니고 팽창주의가 아니면서, 적어도 진정성을 가지고 시대를 볼 줄 아는 일본은 동의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영원한 이 땅의 적이다. 그들의 역사를 우리의 그것으로 대처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한국 내에서 벌어져서는 안 된다. 그로 인한 갈등은 남과 북의 분단역사의 충돌과 갈등보다는 훨씬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p>
<p>게다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친일의 재구성 ’은 이제 세살박이 어린애들조차도 알 정도로 일본을 깊숙하게 우리 곁으로 끌어들이는 정권으로 이 시대가 기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선진화이고 정상화라면 정권이 끝나는 시점에서 반드시 그 역풍을 맞게 된다. 그것은 MB나 이 정권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60년간의 친일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기득권이 유지될 것이고, 사회는 곧 망각 속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시대가 바뀌면서 기록하는 자는 더 늘어났다. 하나씩 하나씩 누군가는 그것을 기록하고 전파하게 될 것이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가 아니다.</p>
<p>일 본 기획자의 의도는 이제 점차 에스칼레이터를 탄 것처럼 표면으로 상승되고 있다. 사냥개가 뿌려둔 씨앗들이 많다. 그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동한다. 정치계로부터 정권, 정부, 사회단체나 사회세력들 속에서도 그들의 촉수는 움직인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친일성향 자체를 무디게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자각을 개시하게 될 것이다. 몰지각한 그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계몽에 의해 이 시대전쟁을 이해하게 될 경우는 사냥개이건 기획자는 상정하지 못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진행 중이다.</p>
<p>그러므로 충돌은 곧 아주 커다란 혈투를 예고한다. 전쟁에서 피를 바치지 않는 쟁취(爭取)는 없다고 하지만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하여 일본을 위한 역사에 피를 바치는가를 반문한다. 역사의 죄인이 되는 순간, 분단 60년 역사에서, 경술국치 100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오적(五賊)이 구성될 것이다. 밝혀지는 것은 잠깐만이다. 벌써 숱한 입을 통해 스스로가 친일임을 입증한 자들까지 생겨난 판국이다. 그들을 엄호(掩護)하는 무리는 모두 친일이다. 그것은 친일이며 매국이고 나아가 시대를 팔아먹는 국민에 대한 기망세력이다.</p>
<p>죽는 길로 갈 것인지, 사는 길로 갈 것인지는 결국 마음의 문제이고 선택의 차원에 있다. MB정권의 최종 선택이 과연 어디를 향할 것인지, 지금과는 달리 변화할 것인지는 조만간 판정될 것이다. 그걸 보는 사람들의 선택도 기다리고 있다.</p>
<h3>9. 천 번의 기도로도 죽은 자식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9" title="toc_9" class="anchor" id="toc_9">#</a></sup></h3>
<p>9 월말 모스크바를 방문한 MB는 다시 한 번 ‘김정일 위원장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는 애드벌룬을 띄웠다. 이상하게도 그는 전후의 준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을 앞세워 하는 버릇이 있다. 이것은 매우 포퓰리즘적이다. 거침없이 말하면서 언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말의 무게감이 없고 당연히 신뢰도 생기지 않는다.</p>
<p>그렇다고 이를 뒷받침하는 참모들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지도 않는 듯하다. 오히려 더 많은 구설수(口舌數)에 오른다. 격(格)에 대한 불만은 노무현의 경우도 비슷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존경은 그만두고라도 스스로 품격 유지 자체를 못하는 경우라는 혹평도 나온다. 그럼에도 고쳐지질 않는다. 한평생 굳어온 습관으로 보인다.</p>
<p>멜라민 파동에서 멜라민이 뭐냐, 독성물 멜라민이 왜 제품에 표기되지 않느냐고 묻는 촌극도 나왔다. 말의 실수가 아니라 집중도의 차이 같다. 곳곳에서 이런 해프닝이 터져 나오면서 담화나 사과도 모두 거짓이 되고 만다. ‘내게 맡겨달라 ’여야 영수회담을 끝내고서 바로 야당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때리기 ’로 뒷통수를 터진다는 등 불만이 나온다. 하여간에 엉망진창이다.</p>
<p>그러나 단순히 재미가 아니라 여기에는 뚜렷한 원칙이 있었다. 즉, 말 바꾸기가 전혀 죄의식을 가지지 않은 채 벌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민심이 이제는 ‘한심 ’(寒心)으로 바뀐다는 말도 나오지만, 그 또한 괘념치 않는 눈치다.</p>
<p>국 가의 경제위기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는 조짐에서도 ‘괜찮다 ’, ‘믿어라 ’는 말로만 접근하는 것이 오늘의 실제다. 논리부족이라기 보다는 목적 자체가 다른 데 있기에 딴청을 피우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내를 알 도리는 없다. 그러나 밀어붙이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마추어처럼 어리숙하게 보이면서도 정권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그대로 진행시킨다. 이것이 무서운 점이다.</p>
<p>9 월 말 기준 한국은행이 발표한 외환보유고는 2,396억불이다. 유가증권 2,171억불, 예치금 200억불, IMF 포지션 3.4억불, SDR 0.9억불, 금 0.7억불이다. 그러나 다른 분석으로 들어가면 내용은 달라진다. 1주일/30일/100일짜리 외화단기 차입금이 2,200억불, 수입결제대금 3개월 분 필요량 800억불만 생각해봐도 외화보유고는 -600억불 수준이 된다.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약 2,400억불 가운데 미국채권투자 금액이 1,070억불로 사용하기 곤란한 점을 감안한다면 이건 큰일이다. 한 마디로 벌써 깨어진 상태라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괜찮다는 말만 중얼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p>
<p>과연 어디로 한국이란 사회 국가를 몰고 가려고 하는 것일까?</p>
<p>‘ 명분과 실리 ’라는 관점에서 MB정권은 두 마리 토끼 모두를 놓치고 있다. 정권 개시 후 잘한 것 하나를 꼽기도 벅차다. 그러나 교과서 수정에서 보여지듯 ‘좌도 우도 아닌 정상화 ’라는 개념을 꺼낸다. 노무현이 말했듯이 ‘실용주의 ’라는 단어는 매력적이어서 꺼내 쓰고픈 충동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만한 ‘형식 ’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없다. 오히려 몹시 고의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국부유출 프로젝트 ’를 가동해 왔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 즈음에서는 알아야 한다.</p>
<p>침묵하는 민심이 새로운 잣대를 들이댈 경우에는 경험칙이 작용한다. 즉, 과거를 살펴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권 초기에는 그래도 ‘지켜보자 ’가 대세이거나 혹은 친 정부적 태도를 지켜낼 수 있지만 사회 국가 내부에서 갈등을 지속적으로 양산하고, 그것이 합당한 이유를 동반하지 않는 무조건의 밀어붙이기라는 판단이 나올 경우, 민심은 요동치게 되어 있다. 이것이 지극히 상식적이다.</p>
<p>내 가 지목하는 문제는 ‘친일정권 ’이기에 ‘친일의 재구성 ’을 위한 집권의 정책방향이 잘못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토대로 해서 움직이기에 모든 것이 삐걱댄다. 아귀가 아무 것도 맞는 것이 없는데도 억지로 맞추려다 보니 약한 곳을 자꾸만 강압하게 되어 있다.</p>
<p>소통이 없는 가운데 정권이 모든 권한을 가진 것처럼 밀어 붙일 수 있는 근거가 바로 ‘독재 ’이고, 이를 지적하는 것을 공권력을 동원하여 압박하는 것이 바로 ‘반 민주 ’다. 이미 노무현 시기부터 신자유주의 시대의 악성현상은 드러났었다. 양극화, 빈곤화, 비정규직, 계층간 소득격차, 성장과 분배 불균형, 수출지상주의 등 어느 것 하나 본받을 수 없는 것들이다. MB정권은 이를 더욱 보편화하려는 중이다.</p>
<p>거기에 덧보태어 이를 성취하기 위한 매개로 ‘친일 ’이 사용된다. 좌편향을 바로 잡겠다는 방식의 접근법은 단순한 우편향이라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은 이런 식의 접근이 결코 실용주의가 아님을 안다. 목적이 바로 ‘친일 ’에 있음을 안다. 대북접근을 기술적으로 회피하려는 것이 외교정책의 일환이 아니라 한미일 동맹 강화라는 명분 속에서 일본 극우(우익)의 관념을 그대로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경제위기가 집권 이후 고환율정책으로부터 이어진 아마추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경제정책 관리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것이 ‘경제를 죽여야 ’일본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기 때문이며, 그래야만 선진화로 부르는 공기업 민영화, 포기하지도 않은 대운하 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라 판단한다는 것도 눈치 채었다. 그것을 ‘정상화 ’라고 부른다.</p>
<p>민심은 정권에 불안해 한다. 표출되지 않았을 뿐이지만, 여기서 계기가 마련되면 바로 터진다. 자꾸 먼 미래를 이야기해서 민심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래를 기획할만한 능력이 이 정권에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죽하면 기자협회의 일선 기자들의 MB정권 지지도 1~2%대 수준이다. 이 정도면 아예 믿지 못한다 는 거다.</p>
<p>더군다나 이제 본격적으로 MB정권은 ‘매국 코드 ’가 붙는 중이다. 반국가, 반민족이라는 낙인(烙印)은 사회 내에서도 점차 보편화되는 추세다. 미국산 쇠고기 협정은 검역주권을 팔아 넘긴 ‘매국 협정 ’이라고까지 평가된다. 혹자는 MB정권 자체를 ‘일당 ’(一黨)이라고 지칭하면서 ‘오사카 딴나라 것들과 친일파 매국단체인 뉴라이트가 내각, 청와대 비서진의 80% 장악했다 ’고 평가하면서, 결국 이들은 ‘매국과 반역 ’이란 코드를 선택하는 중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까지 한다. 촛불민심과 침묵하는 다수가 바라보는 MB정권과의 대결구도는 ‘애국과 매국의 싸움 ’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도 등장했다.</p>
<p>이 정도 수준이라면 MB정권은 엉뚱한 방향으로 뛰어들었고 자신들은 성공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하지만 민심은 차갑게 실패라고 단정을 내리는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보다 험하디 험한 꼴이 나오고 있다.</p>
<p>그 러나 MB정권이 상황을 위와 같이 분석한다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직접민주주의에 의해 당선되었으니 ‘나를 따르라! ’는 수준의 구호가 자주 등장한다. 정치권의 정권 내부 억지력이 전혀 가동하지 않는 현상을 보면서 민심은 슬그머니 냉소적으로 변해간다. 점차 싸늘해지는 민심을 아랑곳하지 않고 정권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p>
<p>미국발 금융위기는 자금경색이 가시화되는 중이다. 10월 2일 상원을 통과한 구제금융안은 특별한 경우가 없이는 10월 3일(현지시간) 하원을 통과하고, 대통령 동의 절차를 거쳐 10월 6일 이후 시행될 것이다. 그러나 10월 들어 한국은 순채무국으로 전환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과연 효과적으로 위기관리를 할 능력이 있는지를 곧 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번 위기는 결코 세계경제의 요동만으로 드러난 것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일본의 추후 개입방식에 대해, 정권의 일본과의 담합에 대해 다시 한 번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p>
<h3>10. 송(頌) 시대별곡(時代別曲)<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0" title="toc_10" class="anchor" id="toc_10">#</a></sup></h3>
<p>지 금은 한 시대의 전쟁이 벌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애국과 매국 ’이라는 대결구도가 옳다고 본다. 사적 이익을 기반으로 한 집권세력의 시대착오에서 빚어진 사건이다. 그들에게 국민은 눈에 보이는 대상이 아니다. 그들만이 있는 나라를 생각한다. 그것이 결코 ‘애국 ’이 될 수 없다. 일본을 끌어 들이려는 노력이 단순한 그들과의 협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드러났다. 사냥개가 그걸 사전에 알려주었다. 그들이 포획하고자 하는 대상도 바로 국가이고 시대이다. 국민이 바로 사냥의 대상이 되었다.</p>
<p>이 런 시대는 한 마디로 비극이다. 아무리 희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해도, 상황은 점차 비극의 분위기를 높여가는 중이다. 누구라도 여기에는 저항을 꿈꾸지 않을 수 없다. 촛불민심에 동참하건 아니면 회색지대에 머물건 간에 문제는 절감한다. 해결방식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임계상태로 가는 중이다. 미임계(未臨界, subcritical) 가아니라 임계질량(critical mass)의 특이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상태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도 어리석지만, 그에 무관심한 것 또한 사회 국가 시대의 한 사람으로써는 자격을 가지지 못한다.</p>
<p>모든 것은 정권의 성격으로부터 빚어진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것이 개선(改善)되지 않는 한, 논란을 아무리 거친다고 하더라도 정권이 지향하는 방향은 결코 국민을 위한 행위로 결론지어질 것 같지는 않다. 철저하게 기득권의 유지와 사적 이익이 팽창하는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국가 운영과는 철학이 맞지를 않는 매국적 접근은 ‘도둑놈 정권 ’, ‘사냥개 정권 ’이라고 불린다 하더라도 비하(卑下)하는 것이 아니다.</p>
<p>국민들은 이에 무관심하거나 또는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이 지각하지 못하는 것이다.</p>
<p>무 지(無知)도 범죄이지만 몰지각(沒知覺)은 병이다. 치료되지 않으면 그 병증에 스스로 죽고 말게 된다. 누구 탓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병증이야말로 전염성이다. 반대로 지각(知覺)은 권리이자 의무다. 사용하지 않고 창고에 내버려두면 썩고 만다.</p>
<p>이 상하게도 민주주의2.0 사이트가 개설되고 10.4 공동선언 1주년 기념 행사로 노무현의 서울 입성이 7개월 만에 이루어진 이후 ‘MB 대 노무현 ’의 갈등이 더 부각되지만 이것은 본질이 아니다. 현 정권과 지난 정권 간의 대결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이들 둘 모두에게서 ‘시대 전쟁 ’의 본질을 똑같이 회피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민주와 반민주 ’의 싸움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노무현도 ‘친일의 재구성 ’을 허용했고 MB정권은 이를 완성하려고 덤벼든다. 단순한 양비론(兩非論) 차원이 아니다.</p>
<p>지금은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이 전쟁이 왜 촉발되었는지, 그리고 지금 왜 전쟁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는지 그 ‘대상 ’에 집중해야 한다. MB정권에게도 마지막으로 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9월이 넘어가면서 그마저도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 그들은 국민을 지속적으로 무시한다. 대의민주주의를 실천할 정치권은 이 궤도를 수정시키는 데 아무런 역할이 없다. 민심은 경제에 눈을 돌리지만 정권의 본질을 서서히 자각하기 시작했다.</p>
<p>“반 독재, 반 민주, 반 국가, 반 민족 ”의 4가지 카테고리를 달성하지 못하는 정권은 “반 애국 ”이며 “친 매국 ”정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공식은 유효하게 되었다.</p>
<p>어쩌면 이 시대는 우리에게 많은 희생을 강요할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될 듯하다. 그러나 몰지각 시대를 정리하지 않고서 이 시대전쟁에서 국민이 승리할 가능성은 전무하다.</p>
<p><strong>“깨어나라! 대한민국! ”</strong>이라는 구호는 현 시점에서 드러날 수 있고 최고의 외침이다. 모두가 깨어나서 오늘 이 전쟁의 본질을 알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p>
<p>(2008.10.2. 止月 山庄 에서 쓰다.)</p>
<p>&nbsp;</p>
<p style="text-align:right;">이 글은 <a href="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398">스프링노트</a>에서 작성되었습니다.</p>
<br />Posted in 담담당당 Tagged: 뉴라이트, 독립, 민족주의, 시대, 이명박, 자주, 촛불정국, 친일파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comments/coreannight.wordpress.com/24/"><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comments/coreannight.wordpress.com/24/"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delicious/coreannight.wordpress.com/24/"><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delicious/coreannight.wordpress.com/24/"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facebook/coreannight.wordpress.com/24/"><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facebook/coreannight.wordpress.com/24/"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twitter/coreannight.wordpress.com/24/"><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twitter/coreannight.wordpress.com/24/"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stumble/coreannight.wordpress.com/24/"><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stumble/coreannight.wordpress.com/24/"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digg/coreannight.wordpress.com/24/"><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digg/coreannight.wordpress.com/24/"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reddit/coreannight.wordpress.com/24/"><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reddit/coreannight.wordpress.com/24/" /></a> <img alt="" border="0" src="http://stats.wordpress.com/b.gif?host=coreannight.wordpress.com&amp;blog=5630345&amp;post=24&amp;subd=coreannight&amp;ref=&amp;feed=1" width="1" height="1"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6%b2%92%e7%9f%a5%e8%a6%ba-%e6%99%82%e4%bb%a3%ec%9d%98-%ef%a7%a4%e6%80%a7-2-2008102/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media:content url="http://1.gravatar.com/avatar/bc8f883dd78ebe308860a9b0136eadd9?s=96&#38;d=identicon" medium="image">
			<media:title type="html">coreannight</media:title>
		</media:content>
	</item>
		<item>
		<title>沒知覺 時代의 理性 1(2008.9.26)</title>
		<link>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6%b2%92%e7%9f%a5%e8%a6%ba-%e6%99%82%e4%bb%a3%ec%9d%98-%ef%a7%a4%e6%80%a7-12008926/</link>
		<comments>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6%b2%92%e7%9f%a5%e8%a6%ba-%e6%99%82%e4%bb%a3%ec%9d%98-%ef%a7%a4%e6%80%a7-12008926/#comments</comments>
		<pubDate>Mon, 24 Nov 2008 16:00:44 +0000</pubDate>
		<dc:creator>coreannight</dc:creator>
				<category><![CDATA[담담당당]]></category>
		<category><![CDATA[독립]]></category>
		<category><![CDATA[민족주의]]></category>
		<category><![CDATA[시대]]></category>
		<category><![CDATA[자주]]></category>
		<category><![CDATA[촛불정국]]></category>
		<category><![CDATA[친일파]]></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6%b2%92%e7%9f%a5%e8%a6%ba-%e6%99%82%e4%bb%a3%ec%9d%98-%ef%a7%a4%e6%80%a7-12008926/</guid>
		<description><![CDATA[목차 들어가면서 ‘와병설’ 해프닝이 보여주는 한반도의 오늘 이야기 중국, 북한 군부의 득세를 경계하다. 노무현의 토론 제기, 갈등을 연쇄화하는 재미? 엔케리를 받아들인 대통령, 노무현 뉴라이트 집단을 앞세운 MB식 이념전쟁;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2008년, 선군정치의 북한 군부를 보는 눈 후계자, 과연 있나 없나? 남북한의 결별, 중국에게 확실한 기회를 보장하다. 서울, 남북간 ‘핫라인’ 개설의 의지는 없다. 북한식 실리주의 [...]<img alt="" border="0" src="http://stats.wordpress.com/b.gif?host=coreannight.wordpress.com&amp;blog=5630345&amp;post=23&amp;subd=coreannight&amp;ref=&amp;feed=1" width="1" height="1"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id="toc" style="border:1px solid tan;background-color:rgb(255,255,250);padding:2px 10px 0;">
<p><strong>목차</strong></p>
<hr />
<p><a href="#toc_0" title="toc_0" class="external">들어가면서</a></p>
<ol>
<li><a href="#toc_1" title="toc_1" class="external">‘와병설’ 해프닝이 보여주는 한반도의 오늘 이야기</a></li>
<li><a href="#toc_2" title="toc_2" class="external">중국, 북한 군부의 득세를 경계하다.</a></li>
<li><a href="#toc_3" title="toc_3" class="external">노무현의 토론 제기, 갈등을 연쇄화하는 재미?</a></li>
<li><a href="#toc_4" title="toc_4" class="external">엔케리를 받아들인 대통령, 노무현</a></li>
<li><a href="#toc_5" title="toc_5" class="external">뉴라이트 집단을 앞세운 MB식 이념전쟁;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다.</a></li>
<li><a href="#toc_6" title="toc_6" class="external">2008년, 선군정치의 북한 군부를 보는 눈</a></li>
<li><a href="#toc_7" title="toc_7" class="external">후계자, 과연 있나 없나?</a></li>
<li><a href="#toc_8" title="toc_8" class="external">남북한의 결별, 중국에게 확실한 기회를 보장하다.</a></li>
<li><a href="#toc_9" title="toc_9" class="external">서울, 남북간 ‘핫라인’ 개설의 의지는 없다.</a></li>
<li><a href="#toc_10" title="toc_10" class="external">북한식 실리주의 실체를 보지 않으면 정세판단은 금물이다.</a></li>
<li><a href="#toc_11" title="toc_11" class="external">중국, 정말 북한과의 전쟁까지 생각했었나?</a></li>
<li><a href="#toc_12" title="toc_12" class="external">조만간 맞이할 MB정부의 남북관계 핵겨울</a></li>
<li><a href="#toc_13" title="toc_13" class="external">북핵은 여전히 유효한 정권유지의 보루로 작동한다.</a></li>
<li><a href="#toc_14" title="toc_14" class="external">북한의 그림자 세력, 2인자 그룹</a></li>
<li><a href="#toc_15" title="toc_15" class="external">‘와병설-후계자-선택권’은 한 묶음이다.</a></li>
<li><a href="#toc_16" title="toc_16" class="external">중국, ‘미워도 다시 한 번’ 웃으며 북한으로 다가서다.</a></li>
<li><a href="#toc_17" title="toc_17" class="external">‘시간 벌기’가 일본의 작전명령 제1호다.</a></li>
<li><a href="#toc_18" title="toc_18" class="external">한국, 국민을 어리석게 만들려는 정권 움직임이 살벌하다.</a></li>
<li><a href="#toc_19" title="toc_19" class="external">미국은 한반도의 ‘왕초’ 노릇에 굶주리고, MB정권은 ‘똘마니’를 자처하며 친일을 키우고, 백성들만 불쌍하게 된 국면이다.</a></li>
<li><a href="#toc_20" title="toc_20" class="external">독재, 반민주, 수구, 종교편향, 기득권 유지를 기본으로는 정권유지가 어렵다.</a></li>
</ol>
</div>
<p><span class="Apple-style-span">(어느 민족주의자의 匕首 잡기 혹은 던지기)止月 山庄에서 쓰다.</span></p>
<h3>들어가면서<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0" title="toc_0" class="anchor" id="toc_0">#</a></sup></h3>
<p>6월 30일 이후 이른바 ‘시대 시리즈’를 두 달 넘도록 집중해서 쓰고 난 이후 많이 지쳤다. 9월 5일 마지막 자료에서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2010년의 북한, 후계구도’에 대한 이야기를 일차 정리해보았었다. 한반도의 급변이라는 주제에서는 반드시 언급이 필요한 부분이었다.<br />
한반도의 독자성 유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당면 핵심문제는 딱 두 가지다. 첫째는 북한의 향후 단기 내 생존방식이나 각도이고 둘째는 남한의 친미 친일화의 진척 정도와 전개 방식이다. 이 둘 간에는 피할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가진다. 남과 북, 두 쪽 모두에서 시대를 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나아가 이 두 전쟁의 결과에 의해 한반도의 향후 짧게는 2~3년, 길게는 5~15년 이후의 위치가 매겨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래가 달린 두 테제를 우리는 양 어깨에 메고 있다. 이 무게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시대를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건은 곳곳에서 벌어진다. 당장 서울에서부터 한반도 주변 모든 곳에서 이 시대를 이야기하는 중이다.<br />
예상대로 9월 9일 북한에서 상황은 터졌다. 북한발이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일종의 흔들기 국면이 시작된 셈이었다. 그 시발점은 북한 정권수립 60주년 행사에 김정일 위원장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 딱 하나였지만, 이내 ‘와병설’, ‘위기설’로 증폭되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속내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려줄 사람은 없다.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아는 척 하는 소위 ‘얼치기 전문가들 판’이 벌어졌다. 그 모양이 하도 우스워서 나는 이걸 ‘호들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아마도 지난 2004년 이후부터 잊을만하면 나오던 주제였다.</p>
<p>정작 중요한 위기는 미국발로 시작되었다. 9월 15일, 추석을 넘긴 바로 다음날부터 미국금융가는 요동을 쳤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신청, 미국 3위 투자은행 메릴린치의 뱅크 오브 아메리카로의 합병, 세계 1위 보험사 AIG에 대한 미 정부의 구제금융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9월 20일, 미국 정부는 ‘전례 없는 금융위기’에 ‘전례 없는 액션’을 취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미 의회에 7,000억불의 구제금융집행을 상정하기에 이른다.<br />
이것은 기축통화로써의 ‘미 달러화’의 위치문제로부터 공급주의 경제학의 종말, 나아가 파생상품을 통한 금융버블 국면에서 빚어진 기업의 부실을 정부가 안게 되는 모럴해저드 논쟁까지 다양하게 번져간다. 한마디로 미국은 지금 위기에 빠졌다. 독일, 프랑스 등에서조차 비난이 터져 나온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과연 어떤 일을 벌일는지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나 한반도에 대한 새로운 형식의 국지전 도모 등도 능히 예상 가능하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이 최고선’이라는 관념으로 접근하는 ‘타성’(惰性)이 변했다는 징조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p>
<p>유럽도 중국, 일본도 모두 술렁대는 차에 북한은 조용히 핵 시설의 재 가동을 시도한다. 여전히 ‘핵(核)은 조선의 정조(貞操)’라는 스탠스는 유지된다. 남한은 악성의 경제위기를 설(說) 수준으로 감추려는 정권과 정부의 꼼수 속에서 더 이상은 견지하지 못할 정도의 실물경제의 파국이 눈앞에 와있다. 그런 차에 엄밀히 망해가는 건설업자를 살려 새로운 부동산 버블 국면을 조성하면서 경제성장이라 우기며 버텨보려는 얄팍한 정책이 터져 나온다. 그린벨트 지역의 대폭적인 해제를 비롯하여 상위 1%만을 위한 종부세 인하, 공기업의 민영화는 수순을 밟아 이행되는 중이다. 실패한 모델인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이 유지되는 한 앞으로도 성공하리라고 기대하기 쉽지 않다.</p>
<p>실물경제의 현장에서는 비명이 곳곳에서 날카롭게 질러진다. 외환유동성이 확보되지 않아 오버나이트가 성행한다. 이 정도 수준이면 확실한 ‘9월 위기설’이 아닌 위기 자체다. 그럼에도 이를 80년대식의 강압통치, 독재국면으로 몰고 가서 해결하려는 시도도 잇따른다. 이른바 케케묵은 좌파 배척론을 살리면서 본격적으로 사회 속에 접목할 기세다. 시대에 뒤떨어졌지만 정권의 입장에서는 이것말고 할 수 있거나 할 줄 아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모든 것이 물러설 배후공간을 두지 않는 밀어붙이기가 진행된다. 그러므로 사회 내부의 갈등은 증폭 수준이 아니라 폭발직전으로 몰린다.</p>
<p>일본은 조용히 그들 식의 준비를 하는 중이다. 예상대로 아소 다로가 나왔다. 그가 대표다. 한국에 대한 친일의 재구성, 다시 백 년이라는 프로그램을 완성하게 될 대표선수로 그가 지목되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즉, 일본은 극우, 우익체계를 통해서 21세기 초 그들의 생존법을 찾아낸다는 복안을 실행하고자 한다. 남한의 ‘친일사냥개들’은 여전히 이에 적극 협조하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 과거 역사에 대한 검토수준이 아닌 뿌리를 아예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것은 좌익 우익의 갈등이 아니라 일본우익(극우)과 한국의 민족본위 이성(이건 민족주의와는 다르다. 역사적으로 온전한 생존을 위한 기본단위로 민족을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좌파 우파, 진보 보수라는 논의 자체가 의미가 없다.) 간의 대결로 이어진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현 정권은 그 본질 자체가 ‘친일’이다.</p>
<p>그나마 지난 두 달여 한반도를 침탈하려는 일본기획자의 책략과 한국에 형성된 친일 사냥개의 본질, 나아가 그 전술적인 접근방식까지는 정리를 해보았다.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기 위해서 내가 내놓을 마지막 패 이외는 남은 것이 없지만, 그래도 한국사회에서 이제 ‘왜 친일이 문제인가’ 하는 논의에 기표 하나를 던졌다는 점에 일단 만족한다. 필요하다면 더 진전된 이야기도 재구성해 봐야 하는 경우도 있을 터이다.<br />
이제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한국 사회와 이 시대가 처한 본질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 작업은 범위의 광활함으로 인해 첫 시작부터가 쉽지가 않다. 그렇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챙겨보려 한다.</p>
<p>이 글의 제목은 ‘몰지각 시대의 이성’이다. 부제로 ‘비수잡기 혹은 던지기’라고 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부엌에서 쓰는 칼이 아니다. 이건 애당초 살상용으로 설계된 칼을 가지고 다루는 경우에 속한다. 그러므로 잡는 것, 던지는 것은 방어와 공격을 의미하게 된다. 당연히 생사를 건 행위다. 죽기 위해 칼을 드는 패배주의적 관점이 아니라는 것, 그런 이성으로는 몰지각의 팻말을 부러뜨릴 수 없다는 걸 말해주는 표상이다.</p>
<h3>1. ‘와병설’ 해프닝이 보여주는 한반도의 오늘 이야기<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 title="toc_1" class="anchor" id="toc_1">#</a></sup></h3>
<p>해프닝의 첫 이야기는 이른바 ‘김정일 와병설’이다. 이것은 한반도의 오늘을 살펴보는 데 매우 귀중한 지표를 제공해준 (예상이 아닌) 실질적인 사건이기도 했다.<br />
9월 9일을 전후한 시기에 정보가 어떻게 유통되었고 확산되었는지는 별로 논의할 대상이 못 된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사안 자체를 보는 시각에 있다. 전혀 다른 시각을 중심으로 9.9~9.19까지 열흘간 벌어진 ‘호들갑’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미국은 어디로부터 이 정보를 얻었는가 하는 점이다. 과연 한국이 그 정보를 제공했다고 생각하는가? 와병설의 첫 단추를 꿴 것은 미국 정보기관이었다. 그것도 국방부로부터 출발해서 다시 중앙정보국(CIA)까지 이어지는 정보유출의 루트가 보였다. 거기에 한국이 개입한 흔적은? 없다. 공동의 작전이었는가 아닌가에 아닌 쪽으로 방점이 찍힌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 정보를 공개적으로 유출함으로써 얻고자 했던 기대효과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점이 포인터다.</li>
<li>둘째, 한국의 정보기관이 발표한 ‘첩보’는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양치질’까지 나오고 나서야 이런 ‘첩보성의 정보공개’가 문제가 된다는 여론이 터졌다. 봉화진료소에 차량이동이 증가했느니 하는 것은 국방부에서 나왔지만 와병의 증상에 대한 부분은 대체로 국정원으로부터 출발되었다. 사실인가 아닌가에 대해 반론을 펴기 어려웠던 것은 감히 국정원의 정보수집 노하우에 대들만한 사람이나 기관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첩보인가 확인된 정보인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정보를 유출하는 것이 옳은가 아닌가 부분도 지적될 수 있다.</li>
<li>셋째, 와병설 유포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당연히 정보의 공개적 측면은 감안한다 하더라도 김정일 위원장의 병력(病歷)이나 혹은 유고(有故)까지 이르는 상황은 여러 차례 설정된 바가 있었다. 왜 이 시점이었는가? 왜 이런 방식의 접근을 했는가 하는 점을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각국의 의도가 각각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유포지역은 두 군데였다. 미국과 한국. 둘 간의 의도도 각각이었다면, 이 두 의도간에는 어떤 상충(相衝)이 있었을까 살펴봐야 한다. 한미간의 공조에 의해 이른바 중국의 대북개입을 차단할 목적을 가졌던 것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런 흔적도 없다.</li>
<li>넷째, 과연 북한은 와병설을 어떻게 활용하려고 했는가 하는 점이다. 강력한 부인이 김영남-현학봉으로 이어지면서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하게 생각된 대목도 있었다. 6자 회담이 아니라 북미간에 테러지원국 해제를 둘러싸고 매우 불편한 시기에 터진 ‘사건’이었고 그것은 의외로 북한의 내부적인 단결고취에 적절하게 활용된 흔적마저 있다. 의도된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파악마저 애매해졌다. 그리고 평양이나 해외 어느 곳에서도 이 문제로 요동이 벌어진 예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차분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런 현상은 ‘통제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였다.</li>
<li>다섯째, 누가 가장 근접된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북한의 조선노동당과 업무 파트너이기도 한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 류홍차이(劉洪才)는 16일 멀리 일본까지 가서 공명당 대표 오타 아키히로와의 면담에서 이 문제를 꺼냈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나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면서도 “분명한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당분간 요양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수준으로 중국이 보는 이 사건의 시각을 마무리했다. 중국의 정보력이 한 수 돋보인 발언이었다. 그러나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여전히 북한의 대량난민 발생 우려 등을 꺼내면서 위기의식을 이어갈 의도를 보였다. 한국은 김하중 통일부장관이 ‘부적절함’을 이유로 기자들이 더 이상 이 기사를 쓰는 걸 막기에 급급했다. 지나치게 정보가 정부고위급에서 새어나가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비난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병상통치나 또는 (병상의) 문고리 권력, 후계자 문제를 비롯해서 한미간 군사공조를 통한 직접적 개입을 담은 작계 5029까지 는 논의가 이어졌다. 결론은 뚜렷하지 않았다.</li>
<li>여섯째, 이번 사태를 통해 정리될 일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중국의 국제선구도보(國際先驅導報)는 9월 18일 미-일-한 세 나라가 북한 정보를 캐기 위해 중국 단둥 등 지역에서 어떻게 활동하는가를 꽤나 상세하게 보도했다. 정보를 캐는 전장터로 중국 변경이 변했다는 약간 비아냥도 섞여 있었다.</li>
</ul>
<p>이 열흘 간 흘러나온 정보 가운데 만일 북한이 의도적으로 흘린 역정보가 있다면, 그 첩보나 정보를 주워서 전달했던 라인은 북측의 혹독한 뒤 캐기에 당할 수 있다 보여질 정도다. 북미관계의 앞날에 먹구름이 낄 것인지 아닌지는 현재로썬 전망 이외는 어렵지만, 국면만 본다면 어디로 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을 더 이상 압박하기도 곤란한 지경이 된 것도 사실이다.</p>
<p>한국은 더 심각하다. 라인부재라는 현실을 절감하지만 왠지 MB정권은 오히려 좌파 제거론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매개로 사용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아예 이 문제를 아전인수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인 뉴라이트 집단도 있다. 일본은 한 걸음 뒤에서 구경하는 위치로 가는 척하며 정보수집에 열을 올리고 중국은 조용하지만 은근히 적극적이다. 이렇게 교통정리가 되어가는 국면이 나왔다.</p>
<p>약간 고차원적으로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을 평가한다면, 한국은 내부적으로 북한 정보의 분석이나 취합 혹은 판단능력에 있어서 ‘바닥’을 보여주었다 해도 할 말이 별로 없다. 너무 일찍 정보의 패를 깠기 때문이다. 일희일비하던 순간은 여러 차례 나타났지만, 소위 전문가들은 대부분 ‘설과 첩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다양한 가능성만을 제시했을 뿐, 정작 필요한 요소를 내놓지는 못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면에 숨겨진 내부적인 대책이 현실적으로 전무하다는 한계도 발견되었다. 그 점에서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 사건만으로 본다면 관망자였을 뿐이다.</p>
<p>중국이 역시 한반도 문제에서는 다크호스일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이 북중 간에 이어져온 오랜 시간의 동맹이 가진 힘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한-미-일 동맹이 한반도 북부에서는 전혀 실질적 영향력이 없는 상황이 확인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서 중국은 은근히 속으로는 만족한 웃음을 짓는다. 이처럼 실력이 다 까발려진 경우는 근래 처음이었다.</p>
<p>사태의 진상은 무엇이었을까?</p>
<p>‘화평연변’(和平演變)’. 즉, 평화적인 수단을 통하여 상대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종의 책략이란 의미다. 이것은 주로 서방 자본주의(제국주의)가 사회주의 공산국가에 대한 ‘흔들기’의 방식으로 인용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수단을 평화로, 목적은 체제개편’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래서 영문으로는 ‘Peaceful Evolution Policy’라고 사용한다. 등샤오핑 식으로는 ‘시원한 바람은 계속 쏘이되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 역 전략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상대의 화평연변 전략에 대응하는 방식이 바로 반(反) 화평연변이었고, 북한도 예외 없이 언제나 상대가 이 전략을 구사하지 말 것을 요구해 왔던 참이었다. 자꾸만 흔들기가 나오자 북한에서 이를 ‘악의적’이라고 화를 내는 상황이 나온 것도 따지고 보면 이것이 화평연변으로 활용된다는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사실이 그러하다.</p>
<p>미국에 의해 진행된 대북 화평연변 전략의 핵심은 바로 ‘흔들기’라는 말로 요약이 가능하다. 내부를 흔들어야만 한다는 것은 곧 ‘붕괴 시나리오’에 대한 추론을 얻고자 하는 뜻이기도 하다. 상대국의 인권문제 간섭으로부터 민주화 요구, 그러한 세력에의 지원 등은 모두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북미관계가 밀월 국면으로 이어지다가 그 한계를 절감하는 수준에서 미국은 화평연변을 다른 방식으로 접목하기 시작했다.<br />
중국도 9월 초순과 중순에 걸쳐 벌어진 일련의 사건과 대응을 이렇게 읽고 있었다. 결국 상황이 꽤나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런 사태에 왜 은근히 즐기는 듯한 입장이 될 수 있는가를 찾아보는 게 관건이다.</p>
<p>북중 관계가 과연 어떤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2008.7 시진핑 국가 부주석의 평양방문은 양자 관계가 완전한 회복국면으로 갔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제거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날카로운 수읽기가 진행 중이다. 상대적으로 북미관계는 그 이후 대단히 경색된 국면이 유지된다. 그러나 판을 깨려고 하기 보다는 일정 수준 이어가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무엇을 목적으로 할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여하간에 한반도는 이제 곧 2010년을 향한 정점으로 달려가는 중이다.<br />
일단 중국이 2007년까지 읽었던 한반도의 국면을 살펴봐야 어렴풋하게나마 해답이 나온다. 미래를 보는 정답은 없지만 한반도는 그나마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현재가 투명하게 드러난다. 단지 그것을 읽는 눈이 사시(斜視)가 되면 실체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p>
<h3>2. 중국, 북한 군부의 득세를 경계하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2" title="toc_2" class="anchor" id="toc_2">#</a></sup></h3>
<p>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이 터지자 말자 나왔던 보고서 “북조선의 화평연변. 붕괴 및 중국의 대책(北朝鮮之和平演變. 崩壞及中國之對策)”은 그 점에서 가장 눈여겨 볼만한 내용이다. (일본 문예춘추 2007.12호 게재) 그러나 이 관측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히 생각해야 한다. 중국식의 화평연변은 2004년 이후, 그러니까 북핵을 둘러싸고 북한이 미국을 향해서 움직이던 시점에 이미 전략이 구성되고 있었고 이것은 그 중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p>
<p>보고서의 필자 링예(綾野)는 1954년10월생. 국방대학 국제전략 연구부에 소속하는 외에 중국 한반도연구회의 특약연구원이다. 대개의 중국 내 한반도 연구가들이 밟는 코스처럼 그도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 유학과 한국고려대에서 연구경험이 있고 군적으로 대령(大枚) 계급의 현역군인이다. 그는 이 보고서로 인해 2007.1. 근신처분을 당했다.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공개가 중국식으로 보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여기에서 ‘북한의 붕괴=김정일 정권붕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고, 이것은 북한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br />
이 보고서가 작성된 배경에 대하여 당 중앙관계자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가 말하는 내용이 바로 중국 공산당의 시각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p>
<blockquote>
<p>“그것은 조선이 미국에 급속하게 접근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핵실험이라는 중국의 안전보장까지 위협하는 행동으로 나왔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 중국은 아직까지도 구태의연한 “중조우호”를 전면에 내세우는 외교정책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대조선 외교의 현장이나 연구자간에는 이에 대한 불만이 강한 것입니다.”</p>
</blockquote>
<p>중국이 북핵을 중국을 향한 도전이라고 읽는 배경에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그간 유지되었던 중국 수중에 있던 북한 외교가 어느 시기에는 자칫 미국의 손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절박감까지 묻어나 있다. 그러나 본질은 ‘북한 정권의 미래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불투명한 미래를 가진 상대를 다루는 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북한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당사자다. 베이징과 평양간의 거리는 1천 킬로미터 남짓하다. 몹시 가깝다.</p>
<p>실제로 중국은 90년대 김일성 주석의 사후 북한 붕괴를 본격적으로 예상하고 그 그림을 그렸던 적이 있다. 필연적 붕괴론이 중국 내부에서 횡행했다.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분석보고에서도 정권이 ‘1년 이내, 늦어도 3년 이내’ 붕괴한다는 결론이 났었고, 외교부가 소집한 ‘조선반도정세무허회(朝鮮半島情勢務虛會)가 포스트 김정일의 긴급사태를 상정한 응급조치가 검토된 적도 있었다.</p>
<p>이 시기의 대응 시나리오는 세 가지였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신병 요양의 명목으로 김정일이 중국 또는 러시아로 장기 출국하는 망명패턴이었다. 결론적으로는 베이징 보다는 동북의 허알빈, 장춘, 또는 홍콩과 가까운 심천, 운남성 쿤밍까지도 거론되었다고 한다.</li>
<li>둘째, 과거 소련, 동유럽 패턴으로 미국, 한국, 일본 등의 압력과 지지를 통해 탄생하는 ‘민주화 반(半) 집권체제’ 가능성이었다.</li>
<li>셋째, 군부가 서방국가와는 다른 정치스타일을 주장하며 민주화를 막고 중국, 러시아에 국가재건 협력을 구하는 경우다. 그러나 이 예상은 깨어졌다. 북한은 ‘선군정치’를 통해 보다 강력한 김정일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당시의 실패는 비단 링예의 보고서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중국이 잘못 읽은 북한’이라는 주제로 여러 편이 작성된 바 있다. 실제로 군사적인 행동도 북중 변경지역에서 있었던 것이 바로 2006년의 상황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선양군구 소속 제16집단군 포병부대가 2006.7.25 21:23 백두산 일대에서 23기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한 일(‘해방군보’ 인터넷판 2006.8.1), 7월말 같은 부대 약 2,000명이 투먼, 롱징, 훈춘 등 동북지역에 증파된 일(연합뉴스 2006.8.1) 등 군사적인 대비행동은 늘 북중 지역에서 지난 몇 년간 있어왔던 일이었다. 이것을 단순한 군사훈련 차원으로 읽을 수는 없다.</li>
</ul>
<p>링예의 보고서가 읽은 북한 붕괴론의 근거는 다음 다섯 가지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경제적 파탄.</li>
<li>둘째, 북한 내부에서 높아진 지방분권 의식.</li>
<li>셋째, 중국과의 관계 냉각 이후 대미, 대일, 대한 접근 강화.</li>
<li>넷째, ‘선군정치’의 한계.</li>
<li>다섯째, 후계자 문제다.</li>
</ul>
<p>주목할만한 것이 바로 사회 내부의 양극화에 대한 지적이다. 외국과의 접촉경험을 가진 자가 사회 내 역할을 키워나가는 것, 국경근처나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한 분권의식 강화로 중앙의 구심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내용의 핵심은 바로 ‘선군정치와 세습제도의 한계’로 모아진다. 선군정치를 통해 군부가 비대할 만큼 비대해진 상황에서 이것이 결국 후계자문제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p>
<p>2012년 이내 김정일의 건강상태 급변이 되면 세습은 실현되지 못하고 현 체제는 그 자체가 붕괴된다고 본다. 후계자를 지명했다고 하더라도 5년이라는 단기 내에 집정경험, 자질, 권위라는 점에서 육성이 불가능하고, 이것이 붕괴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그렇지만 10년 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후계자가 이른바 가계승계가 가능해진다는 결론을 내린다. 15년 내라면 김일성과 같이 장래 화근이 될 세력의 ‘대청소’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관건은 ‘김정일의 건강상태’로 집중된다.</p>
<p>중국의 당시 관찰에서 북한 내에 후계자를 육성하는 움직임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즉, 김정일 자신이 걸어온 ‘후계자의 길’을 걷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이 점은 김정일의 경우를 상정해서 나온 판단이었을 것이다. 역시 북한에 대해서는 중국이 그러했듯이 준비된 권력이양 프로세스가 중국이 보는 북한측 후계자 유무를 보는 한 기준점이었던 셈이다.</p>
<p>핵심은 군(軍)의 권력계승이었다. 1991년 김일성은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지위를 김정일에게 넘기고 1992년 헌법을 개정, 국방위원회를 제정하여 그가 위원장으로 김정일을 부위원장으로 두며 ‘원수’ 칭호를 부여했다. 그리고 1993년 정식으로 국방위원장을 이양했다. 그럼에도 1994년 김일성 사후 3년 동안 상중통치가 이어질 정도로 북한 내부의 권력승계에는 난점이 있었기 때문에 현 시점 북한은 김정일 이후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p>
<p>결국 군이 관건이 된다. 2,200만 인구에 110만의 정예병력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조선인민군을 가장 위험한 세력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선군정치를 ‘목타는 데 독이 든 국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자살행위로, 군을 강(江)으로 정권을 배로 예를 들며 ‘강은 배를 나를 수 있지만 범람하면 전복시킬 수 있는’ (水能艀船.能覆船) 홍수직전의 상태로 표현하기도 한다.</p>
<p>더군다나 군의 영향력은 내정, 외교문제 등까지 미쳐 미사일 발사, 핵실험의 강향, 대미, 대중 외교정책, 국내 경제정책에까지 강한 결정의사를 갖추고 있다. 이 점은 지금 대두된 것이 아니라 2003년경 이후 중국 군사학원, 국방대학, 국무원발전연구센터 전문가들 사이에서 ‘선군정치는 그 장점보다는 폐해가 훨씬 더 커가고 있다’는 우려도 나타났다.</p>
<p>이 보고서는 북한의 비대화한 군을 조타할 능력 있는 후계자가 생겨날 것인가에 대해 ‘압도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즉, 부담이 되는(負) 유산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이다.</p>
<blockquote>
<p>“지금은 아직 김정일에 절대적인 충성과 복종을 관철하는 군이지만 금후 김정일의 쇠약이 분명해짐에 따라 김정일 자신의 제어능력도 느슨해지고 그에 따른 군의 폭주가 시작될 것은 충분히 예측된다. 김일성에서 김정일에의 정권교체는 어떻든 무사히 이루어졌지만 이 교체는 수십 년 간 시간과 주도 면밀한 준비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감안할 때, 현 상황에서는 김정일이 후계자를 위해 얼마의 시간이 남아있는가는 전혀 미지수다. 그리 되면 선군정치는 곧 찾아올 북한권력의 과도기에 있어서도 또한 김정일 정권을 후계하는 신 체제 하에서도 과중한 ‘부(負)의 유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p>
</blockquote>
<p>보고서 작성자인 링예가 아직 공개적으로 활동한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지만, 아마도 그는 여전히 북한연구에 집중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그의 관점이 중국 전체의 시각은 아니지만 이것은 2008년 들어 중국이 북한과의 교류를 급속하게 늘려나간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점에 이의는 없다. 오히려 미국이나 일본 등이 2007년 10.3 공동선언 이후 대북접근을 늦추면서 압박을 강화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사이, 북중 양국 관계는 한층 더 긴밀하게 될 계기를 마련해준 측면도 있다. 거기에는 한국의 MB정부가 초창기부터 대북정책 자체를 ‘후 순위로 돌려둔’ 상황에서 빚어진 해프닝도 존재한다.</p>
<p>그래서 이번 9월 벌어진 ‘와병설’은 2006년 북핵 실험 이후 새로운 문제점 하나를 추가하게 되었다. 바로 ‘핵 통제권’이다. 이것은 단순하게 북한의 군부 차원의 문제만은 아닌, 선군정치라는 특정한 사회운영 체계가 아닌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온다. 미국은 이번 ‘화평연변’에서 핵 통제권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를 확인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인가도 보려 했던 흔적은 여러 군데 발견된다.<br />
그러나 결론은 ‘없다’로 통한다. 확인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확인 자체에 대해 ‘강한 신뢰’를 가지지 못한다. 정보력 보다는 상황판단의 모호함이 들어있는 곳, 그것이 바로 한반도의 오늘이란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p>
<h3>3. 노무현의 토론 제기, 갈등을 연쇄화하는 재미?<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3" title="toc_3" class="anchor" id="toc_3">#</a></sup></h3>
<p>이 이야기는 조금 이후에 더 자세히 정리를 해보기로 하자. 고려할 요소가 이 정도에 불과했다면 한반도 문제가 예전에도 더 쉽게 풀릴 수도 있었을 테니까, 자세히 알려면 좀 더 숙고가 필요하다고 본다.</p>
<p>한참 ‘와병설’로 한반도 당사국들이 시끄럽던 9월 1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2.0’이라는 토론 사이트 베타판이 개설, 일반에 공개되었다.</p>
<p>확실히 노무현 추종세력은 MB정권의 미숙함을 딛고 똘똘 뭉칠 기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정권기간 내내 했던 미숙함이 이런 행위로 모두 가려진다고는 볼 수 없다. 노무현 정권기인 2002~2008년은 사실상 우리 역사에서 21세기 첫 머리를 장식하고 그 방향을 정리하는 매우 귀중했던 시대였지만, 그의 집권기 깔끔하지 못하고 오히려 난삽해진 상황에서 마구 불러들인 여러 분야의 ‘갈등’도 그에 못지 않다. 공과를 따진다면, 그의 시대가 터무니 없을 정도로 오류들이 넘쳐난다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명분은 넘쳤지만 실리가 없었다는 평가도 동시에 있고, 그것은 한반도 문제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본다.</p>
<p>그러나 워낙 2008년 MB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벌어지는 한국 사회 내부의 난사가 깊은 탓인지 이 부분보다는 그의 ‘정치행보가 아니라 주장하는 정치행보’에 사람들은 우려 섞인 모습으로 주목했다. 그게 드러났다.</p>
<p>9월 19일자 한겨레신문의 사설이다.</p>
<blockquote>
<p>“[사설] 전직대통령의 토론웹사이트개설 유감<br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넷 토론 웹사이트 ‘민주주의 2.0’을 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사이트를 개설하며 올린 글에서 “성숙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대화와 타협’이고 이를 위해선 시민사회의 소통이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 자유롭게 대화하되 깊이 있는 대화가 이뤄지는 시민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게 취지”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 쪽은 사이트 개설이 정치활동 재개라는 분석을 부인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직접 토론에 참여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br />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다. 노 전 대통령 말대로, 민주주의에 긴요한 시민 토론을 활성화하기 위해 애쓴다면 그걸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전직 대통령이 직접 토론사이트를 개설해 운영하는 건,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불필요한 논란을 확산시키며 정치적 ‘반목과 대립’만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br />
노 전 대통령 쪽은 사이트 개설이 “전직 대통령의 사회적 책임의 일환”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정치적 영향력 확대와 세 결집으로 이어질 것이란 의구심을 많은 국민이 갖고 있다. ‘왜 꼭 그런 쪽으로만 보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존경 받는 전직 대통령의 전통이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 현실에선 전직 대통령들 스스로 좀더 조심스런 태도로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는 게 바람직하다. 얼마 전 노 전 대통령 핵심 측근 두 사람이 골프장에서 사돈을 맺고, 노 전 대통령은 결혼식 주례를 보고, 친노 인사들이 대거 집결한 걸 보면서 많은 국민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br />
친노 인사들은 정치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그들이 정치세력화를 추진하든 안 하든 그건 스스로 결정할 문제고, 나중에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다만, 전직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세 결집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적절치 않다. 벌써 ‘민주주의 2.0’엔 노 전 대통령의 정치활동 재개를 요구하는 글들이 여럿 올라오고 있다. 그게 노 전 대통령 생각과 전혀 무관하다 하더라도, 그런 논란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노 전 대통령 쪽은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좀더 신중하게 ‘민주주의 2.0’ 운영 문제를 검토하길 바란다.”</p>
</blockquote>
<p>사설의 논조는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 시기에도 한겨레는 칭찬이 아니라 다각도로 정책 비판을 했었지만 촛불민심이 MB정권 하에서 강하게 탄압 받는 국면에서 나온 이 사설은 또 다른 의미가 부여되었다. 사람들은 분분히 의견을 올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MB정권은 이러한 사실을 즐기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겨레가 양비론을 목적으로 이 글을 실은 것은 아닌 듯하다. 사람들의 의견을 요약해보자.</p>
<blockquote>
<p>“저소득층을 위한 독서캠페인, 대안학교운동 등 사회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활동을 펴라.”</p>
<p>“촛불에 편승하려고 하나?”</p>
<p>“완벽한 조중동 논조다. 한겨레를 안보겠다. (이런 글 쓰려면) 한겨레 문닫아라.”</p>
<p>“민주시민의 역량을 모을 수 있는 좋은 장을 제공했지 않나?”</p>
<p>“인기 없고, 실정으로 나라를 어수선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로 MB정권을 출범하게 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p>
<p>“노무현 캐릭터가 가진 문제점이 드러났다. 쥐뿔도 없으면서 구호나 양산하고, 통합을 외쳤지만 개뿔 무슨,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놨다. 국민과 소통한 게 무에 있나? 민주주의 2.0을 논하기 전에 먼저 0.2라도 제대로 했어야 하지 않나. 양심도 없는 정치 무뢰한이다.”</p>
<p>“노가의 준동은 MB의 인기만 올려준다.”</p>
<p>“지금은 암담한 현실, 이거라도 어디냐.”</p>
<p>“한겨레는 왜 반목하며 시비를 거나!”</p>
<p>“대화와 타협을 말하면서 ‘독선과 분열’만 획책했지 않는가.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변호사 기질 때문이었나?”</p>
<p>“한겨레는 노무현 지지가 아니라 민주당 지지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p>
</blockquote>
<p>이명박-노무현 간의 갈등이 깊어지는 참이다. 단순히 전임정권에 대한 보복 같은 것은 아니다. 쇠고기 파동으로 빚어진 촛불민심은 여러모로 이 둘의 갈등이 단순하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특히 MB정권 자체의 성격적인 부분에서 대립과 유사점은 극명하게 대비된다.</p>
<p>‘설거지 론’의 핵심은 노무현 시기 유지해온 친미기조, 신자유주의 정책이 현 시점에 방향전환되지 않으며 이어진다는 것으로부터 출발된다.양극화 빈곤화로 가는 흐름은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이어져온 것이다. 비정규직이나 계층간 소득격차 확대, 청년실업 문제는 하루 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좌파배척론은 상대적으로 MB정권의 친일성향을 드러내게 하였고, 이를 정권의 친위이자 매개로 하여 단순히 정권의 독점적 지위 강화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해 ‘(지난 십 년의)재평가를 통한 독점지위 공고화’라는 전략을 구사하려는 MB정권과 노무현은 절대 양립이 불가능한 구도가 형성되어 있다.</p>
<p>노무현 세력은 2001년의 선거에서 드러났듯이 ‘마이너 중의 마이너’ 즉, 유권자 전체의 10~15% 수준이 맥시멈 한계다. 그에 비해 한나라당을 주축으로 하는 세력은 25~35%라는 광범위한 지지대를 가진 것이 한국 정치세력의 구성도이기도 하다. 여기에 김대중을 중심으로 그가 정치력을 가질 경우에 지역구도와 함께 보여주었던 20~25%의 지지세력이 합쳐질 경우에만 그는 정치주류가 될 수 있을 뿐이었다.</p>
<p>그랬던 그가 열린우리당을 만들고 부동산 정책 실패, 성장과 분배의 불균형 심화 등으로 두들겨 맞는 가운데 정치적으로도 완전히 임기말 패퇴되면서 지금 그의 정치적 지지세력은 기껏해야 5%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이번 한겨레 사설 파동이 보여준 셈이다.</p>
<p>극성 지지자-흔히 ‘노빠’라고 부르는-를 규합하는 움직임, 그를 통해 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노무현을 MB가 반가워할 리는 없지만 의외로 이 세력은 더 불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p>
<p>심지어 촛불민심이 붕괴된 원인중의 한가지로 꼽는 것이 바로 ‘노빠’(친노 가운데 과격한 친노)와 다른 집단지성간의 이질감 때문이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 그 현상은 확연하게 보인다. 이들은 결코 진보나 좌파 같은 선명한 색채를 가진 것도 아니다. 노무현이 그리 했듯이 이른바 ‘쟁론화’에 강하고 좌파와 중도를 오가는 묘한 선상에 위치하면서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천착한다. 그러나 정작 노무현은 재임기간 동안 한미FTA를 비롯하여 강력한 친미정책을 구사했고 신자유주의의 보편화를 이끌어내는 정책을 시행했던 인물이다. 어찌 생각하면 그의 정체성은 ‘민주주의’라는 단어 이외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비평도 있다.</p>
<p>거기에 불을 지른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가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는 발언이 민주주의2.0에서 토의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스스로 ‘좌파 신자유주의자’로 자임했고, 어쩔 수 없다는 명분(약소국이어서)을 대면서 미국과의 FTA를 추진했고, 당연히 정책적으로도 탄핵 이후 그 기조를 밀어붙였다. 그런 그가 “시장주의를 지지하고 신자유주의가 위기의 원인”이라고 한다면 그 스스로의 절대 모순에 빠지고 만다. 실제로 정권 막바지에 이르며 수출지상주의를 내걸고 과속개방을 한 후유증도 만만치가 않다. 바로 이 점이 그의 한계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을 투박함에 감추어서 끊임없이 양산했다는 비난도 그래서 나온다. 토론은 즐길 가치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국가의 현재와 미래 생존을 현실에 맞게 논할 수는 없다.</p>
<p>그 점에서 한국 내의 정치세력 가운데 ‘무관심’- ‘무응답’-을 세력으로 하는 정치 노코멘트 집단의 구성비율이 항상 가장 높은 것이 이해된다. MB도 싫지만, 노무현도 그에 못지 않게 혐오감이 들고 나아가 야당인 민주당도 마찬가지라는 정치 전반에의 혐오증이 민심 저변에 깔려있다.</p>
<p>결집될 매개체가 존재하지 않으면 이들은 늘 분산되어 있다. 노무현이 민주당을 ‘지역적인 선량들이 모인 곳’이라는 한계를 지적하며 ‘(정치적) 지역주의를 넘어서자’는 강한 메시지를 내자 오히려 민주당이 발끈했다. 이것은 그가 집권 시기에도 이루기 어려웠던 지역주의 한계, 그리고 그를 타파하기 보다는 자신의 세력화에 골몰했던 행위 등으로 이른바 친노-민주당 간의 넘을 수 없게 형성된 간극(間隙)을 더 벌이는 계기를 제공한 듯 보인다.</p>
<p>민주당에서는 노무현을 ‘분열의 화신, 반골의 극치’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까지 있다. 그는 민주당의 전통성을 깨어버렸다는 시각이다. 2002년 선거 국면에서 보자면 그 이야기는 달리 해석해볼 부분도 있다. 노무현은 민주당표와 인터넷표라는 두 가지를 합하여 당선되었고, 민주당을 버리고 그 자신만의 인터넷표에 더 천착하게 된다. 평지풍파를 일으키면서 창당한 열린우리당은 정권 말기에 들어 팽개쳐진 민주당과의 싸움에서 다시 패배하게 되고, 이 둘 간은 다시 합쳐지지 않았다. 그 틈바구니에 한나라당은 다시 세력을 확장, 집권까지 가게 된다. 결국 지역주의 타파를 외쳤지만 그 한계에 봉착했던 노무현이 한나라당에 갖다 바친 정권이라는 것이다.</p>
<p>이 현상에서 얻어진 경험과 세력이 중요하다. 바로 MB정권이 독재형 드라이브와 뉴라이트 집단을 끼고 돌면서 친일매국세력의 텃밭으로 한국을 변모시키려는 시도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에 공권력이 가세하는 것도 사회분위기의 일단을 보여준다. 영혼이 없는 공직자들에겐 책임추궁을 당할 반대세력이 없다는 건 호재다. 당연히 주축세력으로 힘이 옮아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노무현이 순진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반사작용으로 민심이 MB를 선택하게 하는 데 일조한 것은 분명하다.</p>
<p>한국의 현 정치 흐름에서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짧은 MB정권 초기에 나타난 5적(賊)은 존재한다. 정권의 핵심인 청와대, 정권을 지탱하는 한나라당, 친일매국세력의 온상이자 일본 사냥개 뉴라이트 집단, 정치화되고 사적 이익만 갈망하는 개신교 집단, 그리고 권력과 결탁한 대기업이다. 사실상 한국이란 나라의 절대 다수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작년 선거의 결과가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보는 이도 있다. 문제는 이들이 추구하는 선진화, 우경화로 포장된 사실상의 ‘친일화’를 막을 세력이 존재하지 않고, 또 대항할 존재 기반이 무너진 것이 바로 노무현 정권 시기의 잘못이라는 점이다.</p>
<p>노무현의 이번 시도는 지독스럽게 정치적이다. 그러나 본격적 투쟁도 아니며-그것이 정말 민주주의라면, 그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피를 요구하는 경향임을 안다면- 단순한 ‘입질’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또한 ‘교활한 정치색’을 벗기는 차마 어렵다. 자신의 집권시기에도 펴지 못했던 정책을 지금 꺼내놓는다 해도 그 행위가 정치적으로 국민 대다수에게 진정으로 다가서지는 못할 듯하다. 아무리 ‘민주주의 대세론’을 외쳐도 마찬가지다. 그의 투박한 봉하마을의 은거가 MB와 대비되면서 심정적인 지지는 있을지언정 정치세력화까지는 요원하다. 그러나 그것은 MB로 인한 반사이익이다. 이것을 파악한 MB정권의 기세가 더욱 강한 포지션을 선택할거라는 점은 명약관화해지는 상태다. 이를 제지할 세력도 현재로써는 없다.</p>
<p>마찬가지로 노무현의 ‘갈등 제기’(이것을 ‘토론이나 쟁론 제기’라고 부른다)는 현 정권의 실정(失政)에 대한 지적이긴 하지만 그가 집권 내내 해왔던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하다가는 사라지는’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나타날 공산도 아주 크다. 토론의 깊이를 말하지만 행동이 안 따르면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을 노무현은 민주주의로 착각했다. 민주주의는 국사(國事)가 아니라 방법상의 구성요소일 뿐이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쟁론화에 천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부분이 비판 받는다 하더라도 그가 이미 한 차례 국사를 운영했던 사람으로써 경륜(經綸)보다는 실책(失策)이 더 부각도리 수 있다는 점에서 변명 못할 내용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p>
<h3>4. 엔케리를 받아들인 대통령, 노무현<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4" title="toc_4" class="anchor" id="toc_4">#</a></sup></h3>
<p>2006.1.4 1,400 선을 돌파한 코스피 지수는 2007.4.9자로 1,500선을 통과하게 된다. 그에 탄력을 받은 노무현은 그 해 6월 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에서 “정부정책의 성과는 경제성장률보다 주가를 보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고 하며 자신감을 드러낸다.</p>
<p>그러나 원광대 명예정치학 박사 수여 연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p>
<blockquote>
<p>“정책 전체의, 경제에 대한 전망 전체를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 측정해 놓은 것이 주가입니다. 지금의 우리 경제가 아니라 앞으로의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 거냐, 우리 기업들의 수익이 어떻게 될 거냐 하는 데 대한 예측을 돈 걸고, 돈 걸고 예측을 말하는 것이 주식의 가격 아니겠습니까?&nbsp; 돈도 걸지도 않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 얘기는 소용없습니다. 자기 재산 딱 걸어놓고 &#8216;올라간다&#8217;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때 주가가 올라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요새는 좀 너무 많이 올라가서 제가 좀 걱정입니다. (웃음) 사실은 제가 올해 바랐던 것이 1500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원칙대로 했습니다.<br />
저는 경제에도 원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만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도 원칙이 있고, 원칙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적절하지 않으면 정석이라고, 바둑에 비유해서 정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책이, 모범적 정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대로 했습니다. 남은 기간에도 그대로 할 것입니다.”</p>
</blockquote>
<p>‘주가를 올리기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p>
<p>그는 당시 시중에서 돌던 주가 2,000까지, 3,000까지 심지어는 대망의 6,000까지 가보자고 하던 말에 냉소를 지었을 것이다. 솔직하게 1,500선으로 안정되길 희망한 발언이 바로 이 대목이었다는 걸 상기해보면 그렇다. 노무현이 알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p>
<p>엔케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는 일본의 낮은 금리로 인해 촉발된 일본 엔화자금의 세계시장 투자현상을 말한다.</p>
<p>알려진 것으로는 2005년 중반기 이후 2006년까지 매우 강력한 엔케리 자금이 움직인 것으로 되어있다. 2008.8 현재 5개 시중은행의 엔화 대출규모는 9,129억엔으로 전월 대비 109억 증가했고 지난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보였다.<br />
세계로 퍼진 엔케리 자금의 전체 규모를 추산하기는 어렵다. 추정치만 나올 뿐이다. 대략 344조엔 규모, 그 가운데 주식 51조엔, 채권 210조엔, 대출 83조엔 수준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재경부, 산은경제연구소 등에서는 2007년까지는 엔케리 규모를 50~60억불 수준으로 봤다. 그러나 2008년 현재 5개 시중은행 규모에서만 해서도 이 규모는 훨씬 넘었다.<br />
2007.8.6 한국은행이 외국환은행의 외화대출을 해외에서 실제 사용할 자금과 국내 제조업시설자금용으로 엄격히 제한키로 했지만 2008년 초까지도 엔화대출은 주택, 병원건물, 상가, 토지, 빌딩이나 아파트 소유자, 병원신축자금 등으로 최저 2% 수준에서 대출기간 1~3년으로 한국 시장에 풀렸다. 60억불이란 추정치는 금융기관 차입, 엔화대출, 일본인의 국내주식투자 대금의 합산이라고 했지만 사채시장에 들어온 일본 자금 등을 포함하면 실제 대출규모가 어디까지인지는 상상하기 어렵다.<br />
전세계가 서브 프라임 사태의 배후에서 위기를 가장 크게 조성한 것이 바로 엔케리라고 분석하는 상황에서조차 엔화자금은 한국을 횡행한다. 경제지표로 든 코스피 지수의 상승과 엔화대출 간에는 분명 상관관계를 가졌다. 그래서 미국 발 금융위기에 요즘은 엔화 대출을 받은 개인상공업자, 기업, 시설자금, 부동산업자 할 것 없이 모두 원금+환율 상승분+이자까지 들어가는 난제에 부닥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p>
<p>그 시작은 어디였을까?<br />
2002년부터 한국에서 엔화 대출은 러시 조짐을 보였다. 초기에는 중소기업, 자영업자를 타켓으로 하면서 낮은 이율로 금융시장에 침투했다. 단기외채의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지만 엔케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1:10의 원화 가치가 1:7까지 올라가고 강남 아줌마들의 일본원정 쇼핑이 줄을 이었다. 달러대출금리가 연 4~6%대였을 때, 엔화대출은 2~3%였다. 엔화를 빌려서 부동산, 주식 시장에 투자하는 거의 광풍이 일었던 때였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주식도 덩달아 오르고, 원화는 비싸지는 시절을 겪었지만 그것은 지금 닥친 유동성 위기 직전의 호황으로 보이는 착시였다는 것이 드러난다.</p>
<p>이 현상은 2007년 들어서 조짐들이 드러났다. 노무현 정권시기 주가 자체가 실제로는 이러한 금융자본이 배태한 비정상적인 수치가 포함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부동산 폭등의 원인도 거기에 있었다. 그것을 노무현은 알고 있었다. 시중은행의 엔화대출 규모는 1조 2천억엔 수준이지만 전체적으로 봐서는 약 27조원 수준, 그 중 주식 10조, 채권 3조, 대출 14조원으로 보는 것이 추산정치다. 물론 추정일 뿐이다.<br />
다시 그의 원광대 발언으로 돌아가보자.</p>
<blockquote>
<p>“대체 비교해보면 제가 민주주의를 어느 정권보다 못했습니까? 나라 경제가 어느 정권에 비해서 잘못됐다는 것이냐, 한번 꼼꼼히 따져보면, 뭐 그리 크게 자랑할 일은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실패라고 그렇게 매도될 만큼 그렇게 실패하지는 않았습니다.”</p>
</blockquote>
<p>유난히 ‘그렇게’라는 말이 많이 들어갔다. 당시 노무현 정권을 실정(失政)이라 몰고 갔던 조중동 등 언론들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난에 근거가 없지 않았기에 문제였다. 아무리 조중동과의 싸움을 했지만 그 자신이 민주주의 하나에 매달리는 사이 교묘하게 침투 당한 버블화된 경제 속에서는 분명 붕괴의 싹이 트고 잇는 중이었다.</p>
<p>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았겠지만 MB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아예 그 싹에 비료를 주듯 원화를 절하해버렸다. 달러 대비 자국화폐의 가치유지도 아닌 절하국면에서 수입 원자재가 상승을 부추기고 이어 물가는 사정없이 오르게 된다. 거기에 10%도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한 종부세 감세, 부동산 하락을 막기 위해 그린벨트 해제, 죽은 건설사를 살리는 버블화 정책 등이 잇따른다. 전세계적인 유동성 위기 상황을 나 몰라라 하는 정책노선이 유지된다. 아예 경제를 죽였다가 다시 살리겠다는 식, 그도 아니면 기득권만 살리는 철저한 ‘먹튀’ 본능이 튀어나왔다. 여전히 미련을 두는 대운하 프로젝트를 두고 ‘삽질경제’라는 말도 나왔지만 전혀 달라진 바가 없다.</p>
<p>결국 MB정부의 경제위기 상황은 처음부터 강만수의 등장과 함께 예고된 것이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시기 가속화한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 하에서 엔케리자금을 도입하는 단기외채로 살려낸 증시, 부동산, 중소기업의 국면이 일거에 대기업 프렌들리로 바뀌는 상황에서는 굳이 미국의 서브 프라임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가계대출, 주택담보대출 등 형성된 버블국면에서 세계금융시장의 유동성 악화는 곧 수출의존도 75%의 한국시장에 최악의 경제환경을 조성했다.</p>
<p>여기서 주목할 사실이 바로 이 점이다. 노무현과 이명박, 둘 사이에는 하나의 공집합이 드러난다. 노무현은 친일을 거부했지만 경제정책의 원칙 적용이라는 구실로 엔케리 자금이 한국금융가를 마음껏 휘저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자영업자, 중소기업, 부동산, 그리고 가계대출 등에 엔케리 자금이 들어가지 않은 곳은 없다. 강남부동산 폭등의 원인에도 엔화대출이 있었다. 그 약점을 보면서 대통령 선거의 혼란기에 일본의 금융은 철저하게 한국에 대해 안전망을 구축하려는 설계들을 해 들어왔다.</p>
<p>MB정권은 일본을 끌어들이고자 한다. 집권 후 엔화대출규모는 꾸준히 늘었다. 지금 당장 엔케리 자금의 전면 회수가 있다 하더라도 경제에는 문제가 없다고 호언하지만 실상이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이미 대상이 폭넓게 가계로 번져 있다. 부동산, 주식 시장에서조차 엔화자금의 비율은 전체 시장규모에 비해 무조건 ‘적다’고 할 수도 없다. 아직은 문제가 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죽자 살자 부동산 경기를 살리려고 500만호를 10년 내 지어서 모든 국민이 집을 가지게 하겠다는 허황된 시도까지 나왔다.</p>
<p>이제 일본이 취할 조치가 관건이다. 골드만삭스의 9.10자 보고서에 미국 정부의 누적 재정적자가 5조 3000억불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치가 나왔다. 7,000억불 수준의 구제금융으로 되지 않고 추가적으로 1조~2조달러 규모의 국가공적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당면 금융위기의 투입 추산치도 나왔다. 세계증시는 이에 반짝 반응을 하지만, 문제는 미국도 이른바 파생상품의 범위를 파악할 방법이 없다 보니 규모 자체를 확실히 지금 내놓을 수 없는 상태라는 점에서 세계금융시장은 일단 하방 곡선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구제금융마저도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지에서 모럴 헤저드의 대표적 사례로, 미국이 책임져야 할 일로 성토와 뭇매를 맞고 있다.</p>
<p>일본이 한국 시장에 어떻게든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일단 현 추세대로라면 재정적자가 되든 말든 빚더미를 쌓는 한이 있더라도 무리한 경제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 MB정부의 스탠스이고 보면, 그 가운데 일본은 틈바구니를 찾게 될 상황이 곧 온다고 봐야 한다. 벌써부터 조짐은 현실로 나타나는 중이다. 엔화 대출의 만기연장이 되지 않는 사태, 일부 은행에서는 의사 등 위험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에 대한 엔화대출 자체를 중단해버리고 있다. 병원 등도 줄도산이 예고된다. 엔화대출과 외환수요 간에 겹쳐진 어두운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br />
결론은 노무현이건 이명박이건 간에 걸어왔고 가는 길은 엇비슷하다는 사실이다. 경제정책의 결과물을 ‘주가’로만 판단하자는 노무현이나 ‘내가 대통령이 되면 브랜드 가치로도 주가지수 3,000은 간다’고 했던 사람이나 경제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경제를 통한 일본의 침투를 예상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다른 한 쪽은 그로 인한 사적 이익에 골몰하는 것은 각 정권의 본질을 볼 때, 당연하다 싶기도 하다.</p>
<p>서민들, 중소기업, 그리고 상위 5%에 들지 못하는 비 기득권 계층만이 이 위험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누군가 천민경제학을 말했지만 지금은 귀족경제학이건 천민의 그것이건 간에 ‘나라를 건 도박’이 벌어진 국면이다. 일본이 지난 2000년 이후 한국 땅에 심어둔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의 경제침탈 역량이 곧 우리에게 비수로 작용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 경제위기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곧 보게 될 것 같다. ‘친일’을 선택한 후폭풍이다.</p>
<h3>5. 뉴라이트 집단을 앞세운 MB식 이념전쟁;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5" title="toc_5" class="anchor" id="toc_5">#</a></sup></h3>
<p>‘경제와 교육’은 ‘친일의 재구성’ 프로그램을 ‘다시 백 년’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일본기획자의 핵심 테제에 속한다. 그것은 영구지배와 직결된 단어이기도 하다. 단순한 육체적인 사슬이 아니라 정신적인 족쇄가 채워지는 과정이다.</p>
<p>MB정권이 들어선지 반 년이 넘어서자마자 본격적으로 교육에 대한 강한 집착이 드러나고 있다. 물론 그 이전부터도 이런 시도는 있었다. 촛불민심의 눈치를 보다가 이제 기회를 만났다 싶으니 터져 나오는 것이다.</p>
<p>이 서커스 같은 캠페인의 목적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기득권 세력의 공고화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백년대계인 교육의 장악이다. 이 둘 간에는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 바로 절대권력을 구축하겠다는 발상법이다.</p>
<p>MB정권 가운데 상당수의 보수계 인물들은 지난 십 년 동안 절치부심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두 번 다시 정권을 내어주는 경우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당연히 정치 자체에 무관심하게 국민들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수단과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그러나 마땅한 대안이 국민 모두를 위해서 나올 재간이란 쉽지가 않다.</p>
<p>이들에게는 방법이 딱 한 가지밖에 없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즉, 이념전을 통해서 좌우 대립을 만들어내고 거기에서 정권과 기득권 유지의 키워드를 찾는 것이다. 자신들은 당연히 ‘우파’(우익)이라는 자리를 차지하면서 보수를 자처한다. 친일세력이 써먹었던 방식 가운데 좌파론을 그대로 대입하고 있다.</p>
<p>정당성이 없는 정권일수록 ‘분열’은 기회라는 인식이 있다. 국민들 사이를 이간질 하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권력을 전횡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매사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구도를 만드는데, 특히 친일세력은 이를 ‘이념’에서 찾는다.</p>
<p>왜 노무현이 무능했는가?<br />
여기에 대한 해답은 매우 단순하다. 그 또한 정치적으로 갈등을 조장하는데 익숙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인 탄핵국면을 통해 자신의 세력을 다지는 데는 성공했지만 갈등이 본질적으로 추구한 목표물에 이르지를 못했다. 오히려 훼절에 가깝다고 판단하는 게 옳다. 즉, 자신이 스스로 신자유주의의 종속을 맹세하는 가운데 특별한 이념론을 만들어내지도, 또한 그들과 강력한 상대를 하려고 하지 않고 권력을 놔버린 케이스에 속한다. 그는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엄밀히 그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직무를 기망한 것이다. 물론 그의 전적인 책임이라고 하는 것도 잘못이다. 직접민주주의에서는 모든 결과는 자신의 권리인 선거에 참여한 당사자, 즉, 국민에게 책임과 의무가 동시에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시대를 막을 방법을 찾는 데 실패했다. 이들 세력에게 권력을 바치는 데 크게 일조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p>
<p>그 결과가 마구 터져 나온다.</p>
<p>정부와 한나라당, 그러니까 MB정권이 모두 모여 소위 ‘보수원로그룹’이 중심이 된 ‘교과위원회’를 만들었다.겉으로 아니라고 하건 아니건 그들은 토의를 진행하고 있고 행동대원까지 거느리고 있다. 이들은 뉴라이트 역사교과서를 만든 ‘교과서 포럼’의 이영훈, 박효종 같은 친일매국의 사냥개를 중심으로 교과서를 난도질 하기 일보직전이다. 그들의 요구를 개정판에 담겠다는 것은 곧 그들이 지금까지 주장한 식민지근대화론으로부터 위안부 공창론까지 이르는 친일사관, 일본우익의 역사론을 그대로 이어받겠다는 결정과 같다.</p>
<p>그 속에 각자의 이익이 있다.</p>
<p>국방부는 국방부대로 제주 4.3사건을 “대한민국건국 저지를 위해 남로당이 지시한 대규모 좌익반란”으로 규정함으로써 과거 관동군 출신으로부터 이어져온 한국군의 초기 오점을 지워보려 한다.</p>
<p>상공회의소는 교과서 개정요구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03년, 2005년, 2007년에 이어 네 번째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교과서의 반시장적인 성향만 수정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이슈를 다룬다. 재미난 것은 2000년 6월 정상회담을 “남북정상회담은 방식이나 격식 측면에서 북한에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였다”고 개정하길 원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가 역사를 건드리더니 이제는 상공회의소조차 역사적 전문성, 외교 프로토콜의 기획자가 되고 있다.</p>
<p>통일부는 엉뚱하다 싶을 정도로 ‘햇볕정책’을 ‘화해협력정책’으로, ‘북한체제의 고착화’를 ‘북한유일지배체제’로 바꾸자는 의견을 내었다. 일견 타당성이 있지만 굳이 할 필요가 없는 행동이었다.</p>
<p>2008.9.8 전국 16개 시 도 교육감이 역사 교과서 시장을 50% 넘게 장악하고 있는 금성출판사의 &lt;한국근현대사&gt;교과서가 이념적 편향되었으므로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다른 교과서가 선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나섰다. 그들이 말하는 ‘그’ 교과서는 도서출판 기파랑(대표 안병훈)의 뉴라이트 역사교과서를 말하는 듯하다. 일부 교육감들은 2002년 교육부에 의해 승인된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를 밝혔지만 정권이 나서는 이 ‘이념전쟁’, ‘우경화 드라이브’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p>
<p>과연 이것이 국가를 위한 길인가?<br />
앞서 여러 차례 왜 ‘친일매국세력의 친일의 재구성’이 무서운 작업이었는가를 설명한 바 있다. 이들은 매우 조밀하게 들어온다. ‘경제와 교육’, 이 두 분야는 그들로써는 반드시 장악해야 하는 일선 고지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만 가지면 정권 연장은 쉽다. 방송언론의 장악도 중요하지만 국민은 경제적 여건이나 혹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의 방향에서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경향이 더 크다. 소시민에 대한 정치접근에 속한다.</p>
<p>이를 위한 그들의 두 번째 작업은 바로 ‘우익 네트워크의 구성’에 있다. 지금도 뉴라이트 집단은 대한민국이 생긴 이래 가장 커다란 정치, 사회 집단이 되어 있다. 이들이 친일이고 보면, 한국은 이미 사회 국가 내부에 강력한 친일찬양집단, 친일경배세력을 두고 있다. 이들은 교활하다.<br />
이를 테면 종교적인 갈등을 야기하면서 사회에 심어두는 새로운 세력은 엉뚱하게도 ‘평신도 협의회’라는 것이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의 평신도들이 어떤 형태로 대표성을 가지는지도 모르지만 여하간에 자기네들끼리 모여서-이를 보수인사가 주축이 된다고 표현하지만-협의회 같은 모임 하나를 뚝딱 만든다. 그리고 발표를 한다. ‘종교갈등은 안 된다’고 해놓고, 대표성을 잠식해 들어간다. 당연히 이들은 뉴라이트 집단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이상득, 한승조 같은 인물들이 그 안에 포진한다.</p>
<p>수법은 매우 단순하지만 효과는 몹시 크다. 왜냐하면 벌써 세력화된 동조자들이 있고, 거기에 정권과 정부가 가세한다. 방송언론의 장악을 통하여 이를 홍보하는 데 문제가 없다. 이렇게 삼 박자를 맞추어 두면, 무슨 세력을 만들어도 모두 하나의 네트워크 속으로 흡입이 가능하게 된다.</p>
<p>다시 노무현으로 돌아가 본다.<br />
그의 실패는 단순히 그 개인의 좌절이 아니라 이러한 사태를 예방하지 못한 잘못까지 져야 한다는 데 있다. 혹자는 이를 그의 전적 책임은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어떤 수준의 힘이 있는가는 MB정권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가 해야 할 일이었고 그는 하지 못했다. 그래서 ‘민주주의 2.0’의 실험을 ‘소도 2.0’이라고 폄하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친노 그룹의 입장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그들에 대한 공격쯤으로 간주하겠지만 한 시대에는 최소한 시대를 넘어가기 위해 해주었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이 없었던 것이 바로 노무현 정권이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발전에 있어 많은 기여가 있었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공과에서 공보다는 과가 더 많다고 평가하는 것이다.</p>
<p>MB정권의 이념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정해졌고 또 다시 ‘밀어붙이기’라는 몹시 극악한 방식이 동원될 것은 틀림없다. 그들 스스로 한국이란 국가와 사회 전반을 장악했다고 생각하는 수준은 어디쯤일까 생각해보면, 결국 한국을 고스란히 일본에게 ‘다시 백 년’ 전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지점까지 이를 것이라는 사실은 보다 명백해진다. 지금은 분명한 ‘시대전쟁’이다. 단순히 한국 내의 이념적 내란(內亂) 수준으로 파악될 때는 아니다.</p>
<h3>6 . 2008년, 선군정치의 북한 군부를 보는 눈<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6" title="toc_6" class="anchor" id="toc_6">#</a></sup></h3>
<p>이런 시점에서 한반도 북부에 자리한 북한은 대단히 묘한 위치에 서있다. 1998년 본격적으로 ‘선군정치’가 시작된 이후, 군부는 비대해질 만큼 비대해져 이제는 더 이상 확장이 될 수준은 아니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규모의 축소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대내외적인 환경에 처하게 되면서 군부 내에서도 갈등이 벌어질 조짐이다. 물론 이것을 조선노동당에서 일정 수준의 억제력을 가지고 해나가고는 있다고 하나 첨예한 군사적인 대응국면의 유지로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봐야 한다.</p>
<p>김정남은 최근 이런 발언을 했다고 전해진다.</p>
<blockquote>
<p>“조국(북한)의 경제가 재건되지 않으면 최고지도부가 무슨 욕을 들어먹을 지 모른다.”</p>
</blockquote>
<p>이 걱정은 비단 어느 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적어도 북한이란 사회 국가를 이끄는 사람들에게도 모두 작용되는 논제가 되어 있다. 앞서 ‘와병설’의 진행과정에서도 보았듯이 이 사태는 앞으로도 매우 보수적인 ‘강성’(剛性)을 유지할 공산이 크다. 끝까지 간다는 것이다. 9월 22일 북한이 IAEA의 핵봉인 해제를 요청했다는 것은 단순한 협박이나 혹은 조정국면을 기대했다기 보다는 ‘관성’(慣性)이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통제는 오로지 한 사람인 김정일 위원장의 손에 달려있는 상황이다.</p>
<p>그래서 인지 미국은 와병설 가운데서도 ‘그가 죽는 것도 그렇다고 권력이 흔들리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위험성을 잘 안다.</p>
<p>실제 상황은 어떤가? 의학적인 ‘스트록’(strock)이 지속적으로 그에게 건강의 위협으로 가해지는 중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뇌졸중이나 혹은 일정 수준의 치매현상까지 동반한 노화(老化)가 드러난 상태다. 현실적으로 온전한 정신으로 직무를 수행 가능한 시간은 하루에 몇 시간도 채 되지 못한다. 이런 사례는 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감이 살아있는 것은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그를 목적으로 한 ‘내부적인 갈등과 투쟁’을 모두 두려워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차분해지는 양상이 나타난다.</p>
<p>북한도 지난 십 년 동안 꾸준히 외부세계와의 교감이 가능했던 경험된 젊은 인력들이 수급되는 중이었다. 그들이 노동당, 군부까지도 모두 퍼지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있어 현실적인 북한 사회의 난점을 극복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지난 60년 짜진 ‘권력의 안전망’을 쉽게 일탈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순응이 아니라 다각적인 활로를 찾고자 하지만 그 성과는 빠르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들 세력들이 잠재적인 변혁주도의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p>
<p>최근 선군정치 하의 ‘국방위원회’라는 존재를 두고 여러 의견들이 분분했다. 조선노동당이 우위인가, 아니면 군부가 위주인가 하는 점에서 나온 논쟁이다. 김정일의 지위는 당 총비서와 국방위원회 위원장이란 두 개의 직위를 동시에 가지며, 기본적으로는 당연히 당의 우위를 이야기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선군정치라는 시스템에서 군부의 확충이 지난 십 년 꾸준히 이어졌기 때문에 이를 들여다보는 관점의 차이가 분명 있다.</p>
<p>사회주의 헌법 제103조에 명시된 국방위원회의 역할 기능에 대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p>
<blockquote>
<p>“국가의 전반적 무력과 국방건설사업을 지도하며, 국방부문 중앙기관을 내오거나 없애고, 중요 군사가부들을 해임 또는 임명, 군사 칭호를 제정하며 장령 이상의 군사칭호를 수여한다. 또한 북한의 전시상태와 동원령을 선포하고 국방위원장은 일체의 무력, 즉, 인민무력부 산하의 정규군을 비롯하여 로농적위대, 교도대, 붉은 청년근위대 등을 지휘 통솔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p>
</blockquote>
<p>한 마디로 군사적인 부분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다. 그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란 타이틀이 지난 십 년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명의보다 훨씬 대외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다.</p>
<p>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반론도 나온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김정일이 없는 국방위원회는 허수아비다.</li>
<li>둘째, 국방위는 실제 권한 행사보다는 모이라면 모이고 사안이 끝나면 흩어지는 단순한 명령대행기구다.</li>
<li>셋째, 김정일의 직계 가족 가운데 국방위에 가입된 자가 없다.</li>
<li>넷째, 노동당 중앙군사위와 지위, 역할의 문제가 겹치거나 혹은 하위에 있다.</li>
<li>다섯째, 지난 9.9절 충성편지의 수순도 노동당이 우선이었다. 역시 노동당이 우위다.</li>
<li>여섯째, 따로 청사나 사무실을 가지고 활동하는 상설조직이 아니다는 등이다.</li>
</ul>
<p>과연 그런가?<br />
군에 대한 강조는 김정일 본인의 말로 정리가 되었다. 이를테면 “혁명의 군대는 주체사상의 핵심적인 힘이고 주력이다. 군대는 인민이며 국가이고 당이다” 로부터 “군을 통수하는 국방위원회를 국가특별행정기구로 격상시키고, 국방위원장의 지위가 법률상으로 국가원수이며 또 국가의 상징이 된다. 동시에 군인의 사회 내 계급을 노동자, 농민, 지식계급이라는 3대 사회계급의 최상위의 위치로, 국내에 있는 일의 모든 것에 군사와 군인이 우선 된다” 는 것이 바로 선군정치의 강령이다. 그가 이 시스템 속에서 가동했던 국방위원회가 단순한 ‘허상의 실체’라고만 볼 수 있는가에 관건이 있고 이를 통해서 과연 현재의 북한 내부에서 군부가 차지하는 사회, 경제, 정치적 함의를 찾아보는 것이 앞으로 나타날 ‘갈등’의 방향을 들여다보는 계기판이 된다.</p>
<p>당연히 이 갈등 구조는 ‘당 정 군’이라는 3대 요소에서 조선노동당과 국방위원회라는 두 축과 그리고 김정일이라는 상위의 조율자를 둔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기에 그의 존재감 상실은 곧 이 축 간의 과도한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는 상태다.<br />
중국은 이러한 상태를 군사적인 맹동주의가 등장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게 보고 있다. 미국은 이 상태 이후의 이른바 ‘핵 통제권’에 더 관심이 많다. 둘 다 엇비슷한 관점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과연 북한이 독자성 유지를 위하여 어떤 노선을 택하는 ‘정리’(整理)를 할 것인가에 무게감이 있는 셈이다.</p>
<p>여기에서 바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후계론’이다. 앞서도 ‘혁명가계승계’와 ‘혁명정통승계’라는 개념으로 혁명의 유지라는 측면을 제시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축들 간의 갈등 속에서도 혁명의 대의를 버릴 수 없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한다. 아무리 외국물을 먹고 들어온 신선한 젊은 피들이 많다고는 하나 여전히 북한이란 국가 사회는 하나의 ‘혁명체’로 존재하고 이를 버릴 경우에는 명분을 부여 받지 못하는 체제다.<br />
남한에서 ‘친일’이 뿌리를 내리려는 과격한 시도를 하는 가운데서 북한은 이러한 내우(內憂)를 맞고 있다. 그러기에 이들의 우선순위는 모두 하나로 모아진다. 즉, ‘어쩔 수 없는 대결적 구도’라는 것이다. 그 첫 머리는 바로 북미관계에 있다.</p>
<p>왜 북미관계인가?<br />
북중 관계의 혈맹과 동맹구도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자립 생존이란 개념이 몹시 강하다. 그러나 개혁개방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김정일이 선택한 3년의 상중통치를 통한 이른바 ‘인덕정치’ 이후 곧 바로 ‘국방위원회’를 축으로 하는 ‘선군정치’로 넘어갔다. 이 시스템에서는 분명 정권 공고화에는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 시기에 경제적인 개혁 또는 개방을 통한 체질개선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군부는 이 시점부터 비대화 단계에 들어가서 사회 국가전반에 파고들었다.</p>
<p>미사일, 핵 개발 등 국가존립 유지를 위한 무력의 구축 상태에서 첨예한 대결구도가 형성되었다. 이 시기, 북중 관계는 썩 좋지 못했다. 거의 주기적인 마찰과 갈등이 있었다. 결국 북미관계라는 새로운 축이 등장을 했고, 이 때문에 오히려 북한은 고립되는 현상이 이어졌다. 남북관계가 2000년 이후 일정 수준 경제적 숨통을 터주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는 태부족이었다.</p>
<p>유지되던 군사적 강성대국의 기조는 2005년 이후 심각한 경제난을 다시 겪게 된다. 북미관계는 지지부진하고, 그렇다고 강해진 군부의 입김으로 핵 미사일 무장력을 포기하는 개방의 선택은 불가능한 단계였다.</p>
<p>북미 간 접근이 강화되는 시기,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은 중국에게 강한 쇼크로 다가왔다. 북한은 재개된 6자 회담의 국면에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낙관했고 그를 통해서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북중 간의 갈등이 재봉합되는 과정이 나타났고 북미 간 밀고 당기는 협상이 지리하게 이어진 것이 바로 2008년의 상황이다. 남한에 새로 등장한 MB정권은 미국보다 더 강력한 대북 압박정책을 기조로 했지만 북한이 선 순위로 해결할 과제는 바로 북미-북중 관계라는 두 축이었던 것이다.</p>
<h3>7. 후계자, 과연 있나 없나?<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7" title="toc_7" class="anchor" id="toc_7">#</a></sup></h3>
<p>이러한 1998년 이후의 흐름에서 ‘왜 (북한에서는) 후계자 논의가 가시화되지 않는가?’라는 테제가 등장한다. 당연히 이 과정을 거치면서 권력의 각 축들이 가졌던 ‘김정일 이후의 시대’라는 관점도 존재하고, 또한 ‘북한의 화평연변(和平演變)’을 주제로 한 미국, 중국의 접근도 한 몫을 하게 된다.</p>
<p>딱 이 시기, 남북관계는 사실상 겉치레의 정치적 화장질을 하기에 급급했다. 사안에 접근하는 본질이 달랐다. 남과 북이라는 민족끼리의 해결책을 도모하자는 ‘구호’는 공허했던 것이다. 내부적인 통제를 위해 정착시킨 선군정치의 시스템 속에서 온전한 협력이 자리잡기는 어려웠다. 또한 남한의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진 정권도 이 부분에 있어 이렇다 할 획기적인 기획력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두 쪽 모두가 이 시기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p>
<p>그 과정에서 여러 방식의 후계자 논의가 북쪽 내부에서는 벌어졌다.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이 시기에 본 사람과 다음 시기에 본 사람이 각각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유력자는 계속 바뀌고, 오늘 이야기 되었던 후계자는 내일 외유를 떠나거나 숙청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아예 후계논의가 없었고 후계자로 지목된 사람도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p>
<p>본질은 ‘김정일’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상황’에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내부에서 상황에 따른 이합집산, 정치적인 담합과 갈등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후를 한 치도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상황이 이어진다. 당연히 ‘(제대로 승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들 권력을 지탱하는 축 위의 김정일 이라는 조종자의 생존연한이 관건이 된다.</p>
<p>일단 그간 벌어진 내부적인 후계전쟁을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br />
1999~2000년 연간, 김정철은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가 당시 당중앙위 조직지도부에서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었건 간에 신분 자체의 특수성으로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있었던 시기였던 셈이다. 심지어 2002년경에는 ‘김정철 동지의 사업체계를 세우자’는 구호가 등장했던 것마저도 당시의 분위기만으로 본다면 충분히 일리가 있다. 일회성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단순한 시도로 보기에는 여러 정황에서 일정 수준의 위임권도 행사하던 때였다.</p>
<p>당시 가장 큰 정적은 장성택이었다. 2003년경부터 굳이 황장엽의 발언-김정일 사후에는 장성택이 유력하다-이 아니더라도 중국, 일본에서는 그에게 방점을 찍는 인물들이 꽤나 많았었다. 그만큼 그와의 접촉에 노력했던 장면들이 드러난다. 단순히 김정일의 매제라는 신분이 아니라 김정일-장성택 간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인간적인 정리까지 포함되어 있었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의미가 있는 접근이었다.</p>
<p>당시 김정철의 생모인 고영희는 이미 중병을 앓고 있는 단계였고, 그녀는 장성택과 그를 추종하는 최룡수(인민보안상) 등을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고영희와 함께 장성택 제거에 나섰던 김용순 대남비서가 2003.6.16 고영희의 생일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제거되고(10.26사망), 장성택도 그 해 7월 이후 사실상 활동을 중지하고 2004년에는 직무정지를 당하게 된다.</p>
<p>2004.5.26 고영희는 유선암으로 사망, 6월초 평양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 직후 김정철은 비공개로 중국을 여행하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는 유력한 후계자였다. 김일성이 말했다는 ‘김정일이 천재라면 김정철은 만재다’라는 말이 유행되었던 때이기도 하다.</p>
<p>그러나 이 시기가 고비였다. 고영희를 ‘조선의 어머니’로 하는 우상화 작업을 주도하던 정하철 선전담당 당비서가 제거되면서 김정철은 후계일선에서 후퇴하게 된다. 이것이 누구의 지시였는가는 나중에 밝혀질 일이겠지만 실제 이와 같은 논의중지는 김정일의 의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볼 때, 그가 중지시켰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p>
<p>2004년 하반기~2005년 하반기 약 1년 동안 김정철은 여성호르몬 과다분비 등의 병명이 언급되면서 그 자신도 독일, 유럽 등지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가 재등장한 것은 2005년 10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시점이다. 독일 슈피겔은 당시 만찬에 김정철이 동석했으며 이것은 중국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했다.</p>
<p>그 이후 김정철은 당중앙위 조직지도부, 서기실 등을 거치게 된다. 2006년에는 중앙당 고위관리 사무실에 김일성-김정일-김정철의 3대 초상이 게재된 적도 있다는 증언도 있다. 2007년에 들어 김정남은 베이징의 한 소식통과의 대화에서 “후계문제에는 관심도 없고 시켜도 안 한다”는 발언을 한다. 중국은 사실상 이 시점에서는 김정남의 후계 가능성을 거의 없다고 분석하고 있었다.</p>
<p>2007.11.24 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보도는 더 직설적이었다. 김정철이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임명 되었고, 이것은 김정일이 1969년 27세 나이로 그 직위를 가진 것과 동일한 절차였다는 것이다. 또한 그가 김위원장 집무실이 있는 중앙당 본청사에 근무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흘렸다. 당 조직지도부는 당을 담당하는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군을 담당하는 리용철 부부장이 있는 곳이다. 김정철은 2000년 이후 꾸준히 당을 근간으로 하는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음이 확인된 셈이다.</p>
<p>이 시기 직전의 세 가지 가장 큰 변화가 눈에 띈다. 장성택은 2007년 초 다시 등장하여 사법 및 경찰, 인민보안성, 국가안전보위부까지 관장하는 당 행정부장 직책을 맡게 된다. 그가 예전의 성세를 회복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예측도 흘러 나왔다. 그렇지만 파당 형성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기 때문에 그의 행동반경은 제약이 있다는 설도 동시에 흘러 나왔다. 그리고 2007.4.12 연형묵(2005.10사망)의 후임으로 국방위 부위원장에 김영춘이 임명되면서 확실한 군의 실세로 등장한다.</p>
<p>2008년 3~4월, 김정철은 다시 중앙당 검열 지도의 책임자로 청진시와 중앙당 부분에서 등장한다. 중앙당, 보위부, 국방위원회까지 검열을 지도했다고 한다. 이렇게만 본다면 김정철은 확실히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는 유일한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번 ‘와병설’에서 많은 예측들이 난무하는 것일까?</p>
<p>추측의 근거는 다음의 네 가지다. 첫째, 3대 가계(직계) 승계를 하지 않는 것이 김정일의 방침이다. 또한 북한 내에서도 3대 승계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둘째, 김정철뿐만 아니라 김정운, 김정남을 지지하는 세력도 있다. 장성택-김정남 간의 연대가 있다. 이들 간의 대결구도가 존재한다. 셋째, 군부가 이러한 3대 승계에 찬성하지 않는다. 군부만의 독자적인 집단지도체제의 형성에 방점을 찍어주길 기다린다. 넷째, 김위원장이 아직은 건재하다. 그러므로 후계논의는 2010년 이후에 하자고 결정한 상태이므로 누구라도 언급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문제는 여전히 미결상태로 존재한다.</p>
<p>확실히 3대로 이어지는 가계승계에 대한 반대론도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9.9절 북한 정권수립 60주년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에서 북한은 사회적으로 김정일의 존재감 자체가 더 부각된 상태다. 그에게 결정의 위임권이 있다는 사실을 전 사회 국가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달리 해석하자면, 이것은 ‘김정일의 몽니’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된다. 하부로부터의 권력투쟁에 대한 사전 단속이고 매우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였다고도 판단된다.</p>
<p>혹자는 ‘(병원 혹은 침상) 문고리 권력’을 들어 김옥-장성택 간의 담합 또는 알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전제에서 그렇게 본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이다. 과거로부터 진행된 일련의 작업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p>
<p>바로 여기서 다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선군정치 하에서 대형세력이 된 군부의 존재다. 이들의 선택방향이 어디인가를 가늠하는 잣대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산하 위원회를 구성하여 ‘군부 중심의 집단지도체제’가 시범 가동 중이라는 이야기도 흘러 나온다. 그 또한 터무니 없는 소설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건강에 따른 위임권의 하방은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p>
<p>김정운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2002~2007년 기간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특설반에서 수업을 한 그는 외모, 성격 등에서 김정일의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최근 그의 사고에 대한 루머나 혹은 건강 이상설 등이 나오는 것은 과거 김정철의 2005년 경우를 연상하게 한다. 중국에서조차 김정철 혹은 김정운이라는 직접 가계승계의 경우에는 이 둘을 꼽는 이들이 많았다.</p>
<p>결국 관건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북한 내에서 권력 암투가 치열한가, 아닌가?</li>
<li>둘째, 이번 와병설 이후 권력 쟁투는 진정 국면인가 아니면 더 격화될 것인가?</li>
</ul>
<p>이 문제는 향후를 짚어 보는 데 긴요하다. 북한 내부의 요동 국면에서 남한의 대응은 일견하기에도 비상식적인 대응을 한다.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남북한 문제 개선이라는 민족주의적 상황의 조성을 극력 회피코자 하는 MB정권의 의도가 드러난다. 현재로써는 확실한 후 순위 사안이다. 그와 맞물려 소위 ‘이념전’이 개시된다. 좌파론, 빨갱이론이 등장하고 이제는 우파 단결론까지 나오면서 여당과 정부, 뉴라이트 집단을 대표성으로 하는 자기네들만의 보수진영이라는 세력들이 모두 동원된 ‘친일의 개화’(開花)에 몰두하는 중이다. 이 시기 북한의 이러한 상황은 한반도의 미래 상황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데 단초(端初)를 제공하기도 하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내부적인 정치적 정리에 고민하는 평양이 서울에서 벌어지는 ‘친일의 재구성’에 직간접으로 일조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불행한 상황이다.</p>
<h3>8. 남북한의 결별, 중국에게 확실한 기회를 보장하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8" title="toc_8" class="anchor" id="toc_8">#</a></sup></h3>
<p>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9월 18일 국회에서 남북한 간 비상연락망인 ‘핫라인’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실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핫라인을 고위직에서 접촉이라고 한다면 작동되지 않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말 그대로 남북한 간은 대화가 일단 단절되어 있는 셈이다.</p>
<p>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br />
MB정부의 대북정책은 공식명칭이 ‘상생 공영’이다. 이것은 ‘명분과 이유’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속내는 ‘갑’의 위치가 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북측이 수혜자의 입장에서 ‘감사’가 없다면 정책 자체의 의미를 잃는다고 해석된다. 왜냐하면 실질적인 각론이 없다는 점, 그걸 마련하는 기초인 대화라인 구축마저 초기부터 실패한 점을 꼽아보면 결론이 그렇게 나온다.</p>
<p>이런 정책 기조를 두고 다양한 평가가 나온다. 대체로 이런 유형이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MB정권의 대북정책은 기본이 ‘반공’(反共)에 있다. 그러므로 ‘전선’(戰線)이 명확하게 형성된 상태에서 접근하다 보니 일단 대립각이 첨예하다.</li>
<li>둘째, 비핵개방 3000의 로드맵 자체로부터 대화 제의 등이 모두 ‘허구’(虛構)를 바탕으로 한다. 즉, 실체적인 구성력을 갖추고 있는 정책이 없다.</li>
<li>셋째, 북한의 선 개혁개방을 요구한다. 그로부터 모든 문제가 출발한다는 시각, 즉, 북한에 대해 일단 책임성을 전가하면서 정책이 시작된다. 첫 단추가 서로 맞지 않다.</li>
<li>넷째, 기조와 방향이 없다. 그러므로 결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해서도 안 된다’는 관점이 도출된다. 정책이라 부를 수 없다.</li>
<li>다섯째, MB정권에 있어 남북관계는 후 순위다. 당연히 대북정책 또한 대미, 대일 관계의 하위개념에 불과하다는 등이다.</li>
</ul>
<p>이것은 과연 ‘스스로 족쇄를 건’ 모습인가, 아니면 다른 목적성을 동반한 것인가?</p>
<p>2007년 하반기 대선국면에서 중국은 한국의 대선주자들의 대북정책에 대단히 주의를 기울였다. 자칫 한중 간에 대북접근을 둔 갈등이 일어날 소지를 걱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MB정부가 보여준 대북정책은 중국의 근심을 한방에 날려 버렸다.</p>
<p>중국은 이렇게 판단했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한국의 대조선 정책은 특이사항이 존재할 틈바구니가 없다.</li>
<li>둘째, 조선은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향후 5년 간의 여지가 없다.</li>
<li>셋째, 대미, 대일 접근을 통한 대 한반도 정책의 구사가 해답이다.</li>
<li>넷째, 극(極)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다자회담 구도나 혹은 양자구도 자체에서 협상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는 등으로 판단 방향이 섰다.</li>
</ul>
<p>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판단이 북중 간의 대화를 촉진시키는 매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북한을 가깝게 끌어들이고자 하는 중국 내부의 친화론자들이 반대론을 잠재우는 강력한 카드가 되었다. 복잡한 갈등을 피할 수 있는-한국이 먼저 피해주니-기회라는 것이다.</p>
<p>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내에서는 두 가지 뚜렷한 대북 정책의 기류가 존재했었다. 하나는 ‘완충지대론’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선부담론’이었다.</p>
<p>2004~2006년까지 중국의 한반도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북한과는 도저히 쉽게 협상을 할 수가 없고 오히려 언젠가는 중국에 위협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보고서들이 줄을 이어 작성되었다. 한 마디로 시한폭탄 같다는 것, 그리고 중국 의존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듣지 않는 ‘깡패국가’라는 점에서 매우 불쾌한 감정들까지 섞였었다. 그것이 바로 ‘조선부담론’의 핵심이었고, 그래서 강력한 제재와 가용의 수단을 통한 효과적 압박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었던 셈이다. 당연히 김정일 체제 이후에 대한 대비문제도 불거졌다. 거기에는 직접적인 개입의사가 뚜렷하게 있었다.</p>
<p>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2008.1.8 보고서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의 비상작전 일부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탈북난민의 지원, 자연재해 이후의 원조제공 등 인도적 지원과 민간 경찰활동을 통한 치안유지작전, 심지어는 북한 핵시설이 공격받아 생기는 핵오염 정화, 핵물질 확보 등 환경통제작전까지도 중국이 세우고 있다고 미국은 보고 있었다.</p>
<p>한 걸음 더 나가 남한 내의 모 학자는 항공기 800대, 함정 150여 척을 동원한 18개 사단 40여 만 명을 한반도 유사사태 발생과 함께 투입할 계획을 중국이 가지고 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이런 정보는 대체로 노무현 정권 시기 한미동맹의 작계 5029의 당위론을 주장하는 데 활용되었다.</p>
<p>그러나 MB정부의 대북정책이 실용주의라는 타이틀을 걸면서도 실제로는 반공에 근거한 대북해체론으로 판명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한미일 공조를 천금처럼 여기는 MB정부는 중국 당정의 입장에서는 적대적 노선에 선 자와 같았다. 거기에 동조적 시각을 가진다는 것은 어리석었다. 오히려 이런 때는 철저한 ‘역할론’으로 들어가서 북중 관계를 공고하게 하는 것이 요구되었다.</p>
<p>밀월은 시작되었다. 마침 베이징 올림픽은 티벳(西藏) 사태와 쓰촨(四川) 지진 등으로 대외적인 평판이 매몰찬 비난 기조가 지속될 때, 북한은 이에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지지를 거듭해서 천명한다. 그들 간에 과거 절친했던 맹방(盟邦)의 분위기가 다시 나타났다.</p>
<p>개성공단에 대한 중국의 연구는 2006년 이후부터 몹시 면밀하게 진행된 흔적이 있다. 그들은 이른바 특구정책이란 것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이 있고 보면, 이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쉬웠으리라 보여진다. 결론은? 한계가 뚜렷하며, 개성공단을 ‘전망 있는 특구’라는 관점에서 보기는 미약하다는 판단이었다.</p>
<p>그에 비해 미국은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을 한다. 초기 실패한 압박정책에서 화해로 기조를 바꾸며 2.13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북미간에는 상당한 관계진척을 도모했었다. 그러나 한계가 뚜렷했다. 미국 내에서는 공화당, 민주당 같은 매파 비둘기파의 시각이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를 들여다보는 제3의 눈이 존재했다. 바로 ‘화평연변’(和平演變)이다.</p>
<p>80년대 소련과 동유럽을 붕괴시킨 전력이 있는 ‘평화적 분위기 조성 하에 와해공작’을 여전히 신봉하는 부류들이 있었고, 그들은 끊임없이 북한과의 게임 룰을 미국식에 맞추어 창출하려고 했다. 그래서 6자 회담이라는 다자 협상구도의 유용성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반도의 현상유지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전제를 둔 정책이 지속되었다. 이 협상의 굴곡은 일희일비의 수준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면 결론이 나 있었다. 북미 간에는 결코 쉽게 화해무드가 조성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p>
<p>한국에선 MB정권의 대북정책을 두고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오는 사이, 북한에서는 내부적으로 개성공단, 금강산 무용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를 주도한 세력은 군부다. 그 이전 십 년 동안 주도했던 통일전선부 등의 세력들이 집중적으로 그들의 과오에 대한 감찰을 받게 된다. 결과는 참혹했다. 수뢰, 개인비리, 권력남용으로부터 사상적 오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진행된 북한 식 검열과 감찰에 온갖 때묻은 과거의 모습이 모조리 드러났다. 군부는 그들의 말이 옳았음을 입증 받았다.</p>
<p>한반도는 2008년 하반기로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불확실성을 담보로 한 상황으로 접어드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이 벌어지고 금강산 관광마저도 중단되게 된다. 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대북정책 제안이나 혹은 정치적인 공허한 수사(修辭)는 완전히 소용이 없는 폐물이 되었다. 북한은 지속적으로 6.15선언과 10.4선언이라는 지난 십 년의 선언적 내용과 합의된 내용의 이행을 전제로 한 대화를 요구했지만 MB정부는 이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대북정책을 다시 선 순위로 돌려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정권의 전략상 전혀 맞지 않았던 장면이기도 했다.</p>
<p>왜 남북한은 서로 ‘핫라인’을 열지 않는 것일까?<br />
우선 남한의 문제를 보면 이 점은 약간 복잡한 이유를 동반한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선 순위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 처리해야 할 일은 남한 사회 국가 내부에서 이른바 ‘우파론’부터 일으켜 세운 다음에 해야 한다는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 이것이 사실상 핵심이다. 이 우파 네트워크의 개설과 우파 결집론은 바로 친일의 재구성과 초기 전략적 완성과 잇닿아 있다. 정권 초기 시행하지 않으면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까지 엿보인다.</li>
<li>둘째, 정책과 실행각론이 사실상 없다. 특사를 보낸다거나 혹은 사무소 상호 개설, 정상회담 제의 등은 모두 공허(空虛)한 립 서비스였다. 그 실행의 담보는 ‘북측이 고갤 숙이고 들어오는’ 것을 전제로만 구성된 것이다. 먼저 그렇게 할 의사는 전혀 없다. 정작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각론이 없이 ‘만나서 협의하자’는 것이 대세다.</li>
<li>셋째, 미국이 생각하는 ‘한반도 격변론’에 편승하는 중이다. 분명 빠른 시간 내 변동이 있을 것이고 그 틈을 노리는 것이 이른바 ‘빠른 통일’을 할 기회라는 상상을 한다. 물론 현재로써는 절대적인 ‘허상 쫓기’에 해당한다.</li>
<li>넷째, 이제 국제경제의 위기상황이 한국의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상태가 오면, 이것은 하나의 명분이 될 수 있다. 이 상황은 경제적 난관에 빗대어 북한과의 절연(絶緣) 국면을 조성하는 절대적인 명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유는 다르다. 한국 사회 내부의 반 좌파세력 즉, 반북 세력을 결집하는 계기로 작용한다고 본다. 그것이 곧 우파 결집론과도 통한다.</li>
</ul>
<p>이런 상황에서는 남북한 간은 일단 큰 맥락에서는 결별의 수순을 밟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MB정권이 자신들의 선 순위를 달성하고 후 순위가 선 순위가 되는 상황이 오거나 혹은 또 다른 필요성에 의해서 ‘하는 척’ 해야 하거나 또는 ‘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지 않는 한, 북한이 그들의 필요에 의해 남한에게 대화제의를 하지 않는 한, 이 기조는 변함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안은 만만하게 올 이유가 없다. 꽤나 무리한 요구들이 뒤섞일 것이다.</p>
<p>그러므로 기조와 방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MB정권의 대북정책은 뚜렷한 목표점과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을 해야 한다. 그것은 ‘당분간 하지 않고 관망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임 정권에서도 정권 초창기에는 1~2년간은 대화가 없었다는 말로 나타난다. 물론 이것은 한국의 문제일 뿐이다. 중국이나 미국, 일본이 한국의 이런 사정을 다 감안해주면서 똑같이 가거나 혹은 행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다.</p>
<h3>9. 서울, 남북간 ‘핫라인’ 개설의 의지는 없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9" title="toc_9" class="anchor" id="toc_9">#</a></sup></h3>
<p>‘핫라인’은 어떤 방식으로 재등장할 것인가를 보자. 이걸 살펴보는 것은 사실 지난 십 년을 재구성해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흥미롭다.<br />
남한의 MB정부 입장에서는 별로 서두르는 기색이 아직 없다. 자꾸 ‘코리아 리스크’ 이야기가 나오는 경제위기 국면에서 일정 수준의 땜질용으로는 찾는 중이기는 하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은 정권 초기 제시된 상태다. 두 가지다. 첫째, 김위원장의 최측근이어야 한다. 둘째, 서로가 협의 가능한 상대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충족하는 것을 ‘핫라인’으로 MB는 정의한다.</p>
<p>그러나 북한의 입장은 다르다.<br />
지난 십 년의 공과 가운데 가장 좋지 않은 선례는 바로 ‘화장질’이었다. 즉, 정치적 용도에 의해 일회성으로 ‘치레’를 하는 일종의 담합행위다.<br />
그것은 정권 대 정권으로 벌어진 일이라기 보다는 인물 대 인물로 구성되었고, 그 가운데 정치적 기획은 있었지만 장기적인 민족과 한반도의 미래를 본 기획과 구상, 실천은 없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것이 지금 드러나고 있는 현실이다. 즉, 불가역적인 상황은 지난 십 년 동안 전혀 만들지 못한 까마득한 ‘이상’이었다.</p>
<p>왜 북한은 그렇게 했는가?<br />
이 부분부터 살펴보지 않으면 앞으로 십 년이 어떤 형태로 전개되더라도 과거 십 년에서 한 치 벗어나지 못한 화장질이 대세가 될 것은 뻔하다. 정해져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br />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북한은 1998년 이후 본격적인 선군정치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대외의 실세와 대내적인 실세는 분명히 구분되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대남관계에서 이 점은 명확했다. 이를테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곧 실세는 아니라는 의미다. 그나마 가장 굵직했던 실세는 분명 ‘김용순’ 대남담당비서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2003.6.16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에는 실세라고 부르기는 부족한 사람들이 ‘앞줄’에 섰다. 그들을 ‘꾼’이라고 부른다. 대남담당 사업일꾼의 보고를 통해 북한이란 정치사회가 변하는 경우는 없다. 그 방향성보다는 내부적인 처리가 더 세심하다.</p>
<p>이를 테면 당중앙위원회의 각 부서 입장에서 볼 때, 대남담당인 통일전선부의 행위는 일정한 제제권역 내에 있다. 마찬가지로 군부 또한 이들의 세력 자체를 하나의 독립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권력의 축과 연결되어 있다 보니, 대남담당을 한다는 사람들의 계급 자체가 이들 축에 속한 인물들의 상위에 절대 있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즉, 구조 자체가 그렇다.</p>
<p>그러다 보니 어떤 사안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겠다고 ‘설치는(씩씩대는)’ 인물들이 꼭 생겨나게 되어 있다. 이를테면 통전부 부부장이었던 ‘최승철’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는 2007년 상황에서 남한의 대선에 개입을 하겠다는 것을 기본으로 대남업무의 총책처럼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상하거나 혹은 그들의 배후가 원하는 작업은 전혀 성과를 보지 못했다. 예측도 모두 실패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최승철 수준의 정보력이나 판단력으로는 터무니 없었던 것이었고, 그는 단지 ‘마스크가 좋아서’(얼굴 덕을 본) 발탁된 케이스였을 뿐이다. 그의 업무처리 실력을 인정하는 북한 내부의 사람은 많지 않았다. 상납의 구도는 예외다.</p>
<p>허상과 실상이 여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2007년 말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바로 철저한 감찰 속으로 들어간다. 그 이전부터 그에 대한 조사는 해당 부서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이미 2007년 상반기를 넘기고 난 이후부터는 실세가 아니라 ‘감시대상’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p>
<p>본명이 권민인 남북장관급회담의 권호웅은 더 하다. 그는 책임참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고, 통일부는 책임참사를 장관급이라고 설명하는 자료까지 만들었지만 그는 이른바 연속극을 찍는 드라마 ‘배우’에 속했다. 그 가운데서도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혼자서 ‘씩씩대는’ 상황도 없잖아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마지막도 그리 좋지는 못했다. 2006년 6월 부산에서의 장관급회담을 마지막으로 그는 현장에서의 겉치레만 익은 숨은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가 조정 가능한 영역은 늘 한정되어 있었다.</p>
<p>과연 이들을 통제하는 ‘다른 손’은 없다고 보았던 것인가?<br />
바로 이 부분에서 겉으로 드러난 남북관계의 지난 십 년 핫라인의 어설픈 구석이 모두 드러난다. 통전부 최승철이나 내각책임참사 권호웅이나 모두 경제를 담당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는 계급장을 들고 있지도 않다. 그들을 창구로 해서 그들을 통해서 보고를 듣는 많은 북한 내의 다른 부서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 또한 사냥개의 신분이었을 뿐이었다는 점이다.</p>
<p>이를 상대적으로 교묘하게 활용한 것이 바로 국정원의 정치적 화장질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한 인물인 ‘서훈’이다. 그는 대북전략국장에서 3차장까지 승진했지만 그 과정은 차치하고 그 자신의 북측 연결라인 자체를 최승철 하나에 고정하고 있던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가진 ‘진짜 라인’을 통해서 사실상 남북 핫라인으로 포장된 피상(皮相)을 관리했다.</p>
<p>그것은 박지원-송호경의 경우도 그러했고, 그나마 가장 유력했던 핫라인이라고 이야기되는 임동원-김용순의 경우까지 보더라도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에서 철저하게 정치적 화장질에 집중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2002년 2월, 임동원이 특사로 헐레벌떡 뛰어갔지만 김용순을 통한 업무전개는 되지 않았다. 제1차 정상회담 때 통일부장관을 맡았던 박재규 같은 인물은 이러한 핫라인 축에도 끼지 못하는 신분이다. 북한은 그렇게 평가했다. 그리고 그 수준(심지어 기질까지 파악하여)에 딱 맞게 활용한다는 개념이 더 강했다.</p>
<p>이 현상에는 두 가지의 관점이 존재한다. 첫째, 당시의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일을 했다면 그것이 핫라인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둘째, 그 핫라인을 통해서 과연 무슨 일을 했는가에 대한 장기적 관점의 평가다.</p>
<p>이 둘 간에는 모순도 발생한다. 실제로 객관적인 시각을 부여하기는 어렵지만 김대중 정권시기 정상회담은 분명히 대가를 기반으로 했다. 그것을 한반도에 있어 이른바 ‘코리아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경제, 사회, 정치 전반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면 그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정치적 행위가 본질적으로 남한사회에 불러온 것은 분명 악성도 있다는 것이다.</p>
<p>그 표상이 바로 금강산이고 또 개성공단이 될 수도 있다. 아울러 그로 인해 남한에서 발생된 첨예한 남남갈등의 구도 자체를 해소하지 못했다는 사실, 그것을 뛰어넘는 불가역적인 상황까지 만들지 못한 것은 결코 정권의 한계가 아니었다. 딱 그만큼만 갈 수 있었던 ‘라인’이 개설되어 있었던 것일 뿐이다.</p>
<p>그래서 노무현 정권 초창기의 대북송금특검은 결국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부르게 된다. 그 현실은 남북관계에 있어 김대중 정권시기의 담합이 어떤 수준이었던가를 표상하는 사건이었다. 노무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미사일발사, 북핵 실험까지 이르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왔다. 이종석을 필두로 하는 이른바 학자적인 대북접근의 한계를 보여주었고, 정권 막바지에 ‘대못을 박는 심사’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했지만 그 견질 어음을 발행한 후유증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남북문제에 아마추어적 접근은 무리라는 인식만 높게 만들었다. 때늦게 했다는 것, 그리고 대북정책에서 전혀 기획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 그로 인한 민족적 감성을 지닌 한국 사회 내부의 안전망 같은 세력을 분열시킨 점은 크게 비판 받아도 좋을 일이었다.</p>
<p>그것이 바로 소위 ‘핫라인’의 존재라고 한다면 남과 북은 향후에도 이 수준의 협의와 거래로는 올바른 통일을 이루기는 어렵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오히려 최근 벌어진 김정일 와병설에서 MB정권은 알게 모르게 ‘빠른 통일’을 추구하는 흔적도 나온다. 이른바 붕괴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른 통일론’은 아니다.</p>
<p>결론적으로 보면, 정권의 최고 책임자와 집권세력의 성향에 의해 드러나게 되는 남북 간의 일정한 ‘거래행위’는 앞으로 십 년에 있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MB정권이 지향하는 방향은 전혀 엉뚱하다. 그것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는 아주 쉬운 과제다.</p>
<p>중국을 보자.</p>
<p>북중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중국은 당정군이라는 모든 요소에서 북한과의 핫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그들 간의 대화는 ‘당중앙’인 후진타오 총서기로 모아진다. 정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라인의 취합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거기에는 공식도 있지만 비공식도 있다.</p>
<p>미국의 경우도 중국과 마찬가지의 핫라인 구축에 많은 정성을 들였다. 뉴욕대표부, 6자 회담을 통한 외교부 채널로부터 수 개의 정보기관이 가진 공화당, 민주당을 뛰어 넘는 채널의 가동, 심지어 종교인 채널까지도 열었다. 이것이 남한의 그것과 가장 다른 이유는 채널이 지향하는 목표점이 단순히 가십성의 정보 모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협의체로써의 기능에 모아져 있다는 점이다.</p>
<p>남한에서도 숱한 민간기구의 활동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십 년, 이 기구들의 대부분은 남한의 사회 내에서 갈등의 온상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권단체화 하거나 혹은 정권과의 담합을 위한 기구, 또는 그러한 행위, 종교행위라고 하지만 목적성이 너무 눈에 보이는 남북관계를 파는 장사꾼 같은 행위들이 넘쳐났다. 또한 대남 통일전선기구들이 흔히 모토로 내세우는 방식으로 이들을 ‘사냥개’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가동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 내부의 이면에 있는 세력들과의 실질적인 핫라인은 구성된 바도 없거니와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봐야 한다.</p>
<p>공식적인 수준에서 핫라인을 어떻게 운영하게 될 것인지에 있어 최근 하나의 재미난 움직임이 있다. 바로 다시 배우를 등장시키려고 하는 것이다.</p>
<p>남북관계의 지난 십 년, 전면에서 움직인 것은 통전부의 다른 이름인 아태평화위다. 이들은 최승철의 작년 말 이후 공석상황에서 적절한 대체인력을 발굴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아태라는 간판이 서울에서 가진 인지도를 발판으로 하려는 매우 얄팍한 발상법이 쉽게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다. 그래도 그나마 대표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p>
<p>그래서 통전부의 부부장이 당연직인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아닌 아태라는 간판을 건 부위원장이 등장할 개연성이 생겨난다.<br />
그 어떤 인물이 이렇게 다시 등장할 경우, 서울은 다시 이 인물에게 환호하고 그와 대화를 위한 창구개설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인가?&nbsp; 그렇다면 남북관계는 지난 십 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페이스로 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북한은 여전히 조선노동당의 힘센 사람들과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군부의 세력이 축을 이루고 있고,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이 두 세력에 어떤 위치인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을 것인지는 전혀 검증할 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이 모든 가능성은 모두 열려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남북 모두에서 서로의 관계는 여전히 ‘이용물’이나 ‘화장질의 도구’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추세라면 정말이지 미래를 염두에 둔 ‘기획력이 있는 핫라인’은 앞으로도 구성되기 쉽지 않다고 본다.</p>
<p>더군다나 MB정부는 이른바 ‘집토끼’로 관리하는 뉴라이트 집단을 비롯한 보수세력이 존재한다. 그들의 입김으로만 본다면, 이 정권이 온전하게 남북문제를 풀어갈 소지는 아예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정은 물론 MB 자신의 몫이지만, 구성 자체로만 본다면 전혀 할 준비도, 환경도 없는 것이 서울이고 평양이다.</p>
<h3>10. 북한식 실리주의 실체를 보지 않으면 정세판단은 금물이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0" title="toc_10" class="anchor" id="toc_10">#</a></sup></h3>
<p>적어도 향후 십 년의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십 년 자리잡은 키워드를 찾아봐야 한다. 90년대 말과 21세기 초의 한반도 상황에서 벌어진 일은 고스란히 지금뿐만 아니라 다음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 속에 해답이 있을지도 모른다.</p>
<p>‘실리주의’</p>
<p>이 단어가 가진 함의(含意)를 떠나 너무나도 많은 곳에서 이 용어는 사용되고 있다. ‘경제사업에서의 실리주의 구현’, ‘군대에서의 실리주의 창출’, ‘교육에 있어서의 실리주의’, ‘대외정책의 실리주의’ 등 오늘의 북한에서 이 단어는 거의 무소불위의 단어에 속한다. 과연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p>
<p>선군정치는 선군 이데올로기 하나만으로 성립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른바 실리사회주의와의 결합을 시도한다. 이것이 사실상 1998년 이후 김정일 시대의 통치 이데올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두 가지의 파생물이 생겨난다. 선군실리주의와 선군실리사회주의라는 것이다. 이 둘 간의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오늘 북한 사회의 선군정치가 우선인가 아니면 선군실리사회주의가 기본인가 하는 당과 군 간의 알력의 시발점이기도 하다.</p>
<p>사회적으로 북한에서의 실리주의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 근거한다. 그래서 ‘집단주의에 입각한 실리주의’는 때로 아주 강력하게 ‘개별주의’를 비난하는 도구가 된다. 즉, ‘실리주의=자본주의’라는 개념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p>
<p>이것은 실리주의와 유사어로 사용되는 공리주의(功利主義)가 사회적 복지구현(밀)인가 아니면 개인의 행복추구(벤담)인가 하는 논란과도 다르다. 여기에는 ‘사회의 필요와 실익에 반하는’ 가운데 개인이 존재한다는 특수성이 가미되고, 그 자리에 선군실리와 사회주의라는 개념이 추가된다. 그래서 듣기에 꽤나 복잡하다.</p>
<p>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보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를테면 교육 실리주의는 범인보다는 수재의 양성을 통해 국가가 일거에 도약을 할 계기를 만드는 정책으로 지향되고, 경제실리주의는 “사람들의 경제적 요구와 이익을 중심에 놓고 제시된 독창적 사상”(로동신문 2001.7.1)으로 포장된다. 2002.7.1 경제관리개선조치로 일정 부분 시장경제요소를 도입했던 당시만 하더라도 실리주의는 ‘신사고’라는 요소와 결합을 했다. 젊은 세대들을 창조적이고 혁신적이 되어야 하고, 그런 인재가 되도록 만들어 이를 통해 경제실리주의를 달성한다는 지향점이기도 했다. 생산 건설현장에서의 실리주의는 사업성과였고, 상점 식당 공장 농장 등에서는 일한만큼 ‘분배’를 하는 것이 실리주의 핵심으로 인정되었다.</p>
<p>그래도 역시 복잡하다.<br />
그래서 나온 말이 바로 ‘평양식 실리주의=돈’이라는 개념이다. 실리주의를 달성하는 과제, 도구는 모두 ‘돈’이다. 그것도 사회와 개인에게 필요한 실익을 보장하는 표상에 해당한다. 그래서 금전만능주의와 버금가는 변형된 ‘자본주의 황색바람’이 지난 십 년 평양을 휩쓸었다. 돈 없이는 되는 것이 없고, 돈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실리주의=현실주의’라는 개념이 정착되기도 했다. 이 사회 증상은 쉽게 해소될 수 없을 정도로 고착화되어 왔다.</p>
<p>이것은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변용과 개념결합을 한다. 체제안전이라는 굵직한 축을 놓고 거기에 다시 실리주의가 붙는다. 영변 핵시설 냉각탑의 폭파에도 비용을 청구하는 북한식 실리주의가 그들 내부에서는 빛을 발한다. 그것은 차라리 뛰어난 장사꾼의 기질을 보여주었다는 걸로 평가되어야 옳다.</p>
<p>혹자는 지금의 남북한 관계가 김정일의 실리주의와 MB의 개방적 실용주의가 충돌하는 과정이라고 평가하지만 이것은 본질과는 조금 다르다. 실리주의 자체의 정의에서 대남관계는 단순히 개념적 정의에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는 그들이 지켜야 하는 보수성향이 동반된다. 실용주의와는 또 다른 갈등이 만들어지는 곳이 있다. 바로 거기에 체제라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p>
<p>그렇지만 이 실리주의는 지금 평양에서는 철저한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변해져 있다. 이것은 보다 발전해서 개인과 자기 집단의 이익추구라는 관점으로 변이했고,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주변의 누가 뭐라고 하건 간에 ‘일단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철저한 정신적 고립이 심화되었다. 이 현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즉, 뭔가 새롭게 해보겠다고 ‘씩씩대며’ 뛰어 다니는 사람보다는 주변을 살피면서 조용히 자기 이익을 찾아가는 개인주의와 보신주의를 심화시킨다.</p>
<p>바로 한 사회 내의 역동성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자본주의 체계에서의 경쟁과는 다른 개념이다. 실리주의에서의 경쟁이란 곧 체제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개인의 움직임이고, 나아가 그 체제에서 자유로움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다른 변수들에 의해 제한 받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두 가지 현상이 드러났다. 첫째, 돈이 만능이란 인식. 둘째, 생존을 위한 체제내부의 줄대기다.</p>
<p>현재 북한 사회 내부의 연줄잡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작년 말 이후 시행된 각 기관, 사업소, 고급간부에 대한 전면적인 검열작업의 결과로만 본다면 ‘사회 내에 썩지 않은 곳은 없을 정도’로 부패가 만연해 있다. 이는 일상적 부정부패와는 다르다. 이 바탕에 그들만의 실리주의를 해석했던 시각이 존재한다.</p>
<p>이런 상태에서는 차라리 ‘민족’을 운운하는 한반도 전체의 역사성을 말하는 것도 사치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물론 그것을 준비해야 하는 특수한 부서라 해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봐서는 그런 일을 제대로 해낼만한 곳도 눈에 띄질 않는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상황에 대한 수동적인 처리를 위주로 하고, 그리고 개인에 있어서만 일정 수준의 활동폭이 열려 있는 상태에선 제대로 된 ‘시대 대응’이 어렵다. 그것이 오늘 보고 있는 북한의 모습이기도 하다.</p>
<p>해외의 생활상을 접하고 난 이후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보이지는 않으나 심각한 여파를 형성하는 중이다. 고급 간부의 경우는 자신들의 모습을 거울에 들여다보면서 한숨을 쉰다. 그렇지만 변화는 현 시점에 난망(難望)하다. 사회 체제에서 아직도 이들은 소수이지 다수가 아니다. 돌아가는 시스템이 있으니 갑갑하기만 할 뿐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해서 중국 등지를 맛본 사람들의 소식은 놀랍도록 빠르게 전파된다. 사실상 남한의 문화도 접할 사람들은 이미 접한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침묵하는 소수’가 되는 셈이다. 과연 이들에게 민족이 어떠니 시대가 어떠니 하는 말이 씨가 먹힐 구석이라도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p>
<p>곧잘 해외에서 평양을 방문해서 얻는 정보라는 것, 듣는 말이라는 것은 훈련된 사람의 제한된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들이 민심을 대변하지 않으며 또한 그들이 정책의 결정자가 되지도 않는다. 드러난 1인자가 아닌 2인자 시스템으로 움직여온 북한이란 사회의 현상은 확실히 다른 국가와는 차별화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p>
<p>여기에 실리주의가 보태진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인간군상, 집단의식, 그리고 사회국가의 체계가 왜곡된 형태로 자리잡은 모습이 있다. 신사고가 먹혀들 틈이 없다. 이른바 ‘한 건주의’가 만연하게 된 계기다. 장기적인 계획에 입각한 삶이 존재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운 판이 이어진다.</p>
<p>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부의 이런 요동에 대해 권력 상층부의 시각은 매우 단호할 정도로 비정(非情)하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경제적 빈곤은 곧잘 군사적 자위력 구비와 상대되는 개념이 되면서 취사선택을 하는 경향성이 나타난다. 소위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백만이 굶어 죽어도 ‘어쩔 수 없는’(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관념이다. 그러므로 ‘결사옹위’는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는 개념으로 작용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악화가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그나마 이를 견지하던 엘리트 세력들이 많이 흔들리고 이반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것은 대외로 표출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선택한 것이 바로 선군정치라는 말이 적절하다. 전시가 아닌 평시에 군대의 역할이 사회 속에 침투되면서 양자택일의 선택 가운데 후자 즉, 선군실리주의가 선택된다. 국가와 체제로 봐서는 이것이 바로 경제이고 이익이었다.</p>
<p>그렇지만 이것도 장기화되면서 많은 폐해들이 드러나고 있다. 외부적 시각에서는 이 상황은 최악이다. 내부적 관점에서조차 이 상황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고, 그 와중에 연로해져 가며 병증이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상태가 있다. 이 시기는 그러므로 ‘조선식 실리주의’가 인민들에게 ‘그것이구나’라고 전달되지 않는다면 향후 아주 빠른 시간 내 강력한 불만세력을 양산하고 파급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바로 실리주의라는 단어가 준 반대급부이기도 하고, 나아가 실리주의가 가진 함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상태이기 때문에 선군정치, 실리주의라는 두 축 가운데서도 ‘개혁과 개방’이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되었던 것이다.</p>
<h3>11. 중국, 정말 북한과의 전쟁까지 생각했었나?<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1" title="toc_11" class="anchor" id="toc_11">#</a></sup></h3>
<p>눈을 돌려 중국을 집중적으로 봐야 할 때가 왔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현미경보다 더 정밀한 눈이 필요하다.<br />
6자 회담이라는 틀 속에서 실제로 자웅을 겨룬 것은 북한이 아니었다. 바로 미국-중국 간에 동북아시아와 한반도를 건 혈투가 벌어졌던 것이 바로 지난 십 년이다. 그 중에서도 중국은 애매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중립 실용주의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견지했다. 냉전 시기 동맹관계와는 확실히 다른 각도에서 취급되었다.</p>
<p>2005년경부터 북한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던 중국은 끊임없이 북한 내부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2006년 초 이른바 북중간의 정보전쟁이 터진다. 2003년 이후 3년 만에 야기된 사건화였다. 세간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북중 간에 벌어질 앞으로의 알력과 갈등이 결코 혈맹이니 동맹 수준이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벌어질 것을 예고한 한 판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바로 북한의 핵실험이 이어진다. 실험 30분 전에야 중국으로 통지된 이 행위에 대해 중국 내 반북정서는 극에 달했다. 그 때를 겪으면서 나온 책인 ‘중국의 대북조선 기밀파일’은 국제정치란 비정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걸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목차만 보자.</p>
<blockquote>
<p>중국의 대북조선 기밀파일 목차</p>
<ol>
<li>
<p>말해야 될 때를 맞이한 중국의 북조선 문제</p>
<ol>
<li>기조정책의 실패</li>
<li>겨우 &#8217;30분 전 통고&#8217;의 뒷무대</li>
<li>중국의 뒷마당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li>
<li>2006년 여름 이후의 균열</li>
<li>대북정책, 중국은 대국외교의 야망을 이룰 것인가</li>
<li>김일성, 김정일 부자와 중국 지도자들의 갈등</li>
<li>김일성에게도 큰 빚이 생겼다.</li>
</ol>
</li>
<li>
<p>북조선의 범죄천국, 중국 대륙</p>
<ol>
<li>3대 마약기지</li>
<li>중국, 북조선 위조지폐로 가장 피해를 보는 나라</li>
<li>진짜보다 더 잘 팔리는 &#8216;짝퉁&#8217;, 코리아타운의 가짜 담배</li>
<li>북조선은 최고 물건이 아니면 모방하지 않는다</li>
<li>국경에서의 범죄</li>
<li>탈북자의 어제와 오늘</li>
</ol>
</li>
<li>
<p>중국의 대북 외교정책의 구조</p>
<ol>
<li>당과 국가, 각각의 대북 외교</li>
<li>북조선에 &#8216;아니다&#8217;라고 말하는 외교부</li>
<li>10대 싱크탱크의 힘</li>
</ol>
</li>
<li>
<p>김정일 정권은 왜 붕괴하지 않는가?</p>
<ol>
<li>정권은 총구에서 나온다</li>
<li>정권 안정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li>
<li>김정일 정권의 지배명언록</li>
<li>정권 안정의 근본은 후계자 문제</li>
<li>중국의 경제원조와 중조무역이 김정일 정권을 지탱하고 있다</li>
</ol>
</li>
<li>
<p>영원히 신용할 수 없는 &#8216;고려 몽둥이&#8217;</p>
<ol>
<li>김정일을 바보 취급하는 자야말로 바보이다</li>
<li>지금부터 중국과 북조선의 전쟁에 대비하자</li>
<li>친북반미냐 친미원북이냐</li>
<li>어떤 중미관계, 중북관계가 중국의 국익에 기여하는가</li>
<li>한국인의 &#8216;탈중국화&#8217;야말로 위험하다</li>
<li>영원한 적, 일본인과 조선인</li>
</ol>
</li>
</ol>
</blockquote>
<p>목차만 봐도 충분히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를 알 수 있을 정도다. ‘고려 몽둥이’는 우리가 ‘뙈놈’하는 식으로 중국인을 폄하하듯 하는 ‘고려놈’이라는 말이다. ‘몽둥이’는 아니다. 일본책을 번역하다 보니 생긴 오류로 보인다.</p>
<p>이 책은 중요한 세 가지 관점을 제공해준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북중관계가 중국 외교에서 장애요인이 된다는 시각이다.</li>
<li>둘째, 북한의 정권 안정이 군부중심으로 진행된다는 판단이다.</li>
<li>셋째, 김정일에 대한 폄하보다는 경원시하는 시각이 존재하며, 뒷마당에 불이 붙었기에 전쟁도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는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다는 사실이다.</li>
</ul>
<p>실제 이 시점에서 중국은 발해만과 동북의 3개 군구(베이징 군구, 선양 군구, 지난 군구)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돌발사태 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시기, 다른 쪽에서는 중국이 북한 내 친중정권의 수립을 기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흘리기도 했다. 그를 통해 중국이 배후에 있는 조선노동당 독재체제를 연장하는 방식을 진행하며, 이를 위해 중국으로 탈북한 북측 고위군부 인사들과도 교류한다는 것이었다.</p>
<p>당연히 북한의 혼란에 중국이 손을 놓고 있을 리는 없다. 그 방식은 ‘전략적 협력관계’의 틀을 유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1961.7.11 체결된 중조우호조약은 분명히 북한 내 급변사태와 준전시 상태에서 자동개입의 길을 열어두고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런 프로그램의 존재는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p>
<p>북한 문제에 있어 중국 지도부의 생각과 브레인 간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진타오 체제가 들어선 지난 5년 여 동안 세 가지의 전례 없던 상황이 벌어졌다. 우선 전략적인 불신이 팽배해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히 북중 문제가 아니라 중국이 외교적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중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즉, 국익의 소재를 따지다 보니 그간의 대북정책이 걸림돌이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 단순히 북한 일방의 문제는 아니었다. 북한 문제가 사실상 이런 관점에서는 일정 수준의 레버리지가 된 부분도 있다.</p>
<p>또 한 가지는 지도부간의 이 상황에 대한 의견불일치가 자주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존심과도 통한다. 김정일-후진타오가 가진 개인적 갈등도 한 몫을 한다. 그 속에는 복잡한 중국 정치계 내부의 알력도 있고,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공동의 항일전선을 펴왔던 중국 공산당과 조선 노동당 간의 연대감도 이 갈등에서는 여전히 주연급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핵실험 같은 상황은 곧장 ‘균열 상황이다’는 공감대를 형성시켜 버렸다. 개인의 갈등이 묻힌 때였다.</p>
<p>여기에서 중공당이 추구하는-중국은 여전히 중공(中共)의 나라다-사상적 수정 단계는 북한으로써는 여전히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발생한다. 개혁 개방이 아닌 실리주의 노선이라고 말할 정도로 1978년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가속화되는 단계마다 북한은 그를 추종하기 보다는 원거리에서 다른 시각과 정책을 유지하려고 했다. 시장경제를 도입한 중국의 체제를 북한이 받아들이는 것은 곧 중국 경제에 편입된다는 걸 의미했다. 이른바 위엔화(元貨) 경제권으로 들어간 북한이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유지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것이 표면적으로는 사상적 차이와 갈등으로 드러났을 뿐이었다.</p>
<p>“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마오쩌둥의 유명한 말이다. 그것이 지금 북한을 평가 하는 데 사용된다. 중국의 권력 또한 여전히 총구중심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사회 다양성의 확보로 총구 이외의 축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현재의 북한을 중국은 과거 중국이 그랬듯이 철저하게 총구중심으로 읽고 있다. 이 분석은 2000년 이후 외교분야이건 혹은 당 산하 연구소, 국방연구소 등에서 거의 대동소이하게 나왔다. 선군정치에 대한 평가와도 통하고 그것이 발전되어 가는 과정까지 보면서 최종 결론을 그렇게 내리는 셈이다.</p>
<p>그렇지만 실제 북한은 선군정치에서 군 우위를 지탱하면서도 노동당 지배체제를 잃었던 적은 없었다. 상대적으로 중국도 조선 노동당과의 긴밀한 유대감의 형성에서는 지난 일정 시간 동안 실패한 것은 아닌가 추측될 수 있다. 군부에 대해서는 각별한 신경을 기울여왔다. 하다 못해 군부의 어떤 인사가 중국으로 나와도 그에게는 수준 이상의 대우를 해준다. 그러나 노동당의 ‘은밀’(隱密)을 기본으로 하는 브레인들은 여전히 중국과의 교류마저도 제한적이다. 이 점에서 유난히 북한에 대해 ‘총구 경계론’이 확산되는 감도 없지 않다.</p>
<p>이것은 발전된 개념으로 이어지면서 ‘중국과 북조선의 전쟁에 대비하자’는 몹시 자극적인 결론으로까지 이어진다. 충동적이기까지 한 이 구호 같은 주장은 북한 내부에서 적어도 중국과의 일정한 담합보다는 견제심리가 더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즉, 최소한 양측의 관계는 팽팽하다는 것이다. 완전한 신뢰가 담보될 상태는 아니다.</p>
<p>중국은 냉전 이후 세 가지 스탠스를 보였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원칙에 입각한 지원이다. 이것은 북한의 표현대로라면 ‘죽지 않을 만큼’ 의 지원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북한입장에서는 역할이 컸다. 중국은 이를 관리 차원에서 했지만 그 정도가 결코 대폭적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약속은 있었지만 실행된 전례가 없다는 의미다.</li>
<li>둘째, 시장원리의 적용이다. 소련, 동유럽 공산주의가 변혁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중국도 변신을 했다. 그러므로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경제협력 분야에서는 철저한 원칙이 적용되었다. 물론 백 퍼센트 시장경제 방식은 아니었다. 지방정부에 의한 일정 수준의 우대도 적용했고, 그 숨구멍도 열어 주며 관리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시장경제원리를 적용한 거래원칙을 고수했다.</li>
<li>셋째, 핵실험 전후 중국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북한의 핵개발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것은 태평양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로 오는 위협이라는 시각이 급속하게 늘어났다. 당연히 반대입장을 견지한다. 그것이 통하지 않을 경우에는 고립시키는 것까지도 감안했지만 그것은 다른 변수들에 의해 번번히 좌절된다. 그리고 마침내 핵실험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중국은 6.25전쟁 당시를 상기하게 된다. 중국과 북한은 쌍무적 직접 군사관계라기 보다는 당시 소련, 중국, 북한의 삼각 관계 하에서 이루어진 관계였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 북한과의 전쟁 대비론은 그런 경로를 거쳐 나온 셈이다.</li>
</ul>
<p>이 즈음에서는 중국의 선택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중국은 북한 붕괴에 따른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각도는 세 방향이다.</p>
<ul class="checkListType">
<li>하나는 친중파를 중심으로 한 개인 혹은 집단의 구성이 가능한가를 탐색한다. 이것이 최선의 대응책이다.</li>
<li>다음으로 새로운 지도 체계와 중국 간의 긴밀성 유지다.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은 안 된다는 공감대가 중국 정치 지도층에는 광범위하게 깔린 인식이다.</li>
<li>그러나 돌발사건 또한 배제하지 않는다. 그 경우의 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중국은 앞으로도 북한을 경원시하기 보다는 더 철저하게 마크하는 방향으로 들어갈 것이다.</li>
</ul>
<p>2009년이 ‘중북 우호의 해’로 정해졌다. 중국 인민대외우호협회 펑저쿠(馮佐庫)가 중국 베이징에서 지난 9월 5일 있었던 북한 정권수립 60돌 기념식에서 했던 발언이다. 내년이 북중 외교수립 60주년이다. 역시 변화가 많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더욱 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는 중국 지도부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중국 내의 반북정서는 이제 현장주의로 바뀌는 추세다.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보고서가 나오고 있는 시즌이고, 그 타당성에 맞춘 준비들이 속속 진행 중이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하지 않는다. 준비하고 조용히 실행하는 데 있어 중국만큼 발이 빠른 곳이 없다고 여겨질 정도로 중국은 ‘만만디’가 결코 아니다.</p>
<h3>12. 조만간 맞이할 MB정부의 남북관계 핵겨울<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2" title="toc_12" class="anchor" id="toc_12">#</a></sup></h3>
<p>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보자.<br />
MB정부에서 과연 대북정책은 어떤 형식을 거쳐 완성되고 있는가를 봐야 할 때다. 한 마디로 심각하다. 그것은 단순히 대북정책 자체가 후순위로 가 있는 상황 때문이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이 분위기 자체를 일견하기에도 읽지 못하거나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듯한 기색이 역력하다는 우려로부터 출발된다.</p>
<p>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이 9월 23일 서울대 통일연구소 통일정책포럼에서 한 발언은 그 자체가 바로 MB정부의 속내라고 할 수 있다.</p>
<p>“(김정일이 건강이상으로) 오래가지 못할 것”이며 “(북한은)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잘못된 정권이어서 아무리 대화해봐야 소용이 없고, 대화를 최고선으로 생각하는 대북정책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통일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도 했다.</p>
<p>MB는 22일 민주평통 개회사에서 다시 ‘전면적 대화’를 제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전례만 본다면 이것은 일종의 제스처에 불과하다. 그에게는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겉치레는 지난 2월 25일 취임식 이후 일관되었다.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후 순위이고 하고 싶지 않으며, 지금 그보다 급한 일이 더 많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근시안적이기도 하고, 너무 목적성이 뚜렷하기도 하다.</p>
<p>이 현상을 자세히 살펴보자.<br />
김영삼 정권 시기 김일성 주석의 사망은 곧 바로 세 가지의 경향을 불렀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북한 패망론.</li>
<li>둘째, 대화 무용론.</li>
<li>셋째, 통일 가시화론이다.</li>
</ul>
<p>지금과 똑 같은 현상이다. 물론 당시 이 세 가지 인식에는 근거가 있었다. 상중통치 상황에서 북한을 들여다볼 잣대 자체가 형성되지 않을 정도로 안개 속을 헤매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어떻게 이야기한다고 해도 문제가 없이 보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 약 2백만에 달하는 아사자가 나오고서야 겨우 ‘선군정치’ 구호가 등장하면서 이 사태는 약간 진정국면으로 갔다. 그제서야 남북한 간에 다시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형식이 갖추어진다.</p>
<p>왜 서재진은 이 시점에 저러한 민감한 반응을 주저하지 않고 했을까? 그는 이미 학자를 포기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친MB정권으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대북정책의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한 전례가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통일연구원이라는 국책연구조직의 대표가 되었다. 그의 말이 곧 정권이 보는 대북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딱 시계추를 14년 이전으로 돌려서 1994년 하반기와 똑같은 발언을 했다.</p>
<p>MB의 대북정책 원칙은 대통령직 인수위 당시 통일부 폐지론으로부터 출발한다. 박재완 당시 정부혁신 규제개혁 TF팀장은 이렇게 말했다.</p>
<blockquote>
<p>“외교정책과 통일정책은 매우 밀접하다. 통일정책을 더 잘 수행하기 위해 외교부와 함께 가는 것이다.”</p>
</blockquote>
<p>이것은 다시 이렇게 발전한다.</p>
<blockquote>
<p>“대북정책은 대외정책의 틀 속에서 조율해 일관성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p>
</blockquote>
<p>일관성과 시너지를 위해 대북정책 자체를 외교(外交)라는 틀 속으로 넣는 것을 바란다는 것이 핵심이다. 거기에서 한국이 그나마 일관되게 유지했던 민족문제로서의 대북문제 접근이라는 원칙이 완전히 무너진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그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통일부를 없애려는 모습이 단순히 정부조직개편으로 비춰지지는 않았던 것이다.</p>
<p>박재완은 정무수석에서 국정기획수석으로 살아남았다. 초창기 MB에게 대북정책에 대해 조언하던 김병국, 곽승준 등은 정권 반 년도 안되어 경질되었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그의 시각이 MB에게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p>
<p>한나라당 시절 그는 국감에서 미 의회조사국(CRS) 자료를 인용하며 “북한은 연간 10억 달러 규모의 위폐, 마약 등 범죄적 거래로 5억 달러의 수익을 얻고 있다”, “우리가 준 비료로 양귀비를 재배하여 마약 장사한 돈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즉, 그의 관점에서 북한은 미국식의 ‘불량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방식(초창기 부시 행정부처럼)으로 북한을 강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렸다.</p>
<p>바로 이 생각으로부터 MB의 이른바 4원칙이 나왔다. “핵폐기 진전, 대북사업의 타당성, 재정부담 능력, 국민적 합의”라는 것이다. 바로 ‘비핵개방3000’이라는 각론은 없이 총론만 있는 로드맵은 이렇게 탄생했다.</p>
<p>2008.9.1 MB의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는 그의 대북 인식이 여전하고 그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p>
<p>“따뜻하면 (북한이) 옷을 벗어야 하는데 옷을 벗지는 않고 옷을 벗기려는 사람(남한)이 옷을 벗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약간의 비꼬움이 포함된 농담 같은 진담이었다. 그의 인식에서 북한은 일단 외교의 대상이지 내교(內交)의 당사자로는 와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선언적인 대북 대화제의는 모두 ‘거짓’이 된다.</p>
<p>최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의 신임 수석부의장으로 이기택이 선임되었다. 민주평통의 역할이 커질 조짐이다. 단순한 자문역에 그치는 정도는 아닐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MB-이기택 간의 정치적 교감이 ‘대북문제’로 옮아간다는 데서 비롯된다. 이기택의 관점도 MB와 유사하다. “(햇볕정책이) 성공하면 좋지만 계속 냉각기가 이어지면 햇볕정책에도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과거에 대한 평가와 현재가 어우러져 있다. 즉, 이것은 ‘북한이 먼저 변해라’는 메시지에 해당한다.</p>
<p>기획자가 누구이건 간에 비핵개방3000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MB정권은 자신들이 일단 ‘민족이란 이름으로 북한을 품어주거나 보듬는 경우는 없다’는 걸 분명히 했다. 나머지는 겉치레에 불과하다. 이 현상을 아마도 분석가들이 잘 설명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거기에 이 정권의 ‘금기어’가 들어가 있다. 단순히 그가 박정희를 흉내 내어 북한과의 지도자적 관점에서 경쟁을 벌이는 것이라고 보기에도 어색하다. 그래서 나온 ‘기싸움’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른바 ‘코리아 리스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까지 감안한다면 악수(惡手)라는 건 명백하다.</p>
<p>무엇을 진짜 목적으로 하는가?<br />
뉴라이트 집단의 ‘광기(狂氣)’가 이제는 좌편향이라는 이유로 중고등학생들의 역사교과서 수정이라는 단계까지 이른다. 그들은 ‘(지난 십 년간)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이다’라는 논리를 앞세운다.<br />
가만히 보면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두 세력 간의 다툼이 있고, 엉뚱하게도 한 세력의 엉성한 관전이 존재한다. 바로 친일매국세력과 국가주의에 입각한 민족세력이다. 관전자는 엉뚱하게도 한국 내에 그나마 유지되던 친일도 싫지만 친북도 싫어하는 중간세력이다. 이들-사실상 한국의 ‘참보수’가-이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친일매국세력의 준동(蠢動)을 지켜보고만 있다. 그들이 정권이며, 정권비호세력이라는 사실 때문에, 또한 공권력의 위세에 눌리거나 아니면 무관심과 안일함 때문에 강력한 집단적 저항까지 이르지 못한다. 그만큼 공안정국, 신 메카시즘의 바람이 거세다는 걸 입증한다.</p>
<p>MB는 스스로 지지기반을 친일매국세력을 중심으로 반공보수, 개신교 지지세력, 지역세력, 지난 십 년의 소외세력 등을 묶고자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교류협력은 후순위가 될 수밖에 없는 정치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다양한 이론을 양산하면서도 정치적인 대화 제스처는 펴지만 본질적인 정책적 개편은 손대지 않는다.</p>
<p>이를 바탕으로 ‘김정일 와병설’을 강력하게 흘리면서 북한 패망론, 대화무용론, 통일 가시화론이라는 세 가지 방향의 논의까지 만들어내는 중이다. 한 마디로 대화를 하기 보다는 국내의 세력부터 다지겠다는 전략인 셈이다.</p>
<p>이 상태에서 한반도 문제를 선 순위로 다루는 적극적 행위를 기대하기 어렵다. 목적이 국내로 제한되어 있고 또한 친일세력과의 결탁 구도가 치밀하게 형성된 상태에서 심지어 일본우익의 ‘반북 개념’까지 그대로 옮겨 오려는 상황에서 굳이 ‘민족문제’라는 관점이 아닌 외교적 입장에서도 대북문제는 단기적으로는 철저히 ‘(한 걸음도)나아가서는 안될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p>
<p>이 목적성은 행동으로 교묘하게 이어진다. 그래서 각론이 나올 수 없는 구도가 형성된다.&nbsp; 당연히 한반도 문제에 있어 한국의 입지 자체를 위축시키게 될 것은 뻔하다. 이 바탕 아래 외교적인 제스처가 유별나게 증가하지만 그 속내가 빤하다 보니 더 이상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고 본다. 이런 한국의 모습을 미국이나 중국, 일본 등은 각각 국익에 맞추어서 분석하고 대응한다. 그 결과는 뻔하다. 한국은 더 이상 한반도의 직접 개입 가능한 당사자의 지위를 포기하는 중이고 지속될 경우, MB정권 내내 한반도 문제에서 남북한이라는 양자관계는 쌍무적인 것으로 발전하기는커녕 꽁꽁 얼어붙는 드라이 아이스로 덮인 핵겨울을 맞을 것이다.</p>
<p>2008.9.25 북측 군부가 남측에 군사실무회담 제의를 했다. 남한은 이를 받아들이기는 해야하지만 북측이 정한 9월30일이 아닌 10월초로 바꾸고자 한다. 제안 배경을 두고 설이 분분하다.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만 그 내용은 간단하다. “합의된 내용을 토의하자”는 것이다. 국방부가 꽤나 곤혹스런 자리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 그 또한 살벌한 논쟁의 자리가 되고, MB정부 첫 남북 당국자 대화는 그렇게 끝맺음을 할 듯하다.</p>
<h3>13. 북핵은 여전히 유효한 정권유지의 보루로 작동한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3" title="toc_13" class="anchor" id="toc_13">#</a></sup></h3>
<p>9월 중순을 벗어나면서 세계는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평양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중이다. 하나는 핵 시설 재 가동을 목표로 해서 서서히 움직이는 북한에 대한 평가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과연 ‘김정일 와병설’의 진상과 그 이후가 어떻게 될 것인가 분분한 예측으로 들어간다.</p>
<p>미국은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날리지만 이것은 금융위기가 현실로 터지면서 지독스런 ‘모럴 헤저드’ 논란에 휩싸인 미국 내 사정으로 조용히 묻히는 기색이다. 물론 어느 정도 진정이 된다면 대선 국면에서 강력한 군사적인 마지막 행동을 구사할 수도 있겠지만 쉽게 논란이 가라앉거나 혹은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북미간 대화가 중심이 된 6자 회담은 이로써 미국의 다음 대통령과 정부에게로 넘어간다고 보여진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버락 오바마는 집권하게 되면 ‘김정일과 만나겠다’고 발언하고 존 매케인은 이를 ‘철없는 생각’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역시 문제가 넘어가는 중임을 볼 수 있다.</p>
<p>그렇다면 이제 ‘와병설’의 진위와 추이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진다.</p>
<p>과연 김정일 위원장의 병증은 어느 수준일까? 이것을 읽지 않고 앞으로의 예측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왜냐하면 이것은 향후 1년 이내, 1~3년, 4~5년, 6~10년, 그 이상이란 예측시기 설정을 통해 북한의 변화 방향을 읽는 일종의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그와 북한에 대해서는 많은 책과 정보가 나와 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바로 ‘최근’이고 현상이다. 뉴스위크가 ‘김정일 드라마’에 대한 경고 신호를 보낸 것처럼, ‘악재’를 이용한 각국의 정치적 활용 이후 나타나게 될 후과도 만만치가 않다. 서울에서는 최근 서재진의 발언이 있었지만, 이 또한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는 것은 위에서 밝힌 바와 같다.</p>
<p>정말 심각한가? 그렇다.<br />
여기로부터 출발하는 게 옳다. 2006년 핵 실험을 시행하던 그 때 이후 그의 건강이상을 떠나 북한 내에서의 보고 체계는 묘하게 바뀌었다. 직접 보고보다는 간접보고의 형식이 많아졌고, 하부에서 그의 권한이 위임되어 형식적으로는 그의 이름으로 발표되더라도 실제로는 그가 서명하지 않은 내용들이 북한 내에 ‘지시와 방침’으로 흘러갔다. 그러니까 당시부터 이미 위임체계가 구성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의 바탕이 바로 건강이었음은 확실하다. 정신건강이나 육체적인 노화도 한 몫을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정신적인 것인데, 이것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권력 내부의 갈등 현상에 대해 ‘꼴 보기 싫어하는’ 기피심리다.</p>
<p>오히려 이 시기 그는 자신의 집권기간 동안 군의 전 부대를 시찰하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주력한다. 오히려 내부적인 일은 ‘아래’에서 알아서 처리토록 권한위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 시기부터 그는 두 가지 관점에 주력한다. 하나는 바로 대미문제, 대중문제를 포함한 대외문제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군사적인 역량구비다. 그의 취미와 기호에 맞는 예술활동은 별개의 문제다.</p>
<p>실제로 대남 관계나 문제들, 심지어는 북한 사회 내부의 다양한 통제에 이르기까지 하부로 적절한 수준의 위임이 내려졌다. 이를테면 장성택이 다시 등장하고 검찰, 보위부, 인민보안성까지 통제하는 당 행정부장의 직위를 맡긴 것, 국방위원회를 상설기구화 하면서 군부 통제력을 강화한 사실, 당 조직지도부의 역할을 강화하여 당내 일정 수준의 시스템 역량을 구비시킨 사실, 서기실을 중심으로 한 보고와 통제 기능 자체에 명확한 위임이 떨어진 것, 대남 관계에 있어 통전부의 체제를 통한 지속 관리 개념이 도입되었던 사실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중요한 일은 당연히 보고 되지만, 그것을 구분하는 ‘보고 가치’라는 점에서 모든 것을 통제코자 하는 데서 조금 느슨해졌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업무량을 대폭 줄인 이유는 간단하다.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p>
<p>2007년에 들어 이 현상은 더 심화되어 간다. 급기야 치료를 위한 모르핀(morphine)의 투약이 진행된다. 모르핀은 아편의 주성분이 되는 알카로이드로 마약, 독약류에 포함되지만 마취제나 진통제의 형태로 중독 증상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사용될 수 있다. 물론 급성 중독까지 이르게 되면 이것 자체가 호흡중추 마비를 일으키지만 의학 약학적 처방에 의해 치료용으로도 사용된다.</p>
<p>투약의 흔적을 감추려고 애썼지만 외국측에서 그를 진료한 적이 있는 의사들은 그의 모르핀 사용을 안진(眼診) 혹은 혈액검사 등으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심혈관이나 뇌경색 수술 등을 거치면서 그것이 경미하거나 심각하건 간에 일단은 병행하기 어려운 수술과정을 거쳤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모르핀 사용이 추천되는 계기가 마련되어 버렸다.</p>
<p>2007년 10월 2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전날 비친 그의 모습이 바로 대표적이다. 그는 다음날 자신이 중병이 없다고 특유의 화법으로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가 그런 병의 치료를 위해 다른 방식의 치료법을 도입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의 휴식시간이 과거에 비해 아주 늘어났음을 확인해주는 몇 마디의 쿼터들이 더 중요하게 취급되었다.</p>
<p>최근까지 그의 증상에 대해서는 심근경색, 뇌 경색,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등 여러 갈래로 이야기 되어 왔지만 이번 ‘와병설’의 경우는 국정원이 발표한 ‘호흡기 질환의 일종’이라는 것과 미국측에서 밝힌 ‘뇌졸중’(strock)이 있고, 지난 5월과 8월에 걸쳐 뇌수술을 했다는 흔적 수준이 전부다. 이들 병증은 모두 일관된 흐름을 가진다. 즉, 노화와 혈전(어혈)에 따른 혈액 신경계통의 병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깊어지면 나타날 수 있는 병이고, 그래서 누구라도 함부로 한 치 앞을 장담하기 어려운 관찰과 간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p>
<p>이 점에서 2008년에 들어 있었던 한 가지 병증의 사례는 그의 건강상태를 잘 말해준다. 즉, 앉은 채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대로 혼절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피로의 흔적이 아니라 작거나 큰 스트록(쇼크)이 불시에 끊임없이 온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장기화될 경우는 다양한 병증들이 파생된다. 노인성 치매(癡呆)는 대표적 증상에 속한다. 노화에 의해 기억력, 이해력이 저하되고 비이성적 행동으로까지 이어진다. 대뇌신경세포의 손상 등으로 인해 지능, 의지, 기억 따위가 제한적으로 기능하면서 지속적, 본질적으로 상실되는 경우다.</p>
<p>9월 중순 김정남이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나와서 했던 말이 바로 그런 유형을 말해준다. “세월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노화를 말하고, 그로 인한 여러 신체적 변화가 있음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셈이다.</p>
<p>그러나 위의 사례는 아주 본질적인 상황을 전달하고 있다. 그가 현재 모르핀을 투약하는 중이며, 단기적인 스트록이 자주 오는 상황이고, 여러 합병증상까지 포함해서 대폭적으로 활동을 줄이지 않으면 안된 상황이 꽤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다는 점이다. 그 시기는 최근 2년 수준 이내에 해당한다.</p>
<p>상황 속에는 다른 상황도 겹쳐진다. 금년 초 그의 네 번째 처로 알려진 김옥은 여자아이를 출산했다고 한다. 또한 8월 14일 이전까지는 지방 현지지도, 군부대 시찰 등이 작년에 비해 줄었지만 꾸준히 있었다. 이를 감안한다면 하루 혹은 일주일을 단위로 해서 활동 가능한 수준으로 신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분명히 그의 하루 스물 네 시간을 단위로 하는 속에서는 다양한 병증 현상이 일어나는 중임도 알 수 있다. 그 중 부분마비 증상이 온 것이 이번의 경우라고 해석을 한다.</p>
<p>작년 말 이후 여러 사람들을 통해 그의 ‘치매 가능성’에 대한 우려들이 제기되었다. 심지어는 난데없이 ‘저쪽을 폭격해버려!’라는 지시가 내려올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는 상황이 상정된 예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최고 수준의 의료진으로 관리되는 상황에서 그의 이러한 노인성 치매는 다른 병증에 비해 훨씬 심각성은 상대적으로 얕아 보인다.</p>
<p>이번 와병설의 경우, 그 진척상황을 보면 두 가지의 가능성이 존재한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병증이 중추마비 증상으로 왔을 가능성이다. 거동이 불편할 정도라는 것은 스트록(쇼크)에 이은 신경계통의 마비현상이 있었음을 의미하며, 이것이 사실상 현 시점 병증을 진단하는 기준점이 되고 있다. 그래서 9.9절 행사에 나올 것까지도 이야기가 되었고 이에 행사가 오후로 보류된 흔적이 발견된다.</li>
<li>둘째, 나타난 병증으로부터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게 된 경우다. 기 병증은 발발했고 이 상태에서 굳이 자신이 드러나기 보다는 오히려 배후에서 이와 관련한 외부의 논란을 지켜보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경우다. 정신적으로 맑은 상태의 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br />
맨 처음 와병설은 첫 번째 상황이 더 심각하게 번질 경우를 상정해서 터져 나왔지만 이어 두 번째의 상황 가능성에 더 예의주시하는 해외의 분석이 나타났다. 북한의 정책결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단계라는 사실, 비록 최종적 결정이 어떤 형식으로 내려지는 것인가는 모르지만 여하간에 일정 수준의 결정들이 지속된다는 점이 그 분석의 요체다. 물론 긴급한 사안들이 아닌 경우는 보고가 올라가도 해답이 내려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최고급의 결정이 유효하다는 사실이 후자의 가능성을 더 높게 여기게 하는 타이밍이다.</li>
</ul>
<p>아직도 속 모르는 사람이나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경우는-서재진의 경우처럼-무조건 첫 번째를 상정하여 이를 확대 양산하기도 하지만 분명히 이 두 가지는 복합적으로 움직여지는 것이 오늘의 현상이다.</p>
<p>추후 이 병증이 어떤 형식으로 나타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측의 분석에 따른다면 지금은 합병증을 경계할 경우, 그리고 휴식의 시간이 과거에 비해 더 길어지겠지만 그래도 지속적으로 상실되는 신체와 뇌기능 자체를 연장하는 방식이라면, 이 상황은 향후 수 년 혹은 더 이상도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엿보인다. 이 결정이 중요하고 나아가 이것을 통해 병증을 가진 그의 선택이 어떨 것인지에 오히려 초점이 모아져야 하는 국면인 셈이다.</p>
<h3>14. 북한의 그림자 세력, 2인자 그룹<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4" title="toc_14" class="anchor" id="toc_14">#</a></sup></h3>
<p>“북한은 조선노동당 ‘영도’ 하에 선군정치의 국방위원회가 다른 한 축이 되어 운영되는 나라다.” 이렇게 정의 내리면 북한의 오늘을 대략 한 눈에 모두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세세한 부분은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남한에서 북한을 들여다 보는 창구는 매우 좁다. 기껏해야 통일전선부, 그리고 민화협, 그리고 여러 종교연맹이나 소소한 하부기관들이 전부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북한 사회의 메인 축이 아니라 대남용의 쇼 윈도우다.</p>
<p>혹자는 이것을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이렇게 고착화 시킨 것은 지난 십 년 남북한이 편의적인 방식을 채택하면서 그리 된 것일 뿐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북한을 움직이는 이른바 ‘그림자 같은 2인자 그룹’이라는 실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가 있다. 드러나지 않고 국가를 운영하는 체계, 바로 이것이 빨치산 방식으로부터 이어져온 노동당의 전통 같은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남한은 지난 십 년, 왜곡된 북한읽기를 해왔다는 점은 분명 사실이다. 그것을 일부러 조장한 측면도 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때는 아니다. 읽어야 하고, 그리고 알면서 실제로 그에 맞게 접근하지 않으면 남북관계 자체는 더 이상 진척이 없을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p>
<p>그 점에서는 북한 또한 예외가 아니다. 과거와 같이 배우나 꾼들로 대남관계를 ‘다루는 방식’ 수준으로는 본질적인 협력이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물론 MB정권은 현 시점 이마저도 별로 하고픈 입장이 아니게 속내를 보인다. 9.25 여야 영수회담을 통해 MB-정세균 간의 만남에서 대북정책을 당파를 초월해서 하는 것으로 했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닌 것이다. 그 기본이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MB정권 내내 남북한은 서로 다른 방향의 길로 걸어가게 될 공산이다.</p>
<p>2인자의 세계를 읽어보는 것은 이들 이후에도 다시 2인자들은 등장하고, 또한 이들이 아닌 다른 2인자들이 어둠 속에서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다.</p>
<p>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김영춘’이다. 1998년 이후 국방위원회는 사실상 선군정치를 이끌고 왔고 2006년 핵 실험 이후 군의 위치는 매우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이른바 ‘핵 주권’의 문제를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를 통제하는 국방위의 힘은 간과될 수 없다. 그는 2007.4.12자로 군 총참모장을 거쳐 국방위 부위원장이 되었다. 조명록 제1부위원장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이미 연로한 상태에서 업무처리를 할 입장이 못 된다.</p>
<p>인민군 총정치국 작전국장에서 국방위 행정국장이 된 ‘리명수’도 눈여겨 볼 사람이다.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있긴 하지만 인민군 내에서도 총정치국의 위력은 일종의 관리세포망 같다고 본다면 그의 국방위 가세는 확실히 국방위 자체가 하나의 세력화된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는 단초가 된다.</p>
<p>인민군 총정치국의 상무부국장인 ‘현철해’는 상반기만 김위원장의 현지지도 14차 수행이라는 기록을 가질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1부국장인 ‘김정각’이나 ‘리명수’의 후임으로 작전국장이 된 ‘김명국’도 2인자 그룹에 포함 가능한 인물이다. 정규군의 실체인 인민무력부로 본다면 인민군 총참모장 김격식, 인민무력부 부부장 박재경도 그런 인물군이다.</p>
<p>국방위, 인민무력부, 인민군 총정치국을 잇는 제2인자 그룹은 광범위하게 서로의 연계망이 확실하게 구성되어 있다. 자리의 이동에 있어 국방위-총정치국 간의 교류는 여전히 선군정치 자체가 관리적 개념에서 시스템화가 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p>
<p>그러나 9.9절 ‘충성편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선노동당은 북한을 이끄는 선도(先導)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10년 넘는 선군정치 국면에서 노동당과 군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나름 정립이 이루어졌겠지만 중요한 것은 핵 실험 이후에는 군부의 목소리도 상당히 높아진 상태라는 것이 중론이다.</p>
<p>노동당 내에서는 인사권을 쥐고 있는 조직지도부가 단연 2인자 그룹의 첫 머리에 오른다.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리제강’과 ‘리용철’은 각각 당과 군을 맡는다. 노동당의 검열권은 국방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인사권이라고 본다면, 이것은 철저하게 김위원장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 직책을 수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힘이 있고, 그러므로 다른 조직이나 혹은 부문들의 견제도 있다고 봐야 한다. 어지간한 강단을 가지고는 앉아있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p>
<p>대외적인 측면에서 ‘장성택’은 행정부장이라는 직위가 문제가 아니라 김위원장의 직계 인척관계라는 점에서 관리대상에 속한다. 2004년 직무정지 후 2006년 말 재등장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본다면 그는 여전히 실세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가 권부 내에서는 지속적 관리대상이며 감사의 초점이라는 것도 보인다. 그가 재등장 이후 검찰, 보위부, 인민보안성 등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보위부’가 강력해졌다는 소식도 있었다. 보위부의 역량 강화가 군부, 당 내부까지 들여다볼 정도가 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여전히 김위원장이 직접 관리하는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호위총국이나 보위사령부 등이 그 한 예에 속한다. ‘장성우’가 인민무력부 민방위사령관에 있기는 하지만 군부의 시스템으로만 본다면 이 직책이 그와 군부 전체를 아주 끈끈하게 연결하는 매개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영향력은 크다고 봐야 한다. 그에게는 김위원장과 친인척이란 플러스 효과가 항상 작용하고 이것이 그의 주변에 사람들을 꼬이게 만들었던 전례가 있다.</p>
<p>당중앙위 비서국은 역시 측근으로 사무처리를 하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실세 그룹에 속한다. 선전선동담당 김기남 비서, 김중린, 전병호, 김국태 등이 이름이 오르내리지만 비서국의 형식상 이들의 아래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원칙상 ‘서로 얼굴도 마주치지 않도록’ 되어 있는 체계다. 그러므로 해당 분야의 정치력은 있으나 결국 상급의 업무시스템을 따르게 되어 있고, 이것이 권부의 정치력을 뛰어 넘기는 어렵다.</p>
<p>최고인민회의 김영남 위원장, 양형섭 부위원장, 최태복 의장은 일종의 간판이다. 이들의 활동은 국가를 대표하는 행위이지만 노동당, 국방위 중심의 두 축에서 이들이 국사를 논하는 사람들은 아니라 국사를 대표성 있게 처리한다고 보는 편이 옳다. 내각의 경우, 김영일 총리가 있고 내각 각 부서들이 과거와는 달리 실질적 행정집행력에서 힘을 많이 받고 있다고는 하나 정치적 역량과는 차별화된다. 행정부처로서의 역할은 확실히 과거에 비해 강해진 것이 사실이다. 특히 외교부 제1부부장 강석주의 경우는 김위원장의 신임과 함께 그의 역량은 인정된 경우다. 그러나 외교부의 독자적인 업무처리 역량이 권부 내에서 외교 이외 분야에서 주어진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이 또한 행정적 역량으로 보는 편이 옳다.</p>
<p>이 밖에도 ‘김일성부대’ 오중성의 아들이며 오중흡의 조카인 당 작전부장 ‘오극렬’도 다크호스로 분류될 정도로 혁명전통이나 정보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강관주’ 대외연락부장, 통전부장 ‘김양건’ 등을 그림자 부류에 꼽기도 한다. 사실상 이들이 그나마 알려진 권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 이외에도 북한 내에는 숱한 그림자 그룹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을 움직인다. 막후를 통한 정치적 교합이 이루어지는 상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p>
<p>현 시점 가장 관건이 되는 후계자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혁명가계승계인가 아니면 혁명정통승계인가의 문제도 이들 2인자의 의중이 반영되는 구도가 나타난다. 즉, 이들 세력간의 이합집산을 통한 당위가 나타난다는 의미다. 그 상태에서 김위원장이 어떤 후계자 혹은 후계방식을 선택한다고 했을 경우, 서로간의 알력은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이 사회 국가 내부의 내란 상황까지도 몰고 올 수 있는 무서운 권력투쟁이 될 수도 있지만 ‘몽둥이 권력’을 기본으로 해서 조용히 막후조정이 가능한 상태가 될 개연성이 훨씬 높다고 본다.</p>
<p>대체로 외부 시각에서 본다면, ‘소요’(騷擾)가 상당히 있을 것이라고 보지만 그 원인과 과정은 누구도 예측하기는 어렵다. 단지 지금 북한 내부에서 ‘세력간 쟁투’가 벌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 속에 이들 2인자 집단들이 존재한다.</p>
<h3>15. ‘와병설-후계자-선택권’은 한 묶음이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5" title="toc_15" class="anchor" id="toc_15">#</a></sup></h3>
<p>후계에 따른 여러 설(說)들은 앞서 종합해봤다. 그 밖에 나오는 다른 방식의 이야기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의 핵심은 ‘특별한 경우’를 늘 전제로 하는 때문이다. 그것은 돌발적 상황이나 혹은 예상하지 못한 ‘선택’이 있을 경우, 그로부터 북한이 흔들리거나 체제상의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는 가정을 깔고 있다.<br />
즉, 이 부분에서 후계논의는 당연하다고 보는 것이고 그 이후의 북한이 과연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어떤 방식의, 지금과는 다른) 체제변환’이 가능한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이를 살펴보자.</p>
<p>많은 전문가라고 평가되는 사람들의 입에서 최근 꾸준히 거론되는 것이 바로 ‘집단지도체제’다. 그러나 이것은 장기적 유지가 불가능하다. 조선노동당이나 혹은 국방위원회나 모두 권력을 분점(分占) 가능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것은 북한이 유지해온 지금까지의 유일체계의 변화를 의미하기에 점차적으로 분명히 ‘한 사람을 표상으로 하는 대표’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들 내부의 불안도 여기로부터 출발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다. 이것은 세력화를 도모하게 만들지만 여전히 북한 내부에서는 이른바 ‘집단화’, ‘파당주의’, ‘파벌주의’, ‘분파주의’는 극히 경계의 대상으로 알려져 있다. 즉, 단결을 해치는 행위는 바로 이렇게 미묘한 시점에서는 다른 모든 이들의 경계와 질시, 감시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p>
<p>그러므로 집단지도체제의 가능성은 낮지만 굳이 이것을 해낼 수 있는 조합은 ‘당과 군의 복합’ 이외는 없다고 판단된다. 군부에 의한 일방적인 내부집단체제가 구성될 확률은 현실적으로 전무하다. 만일 그들이 조선노동당에 속한 모든 권력자, 2인자를 포함한 전체 세력을 ‘들어내고자’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렇게 될 경우에는 평양에서만도 죽어나가는 사람의 숫자가 최소한 50만 명은 넘을 것이라고 본다. 그만큼 광범위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그 반발을 잠재울 방법이 없고,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면 북한은 지금보다 훨씬 나쁜 길을 걷게 될 우려가 발생한다. 그것이 이른바 ‘군부 쿠데타 가능성’이라면 이것은 사실상 확률이 5% 이내다. 그만큼 실행 가능성이 없고, 설사 하려고 해도 성공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잘 안다.</p>
<p>중국이 북한 군부의 세 확장을 우려하는 각도도 비슷하기는 하다. 그래서 군부의 어떤 실력자가 아예 부각되어 통제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닌 집단지도체제의 방식으로 가게 되는 경우에는 전형적인 군사독재가 아주 강력하고도 오랜 기간 계속될 우려를 한다. 사회 내부가 잘 다스려지지 않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권력은 총구로부터’ 시작되고 또 끝을 맺게 된다고 보지만, 북한에서 조선노동당이 그간 지탱해온 사회 국가 내부의 잠재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집단지도체제 가운데 군사력만으로 시스템을 갖추기는 북한의 현실을 볼 때는 외부의 희망에 불과하다.</p>
<p>두 번째의 가능성인 당과 군의 연합세력이 등장할 경우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당의 우위인가, 아니면 군의 우위인가를 놓고 본다면 무력은 군부이나 ‘혁명의 정통성’으로만 따진다면 조선노동당에 더 우세한 힘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당 중심일 경우에만 이런 상황이 가능하다. 이것은 곧 군부가 당을 지지하는 형태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형식적인 부분에서는 당을 앞세운 집단지도체제의 가능성은 그래도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p>
<p>약간 비켜나지만 해외의 분석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그들이 더 많은 정보가 있을 것으로 맹신하는 가운데 이런 주장도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약간은 정보 사대주의라고 볼 수도 있다. 미 해군분석센타 켄 고스 국장의 포린폴리시(FP) 인터뷰는 그런 점에서 책으로 본 연구의 한계를 잘 말해준다. 그는 집단지도체제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조명록을 ‘정권 내 사실상 2인자’로 지목했지만 나이 80세의 인물이 현실적으로 세력확장의 초점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가 권력 장악이 가능한 무력과 정보력, 명령통제라인 장악이 가능하다고 지목한 ‘오극렬’(당 작전부장)이나 ‘김명국’(총참모부 작전국장)은 자료상으로는 그런 위치로 보여지지만 실제 노동당과 국방위, 총참모부, 총정치국을 잇는 정보계통을 착각함으로써 빚어진 분석이다. 더불어 아래서 이야기하겠지만 그는 직계 중에서 ‘(후계자로) 지명되거나 훈련 받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지만 엄연히 김정철은 후계수업을 받아오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착각이 아직도 많은 연구자들 가운데서 작용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감각적인 분석은 올바른 정보가 될 수 없다.</p>
<p>다음으로 전혀 엉뚱한 제3의 인물이 김위원장을 승계하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김위원장이 직접 선정한 인물이 있는 경우이며, 그는 반드시 그만한 역량을 보여야만 한다. 다른 하나는 2인자 그룹에서 한 사람을 선정하고 이에 공통의 추천이 있어 그가 추대되는 경우다. 이 두 경우 모두다 형식적으로는 당 정 군에서의 지지를 획득해야만 가능하고, 그것은 앞선 두 지도자인 김일성-김정일을 계승하는 전제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당연히 이 가능성도 존재한다.</p>
<p>이 한 사람을 뽑기 위해서, 혹은 선정하는 과정에서 세력간의 혈투가 벌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은 역시 중국 공산당이 그러하듯 조선노동당의 경우도 공개적이지 않은 비밀회의를 통해서 진행될 것이므로 표면적인 쟁투까지 이른다는 것은 무리라고 봐야 한다. 대체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서로 피를 보면 안 된다’는 것이고 보면 비밀회의의 구호처럼 ‘단결-비판-단결’은 평양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날 공산이 크다.</p>
<p>가계 직접 승계라는 원칙이 적용될 경우다. 이것은 의외로 많은 충돌요소를 가지고 있다. 즉, 집단과 세력에 의해 3대 가계 직접승계라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p>
<p>‘김정철’은 분명히 후계자 수업을 받아왔다. 그러나 2004년 말~2005년까지 기간에서 좌절을 겪는 모습을 보였고, 2008년 5월~8월에 이르는 기간에도 그의 존재감은 미약하기 이를 데 없다.</p>
<p>이것을 두 가지로 해석해볼 수 있다. 한 가지는 현 시점 그가 나설 수 있는 내부적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후계자 승계를 준비는 하고 있지만 북한 전체의 각각 세력권에서 볼 때 그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도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지금 시점이 아닌 여건이 성숙된 시간까지는 조용히 있는다는 개념이다.</p>
<p>다른 한 가지는 이번 와병설마저도 그의 등장을 준비하기 위한 하나의 세레모니로 활용되고 있다는 가설이다. 이것은 김위원장의 병증이 사실이긴 하지만 이를 활용한 고도의 정치력이 발휘된 것은 아닌가는 이른바 ‘트릭’이란 평가로부터 출발된다. 9.9절의 충성편지와 맹세는 한 마디로 ‘모든 결정은 김정일에게 위탁한다’는 선언적인 것이었고, 거기에는 당정군이 예외 없이 모두 포괄되어 있었다. 민감한 시기, 아주 교묘한 한 수를 쓰기에는 매우 적합했던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얻은 ‘정책결정의 지지’를 바탕으로 할 경우, 반대세력은 그에 합당한 다른 명분을 당분간 만들 수가 없다.</p>
<p>여기에 묘하게도 가계 속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김정남, 김정철, 김정운이라는 세 명이 동시에 등장 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남은 오래 전에 후계자 대열에서 벗어난 인물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김정남-장성택 연합세력이라는 등식이 나오더니만 황장엽의 입에서까지 김정남은 다시 유력한 주자로 재론되었다. 그는 자기 입으로는 분명히 ‘시켜도 안 한다’고 했던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이 최근 재론된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또한 중국에서조차 링예(綾野)의 보고서가 그러했듯이 대체로 김정남 대세론은 없다고 보는 편이었다.</p>
<p>김정철과 김정운 둘 가운데서 이번 사태에서 가장 먼저 소식이 흘러나온 것은 바로 ‘김정운 부상론’이었다. 심지어 김정운이 피격되어서 김위원장이 쇼크를 받아서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는 식의 루머들이 돌았다. 그러나 이것은 진위를 확인한다는 것이 별로 필요치가 않다. 왜냐하면 그간 조선노동당이 품에 안고 있었던 인물은 분명히 김정철이었고, 김정운으로 대체된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p>
<p>그 와중에 이런 식의 루머도 돌았다. 김옥이 김위원장의 의사를 읽고 김정운을 내세우고자 했지만 김정운 피격으로 인해 좌절되었다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진위 확인은 어렵다.</p>
<p>지금으로서는 김위원장의 ‘결정과 지시’는 이제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그가 김정철이나 김정운 어느 쪽의 카드를 꺼낸다고 하더라도 현 시점 북한은 이를 전격 수용해야 한다. 반발이 나오기 쉽지 않은 구도다. 그런데 묘하게도 김위원장은 3대 가계 승계를 안 한다고 천명했다는 말들이 흐른다. 심지어는 북한의 고위간부의 입을 통해서 ‘3대는 어렵다’는 이야기는 작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이것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p>
<p>벌어진 현상만으로 본다면 김정철이 후계자 수업을 받았고, 당중앙위 조직지도부가 후원자가 되었으며, 김옥도 죽은 고영희로부터 정철, 정운 두 사람의 미래를 부탁 받은 인물이라는 정도가 고작이다. 일본인 요리사의 입을 통해서 아주 까마득히 먼 옛날에 김위원장이 정철을 싫어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그러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한다.</p>
<p>그 점은 김정남-장성택의 조합에서도 마찬가지다. 황장엽의 2003년 진술에 따르면, 장성택은 김정남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그 또한 예전의 일이었다. 지금의 이야기가 아니다.</p>
<p>주목되는 것은 작년 말~금년 초에 이르는 기간, 유난히도 김정일-김정남 간의 통화량이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노령화되어 가는 그에게서 어릴 적에 아꼈던 장남과의 통화-어릴 적에는 전화 중에 서로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는 기력을 회복하는 좋은 소재에 속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후계구도와 직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김정남은 안 된다는 북한 내의 세력은 존재하고, 이들은 적어도 혁명정통성-이른바 ‘조선의 어머니론, 성혜림은 조선의 국모가 아니다-에서 그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명분이 있다. 심하게는 김정남이 후계자가 될 경우, 북한 내에서 죽어나가야 할 고급간부만 30만 명은 넘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다.</p>
<p>북한 군부 내에서 이을설의 부관이던 약관 당시 48~49세의 인물이 키워지고 있다는 설이 돌았던 것은 2006년 말의 일이었다. 그 당시의 분위기로만 본다면, 핵 실험 이후 군부의 기세가 당당했을 즈음에 군부의 사무들이 일정 수준 위임된 전례에서 이 설은 출발하고 있다. 추론해서 그가 ‘김설송’과 관련이 있고 그것은 북한 내부의 세력과 혁명승계의 결합 공식일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그 이후 아무도 이 사실을 입증하지는 못했다.</p>
<p>상황을 모두 종합해본다면,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역시 김위원장의 지명이다. 두 가지가 유력하다. 직계승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김정철의 우위가 존재한다. 이번 사태에서 그가 등장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봐야 한다. 다른 하나는 당과 군부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인물을 후계자로 선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그에게 모든 권력이 쏠리는 구도가 아닌 그를 정점으로 해서 당과 군부가 적절한 권력의 분배를 해나가는 시스템이 될 공산이 크다. 일종의 삼각동맹의 형태가 되면서, 김위원장이 이를 후원하고 그에게 서서히 권력을 모아주는 방식으로 가게 될 것이다.</p>
<p>이번 와병설 사태는 몇 가지 재미난 결론을 도출했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북한 내부(외부의 기관을 포함)에서는 이로 인한 흔들림이 별로 없었다는 점.</li>
<li>둘째, 이번 일로 김위원장의 입지는 북한 내외에서 더 강해졌다는 점.</li>
<li>셋째, 이번 일을 통해서 북한 내부를 들여다보는 다른 나라들의 입장차이가 모두 확인되었다는 점.</li>
<li>넷째, 이 사태를 통해서 핵 시설의 재 가동 상태에서도 누구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해야지 모르는 애매모호한 구석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li>
<li>다섯째, 후계자 문제에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내란의 소요가 나기는 어려울 정도로 내부적인 ‘충성과 단결’을 역설적으로 도모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는 점 등이다.</li>
</ul>
<p>이것을 거꾸로 읽는 사람은 적어도 북한 문제의 전문가는 될 수 없다. 북한 내부의 세력간 혼란의 요소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 와병설을 통해서 그들 내부에서조차 외부의 공격은 내부의 혼란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관념이 생긴 것이 중요하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계기’가 되었다고 볼 대목이다.</p>
<h3>16. 중국, ‘미워도 다시 한 번’ 웃으며 북한으로 다가서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6" title="toc_16" class="anchor" id="toc_16">#</a></sup></h3>
<p>중국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이것은 엄밀히 중국의 대책이란 측면에서 그들의 내부에서 토의되고 구성되어 있을 법한 이야기를 재구성해보는 것이다. 이 정도의 사안은 중국 내에서는 확실한 ‘당중앙 부부장급’의 지위에서 토론되고 결정할 문제에 속한다. 단순히 연구자의 임의적인 판단은 참고가 될지언정 절대 실질 정책에 반영되기 어렵다.</p>
<p>앞서도 이 부분은 살펴보았지만 ‘경제’라는 관점에서 다시 정리를 해보기로 하자. 무엇보다도 ‘경제’는 미시적인 협력이 아니라 거시적인 판단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p>
<p>우선 중국이 이 사안을 보는 눈에는 분명히 한반도 북부에 대한 통제력 강화라는 순 목적성이 있다. 이는 엄밀히 조선-중국 간의 처절한 싸움이기도 하다. 국경을 마주대한 입장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경계이기도 하다.</p>
<p>2003~2005년 기간까지 중국 당정군 내부에서 북한을 곱게 보지 않는 시각이 늘어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컸던 것은 바로 핵 개발이란 이슈로부터 출발되었다는 것이 올바른 분석이다. 중국은 북한을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존재로 본다. 입술과 이빨의 관계는 한미일 동맹으로 구성된 태평양 세력에 대한 저지선을 뜻한다. 그러나 핵개발은 이와는 성격이 다른 문제다. 즉, 북한의 독립적 지위는 언제든지 한반도 통일 시점에서는 중국의 배후에 적을 두게 되는 꼴이 된다.</p>
<p>이 우려는 2006년 북한 핵실험으로 아주 강하게 중국 관부와 중공당 내부를 타격하게 된다. 중북 간의 전쟁 시나리오까지 등장할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은 북한이 적인가 동지인가 구분하기 애매해졌다는 이야기가 된 걸 의미한다. 거기다가 북한이 강렬하게 미국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표명하는 가운데 지나친 미국 경도(傾倒) 발언이 북한 외교부나 당, 군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은 이를 북한이 보내는 단순한 불만표시가 아니라 실질적 경고라고 읽었다. 미국 또한 그런 각도에서 접근하는 조짐도 읽혔다.</p>
<p>2005년 말 ‘중조일치’(中朝一致)라는 프로그램이 중공당 내부에서 입안되었던 것은 순전히 북한을 중국경제권에 편입하자는 경제적 접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한 것만은 아니었다. 후진타오 체제 등장 이전 김정일-장쩌민은 ‘중국식 개혁개방, 중국식 경제발전’이라는 주제를 두고 오랫동안 갈등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김정일이 중국식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2006년 초 방문이 결정되던 2005년 10월 후진타오의 평양 방문 이후, 이 프로그램은 전격 채택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중국은 북한 경제회생을 위해 약 50억불에 해당하는 자금, 차관, 현물의 투입을 계획한 바 있다.</p>
<p>이에 따르면, 중국은 전 분야에 걸쳐 중국식 경제편제를 북한에 개설하고 그에 맞추어 당 정 군 전반에 걸쳐 북한과의 대폭적인 교류를 증진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당연히 중국이 필요로 하는 북한 내의 자원 등은 철저히 중국이 독점적 지위를 가져가는 것이었다.<br />
이것은 2006년 초 김위원장의 우한-광저우-선쩐 방문 이후 북한이 거부를 하게 된다. “장쩌민 동지가 이야기 한 제안이 유효한가?”를 확인하러 나왔던 김정일은 중국이 자신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개발 상황 등까지 캐는 정보전쟁을 벌인다는 보고를 듣고 이를 전면 거부하게 되었다.<br />
중국으로써는 다시 한 번 모든 프로그램의 수정을 필요로 했다. 당정에 걸쳐 북한에 대한 불만은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표면으로 마구 드러나는 가운데 북한은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실험까지 강행한다. 이 시기를 즈음해서 나타난 것이 바로 ‘북한 응징론’이다. 즉, 군사적인 제재까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이론이었고, 그에는 중국 동북 변경지역의 소요사태라는 명분을 들어 베이징 군구, 선양 군구, 지난군구까지 포함한 대규모의 대북 상황대처 훈련까지 벌어졌다.</p>
<p>북한은 미국 카드를 움켜쥐기 시작했다. 2007년 초에 벌어진 미국과의 밀월은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이란 존재가 더 이상은 자신들의 손아귀에 있지 않다는 걸 각인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 당할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경제나 대외정책에 있어 미국은 북한에 해줄 것이 마땅치가 않았다. 중국이 부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존지원과는 다른 미국의 입장이 있었다. 2007년은 그런 점에서 중국이 북한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하게 되었던 해로 볼 수 있다. 이제 중국은 북한을 향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전부 펼쳐 놓고 구사하려고 작심한 상태가 되었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중국은 북한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li>
<li>둘째, 중국은 북한 내부를 효율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하여 인적 교류의 증대를 강력하게 하기로 마음 먹었다.</li>
<li>셋째, 중국은 상황이 여하하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어느 수준까지는 진행한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li>
<li>넷째, 중국은 직접적 개입보다는 간접적으로 북한 내부에 친중파를 더 양산하려는 노력 쪽으로 방향을 트는 중이다.</li>
<li>다섯째, 중공당, 군부 등 내부에서 북한에 대한 비방을 금지하고 북한을 자극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li>
</ul>
<p>이 원칙은 즉각 시행되었고 현재도 그 추세대로 가고 있다. 특히 2008년 7월 중공당과 노동당의 전통에 의해 후계자가 된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이 평양을 방문하게 된다. 원래의 계획은 김위원장의 베이징 방문이었지만 이것은 건강 등의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가장 튼튼한 양국 동맹의 모습이 베이징 올림픽 직전 세계에 보여졌다. 그런데 중점을 두고 보아야 하는 것은 시진핑 방북에서 가장 많이 토의된 것이 바로 ‘경제협력’이었다는 사실이다.</p>
<p>현실적으로 중국은 북한에 대한 ‘개입정책’을 강력하게 사용하고자 한다. 그것을 북한이 그간 거부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북한 내부에서 중국 이외의 카드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유럽을 끌어들이는 것도 한계가 있고, 남한은 MB정부가 들어선 이후 절대 화합하기 어려울 정도의 강력한 대치국면이 이어진다. 경제협력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정도이고 이미 가동중인 금강산, 개성도 닫아야 할 판이다. 일본과는 수교협상을 진행하지만 그들이 미국의 입김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판단한다. 미국은 9월 금융위기 이전에도 대선 국면이전까지 부시 행정부가 북미 간의 문제를 호혜에 입각해서 처리하리라는 기대를 지난 6월 이후 사실상 접었다. 경제적 성과는 “우리 손자 대에나 보겠나” 하는 어느 북한 내 정치원로의 이야기가 본질을 잘 시사해준다. 기대를 접는다는 것은 곧 양보보다는 대응을 선택한다는 의미와 동일하다.</p>
<p>이 상황에서는 선택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중국에 많이 기대는 모습이 최근 나온다. 중국도 이러한 북한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본다. 과거 강력하게 포획을 하고자 했던 모습을 대외적으로는 버리고 신중하게 북한을 품에 안으려 시도하는 중이다.</p>
<p>2008.8 중북 간에는 10억불 규모 상당의 차관공여협상이 진행되었다고 알려진다. 2005년의 ‘중조일치’ 프로그램은 다시 살아났고, 당정군에 걸친 북한과의 교류는 확대되는 기안들이 속속 나오는 중이다. 2009년 중북 우호의 해로 설정하고 대규모의 관광단을 북한으로 보내는 것이 기획되고, 기업 투자단이나 북한 당정군과의 지속 교류협력 방안들이 기획되고 지금도 실행되는 중이다. 이것은 명백한 ‘끌어안기’ 수순이고, 한 마디로 중국 당중앙의 결정이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p>
<p>북핵 문제가 변수가 되기는 한다. 그렇지만 이것을 문제시 하면서 배척할 경우, 중국은 북한을 중국경제권에 끌어들일 기회를 가지기 어렵다는 판단이 나왔다. 6자 회담이라는 다자구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에서 관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당연히 후계자 문제를 포함한 모든 북한의 단기 중기 변화과정에 반드시 중국이 개입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붙게 되었다. 중국의 관리 방식이 포용정책으로 바뀐 셈이다. 김정일 유고사태에 대한 종합적인 결론이 그렇게 내려졌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즉, 단기 사태라기 보다는 적어도 중기에 무게감이 실렸다는 의미다. 본인을 직접 진단한 의사들이 있는 중국의 판단이 훨씬 정확하게 들리는 대목이다.</p>
<p>첫 단추는 경제다. 그리고 교류라는 항목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시 평양에 베이징의 아성(牙城)을 무리 없이 구축하는 것, 그것이 2008년 하반기~2009년 초에 이르는 중국의 구상이다. 착점은 어려웠지만 북미대화를 통한 허상이 드러남으로써 중국의 입지는 더 강력해졌다. 이제 북한은 일정수준 양보를 하더라도 중국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현실적 생존의 길이라고 보는 시각이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p>
<h3>17. ‘시간 벌기’가 일본의 작전명령 제1호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7" title="toc_17" class="anchor" id="toc_17">#</a></sup></h3>
<p>이제 일본을 볼 차례다. 앞서 ‘시대 읽기, 시대 경고’ 등을 통하여 일본이 한국에 어떠한 방법으로 침투하고자 하는 지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쉽게 설명했다고 여겨진다. 기본적으로 일본은 ‘교활’(狡猾)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들이 가진 특수성을 이해하려면 앞선 자료들을 반드시 읽어야만 할 것이다. 기록의 짤막한 요약으로 이를 전부 설명하기란 애초 쉽지가 않다.</p>
<p>일본과 북한, 그리고 남한이 어우러지는 그림은 겉으로 나타난 현상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 있다. 일본이 생존하기 위한 전략은 항상 ‘침략적 본성’에 근거한다. 평화주의가 아니라면 과격한 팽창주의는 그들의 불가피한 선택 같기도 하다. 해양국가 일본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반도를 최후 저지선으로 과거 제국주의 일본이 그랬듯이 만주와 몽골까지 넘나드는 보루(堡壘)를 만드는 것이다. 그 목적은 절대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따라서 제국주의적 관점인 극우와 우익 방식의 시도가 따르는 것이다. 그 배후에는 일왕이 중심이 되는 체제, 궁내청을 중심으로 한 편제가 있음은 지적한 바와 같다.</p>
<p>2008년 현재, 북한 문제를 보는 일본의 눈은 북한 그 자체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일종의 ‘시간 벌기’를 하는 중이다. 바로 2010년을 목표로 하는 한반도 남부에 대한 ‘친일화의 완성’(친일의 재구성을 넘는 ‘다시 백 년’ 프로그램을 의미한다)을 위하여 가급적 제한적인 대북접근 시도가 있는 상태다.</p>
<p>많은 연구자, 관찰자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일본이 과연 북한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없다’가 그 해답이다. 그러므로 전제가 다른 연구는 그저 가설도 아니며, 공허한 책상머리 이야기에 불과하게 된다.</p>
<p>일본의 대북문제는 몇 가지 쟁점이 있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북한은) 현존하는 모든 핵 무기와 핵 계획을 포기해야 한다.</li>
<li>둘째, 그를 통해 관계정상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일북 관계에 있어서 헤게모니가 보장되지 않는 상태라면 수교배상금은 조절한다.</li>
<li>셋째, 미국이 북일관계 개선을 원하지 않는다면 미국과의 동맹관계와 경제측면의 이익 등을 포기하면서까지 북일 관계를 개선할 의사는 없다.</li>
<li>넷째, 일본의 ‘정상국가화’ 즉, 우경화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일관계는 정상화 단계로 절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li>
</ul>
<p>이 전제만 두고 본다면 북일 관계는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가 없다. 오히려 북한의 급변 상태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br />
묘한 것은 MB의 대북 4대 원칙이라는 것이 일본이 내부적으로 세워둔 원칙과 완전히 흡사하다는 점이다. 핵폐기 협상의 진전이나 사업타당성, 재정부담능력, 국민적 합의는 딱 일본이 보여주는 모델이다. 정치적 측면과 경제가 버물려 있긴 하지만 사실상 이것은 ‘하지 않겠다’는 벽을 친 접근 프로세스에 해당한다.</p>
<p>일본에게 북한은 납치문제를 제외하고는 두 가지 쟁점이 늘 있다. 바로 핵과 미사일이다. 모두 군사적인 것이다.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기에는 문제가 쌍무적 양자관계가 아니라 이미 다자구도에서 들어가게 된 것이기도 하다. 핵에 대한 그들의 불편함은 거의 ‘히스테리’에 가깝지만 일본은 이를 자꾸 세력을 잃어가는 극우를 통해 사회의 우경화를 지지하고, 나아가 헌법수정을 통해서라도 과거 일본으로 회귀하는 도구로 사용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런데 지금 이 ‘명분’이 사라지는 것은 그들로써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된다.</p>
<p>그래서 지난 십 년간 한국에서 실행된 햇볕정책, 대북포용정책에 대해 ‘북한에 이용되었다’는 판단을 하고, 한편으로는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아베 신조)는 평가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정상국가화=우경화’를 부인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일관된 목표였다.</p>
<p>주일 미군의 위치는 일본이 미국의 핵 우산 하에서 이익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일 간에는 북일 간에 줄 수 없는 완전한 ‘이익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이것을 버리면서까지 그들이 북일 수교를 진행할 수는 없다. 그래서 대화제의, 수교협상은 모두가 ‘쇼’다.</p>
<p>북한의 입장으로 가서 ‘과연 그들은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원하는가’ 라는 역지사지의 토론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전제(옵션)가 있는 상태에서 북일 간에는 배상금 논의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북한은 잘 안다. 2002.9.17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평양방문에서 대두된 것은 ‘납치자 문제’였다. 북한 측에서 냉전시기 대남공작기구에서 13명을 납치했고, 그 중 8명이 사망하고 5명이 남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촉발된 사안이다. 북한이 순진했는가? 결코 그렇지가 않다. 결국 나올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일본 국내 정치에서 활용하는 가운데 북한은 꽤나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즉,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협의를 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오히려 2002년, 2004년 두 차례 북일 정상회담은 일본 내 조총련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핵, 미사일, 납치자 문제를 둘둘 엮어서 일본 내 우경화 바람을 거세게 불게 했고 조총련은 일본 내 여론에 의해 ‘당연히 제거되어도 좋은 존재’로 낙인 찍혔다.</p>
<p>일본이 과연 6자 회담이라는 다자 구도의 북핵 해결방식을 믿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도 관건이다. 일본은 2.13합의를 통해 북미 간이 그랬듯이 북일 간의 양자관계 정상화라는 협의방식을 얻어 내었다. 그러나 6자 회담은 일본 내에서 확실히 무용론이 대세다. 이것은 하나의 정치적 구실일 뿐이고, 미국, 중국이라는 양 국가의 이해득실이 따져지는 협의체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있다. 그러므로 끈을 놓치고자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깊숙하게 개입하지도 않는다. “6자 회담을 통해 북핵 폐기를 진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2008.6.26 후쿠다 총리)는 수준이 딱 맞다. 정치적 레토릭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p>
<p>혹자는 일본도 경제중심의 대북접근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전혀 그렇지가 않다. 북일 간의 경제적 차원 협력은 두 가지 이외는 없다. 하나는 정치적 차원의 배상금 지급이라는 정책행위와 다른 하나는 기업차원이다. 전자는 전제가 있고 후자는 기업이 단기적으로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북일 간에는 쌍무적인 경제협력은 애당초 없고 앞으로도 헤게모니가 주어지지 않는 진출, 협력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p>
<p>그 과정에서 이런 논제도 등장한다. 수교배상금을 둘러싸고 ‘일본이 북한경제의 구세주가 될 가능성은 없는가’ 하며 들여다 보는 학자들의 토의다. 별로 소용에 닿지 않는 공허한 목소리에 불과하다. 일본은 정부차원이 아니고서 기업차원의 진출은 불가능하다. 시스템이 짜진 곳이고, 그걸 넘고자 하는 무모한 기업인은 없다. 경협의 접점이 없다. 이것이 바로 북일관계가 가진 정치적 제약론과 경제협력의 한계론이다. 이 두 가지 현실은 앞으로도 변화될 가능성이 전무하다.</p>
<p>현 시점에서 일본이 주력하는 것은 남한에 대한 친일화 작업이다. 이는 이제 드러내놓고 남한 사회에서 마구 시행 중이다. 매우 공격적이다. 일본의 우경화 단계가 곧장 남한으로 넘어와서 설계되고 있다고 판단될 부분들도 많다. 역사교과서에 대한 결정구도의 포획과 반대세력 해체, 그리고 한국경제에 대한 통제력과 족쇄를 더 강화하겠다는 것은 친일을 완전하게 재구성하고 그 바탕에서 동북아 전체를 들여다보는 구도를 만들겠다는 전략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적극적이지만 속내는 지독스럽게 소극적으로 대북 교섭에 들어가는 모습이다.<br />
그들이 노리는 핵심은 김정일 시대가 아니라 그 이후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일련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즉, 체제변환(regime change)이 없이는 일본이 원하는 핵 문제 해결 이후의 북한 공략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고, 또한 북한의 요동이 있어야만 남한의 친일화를 가속화 하면서 한편으로 일본의 우경화를 완성할 수 있다는 기본 가이드라인이 완벽하게 존재한다. 이 틀은 깨어질 수가 없다. 이것을 버리게 되면 일본 극우와 우익이 추구하는 ‘동북아 지역협력 구도’는 완성되기 어렵게 된다. 장기적 국가전략이라 해도 무방하다.<br />
이 틀이 흔들릴 개연성은 많지 않다. 중일 간의 협력 강화는 일종의 안전망을 두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북한문제에 있어 중국이 강하고 빠르게 삼투해 들어가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남한에 대한 친일화는 오랫동안 계획에 의해 진행되는 일이지만, 이것의 성패는 현 시점 북일 수교협의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중요도가 있다고 여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한계다.</p>
<p>그러나 중국이 속보(速步)로 바뀌는 경우에는 입장이 조금 달라진다. 어떻게든 이 행보의 최소공약수를 만들어내어야 한다. 그 점에서 이번 친일화 작업에 남한의 가용 가능한 친일세력들이 모두 동원된 흔적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마지노선이라 여기는 것 같다. 중국이 미국의 금융위기와 대선국면 이후 적극적인 대북진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개략적 흐름과 상황은 조성되었다. ‘와병설’이 준 해프닝에서 일본이 취한 위치는 다른 국가들의 정책적 변동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김정일 드라마’로 각색되는 것을 경계하던 참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진행될 경우, 일본은 다시 북일관계에 좀 더 속도감을 낼 공산이 크다. 그러나 제한적이다. 일본의 대북라인은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다.</p>
<p>북한 내에서 대일관계는 하나의 ‘카드’로 취급된다. 여전히 약간의 공상(空想)-대일 수교를 통한 배상금 등-이 없지는 않았지만 2004년 이후 정리되는 추세다. 그들에게도 일본의 목적은 알려졌다고 할 수 있다.</p>
<p>북일 수교는 북핵 문제 해결 없이는 불가능하다. 당연히 대북 수교배상금도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 금액이 얼마건 관계가 없다. 일본이 여기에서 기대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동북아 지역협력에서 빠지지 않고 개입하는 것, 그리고 이면의 목적인 남한을 한시 빨리 친일화 해두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p>
<h3>18. 한국, 국민을 어리석게 만들려는 정권 움직임이 살벌하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8" title="toc_18" class="anchor" id="toc_18">#</a></sup></h3>
<p>우매(愚昧)한 한국 백성들(국민) 이야기를 좀 해보기로 하자. 워낙 갈등의 골이 깊기 때문에 무엇부터 언급해야 하는가 고민이 될 정도지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명확한 ‘팩트’가 존재한다. 그것을 외면한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자세는 아니다.</p>
<p>한국의 정치색에 의한 갈등이나 지역주의, 그리고 진보 보수라는 입장 차이나 소시민적 생활주의나 기득권이라는 개념은 일단 빼놓고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하나의 사회 국가가 견지해야 할 올바른 길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서는 이 논의 자체가 무용지물이니까. 잘못된 것만 골라 보자. 많은 질문들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이분법의 구도도 포함될 수 있지만 그 연원은 훨씬 복잡하다는 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그래서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의 숫자가 더 늘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p>
<p>먼저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래서 현실적 종주국으로 취급되는 미국부터 보자.</p>
<p>우리에게 미국은 어떤 존재인가? 미국에게 한국은 어떤 존재인가?</p>
<p>진정한 의미의 한국민이라면 미국은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할 존재다. 첫째, 미국의 가치가 곧 한국의 가치가 되어야 하는가? 둘째, 한국의 독립적 자주적 관점은 존재하는 것이 옳은가 아닌가?</p>
<p>이 의문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우리는 미국을 보고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한국을 미국의 속국으로 무조건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생존을 위해서인가? 사회 국가가 가진 정체성과 정통성을 버리는 것이 생존인가? 미국이 우리의 생존을 보장해주는가?</p>
<p>취사선택을 해서 미국의 가치 가운데 우리가 수용할 수 있다면 그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무조건의 종미(從美), 숭미(崇美)가 타당하지는 않다. 거기에는 국익(國益)의 충돌과 민심 내부의 갈등이 반드시 존재한다. 즉, 가치는 이익과 연결된다. 미국의 가치가 한국의 국익에 배치될 경우, 후자보다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아닌가는 질문은 그래서 매우 귀중한 기준점이다. 거기에는 한국의 독립적 자주적 관점이 요구된다. 없다면? 그것이 바로 종속이다.</p>
<p>뉴라이트 집단이 아주 교활한 방법으로 한국 사회에 등장하고 친일 정권인 MB정권이 그들을 정권주도세력이자 정권수호세력으로 인정하면서부터 사단(事端)이 벌어지는 중이다. 친일은 이 시대에 수용될 수 있는 개념인가? 일본은 우리가 이제 가까워져도 좋을 만큼 한국과 한반도에 대해 정치, 경제, 역사, 문화 등 측면에서 이로운 존재인가? 그들은 제국주의를 버렸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을 통제하는 정치세력의 극우, 우익화 기조는 변한 적이 있다고 보는가 아닌가?</p>
<p>‘친일보다 친북이 더 나쁘다’는 개념은 맞는가 틀리는가? 조갑제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친일파라고 자처한 셈이다.</p>
<p>그렇다면 친일파가 친북파보다 나쁘다는 비교우위론은 타당한가 아닌가? 기본이 잘못된 질문이다. 일본을 상대하는 것은 국익이란 잣대에 의한 것이고, 북한을 상대하는 것은 분단역사의 정리와 관련된 것이다. 애초부터 비교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기준점이 다른 명제를 함께 나열하는 사람들의 저의(底意)는 과연 무엇인가?</p>
<p>일본은 과연 한국에서 목하 벌어지고 있는 ‘친일의 재구성’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는가? 그런 분위기와 세력의 형성을 기획하고 지원한 사실이 있는가 없는가? 뉴라이트 집단은 일본으로부터 어떠한 지시도 받지 않는가 받고 있는가? 일제 식민지를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은 뉴라이트 집단이 자발적으로 한 것인가 아닌가? 그렇게 활동하는 대가는 무엇인가? 차마 신념이라는 말로 포장하기는 스스로 부끄러울 것이다.</p>
<p>한국에 있어 정치세력 가운데 여당인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이에 동조하는 다른 정치 세력은 뉴라이트 집단의 친일성향, 나아가 친일매국기조를 인정하는가 아닌가? 친일을 대세로 해서 이른바 선진국인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논리는 타당한가? 일본의 무엇을 한국이 배워야 하는가, 극우 우익논리인가? 그들이 한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은 없는가? 그 점을 일본이 인정하는가 아닌가? 한국 내에 이른바 ‘소일본’(小日本)을 구성하려는 시도의 최종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시대를 건 전쟁을 벌이는 목적과 방향이 ‘침탈’(侵奪)이 아니라고 일본은 자신하는가? 일본의 극우와 우익세력은 한국에서 다시 ‘황국신민’의 시대를 열자고 하는 것인가?</p>
<p>한미일 동맹의 3각 관계의 차별성을 정권은 인정하는가? 미국이 일본과 한국을 취사선택하거나 혹은 어느 한 쪽에 대한 중점을 달리할 경우, 과연 미국은 우리의 동맹인가 아닌가? 미국의 입장에서 한일간의 쌍무적 동맹은 한국의 일본화를 허용한다는 의미인가 아닌가? 미국은 일본의 이러한 한국에 대한 친일화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수용하는가? 이것을 묵시적으로 허용하고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친일화된 정권이 미국에 더 동조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한 것은 아닌가?</p>
<p>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친일’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정권은 교육할 것인가? 건국 60주년을 통해 정권이 얻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친일 역사의 재구성인가, 일본제국주의의 역사 타당성을 인정하는 것인가?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결론은 무엇인가, 입헌군주라고 하지만 일본인의 정신적 지주로 행세하는 일왕을 다시 우리 시대에 받아들이는 구도를 만들려고 하는가? 그렇게 해서 교육을 통한 기득권의 유지, 친일의 수용을 하려는 저의는 무엇인가? 한국민에 대한 친일화를 광범위하게 전개하려는 입장은 정권의 공식적 입장인가 아닌가?</p>
<p>한국 사회의 반공보수는 왜 친일세력과의 공조를 생각했는가? 사적 이익인가, 아니면 친일 대 친북이라는 대결구도에서 친일을 선택해도 좋다는 생각 때문인가? ‘경제’라는 잣대 하나로 해방 이전과 이후 역사를 모두 평가하고자 하는 행위는 타당한가 아닌가? 반공의 목적은 국익에 있는가 아닌가? 친일의 목적도 국익에 있는 것인가 아닌가?</p>
<p>일본 정치인이 정상국가화를 우경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견해에 동의할 수 있는가? 일본의 군사대국화 지향은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아닌가? 일본은 진정으로 제국주의, 팽창주의 의도를 버렸다고 보는가?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 한국에 저지른 과오를 진정으로 사과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들에게 진정이 있다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p>
<p>한국 내에 여전히 남아있는 친일매국세력이 기득권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가 아닌가? 헌법에 명시된 3.1운동의 정신은 지금 구현되고 있는 것인가? 유관순은 깡패인가? 김구, 안중근, 윤봉길은 테러리스트인가? 창씨개명을 조선민족이 원해서 했다는 일본의 주장을 인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 임시정부의 법통은 한국에서 인정되는가 아닌가?</p>
<p>경제발전을 위하여 민족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친일이 확산되고 식민지근대화론으로부터 일본을 선진국으로 한 일본(우익) 따라하기 조류가 바람직한 현상인가 아닌가? 일본의 무엇을 따라 배워야 하는가? 그들의 역사인가? 북한을 모든 ‘악의 축’으로 설정하고 일본, 미국은 최고선으로 지향하는 한국의 역사적 미래가 온당하다고 보는가? 정권이 진행하려고 하는 좌파 배척론, 우파 결집론은 타당하다고 여기는가? 정권이 비호하는 ‘우파=친일매국세력’일 경우 이들을 한국사회의 우파라고 볼 수 있는가? 사적 이익을 위한 종교집단의 친일화는 수용될 수 있는가?</p>
<p>한국민에 있어 생존, 국익을 위해 버려야 할 것 가운데 한국이 가진 역사, 전통, 문화에 있어 ‘반 일본제국주의’를 토대로 한 반일감정도 포함되는가 아닌가? 그것을 누가 결정하는가? 정권이 국민에게 경제적 생존, 국익을 위하여 일본을 수용하자고 할 수 있는가 없는가? 지금도 ‘야스쿠니’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군사대국화, 팽창주의에 몰두하는 일본의 행위가 한국민에 의해 가감 없이 그대로 수용되고 용서 받을 수 있는 상황인가 아닌가?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은 타당한가 아닌가? 종군위안부는 공창의 창녀인가 아닌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동북아평화를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도 좋은가 아닌가?</p>
<p>국제화를 위하여, 소위 선진화를 위하여 우리의 과거 역사는 버려야 하는가? 한국에서 하나의 정권이 친미수구, 친일수구가 아니고서는 기득권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국민에게) 펼 자격은 있는가? 개인의 삶의 가치에서 친일이 아닌 반일을 수용하는 것이 가능한가 아닌가? 친일, 친미를 토대로 한 국가 정체성을 주장하는 정권이 한국이란 국가의 국익과 정통성을 논할 자격은 주어지는가 아닌가?</p>
<p>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보탬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모두는 명백한 증거가 산적해 있는 물음이다.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더 많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답변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그저 ‘빨갱이’, ‘좌파’를 부르짖는 윽박지름이 수구집단에서 아주 교과서(교본)를 서로 똑같이 배운 것처럼 되뇌어진다.</p>
<p>국민은 이에 저항노선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공권력에 의해 압박 받거나 아니면 경제중심, 친일 친미의 기득권 인정, 무지와 무관심, 소시민적인 안일함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정치를 개편하자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생존 방법이 나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기득권의 유지를 위한 친일, 친미를 선택하는 부류들이 확장되는 중이다. 침묵도 동의에 해당한다. 결국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정권이 아니다. 정권이 미래를 말할 수는 없다. 국민만이 오로지 자신의 미래를 밝힐 수 잇다.</p>
<p>극한의 생각으로 가자면 친일 친미를 수용할 수 없다고 해서 반대하는 이들이 한국을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기꺼이 수용한 자’는 한국을 떠나야 한다. 그도 아니라면 정체성과 정통성, 자주성과 독립성을 스스로 해체하고자 하는 정권이 오히려 ‘그들만의 나라’를 한국의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만들어가면 될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갈등 수준이 아닌 바로 내란의 확실한 징조(徵兆)다. 혹자는 이를 두고 ‘나라 망하기 대회’를 하고 있다고 비꼬았다.</p>
<p>사방팔방을 둘러봐도 지금 정권은 내란과 그에 버금가는 사회 내부의 갈등을 일부러 조성하는 중이다. 그것을 ‘잃어버린 십 년 찾기’라고 하거나 달리 ‘우파 네트워크의 회복’으로 표현해도 그 속내는 ‘친일 친미 수구의 창달(暢達)’에 있다. 반발이 일자 공권력이 동원되고 눈과 귀를 막는 언론장악, 그리고 친정권세력들과 연합한 여론의 조성에 열을 올리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다. 시대가 흘러가더라도 이 시점의 잘못에 대한 ‘백계(百戒)’는 어느 시점에선가 반드시 언급될 것이고 처리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p>
<p>“그리 하고자 하는 자는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설혹 죽음이라 하더라도.”</p>
<h3>19. 미국은 한반도의 ‘왕초’ 노릇에 굶주리고, MB정권은 ‘똘마니’를 자처하며 친일을 키우고, 백성들만 불쌍하게 된 국면이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9" title="toc_19" class="anchor" id="toc_19">#</a></sup></h3>
<p>미국은 여전히 한반도 문제에서 기득권을 가진 당사자로 행세한다. 1945~1948년 남한에 대한 군정(軍政) 이후 1950~1952년 한국전쟁,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한국을 점령한 군대로 상주(常住)해왔다. 주한미대사관은 일제를 대체한 총독부이고 미8군은 관동군과 이름을 바꾼 진주군이 되었다. 국익의 실현에 있어 미국은 한국의 국익을 위해 활동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적과 친구의 율법에 의하면 ‘관리되지 않는 친구는 관리되는 적보다 못하다’는 룰이 적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셈이다.</p>
<p>한국의 반미(反美)는 일종의 자주권 수호 외침이었지만 역대 정권에서 박정희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미국과의 대립각을 유지했던 인물은 없었다. 노무현도 초기의 불편한 관계와는 달리 오히려 ‘친미보다 더한 혐미’를 했다는 역설적 평가를 받는다.</p>
<p>금융위기의 심각성에도 다양한 음모론이 제기되지만 결국 사건의 이면에는 일반 국민이 알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한다. 그것을 혹자는 그림자정부라고도 하고 또는 영향력이 큰 국제금융재벌, 방산업체, 제약업계 등 언터처벌 세력이라고 부른다. 어떤 국익이건 간에 그 가운데 사익(私益)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보장하기는 어렵다. 즉, 이것은 국가 차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세력 싸움과 같은 것이다.</p>
<p>동북아에 있어 이 세력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구도로 정착되는 중이다. 국제금융재벌과 영향력 세력들이 뭉쳐진 미국 중심의 한 파벌, 일본의 극우와 우익을 근간으로 일왕을 배후로 하는 최상부 지도계층, 중화 민족주의를 확산하면서 중국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 그리고 어정쩡한 한반도의 남과 북이 있고, 그 중 남한 내에서 친미수구, 친일수구, 그리고 비 수구계층, 소시민인 국민 등이, 북한 내에서는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는 유일체계파, 친중 실리파, 민족 자주노선파, 피지배 인민 등이 복잡하게 얽혀진다.</p>
<p>이들 간의 관계망은 철저하게 ‘힘과 실리’라는 두 축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보인다. 어떤 이슈가 나오더라도 그 이면에 ‘실리’가 없는 경우는 없다. 그것이 국가로 포장된다 하더라도 때로는 사익이 바탕이 되고 최종목표가 그것으로 안착된다면 국가마저 허울로 사용 가능할 정도다. 유명한 중국식의 이권개입 대응법이 떠오른다. 제대로 수뢰(受賂)를 하는 자는 반드시 두 가지의 질문을 한다. 첫째, 이것이 중국에 이로운 것인가? 둘째, 이것으로 내가 다치는 경우는 없는가?</p>
<p>그러나 이 또한 순진한 발상법이다. 개인의 경우는 가능하지만 국가 사회 내부의 파벌, 세력들은 이마저도 무시한다. 미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과다한 핵 검증방법 요구는 당연히 방산업체의 이익이 숨겨져 있다. 적당한 선에서 유사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수준 이상의 긴장’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과도한 요구가 뒤따른다.</p>
<p>2008.9.26 워싱턴 포스터가 입수한 미 행정부의 북핵 검증체계 안을 보자.</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과거 핵 관련 목적을 가졌었던 모든 지역의 물질에 대해 완전한 접근을 허용하고(full access to all materials),</li>
<li>둘째, 군사시설을 포함, 핵과 관련된 것이라고 판단되는 어떤 지역, 어떤 시설, 어떤 장소든 완전한 접근(full access to any site, facility or location),</li>
<li>셋째, 사찰관들이 필요하다고 여길 경우(as long as necessary)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도 할 수 있어야 하도록 허용돼야 하며, 필요할 경우 반복적으로 방문할 수 있고 샘플을 채취하거나 수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등이 포함되어 있다.</li>
</ul>
<p>이라크 핵사찰관을 역임했던 과학국제안보연구소 소장 데이빗 올브라이트의 발언이 이채롭다. “어떤 주권국가도 그 같은 요구에 대해서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며, 그것은 원하는 대로 그들의 군사지역에 대해 염탐할 수 있는 면허를 달라는 것”이라는 평가다.<br />
같은 날 MB는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이타르타스 등 러시아 3대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옮겨보자.</p>
<blockquote>
<p>“남북관계에서 새 정부는 매우 정직하고 솔직한 대화를 하자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지금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간 것 같다. 문제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것으로, 가장 큰 관건은 북한의 핵을 어떻게 포기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북한이 갈길은 핵포기와 개방뿐이다.”</p>
</blockquote>
<p>이를 위하여 그는 ‘설득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설득을 하는 흉내를 낸 적도 없다. 그냥 ‘먼저 바꿔라’는 공허한 말들만 떠돌아 다닌다. 여기에도 ‘명분과 이유’라는 정치적 표현법은 존재하지만, 결국 MB의 실리에서 대북정책은 여전히 후 순위라는 것을 재삼 확인했을 뿐이다.</p>
<p>그렇다면 이런 MB를 미국은 어떻게 보는 것일까?<br />
미국 내의 여러 세력과 이익단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실리’는 절대 포기될 수 없다. 그 첫 머리는 역시 군사적인 지배력이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안착은 한반도를 위함이라기 보다는 중국을 경계한다는 것쯤은 상식에 속한다. 그로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이 얽힌다. 미국 축산업계의 이익을 보장한 30개월 이상 SRM이 포함된 쇠고기 수입결정은 그 대표적인 예다. 한미FTA를 외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을 대처할 방법은 전무하다. 한국이 미국을 떠나 살 수 없듯이 미국도 한국을 버리고 동북아에서 위치를 유지할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팽팽해야 할 관계는 일방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의존도의 차이에 있다. 한국의 수출의존도가 너무 높다. 그걸 미국은 철저하게 이용한다.</p>
<p>그래서 미국은 친미 코드로 다가선 MB를 활용하기 좋은 대상이라고 본다. 그러나 과연 미국이 MB정권 자체가 친일코드임을 모르고 그를 수용한 것인가? 한국에서 지난 시간 있었던 일정 수준의 반미코드를 제거하기 위해 MB정권의 친일코드 자체를 허용한 것은 두고두고 이야깃거리로 남을 것이다.</p>
<p>그러므로 국익을 따져볼 때, 미국의 영향력이 크다는 걸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현재의 친미는 거의 종미(從美) 이상으로 가는 추세다. 거기에 수구(守舊)라는 기득권 유지계층이 존재한다. 친일 수구도 그렇지만 이것이 확대양산 되면서 친일의 고착화를 꿈꾸고 있는 세력도 나타났다.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가 바로 ‘반북’이다. 미국도 예외 없이 여기에 편승한다. 애초부터 미국은 북한을 쉽게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거나 적성국 교역법에서 풀어주려는 의도가 없었다. 그것도 ‘쇼’였다는 것이 바로 미 군축전문가들이 만들고 강경파 고위급 인사들이 고수하면서 북한에 제시하고 밀어붙인 핵 검증체계에서 드러난다. 저것은 이라크처럼 핵과 화생방무기의 해체라는 명분으로 언제든지 군사적 침략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려둔 긴장의 고조 프로그램이라고 보는 게 옳다. 여기에 중국, 러시아도 동의하지 않았다.</p>
<p>북한은 그간 미국을 꽤 믿었던 흔적이 많다. 그러나 시간은 여전히 미국 편이다. 핵을 포기시키지 못하면 사실상 교류는 없다. 미국, 일본의 이러한 입장을 MB정권은 내부적으로 우파 네트워크를 다지는 데 사용하면서 친일매국세력의 온상(溫床)을 확대한다. 그러니 남북간에 ‘정직하고 솔직한 대화’란 애초 기대하기 어렵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p>
<p>이런 상황은 ‘교착(膠着, deadlock)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짚신 장사와 우산 장사의 차이다. 목적이 다르다. 극복할 수 없는 벽(壁)을 보고 있는 상태에서 지금 이러니 저러니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다. 대화 또한 마찬가지다. 시나리오는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행동이 없는 분석은 한 마디로 ‘헛 짓거리’다.</p>
<p>그래서 나오는 논의들이 바로 ‘역발상’이다. 군사적이지 않고 정치적이지 않는 범위의 경제협력을 더 강화하자는 식이다. 그런데 이 또한 모순에 빠진다. 북한에서 정치 없는 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한에서도 마찬가지다. 남북한 간의 평화협력의 상징이라는 개성공단, 금강산이 죽을 쑨다. MB정권 식의 판단법에서는 이게 별로 효용성이 없으니 문닫아도 무방하다. 먼저 닫자는 이야기는 차마 못한다. 책임소재가 걸리고 국내 여론도 있다. 그러나 닫아도 아쉬울 것 없는 태도다. ‘코리아 리스크’나 ‘코리아 디스카운터’ 같은 남북문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따위도 아예 고려하지 않는다. 목적이 다른 데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건 별로 심각하지도 않다. 그냥 입에 발린 소리로 ‘공동발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만이다. 공허하다.</p>
<p>미국은 애당초 북한을 ‘경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잃을 것이 없다. 다만 ‘경계’를 한다. 북한의 핵 통제권이 요동이 생기는가, 중국이 어떻게 북중관계에서 강하게 드라이브를 할 가능성이 있는가 등등이 고민거리일 뿐이다.</p>
<p>일본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는 척’하고 있다. 그들의 제 일 번 목표는 철저히 남한의 ‘친일화’에 모아져 있다. 대북문제를 다루는 것은 일종의 ‘끼어들기 한 판’(뒤쳐지지 않기), 그리고 ‘기회 노리기’ 수준이다. 딱 그 수준까지만 하면 된다는 가이드라인이 있고 그것을 준수한다.</p>
<p>2008년 9월,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모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각국의 입장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계기로 작용한 ‘와병설’ 이후 쭉 이어져온 추세는 당분간 그대로 이어질 기세다. 지금부터는 총론이 정해진 상태에서 각론이 누가 우세한가를 따지는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거기에 국민도 인민도 있는 한반도가 덩그렇게 참혹한 광경을 펼친다. 이에 무지하거나 왜곡되거나 또는 편협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어쨌건 간에 이 시대를 사는 모습에서 몹시 외로운 백성들이 뚜렷하게 나의 눈에 보인다.</p>
<h3>20. 독재, 반민주, 수구, 종교편향, 기득권 유지를 기본으로는 정권유지가 어렵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20" title="toc_20" class="anchor" id="toc_20">#</a></sup></h3>
<p>9월 26일. 80년대나 있을 법한 이른바 전단지가 광화문의 조선일보 사옥, 프레스 센터 위에서 수만 장 뿌려지는 일이 벌어졌다.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 당시 ‘피(paper) 뿌리던’ 광경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시작되는 중이다. 시대를 안타깝게 보는 사람들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다. 단지 ‘경제’가 문제가 아니라 MB정권이 이끄는 방향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표출이다.</p>
<p>MB정권의 잘못은 무엇인가?</p>
<p>이 정권은 국가운영에 가장 중요한 ‘신뢰’를 상실했다. 정치세력이 국민으로부터 절대 얻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표심’이 아니라 ‘민심’이다. 이것은 포퓰리즘이 아니다. 신뢰란 언행(言行)으로부터 나오지만 이 정권에서 모든 말과 행위는 모두 ‘얄팍했다’는 판정이 옳다. 대신 그 자리를 들어찬 것은 무자비한 밀어붙이기 방법이었다. 민주주의는 실종되었고, 공안정국은 날로 거세진다. 언론 장악이 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은 물론 영혼 없는 공무원 세계가 서서히 정권비호세력으로 커가는 중이다. 종교는 갈등을 빚었고, 패거리 정치화는 도를 넘어섰다. 그 가운데서도 정권의 정체성이 이제는 확연하게 ‘친일을 근간으로 보수로 위장(僞裝)한’ 것임을 대다수 국민들이 알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p>
<p>지리할 정도로 해방 이후 한국 사회 국가 내부에서 벌어진 네 가지 이분법적 논쟁이 있다. ‘수구인가 진보인가’ 하는 것이 첫 번째이다. 이것은 친일인가 친일이 아닌가라는 구분법으로부터 출발했다. 수구는 친미, 친일수구로 이들이 보수를 자처하면서 수구보수라는 말이 등장했다.</p>
<p>즉, 친미파, 친일파의 별칭이다. 그렇다고 진보 모두가 민족주의파는 아니었다. 민족중심은 있었다.<br />
그리고 ‘친북 반북’이라는 구분이 생겨났다. 수구와 진보라는 개념은 고스란히 반북(반공) 친북(민족문제 끌어안기)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바로 ‘반민주와 민주’라는 민주주의론으로 옮아갔다. 즉 독재와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이었다. 이 가운데서도 ‘수구 진보’도 ‘친북 반북’도 마구 뒤섞였다. 거기에는 정통의 민족보수는 민심 속에는 온전하게 자리잡았지만 정치세력으로 드러난 적은 없었다. 김대중 정권도 엄밀히 반독재 세력이지 민족보수는 아니다. 반독재와 민주라는 키워드로 장식되었을 뿐이다.</p>
<p>그 다음 단계가 바로 오늘에 이르렀다. 바로 ‘반 촛불, 친 촛불’이라는 구분이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가 지난 60년 겪어온 모든 혼란이 결집되는 중이다. 즉, 이 땅에 제대로 단 한 번도 꽃피우지 못했던 민족보수의 가능성이 드러나고 있다. 촛불 속에는 온갖 세력이 다 들어있다. 친북도 있고, 친 민족, 민주, 반독재, 그리고 수구가 아닌 보수, 반공이지만 보수인 집단이 섞였고 나아가 정권의 올바르지 못한 정책시행 반대론자까지 합쳐졌다. 색깔이 너무 다양하지만 이 또한 슬슬 정리되는 중이다. 공통분모를 뽑아보면 반 독재, 민주, (친일 친미) 수구가 아닌 어떤 입장이 그것이다. 슬그머니 보수 진보라는 구분법이 의미가 없어지더니 이제는 그토록 사회 갈등의 온상이 되었던 지역주의마저 사라지는 현상까지 보여준다. 물론 아직은 대다수가 완전히 벗지 못한 껍질이다.</p>
<p>이러한 조류는 다시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한다. ‘친 이명박, 반 이명박’이라는 기조다. 그러니까 MB정권의 표상인 이명박이라는 인물에 대한 친반(親反)이 잣대가 되는 것이다. MB가 하고 있는 친일, 독재, 반민주, 반민족, 수구, 종교편향, 기득권 우선 정책 등을 반대하는 이들이 하나의 세력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정치적 공감대가 아니라 세력으로만 존재하다 보니 하나로 집결되고 뭉쳐지지는 않고 있지만 이 기조가 강력하게 이어져가고 있다는 걸 부인하지도 못할 입장이다.</p>
<p>여기에서도 다시 ‘신뢰’는 하나의 뚜렷한 잣대로 남는다. MB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는 측과 MB를 그래도 신뢰하고 지켜보자는 측이다. 그래서 계층이 세 갈래로 분화된다. ‘못 믿겠다. 못 믿지만 지켜보자, 믿는다’라는 형식이다. 정치는 철저하게 불신 당했다. 지금 어떤 정치적 정당이건 촛불민심이 발현되고 난 이후 정상적인 정치집단으로 인정되는 곳은 없다. 그것이 민심의 저변에 일단 깔렸다. 바로 기득권과 비 기득권이라는 구분법이다.</p>
<p>한 사회에서 짧은 시간 드러난 것 치고는 나올 만큼 다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현상에서 국민들은 우려가 점점 깊어진다. 도무지 MB정권이 나라를 흥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망해먹기 대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각적인 반발(反撥)이다. 저항은 소수가 하지만 이 반발심리는 어느 때고 기회가 되면 한꺼번에 터져나올 휴화산 같은 것이다.</p>
<p>정권은 이 민심을 잡기 위해 강공책을 선택한다. 청와대의 눈과 귀는 이미 막힌 지 오래다. 듣지 않고 보고자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용 가능한 방법이 직접적 소통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러니 오히려 국민을 강력하게 ‘계몽’하는 편이 더 쉽다고 느낀다. 공권력의 동원이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준이 되어도, 정책의 집행이 독재에 버금가게 판단되어도, 언론방송의 장악이 많은 무리수를 불러도, 친일매국세력과 개신교 지지세력을 친위로 하는 것이 정권의 평가에 부담이 가더라도 ‘밀어붙이기’를 대세로 정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p>
<p>사건은 여기로부터 벌어질 공산이 높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상황은 의외로 아주 빠르게 올 수 있다. 장악하고자 하는 목표시점에 그 단계를 이루지 못하면 역공(逆攻)을 받는다. 그 행위주체는 국민이 된다는 게 두려운 것이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 번째는 ‘경제’에서 온다. MB정권의 판단은 위기와 그 대응이 국민을 단결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다. 정책에 힘이 실릴 것이며, 소시민의 삶에 바탕 한다면 더 이상 반대의 깃발은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1997년 IMF외환위기를 겪은 국민은 경험칙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면서 ‘망해먹기’를 거의 의도적으로 했다는 것쯤은 알 정도로 국민들의 지적 평가수준이 높아진 상태다. 이 상황은 한 마디로 폭동이 일어나도 할 말이 없다. 경제적 실정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하게 자극적인 소재가 될 듯하다. 그런데 MB정부가 이를 해소할 방법은 없는 듯하다. 일단 지향점이 분명히 대다수 국민을 위한 것은 아니란 게 확실해지고 있다.</li>
<li>두 번째는 수구의 본색을 드러낼 경우다. 한국 사회에서 친미는 일종의 대세다. 비록 효순 미선 등의 사건으로 반미기조는 있었다 하더라도 미국을 동맹국으로 하는 민심이 많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수구 가운데서 ‘친일’은 그 색깔을 달리한다. 독도사태, 교과서 파동 등으로 한껏 국민들의 반일감정이 격화된 상태다. 거기에는 MB정권이 보여준 친일 감싸기, 일본 띄우기가 한 몫을 했다. 만일 ‘친일의 재구성’과 일본의 ‘다시 백 년’이라는 프로그램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에도 국민들의 반발이 없다면 아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보다는 차라리 ‘소일본’(小日本)을 국호로 한국민이 선택했다고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일제 강점기에 이어 다시 한 번 과거의 그것과는 다른 지배구도, 종속구도가 숨지도 않고 표면화되면서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식민지배의 재현이다.</li>
<li>세 번째, 공안정국, 신메카시즘의 확대로 인해 희생자가 속출하는 경우다. 벌써 조계사 회칼테러는 전형적인 정치테러의 유형으로 분류되어야 할 만큼 사회 내부의 공권력이 정권비호세력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민주경찰, 국민을 위한 법조세력이 존재하지 않게 될 경우, 국민들이 선택할 방법은 저항 이외는 없다. 희생자는 늘어나게 될 것이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벌써부터 진행해 온 밀어붙이기라는 정책의 성과가 없는 상태에서 중지시기도 맞지 않게 된다. 전형적인 계획이 엇나가는 경우다. 이 상황에서는 희생이 필수적으로 따른다. 아무리 언론을 막으려 해도 어렵다. 그러나 왜 폭발적이지 않는가? 그것은 촛불민심의 다양성 때문이고 지도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단점이 사회 저변에 광범위한 촛불민심을 전달하는 계기로 형성된다. 그래서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li>
<li>네 번째, 거듭되는 실정(失政)이다. 정권이 들어서고 난 이후 기득권, 정권비호세력, 친위세력만을 챙기는 와중에서 정책은 곳곳에서 아우성을 지른다. 민심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강압까지 동원한 엉뚱한 방향을 고집한다. 이 과정은 어느 한 가지 사건으로 불거지지는 않지만 정권이 일 년이 되기 전까지 드러나게 될 많은 실정이 뚜렷하게 성과를 확인시켜주지 않을 경우, 쭉 이어져온 ‘불신’은 마침내 정권을 퇴진시켜야 한다는 당위로 발전하게 되어 있다.</li>
</ul>
<p>MB 정권은 지금 위기다. 그러나 아무도 이것을 위기라고 말하지 않는다.<br />
정권이 목적하는 바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이 하나 둘씩 드러나는 중이다. 정권의 친일성향이 아니라 바로 친일세력 그 자체라는 사실, 기득권이 아니라 영구적인 기득권을 확보하려는 ‘도둑놈 정권’이라는 것, 그리고 독재와 반민주를 거리낌없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낯 두꺼운 정권이라는 것, 그리고 상위 5%를 위하여 나머지 국민 95%의 희생을 요구할 정권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중에 있다.</p>
<p>2008.9.26 하루에만도 드러날 일은 모두 밝혀졌다. 매일이 이런 식이다. 이념 전쟁을 운운하지만 한국은 지금 시대전쟁을 하는 중이다.</p>
<p>MB는 국회상임위원단장과의 오찬에서 ‘교과서 개편’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p>
<blockquote>
<p>“좌편향을 우편향으로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좌도 우도 동의하는 가운데 정상화하는 것이다.”</p>
</blockquote>
<p>드디어 선진화에 이어 정상화가 나왔다. 그러나 이 개념이 그 자신을 거꾸로 해치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내린 정의대로라면 그는 지금껏 ‘비정상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그랬다고 욕을 바가지로 했다. 그러나 그 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비겁자가 된다. 이 시기를 뉴라이트 집단과 함께 노리며 들어왔다는 점에서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 또한 일본이 내건 ‘정상국가화’와 ‘정상화’라는 개념의 연결은 숨겨진 이면의 노림수가 같다는 것을 말해준다. 철저히 ‘일본판’ 복제현상이다.</p>
<p>더군다나 본격적인 공안정국, 신메카시즘은 시작되었다. 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 사무실 관계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이 국정원에 의해 진행되었다. 국가보안법이 다시 등장했다. 이것은 성공하게 될 것이다. 분명히 ‘친북’은 지난 십 년 한국에서는 ‘통일장사꾼’들이 내걸었던 기본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상황을 이렇게 연출한 후폭풍은 남는다. 드러난 증거가 국가를 ‘심각하게 해쳤다’라는 증거까지 이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시계추가 돌아갔다. 혹자는 이것을 파시즘적 접근이라고까지 평가한다. 확실히 준 파시즘에 가깝게 가는 중이다. 그 키워드는 바로 ‘친북’, ‘좌파’, ‘빨갱이’로 간다.</p>
<p>어느 일 개 처사(處士)의 경고치고는 무겁지만 이 정권은 이렇게 가면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 친일매국세력을 등에 업고 정권이 민초를 수탈하고 포획하려는 자세로 나가는 경우, 반드시 그 반발을 맞게 될 것이다. 또한 국제정치에서 바보가 되어가는 한국의 모습은 스스로 활로를 개척하는 자주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그로 인한 국민 좌절감은 더 극심해져 갈 것이다. 몰라서 고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어 그러는 것을 ‘정책’이라 포장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것이 드러나는 날, 정권은 끝장이 난다.</p>
<p>민심은 절대 오래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지켜보고 있는 것이 더욱 무섭게 다가온다. 앞서 정리한 네 가지의 가능성에서 민심은 어느 시점 폭발하게 될 것이다.</p>
<p>지금 봐서는 국민들의 민심 속에서 정권을 들여다 보며 관찰하는 시간의 한계치는 내년 3월을 전후한 시기 이상이 되지 못할 것 같다. 11월부터 MB정권은 더욱 강력한 통제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 오게 될 것 같다. 그것이 촉발되는 시간까지 감안한 것이다. 그 이후를 장담하기란? 어렵다.</p>
<p>(2008.9.26 止月 山庄에서 쓰다.)</p>
<p style="text-align:right;">이 글은 <a href="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380">스프링노트</a>에서 작성되었습니다.</p>
<br />Posted in 담담당당 Tagged: 독립, 민족주의, 시대, 자주, 촛불정국, 친일파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comments/coreannight.wordpress.com/23/"><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comments/coreannight.wordpress.com/23/"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delicious/coreannight.wordpress.com/23/"><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delicious/coreannight.wordpress.com/23/"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facebook/coreannight.wordpress.com/23/"><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facebook/coreannight.wordpress.com/23/"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twitter/coreannight.wordpress.com/23/"><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twitter/coreannight.wordpress.com/23/"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stumble/coreannight.wordpress.com/23/"><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stumble/coreannight.wordpress.com/23/"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digg/coreannight.wordpress.com/23/"><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digg/coreannight.wordpress.com/23/"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reddit/coreannight.wordpress.com/23/"><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reddit/coreannight.wordpress.com/23/" /></a> <img alt="" border="0" src="http://stats.wordpress.com/b.gif?host=coreannight.wordpress.com&amp;blog=5630345&amp;post=23&amp;subd=coreannight&amp;ref=&amp;feed=1" width="1" height="1"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6%b2%92%e7%9f%a5%e8%a6%ba-%e6%99%82%e4%bb%a3%ec%9d%98-%ef%a7%a4%e6%80%a7-12008926/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media:content url="http://1.gravatar.com/avatar/bc8f883dd78ebe308860a9b0136eadd9?s=96&#38;d=identicon" medium="image">
			<media:title type="html">coreannight</media:title>
		</media:content>
	</item>
		<item>
		<title>어느 민족주의자가 읽는 시대의 외부 통신 (2008.9.5)</title>
		<link>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c%96%b4%eb%8a%90-%eb%af%bc%ec%a1%b1%ec%a3%bc%ec%9d%98%ec%9e%90%ea%b0%80-%ec%9d%bd%eb%8a%94-%ec%8b%9c%eb%8c%80%ec%9d%98-%ec%99%b8%eb%b6%80-%ed%86%b5%ec%8b%a0-200895/</link>
		<comments>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c%96%b4%eb%8a%90-%eb%af%bc%ec%a1%b1%ec%a3%bc%ec%9d%98%ec%9e%90%ea%b0%80-%ec%9d%bd%eb%8a%94-%ec%8b%9c%eb%8c%80%ec%9d%98-%ec%99%b8%eb%b6%80-%ed%86%b5%ec%8b%a0-200895/#comments</comments>
		<pubDate>Mon, 24 Nov 2008 15:44:14 +0000</pubDate>
		<dc:creator>coreannight</dc:creator>
				<category><![CDATA[담담당당]]></category>
		<category><![CDATA[뉴라이트]]></category>
		<category><![CDATA[독립]]></category>
		<category><![CDATA[민족주의]]></category>
		<category><![CDATA[시대]]></category>
		<category><![CDATA[이명박]]></category>
		<category><![CDATA[자주]]></category>
		<category><![CDATA[촛불정국]]></category>
		<category><![CDATA[친일파]]></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c%96%b4%eb%8a%90-%eb%af%bc%ec%a1%b1%ec%a3%bc%ec%9d%98%ec%9e%90%ea%b0%80-%ec%9d%bd%eb%8a%94-%ec%8b%9c%eb%8c%80%ec%9d%98-%ec%99%b8%eb%b6%80-%ed%86%b5%ec%8b%a0-200895/</guid>
		<description><![CDATA[목차 들어가면서 ‘일왕가의 집행자 ’; 궁내청(kunaicho) 일본식 애국주의, ‘다시 백 년 ’을 내놓은 배경 90년대부터 일본이 한국을 본격 겨냥해온 과정에 대하여 북일관계 신중론은 한국침탈 우선론의 변형이다. 동일주의(同一主義)와 사냥개의 양성에 관하여 1910년을 2010 년백 년 만에 다시 완성한다는 그림 카타(型), 다테마에(建前), 왜색(倭色)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틀 북한의 후계승계; 절묘하게도 2010년? 혁명정통승계, 혁명가계승계의 논란에 빠진 북한 , 일본을 [...]<img alt="" border="0" src="http://stats.wordpress.com/b.gif?host=coreannight.wordpress.com&amp;blog=5630345&amp;post=19&amp;subd=coreannight&amp;ref=&amp;feed=1" width="1" height="1"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id="toc" style="border:1px solid tan;background-color:rgb(255,255,250);padding:2px 10px 0;"><strong>목차</strong></p>
<hr />
<p><a href="#toc_0" title="toc_0" class="external">들어가면서</a></p>
<ol>
<li><a href="#toc_1" title="toc_1" class="external">‘일왕가의 집행자 ’; 궁내청(kunaicho)</a></li>
<li><a href="#toc_2" title="toc_2" class="external">일본식 애국주의, ‘다시 백 년 ’을 내놓은 배경</a></li>
<li><a href="#toc_3" title="toc_3" class="external">90년대부터 일본이 한국을 본격 겨냥해온 과정에 대하여</a></li>
<li><a href="#toc_4" title="toc_4" class="external">북일관계 신중론은 한국침탈 우선론의 변형이다.</a></li>
<li><a href="#toc_5" title="toc_5" class="external">동일주의(同一主義)와 사냥개의 양성에 관하여</a></li>
<li><a href="#toc_6" title="toc_6" class="external">1910년을 2010 년백 년 만에 다시 완성한다는 그림</a></li>
<li><a href="#toc_7" title="toc_7" class="external">카타(型), 다테마에(建前), 왜색(倭色)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틀</a></li>
<li><a href="#toc_8" title="toc_8" class="external">북한의 후계승계; 절묘하게도 2010년?</a></li>
<li><a href="#toc_9" title="toc_9" class="external">혁명정통승계, 혁명가계승계의 논란에 빠진 북한 , 일본을 놓치다?</a></li>
<li><a href="#toc_10" title="toc_10" class="external">조총련 사전제거를 위한 움직임; 서울의 친일, 반북과 연계하다.</a></li>
<li><a href="#toc_11" title="toc_11" class="external">포기하지 않는 일본, 공격은 더욱 정밀해진다.</a></li>
<li><a href="#toc_12" title="toc_12" class="external">친일독재; 영혼 없는 삶을 늘인다.</a></li>
<li><a href="#toc_13" title="toc_13" class="external">모든 것은 ‘선택 ’(選擇)이다.</a></li>
</ol>
</div>
<p>止月 山庄에서 쓰다.</p>
<h3>들어가면서<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0" title="toc_0" class="anchor" id="toc_0">#</a></sup></h3>
<p>2008년 9월 이다 . 이 새벽, 나는 하릴없 이 살아가 는 한 사람 의 눈 으로 세상을 본다. 물론 거기엔 대한민국도 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니혼(日本), 중화인민공화국 등도 보인다. 미합중국은 슬그머니 뒤쪽에 얼굴을 비치고, 언저리에 러시아연방도 보인다. 한반도에 깃든 여러 얼굴들 속에는 각자 이 지역을 보는 눈이 있다. 금년 9월 우리는 그들의 눈과 한국의 눈 사이의 가장 큰 무엇이 차별 (差別) 인지를 느끼게 될 듯하다. 바로 ‘힘’(power) 이다 .</p>
<p>2008 년 9월 초 북한의 경제사절단이 동남아 어디론가 떠나 기 바로 전날 일요일에 서울에서는 많은 사건이 있었다. 범불교대회를 마친 후 불교계는 MB가 더 이상 소통불가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찰마 다MB와 MB정부를 규탄하는 법회가 열렸다. 청와대는 여전히 ‘9월 위기설은 없다 ’고 되풀이 하고, 며칠 전 벌어진 마타하리 같았던 여간첩 사건은 누구에 의해선가 과장 되었다는 비판으로 얼룩이 진다. 자유로운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마저 빼앗아 간 것이 21세기 한국 땅에서 벌어진 것도 ‘쪽 팔리는 일 ’이지만, 그보다 훨씬 심각하게 경제의 악순환 구도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으로 번져간다. ‘냄비 속에 든 개구리 ’로 비유되고 서서히 달궈져 가는 불꽃에 고통스런 서민들의 얼굴만 눈에 비친다. ‘소비의 핵겨울 ’이 다가온다. 암담하다.</p>
<p>‘니혼(日本) ’은 서울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밖에서 보는 평가 한 마디. “서울의 청와대( ‘한국 ’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에는 다른 나라 첩자 몇 사람이 있는 것 같 다. ”</p>
<p>일본을 경계하던 한 베테랑 중국 정보요원이 최근 했던 말이다. 그들은 서울보다 도쿄를 더 잘 이해할 대사로 청융화(程永華)라는 인물을 대기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사냥개 ’보다는 괴뢰사(꼭두각시 줄)를 쥔 자들과 일을 만들겠다는 의지표현이다. 한바탕 괴뢰희(傀儡戱)가 벌어질 모양이 라 알고 있고 자신들도 줄 하나를 잡든 아니면 그 줄을 출렁일 요량이 다. 그래서인지 중일 관계는 요즘 들어 더 좋아진다. 일본은 중국에 끊임없이 꼬리를 친다. 제발 조용히 있어달라는 의미인가?</p>
<p>저기 (태평양) 물 건너에서도 서울을 들여다 본 결과가 나온다. 하나같이 ‘우스운 MB ’가 부각된다. 서울의 자화자찬과는 전혀 다르다. 한미동맹은 복원될 것도 강화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사람만 우습게 되었다. 왜 그런가? 이유는 단순하다. 친일 사냥개 의원 왕초 이고 수괴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백성들 중 가기 편만 데리고 노는 ’꼴이 우습다고 보기도 한다. 이건 어떤 한 사람의 견해가 아니다. 적어도 여기를 조망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스토리가 있는 시나리오에 해당한다.</p>
<p>정말 그런가? 그렇다.</p>
<p>한국은 이제 한반도에서 완전하게 소외(疎外)당한 변방이 되었다. 어떻게 아는가? 당사자의 행동반경을 보면 더 잘 보인다. 편가르기를 한다는 말에는 국가의 수장(首長)으로 자격이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뉴라이트 파(派) 대표이지 대한민국을 안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기독교(개신교)라는 종교세력이 정치권력화 되는 과정까지 담겨있다. 집권 이후 즉시 ‘경제살리기 ’라는 테제 를 완성하기 보다는 집중적으로 소수 친위의 대통령으로 급변했다. 그 과정이 드러나면서 비웃음은 더욱 깊어졌다. 물론 이들이 드러내놓고 비웃지 않는다. 오히려 칭찬도 곁들인다. 그 본심을 못 읽는 사람이 바보다. 그러니 환장할 일이다.</p>
<p>MB는 뉴라이트 집단(뉴라이트전국연합)을 8월 28일 청와대까지 불러 들였다. 그 전에도 많이 불러들였지만 비공개 만찬이 아니라 언론에 떳떳하게 내건 공개적 단합대회였다. 청계천을 갔다. 그가 만든 곳이라는 자부심을 안고, 거기서 태동한 촛불민심을 깔고 뭉갰다. 이제 더 물러날 곳이 없다는 비장감이 넘친다. 그러나 믿는 구석이 있다.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고, 그 뿌리를 키운 장본인들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다.</p>
<p>좀 이해하기는 복잡하다. 단순하게 말해야 될 상황이다. “MB는 친일을 위한 특무요원이다. ”이렇게 말해도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게 되었다.</p>
<p>한 국가의 수장(首長)에게 할 말인가 아닌가? 아니, 이제 말해도 된다.</p>
<p>너무 시원스레 속내가 행동으로 드러나 버렸다. 독도문제가 터지던 바로 다음날 ‘독도문제는 그렇지만 일본의 에너지 절약은 배워야 한다 ’는 일본 띄우기는 약과에 속했다. 한반도의 남쪽은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걸었지만 명칭이 바뀌어야 한다. ‘친일찬양국가 ’, ‘친일환경 조성국가 ’, ‘일본과의 철저한 합병 동의국가 ’, ‘사적 이익집단만의 나라 ’, ‘니편 내편 가운데 내편만 있게 만드는 나라 ’등등 이루 열거하기조차 어려운 MB라는 인물의 사고방식이다. 그는 이미 대한민국 을 사랑하는 이 나라 의 사람 이 아니다. 그 놈의 ‘선진화 ’는 ‘친일 선진화 ’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p>
<p>왜 제목이 &lt;시대의 외부통신&gt;이 되었나?</p>
<p>이유가 있다. 보이는 것은 내부다. 외부는 내부로부터 보는 것과 외부 그 자체 속의 외부가 끊임없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MB라는 인물 과 그 주변 을 통해서 일본과 친일, 그리고 그들이 이끌고자 하는 방향을 보았다. 내부로부터 외부로 갔었다.</p>
<p>이제는 외부로부터 아주 성능 좋은 현미경으로 내부를 들여다본 사람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 그 속엔 서울에서 기생하는 친일매국세력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당위가 숨겨져 있긴 하다. 어리석은 ‘출세주의자 ’, ‘기회주의자 ’, 신념포기자 ’, 나아가 ‘제 잘난 맛에 시대를 포기한 방관자 ’들이 지난 얼마간 아주 심각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정권과 뉴라이트. 절묘한 친일의 조합이다. 매국의 행진이다. 시대를 작단(斫斷) 내려고 아주 작심(作心)을 한 부류들이다.</p>
<p>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논쟁에 빠지지 않는 이야깃거리가 있다. ‘정권의 본질 ’이다. MB정권은 어떤 색깔도 없는 무미건조한 ‘실용주의 ’라평가 받는 인물 과단체들로 무장했 다고 하 지만 그런 거짓은 양손바닥 과 몸통을 들이대도 감추긴 어렵다.</p>
<p>개신교 권력자들과 강성개신교도들의 움직임이 유별나다. 친일매국세력은 은근히 그 속에다 몸을 숨긴다. 이른바 ‘종교전쟁 ’이다. 강력한 메카시즘 재현시도 의 와중에서 다른 간첩단 사건이 준비된다는 소리도 들린다. 일본 극우가 환영해 마지 않는 ‘남과 북의 이별노래 ’를 대신 읊조린다.</p>
<p>기만이다. 이것저것 무조건 법치의 잣대를 들이댄다. 근대민주화 과정에서 독재를 막기 위해 작위적인 법 집행을 막아왔던 도구가 어느 틈에 그들 손에서는 ‘법치란 이름의 국민 때려 잡는 도끼 ’로 변질되었다. 명백한 독재다.</p>
<p>경제는? 죽이고 다시 살리면 된다고 접근했다. ‘좆같다 ’-죽었다가도 다시 산다- 는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MB정권의 본질이 이거라고 백주 대낮에 자기 혼자 떠드는 확성기 보다 요란스럽 게 곳곳에서 들린다.</p>
<p>앞서 두 편의 연 속된 글로 오리엔테이션 성격을 겸해서 이 상황을 보는 기초와 고급 편의 수급을 대충 맞췄다. 쉽게 이야기 할 수가 없었던 것은 거기에 국제정치, 경제, 그리고 시대와 역사, 그 속에 담겼던 인간 군상의 면면이 한꺼번에 들어있어서 그랬다. 미국, 중국, 일본이 나 저기 멀리 유럽에서조차 서울의 이런 사정을 모를 턱이 없다. 그들은 동북아시아의 조그만 나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지난 백 년 전의 시기를 읽는다. 아시아에 있는 중국-일본-한국의 관계변동은 그래서 그들에게도 관심사항이다.</p>
<p>시대읽기와 시대경고. 하나씩 뜯어 봐도 무시무시하지만 그렇지도 않다는 주장 도 나온다. 그럴 개연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가능성 수준에서 볼 경우에는 그렇다. 그런데 왠지 그런 태도는 안일하 게 여겨진다. 늘 했던 이야기지만 이 시대의 대한민국은 과거 임진왜란 직전처럼 안일했다는 평가를 받기 딱 좋다. 그 때보다 더 열악해진 상황이다.</p>
<p>MB나 뉴라이트 집단이 나 개신교 권력자들이나 일본기획자나 모두 그런 분위기를 틈타서 비집고 들어와 콘크리트로 자기 아성을 구축하려고 한다. 지금 시점 정도에 ‘빛 대신 어둠까지 봐야 ’직성이 풀릴 요량이다. (그들만의) 어둠의 (국민들을 노예로 만든) 세상에서 지배자가 되고 싶다는 거다. 골자는 이거다.</p>
<p>이 글을 어디까지 써내려 가게 될는지 지금으로써는 전혀 예상할 수 없다. 기분 내키는 대로 쓰는 건 아니다. 지난 두 편의 글을 통해 나는 내가 어떤 위치에서 이 시대를 읽고 있는가를 밝혔다. 그리고 이젠 그걸 하나씩 재구성해볼 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끝으로부터 다시 어디론가 움직이는 행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찾아가는 ‘외부 ’다.</p>
<h3>1.‘일왕가의 집행자 ’; 궁내청(kunaicho)<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 title="toc_1" class="anchor" id="toc_1">#</a></sup></h3>
<p>남의 나라 이야기부터 좀 해보자. 일왕(日王)이야기다. 딱 부러지게 그 사람부터 얘길 시작해야 옳다.</p>
<p>거기서는 ‘천황 ’(天皇)이라고 부르지만 우리의 공식명칭은 여전히 ‘일왕 ’이다. 이 부분에서 한일간은 아직 서로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고 일본은 불평한다. 극단적 민족주의자(극우)의 주장이 ‘천황의 완전한 위세 회복 ’에 있다고 보면, 그들 눈에 한국은 ‘반드시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할 대상 ’인 셈이다.</p>
<p>모든 사건은 여기로부터 벌어진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역사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 으로 존재하는 인식괴리이고 세대가 이어져도 진행될 수밖에 없는 전쟁이다. 단순히 역사교과서나 독도 영유권 주장 같은 표면적인 사건들로 한일 관계의 오늘이 구성된 것이 아니란 뜻이다.</p>
<p>124대 일왕 히로히토(裕仁)는 1923년 사회주의자 난바 다이스케(難波大助)의 저격을 받았고 1932년 에는 이봉창 의사의 폭탄 투척 세례를 받았다. 제국주의 일본에서 ‘천황 ’이 가진 지위로 본다면 이 사건은 곧 그들 제국에 대한 도전이었다. 사회주의자와 독립운동가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이 이어졌다. 1921년부터 사실상 섭정으로 아버지 다이쇼(大正)천황을 대신하고 있던 히로히토는 1926.12.25 왕위를 계승하고 연호를 쇼와(昭和)로 했다. 제국주의는 활발하게 세상을 뒤흔들었다.</p>
<p>1945년 패전을 인정한 이후, 그는 용케도 살아 남았다. 그 과정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결국 일본국 헌법이 바뀌고 현대적 입헌군주로 나타났다. 헌법 제1조~7조에 그의 위치는 잘 나타나 있다. “일본국 및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지위는 주권이 존재하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 ”(제1조) “내각의 조언, 승인에 의해 법률이나 조약의 공포, 국회가 지명한 내각 총리대신의 임명, 국회의 소집중의 국사행위로 제한된 권한이 있다.(제7조)</p>
<p>어디를 보아도 일왕의 권한이 축소된 흔적은 없다. ‘일본국민의 총의 ’에 의해 결정되는 지위라는 말도 애매하기 그지없다. 아마도 메이지 시대 이후 1945년까지 이르는 동안 ‘대일본제국 헌법 ’에 있던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것을 통치한다 ”는 말보다는 완화되거나 다른 형식의 표현 으로 ‘국민 ’이 들어가 있을 뿐이다. 그 밖에는 별로 변화된 것이 보이지 않는다.</p>
<p>히로히토는 1901.4.29~1989.1.7의 20세기 격변기를 살았다. 그리고 그의 아들 아키히토(明仁)시대가 지금도 이어진다. 이른바 125대 천황시대다.</p>
<p>1988년 도미다 마사히코(富田朝彦) 전직 궁내청 장관의 메모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히로히토가 ‘A급 전범이 야스쿠니에 합사되는 것에 불쾌감을 가지고 신사참배를 거절했다 ’는 메모가 세상에 알려졌던 것이다. 그로부터 히로히토에 대한 세상의 의구심이 번졌다. 그는 과연 군국주의자로 팽창주의 정책의 입안에 직접 관여했는가, 그가 주도한 전쟁이었는가, 아니면 그 개인은 평화주의자였 음에도 이들 군국주의자들에게 저항할 수 없었던 가 라는 논란이었다. 물론 결론은 없다. 이미 벌어진 일에 ‘그’는 별로 책임지지 않았다. 그에 대해 해명의 당사자인 일왕가는 아무 소리를 내질 않는다.</p>
<p>흥미로운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일왕가(천황가)는 일본 매스컴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불려도 좋다. 어떤 종 류의 언론 이건 방송이건 인터넷 매체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는 일단 신중하게 접근한다. 보도지침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실제로 이것은 강력한 보도통제 지침이 있음을 의미한다. 누가 지침을 만드는가? 바로 ‘궁내청 ’이다. 그들 조직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했으므로 생략한다. 그건 드러난 것일 뿐이니까. 매스컴은 좀처럼 일본 왕실 에 대한 비판기사를 싣지 않는다. 언론의 상급 간부일수록 이 원칙은 철저히 지켜지고 일왕가라는 단어마저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는 거의 금기 (禁忌) 에 해당한다.</p>
<p>일본이란 매우 경직된 종적(縱的) 공무원 사회 체계 속에서도 궁내청은 일단 ‘베일에 싸인 ’조직인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알려진 내용물이 없다. 그래서 신비한 조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들은 왕실 성원의 크고 작은 사안들을 모두 챙긴다. 심지어 ‘유령조직 ’이라고 평가 받기도 한다. 그림자처럼 움직인다. 그만큼 대외로 알려지지 않았다.</p>
<p>2001.1.6 중앙정부기구 개혁과 연동되어 내각부 설치법에 의해 국내청은 내각부 관할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독립기구다. 연간 예산 약 2.6억불, 인원은 약 1,100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세가지 관점만 꺼내보면 명확해진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궁내청은 과연 일본의 무엇인가?</li>
<li>둘째, 궁내청은 과연 어느 정도 로일본 내외의 정보를 쥐고 (통제하고) 있는 것인가?</li>
<li>셋째, 궁내청의 실행조직은 어디까지 뻗쳐있는가?</li>
</ul>
<p>형식적 지위가 아닌 궁내청의 위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p>
<p>“궁내청은 왕실 규칙의 제정자, 집행자로 권력의 크기가 천황을 능가한다. ”</p>
<p>즉, ‘궁내청이란 조직 = 황실 ’이라는 등식보다 한 걸음 더 나간 말이다. 부등호의 터진 쪽이 궁내청이다. 일본 조직의 특성상 ‘화’(和)를 중시하는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일왕이 위치하고 다시 그 위 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자리에 궁내청은 존재한다. 단순히 수하 개념이 아니라 궁내청 이감독, 조명, 촬영, 시나리오 작가를 하고 일왕가는 배우를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이런 말이다.</p>
<blockquote>
<p>“(사실) 황실성원의 선택권은 없다. ”</p>
</blockquote>
<p>그들이 쥐고 있는 정보의 양은 어느 수준일까?</p>
<p>여기서 제국주의 일본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다. 조선과 중국 등지의 숱한 역사 의미를 지닌 문화재가 그들 손에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당연히 그곳이 집합장소였다. 기증(寄贈)이란 이름의 상납(上納)이었다. 이들은 내용면에서 단순히 ‘자료 ’개념이 아니다. 그 속에는 첩보와 정보, 나아가 결정적인 수준의 증거물들도 포함된다. 즉, 통치자료였던 것이다.</p>
<p>2차 대전 종료시점, 일본 왕실에서만 공식적으로 일했던 사람의 숫자는 6,000명이었다. 지금의 여섯 배 수준이다. 그리고 ‘만세일계 ’(萬世一界)란 곧 일본 내 어떠한 조직이나 인물도 모두 일왕의 네트워크 속에 있었다는 걸 뜻한다. 사실상 입법 사법 행정의 최상급을 통치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것을 처리한 곳이 바로 지금의 궁내청이다. 공식적으로 6천명, 실제 운용은 최소한 10배 수준의 6만 명 이상이었다고 추정된다. 세계 최대규모의 정보조직이다.</p>
<p>당시 집적(集積)된 정보 가운데 현재도 유용한 것이 있을 것이지만 1947 일본 신헌법 이후에도 그 수집정책이 바뀐 흔적은 없다.</p>
<p>생각해보자. 본부 인원 6,000면, 방계인원이 몇 명인지도 모를 조직이 메이지유신 이후 1945년까지 약 80년을 활동하다가 단지 2년 간 본격적인 활동을 못했을 뿐이고, 그 뒤에 계속 이어졌다면 그들의 역할을 중단시킨 것인가 아니면 보강시킨 것인가? 답은 정해져 있다. 그들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것을 멈춘 적은 없었다.</p>
<p>19세기 말 숱한 일본 극우의 결사단체가 ‘천황에 충성 ’을 맹세하면서 활동했다. 1881년 겐요사, 1989년 이치몬사, 1901년 고쿠류카이, 1930년대 케츠메이당, 사쿠라카이까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이들이 일왕가의 촉수였다. 당연히 관리는 궁내부(궁내청) 가했다.</p>
<blockquote>
<p>“궁내청을 통하기 전에는 일본 수상도 천황에게 직접적으로 직언할 수 없다. ”</p>
</blockquote>
<p>이 말은 바로 관리자에 의한 단순한 ‘통로 ’개념이 아니라 형식이 그렇게 완전히 하나의 틀로 구축되었음을 뜻한다.</p>
<p>‘아베노 세이메이 ’라는 인물이 떠오른다. 2001년 영화 ‘음양사 ’(陰陽師)에 나온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일종의 주술사다.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의 실존인물이고 황제를 수호하는 일도 했다고 알려진다. 일본의 전통극인 분라쿠와 가부키에서도 ‘영웅 ’으로 등장한다. 단순히 한 인물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궁내청이라는 조직을 보는 듯하다. 신도(神道)의 수호자 같은 그런 조직 말이다.</p>
<p>제국주의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입수된 ‘정보의 양과 질 ’은 우수할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거의 편집증 같은 기록문화를 가진 그들이니 그런 기대 아닌 기대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그들의 ‘무기 ’라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막상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정보를 가진 측이 항상 우위에 서게 되는 법이다.</p>
<p>한일 간의 정보교류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공안 관계자들의 한국 멸시 분위기는 매우 찐하다 못해 현실적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일본을 조금은 그렇게 대하지만 실질적으로도 열세라는 느낌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왜 ‘하수 ’로 보는가? 표면적으로는 정보의 질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크다. 일단 정보의 깊이가 없다는 생각들을 많이 한다. 정밀하지 않다는 견해들, 바로 그 이면에는 제국주의 시대에 그들이 쌓아둔 축적된 노하우가 존재한다 . 단순히 그들이 첩보위성을 운용하고 있느니 없니 하는 기계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p>
<p>일제시대 우리가 많이 봐왔던 그 악명 높은 특고(特高, 특별고등경찰)나 온갖 분과들을 가진 특무기관들, 그리고 야쿠자 세력을 한 급수만 올려 활용했 던 다양한 극우결사단체나 경찰들이 수집했던 정보들은 고스란히 일본의 전후 공안조직의 기초가 되었다. 그 원본이 궁내청으로, 사본 가운데 일부가 공안조직으로 흘러갔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1978년 이후 서구식 병제를 확립하고 일본군 총참모부가 창설된 이래, 군대 내부의 정보기관의 역할도 만만치가 않았다. 지금도 내각 소속의 내각정보조사실과 통합막료회의와 정보본부, 자위대의 각 정보조직들의 위세는 과거 일본군, 관동군 헌병대와 비교된다.</p>
<p>‘다시 백 년 ’은 궁내청의 작품이다. 이렇게 단언하는 것은 일본의 국가 구조상 그들 이외는 이러한 일을 할만한 조직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p>
<p>2008.9.1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스스로 퇴임을 자처했다. 절묘한 시기다. 앞서 &lt;시대읽기&gt;, &lt;시대경고&gt;에서도 이런 방향을 설명한 바가 있었다. ‘국회가 지명한 내각총리대신의 임명 ’권한은 일왕에게 있다. 임면(任免)이 아니라 임명(任命)이다. 왜 하필이면 이러한 시점에 11개월밖에 안된 후쿠다는 물러나는가 ? 왜 아소 다로는 자민당 간사장 자리를 미리 차고 앉아서 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가?</p>
<p>아소 다로는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의 피와 땀이 서린 후쿠오카 아소 탄광으로부터 이어져온 한반도 활용론자, 그리고 멸시론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당연히 극우로 비춰지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가 극우여서 그런 것 만이 아니다. 그들끼리의 세력, 즉 극우와 우익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이를 현실로 철저히 받아들인 부류에 속한다. 즉, ‘천황입국 ’(天皇立國)이란 사상에 젖어 있다는 의미다. 모리 요시로가 ‘일본은 신(神)의 나라다 ’라고 했을 때, 바로 그 ‘신’(神) 은 ‘천황 ’을 가리켰다. 아소 다로도 예외는 아니다.</p>
<p>궁내청의 작품이 서서히 드러난다. 후쿠다처럼 약간 물러터진 한국 접근보다는 강경한 자세를 유지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의지가 폭발직전의 군부와 민심을 다스리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일설 이나 그런 형세 도 나타나지 만 지금의 일본은 확실히 기획된 기계적인 움직임에 들어와 있다. 물론 그 접근 명분은 간단하다. 일본의 생존을 위해서는 ‘한반도 ’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과거 ‘만주 몽골 필요론 ’과 닿아 있는 개념이다. 그들에 의해 통제 가능한 한반도가 없이 21세기 일본의 안정을 추구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다시 극우분자들을 이끌고 있다. 일본 내에서 극우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환경에서 절묘한 선택을 한 셈이지만, 이것으로 역사는 순환되고 반복된다는 사실도 입증된 셈이다.</p>
<p>일본에서 ‘내각 ’과 ‘자민당 ’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 1955년부터다. 그러니까 일본 신헌법이 1947년부터 적용된 이후, 정확하게 1945년 이후 10년 만에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의 체제로 돌아갔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것을 공백(空白)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p>
<p>궁내청이 관리해 왔던 일본과 해외의 네트워크가 깨어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의 특수를 누리면서 키워둔 경제역량이 그들의 입김을 강화시켰다. 궁내청이 왕실만 지키는 것이라는 것은 사실과 한참 먼 이야기다. 이를테면 일본의 국가 정보조직과 공안조직에 대한 끊임없고 지속적인 연계(連繫)는 ‘왕실보호 ’를 위해 당연한 것이고, 또한 지극히 수직적(vertical)구조를 가진다.</p>
<p>모든 정보가 취합되는 곳, 총리가 누구로 바뀌건 간에 절대 바뀌지 않는 단 한 자리, 바로 그것이 ‘일왕가의 집행자 ’인 궁내청이다.</p>
<h3>2. 일본식 애국주의, ‘다시 백 년 ’을 내놓은 배경<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2" title="toc_2" class="anchor" id="toc_2">#</a></sup></h3>
<p>1996~1999년 기간 나는 궁내청의 숨겨진 얼굴을 찾기 위해 일본을 여러 차례 방문했었다. 이를테면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던 것인데, 그 모든 시도들에 커다란 성공은 없었다. 난공불락의 요새 같다는 생각을 당시도 했었다. 그들 식 표현대로 스스로도 자신들을 ‘유령 ’이라고 하는 대상을 속속들이 밝혀내기란 쉽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다가 희미하게나마 찾았던 것이 바로 일본의 신도(神道) 와의 관계 였다. 일왕가와 신도가 한 몸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후, 나는 다시 궁내청이라는 조직의 촉수들을 뒤지기 시작했다.</p>
<p>1995년 말 ‘다시 백 년 ’(又100)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고 난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염두에 둔 것은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책사(策士)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었다. 즉, 기획그룹 내의 기획자를 뜻한다. 내각이나 심지어 내각정보조사실을 비롯한 많은 조직들에서 인적 변화가 있었다. 1996년경 존재했던 조선반도문제위원회도 조직명칭을 바꾸면서 조용히 나의 조사대상에서는 사라진 것이 바로 1998~1999년 연간이었다. 프로그램이 제거되거나 혹은 변형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겉과 속, 그러니까 기획자가 숨어서 조종하는 시스템이었다는 것이 다.</p>
<p>이 부분에서 1996년 그나마 밝혀 낸 조직인 ‘조선반도문제위원회 ’라는 명칭의 기구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첫째, 대상이 일단 ‘조선반도 ’(한반도) 전체다. 둘째, ‘문제 ’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이것은 한반도에 대한 관찰과 함께 행동을 동시에 하는 조직에 해당한다. 셋째, 이 조직은 브레인들의 집합장소이면서 한편으로는 ‘어디론가 ’기획 안을 올리는 곳이었다. 넷째, 그들의 구성원은 절대 기관의 소속이 아니었다. 다른 신분들을 가진 상태에서 겸직을 하는 구성형태를 보였다.</p>
<p>당시 조직의 수장 혹은 주요 기능자 가운데 한 사람 은 ‘오코노키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였다. 그는 한반도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일본에서는 북한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 왜 북한인가? 그에게 있어 북한은 일본이 반드시 들여다 보아야 하는 대상이다. 그를 위해서 한국이나, 중국, 미국 등을 동시에 본다. 그는 경제전문가가 아니지만 그의 곁에는 항상 경제를 전문으로 지원하는 팀도 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각과 정치계에 전달한다.</p>
<p>1996년 시점에 그가 ‘조선반도문제위원회 ’를 맡았다는 것은 특별히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일본 내 한반도 전문가가 여럿 있긴 하지만 그만큼 ‘두루 ’한국을 섭렵하는 인물은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그가 북한까지도 잘 상대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가 한국에 와서 사적인 자리에서 했다는 말이 당시 한참 유행했었다.</p>
<blockquote>
<p>“한국에는 내 말을 40%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 ”</p>
</blockquote>
<p>꽤나 스스로 대단하다고 자부한 흔적도 있지만 그가 어떤 일을 하고, 또 어떤 방향에서 한반도를 조망하는가를 사실 한국 내에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도 분명하다. 그가 단순한 학자는 아니었다. 적어도 영향력만을 놓고 볼 때, 그는 당시 어떤 정부부처의 사람보다도 대한반도 문제에서는 나름 입김이 강했던 흔적은 역력했다.</p>
<p>그렇다면 그 위원회는 어디 소속이었을까? 형식적으로는 내각정보조사실이 유력하다.</p>
<p>일본의 내각정보조사실은 규모 면에서는 다른 나라의 국가정보기관에 비해 빈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일본의 정보관리체계는 기본적으로 소속 단위만 연결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단체감시 체계가 성립되어 있다. 즉, 기업과 학생, 언론, 기관 등 파견조직 구성원 이 모두 일체화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이다.</p>
<p>이것은 해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NHK는 일본의 공영 텔레비전 방송이지만 해외 특파원들이 수행하는 업무 가운데서는 분명히 취득한 기밀에 대한 정부제공이라는 명목이 붙어있다. 공인된 스파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매우 적극적이며 공격적이다. 그로 인한 문제를 ‘누군가 ’커버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p>
<p>이들의 보고는 일정한 규칙에 의거해서 ‘정부 ’로 전달된다. 해외정보에서 ‘공안유해 ’라는 딱지가 있는 경우에는 여러 조직들이 함께 개입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내각정보조사실이 그 업무의 창구가 되는 셈이다. 이런 것을 모르고 내조실을 들여다 보면 빈약하다거나 좀 약한 것 아닌가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다. 한 가지 특이사항은 이 조직 자체가 기본적으로 상설과 특별채용 형태(단기직), 나아가 해당부처 종합파견의 형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처 이기주의가 작용할 수 있지만 한 가지로 이들은 통일된 업무수행을 해나간다. 바로 일본식 ‘애국주의 ’다. 나는 이것을 ‘동일주의 ’(同一主義)라고 부른다.</p>
<p>공식적으로도 내각조사실은 외곽단체를 많이 가지고 있다. 세계정경조사회, 국제문제연구회 등이 있다. 비공식적인 것도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내조실이 직접 운영하는 케이스 말고도 이른바 ‘아마쿠다리 ’(낙하산인사)의 형태로 관리되는 경우 (별도의 외곽조직) 도 있다. 다른 정부부처의 정보도 내각부 관방장관 예하의 내각 정보관의 지휘 체계에서는 정보취합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p>
<p>‘조선반도문제위원회 ’는 형식적으로는 내조실 산하에 있는 특별 연구조직이 라 봐야 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배치는 일본 내에서는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형식으로 본다 . 조직이 어느 수직명령 체계 속에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일을 하는가에 따라서 업무범위나 명령 수령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당시 이 위원회의 주요업무는 ‘남북한 양측에 일본의 세 (勢) 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과제가 있었다. 즉, 수비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공격에 방점이 찍힌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다.</p>
<p>내가 의아스럽게 생각했던 부분은 내각의 잦은 총리의 교체 과정에서도 정보조직, 기관, 위원회의 활동이 어떻게 일관되게 유지되는가 하는 점이었다. 여기에 일본만의 특수한 구조가 작용했다. 다시 궁내청이 여기에 등장한다.</p>
<p>내각정보조사실과 궁내청의 관계는 궁내청이 그들 내부의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전혀 외부로 밝혀진 바가 없다. 이런 이야기에 주목해보자.</p>
<blockquote>
<p>“내조실은 내각 총리에게 보고하는 것보다는 궁내청에 보고하는 것이 먼저다. ”</p>
</blockquote>
<p>정보기관의 위계질서에서 궁내청은 내각총리의 임명권을 가진 일왕가의 권한을 더 중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즉, 일본국 헌법 제7조에서 ‘제한된 권한 ’에 대한 해석은 일본 내의 문제에 속한다. 당연히 내각총리실 산하의 두 기관 간에는 연계가 있지만 일왕가에 대한 부분만큼은 서로 직접 연관성을 말하기가 어렵다. 관행이 적용된다. ‘내각정보조사실-관방장관-궁내청 ’으로 이어지는 연계 구도가 존재한다. 보다 직접적일 수도 있다.</p>
<p>메이지유 신 이후 1945년까지 일본의 정보계는 모두 일왕가의 관장(管掌) 하에 있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것이 잠시 신 헌법 적용 전까지 2년간 멈추었다가 재가동되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일왕가를 ‘포획 ’하는 궁내청은 이를 가동시키는 핵심부서가 될 수밖에 없다. 1945년 이전까지 활동했던 일왕가에 충성을 맹세한 결사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일본 공안경찰과 공안조사청에서도 언터처블인 야쿠자와 창가학회는 1945년 이후 재편되는 과정의 산물이고 당연히 이들에게는 ‘공안유해단체 ’라는 명칭 을 붙이기가 무색한 것이다. 그렇게 국가 공안부서가 터부시 하는 영역이 존재한다.</p>
<p>‘조선반도문제위원회 ’는 그 목적만으로 본다면 기존 내각정보조사실의 외곽단체와는 다르게 사실상 궁내청이 소관하던 업무라 할 수 있다. 궁내청의 현 인원은 표면적으로 약 1,100명 수준이지만 그것만으로 일본 내 정치조직, 정치인, 그리고 해외까지를 넘나드는 광범한 정보망을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하는 일본인들은 없다. 그들 특유의 네트워크 관리방식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조차 이야기하기 꺼려한다. 그것이 바로 일왕가가 가진 위력이다. 일왕가는 궁내청의 소관을 받는다고 보면, 궁내청에 의해 움직이는 일본의 모습이 눈에 확연히 들어온다. 그리고 그 속에 ‘조선반도 ’(한반도)를 들여다 보는 궁내청의 눈이 존재한다.</p>
<p>일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생활권 ’에 대한 부분이 주종을 이룬다. 정보나 혹은 국가 운영체계, 그 가운데서도 외향적인 업무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들이 흔하다. 그 가운데 일왕가를 둘러싼 내각과 내각기관, 그리고 일왕가라는 세 가지 함수가 존재한다. 제국주의 시대, 나가노 정보학교를 비롯한 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 조사부의 위력은 패전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들이 사실상 정부 및 기업의 정보 파트를 창설하거나 좌지우지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들과 내각정보조사실의 관계는 당연히 이어졌다. 물론 궁내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관리 ’되어왔다고 본다. 민간급에서 이름을 떨치는 노무라총합연구소, 미쯔비시총합연구소, 일본아시아경제연구소 등 기업연구소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p>
<p>왜 이들은 이렇게 힘을 가지는 것인가?</p>
<p>몇 가지의 상황을 짐작 가능하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역사적인 연원이 있다. ‘125대 천황 ’이라는 단순한 역사성이 아니라 메이지 유신 이후 현대화된 체계 속으로 들어오면서 그들이 가진 관리 시스템은 매우 정밀해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li>
<li>둘째, 인물에 대한 부분이다. 궁내청의 인원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형식적 으로는 분명히 공무원이지만 그들 인원들의 사용 또한 궁내청 내부의 관리체계를 따른다. 독립된 기구인 것이다. 인적 체계에서 새로운 인원의 물갈이 보다는 현재의 인원 또는 그 인원과 관련된 친인척의 세습까지도 눈에 띈다. 한 마디로 입헌군주제라고 하지만 실제로 궁내청에는 헌법의 적용보다는 자신들의 조직체계 우선이라는 구호가 더 적절하다.</li>
<li>셋째, 이들의 규율이다. 기본적으로 일왕가 내부의 이야기는 확실히 외부로 나가는 것이 통제되어 있다. 그들의 업무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정보통제가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이 전통은 꽤나 강력하게 유지되는 편이다. 몇 개의 드러나서 활동하는 부서를 제외하고는 정보보안은 거의 생활화된 조직이다.</li>
<li>넷째, 규칙의 제정과 집행의 힘이다. 일왕가의 개인이 아니라 이건 조직이다. 관리를 위한 위엄, 관례적인 이행, 그리고 행동패턴까지도 궁내청은 통제력을 가진다. 또한 그것을 실질적으로 집행까지 한다.</li>
</ul>
<p>이렇게 놓고 보면, ‘일왕가-궁내청-내각-내각정보조사실(공안청, 공안조사청 등) ’간의 유대관계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떤 형태로건 정부기관과 연동된 조직, 단체, 기업, 개인의 경우라도 이 고리(link)에서는 자유로운 당사자가 아니라 연계된 틀로 작용한다.</p>
<p>그렇다면 왜 ‘다시 백 년 ’은 그 시점에 즈음하여 입안되었는가? 그것을 어떻게 집행하려고 했던 것인가? 이런 의문들이 나온다. 사실 이 부분이 막히는 대목이다. 상세히 밝혀지려면 그 내부의 소식이 나와야 하는 데 그것이 어렵다는 건 척 봐도 안다.</p>
<p>거꾸로 이것을 뒤집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이건 예상이 아니라 상황을 복기해보면 나오는 그림이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일본은 여전히 제국주의, 팽창주의를 버린 적이 없다. 군국주의는 일본이 가진 수단이지만 미국이란 존재가 있는 한 쉽게 완성을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새로운 형식의 제국주의를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 일왕가 유지의 기본에 속한다.</li>
<li>둘째,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가장 상대적으로 읽기 쉬운 한국을 겨냥한다. 당연히 북한도 그 대상이다. 한국에는 뿌리깊은 친일의 역사가 있다. 서로의 관계유지가 복잡하지는 않다. 사회 내부의 기득권으로 1945년 이후에도 꾸준히 연락선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li>
<li>셋째, 1910년 시점에서의 당위성을 상기한다. 한반도와 일본 간을 둔 일본식의 사고에서는 124대 일왕 시대에 완성하지 못한 부분을 125대에서는 완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포함된다. 그것이 바로 2010년이며 군사통치가 종료된 시점에서 ‘문민정부 ’가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기획의 타이밍을 잡았다.</li>
<li>넷째, 90년대 일본의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팽창주의가 재 가동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li>
<li>다섯째,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의 생존을 위해서는 중국을 견제하고 나아가 잠재적 적들(중국, 러시아)과의 전선을 형성하고, 실질적인 적(북한)과의 대치에서 가장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일단 한국 공략을 필요로 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li>
<li>여섯째, 군국주의의 부활은 그만한 사안의 발생에서 가능하다. 한일 간에는 독도문제, 역사 교과서문제 등의 사안이 쉽게 끝나지 않을 문제다. 여기에서의 쟁론을 만들지 않고서 일본이 대륙과의 접점을 찾을 방법은 없다.</li>
<li>일곱째, 일본 내부에서의 극우정치의 쇠퇴가 현실화 되었다. 90년대부터 극우의 존재타당성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엷어졌다. 어떤 형태로건 극우는 일왕가를 호위하는 사상적 배경이고 나아가 그들이 절대적 지지세력이다. 보편적 우익은 일왕가의 존폐를 위협하는 추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에 대비해야 한다는 등의 판단이 내부적으로 가능했던 시기다.</li>
</ul>
<p>이 가운데 어느 상황도 그들의 필요성을 뒤집지는 못한다. 그래서 입안은 전격적인 것처럼 보였고, 나아가 ‘지금은 (드러내놓고 추진하기는) 그렇지만 천천히 추이를 본다 ’는 개념이 적용되었다. 협조자들이 필요했고, 이를 일본 내 한반도 전문가들로 먼저 외곽에서 세우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수순이었던 것이다.</p>
<h3>3. 90년대부터 일본이 한국을 본격 겨냥해온 과정에 대하여<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3" title="toc_3" class="anchor" id="toc_3">#</a></sup></h3>
<p>90년대 일본에게 가장 충격이 컸던 사건은 바로 1994년 김영삼-김일성 간 예비되었던 ‘남북정상회담 ’이었다. 1994.6.28 남북한은 7.25에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해방 이후 50년이 되기 전에 남과 북이 현실적인 협의를 정상끼리 하게 된 것은 일본에게는 가장 두렵게 여길만한 사안이었다. 사실상 남북간의 통일은 일본이 전혀 바라는 바가 아니며, 또한 친하게 지내는 것조차도 좋아하지 않는다.</p>
<p>그것은 바로 한국 내에 심어둔 ‘친일의 잔재 ’가 그로 인해 완전파괴 될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에 기인하는 바 크다. 통일된 한국이 가지게 될 ‘반일성향 ’을 생각한다면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의 생존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침략했던 자의 입장에서 보면 침략당할 수 있다는 위험성에 대한 우려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p>
<p>그러나 1994.7.8 김일성 당시 주석 은 심근경색으로 사망을 한다. 김영삼 대통령 은 그 직후부터 특별한 이유 없이 개인적으로 ‘북한 패망론 ’에 심취하게 된다. 정보기관의 보고보다는 측근들의 첩보를 맹신하고 또한 희망을 정책으로 착각했던 그 시대의 유감스러운 장면이 이어졌다.</p>
<p>북한은 사상 초유의 상중통치 를3년 간 이어 가면서 대량아사를 부른 ‘고난의 행군 ’기간을 맞게 된다. 일본은 다행스럽다고 여길 만도 했지만 이 사건이 준 충격은 남한, 북한 양측을 모두 새롭게 조명해봐야 한다는 내부적인 각성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전면적인 조명으로 번졌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CIA의 요청에 의한 대 공산권 정보 수집에 집중하던 일본의 정보기관들은 남북한이라는 두 변수를 공산권 정보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빠르게 확장을 개시하게 된다.</p>
<p>1994.10.21 북미간 제네바 기본합의서 가 서명되고 그 다음 해인 1995.12.15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경수로공급협정이 체결된다. 북핵 문제의 타결과 함께 남북간의 협상이 하나의 틀을 자꾸만 갖추어가던 시점이었다.</p>
<p>그 이전까지 일본이 연구하던 한반도 문제는 남과 북이 별개의 대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북한에 대해서는 권력층의 도덕적인 긴장 해이나 혹은 국가적 취약점을 분석하는 데 급급했고, 남한에 대해서는 남북한 간의 접근 자체가 결코 남한 단독의 일이 아닌 국제문제라고 언급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러한 접근법은 일본이 개입 당사국이 되지 못하는 한계에서 비롯된 대응방식이었다. 철저히 가십성 위주의 정보수집과 폭로는 이어졌다. 그러나 이 시점부터 일본은 직접 개입을 위한 본질적인 사전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북한을 국가로 취급하지 않을 정도로 무시될 수준 에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매개로 작용한 것이 바로 ‘핵’이라는 존재감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 최초의 피 핵폭 국가라는 멍에는 일본으로 하여금 북한이란 대상에 대한 경계감을 더욱 높인 감도 있었다.</p>
<p>미국이 일본의 미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없다는 생각도 극우주의자들에게는 강하게 각인된 시점이었다. 미일 동맹의 한계가 바로 한반도의 격변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까지 보는 견해들도 대두되었다. 미국의 핵우산만으로 자신들의 방어적 역량이 구성되었다고 보지 않게 되는 시점이었다. 거기다가 사회적으로는 다양한 이슈와 시나리오까지 제기되었다. 이른바 북한의 난민사태 예상도 그런 종류에 해당한다.</p>
<p>북핵문제가 미북 간의 합의에 의해 경수로 공급으로 타결되기는 했지만 결국 그러한 일련의 조치들에서 일본은 소외되었다. 직접 당사자가 아니었고, 경수로 건설에 자금을 투입하지만 정치적 협상에서 개입여지 는축소된 상태였다. 일본의 정책 막후에서 이런 논의들은 더 이상 미뤄둘 게재가 되지 못했다.</p>
<p>이 시기는 일본에서 이른바 ‘망언 ’(妄言)이 본격적으로 개시되던 때이기도 하다. 1977년 후쿠다 다케오 총리, 1984년 아베 신타로 외상, 1992년 무토 가분 외상 등이 ‘독도 영유권 ’을 두고 망언들이 있었다. 그나마 간헐적이었다. 그런데 1994년 시점부터는 본격적인 망언의 시대,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도 이어졌다. 1994년 5월에는 법무장관 나가노 시게토 (永野茂門 )가, 8월에는 환경청장관 사쿠라 이 신 (櫻井新 )이, 10월에는 통산장관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郞 )가 &#8220;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 이 아니라 구미열강으로부터 아시아제국을 구하기 위한 방어전쟁이었다&#8221;라고 말하며 한일 관계 자체를 후끈 달구게 된다. 이것은 다음해에도 이어졌다. 1995년 6월과 10월에는 전(前) 부총리 겸 외무장관 와타나베 미치오 (渡邊美智雄 )와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 (村山富市 )가 한일병탄조약의 합법성을 주장하여 한일관계를 악화시켰다.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일본의 관료들에 의한 이른바 망언이 집중된 것일까 를 생각해보면 그 이유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p>
<p>1985~1995년 제1차, 2차 엔고시대를 겪었던 일본은 누적된 엔화절상, 과잉설비 문제, 세계적인 경제성장율 하락, 높은 엔화절상율 등의 긴 침체의 터널을 겪었다. 그 마지막 시점이기도 하던 그 때, 일본의 극우는 마치 서로 약속하고 분업이라도 한 듯 근 현대사에 대한 재해석을 요구하고 나섰던 것이다. 1995년 진도 7.2의 고베 대지진으로 6,400명이 사망하는 사건을 연초부터 겪었고 도쿄 지하철에서 사린가스가 살포되는 사건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망언은 그 이후 쭉 이어졌다.</p>
<p>왜 그 시점부터였을까? 이 질문이 다시 대두될 수밖에 없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치겠다 ”고 응수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일본의 식민지역할론, 독도영유권 문제, 태평양전쟁 합리화 의지는 전혀 꺾이지 않고 오히려 구체적인 행동 수순까지 밟기 시작했다.</p>
<p>내가 기억하는 당시, 일본은 확실히 북한의 패망 가능성에 대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분위기였다. 김일성의 사망으로 인해 남북관계의 통일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지거나 혹은 진전되는 사태는 막았지만, 오히려 북한의 격변 시나리오에서 일본 이 소외될 가능성은 한층 더 깊어져 갔다 . 아울러 최악의 시나리오도 나왔다. 바로 북핵이 일정한 수순을 밟아서 일본에 타격을 가하는 도구로 돌변하는 경우의 수다. 즉, 북한의 최후 도발에 대한 가능성이었다. 일본은 북 한이 남한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겨냥한 최후의 무리수를 감행할 위험성까지 내다보고 있던 참이었고, 심지어는 남북한의 연합 작전까지도 고려했다. 한미일 동맹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p>
<p>이러한 분위기에서 일본이 선택한 반응이 바로 ‘망언 ’이다. 조용히 앉아서 당할 수 없다는 생각과 한시바삐 군사적 주도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모두 내비쳤다. 일본은 서서히 군사적 재무장에 돌입했다. 거기에 미국도 협조 자세로 돌아섰다.</p>
<p>미국의 입장에서 일본과 한국 양측을 놓고 보면 일본이 그들의 전략적 마지노선임에는 분명하다. 남북 관계라는 특수상황에서 한국의 선택은 김영삼의 취임사 발언처럼 “어떤 동맹보다 민족이 우선 ”이라는 심리적인 저변을 깔고 있고, 이것은 단순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매우 태생적이고 본질적이라는 판단으로부터 이 구분법은 성립한다. 그러므로 미일 동맹은 언제나 한미 동맹의 우위개념이 적용된다. 단순한 경제적 협력관계의 크기나 규모로부터 출발된 개념이 아니라 지정학적, 심리적 판단기준을 동반하고 있다.</p>
<p>이것이 바로 일본의 ‘다시 백 년 ’, 그리고 그 이전단계의 ‘친일의 재구성 ’이라는 프로그램이 서울에 시도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미국의 묵인 하에 벌어지는 일본의 한반도 친일화 공작의 서막 (序幕) 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접근법의 태동은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도 보여진다. 그러나 일본은 더욱 본질적인 프로그램으로 이것을 가속화 시킨다. 바로 ‘극우의 재구성 ’이다.</p>
<p>일본 사회 내에서 1955년 자민당이 집권 이후 한 번도 권력을 내놓지 않는 거대한 항공모함 정치집단이 된 이후, 이들은 끊임없는 사회 내부의 도전을 받아왔다. 공산당, 사회주의자 그룹들로부터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 등은 일본의 극우와 우익 성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는 시도였고 그에 반응한 정치권의 대응은 일왕을 중심으로 한 ‘우익의 고양(高揚) ’작업들이 필요했었다. 일본을 움직이는 두 개의 우익노선이다. 첫째, 일왕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팽창주의 시대 만세일계 정책의 당위성 회복. 둘째, 일본의 국가 정체성과 프라이드 재구성을 통한 우익역사의 정당성 주장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역사인식 ’과 관련된 것이고, 이를 쟁론화 시키지 않으면 일본의 극우와 우익노선 자체가 무너질 위기도 있다는 생각을 정치 막후에서는 심각하게 고려한 때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회 내부에서 더 이상 가시적인 상 대가 점차 사라지고, 따라서 외부로부터 그 쟁점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는 논의와 유사했다. 그 때 바로 북한의 핵개발 문제가 터졌고, 일본은 그것을 활용한 재무장과 우익 살리기의 방향을 동시에 진행하게 된다. 그 선봉은 바로 ‘궁내청 ’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들은 이 일의 직접당사자였다.</p>
<h3>4. 북일관계 신중론은 한국침탈 우선론의 변형이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4" title="toc_4" class="anchor" id="toc_4">#</a></sup></h3>
<p>북한이 부분적인 경제 개방을 선택한 것은 1991년부터다. 이른바 함경북도 지역의 일정 부분을 특구로 하는 ‘나진 선봉 자유무역지대 ’방안이 나오고 1993년부터 외자유치를 위한 해외투자 설명회가 활발하게 펼쳐진다. 1995년 당면단계 1995~2000, 전망단계 2001~2010이라는 조정을 거치고 1996.9, 1998.9에 걸쳐 나진 선봉 현지에서 투자포럼까지 개최하게 되었다.</p>
<p>해당 지역에 있던 잠수함 기지를 비롯한 해군 주요시설들이 모두 철거되는 등 의욕적 으로 해외투자 도입을 준비했지만 이 지역 개발은 현재 실패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추진의 동력이 붙기에는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난 상태다. 당시 열렬하게 ‘황금의 삼각주 ’라고 부르던 그 지역은 왜 이렇게 실패하게 되었나?</p>
<p>김일성은 김영삼과의 1994.7.25 정상회담을 앞두고 “‘ 나진 선봉지역 ’을 남한을 위해 준비했다 ”고 말하고자 준비했던 흔적도 있다. 일종의 조차(租借) 개발까지도 생각했던 것 같지만, 1994년 그의 사망은 나진 선봉에 대한 추동력을 잃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평가도 있다. 국가의 수반이 없는 상중통치에서 제대로 굴러갈 프로젝트가 있는 게 쉽지는 않았다. 거기다가 80년대 후반 이후 동구 공산권의 몰락은 북한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돈이 필요했지만 체질적으로 자본주의적 거래에 익숙하지 않았던 관행이 9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아사사태를 불러왔다. 북한 붕괴론이 김일성의 사망 이후 꾸준히 이어졌던 이유기도 하다.</p>
<p>일본은 나진 선봉 지대 개발에 한 몫을 단단히 했다. 노무라연구소를 비롯한 일본의 여러 연구기관들이 초기 나진 선봉 개발 청사진을 제시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일본은 그 지역에 투자를 하지 않았다. 니이가타 등지에서 숱하게 많은 나진 선봉과 일본의 동해 연선 도시와의 연계성이 부각되었으나 정작 일본기업은 북한에 진출할 생각조차 않았던 것이다. 불을 지피고 멀리 떨어져서 불구경을 하는 태도를 보다 못한 북한측이 일본에 수 차례 직접 가서 투자 구애를 했지만 별 로 소용이 없었다.</p>
<p>이 시기는 현재의 사태를 파악해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1995~1998년 사이 일본이 북한에 취했던 태도는 그 이전 일본의 대북정책이 관계개선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임기응변적 대응을 해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시간 끌기 수준이었다는 것이다.</p>
<p>왜 그런가? 일단 북일관계의 그간 역사를 정리해보자.</p>
<p>북일관계는 1955.2 북한 외상 남일이 ‘대일관계에 관한 외무상 성명 ’이라는 형태로 관계개선 제의를 한 이래 1954.12 하토야마 정권이 북한과 경제관계 개선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1956.3 일조무역협회 창설, 1957년 3,400만불 규모 무역협정 체결, 1958년 일본실업단의 북한 방문, 그리고 1958.12~1967.12까지 156차에 걸쳐 8만 6천여 명의 재일 조선인 집단 북송이 이루어지게 되었다.</p>
<p>이어 70년대 냉전구조가 데탕트 구조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1971.9 김일성의 아사히 신문 인터뷰는 북일관계의 당시 현황을 명확히 보여준다. 김일성은 일본과의 국교수립은 물론 그 전 단계에 무역, 자유왕래, 문화교류, 기자교환 등을 희망하고 동시에 일본 국회의원의 방북을 정당 여하를 불문하고 환영한다고 언급했다. 1972.9 마이니치 신문과 인터뷰에서는 남과 북에 대한 어떠한 침략적 성격도 가지지 않는 균등한 정책 실시를 주장했다. 이에 일본도 1971.11 자민당을 비롯한 초당파 국회의원 240여명에 의해, 일조우호 촉진의원연맹이 결성되고 1972.1 평양을 방문하기에 이른다.</p>
<p>1987년 12월 미소간의 중거리 핵전력폐기조약(INF)의 체결을 계기로 시작된 동서 냉전의 완화 움직임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쇄적인 붕괴, 소련연방 해체로 이어진다.</p>
<p>1988.7 노태우 대통령의 일본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반대하지 않고 협력할 것을 천명한 ‘7.7 선언 ’은 일본에게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길을 터준 계기로 작용했다.</p>
<p>일본 정계의 막후권력자인 가네마루 신(金丸信) 이등장하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1989.3.30 다케시다 노보루 수상이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북한과의 불행한 과거에 깊은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한편 북한과 관계개선 추진의사를 밝히고 이를 사회당 다나베 위원장을 통해 김일성 주석에 전달하게 된다. 다케시다 총리를 비롯해 4명의 총리를 자신이 직접 골랐다는 정계 실력자인 가네마루 신은 북일관계 개선에 직접 나서게 되었다. 그는 1990.9 평양을 방문, 김일성을 만나면서 200억불에 달하는 배상금 도 토의했다. 이른바 3당 선언도 나왔다. 1991년 남북한의 화해와 불가침을 규정한 남북 기본합의서가 체결되고, 일북 간에도 조일 선린우호조약안에 제시된다.</p>
<p>당시의 분위기로만 본다면 북일 관계는 비정상적 적대관계를 금새 청산할 수 있는 듯이 보였다. 아울러 전후 처리 가운데 일본이 해결하지 못한 채 유일하게 남 겨 두었 던 문제를 종결할 수 있는 계기를 찾는 듯 보였지만 1992.8 택배회사 사가와규빈으로부터 5억엔의 정치자금을 받은 이른바 가네마루 신의 사가와규빈 스캔들이 터 진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가네마루가 중의원 사임 뿐만 아니라 자민당 부총재직까지 내놓게 되고 경찰의 자택 수색에서 유가증권, 현금, 금괴까지 발견되는 대형 사건으로 번져가면서 일본의 대북접근도 조기타결론보다는 다시 신중론이 우세한 흐름으로 전환 되었다. 이후 소수 보수세력이 일본의 한반도 영향력 제고란 관점에서 대북문제 해결을 주장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북일 양국관계는 철저히 대립적 사안으로 팽팽하게 유지되게 된다.</p>
<p>대체로 일본 내의 이러한 현재의 신중론 입장은 다음 세 가지를 이유로 정리되는 추세다. 이것이 바로 그들 식의 ‘다떼마에 ’(建前)다.</p>
<p>첫째, 일본인 납치문제와 관련한 북한의 태도에 대한 문제다. 둘째, 북한의 핵개발, 미사일 발사 등 호전적 준비에 대한 우려다. 셋째, 일본 국내의 정치, 경제적 상황이다. 공명당, 보수당과의 연립정권을 구성하는 자민당이 대북 외교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지만 항상 여론 에발목이 잡힌다는 견해다.</p>
<p>이른바 1994,10 북미 제네바 합의 이후 1997년 일본인 소녀 납치 의혹, 1998.8 북한 대포동 미사일 발사로 이어지는 와중에서 90년대 후반 북일 관계는 냉각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2002년 고이즈미의 방북에도 불구하고 다시 2002.10 북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문제는 계속 원점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혹자는 일본의 대북정책이 장기전략이 없다고도 하고, 북한의 대북 전략이 일본에 대응할 수준이 아닌 정치적 완고성에 기인하므로 북일간 관계 청산이 원천적으로 어렵다고도 한다.</p>
<p>과연 어디에 진짜 문제가 있는 것인가?</p>
<p>일본의 대북정책의 제 일 번 우선 순위는 역시 북핵 문제다. 이것은 미국과의 공조에 의해 일본이 앞서 나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즉, 미국의 대북정책이 어떤가에 일본의 입장이 연동되어 있다는 의미다.</p>
<p>일본의 90년대 이후 독자적인 대북 수교접근은 1991년 가네마루 신 방북을 통한 그 이듬해의 조일선린우호조약안 협의, 2002년 고이즈미 방북을 통한 평양선언, 2007년 6자 회담(2.13합의)에서의 북일 양국 협상틀 삽입이란 세 시점의 분기가 있었다. 이들 시기별 진전은 각각 동서냉전해체 와 1991년 한-러 수교 , 남북관계의 밀착 분위기 고조 , 북핵 문제 해법 모색이라는 순차성이 있다.</p>
<p>남북관계가 가까워지는 경우, 일본의 대북접근도 뒤따르지만 지금의 경우는 남북관계의 악화 환경 속에서 일본의 대북접근이 개시된다는 차별성을 보이는 셈이다. 겉으로 보기에도 남북관계와 북일 관계는 연동성이 크게 보인다. 그리고 이면에 숨겨져 있는 무엇인가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이 겉으로 표명하는 명분과는 다른 진짜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다. 즉 ‘혼네(本音) ’를 찾아야 한다. 현재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기초로 해서 북일 관계의 실상을 톺아 보면 재미난 그림이 나온다.</p>
<p>90년대 1996.3.38 가네마루 신이 사망한 이후부터 북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사가와규빈 사건이 정말 충직한 한 검사인 이우치 겐사쿠(井內顯策)의 끈질긴 조사에 의한 작품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다. 일본 정치의 복잡미묘함은 그들 내부에서조차 피아(彼我)를 잘 식별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니까.</p>
<p>아울러 그 시점부터 북한 붕괴론, 위협론, 그리고 납치문제와 더불어 비정상적 상대라는 여론은 고조되었다. 경제적으로도 일본열도 개조론으로 등장했던 과열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장기적인 경기침체 가 왔다. 이것은 써먹기 아주 중요한 명분이 되었다. 절묘하게 북일 관계 자체를 중단하고 오히려 일본 사회내의 언터처벌인 ‘조총련 ’을 제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시간을 벌어들이게 된다. 강력한 대북제제가 진행된다. 이 부분은 뒤에서 따로 정리해보기로 한다.</p>
<p>대북 접근 을 틀어 막은 상태에서 한국을 제일 타 겟으로 삼는 침략 전략이 구사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다면적이지만 집중된 전술에 해당한다.</p>
<p>이 시기는 철저하게 일본은 한국 내의 ‘친일의 재구성 ’을 염두에 두 고 움직였 다. 북한까지 챙겨볼 생각이 애당초 없었고 오히려 붕괴론을 확산시키면서 일본 내부의 북한요소 (조총련) 를 제거하는 작전이 구사되었다.</p>
<p>재일 본조선인총연합회(조 총련 )는 불법자금 추적, 세금 , 압류 등 공권력의 집중된 포화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북한은 총련 으로부터 공급되던 자금, 물자 등이 끊어지는 등 북일 간 수면 하에서 연결되던 시스템은 비정상적으로 가동되게 된다. 고난의 행군으로 200만 명에 가까운 아사자가 북한에서 발생하고 탈북자들이 급증하던 시기, 일본은 오히려 대량난민 사태에 대한 우려 분위기를 일본 사회에 강하게 퍼트렸고 ,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는 아예 북일 관계 자체의 진전 자체를 막은 결정적 계기로 삼았다. 각본이 훌륭하게 짜졌다.</p>
<p>축적된 여력을 가지고 IMF 직전 김대중에 대한 (창가학회를 후방으로 내세운 ) 선거지원을 통해 IMF로 시장개방의 정책 조정을 당한 한국 내 에일본 세력의 저인망식 상륙을 진행한다. 김대중 정권 시기 일본은 한국 사회 내부에 일차적인 진입을 완성했고 다음 단계로 돌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 볼 수 있다 . 한편으로 남북한 간의 2000년 제1차 정상회담 이후, 그에 따른 적절한 수준의 대응도 필요했던 시기였고 이에 고이즈미는 평양을 방문했다. 그리고는 즉시 납치자 문제, 북핵 문제를 화두로 꺼내면서 이 회담을 중단시킨다.</p>
<p>2004~2007년까지 일본은 철저하게 대북 강경노선을 유지한다. 한국 내에서 본격적으로 ‘식민지근대화론 ’, ‘친일찬양론 ’이 불거지던 시기였다. 친일, 친북 논쟁이 달구어진 배경에 일본은 조용히 서있지만은 않았다. 노무현 정권시기 친일진상규명 및 재산환수 등 강력한 반일(反日)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사냥개 ’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 시기, 일본은 철저한 반북 스탠스를 유지하며 북한 정권의 비도덕성을 부각하는 외곽지원을 한다.</p>
<p>이러한 일련의 노력들의 성과로 MB정권이 집권을 하게 된다. 뉴라이트 집단을 주축세력으로 한 정권은 더 이상 일본의 적이 아니다. 완벽하게 한국의 친일 세력이 구축된 2008년 시점에서 더 이상 북일 관계를 미룰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기초로 두 가지 선택을 앞두고 있다. 남북한 관계의 지연 속에 북일 관계를 진척시키는 게 옳은가, 아니면 한국 내의 친일의 재구성과 ‘다시 백 년 ’을 매듭짓는가 하는 선택이다. 물론 지금은 두 가지 모두 병행되고 있다.</p>
<p>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9.1자 사임은 일본의 새로운 작전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후임인 아소 다로의 등장은 오래 전부터 예고되어 있던 수순이기도 하다. 아소 다로 에 의해 펼쳐질 다음 단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친일의 재구성 ’이라는 단계의 완성을 선언한 것이고, 다음 단계로 들어간다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p>
<h3>5. 동일주의(同一主義)와 사냥개의 양성에 관하여<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5" title="toc_5" class="anchor" id="toc_5">#</a></sup></h3>
<p>‘기획 ’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 보자.</p>
<p>나카네 지에 (中根千枝) 의 표현에 의하면, 일본의 관료조직은 근대적이며 제도화된 것이지마는 ‘오야붕 꼬붕 ’으로 상징되는 일본 토착의 조직과 원리적으로 궤 (軌) 를 같이하는 것이 틀림이 없다. 한국의 관료조직의 원조가 일본의 관료조직이라는 해석과 판단이 많지만 이것이 왜 외형적인 부분만 그런 것 -내면은 다른 것- 인가를 설명할 방법은 많다. 바로 일본의 토착조직과 한국의 그것 간에 차이점이 있고, 그래서 문화와 기질이 다르게 변형되어 나타난다. 일을 하는 행태가 ‘종(縱) 집단 ’이란 유사점과는 다른 내부적인 각각의 특질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습성도 틀린다.</p>
<p>가장 다른 부분이 바로 ‘궁내청 ’이다. 조직을 베껴올 수는 있었지만- 해방 이후 일제시대의 공무원 사회를 답습하는 과정에서 연결된 부분-사회 시스템, 국가 체계를 그대로 옮겨오지는 않았던 부분이다. 즉, 대한제국의 멸망 이후 한국이 왕조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에 비해 일본은 ‘일왕 ’이라는 입헌군주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일왕가는 궁내청에 의해 관리되고 있거나 또는 일왕가가 궁내청에 협조하고 있는 시스템이다.</p>
<p>왜 이 부분이 중요한가? 모든 조직이 그렇지만 조직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삼각형의 꼭지점의 가장 윗선에 있는 부분이 아래까지 파급효과를 그대로 이어간다. 당연히 궁내청은 일본 국가조직의 모델이다. 이것은 일본의 폭력집단인 야쿠자에게도 그대로 드러난다. 본가의 시스템이 그 아래로까지 4~5단계에 걸쳐 이어지는 것이다. 일종의 복제현상이다.</p>
<p>60년대 일본은 극심한 ‘안보투쟁 ’의 시대를 보냈다. 당시 일본의 관료와 정치계가 선택한 해법은 공권력이 아니라 야쿠자에 협조를 구한 것이었다. 그들은 대학생, 노동자, 사회당원의 시위를 무자비한 폭력을 동원해서 진압했다. 거기에 경찰이 오히려 부속 협조자 같은 구실을 했던 것이다. 이 관계는 ‘정치인-야쿠자 ’의 관련성을 부여하게 된다. 가네마루 신이 폭력조직 이나가와카이(稻川會) 회장에게 자민당 총재의 경호를 부탁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그렇다면 일본 왕실(궁내청)-정치계-관료-야쿠자의 각 층마다 유사한 관리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한국에서는 엇비슷하지만 실제로는 겨우 몇 퍼센트 정도만 복제된 무늬로 나타나게 된다. 일본의 눈으로 보자면 한국이 ‘가짜 ’이거나 ‘조악(粗惡)한 수준의 복제품 ’으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p>
<p>이 시스템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이 바로 ‘우익(극우) ’의 입장을 가진 이 집단의 구성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건 간에 이것은 ‘기획된 ’움직임이다. 그러므로 매우 ‘기계적인 조합 ’이 그 속에 늘 도사린다.</p>
<p>이런 일본의 조직적인 사안(事案) 접근법에는 특징이 몇 가지가 있다.</p>
<p>첫째, 막후(幕後) 조정을 중시한다. 공개된 조정보다는 항상 후선(後線)에서 기본적인 골격을 모두 챙겨놓는다. 이것은 일종의 틀이며, 틀이 만들어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원리와 흡사하다. 둘째, 막후의 책사(策士)를 포스터로 설정한다. 어떤 사안에 있어서 책임자가 존재하고, 그 일에는 반드시 기획자가 설정된다. 조직의 수장이 있는 반면 간사(幹事)가 존재하고, 그 조직의 브레인이 간사 또는 다른 인물에 의해 기능하는 시스템이다. 셋째, 섹셔날리즘(sectionalism)에서 ‘탈취(奪取)와 분열(分裂) ’의 순간을 포착한다. 즉, 세력 간에 ‘화’(和)가 깨어지는 경우에는 각자 그 해당 섹션을 흡수해버리거나 아니면 흡수하고 다시 분열을 반복하는 시스템이 빠르게 작동한다. 물론 이것도 막후 컨트롤이 개입된다. 넷째, 이러한 전체적인 것에 최상위에 두는 가치(價値)를 설정한다. 여기에서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라는 이유와 명분 이 다른 적용법이 존재한다.</p>
<p>‘친일의 재구성 ’, ‘다시 백 년 ’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본의 이와 같은 접근법을 보지 않고서는 전체가 파악되기가 어렵다. 물론 이것은 철저한 ‘기획 ’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봐야 한다.</p>
<p>‘궁내청 ’이 이 번일의 당사자란 흔적은 일본이란 국가 사회의 시스템과 제국주의 팽창주의 역사, 그리고 일본과 일본사회의 정합성(整合性), 정치계와 극우, 우익의 틀과 동향을 전반적으로 취합해본 결과, 결론으로 얻어진 것이다. 그들은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롤 모델 ’(role model)에 해당한다. 즉, 기획을 할 줄 아는 곳이라는 의미다.</p>
<p>대개 이러한 ‘기획 ’과 ‘음모론 ’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향이 크지만 기획은 음모론과는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다. 즉, 매우 실천적이며, 어떤 목표점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언제든지 변용(變容)을 한다. 상황에 맞춘 변화나 변신이 언제든지 자유롭고 단순한 사안을 위한 접근이 아니라 매우 종합적인 구성원들의 움직임이 함께 이어진다. 이것을 도식화하면 하나의 꼭지점에서 계속 분화되고 다시 분화되다가도 일정한 역할 변화가 모색되어야 할 경우 그 꼭지점은 분화가 벌어지지 않는 형태로 나타난다.</p>
<p>어떤 경우에는 분화 자체를 멈추기도 한다. 즉, 사안의 진전 필요성이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구성원들의 생존을 위하여 일정 수준의 숨 고르기가 벌어지거나 아니면 전혀 엉뚱한 한 점을 통하여 사안 자체를 포장하고 위장하는 경우, 또는 그 자체를 아예 원 꼭지점이나 파생 꼭지점의 계보에서 떼어내는 경향까지도 있다. 즉, 기획 (planning) 이란 음모(conspiracy)에 비해 오히려 게임 이론(game theory)에 근접한다고 표현도 가능하다. 물론 본질은 이것이 ‘일본식 기획 ’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특질(specialty)를 당연히 가진다. 보편적이지 않다.</p>
<p>이 기획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기획이 추구하는 바와 동질성이 부여된 꼭지점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경우는 바로 ‘파괴 ’가 벌어진다. 즉, 꼭지점 아랫부분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p>
<p>특이점이 있다. 기획을 수행하는 집단의 구성에서는 반드시 ‘동일주의 ’(同一主義)를 기본으로 한다. 즉, 일왕을 중심으로 한 체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 집단 내의 어느 성원에 의해 추천되거나 혹은 동의를 받는 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전제조건에 해당한다. 본류(本流)에서 적용되는 이 원칙은 철저하다. 그러니까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자들은 활용개념이거나 혹은 이용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물론 그 인증체계는 매우 복잡하고, 당연히 이들과의 연결점은 철저하게 분화된 꼭지점에서 관리된다.</p>
<p>‘사냥개 ’의 관리 시스템에서 일본식 기획과 기획자의 특질이 여실히 보이는 부분이 바로 이런 점이다. 사냥개는 스스로는 꼭지점의 꼭대기에 위치한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또한 분화를 한다. 그러므로 집단의 수장(首長)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는 매우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도 하는데, 자신 이외의 다른 꼭지점에 의한 분화를 보면서 둘 혹은 셋, 넷으로 번져가는 확산의 기조에서는 스스로 중심에 서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구도다.</p>
<p>은밀함이 부여된 기획 본류와는 달리 기획수행 집단이 전면에 나서면서 자신들이 주체(主體)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고도의 ‘기획 ’에 속한다. 이들 간의 연결점은 누가 그 꼭지점에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며 각기 성향도 다르다.</p>
<p>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친일의 재구성 ’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현상이다. 크게 세 개의 꼭지점이 움직이며 하부로 파생 분화작용을 일으켰다.</p>
<p>하나는 안병직 류에서 파생된 학자계열, 또 다른 하나는 안병직 류가 파생하면서 흡수한 정치계열, 김진홍을 중심으로 한 정치조직화 계열이 존재한다. 신지호처럼 훼절 386들이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아닌 재단으로 합쳐진 이유는 간단하다. 이 세력들 간의 삼각형을 빠르게 유지하기 위한 편법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세력의 확산에 슬그머니 합세한 부류들이 바로 서경석 류, 대형교회들이다. 그러니까 이들 간에는 교류가 있으되 서로가 서로를 ‘다르다 ’고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어둔 시스템이다. 당연히 독립적이라고 대외적으로는 주장할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p>
<p>이와 같은 접근법은 꼭지점의 상부에서도 각각 다른 형태의 수직체계를 구성하게 되어 있다. 즉, 이들은 동일하지 않은 일본기획자의 하부 꼭지점에 의해 각각 관리되지만 그 꼭지점은 다시 상부의 관리자를 둔 형태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은 일본기획자에게 취합되는 구도다.</p>
<p>일본기획자는 필요에 따라 일본 내의 다양한 ‘동일주의 ’에 동의한 세력들을 활용하여 이런 시스템에 개입한다. 그러니까 이 기획자의 손에 의해서 파생된 꼭지점은 각각 역할을 하게 되므로 관리상 엉키거나 서로 중복되는 행동은 벌어지지 않게 되고, 나아가 행위 자체의 종합적인 조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정작 행위자도 자기가 많은 일의 내 외연 확장에만 신경 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냥개 확산 ’을 위한 일본기획자의 체계다.</p>
<p>기획 치고는 매우 무서울 정도로 치밀하게 보인다. 겉보기엔 한국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민심(民心)과의 갈등현상과는 달리 자기네 내부에서는 별로 흔들림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p>
<h3>6. 1910년을 2010 년백 년 만에 다시 완성한다는 그림<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6" title="toc_6" class="anchor" id="toc_6">#</a></sup></h3>
<p>이제 무엇을 기획하는가에 주목해볼 차례다. 앞선 몇 편의 자료들에서 일본의 공격루트를 열 한 가지로 정리해본 바가 있다. 그것은 경로(route)를 의미한다. 모름지기 한 나라를 침탈하기 위해서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가능한 일인데도 일본기획자는 이것을 ‘날(生)로 ’먹을 수 있는 기본조건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바로 태생적인 친일이 그것이다.</p>
<p>굳이 해방직후 친일청산이 미비 되고 조절된 이유를 다시 꺼내거나 이후 친일수구 집단이 한국 근 현대사에 어떻게 입지를 가졌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것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대목이 바로 오늘 벌어지는 중이다.</p>
<ul class="checkListType">
<li>
<p>첫째, 자생적 친일이다.</p>
<ul class="arrowListType">
<li>안병직 류는 예상하지 못한 자생적 친일에 속한다. 나카무라 사토루의 이론에 심취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이것을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학술적 연구 수준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친일 ’그 자체로 확산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건 안병직 류의 개개인에게 따져 물어봐야 하는 일이다. 정치적 성향이나 출세주의, 자기과시욕, 그리고 여러 가지의 복합적인 원인이 그 속에 담겨있다.</li>
</ul>
</li>
<li>
<p>둘째, ‘친일 ’의 정치 세력화다.</p>
<ul class="arrowListType">
<li>MB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은 뉴라이트 집단이다. 그들은 지난 십 년 이론적인 바탕이 미약하던 한나라당을 헤집고 들어가서 ‘신 우익 ’이라는 기치를 들고 완전히 한국의 주류정당을 탈취했다. 그들이 대세다. 그러므로 친일이 한국정치의 대세로 자리를 잡아 버렸고, 나아가 정권 자체도 친일로 포장을 시켜 버렸다. 김진홍은 친일을 통해 신보수의 좌장을 희망했고, 실제로도 그런 자리까지 간 상태다.</li>
</ul>
</li>
<li>
<p>셋째, 종교를 활용했다.</p>
<ul class="arrowListType">
<li>개신교(기독교)가 한국에서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지독스러울 정도의 배타성이었다. 그것은 첨예한 경쟁환경과도 연결된다. 50년대 이후 우후죽순처럼 신학대학들이 만들어지고 사회와 도시 속에 수도 없는 붉은 십자가를 꽂아두게 만들었다. 한정된 인구 속에서 늘어나는 목사들을 소화하지 못한 과포화 상태의 개신교는 해외선교 등 다양한 형태로 눈을 돌리긴 했지만 그들이 가진 기득권에 위험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들 끼리 담합을 시작했다. 바로 정권의 자금을 통한 사회사업 영역을 건드리고 이를 거의 독과점처럼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을 위협 받는 것은 곧 그들의 밥줄이 위태롭게 되는 걸 의미한다. 당연히 이를 지키기 위하여, 또한 다른 종교가 가진 영역까지 넘보기 위해서는 공격적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의 컬트 성향은 한국이란 국가 정체성이나 정통성보다는 철저히 ‘개별적 이익 ’이란 영역에 머물고 있어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현저하게 낮다. 바로 여기로 친일 바이러스가 침투했다.<br />
이 과정은 추후에 아주 면밀하게 그 진행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이들이 정치적 세력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맛본 실패는 이른바 ‘기독당 ’의 설립과 대선 총선 참여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실패한다. 그 상태에서 뉴라이트 집단과의 연결점을 구성하게 된다.</li>
</ul>
</li>
<li>
<p>넷째, ‘반공(反共)과 반북(反北) ’을 새로운 형식으로 구성한 것이다.</p>
<ul class="arrowListType">
<li>여기에 결정적인 대상이 바로 훼절(毁節)386들이 기능한다. 특히 이들 가운데서 김대중-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정치노선에서조차 역할을 하지 못했고 소외(疎外)된 사람들이 집중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1997년경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정확하게 김대중 정권이 ‘민주 ’(民主)라는 개념으로 정치적 성향을 자리매김하게 되는 때와 겹쳐진다. 즉, 주사파 등 친북성향의 학습된 인물들이 사회 속에서 입지를 전혀 가지지 못하는 상황과 연동되는 것이다. 이들의 변절(變節)을 생존을 위한 단순한 선택으로 폄하하는 이유기도 하다. 이들을 통해 ‘친일을 위한 반북 ’이란 새로운 유형의 반민족주의가 형성된다.</li>
</ul>
</li>
<li>
<p>다섯째, 추종(追從)이다.</p>
<ul class="arrowListType">
<li>그 동안 한국 사회의 주류에 해당하던 의식흐름 가운데서 친미(親美), 숭미(崇美), 종미(從美)라는 단계별 점증법이 일본에 대해 서는 바로 ‘숭일 ’(崇日), ‘종일 ’(從日)로 건너뛰기를 한다. 이것은 ‘친일 ’(親日)이란 개념자체가 이미 반민족적이며 반도덕적이라는 한국 사회 내부의 상규(常規)를 교묘하게 은폐하려는 시도에 해당한다. 그래서 ‘선진국을 배워야 한다 ’는 주장 속에 ‘선진국=일본 ’을 대입하려는 노력이 치밀하게 구성된다.</li>
</ul>
</li>
<li>
<p>여섯째, ‘역사 ’를 타고 들어왔다.</p>
<ul class="arrowListType">
<li>겉보기에도 친일사관이다. 뉴라이트가 꺼낸 비장의 한 수는 ‘친일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인데, 그것은 바로 ‘경제를 잣대로 본 근 현대사 ’라는 구성을 가진다. 교묘하게 경제제일주의를 내걸며 대한민국 역사를 재단했다. 이승만-박정희 시대의 재평가와 연관시키며 친일의 기여가치를 식민지근대화에서 친일 기득권의 경제발전 역사로 이어가고 있다. 이것은 박정희 추종론자, 박정희 시대에 향수를 가진 세력들을 편입하고, 나아가 반북의 정당성, 반민족주의의 당위성, 그리고 기득권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선전하는 적극적인 홍보에 해당한다. ‘건국절 ’추진 은 바로 그 전초작업이었다. 문제는 이 시도 자체가 바로 일본의 극우민족주의자들의 팽창주의 당위론, 경제발전 우선론이 가진 개념과 흡사하고 동일하다는 점이다. 한국 근 현대사를 일본이 쓴 셈이다.</li>
</ul>
</li>
<li>
<p>일곱 째, ‘경제 ’가 다시 저변에 깔린다.</p>
<ul class="arrowListType">
<li>신자유주의 정책 하에서 한국은 수출을 해서 먹고 살고 국제사회의 룰을 따라야 하며, 그렇게 해서 시장의 파이를 키워야만 한다는 테제가 가동되었다. ‘경제살리기 ’가 의미하듯이 노무현 정권의 경제 가 죽었다고 선동한 끝에 정권을 잡았지만 한국 경제는 새로운 동력을 발견하지 못하고 사실상 IMF 사태 이후의 조정 속에서 경쟁기반이 부실해진 상태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었다. 이 부분에서 MB정권 초기의 ‘경제정책의 역주행 ’은 설명하기 정말 난해하다. 산업경쟁력이 바닥인 국가경제를 부동산, 민영화, 부자를 위한 감세정책 등 대기업 프랜들리, 토건국가, 공기업 매각 이런 것으로만 살리려 드는 것은 반드시 실패할 정책이다. 여기에 가장 무서운 복선이 깔려 있다고 본다. 바로 사적 이익이 국가운영에 개입한다는 점이다. 이것도 일본기획자의 고려대상임은 물론이다.</li>
</ul>
</li>
</ul>
<p>‘친일의 재구성 ’은 이처럼 다양한 기획 방향을 가지고 움직여 왔다. 학술적 접근으로부터 종교계의 동향 활용, 메카시즘적 친북 배척 논리의 교묘한 배합, 그리고 경제를 통한 추종과 결합까지 모두 범벅이 되어 있다. 그 상태에서 ‘친일의 당위 ’주장은 두 가지의 절대적 가치실현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바로 ‘다시 백 년 ’의 완성이라는 일본기획자의 표상적인 그림과 실질적인 한국의 영구적 지배라는 관점이다. 이 둘은 같은 개념이다.</p>
<p>1910년을 2010년에 백 년 만에 다시 완성한다는 그림은 무엇일까?</p>
<p>일왕의 한국 방문은 그 동안 몇 차례 한국에서 먼저 제기된 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서는 ‘환영 받지 못하는 일왕의 한반도 방문 ’은 그들의 자존심을 해치는 계기로 작용될 것을 우려했다. 그의 방문은 누가 결정하는가? 아키히토 일왕은 ‘정부가 정하는 것 ’이라고 했지만, 이 사안은 바로 궁내청이 확정한다. 오코노키 마사오가 ‘일왕의 2010년 방한이 한일 관계의 잣대 ’라고 한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명확한 한일관계의 기준점이 된다. 어떤 의미인가?</p>
<p>일왕이 한국에 오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를 따져보자.</p>
<p>일단 히로히토 천황 시대와 그 이전의 과거사가 정리되어 있지 않다. 여전히 논쟁중인 사안이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까지도 이 일에서는 직접 당사자다. 전체적인 해결 틀이 모색되지 않았다. 또한 한국의 뿌리깊은 반일감정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그가 방문기간 과연 얼마나 극심한 반대가 나타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부분은 서서히 해소되는 기미를 보인다. 2008.4.22~23 리얼미티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왕의 한국방문은 찬성 48.8%, 반대 40.8%로 찬성이 우세하다. 이 정도 수준에서도 오란다고 올 수 있는 곳은 아니라고 평가한 셈이다.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고 봤다.</p>
<p>그렇다면 와야 하는 이유는 뭔가? 결국 한국 땅에 발을 디디는 것은 바로 ‘인증 ’(認證)이 된다. 한일간 선린우호관계라는 좋은 명분이다. 그러나 양보할 것도 많다. 그걸 하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게 과제다. 극우 우익의 입장에서는 일왕이 다시 사과를 하는 것 자체가 치욕이 된다. 그들이 망언을 할 수 있는 정당성을 깨트려 버린다.</p>
<p>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시기는 자꾸 무르익는 중이다. 기본적으로 일본은 국가 미래 생존을 위해서 과거에도 그랬듯이 대륙으로의 통로를 뚫고자 한다. 그래서 수 차에 걸친 무력침공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실패했던 경험도 그들은 인식하고 있다. 일왕의 방한이 단순하게 한일간 동반자 관계를 확인해주는 수준이 아니라 일본에 의해 ‘통제되는 ’서울이 되기를 바라는 셈이다.</p>
<p>그러나 과연 일왕의 2010년 방한이 화해의 서막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차라리 ‘(미국) 국무성 동경지점 ’이라는 그들이 인정하기 싫은 현실을 벗어나려는 간절함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옳을지 모른다.</p>
<p>더군다나 일본은 과거사를 전혀 잊지 않 고 있다. 그네들이 기억하는 제국주의 팽창주의의 정당성을 이제 드러내놓고 ‘옳았다 ’라고말한다. 일본 사회 자체가 21세기에 들어 급격하게 우경화하는 경향도 보인다. 일왕의 상징성이 더 두터워진다. 그래서 혹자는 통일이전 일왕의 방한은 그 자체가 바로 친일의 표상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p>
<p>그러나 한국 사회는 자꾸만 일제강점기를 잊어가는 경향이다. ‘미 래를 위해 과거를 잊자 ’던 MB는 독도영유권과 역사교과서, 신사참배 등 세 가지 폭탄을 일본 방문 후 뒷통수에 맞았다. 2008.2.1 그는 당선인 시절 아사히 신문 후나바시 요이치 주필 등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p>
<blockquote>
<p>“일왕의 한국 방문에 어떤 제한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p>
</blockquote>
<p>2010년의 의미를 헤아리지 않고 무조건 적절한 수준의 ‘화해 ’가 필요하다고 등을 떼미는 수준을 넘어서 한국의 친일 찬양파임을 자임하는, 마다 않는 뉴라이트 집단도 있다. 그들은 분단역사의 정리보다 한일관계의 ‘선진화 ’에 목을 맨다. 정권마저 언론과 방송의 장악을 통해 그런 분위기를 교묘하게 조성한다면, 그래서 일왕 방한이 당위성마저 얻는다면 일왕은 한국에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에둘러 표현했지만 직설적으로는 바로 그 때가 2010년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오코 노끼의 말에 담겼다. 지독스런 복선이었다.</p>
<h3>7. 카타(型), 다테마에(建前), 왜색(倭色)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틀<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7" title="toc_7" class="anchor" id="toc_7">#</a></sup></h3>
<p>‘왜색 ’(倭色)은 왜 위험한가?</p>
<p>우선 이 단어부터가 관건이 된다. 역사적 반감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이 말의 의미는 훨씬 포괄적이다. 우리는 무엇을 왜색이라 정의 하는가?</p>
<p>문화상대주의 측면에서 보면 일본은 당연히 그들 식의 특질을 가지고 있다. 그들만의 고유한 체계 같은 것이다. 굳이 그런 왜색문화에 대한 콤플렉스를 말할 필요는 없다. 그건 일정 수준 교류와 보완이 되면서 우열을 가리게 되는 것이니까.</p>
<p>‘왜색 짙다 ’, ‘지극히 일본적이다 ’라는 용어로 상대를 단숨에 왜색이란 단어로 포획해버리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왜색이 있다는 사실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걸 못 보아서 바로 이런 사태가 오고 있는 것이니까.</p>
<p>어떤 이는 이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이를 따라야만 하는 현실주의적 일본인 ’이 만들어낸 색채라고 표현했다. 즉, 가타(型)를 극히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고토(琴)나 사미센(三味線)의 전통음악, 스모, 다도(茶道), 엄격한 서간문이나 고전문학 속의 형식주의 등에서 발견되는 ‘틀’의 문화다. 여기에서는 철저하게 ‘다테마에 ’(建前)의 세계, 그 발현을 볼 수 있다.</p>
<p>나카네 지에처럼 이를 사회인류학적으로 ‘장(場) ’에 의한 집단의 형성, 평등주의, 동류와의 경쟁, 감정이 우선하는 세계의 형성 등이 (일본사회의) ‘단일성 ’(單一性)을 전제로 수긍된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곽창권은 그의 1999년 저서 ‘신일본책략 ’(도서출판 창암) 에서 왜색문화를 계급사회, 청백리 개념이 없다는 말로 축약하기도 한다. 종합해보면 왜색문화는 사람과 사람,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에서 나타나는 특질이 역사성과 결합해서 보이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p>
<p>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정형(定型)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그것이 바로 일왕가와 그를 둘러싼 조직과 개인, 관계들에서 모두 드러난다고 나는 본다.</p>
<p>실제 한국 사회에 왜색종교인 창가학회가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케다 다이사쿠는 형식적으로는 신도회 회장(지금은 명예회장)일 뿐이지만 그들 내부에서는 매우 존엄한 ‘스승 ’이며, 거의 절대자 취급을 받는다. 어떻게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세력을 확장할 수 있을까? 창가학회의 특징은 사제를 제거하고 의례를 편의주의로 간소화 하는 등 특별히 종교활동을 하는 느낌을 주지 않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 집단 속에서는 분명 왜색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런 모습도 바로 왜색의 다양성에 해당한다.</p>
<p>하나의 국가 민족이 가지는 색깔은 개인과 사회, 집단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일시적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누적되어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단순하지가 않다.</p>
<p>일본은 일단 세 가지 관점에서 들여다 보지 않고서는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가 바로 ‘혼네 ’(本音)다. 그걸 파악하지 않고 카타(型)인 다테마에(建前)는 본질이나 표상 모두 거짓에 가깝다. 즉, 현실이긴 하지만 눈에 보이거나 않거나 ‘참’이 아니다.</li>
<li>둘째, 논리(論理)다. 이건 철학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이를테면 친한파라고 불리는 과거 제국주의 추종자, 극우나 우파들이 가진 일제강점 당위론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망언 ’이 아니라 논리를 가진다. 그런데 펼치는 논리에서 상대를 기본으로 하기 보다는 자신이 속한 단일사회의 틀을 먼저 고려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건 논리가 아니라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경향이 높다.</li>
<li>셋째, 틀(場)이다. 자신이 속한 가치관이나 생활의 틀이 어디이며 무엇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일차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소속감이다. 이것은 때로 소우주를 자신의 대우주로 착각하게 만들고, 다시 그것으로 자신과 일, 집단, 사회와 국가를 평가까지 하게 만든다. 상대도 마찬가지다.</li>
</ul>
<p>그렇다면 과연 ‘궁내청 ’이라는 조직이 가진 한반도와 관련된 실체는 무엇일까? 거꾸로 거슬러서 보자.</p>
<p>일왕가의 집행자라는 신분적인 틀(場)로부터 들여다 보 면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그들에게 일왕은 분명한 삼각형의 꼭지점으로 존재한다. 일왕가가 있어 그들은 존재의미를 부여 받는다. 거꾸로 그들이 있어 일왕가도 존재한다. 형식적으로는 주종(主從)의 관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보호자이다. 무엇을 보호하는가? 일왕가의 역사와 지위를 지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일본이라는 사회 국가를 견지(堅持)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들의 틀이다.</p>
<p>논리로 접어들면 간단한 형식이 나타난다. 바로 ‘카타(型) ’인데 마치 샤미센의 연주처럼 그들의 행동은 의례적이고 격식이 맞추어져 있다. 존엄(尊嚴)의 수호라는 논리는 모든 기타의 논리들의 상위에 있다. 그것이 깨어지면 그들이 다테마에를 발현해야 할 당위가 사라진다. 그 속에 역사성도 현재 일본이란 국가의 법도 있다. 그러니까 법보다도 사실상 이것(型)이 우선된다고 봐야 옳다.</p>
<p>마지막으로 ‘혼네 ’다. 바로 생존체계의 유지다. 살기 위해서 선택 가능한 모든 방법을 실행한다. 이것이 그들 조직의 철학이며 논리를 포함하여 압축된 단어다.</p>
<p>한국에 대한 왜색의 전파는 단순한 문화논리 수준에서 이야기할 수 없다. 그것은 일왕가가 가진 필연성과 목적성이 동반되어 있다. 그러므로 일본이라는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가장 정형이 된 모델인 일왕가의 틀이 한국에까지 그대로 정착되어 가는 것을 ‘기획 ’하는 것이다.</p>
<p>그들에게 한국의 개신교(기독교)는 신사(神社)를 통해 전파되는 신도(神道)와 경쟁을 할 대상도 아니며, 정권이나 정부, 또는 어떤 지위나 소속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일왕가와는 경합(競合)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판단이 중심이 된다. 중요한 것은 그들 개개인이 아니라 한국 사회 국가 내부의 집단을 어떻게 일본에 맞는 정형화를 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그것이 바로 이른바 ‘왜색의 안정화 ’라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p>
<p>그를 위해서 일본 내의 모든 일왕가를 떠받치며 그에 동조하는 동일주의자들은 모두 자기네들의 활용 대상이 된다. 최종적인 목표는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다. 일왕가가 좁은 섬나라가 아니라 대륙에 그 뿌리를 연결하는 것이다. ‘125대 천황 ’이라는 명맥에서 모리 요시로처럼 ‘일본이 신의 나라 ’라고 믿는 가운데서 궁내청은 그들이 취할 뚜렷한 입장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 그러기 위한 모든 행위는 정당성이 부여된다.</p>
<p>‘사냥개 ’는 이러한 일을 위한 도구다. 주구(走狗)인 셈이다. 이들은 ‘일왕가의 덕 ’(德)으로 표현되는 그들 꼭지점의 우수성과 존엄을 주변에 전파하고 그 영역(틀, 場) 속으로 끌어 들이는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 이것은 지극히 단순한 배역이다.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은 궁내청의 몫이 아니라 사냥개에 맞게끔 적절하게 다른 종적 하부에서 지원되고 후원되기만 하면 된다.</p>
<p>그들은 일종의 ‘눈에 보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것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 낸 ’구도를 집행한다. 현실적인 모형과 도식을 만드는 것, 그 체계를 잡는 것이 바로 그곳이란 점에서 나는 이들을 일본기획자로 지목하는 것이다.</p>
<p>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바로 비판하기에 따라서 ‘왜’(倭)라고 불려야 하는 소우주적인 콤플렉스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한국 사회 국가의 오늘에서는 매우 강력하게 작용을 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정밀함이 일단 무기가 되었기 때문이고, 한국 사회에서 이 ‘왜색 ’의 냄새를 못 맡았던 결정적 누실(漏失)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결함(缺陷)에 속하고 한편으로는 한국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로 이러한 바이러스에 무방비 했던, 파급효과가 큰 전염성을 간과했던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안일함도 한 몫을 했다.</p>
<p>이것은 단순히 한국 내에서 ‘친일 ’이라는 이름의 재구성 행위만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란 점에서 나는 ‘침탈 ’(侵奪)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다시 백 년 ’은 가상의 개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눈 앞에 다가오는 시점을 둔 전쟁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접근법에는 그들(일본, 일본사회와 궁내청 등)을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단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가 그간 국가철학이건 혹은 문화논리 등에서 이를 방어하는 데 취약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국가 ’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p>
<h3>8. 북한의 후계승계; 절묘하게도 2010년?<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8" title="toc_8" class="anchor" id="toc_8">#</a></sup></h3>
<p>과연 일본기획자는 한국(남한)만을 겨냥해서 공격을 하는 것일까? 북한은 그 대상이 아닐까? 어떤 방식이 될 것인가?</p>
<p>우선 2008년 현재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후계구도를 둘러싼 치열한 각축전을 살펴보자. 2012년까지 김정일 위원장 자신의 시대를 완성하고 물려준다는 대 전제를 두었지만 끊임없이 삐걱대는 북한의 후계자 구도에서 최종 승리자는 누가될 것인가 는 중요한 관심사항이 된다. 이 부분부터 봐야 일본기획자가 이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한국에서의 ‘친일 ’을 ‘반북 ’과 함께 교묘히 적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 두편 정도로 나누어서 보도록 하자.</p>
<p>북한의 후계자 문제는 2010년까지 미궁이 될 공산이 크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통일 ’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어느 누구도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남북한 간의 담합을 통한 통일은 그렇다. 특히 일본은 더 심하다. 그것은 그들에게 공포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친일의 재구성, 다시 백 년을 서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비할 방법 중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p>
<p>한반도 격변의 가장 큰 위험성은 어떤 일일까? 군사적 분쟁인가? 이미 전쟁은 현 시점 다시 벌어지기 어렵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물론 군의 존재이유는 백 년에 한 번 있을 난제를 대비하는 것 이 역할이고 남북한은 분명 정전(停戰) 상태 이니 전쟁이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한 때 미국에 의한 대북 국지전(局地戰) 전개 검토로 서울이 긴장한 전례는 있다. 그것은 제3국에 의한 전쟁상황 야기에 해당한다. 한반도가 고스란히 전쟁터가 된다.</p>
<p>북한 내부의 내란(內亂) 상황도 시나리오에서 빠지지 않는 일이다. 통제불능의 혼란 상황은 항상 불가예측의 사태(事態)를 부르니까. 그러고 보면 한반도 내에서 가장 극심한 변화가 나오려면 전제가 있는 셈이다. 내부인가, 외부인가 하는 구분법이다.</p>
<p>2007 10.2 남북정상회담 첫날. 십 여분간 노무현 대통령을 맞이했던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은 완연(完然) 병자의 그것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단독회담과 그 다음날 오찬에서 보여준 모습은 완전(完全) 활력 있고 자신감에 넘치는 60대였다. 당시 대통령을 수행했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말처럼 그가 수해로 고심하고 또 그런 함께 고생하는 모습을 인민(人民)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고도의 노출전략으로 봐야 하는가? 약간의 억지 섞인 견해라고 보는 입장도 나올 터이다. 너무 모든 것이 잘 계산된 것으로 보면 그렇다. 굳이 그렇게 표현하지 않아도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p>
<p>김위원장 본인의 입으로도 그런 말은 있었다. ‘심장병이니 신장병이니 하는 데 그런 것 없다 ’는 말이다. ‘소설을 쓴다 ’는 말도 나왔다. 호기롭게 포도주를 몇 잔씩이나 거푸 마신 5일 오찬의 자리로만 본다면 그의 건강을 더 이상 거론하는 의미를 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우리나이 6 7세의 ‘앞날을 장담하지 못하는 ’나이영역에 들어갔다. 이후를 걱정하는 것도 이렇다 할 그의 후계자가 부각되지 않아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까지 여겨진다.</p>
<p>한국 내에서는 그를 둘러싼 두 가지 목소리가 있다. 그가 있을 때 한반도 문제의 해법이 나와야 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가 사라져야 북한의 와해와 통일이 앞당겨 진다는 견해다. MB정권이 유지하는 입장은 철저한 ‘기싸움 ’의 국면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후자 쪽을 지향한다는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그가 사라진 후에야 해법을 찾겠다는 식이다.</p>
<p>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진 바로만 따진다면 그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막강한 권능을 여전히 가지고 있 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악화되는 경제난에 곳곳에서 누수(漏水) 현상이 나타난다. 공공연한 권위파괴와 엘리트층에까지 확산된 이반(離反) 현상까지도 감지된다. 자연 후계자에 눈에 쏠린다. 그러나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아직 없다 ’와 ‘준비되고 있다 ’는 관측이 팽팽하다. 숱한 뉴스는 이 문제를 조명하지만 각국의 정보기관마저도 이 문제만큼은 정답을 내놓고 있지 않고 늘 에둘러 표현하고 만다. 진짜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조차 모를 정도다. 그들마저 모를 수 있다는 가정(假定)도 타당성을 가지는 것은 안다면 굳이 이 문제를 숨길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전제(前提)에서 출발한다.</p>
<p>북한 내부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父子) 권력 승계는 특별한 어려움을 가지지는 않았다고 본다. 물론 권력투쟁이 없지는 않았다. 삼촌인 김영주와 이복동생 김평일과의 갈등 , 김일성-김정일 간에도 대립은 있었지만 1994.7.8 김일성의 사망으로 ‘수령(首領)사회 ’는 ‘장군(將軍) ’으로 조용히 넘어왔다. 그러나 무게감은 확실히 다르다. 단순히 국부(國父)라는 개념에서 김일성 주석이 취급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일성 민족이라는 단어에서도 드러나듯이 절대적인 정신적 지주(支柱)로 사후에도 남겨져 있다. 그에 비해 김정일 위원장은 절대 그 권위를 넘지는 못하고 본인 스스로도 그러려 하지 않는다.</p>
<p>또 다시 부자승계가 이루어지면 이른바 삼대(三代) 계승이 된다. 20세기 어떤 민주국가에서도 전례가 잘 없는 일이다. 왕정(王政)이라면 다르겠지만 북한의 정식국호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즉, 선거를 통한 선출형식을 지닌 사회주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 국가체계에서 무조건 삼대 승계를 시도하는 데 무리가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삼대승계의 조짐은 여러 차례 보였다. 2001년 나타난 김위원장의 죽은 처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조짐은 확실했던 승계움직임에 속했다. 그 이후 모든 후계 문제는 물밑으로 내려갔고 떠오른 것은 확인되지 않는 가십거리 수준이었을 뿐이다.</p>
<p>2007년 제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서울의 신문 귀퉁이를 여러 차례 장식한 뉴스 가운데는 김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의 근황(近況) 소식을 둔 사실여부 논쟁이 있었다. 그가 당시 평양에 있고 이미 후계를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는 여러 사람들에게 그럴싸한 사실처럼 알려졌다. 외양이나 나이, 그리고 김위원장의 건강 이상설 등이 맛 물리며 꽤나 ‘그림이 된 ’뉴스로 부각되었다. 정보기관 조차도 그가 평양에 있음을 부인하지 않자 소식이 정설로 굳어지는 징조마저 보였다.</p>
<p>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2007년 제2차 정상회담이 끝 난 이후 MB정권에서 남북관계는 완전히 ‘파토 ’가 난 국면이다. 김위원장의 건강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이 많다. 작년 정상회담 첫날의 모습이 진짜고 그 다음날부터는 나름대로 특단의 처방을 하고 나왔다는 뒷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군, 공장 등의 현지지도 사진들에서는 그는 건강해 보인다.</p>
<p>여하간에 확실한 것은 평양을 방문했 거나 혹은 현 시점에 어떤 특정 지위에 있는 어느 사람도 공개적으로 김정일 이후의 후계 이야기를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김정남을 만나 기도 어렵거니와 다른 믿을만한 소식통을 통해서 후계 이야기를 듣고 올 자리도 쉽지 않다. 입을 열었다면 그 사람이 지금 자리에 앉아있다는 게 신기할 일이 틀림없다. 그 주제는 평양에선 일종의 금기에 속하니까.</p>
<p>그렇다면 아직 확실한 것이 없다. 그런 차에 2002년 이후 활발하게 북한의 후계구도를 이야기해온 정성장 (세종연구소) 은 ‘2010년 김정철에게 후계를 물려준다 ’는 논지의 분석을 내놓았다. 근거는? 특별할 것이 없다. 그마저도 어떤 거증(擧證)을 하면서 나온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건 순전히 김위원장 한 사람의 결정영역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움직임이 평양에서 벌어지고 있는가? 그렇게 많은 평양의 뉴스들이 입수되지만 이 숙제는 속 시원한 답을 줄 사람이 서울에는 한 사람도 없다. 없다? 과연 그런가? 거꾸로 추적을 해 들어가 보자. 답이 없다면 하나씩 찾아가면서 검토해보면 될 일이다.</p>
<p>북한의 후계(後繼)는 반드시 ‘혁명승계 ’라는 틀을 가지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개념이고 현실이다. 아직도 북한정권을 세운 사람들에 의한 ‘혁명 ’의 가치유지는 철저하다. 90년대 이후 그토록 흔들리는 속에서도 버텨온 것은 단순히 강압과 폭력만은 아니라 엘리트 층이 가진 이 부분의 가치견지에 있었던 것이다.</p>
<p>그들이 생각하는 혁명승계는 다시 두 가지 개념으로 나뉜다. 이 과정에서 북 내부의 정치적 갈등이 있어온 게 사실이다. 혁명정통승계는 3대 계승을 거부하는 의미가 강하다. 정통성 만을 가지면 된다는 함의(含意)가 강하다. 그에 비해 혁명가계승계는 바로 3대 승계 즉, 김씨 가계를 대전제로 한 용어다. 이것은 소위 백두산 가계승계라는 말로도 알려진 부분이다.</p>
<p>평양에서 보여진 이 두 개념의 충돌은 여러 차례 나타난 적이 있다. 이 프리즘으로 보지 못한 채 그저 가십 수준에서 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단순한 권력암투의 수준이 아니라 나름대로 주장을 뒷받침 하는 이론에 바탕을 두는, 즉 이념과 사상이라는 틀이 있었다는 말이다.</p>
<p>몇 가지 상황들을 보자. 성혜림의 축출은 ‘조선의 어머니 ’논쟁에 해당한다. 묘하게도 이 부분은 국모(國母)라는 왕후 개념에 속한 게 아니라 후계자의 모친 즉, ‘어머니 조국 ’이라는 개념과 맛 닿아 있다. 이 부분은 토속적 개념으로 보면 일종의 조상신과도 통한다. 매우 독특한 이 현상은 김위원장의 집권과정과 직결되어 있다. 그만한 자격이 있는가? 이 논쟁은 결국 성혜림을 조선의 어머니로 인정할 수 없는 사상논쟁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 결과가 중요하다. 이 관점으로부터 김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은 후계자가 될 수 없 이 주변을 맴돌게 되는 신세가 되었 다. 이 부분은 뒤에서 따로 자세히 설명한다.</p>
<p>혁명가계 승계가 대세를 이룬 것은 2003년까지다. 20세기를 종료하는 시점에서 다시 후계 논의가 대두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당시는 혁명의 어머니 논의로 번지면서 죽은 고영희의 우상화 작업까지 일부 진전되었다. 그 이전 이미 일부에서는 고영희의 장남 김정철에 대한 후계 수업이 이루어졌다. 내부에서는 ‘매우 똑똑하다 ’는 점을 앞세웠지만 김 위원장은 그에 대해 탐탁하지 못했던 바가 있었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이 작업이 어느 순간 김 위원장의 직접 지시에 의해 중지되었다. 혁명가계승계라는 말도 2004년 말 이후, 보다 정확하게는 2005년 이후 조용히 없어졌다. 그 때부터 후계논의는 미궁으로 빠졌다.</p>
<p>그 공백에서 가장 큰 사건은 바로 김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사건이다. 작년 정상회담에서도 모습을 드러냈 고 당 행정부를 맡아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이 어 떤 의미인지를 파악하기는 시기상조다. 한 때는 장성택을 두고 일본, 중국 등에서 모두 선을 대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다. 특히 일본은 그를 주요 관찰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컸었다. 그가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강했고 그것을 바라기도 했다.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김씨 승계가 끊어지는 걸 바랐다는 뜻이다.</p>
<p>당시의 사건 개요는 간단하다. 이른바 ‘분파주의자 ’사건이다. 파당(派黨)이란 일종의 사적(私的) 집단의 강화와 연결되는 개념인데, 이것은 곧 내부적으로 이러한 경계 세력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장성택은 현 시점에서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 사건의 영향이다. 그렇다고 그가 권력투쟁의 일선에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영향력이 크다.</p>
<p>혁명정통승계라는 개념이 2003년 이후 슬그머니 고개를 들기 시작했음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성택 사건은 단순히 정권 내부의 정치적 알력이었다기 보다는 혁명정통이나 혁명가계냐를 둔 이념논쟁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그 가운데 실각을 했고 그는 다시 복귀했다. 물론 두 번 다시 파당주의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 이후다. 한 번 꺾어진 사람이 다시 살아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주의할 사람 ’으로 일본은 보고 있다. 그 점에서 중국도 마찬가지 시각을 가진 듯 보인다.</p>
<h3>9. 혁명정통승계, 혁명가계승계의 논란에 빠진 북한 , 일본을 놓치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9" title="toc_9" class="anchor" id="toc_9">#</a></sup></h3>
<p>이러한 정권 내부의 후계갈등은 왕정에서의 궁정암투와는 다른 양상이 있다. 그것이 바로 북한이 가진 특징이라고 본다. 세력간의 공감대라는 현실이 있다. 군이나 당, 어느 쪽의 세력이라도 팽팽할 경우에는 서로 타협의 산물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p>
<p>장성택 사건과 맛 물려 김경희(장성택의 처)와 고영희 간의 관계도 약간은 알려진 대목이다. 그 두 사람은 모두 혁명가계승계를 주장한 사람이다. 고영희가 죽으면서 추동력을 잃은 것은 사실이지만 김경희는 자신의 남편인 장성택 보다 김정철을 더 후계로 옹위했었다. 아버지로부터 이어져온 ‘조선을 다른 성씨에게 줄 수 없다 ’는 강력한 발언도 있었다. 김경희-장성택 양자간의 애정을 둘러싼 갈등도 있다. 그것이 결국 혁명정통이란 개념 자체의 싹을 잘라버린 셈이다. 장성택으로서는 가장 큰 지지자를 잃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와중에 딸이 자살하는 사건에까지 휩쓸린다. 여러모로 진퇴양난이기는 하지만 그와 김정일 간의 특별한 관계는 그가 중앙으로 복귀함으로써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p>
<p>그 와중에서 김 위원장이 보인 태도는 무엇이었을까? 2004년까지 모든 후계 논의는 중지되었다. 이런 복잡한 갈등구도에 그가 진력을 내지 않았을 리 없다. 더군다나 북미관계 등 활로를 뚫지 못한 상태에서 나오는 내부에서의 잡음은 정권유지의 최대적에 해당한다. 그래서 차라리 논의를 못하게끔 모든 사람의 입을 막아버렸다. 그 이후 어느 누구도 이 주제에 있어 말을 꺼내지 않았다. 2012년까지는 이 논의 자체보다 김정일 자신이 선택한 ‘노선 ’에 충실할거라는 내부적인 선언이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당시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일리 있다.</p>
<p>우스운 상황이 나타난 것은 그 시점부터다. 다시 김정남이 주목 받는 사건이 벌어진다. 일본, 마카오로부터 평양으로 들어가는 김정남은 파파라치의 좋은 취재대상이었다. 이는 논의가 번지면서 김정남이 평양의 핵심부서를 장악하고 근무 중이라는 말까지 이어졌다. 십여 년 간 이 흐름을 지켜본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신문의 한 구석을 차지하기도 가치 가 없는 정보였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언론들은 이를 사실인 양 받았고 온갖 추측을 내었다.</p>
<p>당시 김정남은 평양에 없 었다. 그는 평양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는 것도 정설이다 .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인한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심지어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그(김정남)의 곁에 서있으려 하는 사람도 없고, 그가 하려고 하면 바로 전쟁이거나 여러 사람 다치는 일 ’이라는 평가다. 이 말을 분석해보면 90년대 말 이후부터 평양에서 벌어진 혁명정통과 혁명가계 승계라는 두 축이 다시 떠오른다. 그 대상 속에는 김정남이 없었다. 그러므로 지지하는 뚜렷한 세력이 없다. 그들 세력들이 지금도 잠복하고 있거나 아니면 논의를 중지하고 있다 손치더라도 김정남은 그들이 옹위(擁衛)할 대상은 아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p>
<p>이를 다른 식으로 표현해보면 다시 몇 가지 개념적 접근오류가 나온다. 첫째, 혁명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둘째, 김정남의 외유 기간 동안 평양 내부에서 그를 추종하는 무리는 많지 않다. 셋째, 김정남에 대한 김 위원장의 낙점이 있다 해도 평양 내부는 그걸 수용할 수 없는 분위기다. 넷째, 혁명정통이나 혁명가계 승계론자들의 갈등 구도에서 그는 애당초 대상이 아닌 구도였다는 점이다.</p>
<p>김위원장의 선택이라는 부분이 눈에 띈다. 가능한가? 세력분포나 명분을 너무 잘아는 그의 입장에서는 집을 카드는 아니다. 그러나 몇 가지 주의할만한 이야기는 들린다. 김정일-김정남 부자간의 통화가 작년 말 이후 꾸준히 늘어났다는 사실, 그리고 김정남이 나름대로 자신의 앞길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다닌다는 얘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능력에 달린 부분도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김정남이 이 후계 대열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세력 ’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공감한다. 심지어 만일 그가 후계자가 될 경우, 평양에서 목을 내놓아야 하는 사람의 숫자만해도 수십만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만큼 뒤쳐진 입장이라는 걸 뜻한다.</p>
<p>어떻게 하건 간에 지금 이 문제의 해법은 김 위원장의 결정구도가 가장 큰 역할을 함은 사실이다. 그만한 무게와 영향력이 있다. 그러나 논의가 진행되어온 구도를 일거에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상황이 일도양단 할 부분도 아니다. 그러니까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명분과 세력균형이라는 요소가 개입되는 셈이다.</p>
<p>분명 2000~2001년 시기 김정철은 후계 반열에 올랐다. 옹위세력도 있었다. 고영희의 사망 이후 그러한 움직임은 철저하게 김정철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난사(難事)에 속한다. 그러나 중지되었다. 그 이후 호르몬 과다분비라는 병증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당시 상황에서는 특별히 주목할 일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김정일-김정철 간의 반목(反目)이랄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일종의 보호차원으로도 볼 수 있 었다. 논의중지의 다른 식 표현이라는 것이다.</p>
<p>김정운에 대한 이야기는 보다 구체적이다. 그가 현 시점에 부각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형으로부터 혁명정통을 추종하는 엘리트 집단과 부딪친다. 바로 이 점이 김 위원장의 개인적인 선택 가능성과 후계 자 문제는 전적 으로 김정일 한 사람의 결정권역에 만있지 않음을 보여준다.</p>
<p>특히 김정철에 주목하는 것은 ‘다른 선택대안이 없다 ’는 판단에 기인한다. 그러니까 3대 승계를 무조건 진행할거라는 기계적 관측이다. 사실상 직접 가계로만 본다면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후계 문제에 있어 한 차례 꺾어진 사람을 다시 꺼내 쓴 전례는 북한 내부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수준에서 그친다. 왜냐하면 은밀(隱密)은 ‘조선노동당이 지켜온 일관된 일의 원칙 ’이었다.</p>
<p>예를 들어 작년 제2차 정상회담에서 나왔던 많은 사람들이 너무 연로했음에 놀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미 그들은 현업에 있지 않다. 얼굴을 보여도 될 만큼 국가사무에는 더 이상 직접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이 었고 간판으로만 나온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 다.</p>
<p>김 위원장도 한 때 김정철을 옹위하는 세력들을 내버려둔 바가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굳이 막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권력이 항상 그렇듯이 아래로부터 추대가 강해지면 현재의 자리를 가진 사람도 위태로운 법이다. 그 과정의 복잡함은 익히 짐작이 간다. 그 과정에서 선택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일단 권력의 흐름을 좌지우지 할 정도라면 중지되어야 한다는 결정이었다.</p>
<p>다른 하나의 변수가 바로 2002년부터 벌어진 6자 회담이다. 북미관계의 개선 즉, 테러지원국, 적성국가법의 ‘고깔 벗기기 ’는 김 위원장의 해묵은 숙제이기도 하지만 절대 해결과제에 속한다. 그러지 못하고 후계를 논의하게 될 경우는 ‘문제를 뒤로 넘기는 ’경우가 된다. 이것은 김 위원장 개인의 성격적 측면을 떠나서 후계라는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살아갈 해결점을 찾고 난 이후 권력의 부분 양도는 가능하다. 그러나 살지 못하는 난제 속에 후계를 두게 될 경우 진행과정의 와해(瓦解)는 불을 보 듯 뻔하다. 그 우려는 2004년 이후 후계논의가 중단된 것과 직접 연결된다.</p>
<p>이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김정철, 김정운 론이 가진 한계를 말한다. 그들이 북미관계와 같은 큰 틀의 사안을 취급할 역량이 없다는 사실이다. 역량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후계 자체의 논의보다 뚜렷한 실적(實績)의 문제다. 등장배경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딜레마는 컸다고 본다. 그래서 나온 추론이 바로 2010년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고 김정철에게 권력을 양도한다는 설(說)이다. 그렇지만 그 때까지 가는 시간이 너무 길다. 평양의 엘리트들은 그 시간을 가만히 기다려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2007.2.13을 경계로 북핵을 둔 치열한 교섭이 북미간에 진행되는 것 에 주목하는 것이 옳다.</p>
<p>2.13합의는 북미, 북일 양자관계 모두의 길을 열었다. 미국도 6자 회담이란 틀의 유용성보다는 북미 양자간의 대화 채널과 패턴이 정착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팽팽하다. 더군다나 지금은 부시 행정부 말기다. 곧 선거 국면이고, 북한은 강경하게 진행시키던 경수로 해체 수순을 역으로 돌리려는 시도를 9월 들어 과감하게 진행시키려고 한다. 6자 회담이 다시 기로에 서건 아니면 북미 간의 대타협이 이루어지건 간에 긴장이 유지되는 국면이다. 이 문제에서 평양 엘리트들의 선택은 ‘강경이 해답 ’이라는 것으로 굳어질 전망이다. 이런 것이 오히려 북한의 내부적인 단합을 기하겠지만 누적된 식량문제 등도 별개로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은 생긴다. 기댈 곳은? 역시 중국, 베트남 등지가 차선책이 될 수밖에 없다.</p>
<p>정통(正統)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이념의 계승보다 깊숙하게 가계(家系)를 연결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게 현실적 판단이다. 그러니까 혁명정통이건 혁명가계이건 간에 일단은 한 다리를 가계 쪽으로 걸치는 것이 제대로 된 모양이라는 바탕을 깔고 있다.</p>
<p>이것은 엄밀히 구분된 개념이 아니라 ‘혁명가계정통승계 ’라는 단어로 결집된다. 90년대 후반 이후 후계 논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보합된 개념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그 속에서는 다양한 결론을 내릴 수 있고 약간은 경합성도 부여된 측면이 있다. 어느 한 쪽으로 세력이 확 쏠리는 구도는 아니지만 다양한 테스트가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것을 김위원장의 일종의 포트폴리오(分散) 투자 개념으로 본다 해도 어색할 게 없다. 그러나 주축은 있어야 한다.</p>
<p>직계(直系)가 아닌 방계(傍系)를 뒤져볼 가능성이 생겨났다. 묘하게도 이 또한 혁명승계라는 틀을 훼손하지는 않는다는 의식이 평양의 핵심부에 회자되고 있는 사실이다. 가능하다는 사고가 아니라 이 또한 대안이고 모양이 좋다는 의견이다.</p>
<p>우선 꼽아볼 대목은 사위와 매제다. 김 위원장이 총애하는 김설송은 시집을 갔을까? 매제인 장성택은 이미 한 차례 고비를 넘었고, 그 딸은 해외에서 자살했다. 유력한 부분이 바로 설송의 남편이 누구일까 라는 대목이다. 시집가지 않았다면 유력한 누군가에게 시집을 보내는 방안도 나올 법하다. 조금 확대해보면 강반석 계열도 나온다. 할머니계의 외가다. 어머니 계의 외가도 대상은 되지만 딱히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더 넓혀보는 것은 조금 무리다. 아무래도 지나친 추론이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압축이 된다. 김(金), 강(姜), 그리고 또 다른 성씨 하나다. 이 중에서 후계가 나온다.</p>
<p>아주 절묘한 정통과 가계의 조화가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과연 그럴까? 그만한 소식들은 있는 것일까?</p>
<p>북한 뉴스 대부분이 ‘소 발에 쥐 잡듯 ’하는 경향이 크다. 과거 뉴스들을 전부 꺼내서 그 진위(眞僞)를 확인하면 아마도 전체의 70% 이상은 오보로 판명될 부분이 많다. 심지어는 열 가지 내용을 썼다가 그 중 한 가지만 맞으면 자신의 정보가 맞았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정통한 소식통 ’을 앞세우는 ‘얼떨한 정보통 ’들도 많았다. 그 사람들이 대부분 사회 내 유력한 전문가 행세를 하기 때문이고, 또 어디서 들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여하간 ‘북측 소식통 ’, ‘유력한 소식통 ’으로 포장된다.</p>
<p>그럼에도 후계 문제에 이르면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나온 소식들이 별로 없다. 상대적이다. 쉽게 예측하지 못하고 또 어디서 한 소리를 들었다고 해도 쉽게 말할 대목은 아니다.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듣는 귀도 혼란스럽기 때문이다.</p>
<p>이 부분도 거꾸로 한 번 들어가보면 해답이 있다. 그만한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나온 소식인가를 검증해보면 된다. 우선 국내 외로 보면 정보기관이 있다. 확인해도 잘 말해주지 않긴 하지만 최소한 그것이 ‘직업 ’인 사람들의 소식이니 정확도가 높다. 둘째, 이 분야의 연구자가 있다. 그런데 이 분야 연구자라 하더라도 정보원 자체가 제한되어 있다. 자연 추론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셋째, 이런 저런 북측에서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경험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한편 생각해보면 정확도 자체가 없다. 전체적인 분위기마저도 어떤 때는 자의적(恣意的)인 경우가 너무 많다. 미국에 살았다고 미국을 잘 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을 무시하는 셈이다.</p>
<p>북측 소식통을 보자. 우선 미국, 중국 등 해외소식통들이다. 대부분 정치인, 연구자들이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 연구(硏究) 영역일 뿐이다. 적어도 김위원장 혹은 측근 영역에서 들은 바를 전하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 또한 정보원을 이야기하기는 곤란하다. 관계가 단절된다. 전하라고 주는 뉴스가 아니면 없다. 그런데 전해달라고 나오는 정보는 일종의 교란(攪亂)을 목적으로 하거나 혹은 다른 의도성이 있다. 마치 핵무기가 몇 기 보유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과 같다. 핵실험이 성공이었는가 실패였는가에 ‘성공했다 ’를 대외 선전으로 알리는 여러 목소리들과 유사한 것이다.</p>
<p>그렇다면 북측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이 그나마 가장 정확도가 높게 된다. 어느 수준에서 이 문제를 언급 가능할까? 사안의 중요도를 감안하고 또 쭉 이어져온 흐름을 감안하면 최소한 60대 미만에서 하는 이야기는 정확도가 떨어진다. 정보기관은 예외다. 그리고 경제사안만을 다루거나 대남관계를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주제가 다루어 지는 게 이상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꼽아보면 드러난 사람은 매우 적은 숫자다.</p>
<p>2006년 말 이후 여러 경로에서 나온 뉴스들 가운데서는 꽤나 놀라운 것들도 있었다. 그럴 수 있다고 인정된 부분들은 그 이전에도 김 위원장의 직접적인 결재행위가 줄어드는 현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체로 그 때부터는 김 위원장이 모든 결재를 하지 않 고상당 부분 이른바 전결(專決)이 아래이건 어느 쪽이건 갔다는 것인데 듣기에는 놀랍지 도 않고 당연하 게 판단되 기도 하다. 모든 걸 혼자서 결정한다는 게 가능하다 여겨지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중요한 부분 ’이라는 것도 그렇고 ‘김위원장 명의의 결정 ’이라는 부분에서도 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은 주목된다.</p>
<p>단순한 권한 위임인가? 내부적 보고 체계 속에서 그렇다면 행정적 전결권 수준에서 봐야 한다. 그런데 아니다. 여기서부터 많은 고민이 시작된다. 이유를 살펴 보자. 첫째, 건강이 문제다. 특별한 와병(臥病)이 아니더라도 과도한 업무를 줄인다는 측면에서 가능하다. 둘째, 굵직한 사안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이 또한 가능하다. 셋째, 나름대로 권한위임을 실험 중이다. 그럴 수 있다. 넷째, 특정한 사안들에 대해 후계를 실험한다? 이 부분에서 막힌다.</p>
<p>어떤 경로를 접촉해 보아도 김위원장은 지금 후계를 정하지 않았다가 대세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 분석한 대로 최소한 북미관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권좌(權座)를 주고 싶어도 못 준다.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그가 후계에게 짐 덩어리를 떠안기는 형태로 가는 건 모양새가 너무 사납다. 한 가지는 해결해야 하고, 그것을 인민들에게 주지하는 전제에서 편하게 후계를 두고 수렴청정(垂簾聽政)의 영역에 들어가야 한다. 그게 당연하다.</p>
<p>그렇지만 실험(實驗)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아무리 건강을 유지한다고 하지만 급작(急作)한 사태를 대비하지 않는 게 어리석다. 사후의 문제에 관여하지 못하는 게 인생이니 일단 거기에 관심을 둬야 한다. 또 한 가지가 바로 여론을 조성해 둬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정상회담도 그런 면에서 이루어졌다고 봐야 할 부분이 크다. 굳이 정권이 끝나가는 대통령을 평양에 부른 이유 가운데서는 가장 ‘개인적 ’이유다. 집권자의 고독한 결정이 라는 분석은 의미가 있다. 이미지를 가져야 하는 정치인의 한계 기도 하고, 남북한의 모멘텀을 살려 차기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한나라당 정권을 대비하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MB정권은 들어서자마자 철저하게 ‘기싸움 ’국면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예상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판단하는 듯하고, 심지어 ‘도저히 대화가 될 사람은 아니다 ’는 평가까지 나오는 상황이다.</p>
<p>이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후계는 실험된다고 봐야 한다. MB정권 5년=김위원장이 설정한 2012년까지다. 좀 더 들여다보자.</p>
<p>2006.10.9 핵실험 이후 다양한 루트에서 후계는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핵보유 선언이야말로 후계를 내세우기 좋은 명분이라고 읽었다. 그 사이 몇 가지 주목될만한 뉴스들이 들어왔다. 그러니까 2006년 말, 2007년 초 시점 에서 실질적인 위임권을 행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2004년 말, 2005년 초부터 꾸준히 나왔다. 그런데 구체적인 시한이 명기된 말이 흘러나온 것이다.</p>
<blockquote>
<p>“장군 중의 한 사람. 이을설 휘하의 부관출신. 당시 48세. 추대의 형식으로 국방위원회 사무를 보기 시작했다. 국방업무를 비롯한 광범위한 국방위 사무는 이 사람의 손을 거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사실상 후계의 실험이다. “</p>
</blockquote>
<p>소식은 빠르게 퍼졌다가 2007년이 지나가기도 전에 금새 안개처럼 묻혀 버렸다. 정보기관이건 어디건 이 소식 자체를 대수롭지 않은 일종의 교란 정보로 인정했다. 게다가 그 뉴스 자체가 확인이 불가능했다. 어느 누가 국방위를 들여다 볼 수 있는가? 그런 차에 국방위원회가 새롭게 조직을 정비하고 2007년 2월경부터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는 확인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김위원장의 새로운 퍼스트 레이디로 불리는 김옥도 국방위 참사 타이틀을 들고 나타난 전례가 있고, 작년 2차 정상회담에서 북측의 업무창구였던 김양건 통전부 부장도 국방위 참사를 이력 한 줄에 올리고 있다. 국방위는 과연 무엇인가? 김정일 위원장이 ‘위원장 ’타이틀을 들고 북한을 통치하는 실질적인 기관 아닌가. 선군정치의 기치 아래서 군의 위상은 당보다 오히려 입김이 셀 수도 있다는 게 상식이다.</p>
<p>이제 맺음을 해보자. 분명 국방위의 개편에서 볼 수 있듯이 평양의 오늘은 김위원장의 다양한 실험과 후계논의에 대한 적극적인 억지(抑止)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90년 대부터 있어온 이야기처럼 2010년은 북한 내부에서 일종의 김정일 연대기를 완성하는 해로 주목된다는 사실이다. 그 이전까지 어떻게든 모든 내용들이 매듭을 짓도록 김위원장의 매진(邁進)이 계속되는 게 오늘의 모습이다. 북미관계나 북중, 북일, 북러, 그리고 남북한 관계도 그 범주에서 읽혀진다.</p>
<p>앞서 추정된 것처럼 혁명정통과 가계는 함께 가는 개념이 될 공산이 크다. 우리가 찾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김위원장의 사위와 외가계열, 그리고 직계의 아들 그룹이 후계의 그림책 속에서는 각각 그 대상이 된다. 아무래도 사내를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남이나 북이나 여성통치자라는 개념이 객관적 동의를 받기는 어려운 여건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모를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대목이다.</p>
<p>현재까지 보여진 모습으로만 본다면 김위원장은 직계를 염두에 두지는 않는 경향이 크다. 혁명의 순(純) 가계승계를 굳이 고집하지 않겠다고 할만한 하는 이유도 있다. 약하다는 것이고, 또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붕괴되거나 혹은 다른 세력들에 의해 점거되었을 때의 반탄력이 오히려 클 수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정통성에만 근거하여 전혀 다른 능력자를 발탁할 경우는 분명 자신을 부정(否定)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 복합은 의외로 간단한 조합을 가능하게 한다.</p>
<p>조만간 김위원장이 실험하는 다양한 후계의 모습 가운데 몇몇 모습을 볼 수 있을는지 모른다. 때로 그들은 전혀 다른 지위와 이름으로 서울 이나 베이징 등지 까지 구경을 올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신분으로 슬쩍 해외와 남북한의 일상을 자신이 보고 싶어할 터이고 또 그것을 김위원장이 희망한다는 가상도 가능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가면서 그에게 다양한 무게감을 실어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당분간은 이 논의보다는 변화된 상황 속에 이 문제가 용해될 공산이 더 크다. 이런 과정을 겪지 않으면 안될 것이니 말이다. 물론 남북한이 이렇게 관계가 좋지 않은 채 흘러간다면 서울에 올 기회는 없을 것이지만.</p>
<p>이런 가정이 옳다면 김위원장의 후계는 북미관계에서 적어도 테러지원국이라는 고깔이 벗겨지고 난 이후 즉각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 그 과정에 이 후계자는 깊숙하게 개입하며 김위원장을 보좌하는 한편 맡겨진 테스트에도 적극적으로 부닥칠 것이다. 자연스럽게 어느 시점에는 그를 중심으로 하는 보좌세력들도 생겨날 것은 능히 예상 가능하다. 지금 시점대로라면 2008년 말이나 2009년 초반에는 그런 모습이 드러나게 될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본다.</p>
<p>공교롭게도 일본, 남한, 북한 모두 역사의 수레바퀴가 딱 100년을 돌게 되는</p>
<p>2010년이 너무도 중요한 해로 부각되었다. 한국에서 친일의 재구성 게임이 끝나고 본격적인 ‘다시 백 년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는 일본이 2010년을 초점으로 하는 북한의 후계자 승계 움직임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p>
<p>일본은 2008년 한국 내에서 남북관계의 악화기류를 반기고 있다. 오히려 반북 분위기를 더욱 띄우게 기획한 흔적도 보인다. 정작 일본의 입장에서는 2010년을 겨냥해서 북일관계를 일정 수준 토의 가능한 요건을 만들기 위해 지난 8월부터 본격적인 수교협의를 개시했고 9월부터 납치자 문제의 재조사까지 들어가는 국면을 만들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쫓고 있는 일본기획자의 모습이 거기 어른거린다.</p>
<h3>10. 조총련 사전제거를 위한 움직임; 서울의 친일, 반북과 연계하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0" title="toc_10" class="anchor" id="toc_10">#</a></sup></h3>
<p>궁내청에는 그 흔한 간판이 없다. 1935년 지어진 서양식 푸른 지붕의 이 건물은 1952.10~1969.3까지 소실된 일왕의 거처인 코쿄(皇居)가 완공될 때까지 3층을 가궁(假宮)으로 사용하기도 했다.</p>
<p>한국과 궁내청은 최근에도 &lt;조선왕실의궤&gt; 반환을 둘러싼 지리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고, 그 밖에도 &lt;명성왕후 국장도감 의궤&gt; 등을 비롯해 일제 강점시기 일본으로 유입된 많은 중요 고본 자료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상태다. 1998~2000년 사이 국내 서지학자들로 구성된 해외 전적(典籍) 조사연구회(대표 천혜봉, 전 성균관대 규수)가 궁내청의 서릉부(書陵部)를 방문, 636종 4,678점의 우리 고문서 목록을 조사하고 ‘한국고문서목록집 ’을 발간하기도 했다.</p>
<p>지금까지 궁내청 서릉부에서조차 숨기는 자료도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부 자료는 미공개이기도 하지만 ‘엉뚱한 표지로 다시 제본하거나 여러 책을 섞어서 엉뚱한 다른 책으로 만들어 놓은 경우 ’도 있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다. 그만큼 과거 자료들 속에는 한국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치와 위력을 가진 것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관리하는 궁내청은 그래서 힘이 있다.</p>
<p>대개 궁내청은 공개적인 모집보다는 거의 비공개 선발을 통해 인원을 충원한다고 알려진다. ‘명문가들 사이에서는 올래 어떤 가문의 누가 궁내청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흘려진다 ’는 등 들어가는 것 자체가 권력의 상징처럼 여기는 경우가 형성된다.</p>
<p>그렇다고 일반 사회에서 천황제, 궁내청이 비판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언론을 통제한다고는 하지만 이런 기류들은 나름대로 있고, 심지어 천황제 폐지에 관한 논의들도 심심치 않게 있다.</p>
<p>이런 주장의 근거는 감정적인 대처가 아닌 경우, 신중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를 보면, 첫째, 천황제가 일본의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다, 둘째, 천황제가 일본이 처한 모든 악(惡)의 근원이다라는 의견이 주류다.</p>
<p>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주장에 대한 일본의 천황제 옹호론자의 반박이다. 이들은 대개 이와 같은 논리를 꺼낸다. 첫째, (폐지될 경우) 일본인들의 마음이 뿔뿔이 흩어진다. 즉, 이것은 일본을 파괴하려는 행위다. 둘째, 이건 중국, 조선(북한)의 공작원들이다. 자이니찌(在日, 이것도 대체로 총련을 의미), 좌익의 무리들이다. 여기서도 좌익론이 등장한다. 60년대 사회주의, 좌파운동의 혼란정국을 보낸 후유증이기도 하지만, 재일조선인(총련)은 천황제 반대편에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본 사회에서 파다하게 퍼져있는 극우, 우익론이다. 이것은 반공우익이 아니다. 바로 반천황제=좌파라는 것이다. 이 논리가 한국에도 그대로 상륙했다. ‘정부를 반대하는 것은 바로 한국 사회와 국가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이고 이건 빨갱이들의 무리다 ’라는 낙인이 아주 흡사하다. 그러나 대상이 다르다.</p>
<p>일본 정치사, 일본 행정사를 전공한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 대학 법학과 가사하라 히데히코(笠原英彦) 교수가 Japan Forum 2004년 겨울호[제63호]에 ‘여성천황의 문제의 본질을 검증한다 ’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나루히토 황태자가 그의 아내 마사코비를 옹호하면서 “(그녀의) 커리어와 이를 바탕으로 한 인격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있다 ”고 한 발언에 대한 일본 정계 각 당의 반응이 나와있는데 그 중 공명당은 이렇게 성명을 내놓고 있었다.</p>
<blockquote>
<p>“궁내청은 착실하게 대처해야 한다. ”</p>
</blockquote>
<p>차기 천황이 여성이 될 수 있는가 아닌가를 따지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 당사자는 궁내청이었다. 그만큼 일본이란 사회, 국가 내에서 개입하는 문제의 폭이 무척 넓은 곳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단순히 실무부서로 궁내청을 지칭한 것이 아니다.</p>
<p>일왕은 표면적으로는 총리와 최고재판소 장관을 임명한다. 내각 총리의 경우에는 제청을 받아서 결정하고 위헌입법심사권과 행정사안의 재판권을 쥔 최고재판소 장관의 경우도 마찬가지 임명을 하는 케이스다. 이 두 경우에서 나타나는 일왕의 권한은 세 단어로 압축된다. “조언, 승인, 임명 ”이다. 확실히 ‘조언 ’이란 기능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듯하다. 그 말 속에는 ‘지시 ’가 숨겨져 있다.</p>
<p>실질적으로 이보다 훨씬 강한 영향력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시중에서는 내각에서 국내외 정보가 취합되는 내각정보조사실이 궁내청에 ‘보고 ’의 형식을 취하고 있고, 또한 일본 국내 정치인의 감시, 테러 공작의 본거지로까지 지목되는 예도 있다. 궁내청의 실질적 네트워크가 ‘왕실 ’을 기반으로 해서 극우, 우익 전반에 걸쳐 민관을 두루 섭렵하고 있음은 앞서도 설명한 바와 같다. 당연히 내각부 소속이지만 실제로는 총리 관저보다 높은 곳에 궁내청이 있다는 건 사실로 봐야 된다.</p>
<p>일본의 입장에서 북한은 이런 점에서는 양날의 카드가 된다. 실제로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는 2000년 이전만 하더라도 ‘야쿠자, 창가학회(공명당), 조총련 ’으로 꼽힐만큼 언터처벌한 대상이었다. 90년대 북한의 김일성 주석 사후 조직이 정상 가동되지 않았고, 또한 지도부가 노령화되면서 과거의 성세를 못 가진 상태이긴 하지만 여전히 와해공작의 제일번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관건은 빠친코를 위주로 하는 조총련 사업이 항상 야쿠자와 연관되어 있고, 이것은 곧 일본 정치계와도 선이 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강하게 제거 드라이브를 가하고 있다. 누가 이 일을 하는가?</p>
<p>2007.6.18 일본 도쿄지방 재판소는 조총련이 조은(朝銀) 신용조합으로부터 불량채권을 양도 받은 일본 ‘정리회수기구 ’에 627억엔을 지급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로 인해 도쿄 치요다구 총련 중앙본부 건물과 토지가 압류 당하게 되었다. 그 이전인 1월에는 총련 오사카 본부가 들어있는 오사카 조선회관 건물도 조총련계 신용금고 파산과 함께 정리회수기구가 경매를 진행하게 되었다. 조총련의 양대 회관이 모두 압류 경매를 당하게 된 것이다.</p>
<p>이것이 조총련 해산의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낮은 가격에 채권을 인수하고 액면가 반환 요청을 한 점도 정당하다고 재판부는 판결했다.</p>
<p>도쿄, 오사카를 비롯한 일본 주요도시의 조총련 지방본부와 학교 등 29개 시설 가운데 9개 시설이 ‘정리회수기구 ’에 압류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활동거점을 빼앗긴 셈이었다.</p>
<p>이러한 조총련의 위기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총련의 결속력 약화가 주요원인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일본 정부의 조총련 와해공작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p>
<p>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p>
<p>일본정부의 입장에서 총련은 골치꺼리이면서도 한편으로 일본 정계 입장에서는 유력한 정치 자금줄이기도 했다. 일본 전역 빠친코 가운데 70%가 비공식적으로는 재일교포들이 운영한다고 할 정도로 이 부분은 교포들이 특화를 한 사업분야다. 이것은 민단이나 조총련 모두 해당된다. 그러나 이 사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들 자금으로 출자한 신용조합 등 금융사들이 줄도산을 하게 된다. 특히 8개 금융사 가운데 5~6개사가 조총련의 것이었는데 이것이 직접 타격으로 조총련 조직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완전한 경제사안으로만 볼 수 있을까?</p>
<p>1945년 해방 후 그 해 10월 결성된 재일본조선인연맹(총련)이 좌익운동으로 흐르자 거기에서 나온 우익들이 1946.10 재일본 조선인 거류민단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는 1949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에서 1994년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원래의 총련은 1949년 강제 해산 당하고, 1955.5.25~26 도쿄 아사쿠사 공회당에서 한덕수의 발기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조총련)를 구성하게 되어 이것이 오늘 까지 이어진다. 2003년 한덕수의 사망으로 서만술이 의장을 맡고 있다. 총련은 초기 60만 재일교포 가운데 50만에 달했으나 현재는 4만 명으로 위축된 상황이다.</p>
<p>일련의 조총련 와해공작은 2000년 이전의 1차 시도 이후 2006년부터 다시 본격화 되었다. 당시 일본인 납치문제,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 악재를 엮어 일본 정부는 강하게 조총련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사업 악화로 자금 경색을 겪던 총련은 여기에 휘말리게 되었다. 거기다가 총련 내 구성원들의 자유화 분위기가 확산되는 추세에서 이탈 자도 늘어갔다. 한국국적 취득자도 늘고 귀화자도 증가하는 상태에서 조총련의 결집력은 많이 약화되었다. 그 틈바구니를 일본 정부당국이 강하게 압박하는 카드를 들이민 셈이었다.</p>
<p>그러나 전통적인 빠친코 업계를 장악했던 조총련은 연계된 야쿠자 세력과 함께 아베 신조 총리를 압박했다. 조총련이 그간 수십 년 일본의 여야 각 정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며, 이러한 자금은 일본 정치계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게 했던 부분이다. 당연히 자민당 내에서도 조총련 연계세력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을 통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조총련은 명목은 유지하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비교되기 어려울 정도인 것도 사실이다. 북한과의 관계도 과거 같지는 않다. 미사일, 북핵 실험 등으로 나고야시 같은 곳은 1986년부터 조총련관련 시설에 부여해주던 고정자산세 면제를 2007년부터 폐지해버리기까지 했다. 불이익이 주어졌고 내부적으로 불만의 목소리와 이탈도 늘어났다.</p>
<p>이것은 명백한 와해 공작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총련을 쉽게 와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여전히 최소한의 마지노 선을 가지고 버티고 있다고 봐야 한다.</p>
<p>왜 일본 당국은 조총련을 압박하는가?</p>
<p>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조총련은 기본적으로 ‘눈엣가시 ’다. 그들이 모두 북한의 주체사상을 믿지는 않지만 일련의 민족주의 속성을 강하게 지키고 있는 상태다. 천황제를 근간으로 하는 일본의 극우, 우익 시스템에서는 최대의 내부적인 적인 셈이다. 즉, 국민들의 민주주의 요구와는 다른 측면 에서 실질적인 우익, 좌파 개념의 이념적 상대이면서도 한편으로 일본 민족주의와 조선 민족주의 간의 충돌,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핵 등 무장세력의 일본 내 기지(基地)이기도 하며, 나아가 일본 내에서 빠친코라는 특수업종을 통해 강력한 로비세력을 형성한 정치 집단이기 도 하기 때문이다.</p>
<p>대단히 골치 아픈 존재다. 이들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수준이었지만 성세(成勢)가 과거 같지 않고 또한 일본 사회 내의 우경화 가운데서 대북 여론 악화를 빌미로 이에 대한 강경한 강제해산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본 정부의 목표다.</p>
<p>적절하게 일본인들이 우경화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언제나 반복되는 북한의 미사일, 북핵 실험 등 사건에는 조선인 학교 학생들이 길거리 테러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적절한 활용이 가능했던 곳을 뿌리 채 뽑아내려는 시도는 북일 관계 개선 이전에 사전 제거할 만큼 하겠다는 의지표현도 뒤섞여 있다. 이것 또한 한국으로 친일의 재구성이라는 테제로 접근하는 와중에서 보면 매우 공교로운 기획에 속한다. 친일과 반북은 일본 내에도 분위기를 똑같이 잡아가던 중이었다.</p>
<h3>11. 포기하지 않는 일본, 공격은 더욱 정밀해진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1" title="toc_11" class="anchor" id="toc_11">#</a></sup></h3>
<p>지금까지 일본의 공격이 시작된 근본적 원인과 저변, 그리고 동향을 파악해 보았다. 일본은 현 시점 분명히 공세적이다. 일본기획자의 기획의도는 명백해졌다. 그리고 이것은 어제 오늘 기획되어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장기간에 걸쳐 면밀하게 준비된 것이라는 증거는 곳곳에서 드러난다.</p>
<p>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p>
<p>‘백범일지 ’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그 중에서 민족과 국가를 이야기한 몇 구절을 옮겨본다.</p>
<blockquote>
<p>“근래에 우리 동포 중에는 우리 나라를 어느 큰 이웃나라의 연방에 편입하기를 소원하는 자가 있다 하니, 나는 그 말을 차마 믿으려 아니하거니와 만일 진실로 그러한 자가 있다 하면, 그는 제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밖에 볼 길이 없다.”</p>
<p>“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거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느 민족 내에서나 혹은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 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하여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에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 모양으로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흥망성쇠의 공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에 사는 것이다.”</p>
<p>“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p>
</blockquote>
<p>나는 적어도 그의 글 어느 곳에서나 그의 사상의 어느 한 단초 에서 도 ‘파괴 ’를 읽지는 못했다. 오히려 끈질겨야 한다는 저항의식은 발견했다. 저항은 비폭력이건 폭력이건 그 자체로 저항의 역사는 구성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관계다. 누가 온당한가? 무엇이 온전한 미래를 이야기하는가? 어떻게 우리는 진정한 독립이란 틀에서 미래를 위해 오늘을 실 행할 것인가?</p>
<p>일본을 들여다보면 이 세 가지 제시되는 질문에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다. 일본 기획자는 일단 분열하고 파괴된 상태에서 편입을 원한다. 더군다나 공동 운명을 가장(假裝)하고, 나아가 지배와 정복의 자리에 서려고 한다. 그것이 그네들의 속성이다. 팽창주의 가 절대선이라는 의식을 동반한 일본의 제국주의 속성은 항상 그러한 틀을 부정하지 않고, 저변에서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데 매우 익숙하다. 혹자는 그것을 ‘왜(倭) 콤플렉스 ’라고도 부르지만, 그들 자신에게는 이것이 가장 강한 도구라고 믿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p>
<p>이러한 기획이 벌어지는 장소도 지목한 바 있다. 질서는 항상 꼭지점으로부터 삼각형을 그리면서 하부로 내려온다. 종적 구도다. 횡적인 구도란 구경하기가 무척 어렵지만 그들 간에도 ‘포획 ’이란 틀이 가동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실제로는 팽팽한 긴장은 존재한다. ‘탈취(奪取)와 분열(分裂) ’이 벌어진다고 아예 처음부터 가정하면서 그들은 행동한다.</p>
<p>실제로도 먼저 그런 기획부터 시작 해서 순간순간 변형 한다. 카타(型)는 그 내부의 산물이다. 그 속에서 진정보다는 차라리 겉치레의 예의인 ‘다테마에 ’를 정형화하는 상태에서 한국, 한반도를 들여다 본다. 위험한 종속들이다. 좋은 일본인은 존재하지만 좋은 일본은 없다.</p>
<p>그러므로 대응이란 개념적 접근으로는 해답이 나오질 않는다. ‘힘이 없는 평화가 유지될 수 없다 ’는 평범한 국제사회의 진리는 공감하건 아니건 역사나 시대 속에서는 원칙이었다. 철학적 으로 나약한 감상주의는 그러한 공격을 방어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난세는 실천적인 행동주의자가 더욱 바람직하다. 한국의 오늘은 분단역사가 정리되기 전 청산되지 못한 유산을 안고 다시 백 년 전으로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기로에 서 있다 정의할 수 있다. 구구절절 일본기획자의 존재감을 기록한 것도 그 때문이다.</p>
<p>해법은 세 군데에서 나온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당면에서의 처리 방향이 필요하다. 지금 처한 환경이 그것을 말해준다. 당장에 한국에서 구성된 친일환경은 일단 농밀(濃密)하다. 그것을 깨는 노력이 없고 다음을 기약할 재주는 생기지 않는다.</li>
<li>둘째, 일본기획자에 대한 경고다. 그들의 정체는 밝혀진 상태라 하더라도 ‘보이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으면) 끝내 부인된다. 그러므로 경고는 보다 신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 내부의 각성이 필요하다.</li>
<li>셋째, 이 사태를 근본적으로 역사 문제로 다시 이끌어가야 한다. 이것은 분단역사로부터 시작된 시대문제다. 청산의 방법은 각각 다를 것이지만 ‘민족 본연의 테제 ’는 변한 적은 없다. 진보니 보수, 친북이니 반북이란 의미의 공집합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편향되거나 경도(傾倒)된 감각으로는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li>
</ul>
<p>2008.9.5 일본정부 각료회의는 ‘2008년판 방위백서 ’를 의결했다. 그 가운데는 이런 구절이 선명하게 들어갔다.</p>
<blockquote>
<p>“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인 북방영토와 ‘다케시마 ’의 영토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p>
</blockquote>
<p>2005년에 이어 4년 동안 꾸준히 똑 같은 용어로 도발을 한다. 하나의 문장에 ‘영토 ’(領土)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들어갔다. 한 마디로 대단한 집착을 한다.</p>
<p>이를 거꾸로 해석한다면 일본은 2005년 시점부터 한국, 한반도에 대한 공격지점을 설정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2004년 시점 서울 하늘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친일 ’은 곧 이어 ‘뉴라이트 집단 ’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이들은 계획된 도식에 의해서 서서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법조, 교육 등으로 세력을 뻗어갔다. 바로 그 시점에 일본은 방위백서로부터 침탈을 고시(告示)했다. 이건 시마네현 사건과는 다르다.</p>
<p>상대의 외연과 내연에 대한 수법은 치밀하다 못해 전율이 들 정도다. 이렇게 말하면 또 주눅든다는 사람도 생길 법하지만 그 수준이라면 이미 이 시대를 건 전쟁은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p>
<p>결국 방법도 역으로 수순을 밟아갈 도리밖에는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p>
<ul class="checkListType">
<li>
<p>첫째, 일단 한국 내에 들어온 ‘친일의 재구성 ’이 철저하게 붕괴되어야 한다.</p>
<ul class="arrowListType">
<li>그들의 조직이나 그들 개개인이 얼굴을 들고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게 되거나, 아니면 그래도 그들의 권력이나 입지를 믿는다면 그들을 몰아낼 도리밖에는 없다. 그래서 일정 수준의 안정화를 필요로 한다. 가장 극악한 자들부터 쳐내는 작업을 하거나 아니면 그들 주변의 사람들을 봉쇄, 이탈 시켜야만 한다.</li>
<li>개인적 입장에서 나는 ‘국민화합 ’이라는 명목으로 이들마저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논리는 곧 ‘친일의 병증(病症)을 위하여 우리 모두 숙주(宿主)가 되자! ’라는 구호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 단언컨대 이들을 버리지 않고서 한국, 한반도의 역사가치, 정체성, 정통성은 절대 회복될 수 없다.</li>
<li>‘경제 ’의 안정과 살리기라는 과제에 목을 매달거나 혹은 이것만 된다면 이들과의 공존도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은 스스로를 ‘사냥개 ’로 만든 사람들보다 못한 논리다. 온당하지 않은 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우리 것만이 아닌 우리 이전의 사람들과 우리 이후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터’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li>
<li>여기에 함정이 있다. 소시민이나 사적 이익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않고서 역사나 시대는 운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극복해야만 할 당위가 있다.</li>
</ul>
</li>
<li>
<p>둘째, 일본의 침탈기획에 대한 부분이다.</p>
<ul class="arrowListType">
<li>이 자료도 마찬가지만 이것은 일종의 ‘관찰기록 ’에 해당한다. 이 수준에서도 그들의 의도가 드러났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이것은 실질적인 전쟁의도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시작되었지만 그래도 중단할 수 있는 계기는 많다. 하지 않는다면?</li>
<li>그 이후는 우리의 20세기 역사로부터 이어져온 ‘행동하는 양심 ’을 믿을 도리밖에는 없다. 그들의 조상이 어떠한 위치였으며, 그들이 이 땅과 그 시대, 지금 살아가는 우리의 시대를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오늘의 DNA라면 우리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li>
<li>침탈은 완성될 것이다. 거기에 젖어 드는 순간, 모든 과거의 역사와 시대는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이 사실에 대해 부인할 것인가, 인정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사회 각 계층과 직업에 다양하게 발을 뻗어버린 고식화된 이미지를 깰 수 있는 방법은 일단 개인의 각성으로부터 모든 일이 출발되어야 한다는 걸 반증한다. 이 자료가 작성되는 뜻이기도 하다.</li>
</ul>
</li>
<li>
<p>셋째, 민족문제다.</p>
<ul class="arrowListType">
<li>‘친일 ’이나 일본기획자의 가장 큰 특징은 한반도에서 다시 민족주의가 생동감 있게 넘치는 걸 억지하고 그 가운데서 ‘민족 ’이란 단어를 값어치 없는 것으로, 현재 살아가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경제 ’에서 불필요한 감성적인 것으로 폄하하려는 시도다. 우스운 것은 그 가운데서 일본식 민족주의는 선연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왕’을 중심으로 한 ‘꼭지점으로의 경배 ’(敬拜)가 있다. 과거와 하나도 달라진 바가 없는 접근법이다. 그들 식으로 판단하는 우열(優劣)의 기준에서 한국, 한반도는 언제나 열세(劣勢)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제국주의 일본은 타당했다 ’는 논리가 지배한다. 그것을 다시 각인(刻印)시키고자 하는 움직임, 그 전초전이 바로 ‘뉴라이트 집단 ’이라는 사냥개 무리들을 양성한 것이다.</li>
</ul>
</li>
</ul>
<p>진보나 보수라는 스탠스의 문제, 좌파 우파라는 냉전적 개념 또한 일본의 입장에서는 1945년 이후 60년대를 거치면서 지긋지긋하게 맛보았던 개념에 속한다. 패전 이후 일본은 온갖 사상들이 난무했던 곳이다. 단순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가 태동된 곳이 아니다. 그들은 그와 같은 투쟁역사 속에서 ‘일왕 ’을 중심으로 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매우 기묘한 시스템이다. 그것이 바로 ‘왜색 ’(倭色)이라고 내가 부르는 부분이다.</p>
<p>그러한 색깔이 한국 내에서도 유사성을 띠며 남아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과는 달랐다. 민족주의는 하나의 색깔로 온존(溫存)했었다. 당연히 일본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본과는 대립적인 측면이 강한 것이었다. 그 차이를 인식하지 않으면 일본을 상대할 수 없다. 그 키워드는 바로 ‘민족 ’이다. 이건 정책도 아니며 당위에 준(準)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깨는데 혈안이 된 것이 일본기획자, 그 사냥개라는 사실을 알고, 그 방어와 공격의 핵심을 찾아보는 각성이 당연히 필요하다.</p>
<h3>12. 친일독재; 영혼 없는 삶을 늘인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2" title="toc_12" class="anchor" id="toc_12">#</a></sup></h3>
<p>한국 사회 국가 내부의 문제점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바로 오늘 우리는 어떤 문제를 안고 있기에 이와 같은 ‘시대 ’를 만들었는가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할 때다.</p>
<p>이것은 단지 오늘에만 그칠 일은 아니다. 오늘 이후에도 내일, 또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번져갈 일이다. 사회 국가 민족이 생존하고 있는 동안은 그렇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p>
<p>MB정권이 들어선 이후 드러난 몇 가지의 독특한 현상이 있다. 친일 사냥개에 의한, 일본기획자에 의한 ‘친일의 재구성 ’이 보여준 위력 같은 것이다.</p>
<ul class="checkListType">
<li>
<p>첫째, 지식인들의 침묵이 길어진다.</p>
<ul class="arrowListType">
<li>그들에게서 ‘시대 ’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혼선을 준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그들 또한 소시민적 감상에 빠져버리게 한 지난 십여 년의 세월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침묵의 장기화는 90년대와도 전혀 다르다.</li>
</ul>
</li>
<li>
<p>둘째, 편가르기가 극한을 치닫는다.</p>
<ul class="arrowListType">
<li>‘왜색 ’의 수법이다. 다시 친북 반북을 내걸고, 친 정부 반 정부, 준법과 불법, 친 기업 반 기업, 친 경제 반 경제 등 ‘친반(親反) ’의 대립구도를 형성시킨다. 분열(分裂)을 통한 탈취라는 대목이다. 영역싸움이 아니라 기세싸움이고, 치중(置重)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니편 내편 ’을 가른다. 그리고 권력을 통해, 공권력, 금력, 법치 질서, 정부 공능 확대 등을 통해 이를 포획하려 한다.</li>
</ul>
</li>
<li>
<p>셋째, 일방통행 현상이 뚜렷하다.</p>
<ul class="arrowListType">
<li>지도(指導)나 계몽(啓蒙)이라는 개념이다. 선악(善惡)에서 일단 권력을 쥔 자, 힘이 있는 자가 우세한 강자존(强者存)의 법칙을 적용한다. 즉 강자가 약자를 가르치고 가는 게임룰이다. 그런 관념이 이들에게 지배적이다. 마치 일본이 조선에 행했던 수법과 아주 흡사하다. ‘폭압-문화-강압-수탈 ’이라는 형식으로 길들이는 행태다. 그러니까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초기 단계에서의 ‘폭압 ’(暴壓)을 거치지 않고서는 파블로브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 수법이 다양한 각도에서 적용되는 모습이다.</li>
</ul>
</li>
<li>
<p>넷째, 일본에 대한 부분이다.</p>
<ul class="arrowListType">
<li>이 카드는 작년 대선이 끝나자마자 터져 나왔다. 그 이전까지 뉴라이트 집단은 잠복기를 거쳤던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수준에서 적절하게 별 것 아닌 자발적 폄하심리, 외면심리를 한껏 조성시켰다. 그리고서 등장을 했다. 2008년 4월 총선이 끝나고서는 이제 거칠 것 없는 ‘친일 ’이 터져 나오려는 찰나 쇠고기 정국이 맞물렸지만 그 와중에 오히려 그들의 세력을 보여주려는 시도 또한 극심했다. 권력, 종교, 세력이 모두 활용되는 사이 이들을 상대하는 집단의 부재(不在)를 읽고 이들은 이제 ‘친일찬양 ’을 드러내놓고 한다. 유사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li>
</ul>
</li>
<li>
<p>다섯째, 권력이 이에 동조한다.</p>
<ul class="arrowListType">
<li>MB정권은 그 자체가 바로 ‘뉴라이트 집단 ’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정치권력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들을 내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에게 ‘당위 ’(當爲)를 부여해 준다. 준 (準) 정책권력집단이다. 정부부처 하나가 더 생긴 셈이다. 바로 ‘뉴라이트 부(部) ’다. 정당 하나가 더 생긴 것과 같다. 바로 ‘뉴라이트 당(黨) ’이다.</li>
</ul>
</li>
</ul>
<p>이것은 바로 한국이란 국가 내부에 ‘친일 찬양부 ’와 ‘친일 찬양당 ’이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친미수구, 친일수구와는 그 본질을 달리한다. 그 자신감의 배경에는 그들이 이 정권의 핵심이며 친위세력이며, 나아가 정부와 정당, 그에 파생하는 권력구조 속의 주인이라는 의식들이 배여 있다. 그것은 논리이전 ‘힘이 있다 ’는 판단으로부터 나타나는 일종의 자만심이다. 꺾어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바로 ‘권력화 ’를 인증 받게 된다. 누구로부터? 바로 시대로부터 받는 것이기에 문제가 된다.</p>
<p>이 상황은 꽤나 복잡한 측면을 가진다.</p>
<p>한국 사회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하나의 테제가 늘 기본적 사회심리의 가동축(稼動軸)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민주 ’, ‘민주주의 ’다. 사회 국가 내부에서 이 원칙이 개개인에게 피부로 절감하지 못하면 바로 ‘반민주저항 전선 ’이 형성되곤 했다. 그것은 용공반공론과 끊임없이 대립했다.</p>
<p>그런데 친일의 재구성에 는묘하게 반민주적 요소가 마구 드러난다. 그래서 ‘독재 ’(獨裁)라는 말이 성립한다. 정권 개시 6개월이 지나지 않아 터져 나온 이 테제는 매우 중요하다. MB 정권이 가는 방향이 ‘민간독재 ’인지, 아니면 이제 정확하게 정의해서 ‘친일독재 ’인지를 가늠하는 시기로 돌입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것을 ‘경제살리기 ’라는 구호 하나로 얻어진 정권이므로 ‘경제기만독재 ’라고 부르자는 견해도 나온다. 그 어느 것이나 현 정권의 반민주, 독재성향은 점차 더 깊어가는 중이다. 목표가 어디인가를 살펴볼 때가 되었다.</p>
<p>정치권 이 죽었다. 야권은 지리멸렬했다. 한 마디로 뚜렷한 시대감각이 부족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테제가 잘못되었다. 그들 가운데서도 ‘친일 ’의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친일의 재구성 ’은 현재 거의 70% 이상은 완성된 단계라는 자기들 내부의 평가가 나온다. 그들끼리의 세상이라는 이 사고(思考)를 극복할 매개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권은 이미 죽었다. 더 이상 기대할 바는 없지만 있다면 단 한 가지, 그들 내부의 분열이 다시 벌어지는 수밖에는 없다.</p>
<p>친 정권 성향이 가진 ‘프락치 ’성향에도 주목한다. 이것이 사회집단으로써의 ‘뉴라이트 ’의 기능이기도 하다. 인간심리 가운데 정치적 출세욕과 금권욕, 그리고 ‘완장 ’의 질서가 새롭게 등장했다. 거기에는 ‘사적 이익 ’이라는 변수가 가장 크다. 이들 가운데서는 과거 정권이나 시대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낙오자들도 수두룩하다. 그렇게 하나의 집단이 형성된다.</p>
<p>사적 이익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개신교 ’를 활용한 종교적인 사회운동, 정치운동 집단이다. 이들이 사회악으로 등장했다. 과거부터 있었던 것이나 이들이 정치와 결합하며, 친일과 결탁하면서 시대를 훼손하는 행렬은 걷잡지 못할 정도로 크게 부풀려졌던 셈이다.</p>
<p>사회 국가 전체가 골병이 들고 있다.</p>
<p>내부에서 가장 취약했던 정신적 피폐는 조중동이라는 언론을 통한 장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에겐 각자 이익이 있다. 방송과 페이퍼 매체 언론의 틀에서 보자면 이들은 각각 새로운 정부와의 담합을 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줄기차게 그들과 타협하지 않은 노무현 정권을 공격했다. 그 결과가 바로 작년 대선이고 금년 총선까지 이어졌다. 전형적인 서커스 같은 미디어 선거전이었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은 것은 국민들이다. 약간의 심리적 인지공황(認知恐慌)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2008년 한국이다.</p>
<p>이것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p>
<p>이 부분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미 세력화에 성공한 친일집단은 그 기반을 통해 국민들을 계몽하려고 하고 세뇌까지 한다. 이것은 사회학적으로 본다면 특정 세력의 다른 세력에 대한 포획, 즉 노예화 수준에 버금간다. 그에 저항하면, 법치라는 잣대가 들여 대어지고 정작 그들에게는 법치가 적용되지 않는다.</p>
<p>일방적인 게임이다. 저기 들판에서 사냥꾼들이 들소몰이를 하면서 행하는 일방적인 ‘도살 ’(屠殺)이고 ‘길들이기 ’같은 것이다. 이런 행위는 다시 ‘질서 ’(秩序)라는 이름이 붙는다. 집단화하고 획일화하면서 자유의지를 꺾는 정책이 집행된다. 정권과 뉴라이트가 가진 생각은 이렇게 끝없는 통제국면에만 치중되고 있다.</p>
<p>그래서 이것을 중증(重症)으로 판단한다. 단순히 어떤 약물이건 물리치료 수준에서 끝날 아픔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깊숙하게 병이 깊어지는 현상, 그것이 바로 악성(惡性)이다.</p>
<p>더 이상 손 쓸 수조차 없게 되는 때는 그리 멀지 않았다고 본다. 무엇인가 과감한 처방(處方)이 필요하지만 그것도 썩 눈에 띄질 않는다. 지식사회가 움직이지 않고 소수의 촛불민심이 지탱하고, 일부 언론들이 이에 항거하는 세력일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공권력(公權力)이다. 모순되지만 거기에도 ‘공’(公)이라는 ‘공공 ’(公共)이 부여한 직위와 명칭이 붙어 있다. 직접민주주의로 인해 초래된 비극이다.</p>
<p>과연 국민은 ‘친일 ’을 마음 놓고 이 시대에 찬양해도 좋을, 확산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준 것인가?</p>
<p>그렇지 않다.</p>
<p>국민이 그렇게 한 바가 없고, 설혹 일부가 그랬다 하더라도 그들은 소수일 뿐이다. 철저한 기망(欺罔)이었다. 그래서 좌절감이 더 드는 것이다. 스스로 해소할 역량이 없다면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이고, 그럴 마음이 없다면 ‘개’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도 않고 모든 상황을 수용한다면 애국(愛國)이 없는 자기 시대를 소중하지 않게 살아가는 그저 한 인생이 될 수 밖에는 없다.</p>
<p>‘영혼 없는 삶 ’이 이어진다.</p>
<p>안타깝지만 벌써 많은 숫자는 그 방향으로 가는 중이다. 그러나 이 또한 장담할 바는 아니다. ‘민족 ’의 기질이 간단하지 않다. 의기(義氣)가 살아있는 민족이라면 적어도 이런 사태에서 침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을 할 것이다. 그 힘이 부족하다면 그 때 가서야 ‘참혹하다 ’고 말하면 된다. 참혹(慘酷)이란 그럴 때에 사용 가능하다.</p>
<h3>13. 모든 것은 ‘선택 ’(選擇)이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3" title="toc_13" class="anchor" id="toc_13">#</a></sup></h3>
<p>짧은 시간에 이 시대를 지켜본 감상을 모두 적으려다 보니 무척 마음이 괴롭다. 감성적인 단어들이 많이 흐른다. 그렇다고 어쩔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이다. 관찰하고 정리하는 것, 그것을 글로 남겨두는 것이 고작이다. 내 능력이 닿는 일이다.</p>
<p>‘해방되었는가?; 독립되지 못한 나라에 서다 ’를 2008.6.30 쓰기 시작한 이후 두 달이 흘렀다. 그 동안 여러 이야기를 썼지만 결론은 그 날 붙였던 저 제목에 모두 담겨 있다. 우리는 지금 독립되지 못한 나라에 있고, 독립이 오기는커녕 다시 강점(强占)의 시대로 돌아가려고 하는 중이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다.</p>
<p>MB정권은 ‘지배자 ’(支配者)를 흉내 낸다. 더 이상 한국이 민주국가라는 명칭으로 불리지는 못한다. 거기에는 ‘독재 ’(獨裁)가 있고 사적 이익을 취하는 대열이 있을 뿐, 애국애족(愛國愛族)은 없다. 모두 국가, 민족 시대, 역사, 민주, 개혁을 떠들지만 정작 드러나는 것은 ‘얄팍한 속임수 ’일 뿐이다. 이 현상의 내부에 ‘친일 ’이 숨겨져 있고, 그 외연(外延)에 일본기획자는 존재한다. 단순하지 않은 시대다. 바로 침탈의 시대다.</p>
<p>어디로부터 손을 대어야만 이 잘못된 틀이 고쳐질 수 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방법은 없다.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바로 지금이 가장 빠른 시기다. 집중해야 되는 부분은 전방위(全方位)다. 어느 한 곳만을 놓쳐도 이제는 시대를 훼멸(毁滅)시키는 것은 정해져 있다. 그만큼 침탈기획은 매우 정밀했다.</p>
<p>행여나 이것을 지난 60여 년과 비교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앞서 숱하게 오늘의 상황이 왜 과거의 그것들과 다른 것인가는 설명했다. 오히려 훨씬 이전의 상황과 더 흡사하다. 바로 일제강점기, 이미 침탈이 성공한 직후의 상황과 닮았다. 시대가 바뀌니 패턴도, 현상도 각각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p>
<p>여기에서 무지(無知)는 죄악(罪惡)이다. 맹점이 생긴다. 앎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목적을 가진 세력이 사용하는 기획방법은 다양하다. 모르게 하기도 알게 하기도 한다. 적절하게 적응시켜 무디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느 날 갑자기 그것을 꺼내어 경악하게 함으로써 상대를 굴복시키기도 한다.</p>
<p>실행은 병법이 가진 모든 것이 동원된다. 상대적으로 이를 막는 것이 집단, 세력이 아니라면 이것은 매우 어려운 전쟁이 된다. 지금이 그렇다. 기획하는 상대에 맞서 기획이 이루어지지 않고, 또한 사회 국가 시대에서 대상 가능한 위치까지도 상대에게 내주었다. 미리 앞마당을 상대에게 준 상태에서 벌이는 전투,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된다. 그러니 아득하다.</p>
<p>정권이 짧으니 지나갈 때까지 잘 버티자는 사람들도 있다. 몰라서 하는 소리다. 상대는 그리 호락하지 않다. 그 시간이면 지배력을 갖추기에 충분하다. 강점(强占)이 가진 속성은 한 번 잡은 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용 가능한 모든 방법이 동원된다는 것이다. 폭압은 당연한 것이고 유화정책도 펼친다. 냉탕 온탕을 오가는 사이, 거기에 젖어 들기 쉬운 것이 소시민의 삶이다.</p>
<p>지금의 연대가 50년대로부터 이어져온 민주와 민주주의를 위한 항거와 저항의 시기이면 모르나 완벽하게 경제라는 거죽을 뒤집어씌운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다. 그래서 ‘경제 ’라는 테제 로삶의 양적인 팽창과는 달리 질적으로는 기득권의 계급화, 포획이 벌어진 상태가 되었다. 거기에서 ‘탈취 ’(奪取)의 공세를 감당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p>
<p>우선 정치세력에서 기대할 바가 적어졌다. 그것이 바로 지난 십 년 정권의 공과(功過) 가운데 가장 최악인 부분이다. 이런 시대를 대비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켰다. 자화자찬을 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해도 결론은 마찬가지다. 지금 들어온 ‘친일 바이러스 ’는 그래서 작은 파괴력을 지닌 것이 아니라 강력한 훼손 능력을 동반하고 있다. 빈틈이 노출된 셈이다.</p>
<p>선택은 각자의 몫이다.</p>
<p>늘 그렇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념과 의지, 그리고 삶이 방식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한다. 그 방향이 옳거나 그르거나 문제는 나중에 평가될 뿐이다.</p>
<p>이 시대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행동하지 않거나, 혹은 시대를 가볍게 여기면서도 행동은 하는 경우의 수는 얼마든지 있다. 그게 바로 삶이다. 선택에 따른 다양성은 삶이 가진 가장 무서운 가능성이다. 그렇지만 나의 삶이 나의 시대 속에 들어올 경우는 다르다.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앞선 시대와 다가올 시대가 동시에 공존하게 된다.</p>
<p>어쩌면 이 글은 무용지물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저 한 사람의 넋두리 취급을 받을는지도 모른다. 기록한 자의 입장에서는 이 기록의 타당성을 믿는 것이고, 기록의 당위도 있다. 그러나 기록을 보는 자, 느끼는 자, 행동하는 자, 시대를 각인하는 자의 입장은 하거나 않거나 엄격한 선택의 길이 주어질 뿐이다. 나는 이 기록을 정리하려고 선택했을 뿐이다.</p>
<p>학자가 아닌 현장을 보는 사람이 지금까지 두 달 넘도록 글을 썼다. 약간 감상적으로 말하자면, 이 글은 쓰레기가 될 수 없다. 어떤 직업, 지위, 연령, 학력, 입장 등에 있다고 하더라도 시대를 살아가는 삶에 있어 하나의 참고는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이 또한 선택이다.</p>
<p>한국, 한반도, 시대를 본다. 여기까지다. 그 속에 담겨오는 여러 이야기들은 변이를 거듭할 것이다. 시간은 생물이며, 시대 또한 생체적 반응을 일으킨다. 죽은 시대를 살아가려는 한반도를 본다. 안타깝다는 말로는 형용하기 어렵지만, 오늘도 인터넷에 떠도는 많은 뉴스와 의견, 신문 방송에서 나타나는 그들 식의 시대읽기 가운데는 선명하게 ‘친일의 잔재 ’가 드러난다.</p>
<p>그 놈의 바이러스 참 무섭기도 무섭다. 한시 바삐 죽여 없애야 이 시대가 산다.</p>
<p>(2008.9.5 止月 山庄에서 쓰다.)</p>
<p style="text-align:right;">이 글은 <a href="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362">스프링노트</a>에서 작성되었습니다.</p>
<br />Posted in 담담당당 Tagged: 뉴라이트, 독립, 민족주의, 시대, 이명박, 자주, 촛불정국, 친일파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comments/coreannight.wordpress.com/19/"><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comments/coreannight.wordpress.com/19/"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delicious/coreannight.wordpress.com/19/"><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delicious/coreannight.wordpress.com/19/"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facebook/coreannight.wordpress.com/19/"><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facebook/coreannight.wordpress.com/19/"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twitter/coreannight.wordpress.com/19/"><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twitter/coreannight.wordpress.com/19/"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stumble/coreannight.wordpress.com/19/"><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stumble/coreannight.wordpress.com/19/"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digg/coreannight.wordpress.com/19/"><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digg/coreannight.wordpress.com/19/"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reddit/coreannight.wordpress.com/19/"><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reddit/coreannight.wordpress.com/19/" /></a> <img alt="" border="0" src="http://stats.wordpress.com/b.gif?host=coreannight.wordpress.com&amp;blog=5630345&amp;post=19&amp;subd=coreannight&amp;ref=&amp;feed=1" width="1" height="1"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c%96%b4%eb%8a%90-%eb%af%bc%ec%a1%b1%ec%a3%bc%ec%9d%98%ec%9e%90%ea%b0%80-%ec%9d%bd%eb%8a%94-%ec%8b%9c%eb%8c%80%ec%9d%98-%ec%99%b8%eb%b6%80-%ed%86%b5%ec%8b%a0-200895/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media:content url="http://1.gravatar.com/avatar/bc8f883dd78ebe308860a9b0136eadd9?s=96&#38;d=identicon" medium="image">
			<media:title type="html">coreannight</media:title>
		</media:content>
	</item>
		<item>
		<title>어느 민족주의자의 시대경고 3 (2008.8.30)</title>
		<link>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c%96%b4%eb%8a%90-%eb%af%bc%ec%a1%b1%ec%a3%bc%ec%9d%98%ec%9e%90%ec%9d%98-%ec%8b%9c%eb%8c%80%ea%b2%bd%ea%b3%a0-3-2008830/</link>
		<comments>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c%96%b4%eb%8a%90-%eb%af%bc%ec%a1%b1%ec%a3%bc%ec%9d%98%ec%9e%90%ec%9d%98-%ec%8b%9c%eb%8c%80%ea%b2%bd%ea%b3%a0-3-2008830/#comments</comments>
		<pubDate>Mon, 24 Nov 2008 15:24:17 +0000</pubDate>
		<dc:creator>coreannight</dc:creator>
				<category><![CDATA[담담당당]]></category>
		<category><![CDATA[뉴라이트]]></category>
		<category><![CDATA[독립]]></category>
		<category><![CDATA[민족주의]]></category>
		<category><![CDATA[시대]]></category>
		<category><![CDATA[이명박]]></category>
		<category><![CDATA[자주]]></category>
		<category><![CDATA[촛불정국]]></category>
		<category><![CDATA[친일파]]></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c%96%b4%eb%8a%90-%eb%af%bc%ec%a1%b1%ec%a3%bc%ec%9d%98%ec%9e%90%ec%9d%98-%ec%8b%9c%eb%8c%80%ea%b2%bd%ea%b3%a0-3-2008830/</guid>
		<description><![CDATA[목차 들어가면서 1. MB는 선택하라! ; 무엇이 당신의 ‘실용 ’인가? ‘친일 ’도 당신 이 소중하게 여기는 ‘옵션 ’인가 , 아닌가 ? 2.&#160;김진홍-서경석; 자발적 친일과 사적 이익의 친일 행각 을 모두 청산하라. 한시 바삐 이 땅을 떠나라. 3. 정권 수호를 위한 ‘친일 ’이 용서 가능한가? 그들에게 향후 백 년 이내는 집권 기회가 없기를 천지신명께 빈다. 4. [...]<img alt="" border="0" src="http://stats.wordpress.com/b.gif?host=coreannight.wordpress.com&amp;blog=5630345&amp;post=15&amp;subd=coreannight&amp;ref=&amp;feed=1" width="1" height="1"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id="toc" style="border:1px solid tan;background-color:rgb(255,255,250);padding:2px 10px 0;"><strong>목차</strong></p>
<hr />
<ol>
<li><a href="#toc_0" title="toc_0" class="external">들어가면서</a></li>
<li><a href="#toc_1" title="toc_1" class="external">1. MB는 선택하라! ; 무엇이 당신의 ‘실용 ’인가? ‘친일 ’도 당신 이 소중하게 여기는 ‘옵션 ’인가 , 아닌가 ?</a></li>
<li><a href="#toc_2" title="toc_2" class="external">2.&nbsp;김진홍-서경석; 자발적 친일과 사적 이익의 친일 행각 을 모두 청산하라. 한시 바삐 이 땅을 떠나라.</a></li>
<li><a href="#toc_3" title="toc_3" class="external">3. 정권 수호를 위한 ‘친일 ’이 용서 가능한가? 그들에게 향후 백 년 이내는 집권 기회가 없기를 천지신명께 빈다.</a></li>
<li><a href="#toc_4" title="toc_4" class="external">4. 일본,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여기서 중지하라. 이건 마지막 경고다.</a></li>
<li><a href="#toc_5" title="toc_5" class="external">5. 적극적 친일의 사냥개들은 즉시 혀를 깨물든 배를 가르든 자결하라. 이 시대에 너희가 살아있을 가치가 있는 ‘단 한 순간 ’도 없다.</a></li>
<li><a href="#toc_6" title="toc_6" class="external">6. 북한, 어리석은 사태 파악으로 남한의 친일을 북돋운 책임을 져라.</a></li>
<li><a href="#toc_7" title="toc_7" class="external">7. 공권력에의 경고. 친일의 개 노릇 의 말로는 역사가 증명한다. 각성하라!</a></li>
<li><a href="#toc_8" title="toc_8" class="external">8. 반북 반공에 매달려 친일과 손잡은 어리석은 골통보수여! 시대를 보라!</a></li>
<li><a href="#toc_9" title="toc_9" class="external">9. 일본 간첩, 동맹의 한계와 예의에 대하여 한 마디를 하자.</a></li>
<li><a href="#toc_10" title="toc_10" class="external">10. 국민들이여! ‘다시 백 년 ’전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말인가?</a></li>
<li><a href="#toc_11" title="toc_11" class="external">11. ‘시대 ’는 결코 너희의 의도대로 흐르지 않는다.</a></li>
</ol>
</div>
<h3>들어가면서<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0" title="toc_0" class="anchor" id="toc_0">#</a></sup></h3>
<p>지난 6월30일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두 달 동안 한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시대 전쟁 ’의 실상을 밝혀보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사이 &lt;시대읽기&gt;, &lt;시대경고&gt;의 몇 편 글들은 그런 점에서 현재 한국, 한반도가 어떤 시대 속으로 들어와 있는 지, 일본 이란 하나의 세(勢) 가 ‘친일의 재구성 ’과 ‘다시 백 년 ’을 어떤 형태로 꾸미면서 한국과 한반도에 접근해오는 지에 대한 현장 보고서에 해당한다. 이 자료를 통해서라도 그들의 대강(大綱)을 인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p>
<p>원래 &lt;시대 경고&gt; 중급편을 통해서 한국 내의 ‘친일 ’에 대해 약 40명 수준에서 그 면면을 살펴보고자 했다. 그러나 도저히 그를 정리하기 위해 글을 더 이어갈 수가 없었다. 뭔가 자료를 정리 하는 데 이렇게 역겨운 감정이 든다는 것, 그것이 오늘 한국을 지켜보는 나의 감성적인 임계점 같이 여겨지기도 했다. 채 정리하지 못한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유형이다.</p>
<p>친일을 경제에까지 확장하 며 제2의 김진홍을 노리는 ‘박효종 ’, 학자를 흉내 낸 교묘한 악질 모리배 ‘제성호 ’, 서양사학자라는 타이틀이 전혀 어울리지 않게 서울대 간판으로 친일의 이론가로 탈바꿈한 ‘박주향 ’, 분단 고착화를 드러낸 ‘건국절 ’을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 ‘김영호 ’, 북한 과 분단현실 을 들먹이며 친일과 협조하는 ‘유세희 ’, 대학을 지성의 집단이 아닌 개인주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뉴라이트 대학생연합 ’, 종교라는 감투 아래 반북 반공만을 외쳐 비리를 감추는 한국 대형교회의 자화상 ‘김홍도 ’, 뉴라이트 홍위병을 자처하는 ‘뉴라이트 청년연합 ’, 일본세라도 정치에만 도움이 된다면 넙죽 받아먹는 본질적 친일 ‘나경원 ’등이 바로 남겨진 이들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나씩 그들의 죄업을 낱낱이 정리해볼까 한다.</p>
<p>이제 &lt;시대경고&gt;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하고픈 말들을 정리하려는 셈이다. 이 시대를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마지막 자리에 해당한다.</p>
<p>이것은 격문(檄文)이다.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픈 나의 메시지이며, 시대의 메시지다.</p>
<p>이 글을 읽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시대라면 정말이지 더 이상은 미래 이야기 일랑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맑은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앞으로 이 현상을 알리는 글이 더 이상 침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내 정신이 나의 세 치 혓바닥을 닫는 예는 앞으로도 내가 살아있는 한 없을 것 같다. 내가 한국 땅에 살아가는 한은 그렇다.</p>
<p>지난 두 달의 피곤함을 이 글로 말끔하게 씻게 되기를 개인적으로는 바라고 바란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 그 속에서 또 어떤 흐름이 나타날 것인지, 잠을 못 이루는 끝도 없는 시대 관찰의 시간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 거시적이거나 미시적 변화에 모두 주목하며 이 글을 쓴다.</p>
<h3>1. MB는 선택하라! ; 무엇이 당신의 ‘실용 ’인가? ‘친일 ’도 당신 이 소중하게 여기는 ‘옵션 ’인가 , 아닌가 ?<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 title="toc_1" class="anchor" id="toc_1">#</a></sup></h3>
<p>8월 28일 저녁 청와대. 전날 범불교 도의 시국법회와 대회가 열린 바로 다음날, MB는 뉴라이트전국연합 회원 250명과 비공개만찬을 가졌다. 골자는 ‘도와달라! ’는 것이었다. 단순하게 보자면 ‘그들만의 잔치 ’였다. 국민은 애초 거기에 없었다. MB정권 6개월을 그대로 투명하게 보여준 자리였다.</p>
<p>이것으로 명확해진 사항이 있다. 그 회합으로 MB는 뉴라이트 집단을 그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본다 는 게 정권 이후 가장 완벽하게 드러 났다. 단순하지 않는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 그들을 곁에 둠으로써 , 두겠다 있어라 공약(公約)함으로써 그 자신이 스스로 이들의 수괴(首魁)임을 인정한다는 점을 만천하에 공표했다. 국민보다는 정치세력, 그 가운데서도 ‘친일매국세력 ’을 홍위병으로 두었다.</p>
<p>무척 까다롭긴 했지만 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 치고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이렇게 하고서 자신이 ‘친일의 재구성 ’의 핵심인물이 아니라는 소리는 이제 할 입장이 아니다. 스스로 증명해버렸다.</p>
<p>더 이상 미룰 것이 없이 나는 MB에게 직접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자신의 임기 동안은 이 시대를 책임져야 하는 당사자로써 , 숱 하게 시대를 지켜보 며 살아가는 국민 중 의 한 사람으로써 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답을 해주어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나는 다른 궁금한 이들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을 뿐이다.</p>
<p>그간 결단코 유감과 사과를 통한 꼼수 부림으로 진정한 소통(疏通)을 거부했지만 허공에서 그저 외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귀에 바싹 대고 조용히 말 하는 이 시대의 질의(質疑)에 대해 그는 답변을 거부할 아무런 명분도 가지기 어렵다 .</p>
<p>그 또한 대한민국의 국민 중 한 사람 일 뿐 이다. 그가 국민을 뛰어 넘고 시대를 무사통과 하듯 넘을 수 있는 자격이 그 어느 때고 누구에게서도 부여된 바는 없다. 대통령 또한 시대 속에서는 한 사람의 자연인(自然人)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는 대답해야 한다.</p>
<p>일본기획자의 ‘친일의 재구성 ’은 이제 드러날 만큼 난 상태다. ‘사냥개 ’를 앞세운 작업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자평(自評)도 할만 하다. 엉뚱하게도 이에 반발하는 촛불민심을 억누르는 과정에서 MB는 스스로 ‘친일의 재구성 ’도 인지하고 있고, 또한 일본기획자가 의도하는 ‘다시 백 년 ’까지도 모두 허용할 자세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사실을 부인(否認)할 수 있는가? 우선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해보자.</p>
<p>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직위는 국민들이 만들어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MB는 오히려 국민보다는 ‘일본 ’과 ‘일본세 ’를 위해 일을 하고 있 다? 부인하기는 어렵다. 대부분 상황은 대통령인 ‘그’에게로부터 비롯된다. 그렇다면 아무리 직접민주주의에 의해 선출되었다 하더라도 가장 기본적 사항에서 중대한 결격(缺格) 사유가 발생한다.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을 위한다 ’는 전제가 무너져 버렸다. 친일의 사냥개를 위한 국가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앞선 역사에서 그들이 가진 죄업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런데 왜 다시 백 년 전으로 돌아갈 궁리를 하고 있는가? 그에 협조하는가? 그들을 곁에 두는가?</p>
<p>백 번 양보해서 ‘뉴라이트 ’가 친일을 앞세우지만 국가 와 국익 에 유익하다는 식의 엉터리 논리를 변명으로 내건다고 하자. 그러나 이 또한 인정 받기 어렵다. ‘친일 ’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로 거부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발걸음은 한반도로 향할 때는 첫 걸음부터 ‘쌍방의 평화 ’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일방적 침략 이었다. 그들만의 평화, 그들만의 목적의식을 가지고 시작된 일이다. 그것이 일본의 역사이기도 하다.<br />
그렇다면 그들의 노선(路線)이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혼자만의 이익을 취득한다는 정의, 바로 ‘침탈 ’(侵奪)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은 선명해진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것을 유익 (有益) 으로 포장하는 논리가 한국 땅에서 이 시대에 횡행한다는 것, 그것을 용인하고 부추기면서 정치세 력화 하고 이를 친위로 하는 대통령은 과연 국가를 수호한다고 말할 자격(資格)이 있는가? 이것부터 따질 일이다.</p>
<p>분단역사의 정리와 그를 바탕으로 한 대통령의 미래를 위한 노력은 ‘필수 의무 ’에 해당한다. 그런데 왜 여기에 일본을 직접 당사자로 끌어 들이는가? 애당초 이것은 정책이라고 하기도 역겹다. 한미일 동맹이야 한반도 지역,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위한 일정한 기초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한일 간에 동맹이 정치적이고 군사적이며, 나아가 이른바 ‘합병 ’에 준하는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는 국민들 가운데 소수에 불과하다. 그것이 이 시대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은 하릴없는 변명이고 지독스런 억지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기본이 성립되지 않는) 논리 ’를 (억지로) 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그간 이야기한 ‘실용 ’인가?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이 말도 사실이 아니다. 죽이고 살리는 것이다. 의도적인 죽임을 살린다고 말할 수 없다.), 경제에 도움이 되면 시대와 역사가 가진 ‘국가와 국민의 정조 ’(貞操)를 내다 팔아도 좋다는 논리인가?</p>
<p>MB 가주변을 가득 채운 친일매국세력 에 대해서조차 스스로 ‘활용 가능한 옵션 ’이며, ‘그들의 수장 ’으로 대한민국의 ‘친일환경 ’을 농밀(濃密)하게 만들 요량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대통령은 지금 당장 하야(下野)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나마 정부수립 후 60년 동안 ‘친일 ’은 드러내 놓고 고개를 들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이제 그것마저 백주 대낮에 살려내려 한다면, 과거로 묻어두고 미래로만 가자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한국 대통령의 현재 시점의 자격 과 미래의 격(格) 을 가지지 못한다. 그가 이 땅을 책임질 수 있다는 증빙을 보여 주는 바가 없다는 얘기다.</p>
<p>그토록 ‘건국 60주년 ’을 외친 목소리가 바로 친일매국세력에 의해 주도되어 외곽에서 쳐주고 내부에서 연통(煙筒)하는 방식으로 잘 짜둔 시소게임을 하듯 ‘친일이 대세다 ’라고 외칠 요량으로 시작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거기에는 분단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나아가 과거 역사 속의 숱한 선 각자의 분루(憤淚)와 분투(奮鬪)가 전혀 담겨 있지 않다. 그런 역사인식이라면 이 시대를 이끌어 나갈 자격은 애당초 없었다. 이를 반성하지 않고 밀어붙이기로 일관한다면 그것은 곧 국민과의 전쟁, 나아가 시대와의 혈투(血鬪)가 불가피하다. 그러고서 국민의 고통과 피를 요구하면서 대통령이란 직책을 언제까지 가질 수 있는가?</p>
<p>알량한 종교적인 전파 신념으로 일관하는 사이 국가 는이미 종교적 편향성 이극대화된 상황이다. 대통령이 대형교회의 주구(走狗)가 되는 것도 모자라 뉴라이트 집단 처럼 친일매국세력들이 개신교의 일당들을 모아 만든 ‘기독교사회책임 ’같은 정파적 모임까지 꾸 려진 상태다. 곳곳에서 한국의 오늘을 갉아 먹는 사태는 벌어진다. 종교 , 그 가운데 개신교 가 한 몫을 한다. 촉발(觸發)은 항상 그곳으로부터 시작되었다.</p>
<p>대한민국은 기독교 신정국가가 되고 있다. 그것도 사이비 종교가 취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강압하고 있다. 제대로 된 종교의 논리가 작용하지 않는다. MB가 그런 사이비 종교 , 종교인들 속에 깃든 친일요소, 친일기획을 몰랐다고 말한다면 그건 어불성설이다.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종교를 확대코자 하는 배타성으로 어떻게 국민과 시대의 융합을 기본으로 해야 할 대통령의 직책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있다고 보는가?</p>
<p>나올 것도 다 나온다. 닥치는 대로 법치를 들이대며 잡아 들이는 공안정국도 모자라 이제는 60~70년대 판을 쏙 빼 닮은 신 메카시즘까지 드러난다. 지난 십 년을 청산하려 한다는 구실로 마구잡이로 국가를 기본 부터 해치려 든다. 뿌리를 자르려고 한다. 민족도 없고 거기엔 시대나 역사가 전무하다.</p>
<p>그 목적이 무엇인가? 독재인가? 독재를 하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일본과의 결합을 원하는가? 그들에게 협조를 받는 것이 국제관계에서 무슨 잘못인가 라고 말한다면, 그들이 협조를 구실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밝혀야 한다.</p>
<p>일본은 당신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을 원하길래 한국 의 오늘 사회 국가 내부에서 공안정국, 메카시즘까지 동원해서 국민들을 강압하면서까지 ‘친일의 재구성 ’을 완성하고자 하는 시도를 배후조종하나 ?</p>
<p>일련의 경제환경 악화에는 분명한 책임이 동반된다. 강만수의 경제정책은 ‘정책 ’이 아니라 ‘국가훼손 ’이라는 임무를 띤 케이스였다.</p>
<p>그걸 방조(幇助)한 원인은 무엇인가? 결국 경제를 위기상황으로 몰고 간 상태에서 살리기 위한 일본 세의 협조를 얻기 위함은 아니었는가? 이것은 곧 사실관계가 백일 하에 증명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바로 국익(國益)을 망실하고 국민을 도탄(塗炭)에 빠트리면서까지 일본기획자의 의도를 따른 것이다.</p>
<p>한 마디로 매국(賣國)이다. 왜 강만수를 그토록 지식인들의 입방아 속에서조차 경질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한다. 왜 경제를 위기 속으로 몰고 갔는가에 대해서는 반드시 상세한 설명을 해야 한다. 국제 환경 탓이니 몇몇 참모들의 실수 수준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이미 지난 6개월 여 지속된 경고음이 켜진 것을 모른 척 했다면 그건 방임(放任)이고 또한 무능력(無能力)이다. 명확한 ‘의도 ’까지 있었다면 그것은 당연히 국가보안을 위태롭게 한 시대의 범죄에 해당한다.<br />
MB는 이제 막무가내의 변명이나 진정성이 없는 ‘거친 ’ 사과를 하거나 공권력을 마구잡이로 써먹으며 ‘입을 막는 ’강압, 또는 신메카시즘을 꺼내어 ‘친일 ’이란 사안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친북 좌파세력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오로지 사실에 입각한 ‘답변 ’을 해야 할 의무만 남아있다.</p>
<p>그 마지막 질문이다.</p>
<p>“대통령은 본인 스스로 생각할 때, ‘친일분자 ’인가 아닌가 ? 친일매국세력의 ‘사냥개 ’인가, 아니면 수괴인가? 대통령은 일본기획자의 의도를 어떻게 따르고 있으며, 그 실책(失策)의 엄중함을 인지하고 있는가 아닌가? 대통령은 이 상황에 어떻게 국민 앞에 시대와 역사 앞에 사죄할 것인가? ”</p>
<p>부정되는 건 단순하다. 그러나 질문은 너비와 폭, 깊이 모두 매우 복잡하다. 신중하게 대답해야 할 터이다.</p>
<h3>2.&nbsp;김진홍-서경석; 자발적 친일과 사적 이익의 친일 행각 을 모두 청산하라. 한시 바삐 이 땅을 떠나라.<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2" title="toc_2" class="anchor" id="toc_2">#</a></sup></h3>
<p>구한말이나 일제강점 시대에도 ‘친일 을 신앙으로 받든 악질(惡質) 사냥개들 ’은 많았다. 그러나 해방 이후 우리는 가장 극악(極惡)한 두 사람의 친일분자를 보게 되었다. 김진홍, 서경석이다.<br />
두 사람 모두 공공연하게 ‘친일 ’을 떠들지 않는다. 나름대로 격조를 유지하려고 노력은 한다. 그것이 더 안쓰럽게 보인다. 힘을 얻고서는 안하무인 ‘친일 ’을 떠들 것이다. 그게 사냥개의 생리다. 호가호위(狐假虎威)는 조만간 벌어질 일이다.</p>
<p>한 사람은 변질되었음에도 과거 자신의 실적인 두레공동체라는 빈민사회운동을 하는 종교인으로 자신을 포장 했고, 다른 한 사람은 탈북자 조선족 같은 시대의 피해계층을 보듬는다는 명목으로, 둘 다 똑같 이종교인으로 스스로를 종교적 신념이 넘치는 양 위장(僞裝)한 채, 친일의 본류전선에 나섰다. 그들로부터 뉴라이트 집단이 라는 희대의 친일매국집단 과 정치에 참여하고 싶어 안달 난 개신교가 사회단체화, 정치세력화 되었다. 그들이 이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은 정치적 영향력과 ‘보수 ’로 포장 되고 은폐 된 친일세력 의좌장(座長) 구실, 그리고 나아가 사회영향력의 극대화를 통한 사적 이익의 확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거기엔 시대를 위한 하나의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 악질 중의 악질들이다.<br />
이들이 MB의 친위세력임을 자처(自處)하며, 한편으로 MB정권에 대한 압박을 통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 고 맘먹고 저지른 얄팍한 시도는 뉴라이트전국연합, 기독교사회책임으로 선명하게 세상에 드러났다. 이들은 ‘보수 ’가 아니다. 이들이 우익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 우익이 아니라 바로 ‘일본우익으로 편향된 제국주의 우익 ’이다.</p>
<p>본질이 다르다. 이들은 종교를 활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국민을 고려한 올바른 시대정신은 없다. 친일매국세력의 사냥개이고, 자신들의 사적 이익에 혈안이 된 자들이다. 이들은 좌파 빨갱이론을 꺼내어 사회를 냉전적으로 분열시키고, 나아가 ‘일본을 배우자 ’고 일본찬양론에 매진한다. 일본 극우의 한반도 침략시나리오의 신봉자이며, 사냥개이고, 스스로 이제 한국 사회 국가 내부의 국민들에게는 사냥꾼으로 군림(君臨)하려고 한다. 협잡(挾雜)도 이 정도 수준이면 속말로 ‘예술 ’이다. 그러나 본질이 저질스럽다.</p>
<p>이들이 가진 이 시대를 보는 개념은 앞서 써본 &lt;시대읽기&gt;, &lt;시대경고&gt;에서 자세히 살펴본 바와 같다. 핵심은 이들이 ‘한국인의 얼굴을 한 일본사냥개 ’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할 가치가 없으며, 그들이 추종하는 땅으로 돌려보낼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 스스로 여기에서 어떤 형식이건 자결(自決)을 선택하는 길 외에 다른 방도는 오래 전에 없어졌다.</p>
<p>이들이 저지른 폐해를 살펴보자.</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일본기획자의 사냥꾼으로 한국 사회의 정치를 일본의 입맛에 맞게 바꾸어 두었다. 한국의 시대 자체를 일본화 하는 데 선봉이 된 자들이다.</li>
<li>둘째, 친일의 사냥개로써 한국 내 ‘친일의 재구성 ’에 걸 맞는 정치세력화를 통해 MB 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를 통해 친일을 적극적 개념에서 사회 국가에 침투시킨다.</li>
<li>셋 째, 한국 사회 국가의 시대 당위인 분단역사의 극복을 후 순위로 밀고 정권의 친위세력으로 국격(國格)을 온전하게 보존하기는커녕 친일 정권수호에만 혈안이 되는 세력을 구성해 왔다. 그리고 그들 내부에조차 이 사실-친일의 재구성-을 은폐하고 기망(欺罔)했다.</li>
<li>넷째, 직접 정권 내부에 뛰어 들어 정치일선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친일의 재구성을 전 국가 사회 내부에 퍼트리며 세포화시키는 데 앞장을 섰다. 그 작업의 성공을 위해 무슨 짓이든 다했다. 그걸 ‘코드화 ’로 포장했다.</li>
<li>다섯째, 일본기획자와의 내통을 통해, 그들의 지시에 의거해서 한국 사회의 분열을 책동하고 나아가 ‘친일의 정당성 ’을 알리는 선전선동의 앞잡이 구실을 했다. 명확한 편가르기가 성행한 이면에 바로 이들이 있다.</li>
<li>여섯째,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회 내부의 세력화 를 시도하면서 혹세무민(惑世誣民)을 일삼으며, 선량한 종교인들에게 일본기획자의 의도를 당연한 것으로 전파하였다. 친일을 대세로 만드는 데 선량한 종교를 써먹었다.</li>
<li>일곱째, 일본고정간첩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일본의 ‘다시 백 년 ’프로그램이 한국 내에서 조속히 달성 가능하도록 전력을 다해 협조하였다.</li>
<li>여덟째, 이 잘못됨이 드러나더라도 정권의 공권력에 기대고, 자신들이 구성한 집단의 세력에 의존하며 오히려 건전한 이 땅의 국격을 지키려는 소수를 정권을 앞세워 핍박하는 데 앞장섰다.</li>
</ul>
<p>김진홍의 경우는 특별히 경고가 가 중된 다. 그는 한국의 새로운 보수집단의 좌장을 원했지만, 오히려 그보다는 정권영향력을 절대적으로 가진 ‘MB-김진홍의 공동정부 ’라는 대접을 받기를 원했다. 그는 성공한 듯하다. 청와대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자신의 권능(權能)이 있다고 까지 여긴다. 그 는 ‘내가 만든 대통령 ’이라고 떠들고 다니는가 하면, 이 정권에서 어느 누구도 자신을 푸대접할 수 없다거나 자신이 바로 정권 그 자체라고 떠벌 린 바도 있다 한다. 그는 새로운 보수결집을 통해 정권창출에 성공했다고 하면서 지난 십 년을 청산 (淸算) 의 대상으로 삼았다.</p>
<p>그런데 십 년 동안 이어진 두 개 정권 의 청산대상이 모두 ‘친북좌파세력 단죄 ’라는 것으로 포커스를 맞추어 몰아 붙였다. 친일매국세력들의 유일한 기득권 유지 방법이었던 메카시즘 탄생의 제 일 번 공로자였다. 그로 인하여 한국 사회 국가는 다시 역사충돌에 빠지게 되었다.</p>
<p>친일매국세력과 애국시민 간의 혈투가 물 밑에 숨겨져 있다. 그것이 곧 드러날 것이다. 그 때, 김진홍은 서울에 더 존재할 명분이 없다. 종교인으로 솔직하게 그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고 국민 앞에 모두 술회(述懷)하든지 아니면 조용히 이 땅을 떠나야 한다.</p>
<p>서경석도 마찬가지다.</p>
<p>정권의 나팔수로 ‘기독교사회책임 ’을 앞세워 정권을 비판 견제 한다는 명분 하에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정권 내 야당 ’을 자임했다. 그게 간판이었다. 상점 내의 물건은 달랐다.</p>
<p>그 과정에서 김진홍의 친일매국 행각 자체에 동조하는 것, 그리고 자신을 반대하는 것이 모두 ‘좌파다! ’는 논리 함정을 자초했다. 그것은 자발적 친일행위였다. 그가 어떤 과거를 가졌건, 사회 민주화를 위해 일한 경력이 어떻건 간에 오늘 서경석은 명확한 친일매국 사냥개 중 대표격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 또한 피눈물을 흘리면서 반성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 땅을 떠나는 것이 옳다.</p>
<p>한국 사회 국가의 의기(義氣)가 분출하는 순간, 그들이 이 땅에서 온전하게 더 살아있다는 걸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지 난 십여 년 사회 내부에서는 이러한 강력한 사회정의 구현의 기세가 많이 사라지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처럼 공개적으로 시대를 갉아먹는 자들까지 백주 대낮에 설쳐대는 형국은 결단코 오래가지 않는다.</p>
<p>그러므로 스스로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br />
거부하거나 반발한다면, 그들은 조만간 그들과 친일매국세력이 꾸며온 ‘친일의 재구성 ’, ‘다시 백 년 ’이 공개될 경우,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변명을 할 여지를 찾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그걸 알지 못한다면 그들이 어리석은 것이며, 알고서 오히려 역습(逆襲)할 궁리를 한다면, 그 또한 자신들이 지금까지 가져온 모든 명예와 권리를 다 잃는 계기가 될 뿐이다.</p>
<p>숨겨진 것은 밝혀지게 되어 있다. 어느 누군가 그들 내부에서 그들을 고발하는 자는 반드시 생기게 되어 있다. 이 간단한 사실조차 모른다면 친일매국의 최전선에서 사냥개로 뛰는 두 사람의 모습이 시대가 만든 악질(惡質)의 표상(表象)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다시 한 번 한다. 듣지 않겠다면, 자신이 능히 그러한 비난과 응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더욱 참혹한 결과가 올 것이다.</p>
<p>떠나라! 가급적 이 땅에서 당신들의 얼굴을 두 번 다시 보지 않도록. 또한 당신들의 행각이 영원히 이 땅에서 기록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니.</p>
<h3>3. 정권 수호를 위한 ‘친일 ’이 용서 가능한가? 그들에게 향후 백 년 이내는 집권 기회가 없기를 천지신명께 빈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3" title="toc_3" class="anchor" id="toc_3">#</a></sup></h3>
<p>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이 ‘한나라당이 극우 정당은 아니지 않는가 ’라고 질타를 했다. 올바른 지적이다. 그런데 왜 이런 지적이 그들 내부의 다수 목소리로는 나오지 않는 것일까?</p>
<p>18 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안병직을 여의도연구소 소장으로 끌어 들인다. 그를 끌어들인 사람은 김문수, 이재오 등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MB가 있었다. 그러니까 MB는 안병직-박세일로 이어지는 이른바 친일파 류(流)를 수용했고, 그것을 자신의 친위세력화 시키게 된다. 이것은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후일 박근혜도 뉴라이트 역사교과서에서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라는 점에서 손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경선 당시 뉴라이트는 이명박-박근혜를 저울질 하면서 특정 시점에서 이명박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그 때 이미 한나라당의 정체성은 무너졌다. 일본극우의 논리를 받아들여서 재편된 한나라가 오늘 있는 한나라당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p>
<p>박근혜는 총선에서의 공천과정과 친박연대라는 복잡한 정치공식 속에서 다시 재기를 노리는 형국이지만 작년 경선과정, 총선까지 이어져 오면서 한나라당 자체는 이제 더 이상 훼손될 수 없을 정도의 ‘친일 정당 ’이 되었고, 나아가 서울에서 진행된 ‘친일의 재구성 ’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다. 정몽준은 그래서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친일이란 편가르기에서는 비주류가 된 것이다.</p>
<p>정치세력으로만 보자면 그 이전 한나라당은 ‘항공모함 ’같았다. 반공 반북 세력과 친미수구세력, 그리고 사적 이익에 기반한 보수적 관점의 세력, 그리고 김영삼 정권 이후 이어져온 경상도를 중심으로 하는 반 호남세력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새로운 한나라당은 이와 같은 세력판도에서 점차 변화해서 이제는 친일매국세력과 사적 이익집단의 두 부류가 주류 가 되고, 그를 기반으로 해서 친북 좌파론을 양산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MB정부를 지지하는 제2중대로 기능을 하게 된다. 이 접점에 있는 공집합을 바로 ‘뉴라이트 ’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정치세력임을 여실히 볼 수 있다.</p>
<p>한나라당이 ‘보수 ’의 집결지가 아님을 알려면 몇 가지 대비를 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한국 정치사가 가진 ‘보수 ’역사에서 한나라당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중도보수인가 아니면 보수우파인가, 아니면 극우보수인가?</li>
<li>둘째, 한나라당이 지향하는 보수는 민족주의적인가 아닌가?</li>
<li>셋째, 한나당은 자주자립적 정책노선을 가졌는가, 아니면 친미수구, 친일수구의 형식을 가졌는가?</li>
<li>넷째, 한나라당은 국민친화적인가, 아니면 재벌 혹은 소수 기득권층 친화적인가?</li>
</ul>
<p>이 네 가지 기준이 바로 ‘보수 ’를 진단하는 잣대가 된다.</p>
<p>해답은 간단하다. 오늘의 한나라당은 대단히 우파적 관점, 그 가운데서도 일본우파의 그것과 쏙 빼 닮은 기조를 가졌다.</p>
<p>당 연하다. 안병직 류는 일본우파, 그 중에서도 극우의 논리를 전개하는 친일의 사냥개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한나라당은 한국의 정치세력이 아니라 일본화한 친일우익이 되었다. 그 이전부터 형성된 친일 반일론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60년을 이어오는 동안 그나마 ‘건전한 보수들 ’에 의해 일정한 구분법이 존재했다. 즉, 공개적인 친일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친일을 한 ’안병직을 당의 철학과 사상을 가늠하는 여의도연구소에 앉힌 상태에서 더 무엇을 바라는가? 선거를 이기기 위해 친일과 합세를 한 셈이다.</p>
<p>거기다가 ‘보수 ’라는 명칭을 붙일 이유가 없어진 대목이 바로 반민족, 반민족주의적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한나라당에게는 ‘민족 ’대신 ‘경제 ’가 자리했다. 그러니까 친 경제, 친 경제중심주의로 달려갔다. 그 사이 ‘민족과 민족주의 ’는 사라졌다. 이것을 ‘실용(실용주의 또는 국제화) ’이나 선진화로 포장하고 있다. 당연히 한나라당은 보수 정당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보적 가치관이나 혹은 다른 형태의 철학이나 사상, 개념을 받아들일 공간 자체가 없는 곳이 되었다.</p>
<p>또한 자주자립적인 관점은 오래 전에 저 멀리 버렸다. 친미 수구적 관점이야 한나라당 자체가 오랫동안 견지해온 입장이다. 한미동맹을 통한 정치적 입지는 한나라당이 지탱한 일종의 버팀목이었다는 걸 인정한다 해도, 최소한 갖추고 있어야 한국 정치사에 있어서도 ‘자주자립성 ’마저 유감없이 내던진다. MB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바로 ‘U.S.A Only ’를 외치고 그에 동조한다. 친미수구의 깃발이 올라갔다. 그 이면에는 친일이 존재한다.</p>
<p>마지막으로 한나라당은 이런 상태에서 친 국민적인 정책을 펼 수가 없다. 당연히 소수 기득권 중심의 정책을 기준으로, 국민을 담보로 한 정책구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사적 이익 추구라는 관점과도 다르다. 한나라당이라는 정권의 여당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여당의 위치도 국민이 준 것이지만 그 핵심이 바로 ‘경제살리기 ’였지만 이것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로 한나라당의 무능력으로 정의 내려진다. 기망(欺罔)이라는 단어가 적정하다.</p>
<p>이렇게 보면, 한나라당이 ‘극우정당은 아니지 않는가! ’라는 외침은 이내 묻혀진다. 그럼 이렇게 정의해야 옳은 것이다.</p>
<p>‘지금 한나라당은 친일 세력의 정당이다 ’, ‘한나라당은 보수가 아니라 경제만을 잣대로 하는 정체성이 없는 정당이다 ’, ‘한나라당은 친미수구와 친일수구가 합쳐진 복합정당으로 기능한다 ’, ‘한나라당은 기득권 친화적인 정당이며, 친 국민적이지 않다 ’,’한나라당은 친일매국세력의 좌장인 MB의 시녀이며, 그를 견제하는 제2중대 친일부대다 ’라고 정의 내리는 것이 옳다.</p>
<p>이 런 정당이 앞으로도 4년 6개월간 MB정부와 함께 호흡하게 되었다. 친일의 온상(溫床)이다. 초선 의원들의 숫자가 많지만 이들은 각각 자신들을 공천해준 한나라당 내부의 멘토들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정치에 입문하게 해준 조력자들이고 사실상의 ‘왕초 똘마니 ’구도 속에 처해진다. 그런 구도 속에서 자각(自覺)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엷게 보인다. 그러나 느낌은 있을 것이지만 한국 정당이 가진 이른바 ‘수직 형(피라미드형) 위계질서 ’속에서 어느 만큼 온전하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유지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정당 내부의 사적 이익 확대에 더 열을 올리게 될 공산도 크다. 가능성은 없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를 희망할 뿐이다.</p>
<p>한나라당은 과거의 그것과는 정체성이 달라져 있다. 뉴라이트 2중대가 되었다. 즉, 친일 제2중대라는 의미다. 정치 속으로만 보자면 바로 제1중대가 될 수도 있고, 스스로 본진(本陣)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MB 정권 전체로 본다면 제2중대가 옳게 보인다.</p>
<p>이런 정당이 한국 정치사에 존재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렇게 만들어준 국민들은 아마도 지금 많은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그 정체를 모르는 국민들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야당(野黨)의 존재감도 없는 상태에서 ‘선택할 곳이 없으니 거기라도 믿는다 ’는 식의 생각을 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한국 정치 역사의 비극이다. 그렇다고 이 모습이 옳다고 믿는다면 그건 더 최악이다. 지금 한나라당과 같은 정당은 ‘일본우익의 별동대 ’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는 날이 곧 온다. 정치적인 연합은 상당히 심도 깊게 진행되었다고 봐야 한다.</p>
<p>한국이 온전한 나라가 되려면 이런 정체성을 가진 한나라당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명맥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향후 100년간은 집권의 기회조차 줘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가능할 것인가?</p>
<p>이럴 때는 한국인 이란 사실 에 회의감이 밀려 든다. 친일매국세력의 재구성을 좀 더 일찍 알릴 방법이 없었던 것이 한스럽지만, 그들도 교묘하게 한국인 , 사회 의 빈틈을 공략했다. 조중동을 앞세운 선전전략에 당한 바도 컸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다. 한나라당은 이런 모습으로는 향후 100년간은 정권을 탐내서는 안 된다.</p>
<p>독설(毒舌)이 아니다. 여기에 진정(眞情)이 있음을 알면 한나라당은 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한나라당은 향후 100년 집권의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p>
<h3>4. 일본,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여기서 중지하라. 이건 마지막 경고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4" title="toc_4" class="anchor" id="toc_4">#</a></sup></h3>
<p>일본 극우, 우익들의 한반도 재침 기도는 그들 지식인 사회에서는 보편적 으로 언제든지 가능하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보는 멘탈리티 범주 에 속한다. ‘친한파 ’라는 명칭에 숨겨진 그들의 야욕과 판단기준은 명확하다. 안병직 류의 ‘식민지근대화론 ’을 그들은 얼마나 고대(苦待)했겠는가 생각해보면 피눈물이 날 지경이다. 제국주의와 팽창주의, 그리고 일본의 일제강점 역사의 정당성, 그리고 해방 이후에조차 일본을 뿌리로 하는 친일파 세력들이 한국을 일으켜 세웠다는 논리까지 이어지면 바로 그것이 한국을 친(親)하게 들여다 본다는 사람들의 논리였다.</p>
<p>상대적으로 그렇지 않게 보는 한국 사람들이 바로 비하(卑下)할 대상으로 발전한다. 그런 한국사람은 일본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과거를 따지면서 미래를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고, 친북을 선동하는 사람들이며, 친일이 친북보다 월등하게 우월한 개념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보 ’로 취급 받는다. 그들의 개념이 한국 내에서 급속하게 뿌리를 내린 ‘뉴라이트 ’로 이어진다. 그들에게 반공과 반북이란 카드는 언제나 써먹기 좋은 카드다. 그렇다고 그들이 애국자인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일본 우익의 논리를 한국에 끌어다 붙인 ‘친일매국세력 ’일 뿐이다. 그걸 포장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가면 ’(假面)이 바로 열렬한 반공주의자다. 그런 세력들과도 결합한다.</p>
<p>일본기획자의 입장에서는 기왕에 한국 내 뿌리가 깊은 친일 기득권을 철저하게 활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은 여당이건 야당이건 정치계의 어느 쪽에 서 있건 모두 대상이 되었다. 그들도 기득권이었다. 경제 교육 법률 문화 종교 등 어느 분야에서도 기득권을 유지하는 쪽은 항상 친일에 가깝다고 평가를 내렸다. 친미수구를 통해 기득권의 가치와 상태를 경험한 자, 집단은 친일이 주는 달콤한 유혹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형성된 ‘반일 ’(反日)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민초(民草)가 뿌리 깊게 간직해온 감성이었고 판단이었다는 것도 잘 안다.</p>
<p>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일본기획자가 뽑아 든 카드가 바로 ‘경제 ’다. 90년대 IMF 시대를 거치면서 정신적으로 황폐해질 대로 해져버린 사회의 빈틈바구니를 뚫고 들어왔다. 사회 민주화도 달성될 만큼 달성되었다고 사회 전체가 자위(自慰)하게 만들어 버리고, 이제는 경제살리기를 위해서 다시 새로운 형태의 지도(指導)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꺼냈다. 강력함만이 경제를 살린다는 이 논리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鄕愁)까지도 자극하면서 일본기획자는 한국 내에 ‘친일 ’의 불씨를 강하게 지피기 시작한다.</p>
<p>이것은 기획(企劃)이었고 공작(工作)이었다 . 사회가 단순하게 그 방향으로 흘러서 온 결과물이 아니다. 그렇게 물길이 흐르도록 조정하고 힘을 집중시킨 결과물이다. 그래서 이 기획의 방향을 읽지 않고서 일본기획자의 의도를 보기란 몹시 어렵다.</p>
<p>누가 기획자인가?</p>
<p>일본기획자의 모습에서 비치는 얼굴은 일본 극우와 우익, 그리고 숨겨진 내용물들이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것은 기획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타날 수 없다. 그 가운데는 포섭, 교육, 역할, 지원, 그리고 세력화 과정과 발언에 대한 지도까지도 엿볼 수 있다. 그것이 하나의 오퍼레이션(공작실행)으로 연결된다.</p>
<p>이를 ‘침탈 ’(侵奪)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목적이 사악(邪惡)하기 때문이다. 일본 그들의 국익은 있는지 몰라도 거기에 한국의 국민과 국격은 존중되고 있지 않다. 교란은 있으나 안정은 없다. 한국 지식인 사회를 마치 그들 식의 틀에 맞추어 작격(作格)을 해버리는 듯한 움직임이다. 이런 사고와 행위에서 과연 ‘평화 ’가 있는가?</p>
<p>그들은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공영 ’(共榮)이라고 변명할 수 있다. 아니 변명의 수준이 아니라 이것이라고 개념을 들이대며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다. 그 조짐은 이미 ‘사냥개 ’들의 주장에서 드러났다. 대동아공영권의 망령(妄靈)이 다시 살아났다.</p>
<p>한국과 일본은 과거 백 년 전부터 역사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앙숙(怏宿)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는 한국이며, 가해자는 일본이다. 일본 제국주의로 인해 국격과 민중, 역사와 시대가 모두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한국이 도발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 침략한 것이었다. 그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p>
<p>거기에 잘 훈련된 ‘사냥개 ’를 앞세운 수법마저도 동일하다. 그들에 의해 친일 정권 하나가 탄생할 정도가 될 때까지 한국 사회가 넋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이 서글픈 것이지만 그만큼 교활하고 정밀한 수순을 밟았다는 점에서 일본기획자의 행보는 목표가 침략이며 실질적 점령을 기본으로 했음이 입증된다.</p>
<p>여기 어느 곳에서도 ‘평화 ’는 없다. 그들만의 일방적인 목소리만 있을 뿐이고, 그들에 동조된 자들의 꼬리침만 그득하다.</p>
<p>한국 지식 사회가 보수니 진보라는 대립구도 속에서 까맣게 일본이란 존재감을 잊도록 한 것은 당연히 한국의 자위(自衛) 능력부족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국제사회의 냉엄한 원칙이 자주(自主)를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부속적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는 절대원칙이 작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질적인 국가침탈행위라는 점에서 기획의 의도나 진행 모두에서 결코 평화로운 미래를 위함이 아니었다.</p>
<p>오히려 일본의 국가존립을 위하여 과거 ‘만주와 몽골을 마지노선 ’으 로 하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벌였던 당시와 비교된다. 한반도를 생존 마지노선으로 둔 21세기 일본의 모습이다. 그래서 한국부터 서서히 그들의 수중(手中)에 두어야 한다는 사고방식, 당위성이 강조된 흔적은 역력하다. 일본 극우와 우익에 있어 한반도가 어떤 존재감을 가졌는지도 엿볼 수 있다.</p>
<p>그러므로 현 시점 일본에 강력하게 경고한다. 한국 사회 국가의 시대감이 정치 속에서 모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뿌리는 항상 민초(民草)의 질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만일 이번에 일본의 의도가 모두 드러난다면 향후 한국과 일본은 영원히 세상이 멸망하는 그 날까지 가까운 이웃으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살아가는 세대뿐만 아니라 뒤이어올 세대들에게도 오늘의 시대는 기록으로 남는다. 이 기록으로 일본의 다음 세대와 한국 간에서도 평화로운 교감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동북아시아에 있어 일본이 한반도를 영원한 적(敵)으로 만들고 향후 100년 , 1000년 을 살아야 할 것이다. 잊혀지지 않는 역사와 시대의 유물(遺物)이 오늘의 시대를 산 사람의 증언을 통해서 전달될 것이다.</p>
<p>설 혹 일본의 의도가 성공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게 되어 있듯이 어느 날엔가 이 기획이 얼마나 음흉(陰凶)했던 가에 대한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한국 사회 국가 내부의 어느 누군가는 이것을 항상 지켜보며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사용했던 사냥개 가운데서도 ‘기록 ’이란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서 숨길 수 있었던 기록은 디지털, 웹2.0의 시대에서 결코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기록된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런 시도의 결과는 은폐하거나 혹은 조작(造作)하여 진실 대신 거짓을 앞세우기 어렵게 된다.</p>
<p>일본은 그러한 시대를 원하는가? 그런 결과를 원하는가?</p>
<p>그렇지 않다는 진심이 있다면 그걸 증명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가 있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이 모든 행위를 중지(中止)하라! 그렇지 않는다면 일본기획자가 생각하는 그런 시대는 결코 오지 않을 것임을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그 이후의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일본이 책임질 일이다.</p>
<h3>5. 적극적 친일의 사냥개들은 즉시 혀를 깨물든 배를 가르든 자결하라. 이 시대에 너희가 살아있을 가치가 있는 ‘단 한 순간 ’도 없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5" title="toc_5" class="anchor" id="toc_5">#</a></sup></h3>
<p>일본이 지난 십 년 ‘다시 백 년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먼저 꺼낸 카드인 ‘친일의 재구성 ’은 한국에서 많은 친일 사냥개를 양성했다. 그들의 역할은 사냥꾼이 아니었지만 때로는 그들 스스로 사냥꾼으로 착각하고 한국 사회와 시대를 마구 물어 뜯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그들은 점차 정치적인 세력으로 자리잡으며 이제는 시대를 지배하려는 경향까지 보인다 .</p>
<p>그들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알 일이다. 그래도 아예 후회가 없다면 그것은 완전히 세뇌된 사냥개다.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단계에 접어들어 친일매국의 사냥개가 곧 자신의 당위(當爲)이며, 그를 반대하는 모두는 ‘자신과는 적 ’이라는 관점이 형성되어 있는 꼴이다. 한국의 시대 역사에 ‘친일을 해도 미래 역사를 만드는 주체는 자신들이 된다 ’라는 가당치 않은 꿈을 꾸는 자들이고, 우리 시대의 암적 존재로 부끄러운 역사 로기록될 자들이기도 하다 .</p>
<p>이들은 자신들이 힘이 되어 탄생시킨 MB정권에 지분을 가진 주주(株主) 흉내를 내고, MB도 흔들릴 때마다 그들을 친위세력으로 활용하면서 한껏 그들의 흥을 돋운다. 그러니 더 안하무인이 된다. 그들의 세상이 온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산다. 사냥개의 이빨은 더 날카로워지고 그 역할도 사냥개가 아니라 사냥꾼이 된 양 사회를 헤집고 다닌다. 누군들 자신들의 ‘하수 ’(下手)로 여기며 얼토당토하지 않은 논리를 들이대며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다. 듣지 않아도 좋다는 주의다. 결국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힘을 지닌 자신들이 이 시대의 주류(主流)라는 인식을 더 키워 나간다.</p>
<p>거 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세력과 흐름을 영구화 시키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건국 60주년으로 분단역사가 가진 정체성과 정통성의 문제를 헤집어 버리는가 하면, 냉전적 프로그램을 다시 들고나와 친북과 친일의 깃발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라, 친일을 허용하지 않으면 친북이라는 논리를 재가공해서 들이댄다. 사회가 경악하건 아니건 간에 그들만의 세상에서는 그들이 기득권이라고 착각한다. 그걸 정권이 오히려 키워준다. 그들 이바로 이런 정권의 주주이고, 소액주주가 아니라 대주주라고 믿고 그렇게 행동한다.</p>
<p>그들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국회의원도 만들어 내고, 여당과 청와대, 정부 속에도 그들에게 의존하는 자들을 심었고, 강력한 사회 단체를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 한 이래로 가장 광범위하게 구성하였다.</p>
<p>거기에 친미수구와 사적 이 익이 결합된 거의 컬트에 가까운 종교집단들과의 교류하고, 군소 교회들까지 끌어 모아 사회단체를 표방한 정치세력화에 열을 올린다. 정권과 정부 속에서 기득권의 유지가 가능한 자리 속으로 그들의 세포들을 심기에 바쁘고, 나아가 정권의 이권 속에서도 깊숙하게 관여하려고 몸부림 친다. 그들이 받아야 할 배분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목소리 높여서 주장까지 한다. 정권이나 정부에서조차 그들이 주류가 된다는 인식을 가진다. 이 정도면 표면상 대단한 성공이다.</p>
<p>한 걸음 더 나아가 마구잡이로 정책도 관여를 시작한다. 공권력도 아니면서 촛불민심을 고소하는 주체가 되는가 하면, 감사원을 통해 KBS 정연주 사장을 고소 고발까지 한다. 무소불위 한 권력을 휘두른다. 정권의 홍위병 (紅衛兵) 이니 어느 누구도 함부로 말을 못한다. 비난만 할 뿐이다. 이 정도 수준에서는 ‘그들이 곧 정권 ’이라는 그들 내부의 자평(自評)이 틀린 말도 아니게 보인다.</p>
<p>그러나 착각(錯覺)이다.</p>
<p>이미 그들의 서투른 권력자 행세에서 국민들은 그들을 ‘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사회의 암적 요소로 판단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질서 가운데 첫 번째 역린(逆鱗)을 건드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친일 ’이다.</p>
<p>결코 그들이 숨기지 못하는 사냥개의 본성이 자꾸만 시간을 거듭할수록 드러나는 중이다. 그들은 친일매국세력이며 일본기획자의 사냥개로 기득권을 향해 달려가는 간세(奸細)다. 그걸 부인조차 않고 이제는 ‘친일이 무슨 죄(罪)냐! ’고 덤벼드는 사냥개를 보면 혀를 끌끌 차는 국민들의 숫자는 날로 늘어나는 중이다.</p>
<p>과연 어느 시점에서 이것을 착각이었구나 라고 그들 스스로 각성 하게 될 것인가의 문제만 남았다. 우선 그들이 자각하기도 전에 사건은 벌어질 소지가 크다.</p>
<p>‘친일매국세력=뉴라이트 ’ 라는 공식은 성립되었다. 그들의 발언에서, 행위에서 모두 입증되는 중이다. 거기에 한 가지가 더 보태진다. ‘뉴라이트=친일매국세력=일본의 사냥개 ’라는 것이다. 그것이 밝혀지는 순간, 그들은 모두 이 땅에서 생존가치를 완전히 잃게 될 것이다.</p>
<p>이것은 단순히 뭇매를 맞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본기획자의 행보에서 그들 식의 완성을 보게 되는 상황에서 ‘토사구팽 ’(兎 死狗烹)에 해당될 인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 내부라고 해서 이러한 단속이 철저할 수는 없다. 반드시 친일매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조망되게끔 되어 있다. 그들이 벌인 친일행각은 역사가 길지 않다. 급조된 흔적마저 있다. 그러므로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 국가 내부에서 생존력을 가지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p>
<p>그 때를 생각해보자.</p>
<p>그들과 그들의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 가운데서 과연 ‘친일사냥개 ’라는 단어와 ‘일본의 사냥개 ’라는 단어의 차이가 얼마나 차이가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터이다. 지금은 그런 때이다. 그러나 이 둘 간의 차이는 몹시 크다. 그것은 바로 사냥꾼의 존재 때문에 그런 것이다.</p>
<p>지금은 그들 스스로 사냥꾼의 행세를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이 사냥개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 때 그들은 어떻게 이 시대에서 숨을 쉬며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p>
<p>숱하게 많은 일제강점기의 친일분자들과 그 자손들이 왜 고개를 숙이며 정부수립 후 60년 동안 그리 살았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착각을 한 것이다. 친일이 한국 사회의 대세가 되려면, 우선 일본이 바뀌어야 한다. 일본은 전혀 그들의 멘탈리티와 사고의 저변(底邊)을 바꾸어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도 일본과는 ‘친일의 정당성 ’을 논할 위치에 있지 않다. 당연히 ‘친일 ’은 일본에서 말하는 ‘친한파 ’의 범주와 동일한 개념이며, 한국 사회 속에서는 ‘친일=매국노 ’라는 틀은 바뀔 수가 없다.</p>
<p>이것을 바꾸고자 하는가? 불가능하다.</p>
<p>그것을 모른다면, 조만간 그들이 누리는 기득권이 어떻건, 혹은 그들이 가진 현 시대의 판단이나 혹은 힘에 대한 자신감이 어디에 있건 간에 민초들이 보는 그들의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것을 반발이라 하고, 이를 억누르려 한다면 그에 못지 않은 더 큰 반발 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건 절대 걷잡을 수 없다.</p>
<p>그 경우, 그들이 선택할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끝도 없이 고개를 숙이는 참회(懺悔)이며 다른 하나는 스스로 자결(自決)하여 그들의 친일이 정당하다는 걸 지옥(地獄)에 안고 가는 도리밖에 없다.</p>
<p>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께 엎드려 부탁을 할 것이다. 자발적 친일의 사냥개, 일본의 사냥개가 된 자들은 지옥 속에서 앞서 이 땅의 외세침탈에 저항하고 해방과 독립을 위해 살았던 영혼들을 만나게 하라. 그들로 하여금 이들을 단죄(斷罪)하게 해주시길 빈다.</p>
<h3>6. 북한, 어리석은 사태 파악으로 남한의 친일을 북돋운 책임을 져라.<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6" title="toc_6" class="anchor" id="toc_6">#</a></sup></h3>
<p>남북한 관계의 지난 십 년이 친일매국세력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이른바 ‘십 년 좌파세력 청산 ’이라는 공격이다. 그들에게 어떤 허점을 보였기에 이런 사태가 온 것인가? 왜 친일과 친북이라는 두 카드가 여전히 한국의 화두가 되어야 하는가? 북한은 이에 대해 전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p>
<p>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시기 남과 북의 관계는 겉보기에는 대단히 요란스러울 정도로 평화로운 화두로 간 듯 보인다. 임동원은 ‘피스메이커 ’라 는 책을 통해서 2000년 6.15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그 이후의 한반도 평화유지가 가지는 함의를 이야기했고, 노무현은 작년 10월 초 제2차 정상회담을 통해 이른바 10.4 공동선언이란 것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것이 비판의 잣대에 오르는 것은 매우 간단한 실수로부터 출발된다는 사실을 지금에 와서 야지적하는 사람들은 많다. 바로 ‘남북 관계의 안정적 발전기초 ’가 그 시기를 거치면서도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건 그네들도 인정하는 바다.</p>
<p>물론 한나라당이 야당이었던 시절, 이것을 비판할 수 있는 수준만큼 정책이나 사고력을 갖추었다고 판단하는 것도 잘못되었다. 한나라당은 ‘보수 ’의 색깔을 통해 남북한 관계의 냉전적 측면을 부각하고, 그를 통해 집권의 기회를 엿보는 상태에서 ‘지난 십 년 ’을 비판할 수는 있으나 그에 준하는 정책 과 실행각론 을 갖추고 있 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p>
<p>중요한 것은 기회를 가진 측이 남북한의 평화분위기 자체의 본질적 고착화보다는 이른바 ‘퍼주기 ’, ‘화장질 ’, ‘정치적인 목적성 ’등 비판 받을 수밖에 없는 재료들을 듬뿍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자초한 셈이다.</p>
<p>이것이 단순하게 조중동에 의한 선전전략에 한나라당이 성공했다는 사실로만 단정 내리기 어려운 현실판단을 초래한다. 즉, 안일한 대처, 그리고 두 개의 정권과 현대그룹, 한국관광공사 등을 포함하면서 장기적인 각도에서 남북한 관계가 ‘불가역적 상황 ’에 돌입하는 데까지 협력 틀을 만들지 못했 다 는 점은 누가 뭐래도 비판의 소지를 가질 수 있는 부분이다. 거기다가 제1차 정상회담의 이른바 대북송금문제가 노무현 정권에서 특검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재판을 통해 그 면면들이 드러나는 순간, 정치적 담합은 비판과 비난을 동시에 안게 된 것이 사실이고, 국민들에게도 그것은 매우 부정적 인식을 태동시켰다는 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p>
<p>남북관계가 단순하지 않은 것은 이 문제가 북핵 이후 이른바 다자관계로 들어가면서 한반도의 관련 당사자의 숫자가 6개국이 되어버리는 복잡한 구조화가 이루어진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얽혀버렸다. 결국 남북관계는 지난 십 년 동안 ‘겉치레 ’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화살은 남과 북으로 동시에 향하게 되고, 그것을 친일매국세력의 입장에서는 적절하게 활용하게 된 셈이다.</p>
<p>다시 냉전시대의 논리와도 같은 친북 좌파론이 득세를 하게 된 배경에는 이른바 경제적 우위론을 바탕으로 한 ‘대북정책 ’이 한 몫을 한다. 국제적인 역학관계를 따지기 이전에 먼저 남과 북의 정체성과 정통성 싸움을 하고, 그 와중에서 ‘친북=좌파=빨갱이 ’라는 등식을 해소하지 못한 것이다.</p>
<p>일본 극우와 우익이 그토록 활용하기 좋아하는 소재는 없다. 그러니까 지난 십 년의 정권에서조차 이 등식의 뿌리는 남아있었고 MB정권을 둘러싼 친일세력에게는 다시 ‘친일이냐 친북이냐 ’를 물어볼 계기를 만들어준 셈이다.</p>
<p>이것은 북한의 안일한 판단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p>
<p>2007년 시점에서조차 북한은 통일전선부 부부장 최승철이 주도하는 한국 내의 대선개입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비록 10월 제2차 정상회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내에서는 전혀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10.4 공동선언이 모호하기 그지 없는 이른바 ‘견질어음 ’이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무책임한 행위였다. 그로 인해 오히려 한국 사회 내의 이른바 남북관계의 실질적 협력증진을 통한 통일시대의 대비라는 관점은 무참하게 대선 총선의 와중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현실적이지 않았던 것이고, 실천각론이 없는 애매한 타협의 산물로는 국민들의 염증(厭症)만 더 키울 뿐이라는 것을 증빙받은 셈이기도 하다.</p>
<p>이것은 한나라당의 뉴라이트 집단을 통한 친일매국으로의 변형과 나아가 MB를 둘러싼 친위세력이 바로 ‘친일의 사냥개 ’였다는 사실에 대해 노무현과 북한이 모두 착각을 일으킨 것으로부터 원인을 찾는 게 마땅하다.</p>
<p>친일매국세력은 여기서 성공을 거둔다. 물론 조중동의 전폭적이고 지속적인 여론몰이의 지원도 한 몫을 했지만 그에 앞서 노무현 정권이나 북한 모두 이러한 분위기 자체를 선명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채, 그들만의 판단에 의존하고, 그들만의 잔치에서 희희낙락하는 사이 국민들은 모두 ‘경제살리기 ’그 하나의 테제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 우리가 보는 현실이다.</p>
<p>남북관계를 더 좋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는 MB 정권에서 보이지 않는다. 피상적인 숱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매우 강경하게 남북관계가 친일분위기 조성 다음의 후 순위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p>
<p>그러한 흐름을 대략 읽고도 전통적인 강경대응 하나만을 고집한 북한이 과연 이른바 ‘통미봉남 ’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MB정권이나 일본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썩 나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시기 동안 그들이 바라는 ‘친일의 재구성 ’으로부터 일본기획자가 바라는 ‘다시 백 년 ’프로그램은 더 온전하게 가동(稼動)될 수 있기 때문이다.</p>
<p>오 히려 도와준다는 표현이 옳다. 한국 사회 내에서 이러한 남북관계의 긴장국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많이 하거나 혹은 정책상의 실수를 운운해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할 의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지 않기를 바랬던 것이고, 나아가 한국 사회 내부에서의 완전한 입지가 구축되기 전까지 남북관계를 일부러라도 후 순위에 두지 않을 수 없는 그들 내부의 사정이 있었다.</p>
<p>그러므로 전문가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MB 정권의 비핵개방3000을 비판하더라도, 혹은 기싸움이나 ‘갑’의 위치를 회복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을 요량이라는 것 이정책 실패라고 지적해도 들은 척 않고 그저 ‘먼저 변해라 ’는 메시지만 거듭될 뿐이다.</p>
<p>금강산 관광객 피습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오히려 현대아산을 압박하며 개성관광객의 숫자를 200명 안쪽으로 줄이라고 요구하고, 나아가 국민여론을 구하거나 하는 일체의 행위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압박한다. 겉보기에는 기싸움처럼 보이지만 현재 한국 내부에서 구성되는 것은 철저한 신 메카시즘 정국이며, 이를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MB정권 내부의 판단이 더 큰 변수로 작용한다.</p>
<p>이것을 모르는 북한은 ‘바보 ’다.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못 찾는 것은 북한이 그간 일본기획자와 친일매국세력들이 어떠한 경로로 오늘의 한국 사회와 국가를 침탈할 목적으로 들어왔는지를 까맣게 몰랐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혼자 똑똑한 척 한 것밖에는 안 된다.</p>
<p>결국 지난 십 년 한국의 두 개 정권과 북한이 모두 이러한 사태를 예비할 역량도 없었거니와 대처할 방법 또한 갖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모두 정책적 무능력과 한계를 드러내었다고 비판 받는다 해도 전혀 변명의 여지도 없다는 것이다.</p>
<p>분단 50년으로부터 60년에 이르는 그 시간 동안 하릴없는 통일장사꾼만 양산한 끝에 ‘하는 척 ’을 ‘한 것 ’으로 착각하고 세월을 보냈다. 거기에 일본은 모래에 스며드는 물처럼 들어와 이제는 콘크리트를 슬그머니 거기에 넣고 비비는 중이다. 눈 뜨고 당한 형국이다.</p>
<p>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누가 져야 하는가? 이미 한국은 정권 자체가 바뀌었다. 그렇다면 북한이 지난 10년의 당사자가 된다. 그들이 책임져야 한다. 지난 십 년에 대한 문제는 그들 내부에서조차 비판의 대상이 되 긴 했 지만 그것이 관련자 몇 사람에 대한 인책(引責) 수준에서 그칠 일 은아니다. 이것은 시대를 잘못 읽은 것이며, 그러므로 이 일을 보 고파악하지 못한 자들은 모두 무한 책임을 면키 어렵다고 판단된다. 흘려 보낸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 이건 반드시 기록으로 남을 일이다.</p>
<p>그걸로만 그칠 사안도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어떻게 할 것인가의 해법이 나와야 한다. 없다면? 그것이 바로 북한의 한계가 된다. 시대를 보지 못한 잘못은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에게도 두고두고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게 될 터이다.</p>
<h3>7. 공권력에의 경고. 친일의 개 노릇 의 말로는 역사가 증명한다. 각성하라!<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7" title="toc_7" class="anchor" id="toc_7">#</a></sup></h3>
<p>한국은 해방 이후 63년 동안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 해 사회 변화를 경험해왔다.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4.19혁명, 5.16 쿠데타를 거쳐 5.18민주화 운동, 6.10항쟁에 이르기까지 독재와 민주화, 산업화라는 현대사의 과정을 거쳤다. 시대마다 아픔도 있었고 발전도 동시에 존재했다. 항쟁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눈물 겨운 숭고한 희생도 있었다.</p>
<p>그 와중에서도 기득권은 늘 존재했다. 격변 속에서도 현대사에서 친일수구, 친미수구의 자리는 늘 커다란 변동 없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친일 친미만이 아닌 사회 역동성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탄생했다. 그들로 인해 한국 사회 국가는 일정한 수준의 평형을 유지하면서 발전해 왔다.</p>
<p>공권력(公權力)은 다양하다. 정권, 정부를 비롯해서 그 속에서 사회통제의 힘을 가진 경찰력, 법조권력, 그리고 정보기관까지 정권이 활용 가능한 조직들이 퍼져 있다. 입법, 사법, 행정부의 삼권이 분리 독립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정권이 어떻게 이를 활용하는가에 따라 공권력은 국민을 시봉(侍奉)하는 조직으로도, 또는 정권을 호위(護衛)하는 도구로도 사용되었다.</p>
<p>MB정권은 공권력을 국민보다는 그들 자신의 권력을 위한 친위세력으로 간주하는 경향이다. 뿌리깊은 그들만의 인식을 지난 반 년 동안 마음껏 드러내는 중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권력이 정권을 위해 활개짓을 친다.</p>
<p>촛불민심을 비롯해서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움직임을 정권은 두 가지로 평가한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이것은 좌파정권 십 년의 잔재다.</li>
<li>둘째, 이것은 정권전복 시도 행위이며, 국민들 전체의 목소리 가아니다.</li>
</ul>
<p>이 평가를 기초로 해서 ‘잣대 ’가 매겨진다. 바로 공권력은 여기에 ‘법과 질서 ’라는 기치를 내걸면서 정권이 내린 평가에 따른다.</p>
<p>지난 십 년 간의 잣대는 사라졌다. 노무현 정권이 어리석게도 매달렸던 이른바 ‘민주사회의 구현 ’은 MB정권에서 경제를 살리는 데 필요 없는 거추장스런 ‘낡은 틀 ’이며, 한편으로 그들 자신의 행보에는 반드시 제거하고 지나가야 할 ‘적’으로 규정 되었 다. 그래서 여하히 외쳐도 ‘국민 대다수의 목소리가 아니다 ’라는 논리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법과 질서 ’는 공권력이 사용할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p>
<p>그렇지만 지금 이 정권의 색깔은 붉거나 회색이거나 또는 흰 것 도아니라 바로 ‘왜색 ’(倭色)이라는 사실에 공권력이 주목해야만 한다. 이 색깔은 매우 치명적이다. 어찌 보면 ‘빨갱이 ’라는 딱지가 붙는다 해도 민족내부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 반면, 섬나라에서 흘러온 이 색깔은 단순히 딱지가 아니라 역사와 시대의 가장 가치 없는 기록물로 남게 된다.</p>
<p>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이 색깔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대한제국말기 일제 병탄시기 이후 해방이 될 때까지의 ‘왜색 ’이라는 반민족 친일분자라는 딱지와는 다르게 해방 이후 최초로 ‘공개적 친일 ’을 부르짖는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공산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과연 이들을 위하여 한국 사회 내부의 촛불민심을 강압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근본적으로 되돌이켜 봐야 할 지경이다.</p>
<p>문제는 바로 이 왜색의 정권 컬러로부터 즉각적으로 그간의 친일세력과 협조 집단, 나아가 국민이 아닌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득권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透映)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들이 이처럼 하나의 모습으로, 일종의 셋트(set) 개념으로 한집단을 형성해서 드러난 것 또한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친일매국세력이 스스로 고개를 쳐들지는 않았었고 그들이 집권에 기여한 바를 통해서 거침없이 자신들의 주장을 만천하에 내놓지 않았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없었던 장면이기도 하다.</p>
<p>그렇다면 여기서 문제가 대두된다. 공권력은 누구를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할 것인가 하는 과제다.</p>
<p>약간의 논법으로 이 사실관계 , 인과관계를 규명을 해보기로 하자.</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정권이 추구하는 바가 ‘친일 ’이라면, 공권력이 이에 추종하는 경우, 바로 자동적으로 친일의 사냥개가 된다.</li>
<li>둘째, 정권에 기생(寄生)하는 친일분자들을 위해서 공권력이 기능할 경우, 이는 친일 사냥개의 사냥개라는 ‘왕초 똘마니 ’개념이 성립된다.</li>
<li>셋 째, ‘친일 ’을 떳떳하게 내건 정권과 ‘친일 ’그 자체를 위해 기생하는 정치집단의 기득권 유지를 위하여 협조하는 상태에서 그들을 조정하는 일본기획자가 등장할 경우, 공권력은 즉각 ‘매국노 ’를 위한 협조자가 된다. 단순한 ‘친일 부역자 ’가 아니라 적극적 매국노 집단이 되는 것이다.</li>
<li>넷째, 이러한 인과관계가 MB정권 중에나 혹은 정권이 끝난 이후에라도 드러날 경우, 현재의 정권과 정부를 위해 ‘친일 ’에 협조한 공권력은 모두 단순한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특별한 감찰 (監察) 의 대상으로 남게 될 수밖에 없다.</li>
</ul>
<p>이것 은바로 해방 이후, 21세기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사의 악몽(惡夢)이다.</p>
<p>자각(自覺)하지 않고 그저 시대가 흘러가는 대로, 혹은 정권이 가진 ‘힘의 논리 ’속에서만 이 상황을 대하고, 피 명령자로 써의 임무를 수행한다고만 할 경우, 이것은 바로 왜정시대의 순사, 특무 등 공권력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일제강점기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지난 63년 동안 벌어진 한국 사회 내부의 논란이 다시 재현될 것이다. 그런데 이 자료는 과거와는 달리 보다 선명한 잣대에 의해 평가 받게 된다. 이것이 관건이다.</p>
<p>민주화, 산업화 역사를 통해서 공과(功過)의 양 기준점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의 경우는 면(面)이 하나밖에 없는 도(刀)의 형국이다. 그러므로 변명할 수가 없다. ‘몰랐다 ’는 것은 대답이 되지 못한다. 지난 6개월을 거치면서 ‘뉴라이트=친일매국세력= 친일 찬양집단 ’이라는 등식은 사회 내부에 광범위하게 자료가 만들어지는 상태다. 과연 독립운동을 위해 희생을 했던 조상(祖上)을 둔 공권력의 어느 누구라도 다시 약간의 기득권을 위해 친일 정권, 친일 집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p>
<p>당장 국가보훈처장을 하는 백범 선생의 손자(김양)가 이 정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쉽게 인정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만일 그가 ‘이 정권은 친일이 아니다 ’라고 말을 하려면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MB정권의 친위세력은 매우 ‘적극적인 친일분자 ’로 가득 채워져 있다.</p>
<p>공권력의 구성 인물들은 이 상황을 잘 판단해야 한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언론과 방송권력에 대한 장악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막겠다는 발상법은 애초 웹2.0시대에 걸 맞는 방법이 아니었다.</p>
<p>인터넷과 포털 사이트를 통제하면서 정권의 여론장악을 시도하지만 ‘법질서 확립 ’을 명분으로 내건 인터넷 여론 통제를 ‘사이버 모욕죄 ’수준에서 단속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p>
<p>인터넷은 ‘기록 ’을 남긴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아날로그 사고는 반드시 여기에서 곤욕을 치른다. 과거 특정한 어떤 사람들에 의해 남겨져 전유물로 되었던 기록은 이제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개념이다. 물론 그 속에서도 감추어지는 부분은 있다. 그러나 공권력이 보호하려고 하는 대상인 정권과 친일의 왜색(倭色)은 절대 보호될 수 없을 것이며, 보호 가치를 가지지도 않는다. 전파될 것이고 누군가의 하드 드라이브, USB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넷심과 소통하기 위해 블로그 마켓팅을 권장하는 시대에 어느 누군가의 블로그에만 남아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무작정 보지 못하게 막을 방법은 없다. 한국이 전세계 인터넷을 통제할 자격이 있는 국가도 아니다.</p>
<p>이 사태를 지켜보는 눈 들은 명징(明澄)한 기준점을 가지라고 공권력에게 거듭 요구하고 있다. 특정한 윗 사람의 수직적 지시만으로 움직일 수 없는 복잡한 한국 사회의 오늘이 있는 셈이다.</p>
<h3>8. 반북 반공에 매달려 친일과 손잡은 어리석은 골통보수여! 시대를 보라!<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8" title="toc_8" class="anchor" id="toc_8">#</a></sup></h3>
<p>특정한 몇 사람을 꼽을 필요도 없이 한국 사회는 한국 전쟁과 냉전시대의 남북 대치를 겪으면서 뚜렷한 ‘골통 보수 ’를 가지게 되었다. 이른바 ‘빨갱이 론 ’에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그것만 아니면 돼! ’라고 하거나 또는 ‘(북한을) 믿지 못할 존재이므로 그들과는 가까이 하면 안 된다 ’, ‘미국은 전쟁에서 우리를 구해준 은혜가 있으니 무조건 추종해야 한다 ’는 친미 찬양론까지 이 또한 다양한 원인과 이유를 가지고 스펙트럼이 확장되어 있다. 대체로 연로한 층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젊은 층에서도 이러한 고정인식은 꽤나 많은 공감대를 얻기도 한다.</p>
<p>친북이 아닌 지북(知北), 극북(克北)의 개념 자체가 아예 정착되기도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것은 한반도가 냉전의 철저한 희생물이었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다. 여전히 ‘간첩 ’이 사회의 이슈가 된다. 원정화라는 ‘마타하리 ’급으로 일부 언론에서 소개된 여자간첩을 보면, 그녀가 지난 몇 년간 철저하게 남북 양측의 이중간첩 역할을 한 희생물이었 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활용하려고 덤빈 것이고 경우에 따라 그녀를 중국정부 나 제3국에서 활용하지 않았다는 보장도 없다.</p>
<p>한국 사회 내의 1만 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이 일로 바싹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 내부의 새로운 의심의 눈초리를 경계하 며긴장하는 흔적도 역력하다. 이른바 도매금으로 넘어갈 듯해서다. 여전히 이 주제는 민감한 것이다.</p>
<p>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반공 보수들은 지금까지는 세 가지 그들끼리의 공감대는 대체로 지켜온 편에 속한다.</p>
<p>첫째, 북한과 상대할 때 는 무조건 주의해서 해야 한다. 둘째, 북한 문제에 있어서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고 필요한 존재다. 셋째, 북한 정권과 인민(주민)은 각각 다른 각도에서 상대해야 한다.</p>
<p>이원칙이 최근 서서히 그리고 급작스럽게 무너지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 이 질문이 대두된 이후 벌어진 현상이다.</p>
<blockquote>
<p>“친북은 친일보다 수용할 수 없는 개념이다. ”</p>
</blockquote>
<p>일본 극우와 우익의 북한에 대한 알레르기는 지독스럽다. 거의 병증(病症)에 가깝다. 공포증이다. 그 래서 일본 내에서조차 극우와 우익은 때로 부닥친다. 국제관계의 역학에서 북일 정상회담이 벌어진 2002년에도 일본은 내부적인 의견취합이 쉽지 않았었다. 북핵실험이 벌어지고 난 이후의 일본은 약간의 패닉 기미마저도 보였다. 그런 일본도 북일 수교를 협의하는 자리를 늘 갖고자 한다.</p>
<p>그런데 한국의 반공보수가 일본 극우의 개념을 빌려와서 그것을 똑같이 암송(暗誦)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바로 작년 뉴라이트가 정치세력으로 한나라당까지 개입하게 되고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정치조직으로 발전하게 된 이후의 사태다.</p>
<p>그 다음으로 이런 경향이 나타난다.</p>
<blockquote>
<p>“일본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 과거보다는 이제 미래로 갈 시점이 되었다. ”</p>
</blockquote>
<p>여전히 반공보수는 철저하게 반북을 외친다.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협상을 벌이는 것도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지만 특별한 코멘트를 내지 않는다. 그건 국제관계라는 것이고 남북관계는 일단 남쪽에서 북쪽에 대해 ‘강하게 ’, 그리고 ‘우리가 꿀리지 않는 ’입장이 되어야만 된다는 사고에 변함은 없다. 그러면서 ‘빨갱이들은 언제 어떻게 뒷통수를 칠 지 모르니 경계해야 한다 ’고 상시(常時) 경계론을 편다. 전쟁론까지도 나온다.<br />
이상하게도 일본에 대해 관용(寬容)의 단어들이 불쑥 튀어나오기 시작할 즈음, 반공보수는 다시 다음의 단어를 어디론가 배워와서 말하기 시작한다.</p>
<blockquote>
<p>“빨갱이보다는 일본이 낫다. ”</p>
</blockquote>
<p>이제는 비교관점이다. 친북과 친일의 선택 기로와는 다르다. 일본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것도 중립적 견지에서 가능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다르다. 바로 선택 자체를 해버린 상황이라는 의미기 때문이다.</p>
<p>나름대로 내가 좋아하는 몇 분들에게서 나타난 이 현상은 최근에는 다음 단계로 까지 이어진다. 이것은 지난 십 년 정권에 대한 비판과 뒤섞이면서 어느 것이 비판의 대상이고 결론인지 모를 정도로 어지럽게 구성된다. 복잡해졌다. 김대중, 노무현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 목소리 속에 ‘친일 ’이 슬그머니 숨어 들고 복화술(腹話術)까지 쓰게 만 든다.</p>
<p>과거 서북청년단 등 서북인맥들이 반공을 기치로 내걸면서 대한민국 건국회 등 이른바 반공단체의 직함 속에서 한 시대의 용공(容共)과의 대적을 했던 적이 있다. 이들조차도 친일을 수용하지 않았다. 반일과 반북은 동시 개념이었고, 둘 다 적대적인 대상이었다. 그것을 한국 사회 내에서 ‘반공보수 ’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것이 변용(變容)한 셈이다.</p>
<p>여기에는 정치세력 간의 결합도 작용을 했다. 이른바 ‘새로운 보수 ’라는 기치를 내걸었던 뉴라이트 집단의 입장에서 한국에서 가장 까다로운 반공보수를 포용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들은 철저하게 첫 단계에서 지난 십 년의 행위가 본질적으로 ‘친북좌파 ’이며 ‘빨갱이를 이롭게 했던 ’기간이었음을 역설하고 그에 동의를 구한다.</p>
<p>맨 먼저 한조지(한승조-조갑제-지만원) 삼형제가 탄생한다. 그로부터 반공보수과 그나마 형성된 일부의 극북(克北) 보수는 이 물결에 휩싸여 든다. 친일의 재구성의 한 자락에 전통적 반공보수가 빨려 들어간 경로다.</p>
<p>이것은 옳은 길인가?</p>
<p>한국의 보수가 지향해온 것은 그래도 분단시대의 극복이다. 흡수통일과 적화통일은 늘 상대된 개념이었다. 그러다가 ‘평화통일 ’이라는 단어가 이 둘을 일단 합쳐 두었다. 그러나 앞선 양측의 이 단어는 버려진 적이 없다. 그렇지만 한국을 지키려는 노력에서 태동된 반공보수 는 ‘통일 ’이라는 단어를 버린 적은 없었다. 그것이 보수사회의 전통이었다.</p>
<p>그것이 최근 무너지는 현상을 본다. 바로 일본 세(勢) 에 의해 교묘하게 논리를 파고든 흔적이다.</p>
<blockquote>
<p>“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에 우리보다 앞선 나라(선진국)를 배워야 한다. 일본을 배워야 한다. ”</p>
</blockquote>
<p>이 말 속에는 ‘일본을 배우기 위해서는 북한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는 함의(含意)가 있다. 지난 십 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기 이른바 대북 유화론자들의 시기, 반공보수는 푸대접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그걸 만회하고자 하는 정력이 너무 넘쳤다. 그 사이를 ‘경제 ’가 파고들었지만 사실은 소외되었던 세력을 품는 가운데 친일이라는 독물(毒物)이 슬그머니 함께 딸려 들어왔다는 사실을 반공보수 론자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p>
<p>그래서 ‘골통보수 ’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최근에는 거의 대부분 변질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이들은 스스럼없이 뉴라이트와 같은 노선임을 밝힌다. 가만히 보면 ‘반북 ’에서는 옳다. 그러나 전통반공보수와는 많이 다르다. 본질마저 달라졌다고까지 이야기할 부분도 있다.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할 ‘반공을 견지했던 이유 ’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외람되게 그 분들께 한 마디를 드린다.</p>
<blockquote>
<p>“친일은 반공 과 섞일 수 있는 용어가 아닙니다. 반공을 한 것은 공산주의를 싫어했기 때문이지만 통일을 하고자 하는 , 분단시대를 정리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친일로는 절대 통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과거를 잊었습니까? 과거 반공과 반일을 함께 했던 분들의 뜻을 잊으셨습니까? 제발 각성하십시오 .”</p>
</blockquote>
<h3>9. 일본 간첩, 동맹의 한계와 예의에 대하여 한 마디를 하자.<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9" title="toc_9" class="anchor" id="toc_9">#</a></sup></h3>
<p>냉전이 끝나고 세계는 이른바 경제전쟁에 휩싸였다. 경제정보와 기술을 빼내려는 시도는 가히 냉전시대의 그것보다 더 심했다.</p>
<p>독일의 경우, 동서독의 통합 시점에서 이른바 ‘기술살인 ’은 한동안 그 끝을 모르고 성행했었다. 서독의 그것보다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있던 동독 기업 이나 기술자를 흡 수하거나 아니면 그 기술을 아예 사장(死藏)시키게 만들기 위한 기술전쟁이었다. 그 와중에 실제로도 많은 기술자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는 것이 꼭 좋은 현상만은 아니다. 단편적이지 않은 기술세계의 복잡 한 인과관계를 보여준다.</p>
<p>첩보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얼치기 첩보원 수준에서 이야기하는 정보가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바로 엉뚱한 각색(脚色)이 벌어진다. 확인되지 않는 정보가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남북관계의 구조에서 북측 스토리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굳이 북한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경제 전문 뉴스사인 블룸버그 통신이 스티브 잡스 사망설을 잘못 게재하는 실수도 나온다. 첩보가 정보 수준으로 되기 위해서는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가 복합되고 입체적으로 재구성 되었을 때만 그러한 공능(功能)을 가지는 것은 보편적인 결론이다.</p>
<p>흔히 정보기관을 거친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배운 지식이나 기법이 전부인 양 착각하는 경우들이 많다. 이를테면 자기 지식을 신봉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 보면 자신의 조직, 국가라는 백그라운드에 대한 믿음도 존재한다. 그래서 강대국의 정보가 강하다, 정확하다 고지레 판단을 하는 경향이 많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기계나 장비가 할 수 있는 일을 제외하면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 의눈과 귀, 그리고 판단과 진정성에 의해 최종 결론이 좌우된다.</p>
<p>해방 이후 일본은 한국에 많은 간첩들을 남겨 두었다. 그 리고 한국 내에서 친일로 활동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도 일본이다. 그들에게 있어 한국은 자신들에 협조하고 부역했으며, 나아가 한국 사회의 지난 63년 동안 이어져온 기득권 가운데의 친일요소에 대해 반드시 관찰할 대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 내부에서 스스로 친일의 조사를 한 것보다 더 광범위한 체계를 가지고 이를 연구하고 집약해둔 곳이 일본이라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p>
<p>미 군정을 거치고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면서 한국 내부에서는 친미수구 즉,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그들의 간첩망이 구성되었다. 여기에 일본과 연관된 협조자들이 개입하였지만 미국은 이들을 사용하는 데 철저하게 제한을 두었다. 그것대로 구성하면서도 그들 식의 친미 네트워크가 따로 꾸며졌다.</p>
<p>일본 내부에서조차 미일 양국간의 정보망 공유가 있었지만 서로간의 첩보전이 없지는 않았다. 당연히 미일은 동맹이기는 하지만 공유할 것은 하되 그 밖의 것은 경쟁상대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국가가 가진 국격 유지의 기본이기도 하다.</p>
<p>한미일 간의 동맹이 유지되는 가운데 한미, 한일, 미일이라는 삼각 관계는 냉전시대에는 미국을 정점으로 한국, 일본이 서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서로간의 공유와 비공유는 엄격하게 구분되었다. 그 중에서도 대북 정보는 인공위성이나 군사적, 기계적 측면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일부 우위가 인정된 부분도 있다.</p>
<p>동맹은 이처럼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제한적인 틀을 가지고 이루어진다. 한일 간에 기술전쟁이 없지 않듯이 미일 간에도 그와 유사한 전례들은 흔하다.</p>
<p>이런 가운데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적어도 국격(國格)에 대한 침투는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침탈시도 같은 행위는 ‘해서는 안될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원칙이 부분적으로 깨어졌다. 바로 IMF다.</p>
<p>방어 못한 건 한국의 잘못이었다. 국제투기자본의 각축장으로 돌변한 한국의 금융시장이 수 차례의 위기 경고음이 켜졌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한 대처 끝에 결국 나라가 나라 구실을 못하는 IMF에 의해 강제개혁을 받게 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그러나 민간 부문에서건 동맹의 각국에서 왔던 경고음은 강하지 않았다.</p>
<p>그 수준이 바로 동맹이다. 한 국가가 모라토리움이 선포될 지경에까지 이르는 동안에도 내부에서 감추려 든 정보까지 캐어내지는 못하고, 그걸 간섭(干涉)하지는 않았지만 사태가 벌어진 상태에서는 개입이 되는 것이다. 정책과 제도의 미흡은 자기 책임이지 공격하는 상대방의 과실이 아니라는 논리가 바로 IMF의 교훈이었다.</p>
<p>그런데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패턴도 엇비슷하다. MB정권은 시작부터 이상한 환율정책, 경제정책으로 서서히 한국 금융시장을 붕괴직전의 단계로 몰고 간다. 끊임없이 경고음이 날려져도 ‘괜찮다 ’를 반복하는 모습은 1997년의 어느 날과 너무도 유사하게 보인다.</p>
<p>지난 십 년 동안 일본은 엔캐리 트레이드를 비롯해서 IMF 이후 개방된 한국 금융, 주식, 채권 등 시장에 들어와 있다. 이들의 모습은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지는 않지만 강력한 영향력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다음달이면 IMF도 서울을 떠난다. 한국의 금융시장, 외환시장의 경색에서 기댈 수 있는 곳은 일본과 중국의 입김이 강력한 AMF가 된다는 전망이다. 시중에서 외환이 말라가는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들리지만 MB정부의 대처는 왠지 모르게 어색하고 제 길에서 벗어나 있다.</p>
<p>아마도 이 사태에서 대해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 가장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곳은 일본, 미국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경고음을 내주질 않는다. 국가 차원에서 낼 일이 아닌 것인지,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파이넨셜 타임즈 등에서 보도하고 한국 정부는 부인한다. 동맹의 한계가 바로 여기까지다.</p>
<p>만일 한국 금융위기가 도래한다면, 일본은 그 틈바구니에서 어떤 형식으로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들이 한국 내에 광범위하게 꽂아둔 촉수들은 한국 정책 당국자보다도 더 빠르게 한국의 상황을 속속 일본기획자에게 전달할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한국의 위기가 곧 일본의 기회라는 관점이 존재한다. 마치 한국전쟁을 통해 패전 후 일본이 부흥했던 경험이나 IMF를 통해 한국금융시장에 상륙이 가능했던 그 호기(好機)를 노리는 듯한 모양이다.</p>
<p>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 심어둔 한국 내의 ‘친일의 사냥개 ’와 함께 넓게 형성시킨 ‘친일의 재구성 ’을 뛰어 넘어 다음 단계인 ‘다시 백 년 ’으로 돌입하는 계기를 여기서 찾는다는 생각은 비단 나 혼자만의 판단은 아니다. 그를 통해서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만 따져볼 일이다.</p>
<p>한일 간의 동맹은 냉전적 환경에서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독도사태, 철저히 왜곡시킨 역사 교과서는 언제나 한일 간의 미래에는 걸림돌 로 작용했 다. 그것이 한일관계의 묵은 때이기도 하고, 세월이 지나 가도 마찬가지다. 그걸 한방에 털어버릴 호기를 가지고 싶은 욕심은 분명 일본의 국익을 위한 것이겠지만, 그 과정과 실행에 있어서 일본은 한국과 우방(友邦)이 될 수 없는 한계를 보여줄 것이다. 의도가 보였다는 의미다. 진정성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기획이다.</p>
<p>한국은 일본에 간첩을 두고 있는가? 그럴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공개된 첩보원들이 움직인다. 일본 내부에서 가장 경계하는 민단이니 조총련 같은 재일조선인들 가운데 중요인물은 거의 일일이 탐색 대상으로 놓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일 간에는 과거 역사가 만들어 둔 어떤 하나도 아직 ‘평화 ’라는 단어로 집약시키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상태다. 양측 모두에 문제가 있음도 인정한다. 그러나 침탈기도는 서울로부터가 아니라 항상 도쿄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p>
<p>이제 본격적으로 일본이 가진 ‘예의 ’(禮誼)를 구경할 때가 되었다. 과연 일본은 한국에 대해 어떤 식으로 평화를 구현할 것인가를 보는 눈이 있다.</p>
<p>그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보는 이 시대의 눈과 함께 보고 자라는 세대의 눈도 있다. 그것은 늘 전승(傳承)될 것이다. 그래서 앞서 이미 마지막 경고를 한 바도 있다.</p>
<p>동맹 시대의 간첩의 한계를 본다. 그들이 저지른 많은 일들은 두고두고 회자(膾炙)될 것이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다. 그래도 기록은 늘 남는 법이다. 그것이 더 무서운 사실이다.</p>
<h3>10. 국민들이여! ‘다시 백 년 ’전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말인가?<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0" title="toc_10" class="anchor" id="toc_10">#</a></sup></h3>
<p>세 사람의 이야기다. 8월28일 ~30 일 사이에 나온 뉴스 속에 있다. 골자만 보자.</p>
<blockquote>
<p>(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이 정부(MB정부) 6개월은 나름대로 선방했다. 외환위기설은 염려할 정도 아니다. 9-10월 위기설은 걱정 안 해도 된다. 지난 십 년 민주화는 어설펐다. ”</p>
<p>(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 “변화하지 않는 보수는 수구이고, 책임지지 않는 보수는 기만이다. ”</p>
<p>(이한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경제위기는 덜 온 것이다. 앞으로 경기침체는 더 심해지고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물가는 올라가면서 취약계층은 매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p>
</blockquote>
<p>국민들 가운데서 많지 않은 숫자가 ‘친일의 재구성 ’에 대해 알기 시작하고 있다. 감각적으로 ‘뉴라이트=친일 ’, ‘MB정권=친일정권 ’이라는 등식을 깨우쳤다. 촛불민심이 친일매국세력 대 국민 간의 혈투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다시 백 년 ’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만큼 우리는 일본 세의 공격에 대해 무뎌 있었다. 지난 십 년 간의 안일함이 확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다.</p>
<p>한나라당이 여당이다. MB정권의 입장에서 ‘보수 ’를 기치로 내걸기 보다는 ‘실용 ’을 걸었지만 지금 이대로 간다면 ‘경제살리기 ’는 일단 약속불이행의 모습이 드러날 듯하다. 그러니까 정몽준이 이야기한 ‘기만 ’(欺瞞)은 성립된다. 금융위기에 대해서도 청와대의 대표격인 박재완은 ‘염려 말라, 걱정 말라 ’를 되풀이 했지만, 이한구는 분명히 위기가 아직 ‘덜 온 것 ’이라고 표현한다. 오고 있는 중이란 의미다. 언제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에 있어 박재완의 말을 빌리면 9-10월은 아니지만 그 이후는 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딱 맞다. 형국이 그렇다.</p>
<p>그런 박재완을 두고 8월 30일자 한국일보의 “청와대, 최악의 경제지표 발표하던 날 ‘이 정도면 선방 ’” 이란 기사에서 ‘현실을 읽지 못한 청심(靑心) ’이란 표현까지 나왔다. 그는 읽지 못하는 것인가, 읽지 않으려 하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자기 시나리오 ’는 읽고 있는 사람인가?</p>
<p>일본의 ‘다시 백 년 ’은 철저하게 2010년을 겨냥하고 있다. 경술국치 만 100년 되는 해 이고, 일본은 한반도 접수 기념 만 100년에 해당하는 바로 그 때다. 지금은 그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다.</p>
<p>늑약(勒約)은 억지로 강제로 맺은 조약이다. 그래서 당시 우리는 국가 주권 을 잃었다 .IMF 때 도 그랬다. 경제주권을 잃었다. 그러고 나서 금 모으기까지 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맨 끝에 극복은 했다. 그 사이 ‘친구 ’가 아닌 ‘투기꾼 ’들 이 많이도 다녀갔다. 경제주권의 의미도 국가주권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다행히 겉보기에는 우리가 주권만은 지킨 듯이 보였지만 사실상 일본은 그 기회를 틈타 그들의 행보를 엮었다. 본격적인 친일세력들이 판을 짜기 시작했던 것도 IMF 직후의 일이었으니까.</p>
<p>박재완을 두고 어떤 이가 뉴스 말미 댓글을 남겼다. “(위도 못났지만) 보좌관이 더 못났다. ”</p>
<p>어떻게 될 것인지, 그가 한 말의 이 기록은 선연히 남는다. 다른 이는 아예 이렇게 표현한다. “이번에 IMF가 오면 그 책임자들은 모두 사형시키자! ”</p>
<p>‘사이버모욕죄 ’를 신설하려는 움직임에다 신문방송법 등 개정으로 여론통제의 길이 활짝 열리고 있는 때에 이런 말들이 과연 ‘모욕 ’에 해당되는 것일까?</p>
<p>일본에 대해 어떤 말을 남겨도 지금은 그들의 의도가 불순(不純)하다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좋지 않다. 사냥개가 양성된 과정도 그렇거니와 그들로 하여금 한국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게 하고, 다시 정권의 친위로, 정권의 주주로 기능하게 만들었다. 반공보수를 포획하면서 다시 공안정국, 신메카시즘 정국으로 몰고 가는 행태하며 ‘경제 ’를 죽 쑤게 만들면서 엉망으로 만드는 모습에서 이것이 그냥 오게 되는 상황은 아니란 것을 국민들도 짐작은 한다. 드러난 것만 봐도 빙산의 일각임을 안다.</p>
<p>목적도 이미 청사진까지 나와 있다. ‘우리민족끼리 ’에서 ‘민족 ’은 제외되고 거기에 ‘국가 ’가 붙는다. ‘우리 한일끼리 ’라는 단어가 바로 동맹론을 끄집어낸 이유이고 목표다. 그래서 경제를 살리기만 하면, 한국의 국민들은 모두 ‘일본 만세! ’를 외쳐야 한다고 밑자락을 깐다. 그리고 일왕이 등장하면서 우리가 20세기 초 겪었던 국치(國恥)가 환영 받는 행사로 포장되어 이 땅에 21세기 초에 다시 등장하게 된다. 이 시나리오에 여러 사람들이 부역(負役)을 하면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한다.</p>
<p>촛불민심이 집단지성인가?</p>
<p>어쩌면 우리 시대에서 다시 켜진 촛불이 의미하는 바를 지금 당장 찾아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촛불은 광우병대책위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나 범불교도대회가 의미를 가지는 것도 아니다. 시대가 가진다. 이 시대에 일본기획자와 친일매국세력의 준동(蠢動)을 정확하게 감지한 능력과 그들에 대처하는 첫 발걸음이 바로 촛불민심이었다고 나는 판단한다.</p>
<p>그러나 약하다. 오래 전에 친일에 포섭된 대학생 그룹들이나 IMF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 하에서 개인주의 각자주의에만 익숙한 대학생, 젊은이들의 종합된 의기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연세 드신 양반들이 가세했다. 깨어있는 지성이다. 민주화를 위해 ‘잃어버린 시대 ’를 살았던 386들은 생활인이자 소시민으로 움츠러들어 있다. IMF가 준 고통스런 장면이다.</p>
<p>정권은 인정사정 없이 촛불민심을 탄압한다. 그들의 갈 길을 막는 장애물이다. 마치 철인경기를 하듯이 넘고 치고 헤쳐 나간다. 방해물은 제거한다는 신념이 그들의 눈빛에 선연히 보인다. 공권력이 가동되고, 조직적인 마타도어, 거센 공안정국, 난립하는 메 카시즘에다 이제는 언로(言路)마저도 법과 질서라는 명분을 끌어대어 통제를 시작하려고 한다. 여론을 이끄는 조중동 등 친정권 매체들의 행태도 여전하다. 매너리즘에 빠진 다수 국민들은 아직도 이 사태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흐름을 놓쳤기 때문이다. 그에 외면 회피나 무관심한 것도 있다. 그런데 피해는 고스란히 그들에게도 돌아가게 되어 있다. 직접 당사자다.</p>
<p>‘취약계층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라는 이한구 국회 예결특위원장의 말은 허언이 아니게 들린다. 중산층이 사정없이 무너진 지금 취약한 사람들은 이 땅에 넘쳐 있다. 그들에게 ‘경제살리기 ’라 는 달콤한 언약은 통했고, MB정권이 태어났지만 그 속 깊은 곳에서 친일과 일본기획자가 꿈틀대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몇 사람이 안 된다. 시작되고서야 정체를 짐작하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그들을 모두 다는 모른다. 그렇게 허술하지는 않으니 드러내놓고 ‘한국을 접수하려고 합니다만 …’ 이렇게 말하지는 않을 터이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영토가 그들 손에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정권이 그러니 당연한 일이다.</p>
<p>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정도 수준이면 한국 사회가 요동을 쳐야 정상이다. 그런데 촛불민심은 자꾸만 압박 속에서, 다시 형성된 무관심이나 이상한 기대감 속에서 다른 형태로 투쟁이 진화되는 양상이다. 110회가 넘는 와중에 지쳤다는 표현이 옳다. 소통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 MB정권은 이제 박재완의 입을 통해 ‘소통하려 않은 것은 촛불이다 ’라고 말한다. 뻔뻔하다.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p>
<p>약간 감정적으로 말하자면, ‘힘이 있으니 눈에 뵈는 게 없다 ’는 식이다. 전혀 인간냄새를 풍기지 않는 ‘건조한 교활함 ’같다. 거기에 모두 진력을 낸다.</p>
<p>일본의 ‘다시 백 년 ’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 자료의 공개로 인해 그들이 오지 않는다면 그 또한 다행스럽겠지만 나의 예상으로는 오히려 더 강력하게 밀고 들어올 것이라 판단된다.</p>
<p>그 순간까지 참는다면 그것도 방법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피부로 느끼는 바로 그 순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일본의 사냥개 ’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내가 살아가는 시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질 것이다. 정체성을 상실한 사람이 무슨 의미로 생을 이어갈 것인가?</p>
<p>그래서 말한다.</p>
<p><strong>“개로 살 것인가, 사람으로 살 것인가? ”</strong></p>
<p>지금은 이 질문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그 외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시점이다.</p>
<h3>11. ‘시대 ’는 결코 너희의 의도대로 흐르지 않는다.<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1" title="toc_11" class="anchor" id="toc_11">#</a></sup></h3>
<p>‘경고 ’(警告) 란 조심하거나 삼가도록 미리 주의를 주거나 또는 규칙이나 규범을 어겼을 때 벌칙 가운데 하나로 사용된다. 지금 ‘시대 경고 ’라는 의미는 나를 포함한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발출하는 사전 메시지와 사후의 벌칙을 포함한다. 경고를 해야만 될 일은 벌써 시작되었기 때문이다.</p>
<p>우선 일본에게는 경고 이상의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다. 온 당(穩當)하지 못한 것이 그들의 민족성이고 또한 일본 극우와 우익, 제국주의와 팽창주의, 군국주의를 여전히 소망하는 자들의 속성일는지는 모르나 20세기의 아픈 기억이 21세기까지 연결되는 동안 반드시 나쁜 것은 재현되거나 아니면 어떤 계기를 통해 역전(逆傳, peripeteia)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변곡점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지만 그것이 꼭 전환점은 아니다. 흐름이 어디로 갈 것인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p>
<p>그래서 나는 이것을 ‘시대를 건 한일 간의 전쟁 ’이라고 부른 것이다.</p>
<p>여기에 아직은 북한이 소위 말해서 눈만 멀뚱하게 뜬 방관자와도 같 이 저기 멀찍하게 서 있 다. 인지(認知)하면서도 가만히 있는 것이라면, 대처방법을 못 찾은 것이라면 그들 또한 정책 부재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시대를 읽지 못한 것도 그렇지만 시대에 잘 대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주홍글씨로 남을 터이다. 그래도 이상하다. 지난 십 년을 그들도 성공으로만 보지는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그건 철저히 실패한 시대였다. 오늘 일본의 이런 움직임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p>
<p>그들의 어리석음을 탓하기 이전에, 그렇게 간다는 것 , 중립 위치에 세워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본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고 평가 할만 하다 . 남과 북 둘 사이에서 민족이나 통일 을 거론하기 에 앞서 서로가 너무 크게 ‘시대를 보는 괴리(乖離) ’가 존재한다는 걸 확인한 것이 되니 말이다.</p>
<p>그렇다고 나머지 성공이 꼭 한국에서 이루어질 것임은 자신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인지(認知)란 반드시 그에 따른 반탄(反彈)을 동반한다. 일본기획자의 의도는 나름대로 드러난 상황이고 국민들이 점차 사실을 알아가게 되어 있다. 막연함은 더욱 구체화될 것이고, 아무리 그 사이 표면을 겉치레로 위장한다고 해도 본질까지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다. 실수란 어느 곳에서도 벌어지게 되어 있다. 사냥개를 믿어도 그들의 한계는 뚜렷하다. 시대의 주체가 되기에는 그들의 한 번 훼절(毁節)은 언제든지 또 다른 방식의 변절(變節)이 가능하다는 걸 예고한다.</p>
<p>MB정권도 마찬가지다. 시대를 위하여 일본과의 ‘어두운 담합 ’(談合)은 한시 바삐 중지하는 것이 옳다. 벌써 눈에 띄게 일본을 칭찬하는 ‘띄워주기 ’가 청와대건 국회이건, 사회 속에서 너무 성행을 한다.</p>
<p>청와대에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초청되고 그들의 발언까지 나온다. 또 ‘빨갱이론 ’이다. 왜 비공개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수가 얕다. 너무 빤해서 말하는 이의 원래 없던 품격 이지만 진정성조차 유지되지 않는다. 혼잣말처럼 들린다. 국민을 계몽(啓蒙)하려는 아직도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머물고 있다는 판단마저 들 정도다. 그걸 눈치 못 챌 국민은 별로 없다. 국민의 80%가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이다.</p>
<p>그들을 가깝게 하는 것이 ‘집토끼 ’를 챙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그럴수록 국민 대다수는 정권의 곁에서 멀어진다. 진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 얕은 잔꾀는 바로 국민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꼼수 ’라고 읽히기 때문이다. 참모진들도 예외가 아니다. 벌써 공권력의 맛을 충분히 본 사람들처럼 국민을 MB호 (號) 에 그냥 편승해서 가는 손님취급을 한다.</p>
<p>국민은 주인이다. 개명(開明)된 천지에서 온갖 정보들은 신속하게 ‘발언과 행동 ’에 대해 평론을 덧붙인다. 아무리 ‘알바 ’를 고용한 여론조작을 해도 소용이 없다. 자정력(自淨力)은 매우 무서운 흐름을 보인다. 물론 쉽게 거대한 흐름 아래 의 함정에 빠지기도 하는 단점도 있다. 그런데 한 번 경험한 일에 대해서는 순발력이 강하다. 국민이 IMF를 겪고, 다시 친일매국세력의 찐한 공격들에 지난 백여 일 헤매는 와중에서 얻은 지혜가 많다. 그걸 무시하면 민심은 그 순간 강하게 요동친다. 그런데 여전히 무시 (無視) 수준이 아니라 요즘은 거의 멸시(蔑視)에 가깝다 느껴진다.</p>
<p>뉴라이트에 대해서는 할 말은 다 했다. 사냥개에게 더 이상 말을 해서 무엇 할 것인가. 애당초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에 의해 철저히 조종되는 괴뢰(傀儡)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도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괴뢰사(傀儡絲)를 부리는 인물을 ‘쳐죽이는 것 ’이 해답이다.</p>
<p>자신이 변질되었다는 것도 모르는 반공보수 인사들에게는 할 말이 많다. 전통적인 반공보수로 회귀해야 한다. 섣불리 일본의 극악(極惡)한 구석도 모르면서 그들에게 편들기를 하는 것은 지금까지 지켜온 그나마 있던 신념마저 팔아먹는 행위다. 그것은 참으로 보기 좋지 않다.</p>
<p>뉴라이트에 의해 세뇌되었거나 혹은 그들에게 기생하는 것을 출세나 혹은 금권의 지름길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경고는 마땅하다. 시대는 역사를 구성하는 단계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몹시 험악하다고 보는 게 옳다. 일제강점기 이후 63년 만에 맞는 새로운 친일의 부흥기에 편승하는 것은 약간의 성취감이나 뻣뻣해질 수 있는 목을 가진 것 이외에 반드시 책임 하나가 동반된다. ‘친일 ’에 참여한 이 후에 그 기록은 주홍글씨가 된다. 몰랐다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선명하게 자신의 시대에서 선택해서는 안될 가장 가치 없는 시간 하나가 기록으로 남는다. 웹2.0의 기록은 법원의 판결처럼 종합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쓸어 담아서 남는 법이다. 누군가 이를 분석할 것이다. 거기에 들어있는 이름을 지우기란 쉽지가 않다.</p>
<p>무관심한 국민들이 더 문제다. 소 시민적 감상으로 시대가 가는 길을 외면 회피를 하다 보면 어느 사이 자신의 발목까지 차 올라온 친일의 물결을 느낄 수 있을 터이다. 곧 목까지 차오른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갑갑한 속에서야 열심히 살아날 방도를 찾아도 잠수(潛水)를 하지 않고서 해법은 없다. 고기는 물 밖에서 살 수 없다지만 한국인으로 태어난 이상, 세상의 어느 다른 구석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이 원초적인 업보를 버릴 수는 없다. 그것은 종교적인 것도 아니며, 사람이 태어나서 가지는 유전인자에 시대와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는 때문이다.</p>
<p>이 글은 격문(檄文)이라는 것을 앞서 밝히고 쓴 글이다. 시대를 읽어보고 그로 인해 경고를 한다. 이 시대는 결코 일본기획자, 일본 세의 의도대로 친일을 한반도 땅에 온전한 모습으로 등장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점은 분명히 밝혀둔다. 듣지 않는다면 그 다음의 응보(應報)는 당연히 따라가지 않겠는가. 내가 하지 않으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는 반드시 할 것이라 믿는다.</p>
<p>(2008.8. 30 止月 山庄에서 쓰다.)</p>
<p style="text-align:right;">이 글은 <a href="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350">스프링노트</a>에서 작성되었습니다.</p>
<br />Posted in 담담당당 Tagged: 뉴라이트, 독립, 민족주의, 시대, 이명박, 자주, 촛불정국, 친일파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comments/coreannight.wordpress.com/15/"><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comments/coreannight.wordpress.com/15/"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delicious/coreannight.wordpress.com/15/"><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delicious/coreannight.wordpress.com/15/"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facebook/coreannight.wordpress.com/15/"><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facebook/coreannight.wordpress.com/15/"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twitter/coreannight.wordpress.com/15/"><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twitter/coreannight.wordpress.com/15/"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stumble/coreannight.wordpress.com/15/"><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stumble/coreannight.wordpress.com/15/"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digg/coreannight.wordpress.com/15/"><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digg/coreannight.wordpress.com/15/"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reddit/coreannight.wordpress.com/15/"><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reddit/coreannight.wordpress.com/15/" /></a> <img alt="" border="0" src="http://stats.wordpress.com/b.gif?host=coreannight.wordpress.com&amp;blog=5630345&amp;post=15&amp;subd=coreannight&amp;ref=&amp;feed=1" width="1" height="1"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c%96%b4%eb%8a%90-%eb%af%bc%ec%a1%b1%ec%a3%bc%ec%9d%98%ec%9e%90%ec%9d%98-%ec%8b%9c%eb%8c%80%ea%b2%bd%ea%b3%a0-3-2008830/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media:content url="http://1.gravatar.com/avatar/bc8f883dd78ebe308860a9b0136eadd9?s=96&#38;d=identicon" medium="image">
			<media:title type="html">coreannight</media:title>
		</media:content>
	</item>
		<item>
		<title>어느 민족주의자의 시대경고 2 (2008.8.26)</title>
		<link>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c%96%b4%eb%8a%90-%eb%af%bc%ec%a1%b1%ec%a3%bc%ec%9d%98%ec%9e%90%ec%9d%98-%ec%8b%9c%eb%8c%80%ea%b2%bd%ea%b3%a0-2-2008826/</link>
		<comments>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c%96%b4%eb%8a%90-%eb%af%bc%ec%a1%b1%ec%a3%bc%ec%9d%98%ec%9e%90%ec%9d%98-%ec%8b%9c%eb%8c%80%ea%b2%bd%ea%b3%a0-2-2008826/#comments</comments>
		<pubDate>Mon, 24 Nov 2008 15:23:35 +0000</pubDate>
		<dc:creator>coreannight</dc:creator>
				<category><![CDATA[담담당당]]></category>
		<category><![CDATA[뉴라이트]]></category>
		<category><![CDATA[독립]]></category>
		<category><![CDATA[민족주의]]></category>
		<category><![CDATA[시대]]></category>
		<category><![CDATA[이명박]]></category>
		<category><![CDATA[자주]]></category>
		<category><![CDATA[촛불정국]]></category>
		<category><![CDATA[친일파]]></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c%96%b4%eb%8a%90-%eb%af%bc%ec%a1%b1%ec%a3%bc%ec%9d%98%ec%9e%90%ec%9d%98-%ec%8b%9c%eb%8c%80%ea%b2%bd%ea%b3%a0-2-2008826/</guid>
		<description><![CDATA[목차 들어가면서 ‘사냥개 ’를 발굴하는 자 , 조련하는 자 ; 일본의 촉수, 구로다 가쓰히로 ‘조련 ’의 첫 대상에 스스로 걸려든 자; 한승조 학자로 포장된 친일 사냥개; 학술에서 정치로 가다. –이영훈의 경우 종교편향주의 , 사적 이익, 정치세력화 욕구가 ‘친일 ’을 비판 없이 끌어 안게 만든다.; 기독교를 가장한 이단 친일교회 , 교회집단 –기독교 사회책임의 예 조선일보, 박근혜, [...]<img alt="" border="0" src="http://stats.wordpress.com/b.gif?host=coreannight.wordpress.com&amp;blog=5630345&amp;post=14&amp;subd=coreannight&amp;ref=&amp;feed=1" width="1" height="1"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id="toc" style="border:1px solid tan;background-color:rgb(255,255,250);padding:2px 10px 0;">
<p><strong>목차</strong></p>
<hr />
<p><a href="#toc_0" class="external" title="toc_0">들어가면서</a></p>
<ol>
<li><a href="#toc_1" class="external" title="toc_1">‘사냥개 ’를 발굴하는 자 , 조련하는 자 ; 일본의 촉수, 구로다 가쓰히로</a></li>
<li><a href="#toc_2" class="external" title="toc_2">‘조련 ’의 첫 대상에 스스로 걸려든 자; 한승조</a></li>
<li><a href="#toc_3" class="external" title="toc_3">학자로 포장된 친일 사냥개; 학술에서 정치로 가다. –이영훈의 경우</a></li>
<li><a href="#toc_4" class="external" title="toc_4">종교편향주의 , 사적 이익, 정치세력화 욕구가 ‘친일 ’을 비판 없이 끌어 안게 만든다.; 기독교를 가장한 이단 친일교회 , 교회집단 –기독교 사회책임의 예</a></li>
<li><a href="#toc_5" class="external" title="toc_5">조선일보, 박근혜, 뉴라이트, 안보상업주의; 안병훈을 보며</a></li>
<li><a href="#toc_6" class="external" title="toc_6">송자; 조선일보라는 ‘살아있는 권력 ’의 하수인이자 일본 극우를 향한 통로</a></li>
<li><a href="#toc_7" class="external" title="toc_7">빗나간 애국우파 신념, 친일에 포획되다. ;유석춘의 경우</a></li>
<li><a href="#toc_8" class="external" title="toc_8">법치와 공정 구호 속을 파고 든 친일과 사적 이익의 합주; 모호한 수용 속의 ‘골방 지식인 ’, 김일수의 케이스를 보며</a></li>
<li><a href="#toc_9" class="external" title="toc_9">일차 맺으며</a></li>
</ol>
<p>&nbsp;</p>
</div>
<p><span class="Apple-style-span" style="color:rgb(51,51,51);font-family:굴림;">止月 山庄에서 쓰다.</span></p>
<h3>들어가면서<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0" class="anchor" title="toc_0" id="toc_0">#</a></sup></h3>
<p>‘시대 경고 ’두 번째 글을 쓰게 되었다. 앞서 11가지 루트로 들어오는 일본 세(勢)의 현황은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업데이트 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칫 그들의 종적(踪迹)을 놓칠 우려도 있다.</p>
<p>‘ 시대읽기 ’를 종합본 기준으로 제1부, 제2부를 끝내자 마자 바로 ‘시대 경고 ’기초편을 쓰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일본은 우리의 시대에 성큼 다가와 있고, 그들은 우리에게 침탈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던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무디게 대응하는 한국, 한반도 전체의 모습에서 나는 오히려 일본의 치밀함을 느끼게 된다. 사냥개가 그만큼 지능적이었고 사냥꾼은 더 교활하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다.</p>
<p>2005.3.4 EBS 토론 ‘2005, 친일논쟁 ’을 떠올리게 된다. 어줍잖 게 튀기 좋아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얼치기(논리가 없다는 의미다) 친일 흉내를 낸 ‘조영남 ’이란 인물이 나왔던 프로그램이다. 일본은 ‘망언 제조기 ’라는 별명이 있는 산케이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가 나왔고, 베끼기 논란에 휩싸였던 ‘일본은 없다 ’를 쓴 전여옥, 그리고 김삼웅 당시 독립기념관장이 나왔다. 김삼웅 관장의 말이다.</p>
<blockquote>
<p>“일본 지식인의 멘탈리티는 여전히 한반도를 노리고 있다. 힘이 있을 때는 통째로 가지려고 하고 있고, 힘이 약할 때는 분열 시켜서 유지하려고 시도하고 있을 뿐이다. ”</p>
</blockquote>
<p>이 말은 정답이다.</p>
<p>앞 서 ‘어줍잖다 ’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것은 좀 더 진실되게 말하자면, ‘엉성한 친일(親日) 흉내 ’라고 봐야 한다. 지일(知日)하지 않은 채 친해 보자고 덤비면 꼭 ‘그 꼴 ’이 난다. 그런 예는 숱하게 있었다. 굳이 약간 정신병에 가까운 , 일본인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김완섭, 오선화 류 를 안 봐도 안다 . 그들에게는 신 친일파 같은 명칭도 과하다. ‘사냥개 ’의 범주에도 들지 못할 정도의 상태 다 보니 대체로 사람들은 그걸 우습게 (기막히게) 여긴다. 그러나 쉽게 여기다가는 가랑비에도 옷은 흠뻑 젖게 되어 있다.</p>
<p>‘시대 경고 ’의 2편은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왜 ‘사냥개 ’는 필요 했고, 그들은 어떻게 한국 사회 내에서 그들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는가? 그들 스스로가 사냥개임을 자각하고 있는가, 아닌가 ? 이러한 구분 판정까지 섞어서 정리해볼까 한다.</p>
<p>어쩌면 이것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새로운 친일 유형 ’, ‘침탈 경로의 변형 ’이라는 관점에서 재정리 되어야 될 자료일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해온 방식대로 계보학적인 관점에서 그들에 대한 실상(實相)을 보는 것, 그 속에서 다시 ‘일본기획자 ’를 찾는 것까지 진행해볼 참이다.</p>
<p>우 선 8인의 유형을 정리한다. 이 명단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정리해볼 대상은 최소 40명 수준이 넘는다. 그래서 &lt;시대 경고&gt; 중급편은 몇 차례 나누어서 연재할 수밖에 없다고 보여진다. 인용되는 자료는 대체로 공개된 것을 위주로 한다.</p>
<h3>1. ‘사냥개 ’를 발굴하는 자 , 조련하는 자 ; 일본의 촉수, 구로다 가쓰히로<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 class="anchor" title="toc_1" id="toc_1">#</a></sup></h3>
<p>사 냥꾼과 사냥개의 관계에 특별한 역할을 하는 ‘한 사람 ’이 존재한다. 이른바 ‘조련사 ’다. 이들은 사냥개에 적합한 종(種)을 발견하고, 그를 훈련한다. 한 번 이 코스를 거치게 되면, 사냥개는 죽는 날까지 그를 ‘(주인보다 무섭거나 주인에 버금가는) 스승 ’으로 모시게 되어 있다. 두려움을 주기도 하고 사랑 칭찬 따위, 나아가 먹이를 주 며 감사를 가르치 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교육되는 코스를 거쳐 사냥꾼과 연결시킨다.</p>
<p><strong><img title="구로다-가쓰히로(黑田勝弘).jpg" class="attachment"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49122" alt="구로다-가쓰히로(黑田勝弘).jpg" style="float:left;margin:0 1em 0 0;"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strong></p>
<p>1941년 오사카 생, 교토대 경제학부 졸업, 연세대 유학, 교토통신 사회부 기자, 서울 지국장, 1989년부터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겸 논설위원.</p>
<p>이 것이 드러난 그의 이력이다. 박정희 시대부터 서울을 들여다 보며 일본 우익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는 실질적으로 일본이 한국에 파견한 최고급의 고등간첩이다. 그의 별명처럼 ‘망언 ’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제조되었다. 그 러나 서울에서 잘 버틴다. 매우 교활하다. 그가 단순하게 산케이 신문이 가진 극우 논리만 대변하는 것일까? 그렇지가 않다.</p>
<p>그가 수행하는 임무는 매우 다양한 각도를 가지고 있다. 즉, 공작 가운데서 첫째, 대민교란. 둘째, 인물섭외 포섭. 셋째, 사실의 왜곡 및 혼란조장. 넷째, (일본의) 국익과 관련한 발언과 행위. 다섯째, 선무(宣撫) 즉, 일본에 대한 고양(高揚) 및 우월성 선전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 정도 수준이면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화이트 ’(스파이) 중에는 최고라고 불릴 수 있다. ‘화이트&amp;그레이 ’수준이다.</p>
<p>일련의 발언들에서 나타나는 그의 논조는 ‘산케이 ’의 그것과 닿아 있다. 즉, 민족주의적이다. 당연히 일본의 민족주의다. 일본 신권주의, 즉 황국신민이라 믿는 바로 그 주의다. 그것은 일본 이항상 우월하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한국은 비하(卑下)되어도 좋을 대상이며, 일본에 대한 적정한 비판 또한 불만 을 ‘투정 을 표시하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 하는 경향이 되고 만다. 그에게 있어 한국에서의 26년 이상의 생활도 모두 일본의 장점을 서울의 단점과 대비하려는 것 , 그래서 가르치려 드는 마음 으로만 채워져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일본 극우와 우익의 우수한 선전요원이라는 표현도 적정하다. 단지 서울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칼럼 등을 통해 일본 국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속말로 ‘양수겹장 ’까지 한다.</p>
<p>반공과 반북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에게는 공산주의, 북한은 거의 알레르기 의 대상 에 가 까운 존재다. 아니, 알레르기 그 자체다. 모든 것은 그것과 연동시킨다. 한국의 민주화도 반공과 반북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할 정도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당연히 일본에 대한 역사문제나 교과서, 신사참배 등에 반대하는 한국, 일본, 북한에 대해 싸잡아서 공산주의, 좌파들의 시각이라고 매도한다. 우습게도 이 논리로만 지난 26년을 보낸 사람이다.</p>
<p>그러나 무척 친미적이다. 삼각형의 저변에 위치시킨 한반도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은 항상 그의 머리 속에서 꼭대기의 어디쯤에 있다.</p>
<p>산 케이는 이 런 것을 ‘정론노선 ’(正論路線)이라 부른다고 한다. 자매지로 ‘세이론 ’(正論)도 있다. 일본 우익국가주의 단체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새역모) 에서 편집된 ‘중학교 역사교과서 ’가 출판된 ‘후쇼사 ’도 산케이 계열이다. 한 마디로 일본 극우, 우익들의 사랑방에 있던 자가 서울에 앉아서 그들의 제일선, 전선 공작을 펴고 있다.</p>
<p>재일동포 안호진이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의 구로다 기자를 아는가 ’라는 글을 인물과 사상(2001.3 통권 35호)에 실으며 ‘산케이 서울지국 폐쇄운동 ’이라도 벌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여전히 생생하다.</p>
<p>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김기백(인터넷 민족신문 발행인)에게서 볼 수 있다. 브레이크 뉴스 2006.4.21자 일부다.</p>
<p>“ 매우 지능적인 수법으로 특히 언론계를 비롯, 덜 떨어진 한국의 지식인 사회와 청년 세대의 이성을 교란 마비시킴으로서 한국사회에 무력 침략보다 오히려 무서운 문화침략, 정신 침략의 선봉장으로서 투철한 목적을 철투철미 수행 중인 일본 극우의 정예, 고등 첩자로서 가소롭게도 최근 &lt;구로다 가쓰히로 연구회&gt; 라는 이름을 내걸고 인터넷 사이트까지 개설, 한국의 청년층을 대거 유인, 세뇌시키고 한국 내의 여론을 더 한층 교란, 분열 시키려 책동하고 있는 바, 우리는 이를 예의주시, 엄중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p>
<p>그의 활동 가운데 문제가 되는 핵심은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일본에 복속시키려는 고도의 심리전 양상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단순히 발언이나 신문의 논조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연결된다. 2002년 1학기부터 서강대에서 ‘일본문화의 이해 ’라는 강의까지 했다가 범칙금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것은 드러난 사실일 뿐이다. 그의 이면은 무엇인가?</p>
<p>2006.2.24 쿠키뉴스는 백범을 테러리스트라 했던 거의 정신병에 가까운 한국산 친일파 로 분류되는 ‘김완섭 ’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거기에 재미난 대목이 나온다.</p>
<blockquote>
<p>“ 산케이 신문 구로다 서울지국장과는 친하다. 조갑제씨는 굉장히 싫어한다. 구로다씨가 조갑제씨와 친분이 있다. 간혹 구로다씨가 조갑제씨 이야기를 하면 황당하기 그지 없다. 구로다씨가 한 일본 우익인사에게 조갑제씨와의 대담을 주선했는데 그 우익인 사가 조갑제씨를 ‘기본이 전혀 없는 친구 ’라며 실망했단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p>
</blockquote>
<p>구로다-조갑제.</p>
<p>이 둘의 관계는 무엇인가? 김완섭의 이야기를 흘려 듣는다 해도 둘 사이가 ‘한일 양국의 극우 보수 ’로 사이 좋은 관계임은 여러 형태로 알려져 있다. 구로다는 조선일보, 주간조선, 월간조선에 수시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다. 그걸 언제나 스스럼없이 받아준 것이 바로 ‘조선 ’이다. 선전장을 제공해준 셈이다. 최근에는 평화방송, CBS 등의 인터뷰가 많다. 그리고 각종 신문에서도 그의 ‘망언 ’을 비중 있게 다룬다. ‘트러블 메이커 ’가 아니라 사실상 ‘뉴스 메이커 ’이고, 알게 모르게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그 개인이 아닌 일본 우익들의 관점을 지속 전파하는 일종의 리피터(repeater)인 셈이다. 당연히 둘 사이는 좋은 것으로 밖에서는 알고 있지만 김완섭은 구로다가 조갑제를 ‘낮추어 보고 있다 ’는 사실을 알려준다. 혼네(本音)라면 조갑제가 실망할 일이다. 그래도 끈끈하게 보인다. 서로 필요한 구석이 있어서다.</p>
<p>조갑제는 한국 우익인사다. 구로다와 조갑제 사이에는 건너야 할 하나의 벽이 있다. 반공 반북에는 동질감이 있지만 바로 ‘일제의 미화 ’라는 관점은 둘 간에 맞추어야 할 격간(格間)이 있는 대목이다. 그것이 잘 맞지 않은 것일까? 사건이 벌어진 것은 바로 독도문제다. 조갑제-구로다 간 ‘동맹 ’(同盟)의 허상과 실체가 드러났다.</p>
<p>조갑제는 두 가지의 키워드를 한꺼번에 던진다. “미친 사람과 토론을 하면 토론이 되겠느냐? 당당하고 냉정하고 느긋하게 대처해야 한다 ”. 구로다와 똑같은 부분은 바로 뒷 부분에 있다. 앞서 그가 했던 말과 비교해 보자.</p>
<blockquote>
<p>“독도 영유권이 어느 쪽에 있느냐는 말인데, 여기서는 ‘독도는 한국 것, 다케시마는 일본 것 ’으로 답변할 수 밖에 없다.(2005.4.22)</p>
</blockquote>
<blockquote>
<p>“바위 덩어리 섬을 갖고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는 없다. ”(2008.7.14 평화방송)</p>
</blockquote>
<p>그 러다 보니 ‘구로다는 일본인으로 얄미울 정도로 행동하는 데 조갑제는 뭘 하시나? 구로다와의 ‘애정 ’때문에 살살 이야기 하나?&#8217;라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 그들 둘 간에 어느 정도의 애정이 있는 것인지는 당사자가 아니니 모를 일이다.</p>
<p>이 들 간의 교감이 극대화되는 부분은 항상 반공, 반북이다. 한일간 애매한 역사, 분쟁관련에서 조갑제는 아예 침묵하거나 아니면 ‘당당 냉정 느긋 ’이라는 논지가 나온다. “한민족의 영혼을 더럽힌 세 사람-김정일, 김대중, 노무현 ”이라고 강렬한 비난은 일본에 대해서는 볼 수 없다.</p>
<p>조갑제와 함께 쌍라이트로 불리는 ‘지만원 ’은 한 술 더 뜬다.</p>
<p>2006.1.22 그의 웹사이트에서 ‘민족 ’은 죽어버렸다. 그런데 묘하게 ‘일본 ’은 거기서 살아 남는다.</p>
<blockquote>
<p>“’ 민족 ’이란 단어는 김정일이 남한의 수수한 국민들로 하여금 미국을 몰아내고 일본을 증오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위장용어 ’다. 민족주의자들을 좋게 보면 시대착오적이자 쇼비니스트, 폐쇄주의자들이라 생각한다. 나쁘게 보면 좌익-친북 세력이다. ”</p>
</blockquote>
<p>반공 반북에 죽이 맞다 보니 일제미화나 일본 우익들마저 손을 잡을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조갑제는 일본 보수본진을 떠받든다. 그에게는 세 사람의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아베 신조 전 총리다. 대북강경책을 주창하 며 ‘올라운드 극우 공격수 ’로 불리 는 그를 조갑제는 한국 대통령보다 더 좋아했다. 이시하라 신타로의 경우도 ‘망언 ’이 장난이 아니다. 그는 ‘새역모 ’의 공식 후원자이다. 조갑제는 그런 망언을 좋아하는 편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나카소네 야스히로다. ‘일본열도 불침항모론 ’의 일본군국주의 신봉자이며 주도자이다. 그들 식의 ‘보수 ’에는 ‘강력함 이 최고선 ’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듯하다. 즉, ‘강한 것이 보수 ’라는 이상한 공통인식이 있다.</p>
<p>구로다 가쓰히로의 발언은 매우 교활하다. 우리 식으로 보면 ‘뺀질대는 구석 ’이 많지만 때로는 ‘느물느물 ’하게 , 어떤 때는 쌍심지를 돋우며 접근한다. 캐릭터가 다양하다.</p>
<p>“남한은 친일청산 안 해서 잘산다 ”(2005.9.12 CBS인터뷰)고 해놓고는 슬그머니 “전 일본 인이니까요 ”라고 발을 뺀다.</p>
<p>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4,776명 명단이 발표되고 MB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슬그머니 일본이 약자인 것처럼 행동한다.</p>
<blockquote>
<p>“ 지난 2005년 1차 발표 당시 일본측에선 시대가 흘렀는데 왜 지금 친일파다 해서 규탄하는 것인지 너무 과거에 집착하는 것 같다는 생각과 새삼 한국분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에 놀랬다는 반응이었다. (중략) 일본 국민들도 과거 일제 시대에 대해 일본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잘했다는 생각을 안 한다. 시대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미안한 일이다라고 거의 생각하고 있다. ”(2008.4.30 CBS)</p>
</blockquote>
<p>그렇지만 이런 것은 모두 그의 ‘지능적인 대처법 ’에 해당한다.</p>
<blockquote>
<p>“ 독도는 ‘애국주의 심벌 ’이며 한일간에 (한국이) 스포츠 경기에서 이기려는 것은 ‘민족적 욕구불만 ’” (2008.8.6)이라고 바로 터져 나오거나 “한국에서 이전부터 가상소설로서 ‘한일전쟁 ’이 유행이었다. 북한의 위협이 후퇴한 대신 지금은 가상의 적이 일본으로 이전한 듯한 분위기다. 일본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음으로써 ‘힘이 난다 ’는 것으로 일본에 지배당했던 과거 역사로부터 나온 일종의 ‘민족적 후유증 ’이다 ”라는 말로 북한과 한국민의 자기비하감을 극대화 시키는 심리전을 전개한다. 그래서 이런 말도 나온다. 이젠 어린애들도 대상으로 삼는다.</p>
<p>“한국 어린이들은 반일 파블로프의 개가 되고 있다. ”</p>
<p>야스쿠니 참배, 종군 위안부 문제, 역사교과서, 스포츠 등에도 거의 교묘한 언행은 이어져 왔다.</p>
<p>“ 나는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뜻을 이해한다. ”,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명단은 애국전범이다. ”, “중국은 공산주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한국은 우리와 가치관을 같이 하는 나라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의 그런 죽은 자에 대한 생각은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다. ”(2006.8.15 평화방송)</p>
<p>“위안부 문제의 국제화 배경에는 ‘북한의 그림자 ’가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2007.3.14)</p>
<p>“(일본 교과서 문제는) 객관적으로 가르치자는 것, 한국이 왜 그렇게 흥분하는지 모르겠다. ”</p>
<p>“’ 손기정 선수의 쾌거는 일본 근대화의 성과라고 생각하는 데 (한국인은) 그런 객관적인 역사관을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p>
</blockquote>
<p>구로다는 지금 일본이 힘이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힘이 약하다고 여기는가?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의 말에서 그 해답이 있었지만 일본 극우, 우익, 일본기획자의 입장에서는 한국 내부에 국론을 흔들어 분열시킨 상태로 적어도 ‘반일 ’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 에 골몰하다가 이젠 ‘친일 ’을 드높이면서 ‘통째로 ’먹을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한 전조는 여러 곳에서 보인다.</p>
<p>모 리 요시로(森喜朗)가 산케이 출신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그는 1960년 와세다대 상학부를 졸업하자마자 산케이에 입사해서 1962년 국회의원 비서로 빠졌다. 그렇다 해도 그가 산케이 파(派)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p>
<p>구 로다 가쓰히로가 한국 땅에서 지난 26년 일본 극우, 우익을 위해 해온 일은 곧 일본기획자의 지시였다. 그건 곧 ‘공작 ’이었고, 나아가 간첩행위, 그것도 특무(特務)를 가진 고등간첩이었음이 부인될 수 없다. 그걸 꼭 증명해야 안다면, 스스로 하수라고 자임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일본에 이런 인물이 없다. 그래서 하수일는지는 모른다. 그러므로 오늘과 같은 ‘다시 백 년 ’프로그램이 가동되었고, 그 이전 단계라 할 수 있는 ‘친일의 재구성 ’이 착착 진행되어 이제는 그 결과까지 볼 요량으로 가는 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고 해야 옳다.</p>
<p>그런 일제간첩이 잘 살고 있는 서울에서 그가 서울-도쿄를 연계하여 얼마나 많은 자들을 그간 포획했던 지를 살펴볼 차례다. 그 대부분은 비밀스럽게 진행된다. 조갑제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소개 ’(紹介)라는 명분으로 슬그머니 그는 일선에서 빠진다. 그것이 그의 역할이니까. 그렇지만 그의 주업(主業)은 다양하다. 그런 뚜쟁이 역할 말고도 하는 일이 많다는 뜻이다. 그가 어떻게 활동했는지에 대해 그 시기를 주목해서 봐야 한다. 2000년 이후, 그의 행적 자체에 관심을 반드시 둬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p>
<h3>2. ‘조련 ’의 첫 대상에 스스로 걸려든 자; 한승조<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2" class="anchor" title="toc_2" id="toc_2">#</a></sup></h3>
<p>‘ 논객(論客) ’이란 다양한 이론을 설파하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식자(識者)다. 지식인이고 때로는 그래서 지성인의 대우까지 받는다. 그러나 구로다 가쓰히로나 조갑제 같은 인물을 ‘보수논객 ’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치다. 그들은 ‘선전꾼 ’이다. 좀 나쁘게 표현하자면 상대를 자신들의 집단이나 혹은 사적 이익에 빠뜨리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불공정한 ‘모리배 ’에 해당한다.</p>
<p>종 종 논객이란 명칭으로 학술적인 성과를 포장하는 자들도 있다. 학술(學術)의 한계는 뚜렷하지만 그래도 인류 역사에서 ‘학문 ’은 사회과학이건 자연과학이건 간에 그 기초를 ‘균형 ’(balance)에 둬왔다. 어느 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공정한 ‘사실 ’(事實)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것, 그런 논리를 알리는 것이 바로 ‘교육 ’이었다. 이 기준은 그들이 ‘목적성 ’을 두고 움직일 때 철저하게 무너진다. 그들에게는 사상을 주입하려는, 그를 통해 자신들의 관념을 사회 국가 속에 전파하고 나아가 이를 트랜드로 삼으려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p>
<p>지금 우리는 한일 양국의 극우(Far-right, Ultra-Right)라는 관점 을 가진 논객들의 목소리 만높아지는 ‘꼴’을 본다. 목적이 저변에만 깔리지 않고, 어둠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양지 ’로 기어 나오고 있는 형태다. 그걸 도쿄가 잘 기획하고, 서울이 그에 잘 협조하고 있다.</p>
<p><img title="한승조.jpg" class="attachment"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72690" alt="한승조.jpg" style="float:left;margin:0 1em 0 0;" />구로다 가쓰히로가 만든 역작(力作)은 한승조(韓昇助)다. 1930년생. 고려대 정치학과 대학원을 나와 미국 버클리대 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 다.</p>
<p>1967~1995년까지 고대 정치학교수를 지냈다. 2005년 당시 안응모(전 내무장관) 가상임고문이고 정기승, 류기남이 공동의장을 맡았던 ‘자유시민연대 ’에 적(籍)을 두고 있었다.</p>
<p>2005년 이란 시점을 생각해보자.</p>
<p>2004.11 동아일보는 뉴라이트운동이라는 신보수우익 운동을 전면적으로 조명하고 띄우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것을 ‘운동 ’(movement) 수준으로, 그리고 ‘새롭다 ’(new)를 강조하는 획기적인 우익 찬양론을 펼치게 된다. 당연히 좌파 배척론도 이어졌다. ‘잃어버린 10년 ’을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보수우익이라는 관점에서도 진행되었다. 그리고 ‘자유주의연대 ’(신지호)가 등장한다. 이른바 전향 386의 훼절집단이 ‘우익만세 ’를 외치면서 나타난다. 2005년 1월, 교과서포럼이 등장한다. 일본우익의 그것을 그대로 표방한 ‘경제발전 ’을 잣대로 한국 근현대사를 재조명한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3월말, 뉴라이트 싱크넷이 등장하고 11월 뉴라이트 전국연합, 이듬해인 2006년 뉴라이트 재단까지 나오게 된다.</p>
<p>이 일련의 진행과정에서 2005년 초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뭔가 매우 강렬한 수준에서 ‘친일 ’논쟁이 붙어주는 걸 바라고 있던 시점이었다. 일종의 죽어있던 불씨가 살아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까지 있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p>
<p>거 기에 한승조가 선택된다. 안병직은 1989년 근대조선의 연구, 1992년 근대조선수리조합연구 등 학술과제를 수행하면서 일본 도요다재단으로부터 후원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친일의 원초적 죄업을 벗어나기 어려운 상태였고, 한국 사회 내에서 일정한 수준의 반발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역사학계, 사회학계의 주류들도 반발을 하던 시점이었다. 그에 지원세력을 필요로 했던 시기기도 하다.</p>
<p>21 세기 초엽, 일본 극우, 특히 급진 우익(radical right)은 일본 내에서도 동력을 점차 잃는 추세였다. 공산주의와 일본 좌익이라는 적이 사라지고 난 이후, 새로운 목표를 향해야 한다는 당위가 붙었다. 게다가 고이즈미 내각은 2002년, 2004년 북일 정상회담을 하게 된 상태, 그러다가 납치자 문제가 쟁점이 되던 바로 그 시기였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일본 내부에서 급진 우익보다는 사회전반에 걸친 보수우경화 바람이 거세지면 질수록 급진우익이 위축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 상태에서는 다시 한반도에 대한 ‘친일논쟁 ’, ‘일본의 근대화 역할론 ’이 부각되어야 할 시점으로 판단되었던 셈이다. 안병직이 내건 ‘식민지 근대화론 ’이 21세기 들어서자마자 후끈 학계를 달구고 있던 시점이기도 했다.</p>
<p>이른바 나중에 ‘한조지 ’삼형제라 불리는 한승조-조갑제-지만원 라인이 형성된다. 한승조는 산케이 자매지인 ‘세이론 ’(正論) 2005년 4월호에 “친일행위가 바로 반민족 행위인가?; 한일관계의 인식전환을 위하여 ”라는 글을 싣게 된다. 바로 ‘친일반민족 행위 진상규 명에 관한 특별법 ’에 대한 직접 공격이었다. 그의 원고 가운데 ‘식민지 지배는 축복 ’이라는 말이 즉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 주류 사학계와 일반은 경악했다. 원문은 이랬다.</p>
<blockquote>
<p>“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는 오히려 천만다행이며 저주할 일이기 보다는 도리어 축복이며 일본인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사유는 될지언정 일정(日政) 35년 동안 일본에게 저항하지 않고 협력하는 등 친일행위를 한 것 때문에 나무라고 규탄하거나 죄인 취급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p>
</blockquote>
<p>그의 글은 이렇게 끝맺음을 한다.</p>
<blockquote>
<p>“ 친일행위는 산업화 단계 내지 민족주의 시대에는 죄악시 되며 반민족행위로 지목되어 비판 규탄의 표적이었다. 그러나 탈 산업사회 또는 세계화의 시대에 와서는 친일행위가 도리어 애국애족 행위로 인식되고 환영 받는 날이 올 것이다. 이런 사회를 맞이하게 되려면 우리는 어떻게 젊은 세대를 좌경화의 추세에서 벗어나게 하는가? 또 반일교육을 받아온 세대도 점진적으로나마 인식의 전환 및 태도변화로 유도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어야 한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노력해야만 할 분야가 아니겠는가? ”</p>
</blockquote>
<p>일 본의 극우와 우익이 모두 칭찬할 수 있는 전형적인 ‘내선일체 ’(內鮮一體)의 변형판이다. 주목할 점은 바로 이 ‘논리 ’가 안병직 류의 그것과 직결되며 상통된다는 사실이다. 바로 뉴라이트 집단의 생성 원리로 안병직의 ‘식민지 근대화론 ’이 부족했던 전문성으로 포장된 정치적 견해를 원로 정치학자 한승조로 하여금 제공하게 했다는 의미다.</p>
<p>그가 써먹기 좋았던 것은 해방 직후 16세여서 친일활동 대상자가 아니었고, 더군다나 친일의 요소보다는 미국 유학파로써 그 사안에 비켜갈 수 있고, 나아가 그래도 고명한 정치학자라 서 정치적 견해를 표현 가능하다 는 삼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졌다. 2005년 당시 한승조는 사실상 고려대 명예교수로써 이제 학술일선은 물론이고 사회 내부에서 대접 받는 위치도 아니었다. ‘박정희가 물러난 뒤 더 박정희에게 충성한 독특한 인물 ’로 평가 받는 그가 1995년 이후는 이렇다 할 한국 사회 내부의 원로 대접을 받지 못하던 참이었던 시기였다. 그런 그를 두고 ‘박정희 학교의 반항아적 우등생 ’(한홍구, 성공회대)라는 평가도 있다. 이회창 필승론을 외쳤지만 실패했고, 맹신을 가졌던 박정희 옹호론도 사회분위기 속에서 시들하던 시기, 바로 그 때 그는 등장했다.</p>
<p>‘ 한조지 ’라인은 그 이후 그를 옹호하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지만, 사실상 한승조-조갑제-구로다 가쓰히로라는 ‘한가조 ’라인이 세이론에 글을 싣기 전에 미리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글은 4월호에 실리긴 했지만 이미 그 이전 해인 2004년 말 사전 준비되었다고 알려진다. 그러니까 꽤나 시차를 두고 공들여 (협의하며) 만들어진 글이다.</p>
<p>조갑제는 왜 한승조를 구로다 가쓰히로 가 타이밍에 맞게 ‘활용 가능하게 ’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극우 간의 동질감이 아닌 적절한 거래관계도 형성되었을 개연성도 무시 못한다.</p>
<p>논 란 속에서 예의 쌍라이트 중 하나인 지만원의 편들기가 이어진다. 조갑제에 비해 훨씬 적극적인 ‘친일 ’요소가 나타난다. 그러나 지만원도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세간의 분위기를 어렴풋이 읽고 눈치를 보던 때였다. ‘한승조 교수에 돌 던지지 말라! ’는 글 가운데는 이런 구절들이 보인다.</p>
<blockquote>
<p>“오늘날을 보십시오. 미국과 일본은 우리보다 잘난 선진국입니다. 방송장비의 100%는 일본의 소니사 제품입니다. 일인당 GNP가 우리의 4배입니다. 일본이 옛날에 선진열강들로부터 열심히 배워서 우리를 통치했듯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선진국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중략) 한승조 교수님은 평소에 이런 소신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설사 그분이 사용한 용어와 표현에 부분적인 부적절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일부의 용어를 트집잡는 건 깨인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닙니다. (중략) 우리 민족은 일본으로부터 당한 고통보다 6.25의 동종상잔으로부터 당한 고통이 더욱 크고 광범위하고 비참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중략) 민주주의가 무엇인가요? 민주주의는 다양성이 인정되는 제도입니다. (중략) 한국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면 꼭 일본에 사과를 요구합니다. 일본도 한국도 똑 같은 국가입니다. 한 국가가 저지른 과거사에 대해 한번만 사과하면 됐지 어째서 대통령마다 사과를 요구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p>
</blockquote>
<p>신 친일파가 한국 내의 반공 반북 극우와 어떻게 결합하는가를 ‘한승조 ’사건은 보여주었다. 신 친일의 논리는 그 이후 쪽 이어진다. 그들의 논리가 한 걸음 더 나간 유형이 바로 이런 식이다. 일본 극우의 논리기도 하다.</p>
<ul class="check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첫째, 이완용, 최남선 등 소위 일제 하 친일파들은 진정한 애국자였다. 나머지가 오히려 수구외세며 매국노였다.</li>
<li>둘째, 일본의 아시아 침략은 세계정신의 자기 구현이다.</li>
<li>셋째, 합병이나 점거의 목적은 정복과 지배가 아니다. ‘혁명과 근대정신 전파 ’에 있다.</li>
<li>넷째, 반일 또는 배일은 극우 쇼비니즘일 뿐이다.</li>
<li>다섯째, 조선 말기의 의병운동은 폭도였다. 독립운동가는 마적이나 테러리스트였을 뿐이다.</li>
<li>여섯째, 일본이 한국의 분단을 막기 위하여 노력했다.</li>
<li>일곱째, 한국에서만 반일감정이 존재한다.</li>
<li>여덟째, 일본의 문제는 반성이 없다는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반성이 지나치다는 데 있다.</li>
</ul>
<p>어떤가? 지만원은 그 이전부터도 그랬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극우와 확실히 손을 잡기 시작했다. 한승조의 입을 빌어 일본 극우 는그토록 하고 싶었던 ‘아홉 번째 ’의 말을 한다.</p>
<blockquote>
<p>‘공산주의, 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는 어리석다. 한일합방은 재평가되어야 하고 그것은 축복이었다. ’</p>
</blockquote>
<p>당시 이런 공격 트랜드를 소위 진보진영은 자세히 읽지 않고 안일하게 흘겨 보며 대처했다. 소위 ‘폄하논리 ’, ‘또라이론 ’, 그리고 ‘소수의 한국 극우논객들에 의한 도발 ’수준으로 평가했던 것이다.</p>
<p>춘천교대 김정인 교수의 말이다.</p>
<blockquote>
<p>“ 일본 극우는 군국주의 부활 및 군사대국화라는 목표가 분명히 있는데 반해 한국 극우는 지향하는 바가 불투명하다. (중략) 일제로부터 근대화론을 받아들이고 해방 후 친미로 돌아선 뒤에도 성장제일주의와 반공주의로 결합시켜 손쉽게 기득권을 유지해 온 한국 극우가 최근 위기의식을 느끼며 스스로 무너지는 징후를 보인다. ”</p>
</blockquote>
<p>2005.3.14 오마이뉴스에 실린 한국 극우와 일본극우, 그리고 한승조의 글에 대한 평가였다. 안일했다. 일본의 교활함에 대해 평면적으로 대처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폄하하는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이행을 했다. 거기에는 가속도가 붙어 버렸다. 이 공작의 핵심이기도 하다.</p>
<p>동국대 한상범 명예교수는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한 듯 했다. 2005.3.17의 발언을 발췌해 본다.</p>
<blockquote>
<p>“ 친일파와 극우파가 부끄러운 줄 알고 조심하던 이전의 태도에서 일변해서 뻔뻔스럽게 들고 나와 설치고 있다. 이는 역사교육이 빈약한 한국사회의 취약성을 정면 돌파로 뚫고 나가자는 전술이다. 친일파 비판은 친북 좌경 용공 빨갱이라는 마 녀사냥이다. 이들의 마지막 카드는 결국 뺄갱이 몰이다.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매카시즘의 자재가 남아있다 ”고 ‘빨갱이 딱지 ’로 인한 사회적 매장 몰이 시작을 경고하고 있다.</p>
</blockquote>
<p>2005년 초 시점, 일본은 극히 계산적으로 접근했다. 한승조는 자신의 소신이기 이전에 일본 극우의 노리갯감이 되었다는 사실을 지금도 모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 어쩌면 알았 다 해도 인생의 말년, 자신이 그토록 주장하던 ‘박정희 찬양론 ’이 이렇게라도 ‘경제 ’라는 잣대 하나만으로 재평가되고, 사회 속에서 완성 된 모습으로 나타나 길 바 랐을 지도 모른다. 일본은 그 욕망의 틈을 노리고 사냥개를 잘 움직이도록 조련했다. 단순한 가이드 구실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에 한국 사회 전체가 급속도로 ‘신 친일파 ’를 ‘신보수우익 ’이라 착각하는 ‘친일도 찬양할 가치가 있다 ’는 열풍으로 번져가게 만들어 버렸다.</p>
<p>혹자는 안병직을 제2의 한승조라고 부르지만 내용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한승조는 역할을 아무리 크게 잡아도 일이 회성이다. 다룬 사안도 그렇거니와 제자와 세력을 제대로 기른 사람은 아니다. 안병직은 80년대 후반 이미 친일의 대열에 합류했지만 한승조 의 경우 그렇지는 않다. 정치학자의 본류에서 한국 우익을 지키고 있었던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안병직 류를 앞세워 잡아둔 분위기에 편승되었다. 그가 잘난 것이 아니라 그런 ‘붕 띄우기 ’ 공작의 희생물이었다고 봐야 한다.</p>
<p>자유시민연대는 사과문을 발표한다. 그들에게 식민지 지배는 결코 찬양할 일이 아니었고 위안부도 무거운 짐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이마저 여러 사람들에 의해 마구 뒤집힌다. 당시 사과문 중 일부다.</p>
<blockquote>
<p>“우리는 한 교수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일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한 것이나 일본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주장한 데 대해 분노를 느낀다. ”</p>
</blockquote>
<p>그런데 여기 조갑제가 나선다.</p>
<p>‘ 한승조 욕하는 자들은 빨갱이 ’, ‘친일보다 더 나쁜 것은 친북 ’이라는 예의 매카시즘 논리가 등장했다. 한상범 교수의 구분법으로 보자면 조갑제가 바로 일본 우익이며, 친일파 논객(떠벌이) 이다. 뉴라이트는 “‘ 맹목적 반일주의 ’로 몰아간 다. 반지성이 만들어 낸 민족주의 신화다 ”고 비판한다. 그러니까 반일(反日)을 하고 친일(親日)을 하지 않으면 장님 이고 민족주의자가 된다. 눈 먼 민족주의자가 바로 반일주의자 라는 논리다. 거꾸로 따지면 민족주의만 버리면 친일은 허용된다는 말과 같다. 교묘한 수사적(修辭的) 비틀기다. 그러나 너무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인다.</p>
<h3>3. 학자로 포장된 친일 사냥개; 학술에서 정치로 가다. –이영훈의 경우<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3" class="anchor" title="toc_3" id="toc_3">#</a></sup></h3>
<p>‘ 먹여 기른다 ’는 말이 있다. 사냥개는 적당한 만큼의 먹이를 주어 길들인다. 배부르게 주는 것보다는 투지를 불러일으키려 배고프게 유지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것이 금전이거나 지위 일수도 있고 때론 명예가 되기도 한다. 기르는 도구다.</p>
<p>일본 에게 ‘안병직 ’은 아무리 봐도 베스트 카드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또 다른 베스트 히든 카드가 존재했다. 바로 이영훈이다. 그가 있어 안병직은 사실상 친일에 접근할 수 있는 이론적인 바탕을 챙길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안병직은 이영훈을 먹여 기른 장본인이기도 하다.</p>
<p><img title="이영훈.jpg" class="attachment"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72692" alt="이영훈.jpg" style="float:left;margin:0 1em 0 0;" />1951 년생. 1978년 학사 이후 1985년 서울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기 직전 한신대로 간다. 1984.9~1985.2 한신대 경제학과 전임 대우 교수, 1985.3~1989.2 한신대 경제학과 무역학과 조교수를 하고 안병직의 추천에 의해 1989년 서울대 교수로 입성한다. 바로 안병직이 ‘근대조선의 연구 ’라는 과제를 일본 도요다 재단의 자금 후원에 의해 수행하고 있던 시점이다. 그의 서울대 홈페이지에는 특별한 자기 소개 내용이 없다. 1989.6 하성학술상(하성학술재단), 1990.2 청람상(한국경제학회)의 수상기록만 덜렁 있을 뿐이다. 그러나 뉴스에서 그의 이름은 200 4년 이후 징그럽다 싶을 정도로 자주 나타난다.</p>
<p>한승조가 친일 세력들의 규합을 위해 강력하게 기존 정치학계와 충돌하면서 논란을 일으키며 일회성 단기로 출현하고 뒤이어 뉴라이트가 본격적으로 고갤 들기 시작한 시점인 2005년을 지나면서 이영훈은 자신의 그간 일련의 활동이 무엇을 지향하는가를 은근히 정리해서 보여주 기까지 했 다.</p>
<blockquote>
<p>“(조선조, 대한제국 말기) 맹목적인 반일 감정과 문화적 우월감이 결국 실용주의적 외교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망국사를 통해 반성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 (중략) 민족주의가 식민지 시대에는 긍정적 역할을 했지만 적어도 민주화된 이후의 민족주의는 부정적 측면만 크다고 생각한다. (중략) 교과서도 한국경제가 갖는 공한 다이내믹성이나 시장변화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살 길은 고급화된 국제화 시대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고 일본과는 ‘시장통합 ’을 이뤄야 한다. ”(뉴라이트 닷컴과의 인터뷰. 2005.12.30)</p>
</blockquote>
<p>‘노골적인 친일 ’이다. 여기서 ‘시장통합 ’은 국제화라는 단어로 포장되었지만 바로 ‘한일(경제)동맹론 ’의 변용(變容)이라 볼 수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민족주의를 포기하자는 안병직 류의 사고가 그대로 이어진다. 보다 구체적이기까지 하다. 단순한 시장(market)을 합치자는 게 아니라 ‘일본과의 협력강화 ’라는 단서까지 들어가 있다. 한마디로 ‘합병 ’주장이나 다름이 없다.</p>
<p>그가 말하는 실증적인 접근법은 ‘수량경제 ’라는 일종의 통계학적 관점 과 현장조사, 서지조사 등을 복합한 성격 이 강하다. 그래서 대체로 숫자와 관련된 논쟁을 잘 벌인다. 물론 그가 인용하는 숫자는 대부분 ‘일본 자료 ’를 기본으로 한다. 의존도가 몹시 높 지만 편중된 편에 속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전공분야를 확장한다. 경제에서 역사 , 정치 로까지 들어간다. 가장 알려진 (악명을 높인) 것이 바로 ‘종군 위안부=공창 ’이라는 이야기였지만 그것은 뒤에 설명한다.</p>
<p>그의 역사관은 무엇인가?</p>
<blockquote>
<p>“ 과학으로서 문명사와 비교사는 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지성의 공백이 신화성의 민족담론으로 채워지고 있음이 대한민국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근원이다. 그러기에 국사는 해체 되어야 하며 ‘한국사 ’도 다시 태어나야 한다. ”(2004.9.9, 시대정신 웹사이트)</p>
</blockquote>
<p>그는 몹시 도발적인 ‘국사로부터 해방을 위하여 ’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선진국가 진입을 위해서는 역사를 보는 눈을 바꿔야만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잣대는 ‘경제 ’다. 그의 전공이고 다른 분야도 그 내부의 특질을 살펴보기 보다는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여기는 ‘경제 ’그것으로 모두 일괄 해체를 한다. 국사도 예외가 없다. 정작 ‘국사 ’에 있어 그가 잘하는 ‘실증법 ’(fieldwork)을 적용한 경험은 그의 논문 어디에서도 그리 눈에 띄질 않는다. 막연하다. 쉽게 접근 가능한 것은 아니다.</p>
<p>그래서인지 책으로 나온 것도 2004년 이후에는 경제서적이 아니라 경제와 정치, 역사가 혼합되어 있다. ‘수량경제로 다시 본 조선후기 ’(2004.9.5, 서울대 출판부),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 안병직 이영훈 대담(2007.11.23, 기파랑)이 있고 나머지는 대부분 논란을 일으 키기 보다는 평범한 학술적 논문들이다. 물론 경제적 관점도 그 안에 늘 포함된다.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 캐치업 이론 등이다. 오히려 방송 언론에 출현하면서부터 논란은 불거진다.</p>
<p>2004.9.2 MBC의 ‘과거사 진상규명 ’과 관련한 백분토론에서 그는 크게 ‘실수 ’를 하게 된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공창의 쇼윈도우에 있는 성매매와 비교하였다. 그에게 ‘역사 ’가 결코 머리 속에 늘 들어있지 않 은 주제였 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었지만 그는 이후에도 이 경험을 토대로 오히려 역사이야기를 더 떠들었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대안교과서 한국 근 현대사 ’즉, 이른바 뉴라이트 교과서의 책임편집자 였던 것이다.</p>
<p>아래 당시 백분토론의 내용을 전제해보자.</p>
<blockquote>
<p>2004.9.2 MBC의 ‘과거사 진상규명 ’과 관련한 백분토론중</p>
<ul class="list-type-4"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
<p>이영훈</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1; 역사의 진정한 청산이 무엇인지 외국의 사례 들어 설명하겠다. 사회로부터 자발적인 참여라든가 자발적이 고백에 기초하지 않으면 진정한 역사청산은 없다.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에 따르면 &#8216;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적극 협력한 자&#8217;라고 해서 동원에 참여하거나 이들을 관리한 업소주인들을 찾아내서 하겠다는 것인데 이 범죄에 대해 자발적인 자기고백이 없는 상태이다. 법률에 의해 국가가 특정인을 경계 지우고 죄인으로 몰아 나머지를 역사의 원죄로부터 면죄시키는 효과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8221;</li>
</ul>
</li>
<li>
<p>손석희</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자기고백적 성찰은 실현 가능하다고 보나.&#8221;</li>
</ul>
</li>
<li>
<p>이영훈</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1; 예를 들어 내가 일본 도서관에서 일본 위안부에 대해 큰 일본학자들이 조사한 많은 자료집을 보았다. 거기는 말하자면 재야사학이라는 사학자들이 참여되어 있는데 2000점 이상의 자기 고백들이 있다. 일본군에 종사할 때 그 업소를 드나들었다고 하는. 자기고백과 여러 회고록들이 있다. 일본 전체가 반성하는 차원에서 전쟁 범죄를 소화하고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li>
<li>한 국 사회는 1939년 일제 징용령이 발동해서 약 11만명의 군이 일본군에 참전했다. 그 중에 다수의 사람이 한 달에 한 번 대체로 (위안소에) 갔다왔다. 많이 이용했는데 누가 이 고백을 한 적이 있나. 그런데 몇 사람 추려서 범죄자라고 한다면 그게 어떤 의미의 진정한 역사청산이겠는가. 학자 입장에서 볼 때 역사의 진정한 청산을 이런 식으로 법률적으로 구획짓기, 경계짓기, 사회 추방하기로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li>
<li>그리고 최근에 어떤 연구자가 한국전쟁 때 위안소가 있었다는 걸 증명했는데 한국군대가 일본군대를 배워와서 한국전쟁 때 그런 일을 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한국사회는 조용하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고 그 뒤에 대한민국 정부의 합법적인 지원 하에서 미군들의 위안부가 수십만 명이 있었다. 그럼 점에 대해 하등의 자기성찰적인 반성이 없이 오늘날 제기되는, 정략적으로 제기된 과거사 청산을 법률적인 문제로 경계짓기를 통해 해결한다는 자체가 연구자의 입장에서 올바른 청산이 아니다.</li>
<li>정치인을 택하기 전에 역사 연구자들이 사회 성찰적인 고백을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정치권을 끌어들여서 정치적으로 청산한다는 것만이 진정한 청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한다. 과연 그 방법 밖에 없나.&#8221;</li>
</ul>
</li>
<li>
<p>안 병욱</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1;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친일파 청산이나 역사적인 평가가 학자들 수준에서 가능했다면 왜 60년 동안 논란이 되었는가. 현재의 결과는 어떤가. 아직도 논란만 있지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학문적 정리의 문제를 벗어나고 있다.</li>
<li>60 년대 박정희 시대 문제가 당시 한일회담 자료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역사가들이 평가할 것이 있지만 조사권한이 있고 국가 제도적인 지원의 측면이 있어야 하므로 기구화 하고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사법부처럼 수사권이 있고 재판관이 있는 그런 법률이 아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확인하자는 것인데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에 과거청산을 하자는 것이다.&#8221;</li>
</ul>
</li>
<li>
<p>이영훈</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1; 금단의 어려움이 있어 정치권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지금 친일진상규명법에 의해 구분된 사람들, 가령 총독부와 부속기관에 근무한 사람들을 따지면 1942년 현재 중앙과 지방기관에 17만명이 종사했다. 1910년은 그 숫자가 얼마가 될지 모른다. 파악할 수 없는 자료인가. 아니다. 매년 관련 책들이 발간되고 잇다. 서울대 도서관에도 있고 국립도서관에도 있다. 흔한 자료다.</li>
<li>1945년 이전 자료로서 열람이 안되는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이걸 자료화하면 어떤 경로를 통해 채용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연구가 안되어 있다. 연구자들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친일군상이 재생산되었는지 밝힌 뒤 국민에게 홍보하면 거기서 성찰적인 고백과 이해가 발생한다. 자료들을 분석도 하기 전에 권력을 통해 증언을 얻어내자면&#8230;&#8221;</li>
</ul>
</li>
<li>
<p>송 영길</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1; 지적할 게 있다. 일제 시대 정신대의 문제와 지금 미군부대의 문제를 등치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일본우익이 지금도 주장하는 것은 정신대가 총독부와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종의 공창의 형태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이미 증거자료에 의해 정신대는 조선총독부 권력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서 일종의 성적 노예 상태에 놓인 것으로 근본적으로 (미군의 경우와) 차원이 다르다.&#8221;</li>
</ul>
</li>
<li>
<p>이영훈</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누가 주장했나. 어느 학자가 주장한 것인가.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동원했다는 게 명백하다고 말씀하셨는데&#8230;&#8221;</li>
</ul>
</li>
<li>
<p>송영길</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그런 자료가 지금까지 나왔는데 그걸 모르나.&#8221;</li>
</ul>
</li>
<li>
<p>이영훈</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정신대 보고서를 안 읽어보시고 하는 말인데.&#8221;</li>
</ul>
</li>
<li>
<p>송영길</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그런 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면 자발적으로 갔다는 것인가.&#8221;</li>
</ul>
</li>
<li>
<p>이영훈</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표현에는 찬성하지만 사실 인식에 있어서는&#8230;&#8221;</li>
</ul>
</li>
<li>
<p>송영길</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일본의 주장과 같은 주장을 하는 건가.&#8221;</li>
</ul>
</li>
<li>
<p>이영훈</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그렇게 선악에 의해서 판단하나.&#8221;</li>
</ul>
</li>
<li>
<p>손석희</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이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관계의 문제인 것 같다.&#8221;</li>
</ul>
</li>
<li>
<p>이영훈</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왜 일본과 같냐고 말하나.&#8221;</li>
</ul>
</li>
<li>
<p>손석희</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그 부분은 정리하고 넘어가자. 이 교수는 정신대 문제를 어떻게 보나.&#8221;</li>
</ul>
</li>
<li>
<p>이 영훈</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1; 정신대 관련 일본에는 2000점의 자료가 있고 그런 일본학자들에 경의를 표하고, 국내학자들이 노력도 많았지만 거기에 의존한 바가 많았다. 거기에 보면 하나의 범죄행위가 이뤄지는 것은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 민간인들이 가령 팸프. 한국 처녀,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업소 주인들이다. 그 명단이 있다.&#8221;</li>
</ul>
</li>
<li>
<p>손석희</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그 명단은 일본 자료에 있나.&#8221;</li>
</ul>
</li>
<li>
<p>이 영훈</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1; 그렇다. 중국 상해주변의 그 업소들이 다 나오고 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여자를 쇼윈도우에 가둬놓고 성매매를 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친일문제를 다룰 때 자기 성찰적으로 다루면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역사청산을 할 수 있는데 법적으로 역사청산을 하면 몇 명이 선발이 될지 모르지만&#8230;&#8221;</li>
</ul>
</li>
<li>
<p>손석희</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정신대 문제를 성매매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 아닌가.&#8221;</li>
</ul>
</li>
<li>
<p>이영훈</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정신대 문제와 한국전쟁과 해방 이후의 한국에 존재한 미군 위안부를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는데 그런 인식이라면 대단히 유감이다.&#8221;</li>
</ul>
</li>
<li>
<p>노회찬</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일본의 책임 없다는 것인가.&#8221;</li>
</ul>
</li>
<li>
<p>이영훈</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성노예를 관리한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민간인 문제를 따지지 말자는 건가.&#8221;</li>
</ul>
</li>
<li>
<p>노회찬</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아니, 그렇게 문제의 핵심을 흐려놓고&#8230;&#8221;</li>
</ul>
</li>
<li>
<p>이영훈</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법률적으로 재단하면 실체가 흐려지고 오히려 소수사람이 희생되고&#8230; 위안소를 사용한 병사의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건가.&#8221;</li>
</ul>
</li>
<li>
<p>노회찬</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지식인들이 그런 비겁한 태도를 취해왔기 때문에 역사가 청산이 되지 않은 것이다.&#8221;</li>
</ul>
</li>
<li>
<p>이영훈</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그 비겁한 태도를 자기 고백적 성찰로&#8230;&#8221;</li>
</ul>
</li>
<li>
<p>송영길</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도덕적 성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반민족 행위 자체를 도덕적으로 성찰하지 않는 사회가 되버렸다.&#8221;</li>
</ul>
</li>
<li>
<p>이영훈</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동의할 수 없다. 그런 사고방식을 경계하자고 그런 말을 한 것이다.&#8221;</li>
</ul>
</li>
<li>
<p>손석희</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0;지금 두 분이 서로 다른 터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말이 안통할 것 같다.&#8221;</li>
</ul>
</li>
<li>
<p>송영길</p>
<ul class="arrow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8221; 이 교수의 지적대로 고백적 성찰이 필요했지만 해방 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친일청산 상황이 없어졌고 동시에 송진우나 김구, 여운형이 암살되는 비극이 발생했다. 오히려 친일분자들이 중용되면서 국가건설이라는 측면에서 친일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상황이 되고 애국자로 둔갑했다. 반성하고 싶어도 반성할 기회가 없었다. 이제야 말로 뒤늦었지만 이제는 그 때처럼 형사적 처벌이 뒤따르는 상황이 아니므로 오히려 차분하게 역사를 되돌아볼 기회가 된 것이다.&#8221;</li>
</ul>
</li>
</ul>
</blockquote>
<p>그는 이 일로 나흘 뒤인 9월 6일 경기도 광주 위안부 할머니들의 거처인 ‘나눔의 집 ’에 사과 방문까지 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내심은 전혀 아니었다. 여론의 등에 떼밀려 갔을 뿐이다. 그건 그 이후의 행적이 증명한다.</p>
<p>우 스운 것은 서울대 양동휴 교수라는 자가 “이 교수는 (TV)에서 군계일학으로 최고 수준의 학자임을 보여주었다. (이교수 욕하는 네티즌은) 역사교육을 다시 받든지 칼을 들고 와서 이영훈 선생과 나를 찌르라 ”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양 교수도 경제학과다. ‘역사교육을 다시 받을 ’대상이 자신이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폐쇄적 지식인의 모델을 잘 보여준다. 왜 양 모씨는 그렇게 이영훈을 편들었을까?</p>
<p>그 이후부터 경제학 전공자가 정치, 역사를 다 재단(裁斷)하는 꼴이 서울에서 벌어지게 된다. 물론 경제사도 광의로는 역사학의 범주에 든다. 그렇다고 경제사를 한국사로, 다시 친일 정치집단화로 하는 것은 결코 주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주류를 만들려고 한다.</p>
<p>그의 영역은 대안교과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거침없이 근현대사를 향해 달려갔다. 2006.7.31 자 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 ’고 포문을 열어 포탄을 쏘고 난 이후, ‘건국절 ’논란의 이면에 자신과 뉴라이트 집단이 있음을 선명하게 대외로 알린다. 아울러 이영훈이 언제부터 ‘역사학자 ’로 대접 받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 서울에서 연이어 벌어진다.</p>
<p>2008.8.15 한국일보의 대한민국 건국 60년 주제의 ‘한홍구-이영훈의 대담 ’은 그의 전공분야인 경제학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자리가 되었다. 이영훈은 말한다.</p>
<blockquote>
<p>“1948 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사건은 ‘건국 ’이라는 범주에 속한다. 새로운 이념에 의해 인간들을 정치적으로 통합하는 하나의 질서이자 하나의 문명으로서 새로운 국가가 태어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건국(1392년) 이후 556년 만의 사건이다. 불교사회에서 유교사회로 문명 전환을 괴한 조선 건국처럼 대한민국의 건국도 자유, 인권, 재산권, 개인주의 등 새로운 이념들이 들어와 새로운 문명을 건설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다. ”</p>
</blockquote>
<p>첫 마디부터 꺼낸 말이었다. 그는 이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아니라 뉴라이트 진영의 정치이론가, 정책발언자로써 역할을 한다고 봐야 한다. 그런 그에게서 일제 강점기 민족운동사에 대한 이해나 대한민국이 통일정부가 아니라 분단국가라는 화두는 없다. ‘친북좌파세력의 역사인식이라고 공격하는 소재거리에 불과할 뿐 ’이거나 ‘그들의 관심은 분단정부인가 아닌가 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가치로 하는 대한민국이란 국가 자체가 건국되었다는 것 ’에 모아져 있다.(신주백, 국민대 연구교수, 한국사)</p>
<p>2008년 역사비평 여름호에서 대안교과서가 ‘식민지를 찬양하고 있다 ’는 비판에 대해 이영훈은 ‘우리에게 국사란 무엇인가 ’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p>
<blockquote>
<p>“ 현행 교과서는 건국사를 부정하고 있고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의 관점에서 현대사를 기술했다. 후진국 중심의 세계사상 위주로 서술했고 발전된 현대사상에 대해서는 제대로 서술하지 않았다. (중략) 일제가 추구한 영구병합의 지배정책이 객관적으로 한국 전통사회에 어떠한 충격을 가했고, 그에 따라 불가피하게 전통사회의 구조가 어떻게 바뀌어갔는지에 관한 일말의 관심도 없다. (중략) 시장경제를 통해 쌀과 노동력 이 일본으로 흘러가는 대신, 일본에서 자본이 들어와 농장을 차리고 공장을 지었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자금과 물자의 총순환은 일본으로부터의 지속적인 자본유입을 특징으로 했다. (중략) 대한민국은 자신에 걸맞는 건국사의 기억을 보전하고 발전시키는 데 실패했다 ”</p>
</blockquote>
<p>그는 ‘발전된 현대사상 ’이 ‘일본 ’을 가 리킨다고는 차마 직접 말하지 못했지만 그 전후 다른 논문에선 숱하게 스스로 이렇다고 인정하고 있다. 아울러 식민지 억압 수탈론과 폭압론에 대해서는 논리 자체를 꺼내지 않는다. “식민지 시기의 역사 또한 설령 그것이 교육, 문학, 예술, 종교와 관련된 것일지라도 모두 독립운동의 역사여야 한다는 현행 교과서는 ‘독립운동 함몰사관 ’에 빠져 있다 ”고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지 경제 이야기 , 그 잣대만을 통한 건국 정당성만을 강조한다. 나아가 왜 ‘사회인류학 ’이 한국에서는 이렇게 발전되지 않았냐고 몰아붙인다. 웃을 일만은 아니다.</p>
<p>지난 7월 30일, 국립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연수원에는 전국으로부터 모인 732명의 교사가 1급 정교사 자격연수 과정을 밟고 있었다. 역사, 과학, 한문, 지리, 음악, 특수교육분야 등 다양한 교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영훈의 ‘한국 근현대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제언 ’이란 특강을 ‘자격미달 교수의 역사강의 ’라며 거부했다. 그 구체적 거부 이유는 간단했다.</p>
<ul class="checkListType" style="line-height:2em;margin:0;padding:0 0 0 2em;">
<li>첫째, 일본이 식민지근대화를 통해 한국 사회를 문명화 시켜 준 것이라고 말하며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고 있는 자이며,</li>
<li>둘째, ‘광복절 ’을 ‘건국절 ’로 바꾸어 대대적으로 기념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고, 이는 결국 건국절이라는 그럴듯한 포장 뒤에 이승만과 박정희를 건국과 근대화의 영웅으로 부활시키려는 정치적 목적과 이념적 편향이 숨겨져 있고,</li>
<li>셋째, 지난 2004.9 MBC 백분토론에서 ‘일본군 위안부 ’가 상업적 목적에 따라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주장해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었다.</li>
</ul>
<p>그 러나 이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이영훈은 철면피가 된 듯 줄기차게 뉴라이트가 가진 그들만의 주장 에선봉 으로 나 서고 있다. 이미 역사학자가 다 되었고, 나아가 곧 정치인 구실도 할 모양이다. 주류 언론에서는 이런 일을 다루지조차 않는다.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으니 그가 ‘설칠 ’환경은 조성된 셈이다.</p>
<p>해외 유학파가 아닌 교수로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술적인 실증적 접근법으로 이름을 날리던 교수가 왜 ‘친일 ’이 되었는가? 왜 일본자료, 일본 만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안병직-이영훈 양자가 가진 친일의 궤적에서 학술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나아가 이러한 주장의 성공을 통해서 얻어진 현재 친일 사냥개 집단인 뉴라이트의 이론 개념 적(사상이 아니다. 그 역할까지는 뉴라이트 자체가 가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대부역할을 하는 안병직을 사실상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 넘고자 하는 욕망을 보이는 이영훈을 무엇이라 평가할 것인가? 그를 단순히 ‘신우파 ’수준으로 봐야 하는가?</p>
<p>‘지적 탐구 ’라는 학술적 영역에서 이영훈이 제시하는 개념의 파격성은 이미 사회 국가 시대 역사의 관점에서는 정도를 넘었다. 사회 공론의 장(場) 속에서도 ‘억지 ’에 가까운 ‘친일 ’의 몸부림이 그들이 힘을 보태서 만들었다는 정권을 기반으로 벌어지는 중이다.</p>
<p>후지오카 노부카쓰(일본 ‘새역모 ’회장)는 한겨레 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p>
<blockquote>
<p>“한국의 뉴라이트는 우리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만나서 좌담회를 열면 ‘그림 ’이 될 것 같다. ”</p>
</blockquote>
<p>냉 정하게 보자면 이영훈의 안병직 류의 합세는 안병직이나 일본 극우, 우파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깨기 어려운 금기 영역 네 가지를 동시에 건드린다. 일본 제국주의 침탈 역사, 그리고 개발독재도 타당성이 있다는 논리전개, 지난 60년 지켜온 권위의 상징인 한국의 역사교과서 친일화, 그리고 일반인들의 반일(反日)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감상까지 모두 건드리며 들어올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p>
<p>국어학자 려중동 선생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영훈은 ‘일본고정간첩 7호 ’정도 수준에 해당할 것이다. 일본은 그렇다고 하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가장 질이 나쁜 , 학술이란 이름으로 매국을 하 고 일본 극우와 우익을 대변하 는 친일분자 ’하나를 오늘에조차 대하게 되었다 는 사실은 서글픈 일이다.</p>
<h3>4. 종교편향주의 , 사적 이익, 정치세력화 욕구가 ‘친일 ’을 비판 없이 끌어 안게 만든다.; 기독교를 가장한 이단 친일교회 , 교회집단 –기독교 사회책임의 예<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4" class="anchor" title="toc_4" id="toc_4">#</a></sup></h3>
<p>듣기에도 ‘기독교사회책임 ’이란 조직 명칭은 종교 냄새와 사회적 구속 같은 냄새가 물신 풍기는 기묘한 구석이 있다.</p>
<p>사 회단체가 그렇지만 종교를 표방한 사회단체가 정치세력화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원래 그리 짧지 는않다. 종교의 사회성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개신교)는 그렇지가 못하다. 시장이 좁아진 탓이다. 배출되는 목사 숫자만큼 시장은 확대되지 않는다. 오히려 신도는 줄어드는 추세다. 교회의 불투명한 관리에 대한 지적은 날로 강화된다. 그래서 오히려 정치적 욕구, 사회적인 영역 확장의지가 더 커진 다. 이른바 ‘이단 (사이비 형) 목사와 교회 ’가 늘어 난 상태에서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자신들의 몸집을 불리려고 하는 경향이 크다. 선량한 종교인들은 물론 이런 일들에 해당사항이 없다.</p>
<p>이들 끼리는 뭉치기도 잘한다. 2004년 시점부터 ‘이런 기독교 ’(올바른 목회자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아래는 ‘이단 친일교회 ’라는 표현이나 또는 ‘정치 교회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가 아주 극심하게 나타났다. 그 주도세력 가운데 대형교회가 아닌 중심에는 예외 없이 서경석, 김진홍이 있 었다. 이 둘은 그러니까 2000년 이후 나타난 이단 친일교회를 정치적으로 이끄는 ‘쌍라이트 개독 ’이라고 불리는 게 좋다.</p>
<p><img title="서경석.jpg" class="attachment"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72694" alt="서경석.jpg" style="float:left;margin:0 1em 0 0;" />2008.8.25 현재 그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이런 내용이 들어차 있다. ‘중국 미 얀마돕기 운동 ’, ‘굶어 죽어가는 북한동포를 도웁시다 ’, ‘한국교회 무엇을 고칠 것인가? ’, ‘중국정부의 탈북 난민 강제 북송저지를 위한 유럽자전거 일주 대행진 ’. ‘후진타오 방한 탈북 난민 강제북송 중지호소집회. 8.25(월) 오후 2시 청계광장 ’등이다.</p>
<p>며칠 전 서경석은 이런 공문도 보냈다. 거의 무차별로 나간다. 기독교사회책임이란 기구는 고문, 공동대표, 지도위원, 상임집행위, 복지위원, 청년회원을 포함해서 전체 459명, 복지위원 겸임자 67명을 제외해도 총 392명의 인원을 자랑한다. 그들이 각각 목회자의 신분이라고 생각하면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다. 여기에는 한나라당의 기독교와 기독교 전국연합을 제외한 수치다. 신도들이나 여기 휩쓸린 사람들까지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정치세력이다. 단순한 사회단체가 아니다.</p>
<p>그가 보낸 공문을 보자.</p>
<blockquote>
<p>“안녕하십니까? 기독교사회책임의 서경석 공동대표입니다.</p>
<p>꼭 필요한 집회가 있습니다.</p>
<p>8월 25일(월)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한국을 방문하는데 이때 중국정부에게 탈북자 강제북송을 중지할 것을 호소하는 집회를 갖습니다.</p>
<p>이 행사는 지난 2일부터 미국 워싱턴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강제북송중지를 호소하며 14일간을 단식했던 탈북자 조진혜 자매가 탈진으로 입원하는 것을 계기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조진혜 자매는 지난달 부시미국대통령과 면담한 후 올림픽기간에 중국을 방문하는 부시대통령이 탈북자북송문제를 후진타오 주석에게 거론해 주기를 호소하며 단식을 시작했습니다.</p>
<p>단식 6일 째 되었을 때 &lt;기독교사회책임&gt;이 이 소식을 듣고 조용기, 김선도, 이수영 목사님의 도움으로 긴급하게 단식동참단을 워싱턴으로 급파해서 금식기도로 동참했었습니다. 그러나 조진혜 자매는 단식 14일 째에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병원에 입원하게 됐습니다.(탈북자들은 대개의 경우 건강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진혜 자매의 뜻을 이어 투쟁하기로 하고 단식중단을 권고했습니다.</p>
<p>그래서 이번 25일(월) 오후 2시 청계광장에서 “중국정부에 탈북난민의 강제 북송을 중지할 것을 호소하는 집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번에는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개최한 만 큼 탈북난민의 인권문제도 개선해 줄 것을 호소하고자 합니다.</p>
<p>이번과 같은 좋은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이때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꼭 참석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딱 40분간만 하겠습니다.</p>
<p>그리고 참석이 불가능하시면 재정후원이라도 부탁 드립니다.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6-201-272731 &lt;기독교사회책임&gt; 문의 02-2266-8351 사무총장 김규호 목사 010-9618-0722) 감사합니다.</p>
<p>2008년 8월 20일</p>
<p>서경석 목사 올림 ”</p>
</blockquote>
<p>’ 서경석 류 ’의 접근법이다. 그는 필요하면 조선족, 탈북자 등 사회약자를 끌어 쓰면서 자신의 명분을 축적하는 데는 ‘귀신 ’이다. 이미 그에 대해서는 앞서 숱하게 설명한 바 있으니 굳이 설명할 필요까지도 없을 듯 하다. 그 스스로 자신이 정치 목사라는 것을 ‘인정 ’하고 있지는 않다. 젊은 날의 의기(義氣)있던 것을 아직도 자랑 삼아 말하지만 그의 훼절(毁節)을 많은 사람들은 눈치채고 있고, 그 스스로도 그렇게 행동한다. 그는 정치목사 , 사이비 목사, 장사꾼 목사 수준을 넘어서 이제는 ‘기독교를 가장한 이단 친일 정치세력화 ’를 교묘하게 비정부기구, 사회단체의 형태로 전개하고 있다. 이 세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자라고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그와 엇비슷한 사적 이익, 정치적 파워를 목적으로 종교적인 본래 의지와는 다르게 참여하는 ‘사회성 목사 ’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도 속칭 ‘개독 목사 ’라 불리는 부류를 자처하고 있다.</p>
<p>2008.7.31 남기인 목사가 “이름이 무식한 ‘기독교 사회 책임 ’의 행태 ”라는 글을 남겼다. 이른바 촛불반대 목사들의 연대서명이 발표된 이후였다. 마치 텔레마켓팅 하듯이 마구잡이로 사람들의 명단을 올리다 보니 전혀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도 동의한 것처럼 선전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전혀 끄떡도 하지 않는다. ‘정치적 목적 ’은 달성했기 때문이다. 남 목사의 글 가운데 일부를 옮겨본다.</p>
<blockquote>
<p>“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p>
<p>“이제 촛불 시위를 그만두고 촛불을 꺼야 할 때 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 목사님께서는 동의하십니까?” 단도직입적으로 여론을 묻는 북한 말투의 여성의 목소리였다.</p>
<p>순 간적으로 “촛불시위를 그만 두어야 할 때라는 것을 보면 반정부주의자는 아닌 것 같고 친정부주의자 입장에서 여론을 조성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의도로 묻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스쳐서 내가 그 여성분에게 반문을 했다. “왜 어떤 의도로 묻는 것 입니까? 또 여론을 조사하는 기관이 어떤 단체입니까?”</p>
<p>그 여성분은 “우리는 기독교사회책임이라는 단체이고 서경석 목사님을 대표로 한 전국 약 450명의 목사님의 조직을 갖춘 단체이며, 특히 장로대통령을 세웠으니 우리 기독교가 먼저 정치가 안정되도록 촛불을 꺼야 할 때 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의 여론을 묻고 있습니다” 라고 답했다.</p>
<p>그래서 “나는 귀 단체의 뜻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금 범종단적으로 나서서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는 이 시점에 촛불시위를 그만 두자는 표현과 찬물을 끼어 얹는 여론조성과 시국을 직시하지 못하는 귀 단체의 모습은 어용적 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더구나 현재 이 정부가 독선과 오만한 모습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더욱 촛불을 밝혀 각성할 수 있도록 국민의 힘과 교회의 힘을 결집하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나는 귀 단체의 어용적인 모습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분명히 표명했다.</p>
<p>그런 후에 며칠이 지나서 여러 선후배 목사님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p>
<p>“ 남 목사님도 촛불시위 그만하라고 동의하셨네요.” “아니! 난 분명히 반대한다고 표명했는데, 왜 내 이름이 그곳에 들어가 있지요?” “오마이뉴스, 뉴스앤조이 등 인터넷신문에 4만 5000명의 목사님들에게 여론조사를 했는데, 9100여 명이 동의한 것으로 그 연명자의 이름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 중에 남 목사님도 연명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는데요.” 그 전화를 받은 후에 인터넷신문에 들어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선후배 목사님들의 말대로 3500번째 연명자로 나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당장 항의하기 위해 전화를 했으나 일주일 동안 ‘기독교사회책임’ 사무실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답답한 심정으로 &#8216;기독교사회책임&#8217;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나 외에도 이름을 도용당해 항변하는 글과 그에 따른 여론조사의 부당함을 항변하는 글이 쇄도해 있다.</p>
<p>계 속 전화통화를 시도한 결과 겨우 어제서야 통화가 되어서 ‘기독교사회책임’ 간사와 통화할 수 있었고, 사무총장(김규호 목사)에게 말씀드려 전화를 목사님께로 해 드리게 하겠다는 간사의 말을 믿고 전화를 끊었는데 지금까지도 깜깜 무소식이다.</p>
<p>‘기독교사회책임’ 참으로 이름 자체가 무색하다. 동의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도용하면서까지 책임질 수 없는 여론조사를 행하고 그 후에 무엇을 얻고자 함일까?</p>
<p>이 름을 도용 당해 항변하는 목사님들 가운데 왜 동의하지 않았는데 나의 이름이 들어가 있느냐고 물으면 동명이인이라는 답변으로 물음을 일축하면서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려고 한다. 또한 동명이인이면 같은 이름을 가진 목사님의 인적사항을 알려달라고 요구하는데도 &#8216;기독교사회책임&#8217; 측은 상대방의 개인 신상이기 때문에 인적사항을 알려줄 수 없다고 짧게 한마디 답변한다.</p>
<p>최소한 여론조사를 하고 연명을 한다면 전화번호는 아니더라도 교회명이라도 함께 알려야 연명이 되는 것이고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가 아니겠는가. 기독교입장에서 사회를 책임지는 단체로 서고 싶다면, 올바르게 여론조사 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할 것 같다.</p>
<p>4 만 5000여 명의 목사님들께 전화여론을 통해 9100명의 찬성(약20%)을 받아냈다고 부풀려진 숫자에 만족하며 여론을 오도하고 있는데, 단 한 명의 여론을 조사하더라도 분명한 여론을 이루어야 할 것이고 이 여론에 대한 책임성은 분명히 가져야 할 것이며 이러한 여론조사를 통해 정당하고 공의로운 실체가 오도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p>
<p>앞으로도 사회적인 이슈가 대두될 때 마다 ‘기독교사회책임’ 대표자 서경석 목사는 어용적인 표현을 쏟아 놓을 것이고, 또 그 수하에 있는 ‘기독교사회책임’은 이런 방식으로 계속 여론조사를 행하면서 자신들이 사회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는 기독교 대표적인 단체인양 여론을 조성하지 않겠는가 하는 염려와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p>
<p>진정으로 이 사회를 바라보고 염려하면서 현재 되어지는 현실에 대한 책임성을 가진다면 이 시회나 국가가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물같이 흐르게 되도록”(암5:24) 기도해야 하며 특히 정치하는 위정자들이 오만과 독선과 야비함에 빠져서 잘못된 정치행각을 나타내지 않도록 외치는 목회자요, 기독교 단체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p>
</blockquote>
<p>좀 길지만 글을 싣다 보니 전제가 되었지만 이것이 바로 ‘매국 기독교 ’가 아닌 많은 목회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정치기독교(흔히 이를 두고 ‘개독 ’이라 부른다)는 친일의 요소를 듬뿍 품고 서경석-김진홍이 주도하는 쌍두마차와 함께, 그리고 한기총 등 열렬한 뉴라이트 기독교 집단들과 함께 한국 사회의 친일화를 위해 순항 중이다.</p>
<p>2004.11.22 서울 YWCA회관에서 ‘기독교 사회책임 ’준비위가 출범했다. 2004년 말 당시는 이제 신지호 등 전향(변절) 386을 앞세운 친일노선이 막 정립되던 시점이었다. 그 때 이미 김진홍-서경석은 이 일을 주도하는 좌장이었다. 그 때, 그들은 약간은 뉴라이트와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기색도 있었다.</p>
<p>서경석은 이날 ‘사회책임 ’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p>
<blockquote>
<p>“뉴라이트로 불려지길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중도 통합과 개혁을 추구하는 운동이다. 우리 사회의 지평 전체가 좌로 이동했기 때문에 중도 통합을 주장해도 다소 보수로 보일 수도 있다. ”</p>
</blockquote>
<p>역 시 절묘한 비틀 어 꺾 기의 한 수가 보인다. 그러면서 ‘좌우 보수 진보 , 친노 반노 의 이분법을 떠나 기독교적 양심에 따라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 서겠다 ’고 말한다. 행사 이전 ‘창립선언문 ’이 미리 배포되었지만 당일 ‘창립선언문 보완자료 ’가 다시 뿌려졌다. 그 내용에는 지금 볼 수 있는 ‘정부가 선진국을 향한 바른 개혁에 나설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하고 돕기도 할 것 ’이라는 것으로부터 정부(노무현 정부)의 일방주의, 정부의 좌향좌, 386세대를 중심으로 한 강경진보세력이 만든 좌우 양극화 현상, 지나친 평등주의, 민족주의에 바탕 한 정부의 개혁정책, 한반도 문제가 바른 길로 가고 있는가를 묻는 성토장이 되었다.</p>
<p>그는 당일에도 이 말과 전혀 다른 말을 했지만 이틀 뒤 창립대회에서는 아예 노골적인 ‘정치 참여 ’를 선언하기까지 한다.</p>
<p>한종호 ‘기독교사상 ’편집장은 2005년 1월호 기고에서 이를 두고 ‘기독교사회책임의 숨겨진 독선과 배타적 자기인식 ’이라는 장문의 글을 연재했다.</p>
<p>그 는 보수적 기독교 인사들의 세력화가 ‘새로운 우파운동 ’으로 전개된다는 우려와 함게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정체성 ’에 대해 기독교계 자체가 확신이 서지 않고 있다는 상황도 덧붙였다. 그의 글 가운데 한 토막이다.</p>
<blockquote>
<p>“이들 기독교사회책임을 구성하고 나선 우리 기독교인들은 (앞서 책임을 감당하고 행동했던) 이들 성직자와 기독인들이 사회와 역사의 책임을 감당하며 고난과 질고를 겪을 때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고 어떤 경우에는 도리어 비난의 화살을 쏘기도 했다. 따라서 과연 이들이 이러한 사명의식을 내세워 역사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운운할 수 있는 지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p>
</blockquote>
<p>한 편집장은 ‘기독교사회책임 ’이 바로 서경석-김진홍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인용한 11월 27일 김진홍의 두레뉴스 전문이다.</p>
<blockquote>
<p>” 지난 여름엔가 노무현 대통령이 연세대학교에서 강연할 때 한국의 보수에 대하여 언급한 적이 있다. 그때 노 태통령이 보수는 뭐니 뭐니 해도 고치지 말자는 것이 보수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기억이 난다. 노대통령이 지적한 보수는 말하자면 우리 현대사회에서 줄곧 주어진 보수였다. 그간에 권위주의적인 정치 체계, 남북 관계, 냉전 체제 등에 의하여 강요되었던 보수였다. 그리하여 반공과 친미와 독재가 보수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어 왔었다.</p>
<p>그런데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참된 보수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다. 이른바 뉴라이트 운동으로 불리고 있는 새로운 보수 운동이 그것이다.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보수 운동의 대표적인 예가 본인이 참여하고 있는 기독교사회책임이나 주사파(主思派)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하고 있는 자유주의 연대가 대표적인 경우이다.</p>
<p>사 실 뉴라이트 운동은 그간에 학계, 법조계, 시민 단체, 인터넷 미디어, 그리고 정치권 일부에서까지 일고 있는 조짐이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새로운 보수 운동을 뉴라이트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lt;동아일보&gt;이다. &lt;동아일보&gt;는 11월에 들어 뉴 라이트 운동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보수 운동을 시리즈로 엮고 소개한 바 있다. 동아일보의 이런 노력을 시작으로 하여 뉴라이트 운동은 이제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고 있다. ”</p>
</blockquote>
<p>그가 당시 경계한 것은 비신앙권 우파운동의 개혁, 자유주의연대라는 정치조직과 동일선상에서 ‘기독교사회책임 ’이 논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기독교사회책임은 우파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으로 스스로 이념적 양극화 극복을 부인한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견해는 적중하고 있다.</p>
<p>2004.11.22 기독교사회책임 출범식이 있고 난 다음날 ‘문한별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 위원장)의 글은 서경석-김진홍 콤비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걸 정확히 밝혀주었다. “무명 목사가 ‘기독교사회책임 ’에 고하는 글; 민족과 교회 앞에 더 큰 죄 짓지 않기를 ”이란 제목의 전문을 실어본다.</p>
<blockquote>
<p>“22일 공식 출범한 ‘기독교사회책임’(공동대표 서경석)에게 문 아무개 목사가 말하노라.</p>
<p>그 렇게도 정치가 좋더냐. 그렇게도 권력의 냄새가 향긋하더냐. 그렇게도 가이사의 자리가 탐나더냐. 그럴 양이면 차라리 깨끗하게 교회를 포기하고 정치의 길에 들어설 일이어늘 어찌하여 하나님과 예수, 성서와 예언자의 이름까지 팔아 회칠한 무덤처럼 자신을 꾸미고 치장하는가.</p>
<p>성서한국? 김교신이 들으면 무덤에서 배꼽 잡고 웃겠다. 잘 알겠지만 김교신의 성서조선은 당시 이 땅을 지배하는 일제라는 외세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신들은 성서한국을 내세워 일제를 대신한 새로운 외세 미국에 대한 맹종과 굴종을 선동하고 있다.</p>
<p>예언자적 사명? 눈이 있으면 성경을 똑똑히 보라. 예언자가 언제 강대국과 손잡고 안일을 도모하라 그리 말하더냐? 심약무비한 왕들이 하나님을 떠나 애굽의 그늘을 의지할 때마다 예언자들은 오히려 강대국을 의지한 그들의 불신앙을 강력하게 비난, 책망, 경고하지 않았더냐?</p>
<p>복음전도의 사명? 아아, 이에 이르러선 말문이 탁 막힌다. 당신들의 완악한 짓 때문에 이미 수많은 한국의 교회들은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이제 기독교라면 절로 고개를 흔들고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우선 당장 목사인 나부터 부끄럽고 죄스러워 사람들 볼 낯이 없다. 그렇지 않겠느냐.</p>
<p>시청 앞을 성조기로 물들인 한기총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기억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후원을 받는 당신들이 ‘뉴-라이트’란 이름 하에 사실상 수구의 돌격대를 자처하여 개혁입법을 저지하는 것에 목숨을 걸겠노라 하니 이보다 더 죄스러운 일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는가.</p>
<p>나는 이름없고 실력없는 무명 목사로되, 당신들의 파렴치한 야망 때문에 주님의 교회가 수모와 멸시에 처한 걸 생각하면 심장이 진동하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하여 견디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이렇게 한밤을 낮처럼 밝히 새워 떨리는 손으로 항변의 글을 쓰고 있는 것 아니냐.</p>
<p>민 족적 사명? 남북으로 허리 잘려진 한반도에서 교회가 할 일이 무엇이냐? 교회는 주님의 십자가를 교량 삼아 남북을 화해시키고 평화통일의 기운을 북돋우는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느냐. 그러나 당신들은 어떠했는가? 기껏 한다는 일이 북한의 ‘인공기’를 태우고 증오와 독기를 선동하는 것뿐이었다.</p>
<p>당신들은 겉으로는 ‘민족적 사명’ 운운하면서 민족의 안위보다는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에 더 급급하였다. 거짓정보로 세계를 기만하여 아프간과 이라크를 무고히 침략,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약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명을 대량학살하고 있는 살인마 부시와 그의 나라 미국을 축복해 달라고 하나님께 강짜를 놓기 일쑤였다.</p>
<p>당 신들이 눈이 비늘로 덮히지 않았을진대 목사로서 어찌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가. 또한 어찌 이라크 땅에 전투부대를 파병해 부시의 침략을 도우라 말할 수 있는가. 성경이 이것을 지지하는가? 예수의 가르침이 그러하던가? 당신들의 성경은 무어라 기록되었는지 몰라도 내가 보는 성경은 철두철미하게 부시의 전쟁을 반대하는 말씀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p>
<p>당신들이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일진대 한번 말해 보라. 성경이 국익을 위하여,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침략전쟁에 동참하라 명령하던가. 내가 아는 한 그것은 사탄의 논리이지 내가 사랑하는 예수의 논리는 아니다. 예수는 사람의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가르치셨다. 더구나 예수는 이 땅의 이익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니다. 그의 나라는 ‘가이사 ’의 나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p>
<p>당신들은 정부의 개혁작업을 비난하면서 국민들의 뜻을 존중하지 않는 일방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당신들에게 국민의 뜻이 그토록 중요하였던가? 그렇다면 국민의 손발을 묶고 국민을 잔혹하게 학살한 전두환 정권 때에는 왜 가만 있었나? 전두환의 일방적 살육 때는 잠잠하다가 이제 온 세상이 민주화되어 누가 시위하고 서명하든 안온한 형편이 되자 이제사 이 나라의 ‘정체성’ 운운하며 분기탱천 떨치고 나서는가?</p>
<p>당신들은 부끄럽지도 않은가? 목사가 거리로 나설 때는 군인들의 총구가 겨누어져 있어 아무도 나서지 못할 때 바로 그때 목숨을 맡기고 나서는 것이다. 김진홍 목사여, 당신이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는가? 나는 당신의 입에서 이 말이 나왔을 때 크게 감화를 받았었다. 그런 당신이 이제 와서 스스로 내뱉은 말을 거두고 우익들의 궐기 속에 섞여 몸을 부대끼고 있으니 어찜인가.</p>
<p>당신들은 스스로를 자칭 ‘중도’라 하면서 ‘반노’도 아니고 ‘친노’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파렴치한 거짓이다. 우선 당신들의 대의를 떠올려 보라. 당신들이 노리는 바가 무엇이냐. 노무현 정부의 4대 개혁작업을 저지하자는 게 일차적인 목표 아니냐. 또한 누가 당신들을 띄우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아니냐. 행여 이제 와서 이 두 신문이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발뺌할 셈인가.</p>
<p>당신들 은 스스로 ‘중도’인 척 행세하느라고 ‘뉴-라이트(New-Right)’라는 명칭조차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러나 당신들을 ‘뉴-라이트’라고 부른 이들이 누구냐? 바로 이들 신문 아니냐. 그런데도 당신들은 항변의 목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더욱 자유경쟁을 신봉한다 말하면서도 조선, 동아가 주도한 불공정 시장행위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p>
<p>그럴진대 오히려 내가 묻고 싶다. 당신들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가? 건전한 보수인가? 조선, 동아가 지금 하고 있는 짓들이 건전보수에 해당하는가? 사회의 통합인가? 그래서 이렇게 한기총과 더불어 ‘쌍-라이트’(Double-Right)를 반짝이며 국론분열에 앞장서는가? 당신들은 “현 정부가 과연 나라 살리는 개혁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아니 나를 포함해 많은 국민들은 “당신들이 과연 나라와 교회를 위해 이런 짓을 하는지”에 대해 큰 의문을 갖고 있다.</p>
<p>자고로 사람은 그가 사귀는 친구를 보면 안다고 했거니와, 당신들의 우편에는 전능한 조선과 동아가 있고, 좌편에는 한기총 소속 대형교회가 포진해 있으며, 그 뒤에는 재벌기업과 사학재단, 한나라당이 있고, 당신들의 하늘에는 예수의 하나님 대신 부시의 나라 미국이 버티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도를 찾고 통합을 말하며 민족을 논하고 통일을 운위하며 성경과 하나님의 이름까지 들먹이니 그 거짓됨을 어찌 이루 형언할 것인가.</p>
<p>하여 필부 중에 필부요, 무지렁이 중에 무지렁이며, 작은 자 중에 지극히 작은 자인 나조차 그를 참을 수 없어 이처럼 공개적으로 꾸짖는 것이니,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소이를 돌아보아 민족과 교회 앞에 더 큰 죄를 짓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 않는 바이다. 주후 2004년 11월 23일에 아무는 말한다. “</p>
</blockquote>
<p>안 타깝지만 ‘기독교사회책임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경석-김진홍 콤비는 사실상 ‘친일 ’을 한국 내에서 ‘재구성 ’시키는 데 가장 열렬한 환영의 깃발을 흔든 자들이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건 그들의 주변을 끌어 들여 한 시대를 망치는 데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그것이 사적 이익이건 아니면 진실로 그들이 일본기획자에게 감화되었건 그건 별개의 문제다. 단순한 ‘부역자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 동참자이고 당사자다. 즉, 사냥개라는 의미다. 사냥꾼으로 스스로 착각한 사냥개다. 대처는 지금의 몫이지만 평가는 나중에 이루어진다.</p>
<p>그들은 보수와 우익을 내걸고, 좌파척결을 내걸지만 속사정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한 사람은 보수우익의 좌장(座長)을 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철저한 사적 이익을 추구한다 는 것은 거의 분명해졌다 . 거기에 종교가 사용되고, 또한 정치세력으로의 기독교, 비정부기구, 사회민간 단체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것이 바로 정치화의 단계라고 여긴다. 거기에 휩쓸린 진정한 종교적인 기독교인들이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고, 그것을 알면서도 그러한 행위를 한다면, 그들 또한 비난을 피해갈 방법은 없다. 오히려 불쌍한 사람들은 이런 정치목사 밑에서 그들이 이끄는 방향의 잘못됨을 모르고 따라가는 순수한 기독교인들이다. 그래서 종교가 욕을 먹는다면,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도 피할 수는 없다. ‘기독교사회책임 ’은 그 대표적인 한 예일 뿐이다.</p>
<h3>5. 조선일보, 박근혜, 뉴라이트, 안보상업주의; 안병훈을 보며<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5" class="anchor" title="toc_5" id="toc_5">#</a></sup></h3>
<p>한 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시작되기 직전 2007.1.3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이 선거 캠프 총괄본부장으로 앉았다. 곧 이어 선대위원장이 된다. 그는 조선일보에서만 38년 7개월을 근무한 ‘조선 맨이다. 그런 그가 ‘박근혜 ’에게로 갔다? 그걸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p>
<p><img title="안병훈.jpg" class="attachment"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72698" alt="안병훈.jpg" style="float:left;margin:0 1em 0 0;" />잠 시 이력을 넘겨보자. 1938년 황해도 봉산 생. 1985~1986 조선일보 편집국장, 1988년 상무이사, 1992년 전무이사, 1998년 편집인 겸 부사장으로 사실상 방씨 일가가 가진 조선일보에서 평기자로는 최고의 지위까지 올랐었다. 그리고 2005~2006년까지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을 하고 박근혜 캠프로 합류했다. 가기 전에 보유하고 있던 주식(조선일보 0.74%)과 재단 이사장 자리도 모두 내놓고 갔다. 뒷정리가 깔끔하여 후배들의 신망이 있다는 말이 느껴질 대목이었다.</p>
<p>그런 그를 두고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은 “권언유착의 불길한 전조가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 기대는 희망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고 평했다.</p>
<p>그 런데 엉뚱하게도 경선과정에서 박근혜 측은 조선일보와 대판 싸움이 붙는다. 조선 측이 일방적으로 이명박 편들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박사모가 조선일보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조선이 보도하는 여론조사의 내용은 항상 이명박 측과 가까운 한국갤럽(최시중)의 것을 사용했다. 당연히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는 경선에서 졌다.</p>
<p>2007.10.1 오마이뉴스와의 회견에서 안병훈은 이렇게 말했다.</p>
<blockquote>
<p>“언론이 이렇게 중요한지를 내가 근 40년(언론계에) 있던 사람이 현장에 와 있으니까 실감했다. 근데 언 론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을까? 내가 절실히 반성을 했다. ”</p>
</blockquote>
<p>그 는 ‘조선여론조사가 나올 때마다 (박근혜 캠프는) 초상집이었다 ’고도 했다. 당연히 조선과 한국갤럽이 손잡은 결과니 나중에는 포기했다고도 한다. 그는 정치부기자, 편집국장, 방우영 회장에게까지 어필을 했던 게 사실이었지만 대세는 바꾸지 못했다. 그는 ‘조작된 기계적 균형 ’의 문제점도 지적했고 끝내는 “살아있는 권력과 싸우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다 ”고 마무리 했었다.</p>
<p>안 병훈은 조선일보의 황금기를 겪어본 사람이다. 1962년 방일영 고문이 방우영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나서 이북 출신인사들이 조선의 편집국 주요 포스터에 들어앉기 시작했다. 선우휘의 경우 방회장과 평북 정주 고향이 같다. 그 때부터 조선일보의 이른바 ‘안보상업주의 ’가 극대화되기 시작할 때, 안병훈도 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람이다. 방우영 회장의 퇴진과 함께 김대중, 류근일, 안병훈 등도 2선으로 물러나게 되면서 지금의 조선일보는 그에게도 낯선 곳일 수 있음을 알게 해준 사건이 바로 박근혜에 대한 편파보도였지만 따지고 보면 이명박-박근혜 간의 권력쟁투였다는 점에서 그의 말대로 ‘승자독식 ’의 정글논리에서 졌다는 표현이 옳을 터이다.</p>
<p>이상한 일은 2008.5.26 벌어졌다.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는 뉴라이트와 상당한 쟁론을 벌인 적도 있다. 일종의 세력싸움의 와중이었으니 그 때는 그렇게 지나간 일이었다. 그런데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출판기념회가 열린 세종문화회관에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가 말했다.</p>
<blockquote>
<p>“뜻 있는 이들이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을 키우는 것을 크게 걱정했는데 이제 걱정을 덜게 되었다. (중략) 이 책 의출판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의미 있고, 후일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p>
</blockquote>
<p>생뚱맞게도 뉴라이트 대안교과 서에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고 해서 그녀가 이렇게 발언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에게도 뉴라이트 집단 자체는 정치세력으로 비춰진 것이다.</p>
<p>그녀를 여기까지 오게 한 사람이 ‘안병훈 ’이다. 그런데 그의 직책이 이상하다. 도서출판 기파랑 대표다.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를 찍어낸 곳이다.</p>
<p>이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2007.11 안병직 이영훈의 대담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 ’는 책도 기파랑에서 발간되었다. 그 책은 정신대는 위안부가 아니다. 신화로서의 수탈론, 그들 식의 제국주의 해석, 뉴라이트 운동의 의의와 과제 등 사실상의 선전물이었다. 그것을 기파랑이 발간했고 안병훈은 그 대표로 있다가 마침내 뉴라이트 역사교과서도 출판을 맡게 된 것이다. 그 자리에 박근혜가 와서 축사를 했다. “퇴행과 혼란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 ”고도 했다.</p>
<p>이 조짐은 작년 11월 이미 있었다. 그러니까 한나라당의 경선이 끝난 직후, 2007.11.20 ‘건국60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는 구성되었다. 2008.8.15을 전후해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가 벌어지기 전에 이미 ‘건국 60년 ’이라는 개념을 정착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 안병훈도 있다.</p>
<p>준비위원장은 강영훈(전 국무총리), 이인호(전 러시아 대사), 박효종(서울대 교수) 이다. 박효종. 뉴라이트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앞장 섰던 제2의 안병직이 이 일을 꾸민 주범이고, 종범은 바로 집행부위원장을 맡은 김영호(성신여대 교수)다. 둘 다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에 적을 두고 있고, 그러니까 건국 60년 기념사업 준비위는 이들의 주도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다.</p>
<p>준비위원에 류근일(전 조선일보 주필), 박세일(한반도 선진화재단 이사장), 이주영(건대 교수) 등이 있고 안병훈도 전 조선일보 부사장 명칭으로 들어있었다.</p>
<p>2007 년 10월 이후, 뉴라이트가 안병훈을 스카우트하는 작업은 조심스럽지만 매우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들에게는 안병훈이 필요했다. 이명박의 당선이 확실시 되는 시점에서 박근혜를 뉴라이트 집단에서 유리(流離)시키지 않아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안병훈을 아예 자리를 앉히는 것이 좋은 방법이었다. 그 일에 박효종이 나섰고, 이른바 서북출신의 철저한 반공의식을 앞세우는 인물들이 합세했다. 이른바 안보주의와 뉴라이트가 결합하는 자리가 바로 ‘건국60년 준비위 ’였던 셈이다. 그는 직전 이야기했던 ‘조작된 기계적 균형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p>
<p>과연 안병훈은 뉴라이트 집단의 ‘친일성격 ’을 모르는 것일까?</p>
<p>정 치부장, 편집국장, 부사장을 거치면서 안병훈은 조선일보의 실세였다. 그에게 있어 ‘조선 ’은 박근혜 캠프에 들어갈 때도 ‘조선에 누를 끼치게 될까봐 몇 개월 고민했다 ’고 할 정도였다. 거기에 인간적인 고민도 토로했다. ‘박근혜씨 측에서 도와달라고 했는 데 안도와 주면 치사할 것 같아서 ’당시 여론조사에서도 열세인 그녀 편으로 갔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뉴라이트라는 친일집단의 사냥개 거두인 안병직이 여의도연구소 소장으로 들어온 판에 그들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을 턱은 없다. 오히려 안병직을 데리고 오는 과정에서 김문수, 이재오, 박형준, 차명진, 임해규 등이 그들의 사상적 스승임을 내세워 쌍수를 들고 추천했다는 경우를 보면 이들이 어떤 형태를 가지고 접근하는가를 잘 알았을 것이다.</p>
<p>그런데 경선 패배 이후 안병훈은 뉴라이트를 선택한다. 직접 당사자처럼 비치지 않지만 ‘기파랑 ’을 통해 대안교과서를 출판까지 한 바에야 그 대열에서 비켜설 수 없다.</p>
<p>5 월 촛불이 거세지고 있던 시점, 뉴라이트는 여전히 이명박 지지세력이자 친위세력으로 자리잡고 있었지만 묘하게도 여러 군데에서 ‘이명박 이후는 박근혜 ’라는 이야기도 들리던 때였다. 그만큼 여론이 악화되었던 시점에 뉴라이트는 박근혜를 안병훈을 통해 불러 들이고, 자신들의 진지 구축을 새롭게 했다. MB에 대한 압박도 되었다.</p>
<p>안병훈과 조선일보의 사이는 그 후 원상대로 회복되었는가?</p>
<p>대 답할 필요도 별로 없다. 초록은 동색이다. 게다가 조선일보는 세상을 ‘조선 대 반(反)조선 ’으로 읽는 것으로 유명하다. 굳이 따져볼 가치도 없다. 그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작년 10월 했던 ‘언론의 도리 ’에 관련한 이야기는 허언(虛言)이었다는 것이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그(안병훈)가 바로 ‘사적 이익 ’을 위해 친일의 재구성에 거침없이 기꺼이 동참한, 동참할 수 있는 자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델이라고까지 생각할 수 있다. 보수 논객 이상돈(중대법대 교수)은 말했다.</p>
<blockquote>
<p>“안병직, 김진홍, 서경석이 무슨 보수냐! ”</p>
</blockquote>
<p>이 제 나이 만 70세에 달한 안병훈은 한국 사회의 보수인가, 뉴라이트인가, 친일인가, 아니면 어떤 위치에 자기가 서 있다고 생각하는지 몹시 궁금하다. 만년에 그 행보는 정말이지 활계(活戒)로는 최악이 아닌가 싶은 판단도 든다. 지난 60년의 친일과는 달리 이번의 경우에는 해방 이후의 친일역사를 다루게 된다. 앞으로 어느 시점에선가는 반드시 ‘새로운 친일매국 ’에 대한 리스트도 정리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각인하길 바라는 마음이다.</p>
<h3>6. 송자; 조선일보라는 ‘살아있는 권력 ’의 하수인이자 일본 극우를 향한 통로<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6" class="anchor" title="toc_6" id="toc_6">#</a></sup></h3>
<p>2008.1.22 소공동 롯데호텔에는 대한민국의 전 현직 권력자는 거의 대부분 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슨 일인가?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까지 ‘오지 않고는 안 되는 ’자리였다. 그도 그 자리에 왔다. 상대에게 깊숙하게 고갤 숙였다. 이른바 ‘밤의 대통령 ’의 팔순 잔치는 그렇게 화려했다. &lt;나는 아침이 두려웠다&gt;의 출판기념회를 겸한 팔순 잔치에 김영삼, 전두환을 비롯한 참석인사의 면면은 한국이 ‘살아있는 권력 ’에는 약하다는 현실을 보여준 자리기도 했다.</p>
<p><img title="송자.jpg" class="attachment"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72700" alt="송자.jpg" style="float:left;margin:0 1em 0 0;" />그 자리에 송자도 있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기도 했다. 그는 조선일보의 충실한 수하로써, 협력자로써, 보좌역으로 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p>
<p>굳 이 조선일보가 평북 정주 출생의 광산업자 방응모가 조만식을 앞세워 만들고 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친일행각을 했다느니 하는 예전의 이야기를 정리코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집안의 일이지만 친자인 방재선(계초 방응모 기념사업회 이사장)가 아닌 양자 방재윤의 아들들이 집안을 이어가는 과정의 재산싸움도 별로 관심사항 밖이다. 핵심은 조선일보와 현재의 친일매국세력은 어떻게 그들 간의 고리를 이어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p>
<p>1996년 일본 극우 중의 극우인 사사까와 료이치의 자금을 받아 한바탕 난리를 겪은 끝에 송자는 연세대 총장직을 잃게 된다. 당시 박영재 연대 사학과 교수는 계간 &lt;민족 문제 연구&gt; 1996년 봄호에 &#8216;전후 일본의 일제 잔재의 문제－사사카와 료오이치의 경우&#8217;라는 글을 통해 사사카와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사사카와 자금 유입의 부당성을 강력 하게 제기했었다. 이것은 90년 대 일본 극우의 한국 진입시도에서는 매우 기록될만한 사건이었다. 그로 인해 일본 극우는 한동안 그들의 행보를 어둠 속으로 감추어야 했다. 그 중심에 송자가 있었다.</p>
<p>박 교수는 논문을 통해 연세대가 처한 당시의 상황과 관련, &#8220;1995년 12월 4일, 연세대학교는 ‘일본 재단’의 기금으로 동 대학의 재단 이사회에 직속되는 ‘한일 협력 연구 기금’을 설치한다고 발표했다&#8221;며 &#8220;기금 유치를 추진한 연세대 관계자들은 일본재단이 &#8216;정치색을 띠지 않은, 일본 정부가 공인한 공익 사업 단체 ’이므로 연구 기금으로써 문제되거나 하자가 전혀 없다&#8217;고 주장했다&#8221;고 전했다. 박 교수는 그러나 &#8220;연구 기금으로써 이 재단이 세계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8221;라며 &#8220;이 재단은 ‘일본 재단’으로 개명(1995년)하기 이전인 ‘사사카와 재단’ 시절부터 세계 각 유명 대학에 연구 기금을 주겠다며 10년 이상 노력하여 왔으나 호응을 받지 못한 사실은 국외의 동아시아 전문가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재단의 설립자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의 전력이 추악하다는 것과 기금의 목적이 불순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8221;고 밝히며 강하게 송자 총장을 압박했다</p>
<p>실제로 이 기금을 운영하는 이사진들에는 일본의 우익 교과서 ‘새역모 ’와 관련된 자들이 있었고, 그것은 자금의 성격이 숨길 수 없는 일본 극우의 ‘목적 있는 ’것임을 증명하고 있었다.</p>
<p>왜 송자는 당시 무리하게 이런 자금을 끌어 들일 생각을 했을까?</p>
<p>조 선일보의 방우영은 연세대 총동문회 회장의 명의로 재단의 이사로 들어간다. 그리고 1997년 재단이사장으로 활동하였다. 송자가 재임 중에 각종 재단발전기금으로 모았던 돈은 알려진 것만 해도 1,500억원 수준이다. 그래서 마켓팅 하는 (요즘 말로 CEO형) 총장이라는 명칭까지 얻었다. 그러나 송자는 총장 직선 선거를 하는 과정에서 연세대 내부의 많은 적을 양산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가 협력 파트너로 생각했던 곳은 바로 재단이었고, 그것은 곧 방우영과의 끈끈한 밀착을 의미한다. 연대역사바로세우기 운동본부는 아직도 이 일을 놓치지 않고 계속 기록하는 중이다. 그러나 대외로 알려지지 못하는 한계를 절감한다.</p>
<p>그 이후 송자는 김영삼 정권에서 교육부장관이 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 이후 명지대 총장을 거쳐, 다시 국민의 정부에서 교육부장관이 되긴 했으나 자녀와 본인의 이중국적 시비, 표절, 부당실권주(삼성전자 실권주 헐값 매입) 사건 등에 휘말려 24일만에 (2000.8.7~27) 낙마를 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여론은 그에게 뭇매를 때렸는데 그 세세한 정보를 제공한 측이 바로 연세대 내부에서였다는 사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지면서 총장직선제로 생긴 과열선거가 빚은 장기적인 폐단이라는 사설 논조까지 등장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은 사안이었다. 그의 행적을 보면 말이다.</p>
<p>그 이후 그는 2003년 한국사이버대 총장, 2004년 ㈜대교 대표이사 회장을 겸하게 되었는데 이 때도 또 다시 겸직논란이 발생하게 되었다.</p>
<blockquote>
<p>송 자에게 따라붙는 명칭은 ‘겸직 선수 ’라고 할 정도로 많은 직책을 동시에 가지고, 또 그것을 통해 영향력을 미친 흔적이 나타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1998~2003년간 삼성전자 사외이사이면서도 1997년 이후 한일은행 사외이사, 아세아종금 사외이사라는 직분 때문에 유가증권상장 규정 위반에 해당된다는 판단이 나온 적도 있을 정도다.</p>
<p>이런 경력들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위 ‘잘 팔리는 ’자리에 늘 있었다. 조선일보의 감사도 했고,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 미래 이사장도 한다. 강연도 많다. 잘 나가는 강사로 교육문제, 사회문제에 대해 열강을 한다. 2001년까지 그는 1997년 그가 쓴 ‘한 가지라도 똑 부러지면 되는 거요 ’라는 기조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대교에서 이른바 기업인, 경영인의 길을 선보인다. 2008년에는 매경이코노미가 선정하는 대한민국 경영계에 영향을 미친 경영대가 29인 가운데 24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대교 경력이 가진 영향으로 보였지만 하필이면 이 시점에 다시 나온다는 데 고갤 갸웃거린 기사였다. (통권 1463호. 2008.7.9)</p>
</blockquote>
<p>그가 세간에서 ‘친일언론사주 ’, ‘탈세언론사 ’,’왜곡보도 ’, ‘편파 보도 1위 ’라는 악평을 듣고 있는 조선일보와의 관계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바로 역설적으로 조선일보의 힘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 국가 내에서 조선일보는 이처럼 지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를 뒷받침 하는 한 실례가 바로 송자라는 인물이다.</p>
<p>2006.2. “우리나라 사립대학 등록금은 연 1천만원은 넘어야 한다 ”(연세 동문회보 2006년 2월호)는 발언으로 대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도 따지고 보면 대학의 열악한 재정 자립도가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좀 더 깊숙하게 보면 그가 추종하는 조선일보 사주 방우영이 연세대 이사장이며, 사학법을 개정에 절대 동감할 수 없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등록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교육부총리, 교육부장관을 지냈지만 그가 진정한 의미의 교육자는 아닌 것이다.</p>
<p>그는 과연 연세대 재임 당시의 일본 극우라인과 인연을 끊었을까?</p>
<p>그렇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그 라인을 관리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일본측에서도 그를 관리하는 상태라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한국 사회에 있어 그처럼 언론권력과 교육, 기업 등에 다양한 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인물은 찾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조선일보도 일본 우익과는 조갑제와는 다른 형태의 라인업이 되어 있는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송자는 안병훈과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되는 인물이다. 물론 역할도 다르다. 조중동의 담합 구도 속에서 이명박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 배후에는 이처럼 ‘조선이 주도하는 ’일정한 수준의 지원세력이 존재한다.</p>
<p>왜 박근혜는 조선의 지원을 받지 못했을까? 이것은 의문 축에도 끼지 못한다.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을 통해서 이미 조선일보는 공정한 보도 보다는 이명박에 대한 힘실어주기에 들어갔던 게 확연하다. 그것이 단순히 조선일보 단독의 판단이었을까? 그 점은 오랫동안 남는 의문이 아니라 즉시 확인 가능한 대목이다. MB 정권의 친일성향이 과연 어느 수준으로 번져갈 것인지만 본다면 눈 앞에 보일 사안이기 때문이다.</p>
<p>송자는 굳이 정의하자면 ‘권력 지향적 집사(執事) ’에 해당한다. 그것이 친일이건 어떻건 간에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맺어진 연고(緣故)를 유지 관리해야 하는 임무가 그에게 주어진 것이고, 그는 그것을 충실하게 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그 또한 연로해진다. 결국 시대를 마감하고 난 이후, 그의 족적은 보다 분명하게 밝혀지고 남아있게 될 것 같다.</p>
<h3>7. 빗나간 애국우파 신념, 친일에 포획되다. ;유석춘의 경우<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7" class="anchor" title="toc_7" id="toc_7">#</a></sup></h3>
<p>2007 년 6월 일본 민단 방문 등 김진홍의 일정에 동행한 사람은 네 사람 정도였던 모양이다. 이동복, 조갑제 그리고 유석춘이다. 그가 당시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 자리를 내놓았던 때인지 아닌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직은 가지고 있던 때였다.</p>
<p><img title="유석춘.jpg" class="attachment"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72702" alt="유석춘.jpg" style="float:left;margin:0 1em 0 0;" />유석춘. 1955년 생. 일리노이대, 연 세대 사회학과 교수다</p>
<p>1995 년 당시 민자당 부설 여의도 연구소 정기간행물 &lt;정책논단&gt; 8월호에 5월 광주항쟁을 지역감정 차원에서 접근해서 한 바탕 소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민자당 광주시 지부까지 그를 비판했으니 정도가 아주 심했던 글이라 볼 수 있다.</p>
<p>그 리고는 한동안 조용했다. 재미난 것은 그 사건이 벌어지던 당시 연세대가 운영하는 일본 사사까와 재단의 기금 의 변형판 인 ‘아시아연구기금 ’프로그램 운영위원으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9년에는 일본 도시샤에 반 년 정도 교환교수로 다녀오기도 했다. 1995년 이후의 행적에서 그가 이렇게 일본과 관련된 행적을 보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추후 밝혀보기로 하자.</p>
<p>2000년 까지 그는 시끄러운 세간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2001년 슬그머니 등장해서 조선, 동아, 중앙 등 칼럼을 마구 싣게 된 다. 신예가 출연한 셈이었다.</p>
<p>그는 왜 그 때 ‘뜨기 ’시작했을까?</p>
<p>국 세청 언론조사가 강력하게 시작되었다. 세 신문 모두 해당사항이 있지만 드러내놓고 자신들의 입으로 이를 마구 반박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바로 그 때,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이라고 노골적으로 편들기를 해주겠다는 유석춘을 싫어할 신문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회학과 교수 신분에 소장파 특유의 날카로움을 가진 터라 오히려 반겨야 될 일이었던 셈이다.</p>
<p>2001.7.7 조선일보 시론 ‘악령들의 문화혁명 ’은 그가 7월 20일 이야기할 ‘홍위병 ’론의 전편 같은 것이었다. 언론사 세무조사 등 개혁적인 흐름 자체를 아예 ‘문화혁명 ’(그가 과연 문화혁명의 본질을 아는 지도 의심스럽지만)으로 규정하고 ‘때 아닌 문화혁명에 가담하고 있는 권력의 악령 ’들이라고 거들기에 나섰다. 이 정도 수준이니 조중동이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 시점에 그는 이미 ‘사회학 ’을 배운 학자가 아닌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판단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소신이라고 말하겠지만 40대 후반으로 들어가는 소장 학자의 현실적 출세욕도 은근히 드러난 대목이다.</p>
<p>한겨레 신문 고명섭 기자가 쓴 당시의 칼럼에 이런 대목이 있다.</p>
<blockquote>
<p>“ 그러니까 그의 주장은 현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고 있다는 이야긴데, 이 따위 음모론을 가지고 시민단체의 도덕성을 욕보일 용기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지금 시대가 더는 물리적 폭압이 없는 시대인데다, 조중동에만 기대면 무서울 게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p>
</blockquote>
<p>유석춘의 아래 2001.9.11 자 조선일보 칼럼 ‘정부와 손잡은 ‘안티 ’기존 ‘정통 ’고사작전 ’의 한 구절을 본 끝에 나온 이야기다.</p>
<blockquote>
<p>“ 이른바 ‘신문사 탈세사건 ’이 가장 대표적이다. 새로 정통의 자리를 차지한 ‘무슨 무슨 죽이기 ’니 ‘안티 어쩌고 ’가 먼저 나서서 이른바 개혁을 이야기 한다. 이어서 새로 정통으로 등극한 신문이 이단으로 바뀐 신문을 공격한다. 그러면 정부는 마치 마지못해 나서는 듯 슬그머니 끼어든다. ”</p>
</blockquote>
<p>내가 주목한 것은 그의 ‘친일 ’이 과연 돌출될 것인가 하는 점이었는데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었다.</p>
<p>SBS 토론회에서 친일행위에 관련해서 ‘일제시대에는 다 그랬다 ’고 일본 대신 변명하는 것이나 조선 동아가 일본 교과서 왜곡에 비판하는 목소리가 바로 ‘과거의 친일은 친일이고 현재도 친일은 아니라는 것 ’으로 둘러 치거나 더 심하게는 “일제시대에 창씨개명이나 신사참배를 한 사람은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 될 자격이 없다 비난할 수 있나? ”라고 되묻기도 한다.</p>
<p>바로 이 부분이다. 2001년 시점, 유석춘은 과연 어디에서 이러한 일본 극우의 논리로 ‘친일 ’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을까? 그가 단순히 조중동의 세무조사를 감싸기 위해서 친일이 무슨 죄인가 라고 들먹인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일련의 칼럼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는 분명히 친일과 반북을 대립적 관점에 놓고 친북보다는 친일이 낫다는 논리를 열심히 펴는 중이었다. 당연히 거기에는 일제강점을 더 따지지 말자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었다.</p>
<p>연세춘추 제1416호(2001.5.7) ‘조선일보 ’반대운동에 대한 찬반에서 유석춘은 반대입장을 들며 이렇게 설명을 한다.</p>
<blockquote>
<p>“ 조선일보의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조선일보에 글을 쓰지도 않고 또 구독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권유하기로 했단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을 하는 까닭은 조선일보의 논조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극우’이기 때문이란다. 이런 일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진보’세력이라고 부르고 있다. (중략) 이른바 ‘진보’를 내세우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현실적인 영향력에서 조선일보가 차지하는 위상은 감히 ‘진보’세력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 부분은 ‘진보’세력 스스로도 자인하는 사실이다. 왜 그런가. 국민 전체의 기준에서 볼 때 이른바 ‘진보’가 주장하는 내용보다는 조선일보와 같은 ‘극우’가 주장하는 내용이 보다 많이 수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신문은 신문끼리 경쟁해야 한다. 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하고, 신문은 기사로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는 독자와 국민의 몫이다. 제발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조선일보가 나쁘다고 설득하려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 우리가 당신들에게 조선일보 가 좋은 신문인지 나쁜 신문인지 물어봤냐고요. ’”</p>
</blockquote>
<p>이 글이 바로 유석춘의 2000년 이후 오늘까지를 모두 보여준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전형적인 ‘기득권 신봉주의자 ’이다. 달리 표현하면 ‘출세주의자 ’이고, 나아가 그 스스로 ‘강한 자를 따른다 ’는 논리를 형성한 사람이다.</p>
<p>그에게 일본은 어떤 존재인가?</p>
<p>뉴라이트 집단의 특성은 ‘일본에게 배워야 한다 ’는 기본 약세로부터 출발한다.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가 돌출되어 그 가운데 일제로부터 얻어진 기득권을 문제 삼는 순간, 그들은 ‘그것도 능력 ’이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다.</p>
<p>그의 정치 행보가 이어지기 바로 직전, 사사까와 재단으로부터 연세대로 공여된 자금인 ‘아시아연구기금 ’의 사무총장이 된다. 그가 일한 기간은 2004.7~2006.10이다. 이 기간을 잘 기억해두고 아래를 보자.</p>
<p>2005.11 유석춘은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상임대표가 된다. 그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난 직후 프리존 뉴스 편집장 강길모와의 인터뷰가 있었다. 그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뱉어 놓았다. 쭉 내용만 훑어 보기로 하자. 군데군데 요약 발췌해서 싣는다. 2006.1.9 자였다.</p>
<blockquote>
<p>“ 사학법 개정안은 철회되어야 한다. 평준화 정책은 근본적 재검토가 되어야 한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사학법 개정안을 놓고 전교조의 사학장악음모라는 등의 이념문제로 보는 것은 박근혜 대표의 음모론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원희룡 쪽에 ‘병’이 있는 것이다. 자기가 싫으면 떠나라. 대학은 이제 탈이념화, 우경화된 상황이다. 뉴라이트 학생회가 더 많이 결성되어야 한다. 좌파도 두 종류다. 민주주의 절차를 따르는 좌파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좌파가 있다 절차를 존중하는 좌파는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시민단체로 남을 것이다. 개인적 차원의 이탈은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친북좌파가 바로 영구분단 세력이다. 경우에 따라 북진통일의 가능성까지 열어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아픔을 철저하게 공유하는 같은 민족이라면 언제나 소극적 방어적 수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통일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소 과격하지만 그런 식 입장도 무조건 배제하지 못한다. 제도권에서는 김문수의원, 현재 우파 진영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신지호 교수님 같은 분들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리더십으로 충분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유한 분으로 생각한다. 원희룡, 남경필은 소장이라기 보다는 노회한 정치인 느낌이 든다. ”</p>
</blockquote>
<p>그는 자신을 ‘애국우파 ’로 정의했다. ‘신지호 ’가 등장한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다. ‘친일 ’이 역시 ‘반북 ’보다는 훨씬 앞선 개념이라는 생각을 그렇게 표출했다고 보여진다.</p>
<p>이 력은 이어진다. 2006.9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직 과 함께 그는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이 란 자리를 꿰차게 된다. 현실정치로 들어간 셈이었다. 그 사이 한나라당 내부에서 그의 입지는 매우 좋지 않은 듯했다. 원희룡은 노골적으로 “일부 뉴라이트 세력들이 극단적으로 수구적 언행과 메카시즘으로 당직자를 모욕한다. 색깔론으로 중도개혁 세력을 쫓아내려 한다 ”고 비판했다. 유석춘이 그 대상이 된 것은 분명하다.</p>
<p>바로 2006.11.14 경향신문에서 있었던 유석춘, 원희룡, 신지호 간, ‘최열 ’을 둘러싼 논쟁이 그 시발점이기도 했다. 그가 칭찬했던 신지호와도 쟁론이 생겼던 대목이다. 세간에는 ‘안중근=테러리스트 ’로 잘 알려진 발언이다. 그 대화를 옮겨 본다.</p>
<blockquote>
<p>“신지호 = 최열씨는 주사파가 아니다. ‘최열 이 친북좌파니까 오세훈 너도?’ 이런 식의 접근은 뉴라이트에 맞지 않다.</p>
<p>유석춘 = 최열씨 가 왜 친북좌파가 아니냐 .최열씨가 부안사태를 일으켰다. 부안에 환경운동연합이 들어가 무법천지로 만들지 않았나. 이 사건과 북한핵을 연결시켜 생각해보자. 최열과 환경운동연합은 남한이 평화적으로 사용한 핵에 대한 방사능 처리시설도 못 짓게 하는 사람들인데, 그렇다면 북한 핵실험에 대해 더 심각하게 대응해야 하지 않나. 38선 넘어 화염병이라도 던져야 하지 않나. 나도 반공주의자는 아니다. 유럽의 좌파 같은게 나와 경쟁했으면 좋겠는데 왜 우리나라엔 북한 편드는 좌파 밖에 없나. 좌파, 진보가 우리보고 극우, 수구라고 하던데 극우는 테러하는 안중근 같은 사람이지, 난 연필 하나도 못 던진다. ”</p>
</blockquote>
<p>2007.6~8 기간 그는 한나라당 18대 대통령 후보경선관리위원이 된다. 그러니까 김진홍과의 일본 도쿄여행은 한나라당 에서 경선관리위원이 될 즈음으로 짐작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경선에서 이명박이 대통령 후보가 되고, 박근혜가 떨어진다. 그는 누구를 후원했던 것일까?</p>
<p>2007.11.27 대통령선거를 얼마 앞두고 그는 백지연의 SBS전망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미 이명박에 대한 기대를 그는 버리고 있었다.</p>
<blockquote>
<p>“ 이장춘 전 싱가폴 대사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로부터 직접 받았다며 공개한 BBK명함이 이회창 무소속 대선후보 지지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중도라는 기회주의에 편입된 한나라당은 변절되었다. (이회창 쪽으로 가는 것은) 보수의 분열이 아니라 확대다. (박근혜가 옳은가에 대해) 링 위에 못올라가서 언급할 이유가 없다. MB와 비교, 박근혜가 지난 경선에 내걸었던 정책이 조금 맞는다고 본다. ”</p>
</blockquote>
<p>2007.11.29 CBS 시사자키 신율과의 대담에서는 “이회창-박근혜 간 연대 가능하다고 본다 ”고도 했다. 그에게 이명박은 더 이상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었을까?</p>
<p>그 는 이회창에게로 달려간다. 정책특보를 했고, 선거에 졌다. 그리고 창당 과정에서 자유선진당의 정책조정위원장이 되었다. 그가 참여함으로써 자유선진당도 사실상 ‘뉴라이트 ’깃발이 꼽힌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자유선진당은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지 않은 정치 세력간 다툼일 뿐이니 구분법도 의미는 없다. 그는 2008년 초 자유선진당의 70~80석 쟁취 가능성도 언급했다.</p>
<p>2008.8.25 그의 웹사이트에는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관리위원까지 이외는 이력이 올라와 있지 않다.</p>
<p>2008.7.17 제헌절 60회에 이화장에서 100여명의 보수우파 지식인이라며 모여 ‘미래연구원 ’출범을 선포했다. 연구과제로 1차년도 ‘국가정통성 확립과 통일외교전략 ’, 2차년도 ‘번영국가전략과 교육과학기술정책 ’, 3차년도 ‘문명국가와 사회문화정책 ’이 내걸렸고, 연구과제 수행원으로 유석춘의 이름이 올라갔다. 이 모임은 뉴라이트 지식인의 씽크탱크 부활로 보도되었다. 그 이전 7.14 정부가 국무총리실 주재로 건국 60주년 기념으로 하는 60일 연속강연에도 그의 이름은 들어갔다. 여전히 그는 뉴라이트 이론가로 그 행적을 남기고 있다.</p>
<p>유석춘의 2000년 이후 정치이력은 폴리페서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 그를 ‘친일의 사냥개 ’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 않는 것은 그가 소위 자신을 ‘애국우파 ’로 정의하면서 일본의 우파-극우와의 연동성을 명확히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정쩡한 대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일련의 행위, 발언, 그리고 족적은 의심할 바 없이 그를 일본기획자의 하수인이라 확정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는 이른바 ‘자발적 애국우파 확신범 형(型) 친일매국자 ’라고 불러도 표현에 덜함은 없을 것이다.</p>
<p>그는 아직도 ‘신지호 ’를 차세대 유망 정치리더로 볼까? 그게 궁금하다.</p>
<h3>8. 법치와 공정 구호 속을 파고 든 친일과 사적 이익의 합주; 모호한 수용 속의 ‘골방 지식인 ’, 김일수의 케이스를 보며<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8" class="anchor" title="toc_8" id="toc_8">#</a></sup></h3>
<p>한 사회 국가가 유지되기 위한 공권력은 법치(法治)만이 능사가 될 수 있는가?</p>
<p>촛 불민심에 대한 법리적 적용은 이제 ‘법과 질서의 엄격한 적용 ’이라는 매우 건조한 대응방식이 나타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이를테면 적법하냐 불법이냐 따지는 것이고 그 원인과 이유, 심지어는 정권의 적법은 오로지 직접민주주의의 결과인 투표 내용만 본다는 식의 접근법이 나타난다. 민심이 가진 도덕률이나 혹은 희망율법도 전혀 통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p>
<p>“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 법과 질서를 지키며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나라 ”에서 두 가지가 비어 버렸다. 하나는 ‘신뢰 ’이고 다른 하나는 ‘정당성 ’이다. 이것은 법치가 신뢰와 정당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볼 때 어쩌면 사회 자체가 이미 서로간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그것을 정권과 국민 간에 치유하지 못하는 상태, 그것이 바로 오늘 한국의 모습이다. 거기에 친일매국이 세력화 되면서 깊숙한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첩첩산중이다.</p>
<p><img title="김일수.jpg" class="attachment" src="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72706" alt="김일수.jpg" style="float:left;margin:0 1em 0 0;" />나 는 친일매국세력과 가까운 여러 사람을 보다가 뜻밖의 인물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형적인 형법학자이면서도 기독교 운동가인 ‘김일수 ’다. 그런 그가 최근 보이는 행동은 매우 정치적이면서도 바로 뉴라이트 집단과 근접성을 절대 유지하고 있다. 아니 그 당사가 되어 있는 상태다. 과연 그는 무엇을 위하여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p>
<p>위키백과 와 다른 이력을 종합해보자. .</p>
<blockquote>
<p>“1946. 6생 형법학자, 강원도 강릉시 출생. 1970년 사법시험 합격했으나 아버지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부역자 경력 때문에 임용되지 못함. 1976년 고대석사. 1983년 독일 뮌헨 루드비히 막시밀리언 대 형법학 박사. 논문은 ‘형법에 있어서의 인간존엄의 의미 ’. 고대 법대 교수 , 법무법인 솔로몬 대표변호사. 2003년 정보통신율닝위원으로 봉사한 경력으로 홍조근정훈장 수령. ”</p>
</blockquote>
<p>이 사람은 유명한 형법학자다. 저서도 많고 사법 시험생들은 대체로 형법에 있어서는 그의 저서를 봐야 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사회운동을 한다. 엄밀히 종교운동이다. ‘기윤실 ’로 불리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은 그의 형법 학계의 경력보다 실제 더 사회에 알려져 있다. 강영만(서강대)등과 함께 공동대표다. 기윤실의 창립자인 손봉호(서울대 명예교수)는 2002년 일선에선 물러났지만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p>
<p>기윤실은 2002년 제2의 창립을 선언하고 네트워크사역본부, 건강가정운동본부, 건강교회운동본부, 문화소비자운동본부, 기독가족상담소의 5본부를 운영한다. 역사는 20년을 넘었다. 활동분야도 다양하다 ‘건강한 교회재정 확립 네트워크 ’를 통해 교회자산운용 실태조사를 다른 단체와 연대해서 하거나 독자적으로는 ‘베껴 NO! ’같이 학생들이 학교수행평가에서 과제물을 베껴 쓰지 말자는 캠페인도 한다. 교회사회복지 아카데미, 기독교 공명선거연대, 온가족지원봉사 대회, 사회양극화 진단과 교회의 역할 모색 같은 포럼도 개최한다. 기윤실 NGO 아카데미를 개설하기도 한다. 목회자 세금납부 설명회를 하는가 하면, 생명윤리 캠페인을 펼치기도 한다.</p>
<p>“기독기업, 기독경영이란 무엇인가? ”라는 토론회를 통해 여전히 문제가 되는 ‘이랜드 ’사태에 대해 조사를 결정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국가보안법과 관련해서도 ‘완전폐지냐 대체입법이냐 ’를 두고 열띤 포럼이 개최된 적도 있다.</p>
<p>그 런데 김일수의 행적에서 묘한 흔적이 발견된다. 김진홍이 이끄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의 공동대표도 맡은 것이다. 물론 그 혼자는 아니다. 김요한(CMI), 박은조(분당샘물교회), 서경석, 이성희, 이승영, 이정익, 이화숙, 인명진 등이 있다. 뉴라이트에 자리를 찾은 형법학자? 차라리 기윤실 공동대표라는 사회활동의 의미에서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를 맡았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p>
<p>여기서 그치지 않는다.</p>
<p>서 경석이 주도한 ‘기독교사회책임 ’에도 떡 하니 발기인으로 들어가 있다가 바로 공동대표가 되었다. 창립선언문 발표 때도 그랬지만 2004.11.24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기독교사회책임의 창립대회에서 서경석은 분명히 “다음 대선에서 좌파와 손잡는 정치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이 후보 단일화를 이루게 하겠다 ”고 정치색을 확실히 드러냈다. 그렇다면 기독교사회책임은 결코 사회단체가 아니었다 .</p>
<p>이를 두고 기윤실 내부에서도 반대가 많았던 모양이다. ‘잘 되어도 본전 ’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설립자인 손봉호 총장, 김일수 교수가 참여 한다는 데 말이 많다 ’(조재호. 2004.11.9)는 기사 말미의 댓글도 보인다.</p>
<p>2004.11.5 에는 기윤실 내부의 이진오가 ‘서경석 목사, 기독 NGO통한 차기 정권 움직임 ’이라는 경고를 내놓기도 했다. 그는 국보법 토론회 에서도 주제 발표를 할 정도로 많은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김일수는 이러한 내부적 반발이나 혹은 우려에 대해 특별한 의견을 내놓지도 않았고 정치단체이면서도 친 일세력인 조직들에 그냥 이름을 올린 것이 아니라 대표격으로 합세를 강행 했다.</p>
<p>그 와 서경석 간에는 인연이 이전에도 많았다. 2005.3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설치에 관한 반대 성명에도 동참했고, 검찰의 수사권 방어가 관건이 되던 2005.4.11 공청회에서도 김일수를 위원장으로 서경석을 공청회 사회로 하는 콤비로 등장했다. 둘 다 친 검찰 인사로 분류되던 때였다. 같은 시기 한기총(위원장 최성규)의 초대 인권위원장으로 서경석이 ‘탈북난민 강제송환 저지 국제 캠페인 ’을 벌일 때도 이 조직의 공동대표로 참가 했다. 경실련의 분쟁 가운데 김일수가 개입하여 이를 정리하는 과정도 있었다. 이들은 선진화국민회의의 발기인으로도 참여했고, 지금도 분화되는 여러 조직에서 공동으로 적을 올려두고 있다.</p>
<p>주지하는 바와 같이 서경석은 김진홍과 함께 뉴라이트 집단을 이끌거나 뒷받침하는 역할을 함께 하는 정치세력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김일수는 이러한 시스템 자체에 동조했다는 의미가 된다.</p>
<p>왜 그런가?</p>
<p>그 는 2005.8.2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교회는 자꾸 찜찜한 일만 선택하고 있다. 그런 켕기는 마음을 중화 시키려고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상대방을 사탄이라고 하고, 원수도 증오하게 만든다 ”는 말을 했다. 기독교 윤리실천 운동은 교회에 대한 개혁운동의 의미도 포함되는 셈이다. 그래서 기윤실은 기득권 교회세력과 끊임없이 부닥쳐 왔다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서경석과 같이 기존 기득권 교회세력이 아닌 형태의 기독교운동 , 세력의 취합 을 선택한 것인가? 그런데 그것 만도 아니다. 엄연히 뉴라이트전국연합에는 샘물교회, 순복음교회, 금란교회 같은 대형교회들이 들어가 있다. 연합하고 있는 것이다.</p>
<p>생각 을 읽기가 참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다고 그 개인사를 통해서 아버지의 인민군 부역사실로 인해 임용되지 못한 한이 남아서 반공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가 를 따져봐도 그것은 특별하게 드러난 바가 없다. 고려대 입학 때 차석입학을 할 정도의 수재였다는 사실만 본다면 능히 한 인간으로 으로써 그런 마음을 가질 만도 하다. 일종의 레드 콤플렉스가 생길 여지는 있다. 서경석이나 김진홍 등은 매우 강력한 ‘좌파론 ’을 펼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도 일정 부분 영향은 있을 터이다.</p>
<p>그래도 뭔가 약하다. 자신이 가입한 집단이 친일매국세력이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그의 위치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친일 발언을 모두 공감할 정도로 경제사 또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식민지 근대화론, 식민지 축복론의 의미를 구분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p>
<p>2004.3.24 국민일보에 그의 칼럼 ‘소크라테스와 촛불시위 ’가 실렸다. 당시는 탄핵정국이었다. 3.9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불법선거운동 등을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으르 제출했고, 3.12 국회본회의에서 재적의원 271명 중 195명이 투표에 참여,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었다. 광화문에서 20여 만 명이 모여 시민들이 촛불을 들 때였다. 그런 와중에 쓴 그의 글을 부분적으로 살펴보자.</p>
<blockquote>
<p>“탄핵정국을 틈타 광화문에서는 밤마다 촛불시위가 열린다. 내로라하는 시민단체, 시민운동가들은 그토록 평화롭고 질서 있는 촛불시위가 한낱 집시법 위반이란 오명을 뒤집어써야 하는 이유를 내심 동의하지 못하는 눈치다.</p>
<p>그 래서 집시법이 적법한 야간행사로 규정한 문화행사의 무대를 꾸미고 그 안에서 정치색 짙은 시위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법질서는 프로레슬링 심판처럼 그렇게 둔감하거나 위장된 불법을 눈감아 주지 않는다. 문제는 야간의 촛불시위가 자신만 태우고 빛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법 공동체의 규범의식을 태우고, 법 알기를 우습게 만드는 잿더미를 어딘가에 쌓아 놓는다는 점이다.</p>
<p>(중 략) 그러나 작은 불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배경에는 잘못된 역사적 상황설정과 인식이 깔려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오늘의 탄핵정국을 지난 세기 6월 항쟁 때 호헌철회 상황, 아니면 더 거슬러 올라가 긴급조치 9호에 저항하여 유신 철폐를 외치던 상황으로 착각하는 인식이 문제다.</p>
<p>(중략) 오늘 밤 촛불시위가 벌어질 광화문 네거리에 이웃 나라의 시민운동가처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방문하여 참관한다면 어떤 지혜의 말로 우리들의 황폐해진 영혼을 일깨워줄까 궁금하다. 그는 법률의 권위가 흔들리는 곳에서도 인간 내면의 기준인 영혼의 고유 법칙은 남아 있으며,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동물성을 이성으로 지배하게 명령한다고 가르쳤다. 그에게 영혼은 인간의 고유한 것, 신적인 것의 처소였기 때문이다.</p>
<p>(중략) 법률에 대한 복종을 티없는 영혼을 지닌 자신의 생명과 바꾸었던 소크라테스가 오늘 광화문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한국 시민운동가들의 변명을 듣는다면 말문이 막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p>
<p>(중 략) 그러므로 탄핵 반대 무효 선언을 한 시민운동가들은 물론 대한변협이나 의문사위, 전공로, 전교조 등 국가 또는 사회단체들도 자기 소견에 따라 법을 무시하거나 법치를 흔드는 경거망동을 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탄핵 소용돌이에 휩싸여 제자리를 벗어난 ‘촛불 군중 ’에게 소크라테스가 들려주고 싶은 한 마디 말은 바로 그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 ’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집을 지킨다면서 자신의 집을 불태우는 일처럼 큰 어리석음 없기 때문이다. ”</p>
</blockquote>
<p>이 글을 보고서야 나는 그가 가진 일련의 의식 흐름과 상황 판단 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김일수는 전형적인 ‘지식만능주의자 ’에 속한다. 자신이 배운 ‘법과 법치 ’가 전능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민의(民意)가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법 제도의 원칙 하에서만 움직여야 되고 그것만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p>
<p>확대 해석해보자면, 그가 모르는 ‘친일세력 과 일본 팽창주의자 ’의 한국 침탈 과 관련한 ‘공작 ’은 그로서는 ‘모르며, 자신이 알 영역이 아닌 ’셈이 된다. 개인은 그저 잘 아는 ‘법과 질서 ’를 따지고 국민들을 그 잣대 속으로만 들어오라고 하는 사고에 해당한다.</p>
<p>촛불민심이 불거져서 이미 1 10회를 넘긴 한국의 사정이 2004년 그 때와 비교해서 절대 다르지 않다. 6월 항쟁, 유신철폐보다 지금의 상황이 더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른다 ’, ‘아는 것 , 가장 우선될 삶의 가치는 (소크라테스처럼) 법과 법치 ’의 문자 규정 이다 ’라는 틀 에만 얽매이려 하는 지도 모른다. 그 는또한 소크라테스를 꺼내며 ‘법률이 시민들의 공동체적 합의를 기초로 한 것 ’이므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약점이 생긴다. 일본은 침탈 시도에서 일본의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제국주의, 팽창주의의 전통을 지킨다. 그들에게는 한국의 법은 안중에 없다. 그들 방식으로 침투하고 교란하며, 그들의 사냥개를 양성할 뿐이고 사냥감을 포획하면 그만이다. 국제법을 아주 공평한 법률이라고 법률가들은 인정할 지 모르나 이미 쇠고기 파동으로 국제간의 관계는 법보다 힘이 우선한다는 진리를 국민들은 배웠다. 냉엄한 국제사회의 논리다. 일본과의 관계도 서로 ‘평화 ’가 아닌 ‘침탈 ’의 역사가 다시 올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p>
<p>시작은 일본이 먼저 했다. 한국은 일본에게 적어도 침략의 역사를 근 현대사에서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와중에 그도 자각하거나 안 했거나 못했건 간에 ‘사냥개 ’가 되었다 면 그 자신은 어떤 생각을 할까?</p>
<p>역 사를 배우면서도 역사가 법률로는 도저히 따질 수 없는 윤회(輪廻)가 있다는 사실을 김일수는 인지하지 않 았다. 형법에 있어 인간존엄을 이야기 했던 그의 박사논문은 ‘법을 뛰어 넘는 국가와 시대 , 역사 의 존엄 ’이란 주제로 확장되어 재탄생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적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법과 법치 ’는 그 자신의 완고한 잣대 로 작용하다 보니 어떻게 이야기해도 이 시대의 기준 을 이해하기는 태부족이란 생각 도들었다. 가장 안타깝게 지켜본 대표적인 한 사람의 ‘골방 지식인 ’의 유형이 그에게서 발견되었 다.</p>
<h3>9. 일차 맺으며<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9" class="anchor" title="toc_9" id="toc_9">#</a></sup></h3>
<p>자료는 동일한 방식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p>
<p>자 료를 정리하면서 다시금 든 생각은 ‘일본이 삼투(渗透)해온 과정이 조밀(稠密)하다 ’는 느낌이었다. 한국 사회 국가 내부에서 지난 시간 동안 형성된 다양한 객체와 집단, 그리고 가치관의 변화를 대단히 잘 관찰한 결과물이라고까지 여겨지는 대목이 많았다. 특히 지식인 사회일수록 그들 스스로 함정을 파고 있었다. 이른바 ‘우월의식 ’의 덫이다. 국민들을 계몽의 대상 정도로 생각하고, 어떤 논리이건 펴는 것이 상책(上策)이며, 정치적이건 사회적이건 간에 힘을 쥔 자가 모든 걸 가진다는 단순우위론이 지배한다.</p>
<p>이 러한 인식들이 개인주의, 이기주의, 그리고 사적 이익의 관점이 팽배해질 대로 된 상태에서 시대의식이 옅어진 지금, 그로 인한 논쟁이 격화되는 지금, 이 불균형 속에서 어쩌면 지금 우리는 19세기 말이 그러했듯이 21세기 초에 가장 난적(難敵)과 난제(難題)를 동시에 안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침탈당할 것인가, 아니면 자주적이고 온전한 얼굴로 다음 시대를 이어올 세대들에게 줄 것인가 하는 절체절명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p>
<p>마음은 조급하지만, 그렇다고 물리적으로 이들을 모두 정리해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작업이다. 최대한 해볼 생각이다. 일차적으로 여덟 명의 유형을 통해 한국 사회가 가진 친일에의 취약점을 대체로나마 살펴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자료를 다 이어 쓰고 난 다음, 전체적인 소견을 적어볼까 한다. 지금은 아직 그걸 정리할 때가 아닌 듯하다. (2008.8.26 止月 山庄에서 쓰다.)</p>
<p style="text-align:right;">이 글은 <a href="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스프링노트</a>에서 작성되었습니다.</p>
<br />Posted in 담담당당 Tagged: 뉴라이트, 독립, 민족주의, 시대, 이명박, 자주, 촛불정국, 친일파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comments/coreannight.wordpress.com/14/"><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comments/coreannight.wordpress.com/14/"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delicious/coreannight.wordpress.com/14/"><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delicious/coreannight.wordpress.com/14/"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facebook/coreannight.wordpress.com/14/"><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facebook/coreannight.wordpress.com/14/"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twitter/coreannight.wordpress.com/14/"><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twitter/coreannight.wordpress.com/14/"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stumble/coreannight.wordpress.com/14/"><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stumble/coreannight.wordpress.com/14/"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digg/coreannight.wordpress.com/14/"><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digg/coreannight.wordpress.com/14/" /></a> <a rel="nofollow" href="http://feeds.wordpress.com/1.0/goreddit/coreannight.wordpress.com/14/"><img alt="" border="0" src="http://feeds.wordpress.com/1.0/reddit/coreannight.wordpress.com/14/" /></a> <img alt="" border="0" src="http://stats.wordpress.com/b.gif?host=coreannight.wordpress.com&amp;blog=5630345&amp;post=14&amp;subd=coreannight&amp;ref=&amp;feed=1" width="1" height="1"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c%96%b4%eb%8a%90-%eb%af%bc%ec%a1%b1%ec%a3%bc%ec%9d%98%ec%9e%90%ec%9d%98-%ec%8b%9c%eb%8c%80%ea%b2%bd%ea%b3%a0-2-2008826/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media:content url="http://1.gravatar.com/avatar/bc8f883dd78ebe308860a9b0136eadd9?s=96&#38;d=identicon" medium="image">
			<media:title type="html">coreannight</media:title>
		</media:content>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49122" medium="image">
			<media:title type="html">구로다-가쓰히로(黑田勝弘).jpg</media:title>
		</media:content>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72690" medium="image">
			<media:title type="html">한승조.jpg</media:title>
		</media:content>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72692" medium="image">
			<media:title type="html">이영훈.jpg</media:title>
		</media:content>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72694" medium="image">
			<media:title type="html">서경석.jpg</media:title>
		</media:content>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72698" medium="image">
			<media:title type="html">안병훈.jpg</media:title>
		</media:content>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72700" medium="image">
			<media:title type="html">송자.jpg</media:title>
		</media:content>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72702" medium="image">
			<media:title type="html">유석춘.jpg</media:title>
		</media:content>

		<media:content url="http://coreannight.springnote.com/pages/2101272/attachments/972706" medium="image">
			<media:title type="html">김일수.jpg</media:title>
		</media:content>
	</item>
		<item>
		<title>어느 민족주의자의 시대경고 1 (2008.8.21)</title>
		<link>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c%96%b4%eb%8a%90-%eb%af%bc%ec%a1%b1%ec%a3%bc%ec%9d%98%ec%9e%90%ec%9d%98-%ec%8b%9c%eb%8c%80%ea%b2%bd%ea%b3%a0-1-2008821/</link>
		<comments>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ec%96%b4%eb%8a%90-%eb%af%bc%ec%a1%b1%ec%a3%bc%ec%9d%98%ec%9e%90%ec%9d%98-%ec%8b%9c%eb%8c%80%ea%b2%bd%ea%b3%a0-1-2008821/#comments</comments>
		<pubDate>Mon, 24 Nov 2008 15:10:36 +0000</pubDate>
		<dc:creator>coreannight</dc:creator>
				<category><![CDATA[담담당당]]></category>
		<category><![CDATA[뉴라이트]]></category>
		<category><![CDATA[독립]]></category>
		<category><![CDATA[민족주의]]></category>
		<category><![CDATA[시대]]></category>
		<category><![CDATA[이명박]]></category>
		<category><![CDATA[자주]]></category>
		<category><![CDATA[촛불정국]]></category>
		<category><![CDATA[친일파]]></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coreannight.wordpress.com/2008/11/24/2-%ec%96%b4%eb%8a%90-%eb%af%bc%ec%a1%b1%ec%a3%bc%ec%9d%98%ec%9e%90%ec%9d%98-%ec%8b%9c%eb%8c%80%ea%b2%bd%ea%b3%a0-1-2008821/</guid>
		<description><![CDATA[목차 들어가면서 자격 (資格) 과 틀(場)에 대하여 공격루트(1); ‘사냥개 ’기르기 공격루트(2); 친미수구 달래기 공격루트(3); 정권과 야합하기 공격루트(4); 사적 이익집단과 결합하기 공격루트(5); 포스터 설정하기 공격루트(6); 경제동맹 이전 단계 설정하기 공격루트(7); 북한, 중립위치에 놓기 공격루트(8); 우민화 (愚民化) , 중우 정치(衆愚政治) 확산에 협조하기 공격루트(9); ‘괴뢰(傀儡)정부 ’만들기 공격루트(10); ‘구세주 ’로 등장하기 공격루트(11); ‘한일동맹론의 첫 걸음이자 완성을 위하여 일본이란 ‘틀’(場)에 [...]<img alt="" border="0" src="http://stats.wordpress.com/b.gif?host=coreannight.wordpress.com&amp;blog=5630345&amp;post=11&amp;subd=coreannight&amp;ref=&amp;feed=1" width="1" height="1"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id="toc" style="border:1px solid tan;background-color:rgb(255,255,250);padding:2px 10px 0;"><strong>목차</strong></p>
<hr />
<p><a href="#toc_0" class="external" title="toc_0">들어가면서</a></p>
<ol>
<li><a href="#toc_1" class="external" title="toc_1">자격 (資格) 과 틀(場)에 대하여</a></li>
<li><a href="#toc_2" class="external" title="toc_2">공격루트(1); ‘사냥개 ’기르기</a></li>
<li><a href="#toc_3" class="external" title="toc_3">공격루트(2); 친미수구 달래기</a></li>
<li><a href="#toc_4" class="external" title="toc_4">공격루트(3); 정권과 야합하기</a></li>
<li><a href="#toc_5" class="external" title="toc_5">공격루트(4); 사적 이익집단과 결합하기</a></li>
<li><a href="#toc_6" class="external" title="toc_6">공격루트(5); 포스터 설정하기</a></li>
<li><a href="#toc_7" class="external" title="toc_7">공격루트(6); 경제동맹 이전 단계 설정하기</a></li>
<li><a href="#toc_8" class="external" title="toc_8">공격루트(7); 북한, 중립위치에 놓기</a></li>
<li><a href="#toc_9" class="external" title="toc_9">공격루트(8); 우민화 (愚民化) , 중우 정치(衆愚政治) 확산에 협조하기</a></li>
<li><a href="#toc_10" class="external" title="toc_10">공격루트(9); ‘괴뢰(傀儡)정부 ’만들기</a></li>
<li><a href="#toc_11" class="external" title="toc_11">공격루트(10); ‘구세주 ’로 등장하기</a></li>
<li><a href="#toc_12" class="external" title="toc_12">공격루트(11); ‘한일동맹론의 첫 걸음이자 완성을 위하여</a></li>
<li><a href="#toc_13" class="external" title="toc_13">일본이란 ‘틀’(場)에 갇히게 하다.</a></li>
</ol>
</div>
<p>止月 山庄 에서 쓰다.</p>
<h3>들어가면서<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0" class="anchor" title="toc_0" id="toc_0">#</a></sup></h3>
<p>&lt;어느 민족주의자의 시대읽기&gt;를 종합판으로 봐서는 1부와 2부로 , 기간으로는 2008.6.30~8.15까지 걸쳐 중급 단계 로 정리했다. 그 것은 이를 테면 &lt;친일의 재구성&gt;이라는 일본의 의도가 어떻게 한국이란 사회 국가에, 그리고 이 시대에 들어와 있는 지를 보기 위한 오리엔테이션 자료였다. 그 내용을 모르고는 &lt;일본기획자&gt;가 누구이며, 왜 일본기획자에 의해 주도된 ‘사냥개 ’가 서울 땅을 활개치고 있으며, MB 정권이 촛불민심 과의 소통을 그토록 완강하게 거부하는 지를 알지 못한다. 그들에겐 뚜렷한 목표가 있다. 그것을 알리는 기초작업이 바로 전편이었다.</p>
<p>이제부터는 후편으로 들어간다. 앞서 ‘시대 읽기 ’라고 표현했지만 이번에는 ‘시대 경고 ’다. 빨간 불(赤信號)은 이미 켜진 상태다. 신호등의 노란 불이 아니라 파랑과 빨강의 구분법에서 빨간 상태, 즉 소통(疏通)이 아닌 단절(斷絶)이 시작되었다. 일본기획자의 의도는 점차 더 치밀해지고 있고, 그에 맞추어 사냥개들의 활동 또한 면밀해진다. 부끄럽지만 이 시대를 사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모두 외면 회피 무관심이라는 굴종(屈從)을 선택하는 경향도 높다. 촛불민심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이면에는 사회 국가와 시대 역사라는 관점 자체를 ‘사적 이익 ’의 관점에서 보게 만든 우리의 어두운 과거 그림자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누구 탓을 할 일이 아니다. 이렇게 가면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어떤 사회 국가 속의 큰스승(GuRu)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과 그것을 일깨우는 이들이 있다 해도 스스로 방관(傍觀)의 영역에 몸을 숨긴 회색지대의 사람들이 많아진 사회현상이 스스로 ‘뿌린 씨앗 없이 ’그저 나타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p>
<p>나는 앞서 &lt;시대읽기&gt; 자료를 가능한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공유해서 보았다. 그들의 의견도 듣고 싶었고,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이 있는가에 대한 보충도 하고 싶었다.</p>
<p>반응은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두렵다는 표현이다. 오리엔테이션 수준의 자료였지만 그 속에 담긴 사실들에 주목한 사람들이 주로 보인 반응이다. 시대가 이렇게 흘러왔고 가고 있구나 라는 인식과 함께 찾아온 ‘두려움 ’이라는 감성이 사실상 가장 원초적이고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li>
<li>둘째, 주눅든다는 말이다. 나 름대로 사회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난 순간적 반응이다. 일본기획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미 사회 깊숙하게 침투해버린 친일매국세력의 아성(牙城)이 뿌리 깊다는 점에서 대응방식을 못 찾겠기에 이런 식 표현이 나온다. 링 위에서 한 눈에 상대가 나보다 셀 것이라는 판단을 하는 그런 움츠림이 보인다.</li>
<li>셋째, 한숨만 쉬는 부류다. 갑갑한 것이다. 지금까지 스스로 지식인의 부류는 아니라 하더라도 건전한 사회인으로 살아 왔는데 정작 사회 국가는 바람과는 달리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는 게 한심스럽게 여겨진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하러 이렇게 살아온 지에 대한 자책(自責)도 있다. 무지한 게 아니라 무관심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생활인의 숨가쁨이 보이기도 했다.</li>
<li>넷째, 왜 이런 골치 아픈 일을 내가 걱정해야 되는가 라고 반응한 경우다. 생 활 속의 이기주의가 그대로 드러난 케이스다. 지금 자기가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이런 일은 정치하는 사람이 걱정하고, 그 일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하라고 세금 내어서 공무원들이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들이 못한 일을 그냥 평범하게 사는 내가 왜 걱정하고 있어야 하느냐고 한다. 전형적인 회색지대에 머무는 소시민의 이야기다. 소시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식의 협소성(狹小性)도 죄가 된다는 사실, 그것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절대 다수가 모두 애국자일 수는 없다. 그런데 매국노는 욕하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결국 매국노가 된다는 걸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li>
<li>다섯째,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응방식을 물어온 경우다. 나 도 같은 생각이다. 대응이 관건이니까. 그렇지만 사회 국가 내부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심리적인 위축(萎縮)과 갈등(葛藤), 그리고 정권 정부 내부의 친일매국세력이 깊이 침투된 상태에서 과연 어떤 해법이 필요한 지는 깊이 숙고해야 할 과제다.</li>
<li>여섯 째, 불온(不穩)한 글을 봤다는 반응이었다. 이것은 뜻밖의 일은 아니다. 전 달 과정에서 회색지대라고 생각된 사람에게 견해를 듣고자 했던 경우, 그들은 내용보다는 그들이 지금까지 믿고 있던 것을 고집하는 예가 있다. 바로 그런 케이스에 해당된다. 뭔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을 안고 싶지 않다는 측면부터 이런 식의 사실접근이 오히려 국가 안정을 해친다는 보수적 성향-실제로 그는 ‘보수 ’가 어떤 의미인지 정의는 없었다-을 보인다. 그렇다고 그가 이 글을 폐기하지는 않는다. 두고 읽어볼 공산이 크다. 다행스럽게 그렇게라도 한다면 그가 ‘사실 ’에 대해 자신이 할 바를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li>
<li>일곱째, 아무 반응이 없는 경우다. 이건 두 가지가 있는 데 하나는 납득했다. 일단 더 생각해보자는 부류가 있고, 다른 한 경우는 이 자료를 전달했던 시점에 그가 이미 ‘뉴라이트 ’라 는 곳에 적을 두고 있는 케이스다. 그러니까 친일매국으로 지목된 곳에 자기의 사적 이익이건 아니면 믿음을 위해 가입된 경우에 해당한다. 전달 시는 이런 사람을 뺀다고 했었지만 개인의 최근 현황까지는 몰랐기 때문에 자료가 흘러갔다. 아무런 대꾸가 없다. 아마도 이 자료는 뉴라이트 일부에 재 전달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빨리 뉴라이트의 실상을 알고 자구(自救)를 하는 것도 추천할 일이다.</li>
<li>여덟째, ‘설마! ’혹은 ‘그렇지 않다 ’고 ‘대드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논쟁이 길어진다. 딱 한 사람에게서 이 반응을 보았는데, 그가 막 제1부를 보고 난 이후였다. 그에게 제2부까지 전달하고 그는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히 지식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역사까지 생각하고, 다시 시대 관점을 유지해야만 볼 수 있는 일이다. 지엽적이거나 부분적인 사실의 진위여부를 주장할 내용이 아니다.</li>
</ul>
<p>대개 이런 경우들이 있었지만 보편적으로는 6하 원칙에 입각해서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초점이 맞춰지는 중이다.</p>
<p>전쟁은 시작되었다. 일본과는 우리와 다음 시대까지 건 전쟁을 하는 중이다. 그러나 전쟁을 위한 준비는 전혀 없다. 국가가 사실상 이 전쟁을 포기한 상태다. 사회 속에서 일부만이 이 사 실을 모른 채, 과거 역사에서 또는 MB 정권 내의 모순을 발견하면서 전쟁에 뛰어든 상태다. 일본기획자가 의도한 대로 한국 사회 내부의 갈등구조를 교묘하게 형성하였고, 정치적 집권을 기반으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그들 사냥개의 세포가 번진 상태다. 그러니까 전쟁은 매우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포진(布陣) 양상을 보인 셈이다.</p>
<p>과연 그런가?</p>
<p>나는 앞으로 많은 부분들을 이어 정리할 생각이지만 가장 먼저 일본이 추구하는 노선(路線)이 현재 어디까지 이르렀는지를 밝혀볼까 한다. 어려운 일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이지만, 이 사안 자체를 지켜본 당사자로써 내가 먼저 그 대강(大綱)을 정리한다. 기본부터 다시 하나씩 정리해볼까 한다. 한국과 일본은 비슷하게 보이지만 너무 틀린 구석이 많은 국가이고 집단이다. 그 설명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늘 일본이 보이는 침략노선을 전면적으로 파헤쳐 보기로 한다. 보다 많은 후속되는 보충이 있기를 기대한다.</p>
<h3>1. 자격 (資格) 과 틀(場)에 대하여<sup class="tocAnchorContainer"><a class="anchor" title="toc_1" id="toc_1"></a></sup><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1" class="anchor" title="toc_1" id="toc_1">#</a></sup></h3>
<p>사회인류학적 관점에서 일본 사회를 냉철하게 분석했던 나카네 치에(中根千枝) 의 1967년 저서인 &lt;다테(縱)사회의 인간관계-단일사회의 이론&gt;은 일본에 대한 본격적 해부 이론서에 해당한다. 이 책은 일본의 천황제로부터 일본의 집단주의, 그리고 일본이 왜 전후 사과에 인색한가 하는 문제까지 다루는 데 언제나 기초자료로 활용 된다 .</p>
<p>그녀는 일본 사회를 ‘자격 ’(사회적 개인의 일정한 질, 생물학적인 것까지 포함해서)보다는 ‘틀’(場, 일정한 테제에 의해 일정한 개인이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경우)이 중시되는 것이 일본인의 집단의식임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집단이 종적(縱的) 집단으로 변저(邊底)없는 삼각관계로 형성되어 있고, 리더가 1인에 한정되어 교체가 어려운 상태에서 당중당(黨中黨)의 파벌이 형성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맨 꼭대기는 항상 ‘천황 ’이 있는 구도다. 그 사실이 변화된 적은 근현대사에 없었다.</p>
<p>따 라서 일본이 왜 전쟁(제2차 세계대전)과 나아가 팽창주의, 제국주의, 군국주의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가를 들여다보면, 이 구조 속에서 발견된 원초적인 죄업이 보이는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전쟁에서 선택한 명분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패배 또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다. 드러난 이유는 간단하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게 되었고, 책임 있는 자의 처리도 불명확하게 되었던 1945년 이후 일정 기간이 있었다. 삼각형의 맨 꼭대기 즉, 종(縱)의 사회(vertical society)의 최정점에서 행위를 지시를 했던 리더가 그 결정과 과정, 결과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던 것이다. 리더가 인정하지 않은 (실제 책임소재가 가려지지 않은) 전쟁 의 책임을 하부 단위에서 이른바 ‘충(忠)의 의무 ’를 외치는 자격을 가진 자들이 그 틀(場) 속에서 스스로 ‘정당성이 없었다 ’고 외칠 이유는 없었다.</p>
<p>일본 천황제와 제국주의, 팽창주의의 가장 큰 피해 경험자는 한국이다. 그렇지만 정작 가해자는 이처럼 피해를 주었다는 의식이 없다. 피해자가 가해를 외치지 않는 한, 가해자의 이런 집단의식과 구조 속에서는 한 번이라도 반성이나 사과를 해야 할 마음에서 우러나는 심사(心事)가 형성되지 않는 셈이다.</p>
<p>이것은 단순하지 않다.</p>
<p>‘패전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는 생각은 단순히 ‘제국주의, 팽창주의에 잘못이 없다 ’는 것과 동일어가 아니다. 그들 내부에서 삼각형의 꼭대기를 제외한 어느 누구라도 ‘파국과 분열 ’을 통한 이합집산이 가능하고, 또한 이 에너지를 분출하는 데 있어 일본 내부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까지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자신들의 ‘각자 알맞은 위치 찾기 ’수준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의문을 표시해봐도 사안은 동일한 답변과 결과만 주어진다. 즉, 이것은 구조적인 틀(場)이라고 본다. 리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들 내부의 집단의식이나 구조가 내부 혹은 외부의 강한 충격에 의해 바뀌지 않는 한, 이 생각(정당하다는)은 바뀔 개연성마저 없는 것이다.</p>
<p>이런 생각을 기저에 둔 일본의 ‘집단 ’이 한반도를 상대로 하여 그들의 정당성을 재 입증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그들 내부에서는 ‘비정상 ’일 터이다. 당중당(黨中黨)의 구도에서 내리는 결정이 아니라 맨 위 꼭지점에서 내려지는 명령이라면 이야기는 더 달라진다.</p>
<p>일왕이 명령구도 속에 있는가 아닌가, 그것을 굳이 여기서 증명한다는 것도 우습다. 벌써 현실로써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있다. 친일매국의 대열(隊列)이 이어지는 현상은 그 어떤 것보다 확실한 증거에 해당한다. 그리고 일본을 들여다보면 해답이 거기 있다. 삼각형의 맨 위 꼭지점에서 그들을 관장하는 한 존재가 보인다. 물론 ‘그’마저도 이 집단의 지향점에 의해 그 흐름에 따라가는 존재일는지도 모른다. 집단주의가 가는 길에 어느 한 사람이 쉽게 반대를 던질 수 없으니까.</p>
<p>2007.12.22 어느 블로그에 올린 아래 글을 보충해서 싣는다. 관점은 분명히 다르다. 표면적으로 ‘일본 천황 ’의 존재는 제약된 것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그래서 천황제 폐지 같은 시나리오도 나온다. 그 가능성을 추론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이지 않다.</p>
<p>한국 사회에서는 일본을 보는 여러 관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이 존재하는 데는 그 이면에 이처럼 사회인류학적 분석으로도 감당하지 못할 일본의 ‘집단 ’이 가진 그들만의 접근법이 있기 때문이다.</p>
<p>아래 글은 나카네 지에 교수의 이론을 바탕으로 어떤 블로거 (재봉틀, kwank99) 가 쓴 글이다. 일본사회와 천황제라는 관점에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p>
<p>[참고자료]</p>
<p>http://blog.naver.com/kwank99</p>
<p>일본 사회와 천황제의 관계에 대한 고찰</p>
<p>한국에서는 예외로 알려져 있지 않은 일본의 천황제를 사회학적인 측면을 분석하여 한반도문제의 앞날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일본사화의 단편을 살펴보자. 일반적인 군주제에서 말하는 임금과는 내용적으로 다르다는 의미로 일본의 왕제를 일본 국내 용어인 천황제 등을 사용하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nbsp;</p>
<p>[나 카네(中根)의 세로의 사회론에 나타난 일본인 ]<br />
이 글은 주로 나카네 치에(中根千枝)의 &lt;세로의 사회의 구조&gt; &lt;세로의 사회의 역학&gt; 등에 나오는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그녀는 서양의 사회에서는 각 개인이 절대신과의 관계 속에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사회의 최소단위로의 개인이란 자아를 형성하고 각 개인은 자주적인 의지로 옆으로 연관 관계를 넓혀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자신을&nbsp;스스로가 무차별 평등한 상태로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소속 소집단에 둘러싸여 있을 때 “소집단 속의 나”를 인식한다. 이 소집단은 마치 계단식으로 된 나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사과가 열리듯이 세로의 구조를 구성하고 있다.&nbsp;</p>
<p>여기서 나무는 일본 사회가 주는 유일한 ‘서열’의 기준을 상징한다. 일본인으로써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이 서열은 어떠한 개인적인 힘도 바꿀 수 없다고 보통 일본인은 생각한다. 같은 동양권에서도 한국ㆍ중국 사회도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지만 한국ㆍ중국 사회에서는 개인을 판단하는 여러 가지 기준(가족관계, 직장에서의 지위 등)이 개인을 판단하는 데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 일본사회의 서열의 기준과는 다르다. 일본에서 서열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개인의 능력이나 출생의 귀천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세로의 사회에서의 서로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며 고립된 각자의 소속 소집단 안에서의 위치와 그 소집단의 사회적인 영향력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원칙 없는 애매모호한 것이다. 그래서 회장보다 실질적 권력을 가진 전무나 부장이 회사 안에서 경영권을 쥐고 있는 경우가 있고 새 종교의 지역집회에서 교조보다 지역 책임자가 더 강한 사회적인 규제력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p>
<p>한국 언론에서 흔히 일본을 비판하는 주된 제목은 ㈀ 논리가 애매하고 논의의 요점이 흐리다, 혹은 속을 떨어놓지 않다는 것과 ㈁ 감정적이며 어떤 때에는 아무런 의미 없는 물의만 일으키는 정치적 발언(정치가의 망언ㆍ그 뜻의 본성이 애매한 사과 선언 등)을 한다는 두 가지 점이다. 한국인도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처럼 일본인에게 발언의 원칙이나 원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발언을 요구하고 있는 샘이다.</p>
<p>세로의 사회란 결코 권력이나 권위가 위에서 밑으로 아니면 밑에서 위로 한쪽 방향에 전달된다는 뜻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본인에게 권력이나 권위가 어떠한 방향으로 흐르든 어떠한 역학구조를 갖든지 상관없다. 어차피 원리원칙이나 구미에서 말하는 체제가 성립될 수 없는 일본사회에서는 무의미한 것이니 말이다. 개인도 사회를 움직이는 원리도 원칙도 없이 사회적인 원동력만으로 움직이는 사회, 그것이 바로 일본사회의 참모습이 아닐까?&nbsp;</p>
<p><strong>[현대 일본인과 천황제 ]</strong></p>
<p>애매하고도 막강한 정치ㆍ경제력을 지닌 괴물낙지와 같은 일본사회에서 천황제의 사회학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일본의 천황제에 대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2차 대전 이후의 일본헌법에는 ‘천황 ’(일왕)은 어떠한 통치행위도 하지 않는 일본의 상징’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이 지구상에 일본의 천황처럼 무력한 임금은 따로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p>
<p>오늘날 왕제가 존재하는 대부분의 국가는 입헌군주제를 채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입헌군주제국가에서 왕은 직접적인 통치행위에 대한 각 항목을 혼자 결정할 권한은 없지만 로마의 교황처럼 ‘평화에 대한 기도’와 같은 추상적인 관념의 제시라는 방법이라도 임금의 뜻은 정치에 반영할 정도의 실질적 권력, 권위 또는 발언권을 갖고 있다.</p>
<p>그렇게 볼 때 일본의 천황은 이 세상의 모든 권력, 권위 혹은 발언권이 전혀 없지만 일본정부라는 한 국가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기묘한 존재이다. 역사적으로도 천황이 다른 나라의 왕처럼 권력, 권위 혹은 발언권을 행사하며 정치ㆍ경제적인 통치행위에 참여하여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한 것은 상고ㆍ고대를 제외하면 예외적으로 임금다운 기세를 올린 몇몇뿐이다. 15세기말의 오닌(應仁) 이후 수십 년 동안은 생계와 제사에 필요한 비용을 제대로 조달 못 할 정도 경제력을 잃은 적도 있고 에도(江戶)시대에는 에도 막부의 뜻대로 천황을 바꾸기도 했다.&nbsp;</p>
<p>일본의 제국주의시대의 천황(특히 메이지(明治)왕과 쇼와(昭和)왕은 역사적으로 봐서 예외적인 존재이다. 식민지시대에 한국인이 접했던 ‘신국 일본’은 실은 시대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개화 당시 일본인은 오늘날 일본 열도 전체를 ‘내 나라ㆍ우리 나라’라고 생각하는 개념자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예컨대 19세기이전에 현재의 ‘나라(奈良)현(당시의 야먀토ㆍ大和국)’에 거주하는 주민은 제주도만도 안 되는 나라현이란 지역을 ‘내 나라ㆍ우리 나라’라고 생각하고 근접지역인 쿄토(京都) 등을 ‘남의 나라ㆍ다른 나라’라고 생각했다.&nbsp;</p>
<p>이들에게 일본열도 전체를 한 국가로 인식시키고 작디작은 ‘나라’의 주민을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히 강압적 정치형태와 ‘일본인이란 개념을 나 타내고 대표(상징)’하는 것이 필요했던&nbsp;것이다. 이 때 각 지역의 민간신앙의 일종인 진냐신토(神社神道)를 국가 종교화한다는 방안은 안중근에게 암살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이 개화를 위한 구미순방 시 에 ‘당신의 종교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라의 종교라는 착상을 얻은 것이라고도 한다. 당시 상황으로는 이토가 개화기 일본에 독재 정권을 성립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코 단독 집권 독재주의로는 흐르지 않았다는 것도 매우 일본적인 현상인 듯하다. 독재 정권이란&nbsp;독재자 혼자의 생각 혹은 감정이 직설적으로 반영될 수 있지 않으면 출현하지 못하는 정치 형태이기 때문이다.&nbsp;</p>
<p>제국주의 당시에 펼쳐졌던 맹렬한 국수주의 교육은 2차 대전 패전과 아울러 정부차원에선 폐지되었지만 천황제가 지니는 사회학적인 의미는 개화기 이 후에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나는 그 핵심적인 사회적인 요인이 천황제의 존재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강력한 미군 군정도 폐지하면 일본 사회에 혼란을 일으킨다고 판단하던 천황제는 과연 사회학적인 관점에서는 무엇일까?&nbsp;&nbsp;</p>
<p>여기서 한번 사회학적 기능면에서 천황제는 어떠한 역할을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천황의 24시간의 일상적 생활양식 또는 행동 원칙 없는 일본인이 사상이나 종교를 초월해서 모방할 수 있는 모범상(Stereotype)으로 작용한다. 특히 2차 대전 패전 이후에 ‘천황의 인간선언’을 하고 천황과 그의 일족이 전국을 위문 방문한 것은 그때까지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일본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신문과 라디오는 천황의 위엄 있는 군복차림 대신 식탁 앞에서 신문을 보고 평복으로 가족과 정원을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민주주의국가가 된 일본에서 일본인으로서 살아가는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은 사회학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p>
<p>일본인에게 민주주의를 이해시키는 데 사상교육이 실시된 적은 거의 없다. 대신 민주 사회에서의 생황 양식의 제시, 마당에서 한 식탁을 둘러싸고 가족이 함께 식사와 단란을 즐기며 산책을 즐기며 어른ㆍ아이 가릴 것 없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대화하여 연애결혼을 하는(거의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헤이세이(平成)왕의 결혼에도 테니스코트에서의 만남에서 청혼하는 데이트 장면이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다) 등의 것이 ‘황국(皇國) 일본의 적자(赤子: 무심껏 어버이를 따르는 아이처럼 이상적인 인간)’이었던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변혁시키는 데 필요했던 것이다.</p>
<p>영국의 왕실 일가는 영국인과 대영제국의 회고적인 낭만을 지니며 화려한 상류층을 상징하는 각종 행사(윈 블던 테니스 선수권 등)의 주인공이며 패션과 학문의 수호자이며 가장 매혹적인 가십의 주인 역학을 지니고 있지만 일본의 천황일가는 항상 일상생활의 가장 사소 한일 까지 하루 종일 철저히 공개된 존재인 것이다. 자녀의 교육방법, 주고받을 선물의 기준(천황일가는 집에서 만든 카스테라를 선물로 받고 싶어한다), 인사 방법이나 인간관계부터 서서 걷는 방법(유치원에서 꼼짝 말고 바르게 앉는 훈련을 시키고 겨울에 한풍 마찰을 하는 등 특색 있는 교육은 오늘날에도 비교적 널리 실시되어 있다)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으로서 모방해야 할 생활의 모든 것을&nbsp;보통 일본인들이 모방할 수 있도록 공개된 존재가 천황일가이다.&nbsp;</p>
<p>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주위 사람에 맞추어서 다른 사람을 따라 하면 된다.’는 막연한 방침(?)을 가진 일본인에게 확실히 천황은 지금도 그에게 고유한 사회적인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샘이다. 실제로 그들의 공개된 완전한 일본인으로의 생활은 수많은 궁내청 직원과 경호원 등의 철통감시하에서 이루어지는 중노동인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행동은 지나칠 정도로 섬세한 배려 혹은 거추장스러운 간섭으로 만들어진 것이다.</p>
<p>오늘날 헌법에 의하면 천황은 이러한 생활에 부담을 느낀다 할지라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의지로 퇴위할 수 없다. 개화기 이전에는 상황(上皇) 혹은 법황(法皇)이란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퇴위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는 엄격히 일부일처제를 지켜야 하며 그 지위는 천황의 직계의 장남이 이어받는다. 2차대전 후에 미군이 황족의 범위를 크게 축소시켰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황족은 쇼와(昭和)왕의 의 직계손과 그의 형제들뿐이다. 영국왕실이 지금도 막대한 친인척망을 자랑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현 시점에서는 헤이세이(平成)왕의 두 아들에게는 남아가 없고 기묘하게도 공식적 범위내의 황족에게도 자식복이 별로 없는 것 같다.&nbsp;</p>
<p>일본의 천황에게는 종교적인 기능도 있다. 우선 수많은 조상제사 등 의식을 치 뤄야 한다. 무라카미(村上重良)의 &lt;국가신도(國家神道)&gt;에 의하면 제국주의의 시절에는 종교이면서도 정치적 통치 도구로서 개화기 이후에 속성으로 만들어진 국가 신토(神道)는 2차 대전 패전으로 완전히 해체되었다. 때문에 오늘날 천황 및 그의 일족이 지내는 크고 작은 제사 등의 행사는 일본의 민속 종교에 속하는 진쟈신토(神社神道) 양식을 따라서 사적으로 거행된다고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다.&nbsp;</p>
<p>그러나 앞에서 논한 것처럼 일본인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적인 규정력으로선 법이 어디까지나 2차적인 존재이다. 실제로 쇼와(昭和)왕 장례는 몇 개월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서 거행된 화려한 국가행사가 되었고 헤이세이(平成)왕 즉위식 또한 그리하였다.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준수하여 일단 공식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황족을 제외하는 모든 일본국민에게 부여되어 있지만 한 나라를 상징하는 인물의 종교가 진쟈신토(神社神道)인 만큼 그 사회적인 영향력은 아직도 막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p>
<p>천황과 관련된 행사에 실제로 관여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공무원, 지방공무원 및 정치인은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종교의 자유에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뜻도 된다. 이러한 상황은 민주주의의 원칙마저 종이 한 장의 가치로 전락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천황의 종교적인 이러한 기능에 대해서는 비판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일본사회의 사회적 압력으로 가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쇼 와(昭和)왕 사망 시에도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던 나가사키(長崎)시장은 정치적 공격과 우익분자의 총탄을 한 몸에 맞게 되었지 않았던가?</p>
<p>천황제와 일본 사회의 관계를 볼 때 지금도 과연 일본은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인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살펴 본 내용으로 일부 과격한 우익세력의 엉성한 행세가 대다수 국민이 거리끼는 바인데도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일본인은 이미 자신을 ‘일본인’으로 인식하며 살기 때문에 천황제를 비롯한 국가신토(神道)가와 관련된 제목은 매우 미묘한 문제이다. 일본 사회에서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은 앞으로 눈여겨볼 만하다.&nbsp;&nbsp;</p>
<p>공식적인 의미로 천황제가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분야의 또 하나는 외교사절로의 기능이다. 태자비가 외무성(한국의 외무부에 해당)의 공무원출신인 것을 봐도 일본 황족의 외교사절로의 기능은 현실정치상 가장 중요한 역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외무성 의도와 달리 일본사회 안에서의 일본 국민에 대한 사회학적인 영향은 그가 일본이란 나라를 상징적으로&nbsp;대표하고 있다는 정도의 인식을 주는 이를 강화시킨다는 정도이다.&nbsp;</p>
<p>외교적 기능을 지닌 천황제는 일본 사회에서 영어 혹은 외국어교육의 진흥이나 외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절한 대응에 대한 인식을 심는 데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촌 시대에 돌입하면서 사회적인 원칙 제시 없이 ‘○○의 사정을 감안하여’, ‘○○한 방향으로’, ‘○○적인 자세로’ 나아간다는 식의 빈약한 국제정치 감각을 개선하는 등 실질적인 일본 정치의 세계화에는 천황제가 별로 기여하지 않고 있듯 보인다.</p>
<p>그 외의 기능으로는 의식주, 음악, 예술 등에 관련된 전통문화의 수호자 역할, 상류층 사롱의 주인 역할, 자선, 자연보호운동, 체육행사의 상징적 명예직의 수행 등 어느 나라의 왕이든 다해야 할 임금으로의 의무를 일본의 천황일가는 분담하여 수행하고 있다. 천황의 개인적인 직업은 연구자이며 전문분야의 연구자를 두고 작은 개인연구소를 운영한다. 그의 연구 분야는 그 사회적인 영향이나 개인적인 차질을 고려하여 어떠한 수익성이나 학자간의 경쟁과 관련될 수 없으면서도 사회적인 공신력이 있는 분야를 전문가의 조심스럽게 선정하여 결정된다. 쇼와(昭和)왕은 해변의 소형생물에 관한 연구를 했으며 지금의 태자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세의 교통사정에 관한 논문을 썼다. 영국과 달리 황족의 별거, 이혼 등 사회적으로 ‘불미스럽다’고 판단되는 행동은 허용되지 않으며 평민에게 시집가서 평민이 된 공주에게도 이 원칙은 적용된다. 천황을 둘러싼 그러한 윤리적인 행동이 일본인에게 얼마만한 사회적인 규정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꼬집긴 어렵다. 일본인은 계층이나 직업 혹은 직업 집단마다 다른 윤리ㆍ도덕적인 기준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소집단과 합일된 사회적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천황이 제시하는 윤리ㆍ도덕적인 기준이나 행동이 사회적인 압력이&nbsp;되기에는 나라는 너무 틀이 거대하지 않을까 사료된다.</p>
<p><strong>[가 상 시나리오: 천황제 붕괴 ]</strong></p>
<p>천황제는 앞에서 언급했듯 일족의 장남이 계승하는 제도로 되어 있지만 현재로는 아들 복이 썩 좋은 편이 아닌 모양이다. 현재 태자의 형제 혹은 사촌, 삼촌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도 아들이 없다. 역사적으로 여왕을 선호하는 영국과 달리 공주가 여왕이 되면 정치가 어지러워지던 일이 많아서 남아가 없는 경우 여왕이 서는 확률은 낮은 것으로 예측된다. 거기에 영국과 가장 다른 것은 일본의 여왕은 황후가 아들이나 손자대신 여왕 자리에 오른 고대의 사례를 제외하면 정치적인 억지로 공주가 여왕이 되었어도 그녀의 결혼을 허락한 일이 없다는 것도 걸림돌이 된다.&nbsp;</p>
<p>예를 들면 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남편은 ‘ 버킹검 公’이지만 그에게는 ‘공’이란 왕자와 대등한 지위(상징적인 사회적 위치)와 친위대의 상징적인 통솔자라는 현실적인 직업(실제적인 사회적 위치)이 있으며 그의 사명은 여왕을 철저히 경호하는 ‘기사(knight)’로서 사회심리학적 역할 분당까지 확립되어 있다. 일본의 황족은 어떠한 현실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도 규정되고 여왕의 남편에게 줄만한 어떠한 사회적 위치를 역사상 고안해 낸 적이 없다.&nbsp;</p>
<p>이 두 가지 문제만 해도 2차대전 이후에 축소되어 그 기반이 약해진 천황제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대문제이다. 일본에서 가문의 계승자가 없는 경우에는 일족 혹은 거의 동등한 가격(家格)의 집안에서 입양하는 것이 전통이지만 공식적으로 인정된 현재의 황족에게도 자손은 없다.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있지 않은 친인척부터의 입양은 전통 관습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일본의 현재 체제를 흔들 정도로 물의를 일으킬 수 있으며 개화기 이후부터 지속되어 온 일본사회의 안정적 기반에 큰 타격을 줄 것은 틀림없다.&nbsp;</p>
<p>소설 &lt;일본침몰&gt;에 나타난 듯 일본열도가 침몰하기 전에 일본사회에서의 천황제 붕괴로 인한 ‘일본사회 침몰’은 현재 상황을 볼 때 늦어도 30∼50년 안에는 충분히 있음직한 미래도인 것이다. 만일 천황제가 일본사회에서 폐지되면? 경제ㆍ정치 양면에서 일본의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는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정세의 변수가 될 것이다.</p>
<p>첫 번째 가능성은 자손이 결코 생기지 않는 경우이다. 태자비와 왕비가 40세를 넘어도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우선 천황제 위기론 혹은 일본사회 위기론이 본격적으로 일본 국내에서도 논단에 등장할 것이다. 이 때 아시아 각국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막대한 군사 대국으로의 길로 극우파가 이끌어가면 어떻게 될까? 만일 일본이 이 길을 선택하는 경우 수없이 많은 일본인과 아시아 등 각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역사상 유례 없는 거대한 비극이 될 것이다. 고대국가 시절부터 전해져 내려온 천황제가 붕괴하면서 일본정부가 붕괴하면 일본사회는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와륵의 더미가 되고 말 수도 있다.</p>
<p>만일 이 시나리오대로 될 것 같으면 일본이란 땅 자체는 남아날는지 모르지만 일본사회의 사회-문화적 구조는 뿌리 뽑히듯이 사라져서 무정부상태가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극도 혼란이 들이닥쳐서 국민은 도탄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 동안에 사회질서 및 치안을 유지하느라 노력해 온 반동으로 세계 역사상의 어느 무법지대보다도 황폐한 상태에 빠질는지도 모른다.&nbsp;</p>
<p>이 경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ㆍ정치 양 방면에 걸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nbsp; 일본과의 합작 기업, 제휴 기업 및 현재 법인의 대부분이 어느 때 갑자기 두산 혹은 부두위기를 맞이하면 국가경제가 어떻게 될지는 상상만 해도 겁날 지경이다. 그러나 갑자기 제품의 시장 자체가 몽땅 사라져버리면 어느 나라 정부라 해도 손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일본 자본 점유율이 높은 한국에서 갑자기 일본 자본이 물거품이 된다면?&nbsp;</p>
<p>물론 미리 사정 연구, 인재 육성 등의 대책을 세워두면 자국에 도움이 되는 일본인을 특별이민으로 영구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 자본 및 기술을 아울러 자국에 정착시킬 수도 있다. 이만큼 과감한 대책을 세워두면 일본이 축적해 온 그 많은 유형ㆍ무형의 재산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이 귀속시키면서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정부가 진짜 경제적으로 파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이런 가상도 우주여행이나 석유 발견의 꿈만한 현실감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p>
<p>두 번째 시나리오는 계승자 문제와 아울러 일본 국민들 사이에 천황제 폐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세력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질 만큼 자라나는 경우이다. 거기에 경제 위기를 맞이하게 되면? 하는 것이다. 겉보기와 달리 일본의 극우익 세력은 갈수록 힘이 약해질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망언소동도 어쩌면 일본의 우익세력의 약화와 관련시켜서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가는 데가 있다. 마치 이미 술을 과음한 이가 ‘나는 취하지 않았다’고 외치듯.&nbsp;</p>
<p>완강한 전전(戰前)파 국수주의자도 이제는 늙었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1944년말에 식량사정의 악화(참전용사의 집 가족은 식량배급 사정이 좋았다)로 2 차 대전에 소년병으로 참전하던 우리 아버지도 내년이면 만으로 칠순이 넘는다. 2차 대 전 패배 이전의 자신의 삶이 부당하게 손상되었다는 마음의 상처를 지닌 전전파 국수주의자가 지도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일본의 우익 세력 내부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있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도 전후파에게는 무엇을 왜 지켜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시대가&nbsp;흐르면서 애매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p>
<p>만일 극우파가 쇠퇴하면서 극좌파라고나 할 수 있는 세력이 기세를 올리면서 천황제 폐지와 공화제 아니면 다른 신체제로의 혁명을 외친다면? 이 경우에도 일본의 정치-경제적 기반이 얼마 동안이나마 마비상태가 될 것이다. 인근 국가로는 우선 체제 위기를 회피한다는 정치 과제를 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nbsp; 아마 혁명을 외쳐도 결코 짧은 시간 내에 성과를 올리지 못할 것이다.&nbsp;</p>
<p>천황제를 계획적으로 신정부가 정치적 압력으로 폐지시킨다 해도 산사태 난 것처럼 무너져가는 일본사회ㆍ문화적 구조의 붕괴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일이 터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사태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자의 시나리오보다 물신 양면에서 희생 혹은 피해는 적어질 수 있다. 정권 자체가 다른 형태로 이행되면 경제적인 붕괴도 어느 정도까지는 막으면서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p>
<p>제2시나리오에 가까운 사태가 일본 사회에 일어날 경우에는 아시아 각국도 경제적인 타격은 그다지 결정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에 근사한 사태는 그만한 능력자가 일본국내에 지금 숨어있는 경우에 한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훌륭한 인재는 해외에 유출하기 쉬운 일본에 과연 그만한 인재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면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 중 수상 후에도 일본에 남은 이는 에사키 다이오드를 발명한 에사키(江崎)박사 1명뿐이다. 일본 사회의 분위기는 유능한 일본인이 마음껏 활약하기에는 너무도 짓눌리는 듯하여 답답한 말세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nbsp;</p>
<p>예외로 내가 있음직하다고 생각하는 스토리가 바로 다음에 소개하는 제3시나리오이다. 천황제의 존재의의나 이를 뒷받침하는 일본사회자체의 취약화에 따라 천황이 스스로 퇴위하겠다고 의사표현을 하면 어떻게 될까? 의사 표현의 기회자체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국회 개회 인사는 천황이 한다. 만일 이 도중에 불상사가 생기면 그 책임은 국회 의장이 쳐야 하는 것으로 지은이는 알고 있다. 이제까지만 해도 천황을 국회 가장 높은 자리에 인도하다가 뒤돌아서지 않고 뒷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는 습관을 고령과 육체적 쇠약으로 못하고 자리를 물러선 의장은 여럿이 있다. 국회의장이 천황의 폭탄선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승낙하면 천황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p>
<p>이 경우에는 곳곳에서 천황제가 과연 얼마나 오늘날 일본 사회를 뒷받침하는 힘이 되어 있는가에 대해 거론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정치인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관심 있게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경우 일본사회는 천황제 없는 일본사회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실질적인 준비작업을 할 충분한 시간을 계획적으로 가질 수 있다. 둘러싸는 귀족 혹은 특수계층(로마의 주교단이나 티벳의 라마교 상위자 들 등)도 없고 친인척 범위도 국한되어 사회학적은 집단으로서 상당히 제한되었던 데다가 계승자문제까지 있을 것 같으면 복고 사조가 고조된다 해도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p>
<p>물론 티벳의 달라이 라마처럼 ‘내가 달라이 라마라는 제도를 없애겠다’고 의사 표현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달라이 라마에게는 선택 받은 자로서 어떠한 결정이든 다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일본의 천황의 종교적 지위를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한 역사가 일본에는 역사적으로 명백 하지 않은 고대에는 몰라도 그 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nbsp;</p>
<p>그러나 이는 천황제를 기반으로 하는 독재적인 복고정치를 펴 나가겠다는 것보다는 일본사회에 주는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충분한 준비기간과 준비작업을 통해서 안보ㆍ행정ㆍ사상 등 각종 문제에 대해서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길 것이며 그만큼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 정치ㆍ경제 체제면에서도 일본에 고유한 문제로 대부분이 받아들일만한 상황이면 바다 건너의 남의 일로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nbsp; 대일본 외교면에서도 일본 사회 상황 변화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펴 나갈 계획을 세우며 진행할 수 있다.&nbsp;</p>
<p>지금의 태자는 지나가는 길마다 신호등을 세우며 각종 행사 시간에 맞추던 예전의 방법을 ‘국민과 똑같이 교통법규를 지켰으면 좋겠다.’고 발언하여 기존의 방법을 시정할 기세가 있는 인품인데다 사학 등 사회과학 분야에 강한 두뇌를 가졌으며 비는 공무원 출신의 재원이다. 위기 상황에&nbsp;적극적으로 대응할 정도의 군자다움은 가진 인물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p>
<p>일본에서의 천황제 폐지 여부는 일본인으로의 자각심을 이미 생활과 삶 속에 지니는 일본인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붕괴직전의 징후를 보이고 있고 이를 밑받침하는 철학에도 금이 간 오늘날 상황에서 일본사회가 이번 세기말을 어떠한 슬기로움으로 극복할 것인가? 이는 이웃나라 한국에서도 충분히 살펴 볼 필요가 있는 중대사인 것이다. 이를 냉정하게 조심스러운 관점에서 세세히 지켜봄으로써 한반도가 일본식민지시대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나름의 길을 나아갈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한번 한국인에게 걸어보고 싶다.</p>
<p>천황 제 폐지론은 일본국내에서는 말 못할 분야의 하나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위기 분위기와 아울러 시대가 변해 가는 각가지 징후가 보이면서 세계화로의 바람이 단순한 경제ㆍ사회적인 위기로만 생각할 수 없는 오늘날에 이웃 나라인 한국에서도 일단 이웃의 동향을 깊이 알아 둘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p>
<p><strong>[맺음말 : 한국과의 관계 속에서 ]</strong></p>
<p>일본 사회가 각 섹트가 고립되어 있으면서도 애매한 중심 구조를 가진 사회가 된 것은 결코 근대화로 인한 변화로만 볼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립된 지역 사회간의 사회ㆍ경제적 교류는 주로 도시ㆍ진쟈(神社)ㆍ절 등 전통적 지역 사회 단위로 보면 주연(周緣)에 속하는 집단의 손으로 이끌려 왔다. 그러나 전통적인 지역 사회 단위가 일본의 사회-문화적 구조와 하나가 된 후인 오늘날에는 앞으로의 새로운 방향을 국민에게 제시할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p>
<p>나는 이 글을 통해서 한국인은 지성인 가운데서도 오해 혹은 아예 무시당하고 있는 일본사회 속의 천황제에 대한 논리적인 이해와 일본사회에 일어날 수 있는 가능한 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에 대해서 주의를 상기시키고 싶었을 뿐이다. 한반도는 지금 역사적으로 삼국통일 이후의 최대의 과제인 남북통일 문제를 안고 있다. 통일 문제의 최대의 어려움은 언어와 습관은 본래 역사적으로도 오랫동안 한반도가 ‘한 나라’로 단결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1세대 이상의 오랜 세월 동안 서로 사회ㆍ경제ㆍ정치 등 각 방면에서 격리되어 온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점이다. 정치적으로 억지로 하나로 만드는 것까지는 쉽지만 그 후의 사회적 융화 문제는 전에 격리된 세월만큼 걸리는 가까운 미래의 역사적인 과제이라고 말할 수 있다.</p>
<p>위기의 역사를 맞이하기 직전인 한반도에서 만일 한반도만이 격변 상황에 있을 것이라는 현재의 관측대로만 행동할 것 같으면 또다시 날치기정책으로 땜질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회ㆍ정치적 불안정 요인을 한국인 스스로가 남기게 될 것이다.</p>
<p>그러한 의미로 이웃인 일본 사회의 상황에 대한 인식과 예측은 반드시 한반도와 한국인을 돕는 힘이 될 것이다. 예측이란 그대로 일이 되라고 세우는 것이 아니라 유연한 대응을 해야 할 때의 상황 판단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로 식민지 시대의 아픔에서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시도해야 할 한반도에서 ‘실은 일본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는 인식이 필요할 것이다.</p>
<p>* 주: 이 글 가운데 특히 ‘천황제 붕괴 시나리오 ’등은 현실적 가능성이 없는 부분들이 많다. 참조해서 보길 바란다.</p>
<p>일본이란 사회구조와 집단의식을 살펴본 이유는 오늘 한국 사회 국가에 침투된 일본기획자 의 의도와 실행된 현상을 살펴보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전제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은 제국주의가 아니다 ’라거나 혹은 ‘일본의 과거 제국주의는 잊자 ’는 말은 그야말로 망언(妄言)에 불과하다. 일본은 반드시 한반도를 향해 발걸음을 딛게 되어 있고 이미 와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서 이 글을 보고 읽을 가치는 없다. 그런 사람은 여기에서 읽기를 멈추 길권한다.</p>
<p>과연 그들은 어느 수준으로 대 한국, 한반도 기획을 진행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차례다. 이것을 살펴보면 그들의 의도와 방향이 드러날 것이다. 그에 대응할 수 있는가, 어떤 방법이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지금은 밝혀보는 것이 우선될 때다.</p>
<h3>2. 공격루트(1); ‘사냥개 ’기르기<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2" class="anchor" title="toc_2" id="toc_2">#</a></sup></h3>
<p>어떤 사람 이 정치 계에 들어가서 동화되는 과정은 흡사 보호색을 사용하는 선수인 카멜레온 같다고 한다. 자기 합리화를 하지 않으면 정치를 못한다는 생각, 그리고 시대가 바뀌었으니 그에 합당한 사고를 한다는 식의 이른바 변화에 대한 적극적 능동적 대처를 부르짖는 다. 문제는 그러는 가운데 평생을 일관된 심사로 살지 못하는 소위 변절을 변신이라고 부르는 상황도 발생하게 된다. 훼절(毁節) 본능이 사람에게는 누구나 가진 속성이지만 유별나게 한국 정치사에서는 이런 모습이 당연하게 인식되고 있다. 과연 어느 수준까지를 ‘변화 ’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p>
<p>도저히 인정하지 못하는 수준도 있다. 영혼을 포함한 ‘자신 ’(自身)을 누군가에게 파는 행위까지도 벌어지는 것, 그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이기도 하다. 마치 대한제국을 일본에게 ‘매국 ’(賣國)해버린 자들처럼 그런 인물들이 속속 서울에 뿌리를 내린다. 보수라는 이름으로 우익이란 명분으로 다가서는 중이다. 이것은 훼절 수준이 아니라 매국행위를 하는 매국노로 밖에는 볼 수가 없다. 그들에게도 그들 식의 변명은 있겠지만, 그 손바닥으로 하늘을 덮기는 어렵다.</p>
<p>내가 주목한 인물은 ‘김진홍 ’이었다. 한일수교협상 반대 시위에 이명박, 김진홍이 함께 했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두레공동체 운동이라는 사회개혁가 활동을 해왔던 그의 변신은 뉴라이트전국연합이라는 희대의 친일매국집단을 형성한 당사자이면서도 그의 친일 논리가 바깥으로는 잘 알려지고 있지 않다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좌파의 어둠 ’을 없애기 위해 시작했다는 뉴라이트 활동의 진짜 배경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p>
<p>2007년 6월경 이후 그가 직접 쓴 두 편의 글 가운데 드러난 ‘인식 ’을 보자. 일본을 방문해서 쓴 글이니 한국-일본-한국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전체를 조망해보기 위해 일단 전제해 본다.</p>
<p>“어제 7시 30분에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 도쿄에 왔다. 오늘 동경에서 열릴 민단의 지도자 대회에 강연이 있어서다. 이번 일본 방문에는 이동복 선생, 조갑제 선생, 유석춘 교수가 일행이다.</p>
<p>나는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우리는 일본한테서 배울 것이 많은 나라임을 새삼 느끼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일본을 너무 소홀히 생각하는 감이 있다.</p>
<p>어느 분이 우스개 삼아 말하기를 남한은 일본을 우습게 알고 북한은 미국을 우습게 알고 있기에 통일이 되면 세계최강국이 될거라는 말을 했다. 우스개 소리이긴 하지만 뼈있는 말이라 여겨진다.</p>
<p>일본은 한국을 가까이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지만 한국은 일본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우리가 손해 볼 것이 많다.</p>
<p>한국인들 중에는 한일관계에 있어 과거사를 자꾸 이야기한다. 과거에 일본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일본을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p>
<p>그러나 내 생각은 그러기에 일본을 열심히 연구하고 우리보다 앞선 것들, 우리에게 유익한 것들을 열심히 배워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p>
<p>나는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해방되던 해인 1945년 가을에 귀국선을 타고 귀국했다. 그래서 5살 될 때까지 일본에서 자랐다. 일본에 오래 사셨던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홀로 기르시면서 일본 이야기를 자주해주셨다.</p>
<p>어머니의 의견은 “우리가 일본 사람들한테서 배워야 할 것이 3가지가 있노라 ”고 하셨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는 일본국민들의 독서열이다.</li>
<li>둘째는 일본사람들의 정직성이다.</li>
<li>셋째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 사람들의 습관이라 하였다.</li>
</ul>
<p>물론 우리 형제들은 그런 말씀하시는 어머니께 반발하곤 하였다. “일본사람들이 그렇다지만 우리 민족을 괴롭혔잖아요? ”하고 항의하곤 했다.</p>
<p>그러나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 어머니의 주장이었다. [일본을 배워야 한다.] (2007년 6월) ”</p>
<p>그의 아버지는 머슴 출신으로 일본에 가서 택시운전을 했다고 한다. 당연히 창씨개명을 했다. 그는 어느 조찬회 자리에서 ‘이런 아버지가 친일이냐 ’고 되물었던 적도 있다. 당시 분위기에서 일본에서 택시운전을 했을 정도라면 확실히 일본 내에서 살고자 갔던 인물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p>
<p>이 글을 싣고 난 이후 한참 지나서 겨울에 쓴 글로 짐작되지만 다른 글 하나는 더 본격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보인다.</p>
<p>“필자는 지금 일본 남단 규슈섬의 샤쓰마 지방을 여행 중이다. 샤쓰마 지방은 이웃 쇼슈지방과 더불어 일본 근대화를 주도한 지방이다.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인 사까모도 료오마, 사이고 다까모리, 이또 히로부미 등의 기라성 같은 인재들 이 이 지방 출신들이다.</p>
<p>중앙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지대인 이곳 사람들이 일본 근대화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곳 사람들이 남 먼저 개방의 물결을 받아들여서 해외 문물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세계화에 앞섰다. 그렇게 세계화에 앞설 수 있었던 것은 열린 사고를 하였기 때문이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p>
<p>우리 한국사회는 지난 10년간 좌파세력이 주도하던 사회에서 이제 우파 보수세력이 주도하는 사회로 바뀌어져 가고 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한국보수우파 세력의 가장 큰 약점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누릴 줄만 알고 베풀 줄을 모르고 희생할 줄을 모르는 점이다.</p>
<p>이제 어렵사리 잃었던 주도권을 다시 찾은 때에 이전의 보수와는 달라져야 한다. 베풀 줄을 알고 나눌 줄을 알며 희생할 줄을 아는 보수로 바뀌어져야 한다. 그리고 변화하는 세계와 변 화하는 동북아 정세에 발맞추어 자신을 변화시킬 줄을 아는 보수가 되어야 한다. 그런 보수를 일컬어 ‘개혁보수 ’라 한다. [일본에서] ”</p>
<p>적당히 버무린 상태에서 이미 정치인이 된 김진홍이란 인물이 존재한다. ‘두레 공동체 운동 ’을 통해 사회사업의 최일선에 있었던 김진홍은 왜 정치인, 그것도 보수세력의 좌장(座長)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일까?</p>
<p>1996년에 그가 쓴 &lt;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gt;에서 그는 사회부패현상을 이렇게 진단했다.</p>
<p>“10월은 부끄러운 달입니다. 성수대교가 붕괴한 달이며, 친일파를 제거하고 새로운 민족사를 시작하려 했던 반민특위가 조직되었다가 실패로 끝난 달이기 때문입니다. ”</p>
<p>그 이후 그는 변신했다. 훼절(毁節)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 그 시기가 묘하게도 1997년경이다.</p>
<p>그의 이런 변신을 ‘구교형 ’이란 사람은 이렇게 평가했다.</p>
<ul class="checkListType">
<li>첫째, 극복해야 할 심각한 문제점들이 분명한 특정자본주의 체제와 힘의 질서를 절대화하고, 그것을 역사적, 도덕적 심지어 영적 표준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점</li>
<li>둘째, 모순된 자신의 젊은 시절과 현재의 변화상을 동시에 긍정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li>
<li>셋째, 십자가의 신학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번영과 힘의 신학을 신봉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li>
</ul>
<p>그는 종교인이나 사회개혁가가 아니라 지금은 완벽한 ‘정치인 ’이 되어 있다. 그것도 ‘친일매국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정치 목사일 뿐이다.</p>
<p>4월 한미, 한일정상회담을 위해 방미 방일 전에 김진홍은 MB에게 독도문제, 교과서 문제를 (일본에서) 꺼내지 말라 조언했다고 알려진다. 그 이후, 일본의 도발 때문에 서로 관계가 어색해졌다는 이야기가 들린 것이 지난 7월의 일이다. 그런데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면 내용은 또 달라진다. 독도, 역사교과서 문제가 한국 국내의 촛불민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도 인정해본다면 말이다.</p>
<p>사카모토 료마는 김진홍 스스로 인정한 ‘가장 존경하는 일본인 ’이다. 그는 13만 명에게 인터넷으로 전달되는 ‘김진홍 목사의 아침 묵상 ’에서 ‘자기 자신이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변화하고 성숙하여 나가야 함 ’을 강조한 제3의 지도자형이라고 그를 극찬했다. ‘시대를 탓하기 전에 먼저 열어 나가는 지도자다운 면모 ’를 보였다고도 했다. 샤쓰 마를 여행하면서 메이지 유신을 이야기 한 것과 일맥 상통한다. 그러나 그는 ‘이또 히 로부미 ’마저도 ‘기라성(綺羅星)같은 인물 ’에 올릴 정도로 일본의 근대화에 심취되어 있다. 후꾸자와 유키치를 일본 근대화의 선각자라고 극구 칭찬하는가 하면 일본의 과자가게 ‘도야마 ’의 상인정신도 배워야 한다고 설파한다. 훼절 이후 일본찬양에 열을 올리는 기색은 확실하다. 스스로 친일(親日)이라고 부끄럽지도 않게 말하고 있다. 아마 그는 스스로 극일(克日)을 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냐고 변명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이끄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여러 차례 독도문제이건 역사교과서이건 간에 모두 ‘일본이 정당하다 ’는 논지를 보인 바 있다. 극일, 지일은 없었다.</p>
<p>종교인의 정치화가 눈에 띄지만, 김진홍의 종교적 행동모델은 종종 ‘김교신 ’으로 일컬어진다. 일본의 반전 반제 신학자인 우치 무라 간조 문하에서 신앙을 배우고 난 후 1927년 귀국 함석헌, 송두용, 유석동, 정상훈, 양건상 등과 &lt;성서 조선&gt;을 창간한 인물이다. ‘조선산 기독교, 기독신앙 ’을 형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살았던 인물로 ‘김교신의 신앙고백은 진리에 대한 충성과 함께 민족의 얼과 양심의 표현이었다 ’(한국교회사를 쓴 민경배)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런 김교신을 김진홍은 흠모했다. 한 때 그가 발간했던 &lt;성서 한국&gt;이 김교신이 전력을 다해 발간했던 &lt;성서 조선&gt;에 담긴 신앙 유산임을 밝히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개혁 보수 ’라는 이름으로 ‘친일매국의 친위 ’를 자처하고 있다.</p>
<p>대통령과 일본에서 태어나 귀국했다는 인연, 한일수교 반대 경험, 그리고 기독교라는 신앙의 공통점, 나아가 일본을 보는 새로운 시각까지 공유를 하고 있는 흔적 속에는 그가 말한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 ’이 존재한다. 이명박-김진홍 간의 발언 유사점까지도 엿보일 정도다.</p>
<p>비단 이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확실히 정권지킴이가 되기로 작정한 정치세력의 힘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애국기독교 ’론으로부터 ‘친북좌익 편에 섰다 ’고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을 비난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 후보단일화에 개입하는가 하면, 아예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거기서 한 걸음을 더 나간다. 8월 8일자 성명에서는 1980년 전두환 정권에서 허문도 주도로 통폐합 시켜버린 TBC, DBS를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장악에도 개입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삼성이나 동아일보에 지금의 KBS2를 돌려줘야 한다. 삼성은 10조대 이상 출자총액이니 해당 사항이 없다. 그렇다면 동아일보에 KBS2를 줘라고 하는 소리다. 뜬금없이 보이지만 방송언론 장악과 정권 창출 공신들에 대한 나눠먹기에 협조해라는 압박으로도 보인다. 어느 곳에서도 ‘반전 반제 ’의 사상을 배웠던 김교신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필요할 때 써먹는 ‘포장 ’으로 전락되었다.</p>
<p>이런 그가 지난 5월 사단법인 고구려역사문화보존회 이사장에 취임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워낙 많은 뉴스 속에 묻혀졌다. 고구려 역사에 왜 김진홍이 들어갔는가? 혹자는 뉴라이트가 반북단체와의 결합을 통해 전통적 반공 우익의 결집까지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역사까지 들어있다.</p>
<p>김진홍은 도대체 어디를 자금원으로 해서 2005년 11월 뉴라이트전국연합을 만들고 나서 가히 놀랄만한 속도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법조 종교 등에 걸쳐 세포조직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언뜻 보기에도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회비니 혹은 정치헌금, 보수단체의 지원 등으로 말하기는 역부족이다.</p>
<p>그의 일본 행을 통해 본 자금의 루트는 대체로 선명해진다. 그가 현재로써는 일본기획자가 공급한 가장 강력한 자금공급 라인이었다고 봐야 하는 셈이다.</p>
<p>안병직-도요다 재단에는 박건우라는 인물이 존재한다. 한국도요다자동차 회장이라는 직책으로 작년까지 일했던 인물이다. 뉴라이트 재단은 일본 자금을 받았다는 게 공개되면서 그들의 적극적 친일행각과 함께 완벽한 친일분자란 낙인이 찍혔다. 김진홍은 교묘하게 피해간다. 그가 두레공동체를 통한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안병직과는 달리 그는 사회사업가이고 일정 수준의 후원이 가능하다고 사람들은 지레 짐작해버렸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해명되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한 활동영역을 어떻게 설명할까? 정치조직을 구성해본 사람이라면 여기에 대해서는 알만하다고 여긴다.</p>
<p>일본기획자는 어떤 루트에서 자금을 공급했는가? 그것을 김진홍이 부인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금원과 사용용도, 목적 등 모든 회계를 밝혀야 한다. 아마 밝힌다 해도 십중십이 거짓일 공산이 크다 .</p>
<p>일본이 일차적으로 대상을 삼았던 밑그림에 김진홍-이상득- 최시중이 있고 이 라인은 바로 MB에게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사냥개의 첫 단계에 속했다. 이게 사실상 본류라고 봐야 하는 셈이다.</p>
<p>안 병직-이영훈-박효종-박세일 등은 차라리 이 메인 스트림에서는 이론을 공급하거나 정치적인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안병직의 뉴라이트재단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그것을 믿는 이들은 없다. 이 둘 간의 관계는 일종의 쌍두마차 개념이다. 초기 바람잡이는 안병직이라는 학술적 인물이 나섰지만 집권 이후는 김진홍이 본격적으로 정치일선에 개입하는 중이다.</p>
<p>그런 점에서 초기 자유주의연대를 이끌었던 신지호-홍진표-최홍재 그룹은 그들 말로는 전향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친일로의 훼절을 해버린 386들이 주축이 되었던 사냥개 그룹이다. 대체로 1997년경 홍진표와 최홍재 두 사람은 신지호의 영향을 받아 우익을 표방하게 된다. 그러다가 2000년 이후 신지호가 서울로 돌아오면서 본격적인 자금이 공급되면서 자유주의연대라는 그들 식의 뉴라이트 제1세대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언뜻 보기에는 안병직 류나 김진홍과는 다르게 움직였지만 결국 뉴라이트라는 이름 하에서 2006.6. 뉴라이트 재단으로 모두 합쳐지게 된다. 이들 또한 김진홍-서경석 등과의 교류를 통해 일정 수준 정치적 입지를 가지려 하고, 안병직 류보다는 김진홍에게서 그 혜택을 더 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른다. 자금원의 파워이고 또한 정치적인 영향력 파벌로 기생(寄生)하게 된 모양새다.</p>
<p>이 세 가지 유형을 중심축으로 이끈 것은 김진홍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부적으로 세력 다툼 같은 분란도 벌어지지만 김진홍의 영향력은 여전하다.</p>
<p>최근 그들의 모임에 참가했던 사람들 가운데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꽤 되는 모양이다.</p>
<p>“MB가 말을 잘 안 듣는다. 우리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도 힘을 보여줘야 한다. ”</p>
<p>하나의 집단이 탄생하고 난 이후 분화되는 과정을 거쳐 이제는 세력화에 기반한 국정개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법률 등 모든 분야가 들어오게 된 상황에서 일본기획자는 이들을 사냥개로 한 다음 단계를 노리기 시작한다.</p>
<h3>3. 공격루트(2); 친미수구 달래기<sup class="tocAnchorContainer"><a href="#toc_3" class="anchor" title="toc_3" id="toc_3">#</a></sup></h3>
<p>친일세력은 어떻게 친미수구들과 지내고 있는가? 이 과제는 꽤나 흥미롭게 조명될 가치가 있다. ‘친일=친미 ’라는 등식은 현재까지는 유효하지만 미일 관계가 언제까지 동맹의 극대화 상태를 유지하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국이 동북아시아 외교에 있어 일본을 제2의 이스라엘화하는 시도를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일본 양자 관계에서는 여전히 문화적이거나 혹은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결합된 상태라고 보기도 어려운 구석이 많다. 그러니까 친일과 친미가 공존하는 한국에서 이들 두 세력이 취하는 입장도 약간씩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셈이다.</p>
<p>우 선 친미숭미 주의자들의 시각을 보자. 1945~1948년 간의 신탁통치는 차치하고 1950~1953년간 한국 전쟁은 미국이 완벽하게 서울 내의 다양한 경로를 포획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해방 이후 신탁통치 기간 동안 미국이, 1948년 이후 이승만 정권이 친일분자들을 사회 시스템 유지의 일선에 배치한 이후 친일은 친미라는 배로 옮겨 타면서 그들의 기득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친일이 곧 친미는 아니었지만 미국은 나름대로 한국 내의 친미분자를 확산하는 데 열중했던 것도 사실이다.</p>
<p>2008.7.1 ‘한미우호의 밤 ’이 열렸다. 한미우호협회 회장인 박 근의 축사 가운데 한토막은 이랬다.</p>
<p>“유월은 잔인한 달입니다. 장마가 시작되고 북한이 한국전쟁을 일으킨 달입니다. 금년에는 데모와 반 데모, 촛불과 깃발, 쇠파이프와 물대포들이 서울의 도심지를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감정의 고함소리는 주변언덕의 푸른 숲과 날아가는 구름 안에 메아리칩니다. 거짓되고 근거 없는 공포와 증오가 디지털 공간을 채우면서 미국소가 광우병 소가 되고 미국사람이 광우병 환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가련한 미국산 쇠고기, 그렇게도 연하고 맛있는데…”</p>
<p>그는 외무부 본부대사를 거쳐 1991년 한국의 학계, 경제계, 사회 문화계, 국가안보분야 등 여론을 이끌어가는 지식인 및 일부 주한 미국인으로 구성된 (사)한미우호협회를 이끄는 인물이다. 그에게 서울보다는 워싱턴이 더 조국(祖國)에 가깝다는 인식이 엿보이는 것이다.</p>
<p>그가 쓴 책들 가운데는 ‘한국의 보수여 일어나라 ’(2002), ‘정과 멋의 한국보수주의 ’(2000), ‘한국 보수주의 위기 ’(1997) 같은 책이 있는 데 이들은 한결같이 ‘한국 보수주의=친미숭미 ’의 등식을 기본으로 한다. 그 가운데서 친일은 찾기가 어렵다. 즉, 한국보수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미국적 관점에서 한미동맹이 발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p>
<p>실제 역사가 더 오랜 곳이 ‘한미협회 ’다. 1963년 창립되어 1977년 사단법인 설립인가를 받은 곳이다. 발기인에 이화여대 김활란이 있고, 사단법인이 되는 시점에서는 모윤숙이 이사 이름에도 등재되었다. 고문으로 고 정주영 회장의 이름도 보인다. 2003년에는 한미우호상을 백선엽에게 수상했다. 상공회의소나 무역협회장, 주한미사령관 등을 고문으로 영입하는 조직이다. 친일요소가 듬뿍 담겨있고, 친미와 친일이 합쳐져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단체다. 이들은 적극적인 정치참여보다는 조용한 한미동맹 유지의 버팀목 기능을 수행하는 듯 보인다.</p>
<p>흥미로운 대목이 바로 8월 5일 부시 대통령 방한이전 보수단체의 맞불집회에 이름을 올린 단체들이다. 이른바 ‘애국시민대연합 ’으로 불려진 이 집회 구성에는 한미우호협회, 뉴라이트전국연합, 한국자유총연맹, 밝고힘찬나라운동, 금란교회, 국민행동본부, 기독교사회책임 등이 있었다. 친일과 친미가 마구 짬뽕처럼 얽혀 있다.</p>
<p>대체로 ‘친일 ’에 가까운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종종 일본식 사고가 발
